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타고 내리는 것 조차 불가능한 매일의 만원 지하철 안에서 욕이 아닌 단어와 문장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가끔은 좋아하는 나만의 글쓰기 어플을 켠다. (PEN이라는 앱이다) 정갈한 명조체 글씨로 그즈음에 읽는 책들에 대한 단상이나, 복잡한 생활 속에서 떠오르는 어떤 기억과 마음들을 적을 때, 조금은 살아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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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언젠가 써봐야지!하는 글감 목록만 빼곡하지만, 어쨌든 나는 글을 쓴다. 이유는 없고. 그냥 쓴다. 대부분은 출퇴근 길에 쓰고, 주말에는 노트에 쓴다. 이 영화 주인공 패터슨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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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어젯밤 영화를 보는 내내 난 내가 글쓰는 사람인게 정말 좋아졌다. “저기요! 저도요!” 손이라도 들고 나도 글쓰는 사람이라고 주인공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시는 아니지만, 저도 글을 써요! 가슴에 꼭 끌어안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책과 작가도 있고요, 저만 아는 비밀 노트와 앱도 있답니다. 당신처럼... 저녁도 있으면 좋겠는 데... 저녁이 없네요(시무룩). 그런데 우리집 고양이는 산책을 안시켜도 되니 그건 내가 당신보다 좋군요!




주인공 패터슨은 도시의 버스운전기사다. 그는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시를 쓴다. 그렇지만 시인은 아니다. 나 역시 그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두번 틈틈히 글을 쓴다. 그러나 작가는 아니다.

글감을 고르고 단어를 떠올리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순간들. 조금씩 글이 되어가면서, 점점 더 명료해지는 쓰기 전까지는 몰랐던 내 마음 속의 이야기들.(이 영화는 그 과정을 보여준다..)
글을 쓰는 과정이 주는 회복의 시간을 알기에 휴식을 취하듯 쓸 뿐이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만약 내가 쓴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무척이나 서운하겠지만, 서운함 그게 다 일 것 같다.
그러고 또 쓰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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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엔딩자막이 올라가는 데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아 좋다. 정말 좋다. 아무럴 것 없는 이야기. 그게 다인 이야기. 그것 밖에는 없는 이야기. 그래서 꽉 찬 이야기. 나도 그처럼 아무럴 것 없는 일상을 더 본격적으로 살고 싶다. (저녁, 저녁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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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의 지하철은 책은 커녕 손도 꺼낼 수 없을 지경이라서 패터슨을 흉내내며 머릿속으로 이 글을 써보았더란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늦은 퇴근길. 아침에 머리로 썼던 글을 폰으로 적어보고 있다. 분명 아까 썼던 건 좀 더 근사했던 것 같은데...
여하튼 집에 다 와버렸네. 이 영화 너무 추천해! 두번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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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5-20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감을 고르고 단어를 떠올리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순간들. 조금씩 글이 되어가면서, 점점 더 명료해지는 쓰기 전까지는 몰랐던 내 마음 속의 이야기들.

이런 식으로 글감을 단어를 문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우리 세계에서는, 작가라고 부르더라구요.
쟝쟝님 작가 맞아요. 작가입니다. 쟝쟝님 작가님~~~

공쟝쟝 2020-05-21 08:10   좋아요 1 | URL
누가봐도 시인인데 시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이 영화속 주인공에게 이입한 이유 중 하나 였어요. 뭔가 작가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순간 글쓰기가 즐거움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 같다는 이상한 마음??? 고맙습니다 단발님! 헤헤

감은빛 2020-05-21 0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매일 아침과 저녁 무료한 출퇴근 시간을 버티는 건 바로 글쓰는 상상이죠. 비록 신춘문예 응모했다가 떨어졌고, 현실에선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일지라도 상상 속에서 내 글은 너무나도 멋진 글이더러구요. 비록 얼마 못 가서 그 현실을 깨닫게 될지라도.

