이름만 아는 언니들이 열심히 싸우고 계셔서 즐거운 현장. 근데 이렇게 싸우면 가부장제도 좀좀따리 해체되는 거 맞쥬?…
암튼 잘 싸우시고 응원합니다!!!
저는 찬찬히 페미니즘 읽으면서 생각하고 또 쓰고 떠들도록 하겠지만… 당분간은 재밌는 거를 더 읽으려고요!!

심귀연의 기후위기 시대의 페미니즘과 신유물론은 페미니즘이 기후위기로 인해 긴박하게 마주한 자연과 물질성의 문제와 페미니즘의 ‘몸‘과 ‘행위‘, ‘행위자’의 문제에 대한 사유를 교차시킨다. 메를로-퐁티를 경유하여 버틀러, 그로스 버라드, 아메드 데이비스 등의 논의를 소개하고있다. *버틀러에 대한 버라드의 비판, 그에 대한 아메드의 비판, 이어지는 데이비스의 비판은* 앞선 김남이의 글과 궤를 같이하며, 버틀러의 ‘몸‘이흔히 지적되는 바 담론적으로 구성된 수동적 신체가 아니라 자연-문화적으로 결합된 몸으로서 "관념적인 것도 아니며, 물질적인 것도 아니다. 또 그 몸은 관념적이며 물질적이다"라고 설명한다. 버틀러적 몸 개념의 ‘성차‘에 대해서는 두 글이 다소 다른 견해를 피력하므로 비교하며 읽는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 P6

즉, 아메드가 보기에 신유물론은 자신의 학풍을 구성하기 위해서 동시대 페미니즘 이론들이 모든 물질을 문화나 언어로 환원했고, 물질을 망각해왔으며, 반생물학주의에 근거해 있다고 규정하는 제스처를 반복적으로해오고 있다. 그녀에 따르면 그런 제스처 자체도 문제가 있지만, 더 큰문제는 그런 제스처가 기존의 페미니즘 사상의 계보 내에 있는 다양한물질 이론과의 대결을 삭제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제스처의 정확한사례로 그녀는 캐런 버라드를 든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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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5-08 0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캐런 버라드가 누구야…. 하며 찾아보다가 누구랑 누구랑 싸우는 지도 궁금해서 목차를 보다 보니 (저는 그분들을 모름) 반가운 이름이 있네요?

잘 못 이해할 것 같지만 사야할까요… 🤔

공쟝쟝 2023-05-08 08:56   좋아요 2 | URL
사라 아메드 나오고요 ㅋㅋㅋ🥹

건수하 2023-05-08 09:08   좋아요 0 | URL
아메드 읽다가 잤는데 아침에 보고 반가워서 ㅎㅎㅎ

공쟝쟝 2023-05-08 09:18   좋아요 2 | URL
버라드가 저술한 책은 아직 없고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요ㅋ 양자역학ㅋㅋ), 그냥 페미니즘 최신 담론 어찌되는 건가 살펴보는 데에는 의의가 있을 것 같고.. 그런 것이 한글로 된 책으로는 저는 이 책이 처음인 것 같아 읽어보고는 있는 데... 어려워요! 어쨌든 제가 찾아 읽을 수 있는 최전선(?) 이론은 이론이고, 글은 글이고 지금 제 수준과 현실에서 더 가려운 곳을 긁어지거나 더 따끔하게 해줄 책을 찾아 또 읽어보는 일은 계속 하도록하려고용...

건수하 2023-05-08 09:20   좋아요 2 | URL
https://m.hani.co.kr/arti/culture/book/970735.html#ace04ou 이거 좀 훑어보다가 껐어요… 🤣

공쟝쟝 2023-05-08 09:39   좋아요 1 | URL
저는 그래서 아톰익스프레스를 미리 사놨습니다 ㅋㅋ
임소연씨 이 글이 나온 단행본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은 얼마전에 읽었네요 ㅋㅋ

건수하 2023-05-08 10:31   좋아요 2 | URL
아 그 책에 나오는 글이었군요? 사놓고 안 읽은 책만 다 읽어도 유식해지겠… 😅
 

정지돈 읽다만 책에서 가장 웃었던 일화.
나도 조지 오웰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1984를 읽다가 너무 촌스러워서 참을 수 없어서 결국 읽다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화를 읽고 조지 오웰을 읽을까 싶었다는 하나마나한 소리.
금정연의 징징은 이제 좀 알겠고,
정지돈의 헛소리는 친구님 때문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도록 하겠다.

장강명에 이어서 소설은 안 읽지만 산문을 계속 읽게 되는 작가 부류에 정지돈 좀 넣어볼까 싶음. 다만 그의 얼굴은 궁금하지 않다. 하…… 알게 되더라도 알려주마세요! 과잉정보사회의 폐해 ㅋㅋㅋ

앗 이런 문장의 밑줄도 찾았는데 “(80) 일기란 본래 남이 읽으면 안 되지만 언젠가는 읽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그런 속마음과 유사하다. 몰랐으면 하지만 알아줬으면 하는 것.” 


일기 훔쳐보는 재미가 있는 신세경 닮은 친구님이 피식 웃기를 바라면서.

그나저나 파리가고 싶네. 내일이 안왔으면 좋겠어서 글루미한 오후다.



정연씨는 두 달 동안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 삼 개국을돌며 조지 오웰의 발자취를 좇고 있었다. 파리에는 사박 오일 머물 예정이며 방문해야 할 장소는 서른다섯 곳입니다.
금정연이 말했다.
-조지 오웰 좋아해요?
내가 정연씨에게 물었다. 조지 오웰은 우리가 진심을 다해 좋아하기엔 너무 유명한 작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물론 유명한 것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데 흠이될 순 없다. 다만 유명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시시한유명세와 심연의 유명세. 조지오웰, 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르만 헤세, 무라카미 하루키 등은 시시한 유명세의 대표자들이다. 심연의 유명세에는 조르주 바타유, 클라리시리스펙토르 등이 있고 이 둘이 어떻게 묶이는지에 대해선 묻지 말 것 더 깊은 심연의 유명세에는 마리안 프리츠나 소피 포돌스키 같은 작가가 있다. 시시한 유명세와 심연의 유명세 사이의 차이를 묻는 일은 무의미하다. 차이가 없거나차이가 있다 해도 도식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둘의 차이는 이 군에 속하는 작가들에게서 오는 게 아니라 이 군을나누는 애호가들에게서 온다).
-조지 오웰 안 좋아했죠.
정연씨가 대답했다. - P78

-근데 전기를 왜 써요?
-조지 오웰은 스물일곱 살에 서평을 쓰기 시작해서 평생 생활고에 시달리며 한 해에 백 편 이상의 서평을 썼습니다. 저는 스물일곱 살에 서평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쓴 서평은 모두 몇편일까요?
금정연은 타자기로 원고를 쓰듯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그와 칠 년을 알고 지냈지만 이렇게 뭔가를 인용할때면 그는 정말 평론가 같다.
-조지 오웰은 「어느 서평자의 고백」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책과 일종의 직업적인 관계를 맺고 보면 대부분의책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를 알게 된다. 객관적이고 참된 비평은 열에 아홉은 이 책은 쓸모없다, 일 것이며, 서평자의 본심은 나는 이 책에 아무 흥미도 못 느끼기에 돈 때문이 아니면 이 책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일 것이다." 지도씨, 이제 제가 왜 조지오웰의 전기를 써야 하는지알겠죠?
―……………그럼 서평은 왜 쓰는 거예요?
-조지 오웰은 「어느 서평자의 고백」 마지막에 이렇게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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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7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7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8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8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끼 2023-05-07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지오웰은 어느 서평자의 고백 마지막에 어떻게….!!

