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의 말들 - 사소한 것이 언제나 더 중요하다 문장 시리즈
엄지혜 지음 / 유유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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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48시간 법칙을 만들었다. 순간 기분이 상하더라도 일단 참고 본다.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황당한 말을 들어도 우선 좀 참는다. 메일을 쓰다가 전송을 누르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나의 이 기분 나쁨을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나은가 따져 본다. 24시간이 지나고도 마음속이 부글부글 끓는다면, 또 24시간을 참는다.
이틀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질 때가 많다.”

_
그제 늦은 열 한시경 갑자기 속에서 깊은 빡침이 올라와 매우 정갈한 아무말 대잔치를 적어 발송해보내려다, 문득 이 책에 나온 48시간의 법칙이 생각나서 이틀 뒤에 보내려고 아껴놨었다.
이 책 읽기를 얼마나 다행인지 ㅠ_ㅠ...


하루가 채지나지도 않은 다음날, 자고 일어나자마자 안보내길 잘했다 싶었다. 어차피 내가 화난 건 나만의 사정이고 상대방의 사과를 받고 싶은 것도(진심이 아닐테니까) 화낸다고 뾰족한 방법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사라졌다거나 마음이 편해지지도 않았지만, 다스리지 못한 분노로 상처주지 않은 건 다행이라도 생각한다.
유용한 구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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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은 연휴의 오후였으므로 느릿느릿 방을 치우고, 책 한권 옆구리에 끼고 가까운 공원에 산책하러나왔다. 좋은 날씨 x 미세먼지보통 x 아이스아메리카노 x 공원 나무 그늘 벤치 x 얇은 책 x 내일도 쉬니까 여유로운 오후 = 완벽한 독서환경 을 떠올리며 공원에 들어섰는 데.... 😸 아뿔싸,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이미 공원은 숱한 어린이가 신나게 실컷 뛰어놀고 있었다.

햇살. 온도. 습도. 바람. 모두 엄청 만족스러운데, 오늘의 나야 😿 왜 이어폰 안꽂고 나온거니..? 어린이 날을 맞은 꼬꼬마들의 웃음과 눈물과 모든 희노애락은 차라리 귀여운 백색 소음에 가까웠다. 사람생각이란 거기서 거기인 것이 이 집순이가 산책을 나오고 싶었다면 모든 이들이 산책을 나왔다는 뜻. 제 이쁨을 뽐내는 기백마리의 반려견🐶들이 주인과 함께 거친 숨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수시로 짖기도 한다 월ㅋ월ㅋ.

조잘조잘 때론 왁자지껄 사람들 이야기소리, 찰칵찰칵 사진 찍는 소리.. 동네의 특성 상 삼분에 한번씩 비행기는 부와왕 날아갔다✈️. 그래도 하이라이트 소음은 역시.. 뽕짝 라디오📻 .. 등산가면 자주 뵙는 뽕짝을 크게 켠 할아버지들을 많이 만났다. 공원에서 가장 으슥한(?) 그늘 아래 한시간 앉아 책읽는 동안 열분 정도 지나가셨는데 압도적 존재감에 갑자기 많은 것이 궁금해졌다. 저정도 출력의 라디오는 가격이 얼마인가? 나오는 음악은 왜 다 똑같은 노래처럼 들리는가? 설마 할아버지들도 스밍을 하시는 것인가? 그런데 굳이 크게 틀어 놓는 이유는? 내 가수를 알리고자 하는 팬심?? 음악이 잘 안들리셔서? 여기에 내가 있다는 강력한 존재의 표현?? 어쩌면 등산, 산책자들 세계에선 볼륨의 크기가 어떤 권력의 상징일지도??
여하튼 계속 듣다보니 묘하게 저 음악들이 반갑다. 뽕짝짜자작뽕짝. 음.. 그와 나 사이의 거리를 가늠케하는 매너의 표현일지도 몰라, 뽕짝뽕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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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나온 주말의 공원은 생동감 그자체! 기분이 좋다. 사람들은 대부분 함께다. 혼자인 사람 별로 없는 데.. 책읽는 사람은 정말 나밖에 없어...외로워..📖.. 이 모든 흑색 소음 공격하에서도 꿋꿋하게 읽어내리다 문득 외로워졌으므로, 고독에 침잠하기 위해 나의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 집으로 가는 길에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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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를 사로 잡은 문장은 “돈”과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 눈물이 찔끔 났다. 버지니아울프가 살던 시절 1년의 500파운드를 현재의 원화로 환산하면 월 385만원(이라고 친절하게도 어떤 블로거가 계산해 주셨다). 아아,나의 편견과 생각하기 싫음과 문득문득 올라오는 억울함은 385만원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이 없어서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수 없다. 넘나 맞는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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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나를 생각하면 슬프다. 시간이 많으면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돈없는 시간은 불안과 다르지 않다. 일이 있을 때는 일을 하느라 일이 없을 때는 불안해서 내 문제가 너무 문제라서, 생각을 하지 않고 감각을 굳히는 스스로를 느낄 때....는 오늘처럼 옆구리에 책을 끼고 사람들 있는 곳을 좀 돌아다녀야겠다. 이어폰이 없어도 괜찮았다. 요즘의 날씨가 꽤 오래 지속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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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5-05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이 사용하시는 야옹이모티콘은 뭐랄지, 어쩐지 쟝쟝님의 프사가 진짜 프로필사진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착착 감긴달지요.

