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 이브토로 돌아가다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사람의집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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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납하며 도서관 배경으로.



그가 무엇을 *어떻게* 쓰고 싶어했는지를 알고나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진다. 실제로 어떻게를 구현했다는 걸 읽을 수 있게되면 그냥 읽을 수가 없어진다. 나는 이해한다. 어떤 이에게는 쓴다는 것 자체가 내부의 이민이며 계급의 탈주라는 걸. 


“(43) 무엇을 쓰고 싶은지 아는 것, 좋아요, 그 문제의 경우 제가 처음은 아니죠. 하지만 어떻게 쓸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쓸 것인가는 엄청난 질문입니다. (중략) 제가, 이를테면 내부로부터의 이민자인 제가,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처음부터 저는 한쪽에 자리한 문학적 언어, 배우고 사랑했던 그 언어, 그리고 다른 한쪽에 자리한 출신 언어, 집에서 부모가 사용하는 언어, 피지배자들의 언어, 그 뒤 제가 부끄럽게 여기지만 여전히 제 안에 남아 있을 언어, 이 두 언어 사이의 긴장 속에, 심지어 찢김 속에 잡혀 있었습니다. 결국, 문제는 이거죠. 글을 쓰면서 어떻게 나의 출신 세계를 배반하지 않을 것 인가?


사회 계층이 어느 정도는 굳어진 프랑스의 계급 탈주자들은 어떤 수치감을 명확히 보는 것 같다. 한국은? 자수성가한 자들일수록 수치를 모르고 자신의 출신 세계를 혐오한다. 올라오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려고 다음 성과에 몰두한다. 


도통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기 힘든 자아들은 기꺼이 성공 주문에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고, 너를 그곳에서 꺼내는 건 오로지 너야. 성공을 팔아 성공하는 마케팅에서 성공한 이들은 세계와 글쓰기에 대해 성공을 자격삼아 말을 하고 책을 쓰고 감히 잘 사는 팁을 알려주겠노라. 좋아요. 구독.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다니.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으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깊은 자기 이해에 가닿지 못한채로 세계를 통찰한다? 어불성설이다.


이런 시절에 삶의 균열을 경험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균열을 봉합하지 않고 드러내는 용기있는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는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감히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다 믿는 오만하고 강박적인 세계관에 대한 복수이며 투쟁이다. (라고 내 멋대로 의미를 부여해본다.)


탈출하고 싶다. 탈주하고 싶다. 달아나고 싶다.

이것이 나 임을 인정할 수 없다. 현실에 그대로 만족되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내가 가진 것은 (여느 비평가들의 말대로) 신자유주의적 욕망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어딘가에서는 붙잡혀지고 흐느껴진다. 

성공했어도, 성공하지 않았어도, 돌아갈 곳이 없어도, 가혹하게 버리고 떠나 왔다 하더라도. 


나는 조금 단호하다. 자신을 산다는 것은 자신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단절과 비약은 있으되, 우연과 무의미의 카오스가 정말로 진실이라도. 그것을 엮어쓰는 것은 나. 의미의 실에 매듭을 짓는 것은 나. 엉켜있는 대로의 미감을 똑똑히 보는 나. 는 그것들을 그것들대로 인정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벼락같은 화해를 안다. 내가 안다.


그 인정이란 투항이 아니라 투쟁의 시작이라는 것도.


그리하여,

나는 끝내 지지 않았으니,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돌아갈 준비. 아니 에르노. 


<책 117페이지 질의 응답>


질문 언제부터 출신 환경, 부모의 환경과 화해했다고 느꼈는지 알고 싶습니다.

A. 에르노 그저 글을 쓰면서였어요.

질문 글을 쓰면서라면, 초기부터요?

A. 에르노 1970년대 초반에 집필을 마치고 나서 <빈 옷장>이라고 제목을 붙이게 될 책을 기획하면서부터 그 랬습니다. 몇몇독자들은 그 책을 읽으면서 제 부모가 헐뜯기고 부정적 시각으로 비춰진다고 분개했어요. 그들은 소설의 주인공 드니즈 르쉬르가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떠올릴 뿐만 아니라 해석하는 대로의 모습으로 그 시기들이 다뤄진다는 것을 보지 못했거나 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취학하기 전 몇 년간의 어린 시절은 그저 천국으로 그려지죠. 사탕도, 커피까지도 있는 식료품점이라는 천국으로. 그러다가 학교, 책을 접하면서 드니즈는 그 세계가 <훌륭하지않다>는 것을 차츰차츰 깨닫고, 학교와 지배하는 자들의 시선이 <훌륭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에 자신의 부모가 부합하지 않는다고 부모를 원망합니다. 이 모든 것을 성찰해 보지 않고서, 우리 가 비난할 수 있는 것은 부모가 아니라 위계에 따라 분리된 사회와 그 사회를 작동시키고 서민 계층 출신의 아이에게서 부모에 대한 수치를 촉발하는 가치와 코드라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그런 모든 이야기를 쓸 수 없음은 명백합니다. 그 첫 작품의 기원에는 -훗날 제가 <자리>에서 말했듯이- 엄청난 죄책감과 부모에 대한 <별개의 사랑>이 존재합니다. 아마도 어조가 격렬해, 심층에서는 그럭저럭 나와 부모의 분리 과정의 인지 및 규명이 어우러져 일어나는데, 이 측면이 가려졌던 모양입니다.