공쟝쟝 2023-05-07 17:3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우끼님한테만 알려줘야지 ㅋㅋㅋ

2023-05-07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7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3-05-07 17:43   좋아요 1 | URL
이상한 사람들이 글읽고 책쓰나봐요 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3-05-07 19: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궁금해요!!!!!
그리고 소위 ‘이상한 사람’들이 글 읽고 책 쓴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거 아니라도 나는 이상한 사람인 것 같은 걸 어제오늘 또 느껴서 ㅋㅋㅋㅋㅋ ㅠㅠ 하… 인간이란 무엇인가…….

공쟝쟝 2023-05-07 21:29   좋아요 3 | URL
- 조지 오웰은 「어느 서평자의 고백, 마지막에 이렇게 썼어요. (또다시 인용 기계 등장) ˝두 가지 업을 다 해본 입 장에서 말하건대 서평자는 영화평론가보다 낫다.˝ 이게 제가 할 말입니다.

ㅋㅋㅋㅋ
ㅋㅋㅋㅋ

그런 의미에서 매문은 역시 하면 안되는 일 인 것입니다!‘

새파랑 2023-05-07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표지만 봐서는 정지돈 작가님 잘생기셨는데요? ㅋ 심연의 유명세 작가는 한명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조지 오웰 작품 읽다보면 재미있습니다. 1984가 좀 그러셨다면 동물농장이라도~!!

공쟝쟝 2023-05-07 20:08   좋아요 3 | URL
동물농장 읽었죠 … 그때부터 촌스러웠어요 ㅋㅋㅋ ㅋㅋ 오웰도 산문이 낫습니다 ㅋㅋㅋㅋ

새파랑 2023-05-07 20:10   좋아요 0 | URL
역시👍 전 오웰 산문은 읽은적이 없는데...그런데 전 산문이랑 잘 안맞더라구요 ㅋㅋ

공쟝쟝 2023-05-07 20:12   좋아요 3 | URL
그리고 정지돈은 글이 얼굴보다 낫네요… ㅠㅠㅠ 얼굴 나도 봐버렸다ㅋㅋ 밀란 쿤데라는 대표적으로 얼굴 땜에 글이 더 잘써져 보인달까요 ㅋㅋㅋ (남자 작가는 일단 얼평 부터 하고 본다 ㅋㅋㅋ)

새파랑 2023-05-07 20:15   좋아요 2 | URL
정지돈 작가님 찾아보니 엄청 잘생기셨는데...글이 얼마나 좋길래 ㅋ
쿤데라에서 갸웃하고 갑니다. 오웰이랑 비슷(?)한 느낌인건가요? ㅡㅡ

공쟝쟝 2023-05-07 20:20   좋아요 4 | URL
쿤데라 젊었을 때 사진 분위기 특이하게 잘생겼고 정지돈은 …… 네? 이상한데요? ㅋㅋㅋㅋ 님 눈 좀 높이세요 ㅋㅋㅋ

새파랑 2023-05-07 20:27   좋아요 1 | URL
헛.... ㅋ 눈높으신 공쟝쟝님 ㅋㅋㅋ

잠자냥 2023-05-09 14:17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새파랑 님이 남자 보는 눈 좀 높여야겠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2023-05-07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7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먼지 2023-05-09 13: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진짜 너무 안 읽혀서 꾸역꾸역 다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와중에도 친구들 일화는 참 좋았어요!! 그리고 정지돈 작가의 책 고르는 안목도요!! 후장사실주의나 기타 등등에 대해서는.. 에휴.. 말을 아끼겠습니다

공쟝쟝 2023-05-10 09:25   좋아요 1 | URL
아. 정지돈만 이야기하면 후장(딴지 일보 느낌 나는데 이 말하면 후장주의자들은 싫어하겠죠? 그래도 난다. 그것이 바로 한남감성...). 이 나와서 제가 좀 찾아봣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젊은(이제 젊지 않은) 한국 남성 문학*연*한 사람들의 친목회 아닙니까?..... 이번남들이 책 안 읽어서... 그들을 마지막으로 계보는 끝난 것 같고요... . 수요없는 공급...ㅋㅋㅋㅋㅋㅋㅋㅋ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자들이었을 것 같은데... 아직도 문학 읽는 여자들이 좋아하나요?ㅋㅋㅋ (모름 몰라서 하는 소리임)

한국 남자가 게임안하고 문학/영화/음악/학문하겠다면 말리지 않습니다. 잘 하면 좋겠지만. 좋은 게 나올지는 모르겠슴 ㅋㅋㅋ

책먼지 2023-05-11 11:19   좋아요 1 | URL
쟝님 맞아요ㅜㅜ 지들끼리 사적인 자리에서 떠드는 거야 못 말리겠지만 왜 그걸 굳이 출판되는 글에까지 끌어오는지 모르겠고..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안하겠지만 카르텔 형성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최소 주례사 장인들.. 그치만 그르네요 딴 거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문학 등등 하는 게 낫겠어요. 실망하더라도 꾸준히 읽어보려는 독자마저 외면하고 싶게 만들면 그들은 대체 누굴 위한 글을 쓰는 건가요!! 에휴!!!

공쟝쟝 2023-05-11 17:32   좋아요 1 | URL
아이 잘 아시면서~ 글은 원래 자기를 위해서 쓰는 거 아닌가요?ㅋㅋㅋ 스타일이 안맞으면 독자는 외면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파리가고 싶어서 샀고, 중고로 샀기에 만족스럽습니다...ㅋㅋ자기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고 하는 거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현상이고 문단이라고 별 다를바 있겠나요? (카르텔은 저도 알라딘에서 페미 책읽기로 형성하고 있...는 걸요... )
근데 뭐가 없는데 뭐가 있는 것 처럼 상찬해주는 건 좀.......... !! 자꾸 없는 데 있다고 해주는 게 이상해요 저한텐 ㅋㅋㅋ 내가 못보는 건가? ㅋㅋ 뭐 나한테는 안중요하니까 못보는 거겠죠? ㅋㅋㅋ
제가 문학이랑 특히 한국 문학이랑은 안친해서.. (ㅜㅜ 아,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그게 서로의 친목이 매출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예요? 허허.. 놀랍네요... 얼마전 대디님 페이퍼 사태 부터... 한국에서 출판으로 먹고 살기라... (그쪽에 발 안집어넣길 다행 ㅋㅋ)
 
[임신중지] 선택을 선택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는데요?
대상화와 아렌트, 그리고 꽃바구니
글자랑 가까이 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 물리적으로...

1.