공쟝쟝 2019-05-05 18:20   좋아요 1 | URL
저의 분신입니다. 제방에 저보다 더 오래있는 ㅋㅋ
 
캘리번과 마녀 -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 아우또노미아총서 31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김민철 옮김 / 갈무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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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주의는 노동에 위계/차별을 만들며 발전한다는 것. 
     

최근에 읽은 기본소득 책에서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불운동으로) 알게 된 ‘달라코스타’의 이름을 여기서 만나다니! 반가웠다. “임금 노동자의 착취는 여성의 가정 내 무임노동이라는 기둥위에 세워졌다”는 너무나 단순하여 읽자마자 진리(!)처럼도 느껴지는 이야기가 자본주의가 생겨나고도 아주 오랜 뒤인 1970년대까지 이론화되지 못했다는 건.. 참, 어이가 없다. 그때까지 남자 지식인들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엄마가 차려준 밥먹고 엄마가 빨아준 옷 입고 학교가면서 아빠가 벌어온 돈으로‘만’ 공부한다고 생각했나보다. 
     
“(13)맑스의 분석은 노동의 위계와 차별의 여러 층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생산수단의 파괴만큼이나 자본주의의 구성 및 영속에 중요하고, 실제로 계급관계 규제에서 생산수단의 파괴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임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인류의 대부분이 생산수단으로부터 이미 분리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는 노동안에서의 위계와 차별(cf. 정규직-비정규직/성별 임금격차 등)을 만들어내는 것이 노동자에게서 생산수단을 앗아가는 것 보다 더 중요해보인다. 달라코스타와 페데리치 등 70년대 여성운동가들은 맑스가 간과한 부분들을 지적한다. 자본주의는 노동에 위계를 설정하며 발전해 왔다는 것, 그 시작은 노동 안에서의 성별분업화(임금노동에서의 여성배제/ 여성의 재생산 노동의 평가절하 등)였다는 것. 
     
<캘리번과 마녀>는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여성의 재생산노동(흔히, 집안일이라고 하는 가사노동, 출산·육아·돌봄 등 일상생활의 노동)이 어떻게 ‘보이지 조차 않는 노동’으로 ‘자연화’되어버렸는지를 16~17세기의 ‘마녀사냥’을 분석하며 밝히고 있다. 
     
너무 큰 ‘힘’은 그것이 압도적이기에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난 요즘 ‘자연스럽다’라는 말을 들을 때 마다 뒤돌아보게 된다. 무언가가 ‘스스로 그러한 것처럼 당연히’ 즉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면, 그렇게 되기까지의 이면에 어떤 압도적 힘(폭력, 노력 등등)이 작용했는지도 생각해 보게 된 달까.
     
     
#2. 마녀사냥의 숨은 목적은 여성(&여성노동)의 지위 하락이었다는 것.
     
전(前)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 –시초축적(생산수단을 파괴하여 노동자계급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맑스는 남성 임노동자와 상품 발달 과정의 관점에서‘만’ 검토했다. 그의 반쪽짜리 시초축적은 페데리치의 시각을 추가했을 때 더 온전해진다. 

“(17) 페데리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성적 계약과 새로운 가부장적 시대를 개시하면서 여성에 대하여 전쟁을 벌이는 것이 필요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임금의 가부장제가 시작되었다. 마녀박해와 신체의 규율과 관련된 역사에 뿌리를 둔 페데리치의 주장은 여성의 종속이 어째서 토지 인클로저와 ‘신세계’의 정복 및 식민화, 노예무역만큼이나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에 중요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생산수단으로 부터 쫓겨난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유일한 생산수단으로 ‘노동력’ 만을 갖는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노동력은 ‘노동력’의 범주에 조차 들지 못했다. 모든 것을 화폐와 상품으로 치환해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녀들의 노동은 ‘상품’을 만들어내는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노동이었다. 있는 노동이 '없는 노동'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3세기에 걸친 여성비하(마녀사냥)가 필요했다.
     
“(157) 프롤레타리아트 여성은 인클로저 때문에 남성 노동자가 상실한 토지의 대체물이자 가장 기초적인 재생산수단이 되었으며, 또 누구나 뜻대로 전유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유재가 되었다. ... 일단 여성의 활동이 비노동으로 정의되자 여성의 노동은 마치 공기처럼 누구나 마음껏 쓸 수 있는 천연자원으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는 역사적인 패배였다.”
     
유럽의 (남성)농민들은 토지로부터 쫓겨나 프롤레타리아트가 되었다. 그 시기 여성들은 토지뿐만 아니라 공장과 조합장(임금노동)에서도 쫓겨났다. 법적권리도 침식당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억압되었다. 임신과 출산을 조절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 노동하는 여자를 드센 여자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아내의 소득은 법적으로 남편에게 귀속되었다. 섹슈얼리티를 아는 여성은 창녀가 되었다. 피임방법을 알고 낙태를 하는 여성들은 마녀가 되었다.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여성은 결국 그 자신들의 신체로부터 쫓겨난다.
“인클로저가 농민들로부터 공유지를 박탈한 것처럼 마녀사냥은 여성들로부터 신체를 박탈했다”