공쟝쟝 2020-05-21 08:14   좋아요 1 | URL
세상에서 제일 좋은 글은 바로 상상속의 내가 쓴 글...!! 공감하셨군요 ㅋㅋ
그래도 글쓰는 (혹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우리는 조금 근사하지 않나요? ㅎㅎㅎ
 

주말이라 영화한편 봐야지! 했는데 코로나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메가박스에서 명작 리플레이를 한다. 저렴한 오천원에. 영화관에서 다시보고 싶은, 띵작인 건 아는데 선뜻 보지는 못했던 영화들이 리스트에 있었고, 그중에 슬플것 같아서 미뤄두고 있었던 로마가 있었다. 오- 너로 정했어 ㅋㅋ!! 바로 예매하고 영화관에 갔는 데, 관객이 두명 있었나? 널찍한 영화관에서 사람들 눈치 볼 필요 없이, 신나게 부스럭 거리며 실컷 쿨쩍거리며 잔잔 + 감동 + 오열의 두시간 반을 보냈다.


*

청소와 빨래, 또 청소와 빨래라는 집안일의 백색소음으로 가득한 영화는 중후반 쯤에 의외의 스펙터클을 선사하고 (생각해보니 맥시코는 사파티스타의 나라 아니었던가!) 끝없는 파도의 물먹임을 삶에 은유하는 듯한 장면을 보여준 뒤 다시 청소와 빨래로 돌아온다.


영화의 백미라는 바닷가 씬에서 나는 몸서리를 쳤는 데,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의 바다에서 수영하며 놀다가 호되게 당한 유년시절의 기억이 소환되었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성난 파도, 짠물, 숨막힘, 통제할 수 없는 몸, 발이 닿지 않는 순간의 공포. 뒤집어진 바다에는 오만 쓰레기와 모래자갈이 섞여있어 온몸이 얻어 맞아 아팠다. 영화관 스크린에 꽉찬 검은 바다를 보며 그날 그 바다의 숨막힘을 떠올렸고, 지금 내가 겪어내는 것들 역시 별로 다르지 않게 느껴져 지겨웠다.
인생=바다, 혹은 바다보다 더 무서운 우리들 인생살이여!


원치 않는 파도에 푹절어가며 물먹는 클레오, 휩쓸리지 않고 불러야 하는 이름과 구해야하는 존재들, 부둥켜 안음, 고백. 나는 펑펑 울었는 데, 이건 어떤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그냥 짜증의 눈물이었다. 아, 사는 거 힘들어 ㅆㅂ~~~ 굳이 왜 다 이렇게 힘들어야 해??????

*

삶.
영화처럼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 보거나, 멀리서 조망했을 땐 쪼끔, 찰나, 아름다울 수 있겠으나 - 대체적으로 지겨운 일상의 노동을 반복해야하고, 그 와중에 환상적으로 행복한 순간이 찾아온다면 반드시 그만큼의 댓가를 치러야 하며,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란 사랑스럽고 귀찮고, 고용주에게 굳이 아프고 슬픈 비극을 설명해야 잘리지 않고 쉴 수 있고, 술한잔 할려고 하면 옆테이블에서 잔 치고 가고, 매번 선택은 너무 어렵고, 그래서 신중해봤자 결론은 도찐 개찐, 할 일들은 언제나 발앞에 엎질러져 있고, 나만한 사연 가진 인생들이 주변에 드글드글 한데 이와중에 역사는 개입하고, 사건들은 생겨나고, 상처를 주고 받고, 느낄 새도 없이 일들은 벌어지고, 눈물도 아껴뒀다 가성비로 흘려야함. 아- 클레오ㅠ인생 지겨워!!!!! 내 인생 같아!!!!!!

*

그러니까 저는 황금같은 주말의 두시간 반동안 지겨운 인생을 편집한 영화를 본 것입니다. 의미부여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한참 인생이 지겨워진 저로서는 지겨워서 슬퍼버린 것입니다.