아니 에르노의 데뷔작인 <빈 옷장>을 읽으려다가 또 실패했다. 작가의 낙태 경험으로 시작하는 책의 첫 페이지는 자궁에 막대기를 집어넣는 묘사가 있다. 에르노의 <사건>을 온 얼굴을 찌푸리면서 읽어버리고 다시는 읽지 않고 싶다 냅다 내던졌던 기억이 난다. 독서 경험은 강렬해서 그걸 지우고자 <레벤느망>(은 <사건>을 영화한 작품이다)을 꾸역꾸역 다 보았는데… 그 이미지들은 더 괴로웠다. 프랑스 영화는 역시 좀 지독한 데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생리통이 심한 편이고, 이것은 28일 주기로 반복되며 나이가 들면서는 pms까지 생겼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pms가 심해지면서 생리통은 좀 줄었다) 무슨 말이냐면 28일 중 8일은 이 종(種)의 유지를 위한 까닭으로 몸이 아프다는 거다. 결혼은 하기 싫은 데 좀처럼 출산에 대한 욕망(…) 혹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무의식 속에 새겨진 소명(…)은 내려놓기가 힘들었다. 


결혼해도 절대 아이는 낳지 않겠다는 지독한 반출산파 친구가 걷다 말고 물었다. “넌 대체 왜 애가 낳고 싶은데?” 이젠 정말 몰라져버렸는데, 지금 당장 떠오르는 말 해도 돼? 해봐. 생리한 게 너무 아까워. 뭐 하러 이렇게까지 아팠나. 친구는 넌 진짜 진지한 또라이야라고 말해서 같이 웃었다. 나도 안 할래, 엄마. 때려치우자.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닌 것 같음. 그러면 생리는 왜 하는 걸까. 아 생리하기 싫다. 또 진지해져서 미레나 가격을 검색하다가 관뒀다. 생긴 대로 살자. 좀.  


아니 에르노의 책들. 임신 중단이 불법이던 시절에 있었던 상식적이지 않은 시술에 대한 묘사들을 읽으면서 자동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은 자궁벽을 득득 긁어내는 것 같은 익숙한 생리통의 느낌이다. 감각적인 글은 어떤 감각을 활성화시킨다. 오늘 나의 몸 상태는 이런 책을 소화하기에는 좀 지쳐있다. 


내겐 임신중단과 출산의 경험이 없고 둘 다 생리통보다는 고통스럽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할 뿐. 다만 임신 중단의 경험을 읽는 것이 출산보다 심적으로 더 괴로운 것은 그것은 말 그대로 몸에 새겨진 ‘수치’이니까. 그냥 내 몸에서 일어난 일일뿐인데도 사회는 그것을 ‘수치’로 여기니까.

사회 속에서 사는 나는 신경 써서 스스로를 의식하지 않으면 사회의 시선(언어)으로 나를 바라보게 마련이다. 나를 인정하기 위해서. 나를 ‘수치’로 느끼지 않기 위해서. 아니 에르노는 언어를 만들기로 했다. 경험을 소설로 썼다. “(20)말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질 때, 그것은 정치적”이다. 그녀는 글을 썼고. 말할 수 없는 것을 썼다. 글로 복수를 했다. 이처럼 우아한 복수. 그리고 이토록 치열한 복수. 





아니 에르노~! 멋지다~! 아니 에르노~! (연진아 멋지다 박연진 버전으로 읽어주세요)






2.


아니 에르노의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문을 출력해서 읽었다. 누워서 읽다가, 자세 고쳐서 앉아서 읽다가, 마지막에는 울고 말았다. 


“(21) 오로지 *그 대상이 되는 이들만 느끼는 계급과 (혹은) 종(種), 성(性)의 내면화된 지배관계*라는 사회적으로 말할 수 없는 사실을  분명하게 할 때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의 해방 가능성 또한 드러납니다. 언어, 모든 언어가 가지고 있는 관점과 가치를 제거하면서 현실 세계를 해독하는 것, 이는 기존의 질서를 뒤집고 위계를 뒤엎는 일입니다.”

나는 아니 에르노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녀가 쓴 글에 빚을 지고 있었다. 무지무지 똑똑한 여성들의 용감한 읽고 쓰기 덕분에. 현시점의 나는 정확하게 안다. 임신중단은 수치의 경험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어떤 여성도 임신 중단을 스스로의 수치로 여겨서는 안 된다. 수치스러워해야 하는 것은 여성의 ‘일반적인 경험’을 ‘말할 수 없는 수치’로 묶어둔, 노예제보다 먼저 태어나 아직도 죽지 않은 5천 년 여성억압을 여전히 자행하고 있는 인간 종(種) 전체다. (관련 페이퍼 링크 <임신중지>https://blog.aladin.co.kr/jyang0202/13918760)


어떤 사회의 지배원리는 말 그대로 ‘내면화’되어 있어 의식하기 어렵다. 그것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침묵이 딸려오며, 사실은 힘이 없어 가치가 되지 않기에 다뤄지지조차 않는다. 대상이 되어본 사람들에겐 언제나 언어가 충분하지 않다. 언어와 몸의 불일치. 언어는. 


그중에서도 특히 ‘글’은 오랫동안 언어가 없는 이들을 대상화할 수 있는 위치에서 독점되어 생산되어온 지배 질서 자체이며 권력이었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들은 감히 글을 썼고, 문학을 공부하던 스무 살의 아니 에르노도 빅토르 위고를 읽다 말고 글을 썼다. 어느 책에도 낙태는 없었으니까. 그녀가 읽어온 모든 글에는 지금 내 자궁을 헤집고 있는 낙태 기구가 묘사되어 있지 않았다. 


1959년 아니 에르노는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읽었다고 한다. 

2019년에 나는 <제2의 성>을 읽었다. 

그리고 2023년의 나는 아니 에르노를 읽는다. 


글을 읽는다. 여자인 내가. 

글을 읽는다. 여자가 쓴 글을. 



3.


“(11)어떤 글쓰기를 선택해야 하는지 자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언어를 더는 말하지 않는 이민자들 그리고 더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회 계층을 이동한 자들은 다른 단어들로 생각하고 표현합니다. 그들 모두 부수적인 장애물들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일종의 딜레마이지요. 그들은 실제로 습득한 언어이자 지배의 언어, 그들이 배워서 숙달한 언어이자 문학 작품 속에서 경탄한 언어로 글을 쓰는 일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더 나아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언어로 자신들의 출신 세계를, 일상과 일, 사회에서 차지한 자리를 말하는 감정과 단어들로 이루어진 *첫 번째 세계*와 관련된 모든 것을 쓸 수 없다고 느낍니다. …  ”

아니 에르노는 스스로를 계급 이탈자(그녀의 언어로 말하면 ‘내부에서 이동한 자’)로 여긴 듯하다. (연설문을 읽고 알게 된 사실이다) 그녀에게 글과 문학은 노동 계급인 부모님으로 상징되는 “(9)스스로가 속한 사회계층과 무의식적으로 대립”되는 것이었다. 공감했다. 