“(168) 유럽에서는 인구위기에 대응하여 여성이 재생산에 종속되었던 반면, 식민지 건설로 원주민 인구의 95%가 사라진 아메리카에서는 노예무역이 나타나서 유럽의 지배계급에게 어마어마한 노동력을 제공했다.... 진정한 부는 노예무역을 통해 축적된 노동이었으니 이 덕에 유럽에서는 불가능했던 생산방식이 아메리카에서는 가능했던 것이다. 
(191) 이처럼 여성과 시초축적의 역사를 개괄했을 때 우리는 새로운 가부장적 질서의 구축, 즉 여성을 남성 노동인구의 하인으로 만든 것이 자본주의 발전의 중요한 양상임을 확인할 수 있다. ... 
국제적 분업과 마찬가지로 성적분업은 무엇보다도 권력관계였다. 즉 그것은 노동인구 내부의 분할임과 동시에 자본축적을 어마어마하게 촉진시켰다.... 자본주의가 가져온 노동생산성의 괄목할만한 증가를 오로지 직무 전문화의 공으로만 돌리는 경향을 생각해 볼 때, 위 관점은 충분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사실 자본가계급이 농업 노동과 산업노동 간의 분화와, 아담 스미스가 옷핀 제조업의 예를 들어가며 찬미했던 산업노동 내부의 분화로부터 얻은 이익은, 여성의 노동을 평가절하하고 사회적 지위를 격하시킴으로써 얻은 이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상의 논증에서 드러나는 바, 남녀간의 권력차이와 (자연적 열등함이라는 핑계하에 이루어진) 여성의 부불노동의 은폐덕택에 자본주의는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 노동시간”을 확대할 수 있었고, 여성 노동을 축적하는 방편으로서 남성의 임금을 이용할 수 있었다. ... 시초축적은 무엇보다도 차이, 불공평, 계서제, 분할의 축적이었으며, 그것은 노동자들을 서로 소외시키고 그들 자신으로부터도 소외시켜왔다. ....”
     
     
#3. 마녀는 빈곤한 계급의 과부나 독신 여성이었다는 것. (나, 그때 태어났으면 마녀될 뻔?ㅋ)
     
보통 마녀라 함은 ‘공주의 새엄마’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화형당한 마녀들의 대부분이 빈곤층 독신여성이었다는 것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읽으면서 당시의 ‘마녀사냥’ 모습이 궁금해 넷플릭스를 뒤졌고 ‘악마의 신부’라는 핀란드 영화를 찾아냈다. 

영화는 ‘마녀사냥’이 시작되던 중세의 유럽의 한 어촌 마을이 배경이다. 책에서 “‘마녀박해’에 대한 조직적인 반대의 움직임은 바스크의 지방의 어부들의 저항이 유일하다”라는 구절을 읽은 후 였기에 혹시나 이 영화가 그 실화를 다루고 있나 기대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마녀사냥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축에 속했다. (책읽고 보기 딱 좋은 영화다. 추천. 청불이라 자극적으로 잔인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 그런 장면은 없었다.)

영화를 통해 그 시절 ‘마녀’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맨처음 추방당하는 ‘마녀’ 발보리는 허브와 약초지식에 능통한 마을의 치료사이자 산파이다. 강간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처녀의 유산을 돕고 그녀를 거두어 함께 살기도 한다. 

“(270) 마녀사냥은 출산통제를 범죄화하고 여성의 신체, 특히 자궁을 인구증가와 노동력의 생산 및 축적을 위해 봉사하도록 했던 시도라고 볼 수 있는 여지는 분명 부분적으로나마 존재한다.. [일단] 이것은 가정이다. 분명한 것은 인구 감소에 집착하는 정치계급이 마녀사냥을 촉발했고, 인구 규모가 국부를 좌우한다는 확신이 이를 부채질했다는 점이다. ... 많은 마녀들이 여성의 재생산과 관련된 지식과 통제력을 보유하고 있던 “현명한 여인들”이거나 산파들이었다는 점 또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가장 먼저 박해당한 여성들은 밀려난 여성들이었다. 혼자인 여성들이 삶을 꾸릴 수 있는 자원이란 결국 같은 여성들과의 연대-여성들을 돌보는 것-였을 터, 그들이 가진 임신과 출산, 여성의 신체에 대한 지식은 인구를 통제해야하는 지배계급에게 위협이 되었고, 현실에서 그녀들이 공유하는 ‘비밀(주로 그남들의 강간)’은 마을 남성 기득권들의 죄의식을 건드렸을 게다. 가난한 독신 여성들부터 제거하며 마녀박해는 시작되었고, 두세기 동안 수십만명의 여성들이 화형당했다. 

그럼 그렇게 여성들이 죽어나가는 동안 남자들은 뭘하고 있었을까? 책에는 없는 데, 영화에는 나온다. 남자들은....... 아.무.것.도. 안했다. 사랑하는 여인의 진실에 관심이 없는 남성인물들은 그녀들의 부탁들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꼭 영화가 아니라도 ‘온전히 내 것’ 일 수 있을 때만 사랑의 능력이 발동되는 남자들을 보는 것은 너무 익숙한 일이다. 반면 ‘내 것이 아니어도 사랑’할 수 있는 여성들의 능력은 영화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들이 아무것도 안하는 동안 그녀들은 부지런히 돌보고, 또 저항한다.

“(249) 마녀사냥이 일어난 역사적 맥락과 피소자들의 젠더와 계급, 박해의 영향 등을 살폈을 때 우리는 유럽의 마녀사냥이, 자본주의적 관계의 확산을 저지하려는 여성들의 저항에 대한, 그리고 섹슈얼리티와 재생산에 대한 통제력과 치유능력을 통해 여성들이 획득한 권력을 공격한 것이라고 결론지어야만 한다.”

