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4)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1973~1978)의 한 대목에서 이 러시아 작가가 겪은 이데올로기적 혼란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전방에서 스탈린을 비판하는 편지를썼다는 이유로 지위를 빼앗기고 감방에 갇힌 후 ‘부드러운 검은 헬멧을 쓰는 전차병으로서 진솔하고 다정한 군인’인 세 명의 감방 동료를 만나는데, 그 세 명이 목욕탕에 침입해 두 명의 독일 여성 농민을 강간하려다가 기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솔제니친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 독일 여성들이 ‘천박한 계집들’이라고 단정한다. 엄격하고 타협 없는 공산주의 윤리의 판관인 솔제니친이 보기에 세 명의 동료는 잘못된 판결로 보복당한 것이었는데, 그 여자들 중 한 명이 ‘방첩 부대 대장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솔제니친은 전시 강간의 의미나 문제점, 실제로 효과가 있는 강간 억제 및 처벌 시스템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기는 커녕, 강간은 애초에 범죄가 아니며 그저 술에 취하는 것을 과하게 즐기는 성향 때문에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솔직하게 생각을 털어놓는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비열한 경찰국가의 참상을 폭로하는 것뿐이었고, 그것이 그의 한계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런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렇다! 독일 영토에서 전쟁을 벌인 3주간 우리 모두는 여자가 독일인일 경우 강간하거나 쏴버려도 된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이는 전공을 세우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중략)

—>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모르는, 감이 1도 없는 솔제니친.......
이쯤 되면 그가 옹호하고자 했던 어떤 보편적 인류애(?)적 가치는 ‘남성’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닌가 의심 할 수 밖에 없다. 아, 그가 위선자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아주 오랜기간 ‘보편’이 ‘남성’이었을 뿐. 

“(116) 로슨의 이런 비판은 강간에 대한 구좌파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이다. 적이 강간을 하면 그 적이 얼마나 짐승 같은 자들인지 보여주는 증거가 되지만, 우리 편을 강간하면 그 사실을 화제로 꺼내는 행위가 정치적 협잡이 된다.

—-> 뜬금 없을지 모르겠지만 이 대목에서 안희정이 생각났다. (일단은 그의 2심 판결에 대해 박수먼저 짝짝짝👏👏) 이어서 김지은씨의 미투와 그를 대하던 세상 일각의 반응들도. 엉망진창 댓글들을 보아하니 여전히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안희정이 ‘작은 일로 큰 일을 그르치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입맛 써하는 빻은 인간들이 천지 삐까리인듯 하지만.

수전 브러운밀러가 각주에 꼬아서 단 댓글 처럼 “(114)자신의 정치적 고뇌를 너무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여성의 권리에 대해서는 극단적일 만큼 둔감한 모습을 보인 사람”들 너무 많은 듯 하고 특별히 내가 지긋지긋하게 염증을 느끼는 부류들도 그런 자들이다.

정권교체 너무 중요하다며 용기내서 열심히 싸운다는 ‘대의’에 도취하여 “작은 것” 작게 취급하는 치들. 인기 얻으려고 거기 꼭 여혐멘트 넣고 당당하며, 좋아요 얻은 뒤에 자의식 빵빵 차가지고, 그래도 자기는 ‘존경받을 만한, 사랑스러운’ 아재인줄 착각(!)하는. 앜ㅋㅋㅋ 쓰면서도 싫어서 소름 돋았어.

여기까진 싫긴하지만 그런갑다 하고 봐줄 수는 있다. 소름이 아니라 토나오는 치들이 아직 남았다. 입 가벼운 진보 아재에서 좀 더 나간 류 - 이를테면 안희정. 이미 그 자신이 ‘대의’가 되어있는 중증 왕자병. 자기가 너무 잘나고 소중해서 “나는 어떤 여자와도 잘 수 있다”  그 자신은 넘나 머싯는 사람이기에 이여자도 당연히 원하고 있다고 착각.. 권력과 힘도 가지고 있으므로 가까운 동료 지인들을 성적으로 (혹은 정신적, 물질적으로)착취하면서도 .. 그게 착취인 줄도 모른다..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안희정이 너무너무너머머머머무 싫은 데, 솔까 꼭 정치권 아니라도 그런 왕자병 인격들 어디든 넘쳐나고, 그게 ‘남자다움’과 ‘자신감’,’리더십’등등으로 포장되어 꽤나 인정 받는 것 같아서 더 싫다.. 진짜. 하아....