*
그렇게(이렇게) 사는 거
의미 있을까?
의미없지.
그런데 사는 거 의미 원래 없잖아.
그놈의 의미 땜에 데여놓고 그걸 몰라.
걍 살자.
중간중간 하늘 (혹은 물에 비친 하늘) 올려다 보며.
지겨운 개똥 같은 것들만 대충 쓱싹 치워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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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3-08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보겠다고 넷플인가에 찜 해두었는데^^

공쟝쟝 2020-03-08 23:30   좋아요 1 | URL
싸운드 빵빵하게 하고 보세요~! 추천추천

비연 2020-03-09 10:22   좋아요 0 | URL
오케! 다음 주 주말의 명화로 보겠나이다 ㅎㅎㅎㅎㅎㅎ
 

1.
시얼샤로넌과 티모시샬라메는 정말 잘어울린다. 로리가 격정적으로 조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는 (결말을 알고 있었으므로) 거의 허벅지를 찌르다 시피하며, 허물어지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내가 조였으면 이미 입술로 대답했음ㅋㅋㅋ


의식적 자아는 비혼주의 조를 열렬히 지지하고 있었으나, 무의식은 이미 연애와 사랑을 넘어 바람직한 엔딩~ 결혼으로 달려가고 싶어했다. 둘이 넘 잘어울리잖아. 그냥 싸우면서 행복해지라고!! 가만, 행복? 둘이 맺어지는 것만이 진정한 행복이야?

아아, 내 안의 낭만적 이성애에 대한 열망은 얼마나 뿌리 깊은 지😭😭 그럴 수도 그렇지도 않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 커플이 잘되길 지지합니다! 따위로 생각이 빠질려고 해서 나 자신이 짜증났다. 하긴 나서 자라 지금까지 들어온 대다수의 이야기가 그녀는 그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알콩달콩 잘살았습니다였는 걸 뭐. 로맨스라는 지긋지긋한 이데올로기, 이건 뭐 마약처럼 끊기 어려운 종류 같다.
넷플 빨강머리 앤도 시즌3까지 보면서 손이 다 덜덜 떨리더라. 길버트랑 앤 잘되는 거 보고 싶어가지고... 흑흑.


2.
배우 그레타거윅은 물론 감독으로서의 그녀를 애정하다 못해 사랑하고 있으며(프사로 해놓을 만큼), 시얼샤로넌과 티모시샬라메를 각각 2010년대 최애 외국 여남 배우로 꼽는 나로서는, 유년시절 못해도 스무번은 읽은 작은아씨들이란 소설을 그 감독이 이 배우들로 무려 페미니즘으로 다시 썼다고까지하니 너무너무 보고 싶어 몸살이 날 정도였다. 넷플릭스 크리스마스에 개봉이라는 말 듣고 크리스마스 날을 손꼽을 정도.
그러나 예기치 못한 코로나의 습격으로 함께 보기로한 멤버와 만날 약속을 차마 잡을 수 없었고, 결국은 주말에 함께 방구석에 있을 자매1과 자매2를 꼬셔서 데리고 #다큰아씨들 을 급결성하여 함께 영화관람을 했다. 게으른 세자매에게 주말 세시 영화관람은 매우 이른 시각이었다. (다행이 광고중에 도착) 시작하자마자 완전 이입된 다큰아씨들은 ‘너무 좋아’를 외쳤다. 저거 정말 우리같아 ㅋㅋㅋ 하면서. 

영화 마치 가의 자매들은 박씨자매들에 준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기실 자매들은 모이면 시끄럽다. 만고의 진리인가. 조가 고데기로 메그의 머리를 태워먹는 신을 보며 소녀시절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생각났다. 동생과 고데기로 싸우다가 (싸움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고데기를 안껏다는 걸 잊어버려서, 시내에서 신나게 놓고 집에 돌아왔더니 우리방이 다 타있었다. 타서 사라진 매직기, 까맣게 재가 앉아 닦아도 지워지지 않던 내가 사랑했던 책과 cd들. 자욱한 연기를 배경으로 한 그날 저녁의 살벌하던 식사. 그 와중에 니가 안껐다는 책임전가와 추궁. 등등.
작은아씨들 보다 더 격정적이었던 우리들. (그리고 다 컸는 데도 싸움 ㅋㅋㅋㅋ 심지어 영화보고 오는 길에도 몇번 싸울뻔함)


3.
내가 왜 이 책을 그토록 좋아했는 지 기억났어.
우리집도 가난했잖아.
그래서 각자가 갖고 있는 욕망들을 실컷 요구할 수가 없었잖아.
메그는 옷, 조는 책, 베쓰는 피아노, 에이미는 물감 등등. 근데 옆집 할아버지가 쨘 나타나서 한번씩 정말 갖고 싶어하던 그것들을 선물해 줄 때, 그게 그렇게 좋은 거야. 넘 행복한 거야.
라고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동생들에게 말했더랬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여전히 자매들 각자의 욕망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리고 이제는 자기들의 힘으로) 성취되기를 바라는 사람이구나. 어릴 때는 소망이, 물건처럼 참 단순했는 데, 다 커버린 지금의 소망과 욕망은 참 간단치가 않다는 것 등등을. 