‘저항’하는 여성들에 대한 보복. 마녀사냥으로 여성들의 모든 저항을 진압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본주의는 정착될 수 있었다. 
     

#4. 중세 유럽에서 매우 광범위하고 급진적인 ‘반봉건 투쟁’과 ‘공동체주의적 사회운동’들이 있었다는 사실. 
덧붙여 중세 장원에서 여성의 노동력은 평가절하되지 않았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의 중심에 숱한 여성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253) 마녀사냥과, 그보다 앞선 이단에 대한 박해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한다.”
     
‘암흑기’라고만 알고 있는 중세에 ‘이단운동’으로대표되는 반봉건투쟁이 끊임없이 전개되었으며 이 운동 안에서의 여성은 주도적인 활동을 펼치고 때로는 남성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졌다는 건 정말 몰랐던 부분이다. 마녀박해는 반봉건운동의 기억을 가진 여성들의 저항을 분쇄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수십만의 여성들이 고문당하고 처형당했다는 것은 그토록 많은 여성들이 격렬하게 저항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페데리치는 이렇게 쓴다. 
     
“(p.45) ‘자본주의 이행기’의 여성과 재생산의 역사는 소농, 장인, 날품팔이와 같은 중세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온갖 방식으로 봉건권력에 맞선던 투쟁들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봉건제의 위기에서 여성이 수행한 역할이 무엇인지, 또 어째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3세기에 걸친 마녀사냥을 통해 여성의 권력을 파괴해야만 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투쟁들을 그 다양한 요구, 사회ㆍ정치적 열망, 적대적인 관행과 함께 불러내야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본주의가 구질서의 태내에서 발육하고 있던 경제세력들을 전면에 등장시킨 ‘진화’의 산물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수세기에 걸친 사회적 갈등은 봉건영주, 도시 귀족, 주교와 교황의 권력을 흔들고 진정으로 ‘온 세계에 큰 충격을 한방’줬다. 자본주의는 이것에 대한 지배계급의 대응이었다. 자본주의는 반봉건투쟁에서 등장한 가능성을 파괴해 버린 반혁명이었다. ... 이것은 강조해둘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가 봉건제로부터 ‘진화’해 나왔으며 한 차원 더 높은 사회생활의 형태를 상징한다는 믿음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진화의 산물’로 보는 관점은 알게 모르게 “정복, 노예화, 약탈, 살인 즉 폭력”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느끼게 한다. 인류의 지금과 지난 시기의 살육을 합리화하게 한다. 맑스 조차 자본주의 발달과정의 폭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필연으로 보았다. 이후에 그의 반대자들과 그의 후계자들 역시 자본주의 유지vs저지에 관심을 돌렸을지언정 ‘폭력’자체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이 책의 초반에서 언급된 중세의 사회적 투쟁들을 읽으면서 ‘애시당초 불가능했던 것은 자본주의였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불가능한 것을 억지써서 가능하게 만들려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무리하게 폭력을 써야했고 지금도 쓰는 중 이구나 생각해볼 수 있었다. 
     
역사에 ‘만약’을 대입하는 것이 무망하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만약’을 여러번 떠올렸다.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어마무시한 자연파괴 · 인클로저 · 식민지 경영 · 세계대전 · 사회주의 혁명 · 마녀사냥(여성에 대한 구조적 멸시) 등등 이 없는 역사, 즉 자본주의가 아예 나타나지 조차 않은 역사.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그런 지구에서 나고 자란 인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만약’ 중세의 반봉건투쟁이 성공했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주아주 많이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미세먼지도 없고, 인종차별도 없고, 여성혐오도 없고, 아우슈비츠-제노사이드에 대한 기억도 없고, 핵무기도 없는 대신 지금보다는 조금 더 가난할지도 모르는 세계. 가져본 적 없는 역사에 대한 향수가 생겼다. 어차피 여기서도 가난한데 좀 더 가난해지더라도 폭력이 적은 세계, 아픈 기억이 적은 세상이면 좋겠다. ㅎㅎㅎ
     

***
     
마무리 총평 :    
전투력 갑!! 부르주아는 물론이고 봉건영주, 교회, 남성, 국가까지 신나게 패시는 페데리치 언니는 비겁한 남성 노동계급을 때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으시며 맑스와 푸코의 뚝배기까지 깨버리신다. 시초축적에 대한 새로운 분석은 페데리치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내가 가장 기염을 토했던 부분은 “새로운 공유재산이자 상실한 토지의 대체물로서의 여성”이라는 소제목 이었는 데 비유 너무 적확해서 정말인지 부들부들. 
     
오랜만에 내 머리위에 얹어진 것이 우동사리가 아니라 '두뇌'라는 걸 깨달은 두뇌풀가동 책읽기였다. 어디서 주워 읽은 대로 “자본주의의 멸망을 생각하는 것이 인류의 멸망을 생각하는 것보다 어려운” 이 시대에 자본주의 출생의 비밀을 ‘여성의 역사’와 함께 읽게 된 것은 너무 귀한 독서경험이었다. 