이 역시 내가 조금은 늦게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어떤 균열 지점인데, ‘내면화’의 문제와 연결되었다는 걸 조금씩 인식하고 있다. 다만 나는 내 계급의 이탈자는 아니다. 계급은 여전히 나의 발목을 꼭 붙들고 쉽게 놓아주질 않으며(ㅋㅋㅋ) 상승의 의지가 이제 더는 없고...ㅋㅋㅋ 내게 보다 직접적으로 와닿는 문제는 여성임과 동시에 지역 이동자(?)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나라는 지역 자체가 계급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이동한 내게 대도시의 인간관계 문법은 이국의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낯선 것들이었다. 어디에 있든 뭔가 계속 부적절한 느낌이었고,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서 술을 마셨다. 완벽한 서울 말씨를 구사하면서 거리감을 눈치껏 조율하고 내가 취약한 종류의 인간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썼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다 힘들었다. 그냥 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 서울 사람들. 혹은 서울에 잘 적응한 사람들. 너무 멍청해보여서도 또 지나치게 똑똑해 보여서도 안되는 방식으로 내가 잘 보여야 하는 사람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가? 내가 이상해 보이면 어쩌지?를 스스로 묻게 하는… 그리고 이제 나는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도 없을 만큼 딱 그만큼만 변해버렸고, 더 잘 변하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면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도통 모르겠는 나의 ‘첫 번째 세계’에 대해 골똘해 진다.


곰곰 생각해 보면 유년 시절의 연장인. 

나의. 첫 번째. 세계에 대해서. 

...


쓰는 것은 고사하고 말하는 것부터가 힘들다. 아주 웃기고 희화화해서 말하게 되거나 이해하기 쉬운 클리셰 범벅의 향수를 섞어 미화하게 된다. 그리워하고 좋은 점을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낭만화하고, 그래서 좋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부분을 전체화하는 내부 고발자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거의 문법과 관계들이 내게 상처를 준 것은 사실이지만 상처가 전부는 아니었고, 사실 정말 상처는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무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들이지만. 당연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정말 모를 것이다. 그 모름을 폭력이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나는 내 적응못함을 더 이상은 탓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세상이 그런 것들로 조밀하게 짜여 있다는 게 보인다는 것이 내겐 중요하다. 


어떤 세계를 오롯이 간직한 채 건강하게 분리되고 싶다는 욕망은 이런 바쁜 시절에는 헛된 욕망인 걸까. 

차라리 긴박한 단절을 권하는 빠른 적응력의 친구들까지도 현시점의 내겐 불가해한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4. 


페미니즘 책(어려운 사회학 용어로 되어 있다)을 읽으면서는 탈근대의 시절을 살면서 전근대적인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하는 내가 이상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아, 그럴 필요조차 없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페미니즘은 근대를 벗어난다고 하고, 젠더에서 시작되어 젠더를 해체해버렸다고 하는 데, 아무래도 나는 유교걸(전근대인ㅋㅋㅋ)이라 대체 이걸 왜 읽어야 하나 싶은(다 읽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상태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포스트모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였다. 그냥 글자에 붙어있는 개념 말고. 나 스스로에게 말이다. 


이번에 푸코 강의를 들으면서 좀 더 알 것도 같아진 것은. 포스트모던은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어쩌면 공간의 개념에 더 가깝고 차라리 인식의 개념이라는 것? 선명함과 명료함을 특징으로 하는 근대의 언어(지배의 언어)에 포획되지 않는. 어쩌면 근대적인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결코 안되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기성의 언어 안에는 아직 없는. 


그래서 언어를 가져야 하는. 근대의 방식으로 근대의 입장에서 포섭되어 해석되지 않는/없는/안되는 모든 것들. 포스트모던적인 것들. (정희진 선생님의 공부 팟캐스트를 5월호 들으면서 더 확실해졌다! https://www.podbbang.com/magazines/1785996/issues/3377)


그러니 페미물 먹은 유교걸인 나는 전근대에서 온 철모르는 버그가 아니라 아니라 존재 자체가 포스트모던 일 수밖에 없었던 건데. 세상에나 그런 나를 대변(?)한다는 포스트모던 관련 글들은 너무 어렵고요? 이걸 또 쉽게 쉽게 모던적으로 쓰려고 하니까 내가 모던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써지겠냐… (라고 비껴갈 생각하지 뫗!!! 그냥 난 이해를 못 해서 못쓰는 게 아닐까?) 어쨌든 이 정도 수준에서 거칠게 이해했다고 써 놓으면 좀 쪽팔리지만 이 정도 알았으면 많이 안거 아닌가!!!??ㅋㅋ하고 뿌듯해하는 중였는 데… 


천재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의 이 연설문은 정확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여성에게 읽고 쓰기가 왜 필요한지. 계속해서 나빠질 것이 자명한 이 세계에서 폭력을 견디기가 버거운 사람들은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그 힌트를 쉽고 간명하고 아름답게 말해주고 계신다. 

“(15) 글쓰기에 대한 성찰 없이 어떻게 삶을 성찰할 수 있을까요? 글쓰기가 존재들과 사물들에 대해 경탄하거나 내면화하면서 재현한 것들을 강화하는지 혹은 어지럽히는지, 스스로 묻지 않고 삶을 성찰할 수 있을까요? … *독자가 문화적인 특권자일 때, 그는 실제의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책의 인물과 관련해 우월하고 거만한 위치를 점유*했습니다. 그러니까 시작은 이런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내가 늘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 아버지를 바라보던, 참기 힘들었을지 모를, 그리고 스스로 배신이라고 느꼈던 그 시선*을 피하고자. (…중략) 실재와 실재가 전한 감각을 동시에 포함한 단어들을 찾는 것은 오늘날까지 그 대상이 무엇이든 글을 쓰면서 느끼는 변함없는 고민이 되었습니다. ”


이런 깊디깊은 사유에서 나온 것이 에르노의 소설이었다. 어쩐지 뭔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계속 읽게 되더이다. 이것은 역시 똑알똑친!! 나는 나도 모르게 알아보고 만 것이다. 아니 에르노의 세계 최고 똑똑함을. 



5.


마지막은 내가 눈물 한 방울 또르륵 흘린 연설문의 끝 부분이다.  

“(25) 그 약속에서, 나의 조상들에게서, 노동에 지쳐 일찍 생을 마감한 남자와 여자들에게서 나는 충분한 힘과 분노를 얻었습니다. 그 힘과 분노는 문학에, 다양한 목소리의 총체 속에 그들의 자리를 마련하고야 말겠다는 욕망과 야심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제공하고, 문학에 맞서 반항하고 문학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비롯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바로 그 문학 속에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여성이자 

계급 탈주자로서의 

나의 목소리를 

언제나 해방의 장(場)으로 

소개되는 그곳, 

문학 속에 

기입하기 위해서.”


계급 탈주자. 

건너간 곳에서 건너온 곳을 쓰는 마음.

눈치 챘겠지만 내 눈물은 당연히 집에 계시는 부모님이 생각나서다ㅋㅋㅋ  (지겨운 K-장녀 감성)


에… 그러니까… 뭐, 아니 에르노에게는 탈주해버린 뒤의 부모님에 대한 시선이었겠지만… 

나에게 가족이란? 허허. 사실 나 역시 부모님과 대화를 할 수가 없어진지는 너무도 오래… 뭐, 그건 어느 집이건, 다 그러겠지만. 