*

이 책의 3부 “전쟁과 강간”은 전시강간을 다루고 있는 데, 저자가 어떤 부분을 답답하게 여기면서 쓰고 있는 지 눈에 빤하다. 나도 함께 고구마 먹을 것 같다. 독일(나치)군대의 전시 강간이 아니라 연합군 및 소련군의 강간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적지 않게 진영논리로 뭇매 맞으셨겠지. 

‘지금 연합군이 나치 군대와 똑같다는 겁니까?
근데여.. 아니 지금 이야기가 그 이야기가 아니잖아여..
그런데 굳이 뭐 본질 적으로 대답하자면... 네 같아여.. 근데 질문이 잘못됐어여...
정말 뭐시 중요한 지를 모르는 포인트의 질문들.
(요 질문이랑 묘하게 겹치네.. 모든 남자가 잠재적 가해자란 말입니꽥??)

“(112)물론 모든 러시아 군인이 강간범은 아니었으며, 붉은 군대의 잔혹 행위에 대한 독일 측 증언록을 보면 여성에게 친절을 베푼 사례도 없지 않다. 그러나 소련군이 저지른 일의 책임을 에렌부르크의 선동 탓으로 돌리거나, 스탈린이 ‘남자는 원래 그래’라는 식의 태도를 취한 탓으로 돌리거나, 심지어는 어떤 민족적 특성 탓으로 돌려봤자 부질없는 짓이다. 전쟁 시기든 평화 시기든 남자들은 명령이나 허가, 특별한 전통 문화 없이도 언제나 강간을 저질러 왔다.”

—>개별 병사들의 일탈로 간주하는 것도.
아. 구태의연해. 그리고 반박도. 너무 남탓...
그건 남자 답지 못한거 아니냐고ㅋㅋㅋ 남자면 남자답게 인정하라고!!! ㅋㅋㅋ 그냥 나치나 연합군이나 붉은군대나 다 빻았다곸ㅋㅋㅋㅋㅋ 전시나 평시나 강간만큼 공고한 남성연대와 남성문화가 없다고..!!. 흐읍.. 😭😭

시인할리 없으니 페미언니들이 샅샅이 밝혀주시겠지..
그저 저는 열심히 읽어 은혜받고 속지 않겠나이다.

마지막 좀 긴 문단 이지만 중요한 부분 같아 옮겨둠.

*
“(61) 승리를 거둔 군대의 시점에서 강간은 순전히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저지르는 행위가 된다. 국가 단위의 테러와 정복이 보여주는 커다란 패턴의 일부로 강간을 인식하는 일은 사후에만 가능하다. ‘사후에야’ 이런 인식이 가능한 이유는 강간하려는 충동이 복잡한 정치적동기 부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언제나처럼 여성의 신체온전성을 무시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 강간은 충동이 생겨 어쩌다 저지른 일에 그치지 않고 군사적 효과도 불러일으킨다. 피해를 입은 쪽에게는 협박을 당해 사기가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가해한 쪽의 국가가 강간을 시인하는 일은 거의 없다. (미군 예외) 전시 강간기록은 전쟁의 포연이 가신 후 적이 저지른 일을 취합해 분석하고 정치선전용으로 가공하면서 남게 된다. 정복당한 나라의 남자들은 ‘우리의 여자가 강간 당한 일을 궁극의 수치이자 치명타로 여기기 마련이다. 패배한 국가의 국민은 강간을 적이 그들을 의도적으로 파괴하기 위해 이용하는 수단으로 간주한다. 남자들은 ‘내 여자가 강간당한 일을 사실상 자기가 겪는 패배의 고통으로 전유해온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자기중심적 관점은 어느 정도 실용적인 쓸모가있다. 딸과 아내처럼 자기가 아끼며 함께 지내는 여성들이 강간당할경우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남성에게 지배자가 벌인 강간이란 정복당한 처지에서 겪게 되는 성性불능을 설득력 있게 설명해줄 증거가 된다. 여성을 소유하는 것이 남성으로서 성공을 보증하는 징표였듯, 여성을 보호하는 일 역시 오랫동안 남성으로서 자부심을 보증하는 징표였다. 그런데 점령군이 벌인 강간은 패배한 쪽 남성의 힘과 소유권에 대한 환상을 모조리 파괴한다. 강간을 통해 여성의몸은 상징적인 전쟁터가 되며, 승리자가 개선식을 벌이는 광장이 된다. 여성의 몸에 가하는 행위가 남자들끼리 주고받는 메시지가 되는데, 한쪽에게는 승리의 산 증거이고 다른 쪽에게는 패배와 상실의 산증거인 것이다.”