내용이 어렵기도 했지만, 읽으면서 너무 많은 생각들이 들기도 했고, 이리저리 찾아보면서 다시 검토할 개념들도 많아서 혼났다. 어찌저찌 읽었고 나름 치밀하게 읽어냈다. 여성주의 책읽기 모임이 아니었다면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책이라 더 소중하다. ㅠㅠㅠ

모처럼 마이리뷰에 별 다섯 개를 박아 넣으며 저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신 실비아 페데리치의 다음 책 <혁명의영점>을 읽으러 갑니다~ 함께 읽어주시고 읽기를 제안해주신 알라디너분들게 고마움과 (늦게 읽어) 죄송한 마음을 전하며..!!

마지막은 고양이 사진투척 #고양이는역시마녀와어울리죠



덧, 혼자사는 가난한 독신여성에 드세고 반항적이고 여성주의자이며 아이를 좋아하지 않고 고양이까지 키우는 나는 아마 16세기에 태어났으면 제일 먼저 화형 당했을 것같다..ㅜㅜ 흑..


임금노동과 ‘자유로운’ 노동자의 출현을 자본주의와 동일시하는 맑스주의적 시각은 재생산의 영역을 은폐하고 자연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P22

그러므로 시초축적은 착취할 수 있는 노동자와 자본의 단순한 축적과 집중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노동계급 내부에서의 차이와 분할의 축적이기도 했으니, “인종”과 나이 외에도 성별에 따라 세워진 계서제가 계급지배와 근대 프롤레타리아트를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다. - P103

빠진 것이 있다. 바로 상층계급의 남편이 부인과 자식에게 휘두르는 권력의 원천이 재산이었던 반면, 노동계급의 경우에 그것은 여성의 임금으로부터의 배제였다는 인식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선대제 하에 있는 가내수공업 노동자들이다. 이 일에 종사하는 남성들은 결혼과 가정꾸리기를 피하기는커녕 그것에 의존했다. 결혼하면 자신의 노동에 부인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데다, 집안일도 해결되고, 성욕되 해결되고, 자식도 생기는데, 자식들은 아주 이른 나이부터 베틀을 돌리거나 잡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구감소기에도 가내수공업노동자는 그 수가 곱절로 늘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 놀라운 것은, 부인이 남편과 나란히 서서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을 똑같이 만들어도, 그에 대한 보수는 남편이 독차지 했다는 것이다. - P159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최초의 기계는 증기엔진이나 시계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신체였던 것이다. - P218

두세기도 안되는 기간동안 수십만명의 여성들이 화형이나 교수형, 혹은 고문을 당했다는 점에서 [맑스주의자들이]대량살상에 의혹을 품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다. 또한 마녀사냥이 신세계의 식민화 및 원주민 말살, 잉글랜드의 인클로저, 노예무역의 출현, 부랑자와 거지들에 대한 ˝피의 법률˝제정과 동시에 일어났고, 봉건제가 종식된 후 자본주의가 ˝이륙˝하기 전 무주공산과도 같던 시절에 절정을 이루었다는 점은 유의미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시기 유럽 농민들은 최고의 권력을 누렸지만 곧 완벽한 역사적 패배를 경험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와 관련된 시초축적의 양상들은 그야말로 비밀에 부쳐져있다. - P239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계몽주의적 관점이 제시하는 것처럼 마녀사냥은 죽어가던 봉건세계의 마지막 불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미신에 사로잡힌˝ 중세는 그 어떤 마녀도 박해하지 않았다. ˝마녀의 사술˝개념이 처음 나타난 것도 중세말엽이었고, ˝암흑기˝에는 대규모 재판과 박해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 P240

마치 인클로저가 농민들로부터 공유지를 박탈한 것처럼 마녀사냥은 여성들로부터 신체를 박탈했다. 따라서 신체는 노동의 생산을 위한 기계로 전락하지 않게 막아 주던 모든 예방장치에서 “해방되었다”-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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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4-30 0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화형당하지 않게 제가 들고 일어나 시위했을 겁니다! 빠샤!!

공쟝쟝 2019-05-01 21:25   좋아요 0 | URL
아이좋아라 ❤️

공쟝쟝 2019-05-01 21:25   좋아요 0 | URL
전투력 만렙!!

단발머리 2019-04-30 0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의 확산 과정에서 여성이 희생양이 되었고, 자본주의의가 공고해진 뒤에는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죠.
쟝쟝님 글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정리해 봅니다.

책을 읽는 여자는 위험하고^^
게다가 여성의 억압을 논리정연하게 규명하는 이런 책을 읽는 여성이라면 16세기에는 당연히 마녀감이었겠죠
우리, 전부 다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공쟝쟝 2019-05-01 21:28   좋아요 0 | URL
앗 그렇다면!! 알라딘서재에 나타난 읽는 마녀들~ 저 그거 할래요!! ㅋㅋ 멋져요 멋져요 ㅠㅡㅠ

설해목 2019-04-30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다보니 저도 이 책 느므 궁금해집니다!
특히 #3번 읽으며 문득 떠오른 건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본 ‘이제부터 서울은 청신호입니다‘란 선전문구네요.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싸게 임대주택을 준다는 건데..... 청년기도 지났고 혼자사는 게다가 집 구하기는 요원한 저같은 나이의 솔로 여자는 나라에서도 시에서도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사각지대인 것만 같아 아침부터 기분이 씁쓸하더군요.
골드미스가 아닌 올드미스는 마치 투명인간, 잉여인간 취급받는 기분이랄까...ㅎㅎㅎ;;;;;;;
아침부터 꿀꿀한 기분을 리뷰 읽다 여기다 푸네요. --;;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

공쟝쟝 2019-05-01 21:35   좋아요 1 | URL
저도 청신호 광고 볼 때마다 뭔가 집없어서 결혼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결혼해야 집 준다는 발상이 묘하게 걸리적거리더라구요. 70년대 복지사각지대의 비혼여성들로부터 페미니즘 기본소득 운동이 시작되었대요~ 우리가 세상을 바꿀겁니다 ^^ 올드미스 화이팅!!