우리 집의 경우 좀 유별나긴 하다. 그 대화가 필요해 딱 그느낌. 테레비 보고 말없이 밥만 먹음. 가아끔 “말하면 싸우니까” 말하지 않는다가 원칙일 정도. 그래서 ‘말 = 싸움’으로 정리된다. 그게 우리 집의 문법(?)이다. 평소에는 말을 안 하다가 말을 하려면 끝이 없어지니까… 생존 소통만 함. 아니면, 그냥 나는 말할 테니 너는 들어라! 이런 식의 소통… 강제된 소통이 다임. 


그렇다고 사랑이 없는가? 또 그건 아니다… 나는 이 간극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뭐 그리고 표현할 생각도 이 글을 읽기까지는 딱히 안 해 봤…. 여튼 공감했다는 거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한테. 


문제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언어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게 되는 내 인식인데. 

그래서 내가 부모님과는 다르게 말 혹은 글 어쩌면 내 언어를 갖게 된다고 해서 우리가 소통에 능해지는 가?… 

아닌 것 같다. 되려… 생존 소통만 하는 부모님이 소통을 더 잘하시는 것 같다. 이심전심. 이렇게 되면 결국 언어는 무엇인가…로 빠지게 되는 데. (이것이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문제의식 인걸로 난 알고있닼ㅋㅋㅋ 그리고 내 철학자 테스트는 후기비트겐 95인가 그럼ㅋㅋ) 


그러니까. 이제 막 읽고 쓰기에 재미를 붙인 나는 나의 언어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은 겁이났던 것이다. 좋지 않은 글, 내가 싫어하는 글을 쓰게 될까 봐인 줄 알았는데… 글을 쓰는 것은 (요 블로그에 거칠게 내놓는 게 다라고 하더라도) 언어가 없던 과거의 세상과 정말로 완전히 이별하는 일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계급의 탈주라고까지 말을 할 순 없지만… 어떤 것을 쓸 수 있는가/없는가의 이동. 그건 확실히 어떤 이동인 것 같다. 그리고 변화 인 거겠지. 


책 읽고 글 쓰는 건 여기서 만나는 세상과 재밌는 대화를 나누는 건 지금의 내게 너무 즐겁고 기쁜 일이지만. 그럴수록 책을 단 한 줄도 읽지 않는. 이제는 각자의 폰에 유튜브만 보는 엄마 아빠와는 멀어지는 것일까. 뭐 사실 이미 멀어져있었기에 별 상관이 없는데. 바로 그래서. 자신의 종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하고 그걸 어떻게든 써내버린 아니 에르노가 진짜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동한 곳에서도 자신의 경험을 잊지 않는 것…. 대상화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든 그 간극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소설에 ‘나는’을 쓰는. 기억을 파헤쳐 ‘감각’을 쓰는 방식의. 음. 곱씹을 수록 감동적이네.🥺


시골에는 비가 많이 내리는 모양이다. 오늘은 동생 생일이라서 가족 단톡방에 생일 축하 메시지가 올라온다. 은퇴 이후 잠시 잡았던 택시 운전대마저 놓아버리고 생애 최초로 길고 긴 휴식을 하는 아빠의 우울과 (엄마는 겨울내내 아빠가 잠만 자고 넷플릭스만 보는 것이 우울증이 온 건가 걱정하신다) 수년 간의 지친 투병을 가까스로 수습하고 생애 최초로 생계부양자가 된 엄마(요즘 엄마는 초등학교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지도하는 간단한 알바로 두 식구의 생활비를 간신히 벌고 계신다)의 대조되는 활기를 떠올린다. 


삶에 책에서 인용한 문장은 단 한 줄도 참고하지 않은 채 오로지 노동으로만 나와 동생들을 키워낸 사람들. 자아보다는 자신의 역할에 오로지 충실했던 사람들. 덕분에 삶이 무겁고 어려웠었다. 반동처럼 반항처럼, 아니 그 사람들의 방식으로는 이제 올바르게도 선하게도 살 수 없는 시절이라 막다른 길에 몰려 나는 책을 읽기로 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선명한 자의식을 가진 여자들이 복수를 다짐하면서 써낸 글을 읽는 날도 왔다. 이토록 우아하고 섬세하게 화낼 수 있구나. 어쩌면 이 복수 말고 진짜 복수는 없는 것 같기도. 


세상의 모든 권위에 일단 실눈 뜨고 조롱할 태세를 갖춘 몹쓸 심보를 장착하게 되버린 나지만… 

당분간 노벨 문학상 만큼은 인정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이 종에게 남은 건 결국 문학인겐가. 하고 말게 되는 그런 연설문. 




덧붙임 

유수님의 페이퍼에서 아니 에르노의 노벨문학상 연설문을 가져왔다. 이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머지 않은 시일에 땡스투로 화답하겠습니다 연설문 링크는 여기 https://drive.google.com/file/d/1uKBrby1z6d3hMrqoXQ3iqpggCWK52lU4/view


그리고 여러분 꼭 이 연설문 읽어봐주세요. *공짜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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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종의 복수를 가능케 한, 텍스트로서의 <사건>
    from 편독의 나래 2023-05-11 12:52 
    <사건>의 모든 텍스트는 ”첫번째 세계“의 언어가 새로 태어나는/단절되는 “사건”이다. ”그 언어로 자신들의 출신 세계를, 일상과 일, 사회에서 차지한 자리를 말하는 감정과 단어들로 일어진 첫 번째 세계와 관련된 모든 것을 쓸 수 없다고 느낍니다.(…)하지만 글을 다시 쓰려는 순간, 이 작품들은 내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습니다. ’잘 쓰는 것‘, 아름다운 문장,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바로 그런 문장과 단절해야만 했습니다.“(노벨 문학상
 
 
시에나 2023-05-07 01: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헉 이 글 너무 좋아요. 무엇보다 공쟝쟝님이 드디어 에르노와 접선하신 거 같아서... 넘 기쁩니다!! 제가 말했잖아요. 에르노의 계급탈주자의 글과는 통하는게 있을 거라구요!! 저는 <얼어붙은 여자> 읽고 충격 받아서...초기작부터 쭉 읽엇는데.. 진짜 에르노는 자기 계급성을 문제화한 책들이 찐입니다!!

공쟝쟝 2023-05-07 10:03   좋아요 4 | URL
접선은 오래 전에 했는 데, 초기 작품과 문제의식은 시에나님 덕분에 알게되었어요. 무엇보다 저는 역시 에세이나 산문파인게 이 연설문이 ㅋㅋㅋ 책보다 더 좋았습니다 😫

2023-05-07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7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티나무 2023-05-07 19: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 나중에 또 읽으러 와야지!!!!!!! ❤️🧡💛💚🩵💙💜

공쟝쟝 2023-05-08 09:19   좋아요 0 | URL
프랑스... ..좋겠다 난티님...

난티나무 2023-05-09 05:04   좋아요 1 | URL
어뜨케, 에르노 책 한 권 보내드려요? 샬랄라 불어판으로다가? 💝

공쟝쟝 2023-05-09 10:22   좋아요 0 | URL
아니오… 날 그곳에 데려가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 푸,랑,쑤!!! ㅋㅋㅋㅋ 아니 에르노랑 친구 못해요? 난티님 ㅋㅋㅋ 아니 에르노랑 친구해주세요!!!