아니 에르노의 첫 소설 <빈 옷장>을 다 읽고 이 회고록을 읽었는 데, 질문자는 놀라지만 나는 <빈 옷장>이 화해 직후 혹은 화해하는 중에 쓴 글임을 알아보았다. (독후감 나중에 쓸 예정… 대체 언제…?ㅋㅋ)


자신의 수치를 돌보지 못한 채 다음의 성공에 대한 약속만이 가능성으로 제시되는 닫혀버린 세계에서. 공부하지 않고 쓰는 글은 나쁘다. 안 쓰는 게 낫다. (그것들을 결단코 이길 수 없다는 점에서. 결국에는 닫힌 나르시시즘을 재생산한다는 점에서도.)


2023-09-11

무엇을 쓰고 싶은지 아는 것, 좋아요, 그 문제의 경우 제가 처음은 아니죠. 하지만 어떻게 쓸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쓸 것인가는 엄청난 질문입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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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0-14 1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의 계급 의식에 요즘 빙의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니 에르노에 더 진정으로 빙의하려면 섹스도 그녀처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밥은 먹고 다니냐 쟝?
손목이 더 얇아졌네.

공쟝쟝 2023-10-14 14:13   좋아요 2 | URL
하... 나의 섹슈얼리티의 억압 역사를 쓰기 위해서 섹슈얼리티 해방시켜야 합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진정한 해방은 추구한다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는 ~하지 않을 자유. 언제든지 그만둘 자유입니다. 진정한 욕망은 언제나 그만 둘 수 있는 힘 입니다.
!!!!!!!!!!!!!!!!!!!!!!!
아니 에르노여!!

- 이제 잘 챙겨먹어서 알라딘 돌아왔어요!!

단발머리 2023-10-14 14:49   좋아요 0 | URL
밥은 먹었는데....
손목은 내가 더 얇아요. 잠자냥님? 듣고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10-14 15:05   좋아요 3 | URL
단발머리님 잘 챙겨먹고 손목도 굵어지고 건강하기로 해요!

단발머리 2023-10-14 14:58   좋아요 2 | URL
역시 내 생각 해주는 건 건수하님 뿐이에요! 아니구나……
다들…. 이구나 😳😳😳😳😳

건수하 2023-10-14 15:05   좋아요 0 | URL
다시 보실까요? ㅋㅋ

단발머리 2023-10-14 15:08   좋아요 1 | URL
역시 내 생각 해주는 건 건수하님 뿐이에요!! 😘😍🥰

공쟝쟝 2023-10-14 15:10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손목이 굵어지시기를 저도 바랍니다! 수하님 마음과 함께 🤪

책읽는나무 2023-10-15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책보다 쟝님 손목부터 봤어요.
손이 왜 저번보다 못해진 걸까? 하면서..ㅋㅋ
진짜 밥 잘 먹고 다니는 거 맞죠?^^
책은 일단 담아갑니다.

공쟝쟝 2023-10-16 20:05   좋아요 1 | URL
정말 잘 먹고 다닙니다!!! ㅋㅋㅋㅋ 걱정마세요 나무님 찡긋 😫😫😝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 - 자기증명과 인정욕구로부터 벗어나는 10가지 심리학 기술
마이클 투히그.클라리사 옹 지음, 이진 옮김 / 수오서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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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기’ 혹은 ‘덜 하기’와 같은 표현들은 ‘시체가 가만히 누워있기’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내 올해 목표 : 책 사지 않기. 책 안사기… 덜 사기… 어쩐지 불안한 완벽주의자의 완벽히 실패한 목표였다. 그런가하면 3권 사기.(구체적이고 수치화된 목표) 독서괭은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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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10-11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나는 이 백자평을 쓰기 위해.......(헥헥 지침) 암튼..... 이걸 쓰려고....ㅋㅋ

책에서 가르쳐 준 것 중에 ˝과거의 일에 발목잡혀 있으면 새로운 일에 완전히 몰입할 수 없다˝고...
이 스마트하지 못한 불안한 완벽주의자는.. 밀린 독후감 쓰기는 이제 *포기*하고 백자평으로 퉁칩니다... ㅋㅋ 내 안의 완벽주의 해!결!