블랙겟타 2019-05-01 2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같이 읽는 알라디너분들의 같은 책에 대한 글을 보고 있자면 다들 너무 글을 잘쓰시는 것에 대한 감탄과 함께..
나도 잘 쓰고 싶다는 안타까움도... ㅜㅜ
정리를 너무 잘 해주셨네요. 쟝쟝님.

맞아요. 생각해 보니 자연스럽다는 말이 처음부터 자연스런 것이 아니었을텐데요...
위계에 대한 어떤 권력이 작동되면서 만들어졌던 것이 시간이 흘러 후세대에 와서는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것 같다고 인식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저도 드네요. ㅠㅠ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당 (˶′◡‵˶)

공쟝쟝 2019-05-01 21:38   좋아요 2 | URL
늦게 읽게 되니 저도 다른분들 글 읽으며 아 나도 잘써야 하는데 ㅠㅠ 하며 페이퍼 쓰다가 이번엔 못쓸뻔했어요 ㅋㅋㅋ
저도 수고했습니다! ㅋㅋ 계속 수고 해볼게요 ~ 우리 잘 읽고 있는 것 같아용 케케

블랙겟타 2019-05-01 21:48   좋아요 1 | URL
ꉂꉂ ( ˆᴗˆ )
 

(104~107) 
어느 날, 피해 여학생 중 한 명이 다른 여학생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해자들이 더(?)놀란다. 그녀는 성폭행을 당한 다음 날, 삭발을 하고 단정한 교복 차림으로 등교해 공부에 매진한다.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못한다. 가발을 쓰지 않는 한, 삭발한 채 원조 교제 시장에 나갈 수는 없을 테니까. 이 지옥에서, 여성 특히 10대 소녀들의 가치는 섹스 뿐이다. 그러므로 ‘삭발한 계집애는 필요 없다’. 그녀는 그렇게 그들에게 쓸모없는 여자가 됨으로써 살아남는다.
세상이 망했지만, 망한 사회도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그 사회가 원하는 주체가 되려고 한다. 그래야 성원권을 얻으니까. (...) 성폭행을 당하면 인생을 포기하고 그들이 원하는 여자가 되어야 하는가? 고통스럽게도 이 영화의 여학생들은 그 방식을 택한다. 그런데 그 소녀는 삭발이라는 ‘반여성적인’외모로 이렇게 선언한다. “너희들이 나를 망치기 위해 아무리 발악을 해도, 나는 너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이 소녀가 희망을 찾는 방식은 망한 세상의 타자가 되는 것이다. (....)
상처의 크기는 권력의 크기이기도 하다. 상처를 강조하면 상대방의 권력도 커진다. 그 소녀는 ‘상처받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권력에 저항하고 그들을 비웃는다. “너희들은, 나를 망칠 만큼 대단하지 않아.” ‘우리’는 상처받았음을 강조하는 대신에 저들의 폭력을 폭로해야한다. ‘우리’의 상처가 크고 작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슈가 되면, 우리는 지배 집단과의 싸움보다 누가 더 큰 상처를 받았는가를 두고 ‘경쟁’하게 된다. 문제는 ‘그들’이 사는 메커니즘 자체이고 그들의 잘못이지 ‘우리의 약함’이 아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주체이자 타자이다. 물론 이것은 곡예다. 주체가 되는 방식은, 여성이지만 남성의 규범을 따르는 ‘주변부 남성’이 됨으로써 가능하다. 타자되기는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고 낙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성폭력과 성매매라는 제도에 강제당함으로써 성적 타자로 만들어진 상태에서는 ‘반여성’이 되어야 한다. 남자들이 원하지 않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 이 영화에서는 삭발, 즉 자원으로서 외모를 버리는 것이다.(...) 나는 이 소녀의 저항방식을 알려준다. 피해자는 여성의 성 역할이다. 이 소녀는 피해자 역할을 거부했다. 




내가 사랑했던 영화에 내가 사랑했던 장면을 내가 왜 좋아했는 지 말로 표현하지 못했었다. “쿠노야ㅜㅜ잘해써.. . 츠다야ㅜㅜ아..안돼..” 당시 내 감상의 전부. 15년 전 소녀였던 나에겐 언어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페미니즘이 없었다.

오늘 내가 사랑하는 작가가 그의 프리즘으로 영화 장면을 해석한 글을 읽었다. 20년 가까이 흘렀는데도 텍스트가 지금과 딱 붙어있다. 

15년 동안 잊지 못한 영화 속 장면에 적절한 각주가 생겨 너무 반가웠던 나는 거의 페이지들을 씹어먹을 뻔 했다.

(102)이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관객이 있고,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관객이 있을 것이다” 

맞춤한 언어가 없어 너무 아파 후자의 관객이었던 나, 근 미래에 ‘(두 번은 볼 수 없었던)인생 영화’를 한번 더 보기로 마음먹다. 이젠 소녀도 아니거니와 영화가 폭로하는 고통에 당하지만은 않는 무기를 갖게 되었으므로.