난티나무 2023-05-11 17:03   좋아요 1 | URL
빠리에서 또 접선합시다. 그러나 에르노… 친구… 넘사벽… ㅋㅋㅋ 여행이나 오세욧

2023-05-08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9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9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3-05-09 13:18   좋아요 1 | URL
그쵸? 저는 생리통이 좀 심해서 쉬고 싶다하니까 생리통 없어지려면 남자랑 많이 자야된다면서 자기랑 자자고 했던 알바사장이 생각나네요. ............ 나 스무살이었는데 그 때..... (갑자기?) 생리통이랑 남자랑 자는 거(대체 이 개새끼가 뭘안다고 나한테 이런 말을 한걸까요. 니가 여자 몸에 대해 뭘알아 뭘아냐고 이 미친새끼얔ㅋㅋ 갑자기 또 빡도네..) 랑 출산이랑.... 다 상관 없는 거 같죠? 저 역시 나이들면서 체질이 좀 바뀌는 까닭인가 합니다.

여성의 몸은 그 복잡성에 비해서 이야기되지도 않았고, 의학 및 표준화된 많은 제도와 기술들이 복잡하지 않은 남자의 몸을 기준으로 셋팅이 되어있으니 아무리 여성 상위시대라고 거짓말 같은 프레임을 들이대봤자 여성은 상대적으로 소수자라고 생각하고 페미니즘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이 댓글은 공개로 하겠어요ㅋㅋㅋ 내가 봐도 잘써서 ㅋㅋㅋ )

글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헤헷.
˝피흘리며 학업, 시험, 업무˝를 감당해 내는, 육아와 돌봄 재생산 노동까지 해내는 여자의 몸.
대단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너무 열심히 살지 말자고 말하고 싶지만 나도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 할말은 없네요 ㅋㅋㅋ
 

“(29)삶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하고,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다르게 인지할 수 있는지 없는 지를 아는 문제가, 계속적인 인지나 생각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순간들이 있다. … ‘시도’—이것은 의사소통의 목적에 맞게 타인을 단순화 시키는 것으로가 아니라 진실의 작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변형시키려는 시험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데—는 철학의 살아있는 본체이다. … 사고에서의 ‘고행’, 자기의 훈련”

강의의 마지막에 인용해 오신 푸코의 지적 유언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성의 역사 2권>의 서문은 내가 좋아해서 적어둔 구절이었다. (선생님… ㅠㅅㅠ) 푸코가 남겨주고자 했던 철학의 의미이자 저항의 실천이 집약되어 있는 문단이라고 설명하면서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무엇인가?라는 실존주의적인 물음에 대답하고자 했었는 데, 푸코를 만나고 나서 진짜 나의 본질은 없고 사실은 나를 형성해 나가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이것은 푸코의 질문 방식이다. 무엇이 아닌 어떻게)

나 역시 그렇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가 아니라 나는 어쩌다가 지금(이 모냥 이 꼴)의 내가 되었는가?를 묻기 시작하면서 읽고 쓰게 되었다. 읽고 쓰는 과정에서 변하고 싶다고 느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를 형성할 수 있을까. 지금과는 다른 내가 되어갈 수 있을까.

변하고 싶어서, 나 자신의 역사를 무의식까지 돌아보았고. 또 변해야만했으므로 어떻게는 내게 문제가 된다. 왜가 아닌 어떻게다. 나에겐 세상의 기준에 닿기 위해서 무리할 수 있는 힘이 없다. 너 대체 왜 그러냐는 질문에 답할 의지도 이젠 없고. 그래서 나는 내 기준을 세워야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당연한 담론들을 당연히 받아들이면서 함량 미달인 나를 비난하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자기배려의 구체적인 실천들이 듣기, 읽고 쓰기, 말하기 라고 해서 좀 웃었다. (물론 그냥 듣읽쓰말 하란 소린 아니다) 나는 이미 그런 몸을 만드는 중이고 매우 어렵다. 하지만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이것 밖에 없다. 내가 나에게 어떻게를 물을 수 밖에 없다는 걸 이제 나는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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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먼지 2023-05-04 11: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글과 사진을 보니 당장 뭐든 공부하러 가고 싶어집니다🔥 누군가 나와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인용구를 꼽고 거기에 찰진 해석까지 붙여주면 진짜 눈에서 저절로 하트가 나가죠!! 선생님도 멋있고 쟝님도 멋집니다💕🥹

공쟝쟝 2023-05-04 12:11   좋아요 2 | URL
네!! 좋아서 하는 공부 최고입니다 😫

우끼 2023-05-04 11: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넘 귀한 공부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이렇게 보고만 가도 되나 싶은 ㅜㅜㅋㅋㅋㅋ(쟝님 넘 멋지고🌲👍🌞🌴🥹)

공쟝쟝 2023-05-04 12:13   좋아요 2 | URL
이렇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뭐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제 푸코덕질을 좋아해주시는 이웃들 때문입니당 🤣

난티나무 2023-05-04 15: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저는 언제나 공쟝쟝님 노트가 아름다워보일 뿐이고요!!!!!! @@ 😍😍😍

난티나무 2023-05-04 15: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트보다 더 아름다운 쟝님!!!!! 😍😍😍

공쟝쟝 2023-05-04 22:48   좋아요 1 | URL
[속보] 공쟝쟝 노트보다 아름다워!! ㅋㅋ🤣
 
노출 표지….

노출과 누드를 좋아하는 잠자냥 한테 지지 선언 받은 <에그 지지~> 책이 도착했습니다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덜컥 선물해주신 분께 (잠자냥은 아닙니다) 심심한 감사를그리고 나는 이 책의 서론을 읽고 심각하게 즐겁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 생각보다 추하진 않습니다. 작아요. 모자이크 처리도 작아요.🙈 표지 땜에 안샀으면 어쩔 뻔!!!


서론 들어가기 전에 표지 안 본 눈을 산다고 댓글 다신 분들을 생각해서 보실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안 본 눈 못산다.


 


 

내가 페미니즘으로 이야기되는 담론들 가운데 별로 안 내키는 개념이 두 개. 아니 여러 개 있는 데, 지금부턴 사실 모르고 떠들 건데 이게 직관이라면 직관이다. 하나는 *폴리아모리(같이 엮어서 BDSM)*이고두 번째가 로지 브라이도티의 *유목적 주체* 인데 둘 다 제대로 모르는 채(전자는 모르고 싶고 후자는 알고 싶다에서 다르다)로 찜찜해 하는 까닭은 이렇다.