바람돌이 2023-10-11 23:14   좋아요 1 | URL
오늘 진짜 무슨 날인가 했네요. 쟝쟝님 읽은 책 터는 날? ㅎㅎ
근데 이거 괜찮은거 같은데 저도 해볼까요? 요즘은 리뷰 쓸 시간은 커녕 책 읽을 시간도 안나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데 말이죠. ㅎㅎ

공쟝쟝 2023-10-11 23:21   좋아요 1 | URL
맞아요~! 읽은 책 터는 날 입니다!! ㅋㅋㅋㅋ 적합한 용어사용🥹
써야지 좀 남기는 하는 데, 이젠 쓰고 나면 지치더라고요ㅋㅋ 그래도 아쉬워서 백자평으로 읽은 것들을 떠나보내려합니다… 새로운 사랑을…🥲

독서괭 2023-10-13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 천재예요? ㅋㅋㅋㅋ 저 3권 사기 한 적 없는데? ㅋㅋㅋ
읽은 책 털기 와르르~~

공쟝쟝 2023-10-14 10:37   좋아요 0 | URL
아! 읽은 책 털기!!! 제 기억에 3권 산다 이렇게 정확히 수치화된 목표셨던 걸로 기억ㅋㅋㅋ
어쨌든 독서괭님은 저에게 <책을 안사고도> 이토록 훌륭한 알라디너라는 새로운 갈길을 열어주셨으니.... 본받고 싶지만.... 난 책을 사고 싶다... ㅜㅜ
 
작가의 루틴 : 소설 쓰는 하루 작가의 루틴
김중혁 외 지음 / &(앤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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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들은 읽고 쓰는 것을 루틴에 넣지 않는다.. 그건 그냥 숨쉬는 것처럼 하고 있는 것..? 개인적으론 음악 들으면서 뮤직 비디오 만든다는 천선란 작가 너무 신기했다.... 이야기...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하는 영혼을 가진 사람들.... 나는 문학을 잘 못읽지만 문학하는 사람들은 궁금한 영혼이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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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은 정신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를 찾아가는 라캉의 정신분석
가타오카 이치타케 지음, 임창석 옮김 / 이학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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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도식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의 젊은 일본 연구자의 라캉 입문서. 정신분석 먼저 짚고 개념을 다룬다. 심리상담 경험이 있는 나는 철학자들이 쓴 책보다 이해가 수월했다. 저마다의 ‘사는 방식’을 발명하는데, 별로 없는 선택지로 한국에 ‘정신 분석’도입이 시급함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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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10-11 2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라캉은 진짜 일본의 특유한 그 도식적인 글쓰기랑 진짜 안 맞을듯한데요???? ^^

공쟝쟝 2023-10-11 23:23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께 강추입니다! 제가 라캉 안읽어서 모르지만 만약 라캉 읽기에 어려움이 있었더라면 ㅋㅋㅋ 이 책의 정신분석과정(의미의 절단)이 메타적으로 라캉을 이해해보는 데 힌트가 되실지도…

바람돌이 2023-10-12 06:01   좋아요 0 | URL
그럼 일단 보관함에....ㅎㅎ
 
돈의 말들 - 내일도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하여 문장 시리즈
김얀 지음 / 유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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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얀 언니는 행보 자체가 땡큐!입니다! ˝(13)돈의 존재와 가치를 깨끗하게 인정하는 것 이것이 돈 공부의 기본이다˝/˝(131)KB금융 지주에서 25~59세 1인 가구 2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주거가 안정된 경우 4명 중 3명이 본인의 삶에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고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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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0-11 2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야 이 책 표지 ㅋㅋㅋㅋ

공쟝쟝 2023-10-11 21:17   좋아요 0 | URL
(몰랐음ㅋㅋ) 동생집에 있어서 낼름 읽었는데요 ㅋㅋㅋ 표지는 오만원권으로 하지 그랬나요 ㅋㅋ

잠자냥 2023-10-11 21:17   좋아요 1 | URL
저 동그라미 안에 쟝얼굴…

공쟝쟝 2023-10-11 21:18   좋아요 1 | URL
씨익 -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