덧, (mp3시절) 릴리슈슈 ost 였던 Glide 귀에 닳도록 들었는 데, 오랜만에 생각나서 멜론 뒤졌으나 찾을 수 없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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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기념 모처럼의 노트정리. 세어보니 총 10권의 노트를 동시에(!) 쓰고 있었다. 
왜 이렇게 노트가 많아진 거지?
몇 년 전까지는 문구점에서 파는 3천원 짜리 양지노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적었다. 스케줄, 계획, 공부, 메모, 이따금 가끔 쓰는 일기까지도. 실용적인게 좋았다. 서른 이후부터 였나.. 좀 좋은 것을 사볼까? 하다가 만원 내외 하는 가죽재질의 노트들을 사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노트의 카테고리가 세분화 되는 거다.

_

기형도 필사노트가 생기면서 ‘시 분야’의 노트도 생겨버렸다. 
드디어 동시에 쓰고 있는 노트 10권 달성! (두둥) 주제별 분야별로 저마다 나름의 용도가 있지만 대표사연을 소개하자면 맨 아래부터 대략

*기형도 시집에 딸려온 필사노트 : 가 생겼으니 앞으로는 이 노트에 좋아하는 시들을 필사해 볼 생각이다. 첫번 째로 적을 시를 뭘로 할까 하다가 역시 ‘질투는 나의 힘’(은 내 인생의 모토 아니겠는가)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한숨을 쉰다. 두번째는 허은실 시인의 ‘이마’로 할까 싶다. 본인은 이처럼 양가적이다.

*앨리스 노트 : 소설 읽다가 좋아하는 구절 필사 + 왜 그 부분이 좋은지 간단하게 정리 해둠. 보자 (뒤적뒤적) 첫번째 구절이다. “전에 나는 거짓말 하는 남자들을 경멸했어.” ㅋㅋㅋㅋㅋ 아... 나여, 나여, 나여!!!

*책 읽는 마음노트 : 친구에게 선물 받은 독서록 컨셉의 양장 노트. 140권 책 목록이 들어가고 간략한 감상들을 적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올해는 이 노트를 꽉 채워보자 마음 먹었는 데, 이런! 잘쓰고 싶어했더니 안쓰고 말았네? (난 역시 뭔가 잘하고 싶은 마음을 먹으면 안된다..) 방금 깨달았다. 정말로 올해 안에 다쓰려면 한달에 열다섯권씩은 완독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것을... 잘 쓰는거 포기하고 일단 써야겠다. 하하.

*가운데 두꺼운 재생지 노트 : 17년 초봄에 구매한 것으로 500페이지 넘을 것 같은데 거의 다써간다. 고통노트(라고 쓰고 이불킥 노트라고 읽는다).
3년 전부터 괴로울 때 마다 썼다. 거의 배설이었다. 이 두꺼운 노트에 글을 휘갈기면, 아픔이 덜어지진 않았지만 상처가 정확해졌다. 신형철님은 정확한 사랑을 위해 쓰신다는 데, 난 정확한 고통을 위해 적었다. 아무리 많이 아파도 온몸이 다 아픈 건 아니었다. 이걸 쓰면서 고통의 원인이 되는 환부를 정확히 들여다 보는 노력을 해온 것 같다. 고통을 분해하면서 겨우겨우 고통에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파서 부어서 비대해진 나에게서 조금씩 빠져 나왔다.
이 왕노트는 다시 읽어본 적 거의 없었는 데, 방금 쓰윽 훑어보니 인생어렵다는 이야기 30% 남욕 30% 돈걱정 30% 그리고 진짜 ‘욕설’이 10%네?ㅋㅋㅋㅋㅋㅋㅋㅋ 빨리 다 쓰고 불태우잨ㅋㅋㅋ

*분홍 다이어리 : 평소에 가방에 넣고 다니는 2019년 다이어리. 예쁘다.. 홉스가 이빨로 줄만 안 끊어놨다면 더 완벽했을 텐데... 올핸 그림좀 그려보려고 무지로 샀는 데 그림 한장도 못그렸고, 값을 돈/받을 돈/쓸 돈 그리고 지키지 못할 저축계획 등등 재무재표만 가득함.... 아앀ㅋㅋ 의미없엌ㅋㅋㅋ 이것도 불태우자.....ㅋㅋㅋㅋ

*심리학 공부 노트 : 재작년에 한참 심리학이랑 정신분석 꽂혔을 때 함께 모임하던 친구들이랑 공부하면서 개념정리하려고 산 건데, 페미니즘으로 관심사 바뀐 이후 어쩐지 프로이트 미워져서(ㅋㅋㅋ) 당분간 그에 대한 내 화가 풀리기 전까지는 공부 안할 것 같다. 응?? 내가 마지막으로 노트한 문장은 이러하다. “고통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피하는 거다. 왜 견딘거냐, 무엇을 이루려고????” 이 진리를 서른하나에 겨우 깨달았다.