 

. 라는 자원은 한정적이다. 나는 그것을 아주 잘 안다.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폴리아모리(물론 그들은 소유하지 않는 사랑이라고 하지만 애초에 소유 감정에 기반한 사랑은 사랑이 아닌 거라면?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개념 아닌가?... 하긴 사랑 역시 개념의 세계이지.)의 경우 기운 남아도는 능력자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세계라고 생각 하게 된다. 폴리가 되려면 먼저는 아모리가 되어야 하는데 보통 관습적 이성애(이성애가 안낀 폴리아모리는 잘 모르겠다.)란 자본이든 매력자본이든 갖춰야지 성립이 된다는 현실(이게 현실 아닌가..ㅋㅋㅋ)적 조건에서 아모리가 힘든데 폴리?... 내가 원하는 사랑은 그건 독점/비독점의 문제라기 보다는 대상에 대한 오롯한 집중일 것이다. (일시적이라고 할지라도) 어쩌면 그건 대체할 수 없는 관계라는 지점에서 다소 낭만적일 수 있겠으나사실 나 자신을 내가 대체할 수 없는 만큼 누군가를 그렇게 대하는 게 뭐 어려울까도 싶다. 암튼 나는 나를 나눠쓰고 싶지 않다. (이것도 유용성의 측면이긴 한 것 같아서 검토해볼 것) 그게 지금의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내가 아닌 타인들이 독점적 사랑을 비판하든 말든 모르겠고 솔직히 그게 힙이고 페미니즘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현상은 좀 못마땅했다. (아직도 그런가? 암튼 내가 막 페미니즘 읽기 시작할 때 그랬다.) 사람은 자신을 속이기가 매우 쉽다. 서로를 속이지 않는 투명한 대화는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에게나 가능한 것. 바쁘고 돈이 없는 일반적 현대인에게는 그것이 음음.


유목적 주체의 경우 안 맞는다고 하지만 정작 삶은 누구보다 유목적으로 살 수 있는 난 생계형 엔잡러다. 어디든 노트북을 들고 떠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좋겠다~ 친구들이 물어보면 나는 빙긋 웃는다. 그럴 생각이 없다ㅋㅋㅋ 난 내 방구석이 우주에서 제일 좋음-인데다, 일할 때는 일만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겨 먹었다) 이런 내가 원하는 삶이란 *제발 하나만 해도 되는 삶*이다. 이젠 하나**해도 유지 되는 삶을 악이라고 칭하고 싶을 만큼(내가 하나만 하고 있다면- 분명 누군가 다른 몫을 대신하고 있을 것) 이걸 자꾸 자본주의와 엮어서 생각하게 될 때가 있었다. 여튼 이건 언제가 더 써보기로 하고 도티의 이 개념은 자칫 *나 자신*이라는 몸과, 감정적 에너지를 무리하게 운영하기 쉬울 것 같은 이미지로 내게 다가왔달까.

 

그런데 이 책에서 앨러이모가 

“(16) 로지 브라이도티는 지속가능한 생성 sustainable becoming”이라는 새로운 윤리적 주체를 이렇게 묘사한다. “매일의 삶에서 작고 평범한 실천에서 뿌리내리고 소박한 희망을 실천한다. 지속할 만한 변화의 문턱을 붙잡고, 유지하고, 지도를 그리는 단순한 전략이다.” 난 브라이도티처럼 희망적이지 않다. 이 책의 결론에서 주장하듯이 지속 가능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나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렇게 말해줘서 즐거웠다. 후후. 내 말이요. 지속 가능성. 제가 기운이 딸려서. 지속해야 하는 거 그만. 가능성 그만. 난 이제 그만 뿌리내리고 싶다. ㅋㅋㅋㅋ 유목하기 싫음. 무한한 가능성 너무 힘들다 ㅋㅋㅋㅋ 루틴 만들고 싶다. 그런데 밤새야 한다. 누군가의 근로 조건을 지키기 위해 나는 공백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이면이 있다는 소리다. 암튼 이 부분 읽으면서 아 왕이모랑 역시 나 비슷한 걸까? 이러고 있다가 이 문장 바로 뒤에 이어지는 글들은 나체 시위 어쩌고 퀴어...동물...어쩌고... 또 유교걸인 내가 헉! 할 수밖에 없는 주장들이 있어서 일단 그 부분은 투비컨티뉴. 혹은 판단 중지. 더 읽어보고 생각하겠음.

 

좀 읽다 보니 도나 해러웨이랑 캐런 버라드도 나와서 나 좀 또 신남. (케케케케)

 

(21)취약함의 반란으로써 노출을 이해하는 것은 추상적 동맹이기보다는 물질적 동맹을 수행한다는 뜻이고, 경계와 주권을 상실했기 때문에 정치적 행위능력이 난처함에 처해도 그 난처함 가운데 거주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영락없이 신체적 존재라는 물질적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벡이 논의하는 주권의 상실은 인식론적일 뿐만 아니라 존재-인식론적이다(존재-인식론이란 캐런 버라드가 사용한 단어로 존재론과 인식론이 밀접하게 연관됨을 강조한 신조어다. 역주). 이것이 바로 내가 옹호하는 횡단-신체적 주체trans-corporeal subject. 이 책에 있는 여러 글은 횡단-신체적 주체성을 페미니즘 관점에서 개진하고 있다. 횡단-신체적 주체성이란 신체가 장소로 확장되고, 장소는 신체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이 장소 안에 존재함을 극화하는 것은 이성적이고 탈신체적인 서구 주체가 우월하다는 가정을 비판하고, 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둠으로써 객관성이 가능하다는 가정도 비판한다.* 노출된 주체는 알지 못하는 물질과 세력에 의해 항상 이미침투되어 있다. 윤리학과 정치학은 거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중략)그러나 나는 이러한 공연들을 단순히 퀴어나 페미니스트 환경론으로 환원하려는 유혹에 저항한다. 나는 각각 장들이 다양성을 지니도록 내버려 두고, 종합적인 이론의 지형도를 그리고 싶은 욕망을 절제한다.”

“(24) 21세기의 환경, 경제, 지구 정치학적 공포 때문에 현재와 미래에 존재하는 전 지구적이고 추상적인 인간 주체를 위한답시고 탈신체화된 시스템이자원을 보존할 수 있으며 자원에 대한 객관적인 지도를 그릴 수 있다고 믿는 허황된 신념이 확산되는 지금, 해러웨이가 오래 전에 썼던 글로 다시 돌아가 보면 유익할 것이다. 해러웨이는 "페미니스트의 객관성이란 주체와 객체의 분열과 초월이 아니라 제한된 위치와 상황에 따른 지식을 의미한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답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앞으로 나올 장에서는 초월을 비판하고, 주체와 객체의 분열도 비판한다. 대신 신물질론적 노출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횡단-신체성이란 개념은 명백히 해러웨이의 페미니즘적 인식론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왜냐하면 횡단-신체성은 자아의 견고한 위치성을 인정하고, 주체와 객체의 분열은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앎의 주체는 자신이 알려고 하는 객체와 *절대로 분리되지 않는다*.”


흐흐. 그러나 내가 가장 웃었던 건 고탄소 남성성.