작은 아씨들 속 작은 이야기들 처럼, 나와 자매들의 작은 이야기들이라면 유년시절 그것들을 포함해서 언제든지 넘쳐난다. 자주자주 그것들을 꺼내 써봐야겠다. 초딩시절 내 롤모델이었던 조 마치 처럼.

_
_

마지막으로 인용하는 영화속 대사를 글 말미에 적고 싶은데, 기억이 안난다. 
두번째 관람 한 후 다시 적어놔야지.
(집에 모셔둔 원작도 좀 읽자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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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0-03-01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정말 좋아해서 수십 번 반복해서 읽은 책이어서 영화를 꼭 보고 싶었는데
결국은 코로나19로 포기했어요~~
정말 아쉬웠는데
어쩔수없이 집에서 봐야겠어요^^

공쟝쟝 2020-03-01 18:50   좋아요 1 | URL
알고보니 모든 문학소녀들의 어린시절 최애 소설 리스트에 베스트였던 작은아씨들이네요~! 영화 참 좋았어요. 배우들의 호연도 연출도 최고😊 당분간 코로나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으니 넷플 공개를 기다리고 있어야겠네요 :)
 
러브레터 - [초특가판]
이와이 슈운지 감독, 토요카와 에츠시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누군가 인생영화를 물어오면 언제나 ‘러브레터’라고 대답했었다. 가장 좋아하는 감독 역시 단연코 이와이 슌지였다. 이 목록은 꽤 오랫동안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20대 내내 영화를 거의 안봤다. 이제서야 영화가 재밌다. 극장에서 혼영 때리는 맛도 알아버렸다.
어쨌든 러브레터의 재개봉 소식을 듣고, 친구에게 내 인생 영화좀 함께 봐달라고 요청했다. 해상도 낮은 모니터로 울면서 보던 이 영화를 극장에서 꼭 보고 싶었다.

일요일 오전의 한산한 지하철을 타면서, 여러번 다시 보았던 러브레터를 마지막으로 본지가 어느덧 10년도 넘게 흘렀다는 것을 알았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친구에게 말했다. “어떡해. 나 겁나. 다시 봤는데, 싫어하게 될까봐.” 페미니즘 이후에 떠나보낸 작가와 작품들이 그 얼마였던가. 물론 그 페미니즘 덕에 촘촘하고 세밀하게 사랑하게 된 것들도 많지만. 이별은 언제나 아픔을 동반하는 법. 그토록 좋아했던 이 영화가 나를 아프게 한다면 좋아했던 만큼 아플 것 같아서 겁이 났다.

*

군데 군데 답답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영화가 싫어지지는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하얀 눈, 겨울, 편지, 도서관, 나카야마 미호의 헤어스타일과 잔잔바리 음악들. 으아아~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것들 총집합. 스크린으로 보니까 확실히 또 좋은 거다.

그렇지만 사춘기 시절에 몸살나게 좋아했던 그 감성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가만, 떠올려보자. 이 영화가 그렇게 좋았다고? 왜지?
집에 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했다. 뭐였더라. 뭐였더라. 뭔가 지나간 코드가 있었는 데..... .

기억났다. 내가 그 영화를 보고 또 보았던 이유.
마지막 나레이션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전해지지 않은 고백들)

“가슴이 아파서 이 편지지는 아마 부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

전하지 못했던 진심, 삼켰던 말과, 차마 할수 없었던 이야기와, 해소되지 않아 목에 칼칼하게 남은 어떤 마음들.

이츠키가 느낀 가슴 아픔이 어떤 것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잊혀진 첫사랑이 보낸 늦게 도착한 고백에 대답을 못하게 되어 애석하다는 건지, 아니면 그의 애인이었던 히로코에게 미안함으로 가슴 아프다는 건지.
다만, 그 무렵 내가 그 대사에 투사했던 감정은 ‘말하지 못한 마음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던 듯 하다.