*가장 많이 쓰는 노트(?):는 맨 위의 A4 이면지다. 보통은 필사/메모/책정리 다 그냥 저기에 하고 분리수거한다. 🙃 어린시절 할아버지께 더러움 정도별로 사용할 수 있는 휴지 칸수를 교육받아 실천해온 저로 말하자면 학창시절 A4용지가 너무 아까워 다단 8개, 폰트 4로 팬픽을 뽑아 읽었으며, 그때 버릇 개 못주고 대학시절에도 모든 프린트는 네쪽 모아찍기 양면으로.. 그리하여 a4 한 면에만 10pt로 써진 글은 지금도 읽기 어색해하며.... 때문에 사무실 등에서 버려진 이면지를 주워와 다시쓰는 지지리 궁상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나무가 이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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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10권의 노트가 사치 같아 보일 수 있겠지만 정말 좋아서 잊고 싶지 않은 부분들만 비싼 노트들에 적는단 이야기. 노트는 끝까지 쓴다.

얼마전 술자리에서 ‘진짜 좋아하는 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고 있다’는 요지의 이야길 나눴는데, 난 쓰는 걸 정말 좋아했나 보다. 사실 서른 살 전까지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좀 오글거리고, 사치같고, 자의식 과잉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좋아하니까 참지 못해서 썼다. 쓰고 지우고, 쓰고 버리고, 쓰고 삭제하고는 했다. 글은 남으니까. 남아서 나와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도 있으니까... ‘쓰면 안돼, 쓰지 말자!’라고 마음 먹으면서도 누군가의 글을 읽고 또 내 글을 쓰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 마다 너무 자의식 과잉인 건 아닌가 자기검열을 했다. 무언가를 쓰지 않고 못배기는 나를 미워했다.

요즘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글쓰는 내가 좋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다. 스마트폰으로 sns용 글들을 적을 때도 좋지만, 공들여 고른 좋은 양장 노트에 날카롭게 깎은 연필이나 촉이 얇은 펜으로 서걱서걱 좋은 문장을 베껴쓰고, 그 구석에 내 느낌을 적는 기분은 행복이다. 노트에 쓰는 글들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내가 지금을 기억하기 위해 적는 것들이라 더 가치있게 느껴진다.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같기도 하고.

이렇게 보니 서른 이후부터 적기 시작한 열권이 넘어가는 비싼 노트들은 서른 이전에는 없었던 ‘자기애’의 흔적 같다. 그렇다. 자기애가 생긴지 이제 겨우 만 3년이라는 소리다. 내가 나를 인식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일 테지만, 그것을 모르고 매우 어려워하는 나같은 종류의 인간도 있다. ㅎㅎㅎㅎ 

_

남은 날들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실컷하고, 그래서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나를 더 많이 좋아하고 싶다. 아직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보통 나는 무언가를 쓸 때 가장 강렬하게 내 존재를 느끼는 편이고 지금은 ‘나는 있다’는 감각 자체가 중요해서 당분간은 계속 쓸 것이다.

행복이 아니라 고통 노트가 모든 노트의 시작이었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 고통을 통해서야 겨우 나를 인식했다니 아픔이 새삼스럽다. 신기한 일이다.

상처와 더불어 행복도 인식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연마해야겠다. 열권의 노트에 아직 “행복노트”는 없다. 그래도 요즘은 #나의행복포인트 라는 태그로 인스타에 종종 짧은 글을 적는다. 행복은 아주 순간적으로 다가왔다 휘발되기 때문에, 남겨두지 않으면 기억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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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19-04-21 1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말대로 행복은 순간 찾아오다 보니 저같은 경우엔 기억을 못할 때가 많아서 아쉬울 때가 있었거든요.
‘아 언제가 행복했더라...˝라고요.
저도 언젠가(응?) 한번 해봐야겠어요.

사실 뭔가 기록한다는 거 학교다닐때 노트에 쓴거 빼곤 어릴때 만화그린다고 끄쩍일때? 그정도였네요..
그나마 하는거라곤 독서기록 어플로 내가 읽었던 책 별점매기고 정리하고 한달에 얼마 일년에 얼마 읽었다 이런거 기록해두니 한번씩 보면서 재밌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이런게 기록의 재미일까요? 그래서 어플에 기록을 하기위해서라도 (많이는 읽지 않지만.;;)책을 손에 못 놓는 이유중에 하나지요.^^

공쟝쟝 2019-04-21 17:44   좋아요 1 | URL
^_^ 그 나만 아는 뿌듯함! 이 계속해서 읽고 쓰는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덧붙여 글과 책으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행복 포인트 인 것 같아요 :) ㅎ 겟타님의 댓글은 행복!

블랙겟타 2019-04-21 17:52   좋아요 1 | URL
(๑•̀ᴗ-)

AgalmA 2019-04-28 0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드로잉 노트 굿즈로 나오면 안 살 수가 없더라고요ㅜㅜ

공쟝쟝 2019-04-30 01:25   좋아요 1 | URL
아..... 저두... 좋아하는 책들과 함께나온 양장본 굿즈 노트들 몇개 샀어요.. ㅡㅜ 노트와 책 한정 지름신...

제발제발 2019-05-19 0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운데 두꺼운 재생지 노트 어디서 사셨나요? 어디서 구하셨나요..? ㅠㅠ 저노트 꼭 사고 싶은데 아무리 찾아도 없네요..

공쟝쟝 2019-05-19 10:44   좋아요 0 | URL
광화문 교보문고 할인 노트 무더기 속에서 샀던 걸루 기억해요

공쟝쟝 2019-05-19 10:46   좋아요 0 | URL
윽 바코드 사진 찍엇는데ㅜ안올려지네요 아트박스고 6500원 3-006003 이라고 무른 넘버가 적혀잇어요 ㅎㅎ

제발제발 2019-05-19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앗..감사합니다 교보쪽에서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