“(9)<노출>은 코비드19 팬데믹 이전에 출간되었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 <노출>은 코로나 이후인 지금 색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 개발에도 불구하고 노출은 여전히 우리 신체가 언제든지 투과될 수 있 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투과적 존재성에 대한 자각이야말로 원치 않는 바이러스의 투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미국과 다른 나라에서도 팬데믹 중 얼굴에 마스크 쓰는 문제가 정쟁화되었다. 팬데믹 을 부정하는 보수 진영은 내가 이 책에서 명명한 "고탄소 남성성"을 주장했다. 즉 그들은 마스크 쓴 얼굴이 취약해 보인다면서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고, 마스크가 다른 사람에 대한 윤리적 책임인데도 이 책임을 공격적으로 부정했다. (이 책에서 미국 특정 그룹의 고탄소 남성성을 기술할 때엔 이런 만화 같은 버전의 공격적 언사를 일삼는 사람이 곧 미국의 대통렁이 될 거라고 상 상하지 못했다.) *기후 변화를 부정하듯 팬데믹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비가시적 위협으로부터 스스로 안전하고, 자아의 견고한 경계 안에서 안전을 보장 받고 있으며, 자신이 외부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다.* 그들은 취약함을 공유하기보다 남을 지배하는 데서 ''을 찾는 다. 그러나 팬데믹의 인식론적 불확실함은 특히 팬데믹 초기 과학적 정보가 뒤범벅일 때 인류세가 처한 광범위한 곤경을 확실시했다. 인간이 기후학적, 생태적 시스템을 망가뜨리면서 세상은 전보다 더욱 불확실해졌다. 인수 공통 질병이 증가하면서 인간과 비인간 모두가 이제 똑같이 위협 받고 있다.”


고탄소 남성성... 뭔가 저탄수..탄단지..생각이 나긴 하지만.... 고탄소 남성성... 이말 입에 착 달라붙네... 아후, 저 고탄소 남성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다..... 역시 난 스테이시 앨러이모가 좋은 거 같당!! 근데 먼저 신유물론 책 사둔거 읽어야 하는 데. 으윽... 일단 흥분을 좀 내려놓고 이 글을 적고 있는 이유는.

 

다가오는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이 책을 살까 싶다.

 


내일은 노동절이고 나는 일을 할 예정이라 이 책도 살까 싶다. 소개 글 봤는 데 흥미로움.

 


........ 4월의 구매는 끝났고.... 5월의 구매를......... 미리미리.... 장바구니에 담아두는 뿌듯한 일요일.... 

나는 참 계획적이기도 하지!책의 맨 뒷 장에 표지 선택의 해설이 있기에 첨부합니다.

이 책의 그림 5로 삽입된 스펜서 튜닉과 그린피스의 작품 사진을 넣기로 결정했다. 이 사진에는 스위스의 빙하 위에 수백 명 의 나체들이 살아있는 조각처럼 서 있다. 이 사진은 차가운 빙하 위에 맨몸으로 노출된 인간 몸의 취약함과 강인함을 충격적으로 전달하고 있기에, 소멸하는 세계 가운데 무방비로 노출된 인간과 비인간의 곤경을 담고 있는 이 책의 환경정치학에 적절한 이미지로 여겨졌다. 또한 이 사진 속 인간들의 벌거벗은 몸은 전혀 외설스럽지 않다. 벌거벗은 몸들은 ‘살로서 인간이 자연 그 자체‘임을 적나라하게 각인시킨다는 점에서 자연과 인간의 정계를 허물어뜨리는 동시에 도나 해러웨이의 자연문화의 개념을 이미지로 극화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번역자들은 이 사진이야말로 이 책의 취지를 적절하게 보여주는 이미지라 여겨 표지로 선택했다.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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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30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30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30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30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30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30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3-04-30 12: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한번씩 튀어나오는 유교걸 어쩔 ㅋㅋㅋㅋ 저도 그래요 ㅋㅋㅋ 폴리아모리도 머리로는 좀 이해할 것 같은데 나는 절대 못할~~

공쟝쟝 2023-04-30 13:28   좋아요 4 | URL
유교걸 ㅋㅋㅋ 내 안에 열녀있다 ㅋㅋㅋㅋㅋㅋ 드디어 제가 이 책 <노출>을 읽기 위해서 두꺼운 퀴어이론 산책을 읽을까요 말까요 ㅠㅠㅠ 괭님 저 지식욕에 지쳐요 ㅋㅋㅋ 열녀인데 독서만큼은 문란한 나ㅋㅋㅋ

독서괭 2023-04-30 16:42   좋아요 2 | URL
쟝쟝님 퀴어이론 산책하기 재밌어요 시작하시죠 ㅋㅋ

책먼지 2023-04-30 12: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쟝님 이렇게 확인사살을…

공쟝쟝 2023-04-30 12:30   좋아요 4 | URL
빵야빵야 ㅋㅋㅋ 안본눈없게하여 노출을노출하자…ㅋㅋㅋㅋ

건수하 2023-04-30 13: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그보다 exposed 와 노출이 같이 나란히 있는게 더 거슬림…. 표지와 노출이란 단어를 보고 오해하는 사람들 있을 것 같아요. (노린 건가?)

공쟝쟝 2023-04-30 13:53   좋아요 3 | URL
노린 거다 ㅋㅋㅋㅋ 여기서의 노출은 방사능 노출, 바이러스의 노출인뎁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인류세 논의를 합니다… 저 넘 맘에 들어요! 내 맘에 꼭 드는 페미철학자입니다 ㅋㅋㅋ

공쟝쟝 2023-04-30 15:09   좋아요 2 | URL
읽다보니 맨 뒷장에 그림 해설 나와서 왜 이 그림 썼는지 페이퍼 수정했어요 ㅋㅋ

우끼 2023-04-30 16: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쟝님 리뷰 너무 기대되구요…!!!

공쟝쟝 2023-04-30 18:15   좋아요 3 | URL
안그래도 기후 우울증을 앓고 계신 우끼님한테 댓글달려고 접속했습니다. 우끼님께 스테이시 앨러이모 처방 시급합니다.
“얼라이모는 자신의 책을 ‘환경 정치학‘으로 규정하면서 왜 노출과 쾌락을 핵심어로 삶은 것일까. 얼라이모는 종종 우울하다고 여겨지는 환경론을 유쾌하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만들고자 한다. 얼라이모는 환경 운동이 즐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얼라이모는 현재 환경 운동의 지배 패러다임인 ‘지속 가능성‘을 비판한다. 얼라이모가 보기에 지속 가능성은 너 무나 수동적이고 부정적이라고 비판한다. 즉 지속 가능성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파괴된 현 상태를 지속할 뿐 손 놓겠다는 뜻이니 수동적이고, 새로운 시도조차 그 실현이 회의적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이라고 비판한다. 얼라이모는 노출을 통해 유쾌한 상호 연결, 즐겁게 개방된 ˝횡단-신체성‘을 말하고자 한다. 혹시 아는가. 유쾌함이 더 큰 유쾌함을 생성해낼지!˝
아 근데요... 진짜 짱인게요... 이모님 불교를 좀 공부하셔서 미래라는 시간성을 부정하시면서 운동에 따른 예상되는 결과에 초연하자는 입장 이십니다 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너무 재밌네 너무 재밌다 ㅋㅋ (또 나만 재밌지ㅋㅋㅋ 저 역시.. 함께 멸망하자는 쪽이긴 합니다만.... (-0-) 동시에다 죽어버리자아아아~~ bgm이랑 ~ )

우끼 2023-05-01 14:34   좋아요 1 | URL
유쾌하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거 넘 중요하구요 ㅎㅎㅎ 동의합니다 ㅋㅋㅋ 넘 흥미롭네요 꼭 읽어볼께요!!

2023-04-30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30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23-05-02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사진 덕분에, 살짝 보고 말았어요. 안 본 눈으로 있어야 하는데. ㅋ

공쟝쟝 2023-05-02 20:2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목련님 보게하려고 사진 찍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