언제나 고백은 어려웠다.
사실, 고백이 어렵다기 보다는 내 마음이 어려웠다.

어떤 책을, 영화를, 음악을, 연예인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말할 수 있고 정말 실컷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일상에 존재하는 누군가를, 조심스럽게 품어왔던 꿈을 입밖으로 꺼내어 말하는 것이 나는 어려웠던 것 같다.

사춘기 때의 난 사람과 꿈에 대해서 만큼은, 그것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고 결단을 해야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게 무서웠다. 꺼내어 말했는 데 지키지 못할까봐.

그래서 결국, 단 한번도.
누군가에게 제대로 마음을 전하거나,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주장해보지 못한 채 십대를 보냈다.

*

좋아하는 것을 잘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참는 마음.
혹은 좋아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서 참는 마음.
그래도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는 거라서, 조용히 그 마음들을 간직하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영화 <동주>를 정말 좋아하는 데, 영화 속 동주 역시 좋아하는 ‘시’를 실컷 좋아한다고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딘가 부끄러워서, 무언가 결단해야 할 것 같아서.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에게 정말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식은 ‘쉽게 말하면 안되고, 참아야하는 것이고, 간직해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쉽게 진심을 전하는, 실컷 해버리는, 신나게 푹 빠져버리는, 열정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의 용기를?)을 동경했다.

*

가슴 아파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결국은 표현하지 못해서 앓았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츠키의 편지야 영화보는 내가 읽지만, (또다른 이츠키의 러브레터는 그가 죽고 나서도 2년 후에 도착한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슬프네...) 그 때 내가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은 그대로 묻혀버렸구나. 그래도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적어도 나는 아니까.

*

안녕. 소심했던, 무지 진지했던...
나의 십대. 사춘기.
그리고 영화,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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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12-29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나요!! 나는 잘 지내요!!! 중학생 때 봤다는 기억만 남고 다른 내용은 기억이 안 나요. 사랑 영화 소설 보며 콩닥대던 게 먼 옛날이구나...

공쟝쟝 2019-12-29 21:28   좋아요 1 | URL
콩닥콩닥이라니... 흑흑.... 이 영화는 사랑영화가 아니라 이별 영화지만... 콩닥콩닥은 저도 아주 먼옛날.... 천년전 같아요

레삭매냐 2019-12-29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굉장히 오래 전에 이 영화를
봤는데... 보는 내내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뭐 그래도 정말 좋았다는 그 느낌.

가끔 설산을 바라 보며 오겡기데쓰까
라고 외쳐 보고 싶어지는 느낌이랄까요.

어려서 제 인생영화라고 생각했던
<시네마 천국>의 오리지널을 보면서
느낀 회의감이 손에 잡히는 듯 합니다.

공쟝쟝 2019-12-30 17:33   좋아요 0 | URL
시네마천국을 인생영화로 꼽으시는 분이 많군요ㅎㅎ 오랜 영화에서 느껴지는 향수가 있는 것 같아요! 레삭님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주어 고맙습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다락방 2019-12-30 0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님, [윤희에게] 봤어요? 러브레터 보고 부치지 못한 편지 얘기하니까 똭 윤희에게 생각나네요. 그 영화 꼭 봐요, 꼭!! 저 믿고 꼭 봐요. 알았지요?

공쟝쟝 2019-12-30 17:34   좋아요 0 | URL
벌새, 우리집, 매기에 이어 4대 올해의 한국영화라고 명성이 자자 하더군요. 올해안에는 어렵겠지만 볼꺼예요! 쿄쿄쿄🏃🏽‍♀️🏃🏽‍♀️
 
제2의 성 1 동서문화사 세계사상전집 94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희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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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여.. 고생많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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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12-28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금? 안 내도 되나요...리스펙트...

공쟝쟝 2019-12-28 22:22   좋아요 0 | URL
아니요, 2권 남앗어욬ㅋㅋㅋㅋㅋㅋ 이씨

반유행열반인 2019-12-29 05:03   좋아요 0 | URL
으아니 일권이었다ㅜㅜ그래도 대단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