—> 아니, (심한욕) 내 여자가 당한 강간이 ‘패배’의 고통이라니... 아니요 저기요... 이건 니가 당한 ‘패배’가 아니라... 여성이 당한 강간이라니까요... 강/간/이/요... (읽다가 대 환장해서 잠시 덮었었다🤯🤯..)

전시 강간의 메커니즘. 그리고 ‘전시 강간’을 ‘전시’하는 이들의 뇌구조.. 물론 ‘니 여자’도 아니지만.. 
어디 강간도 안당해 본 ‘패배자 따위’가 고통을 느껴...진짜 코웃음이 쳐져서 답답해 미침.

쓰면서 점점 더 열받고 있으므로 딴길로 새면서 마무리 짓자면

그러니까!!
스카이캐슬 뒤에서 세편!!!
노콘준상 털깎고 정신 차리고 참회하고 끝나면 다야?
남자가 각성하고 남자가 구원해주거나 참회하면— 그럼 다 용서해야해!!!?!!
확 아갈머릴... 
(스카이 캐슬의 결말은 정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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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19-02-04 0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열차게 읽고 계시는 중이군요!
분노하면서 읽고 계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ㅜㅜ
솔제니친이나 구좌파 그리고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진보진영의 남자들은 왜 유독 여성 이슈에서 만큼은 오히려 백래시를 하거나 주변부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가. 그들 역시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중에 이어질 챕터도.. 빡(?)칠 내용도 많으실 것 같네요.
 
90년생이 온다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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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수련회’에 가서 기합을 받았다. 빨간 모자를 쓴 조교들이 무섭게 다그쳐댔다. 터질 것 같은 허벅지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저녁에는 촛불을 켜고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MT를 갔다. 선배들은 멤버십 트레이닝이라고 했다. 그런데 편한 옷을 입고 ‘해쳐모이’라고 하는 거다.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앉았다 일어났다, 좌로굴러 우로굴러 했다. 그래도 대학교인데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열외’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 때문에 한번 더 기합을 받게 되는 건 민폐같았다. 입이 댓발 나와 기꺼이 기합을 받지 못해 ‘열외’가 된 동기가 있다며 쪼그려앉아 뛰기 횟수가 늘어났을 땐 솔직히 짜증나기도 했다. 나 역시 내 몸을 겨우겨우 통제하고 있었으면서 그랬다. 그렇게 다 같이 고난을 겪고 나니 끈끈해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랬다.

그랬다. 그랬는데. 그런데. 그러한데. 지금은 그때가 무섭다. 몸서리 쳐지도록. 그 시절의 그들이 무섭다. 정확히는 그것을 ‘견딘’ 내가 무섭다.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어 있는 내 몸이 무서운 것 같기도 하다.

“(11)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임모 씨와 최모 씨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꼰대’라는 존재다. 임모 씨 곁에 ‘명문대 나와서 기껏 준비하는 게 9급 공무원’이라며 무책임한 참견을 하는 꼰대가 있다면, 최모 씨 곁에는 ‘네깟 게 뭘 안다고’라며 그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꼰대가 있다...1990년대생들은 그들이 자라온 학교와 주변에서 이러한 ‘꼰대질’ 속에 살아왔고, 이제는 사회인이 되어 직장의 꼰대들과 직접 마주하게 되었다. 이 책은 1990년대생들이 이 ‘꼰대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방식을 취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꼰대의 세상은 어떻게 이들을 받아들여야 할지 답을 찾고자 한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느끼는 일상적 불합리에 대해 90년대 생인 동생은 ‘극혐’이라며 “당장 때려치우라”고 했다.

나는 참아 왔고, 견딜 수 있었고, 떠나지 못했고, 싸우지도 못했다. 싸우는 사람들이 어떻게 내쳐지는 지 봐오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달리 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믿었고, 그래서 참을만 하다고 여겼을 지도 모르겠다.

또 엄마가 늘상 말했으니까. “남의 호주머니의 돈 빼먹기가 제일 어려운거다.” 나를 다그치는 관리자 사람도 그랬다. “사회생활이 원래 다 그런거야.”

이 정도면 괜찮은 처우라고도 생각했다. 정확히는 여기마저 그만두면 정말 영영 사회생활을 못하는 낙오자(열외)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더 컸다.

일갔다 오면 잠만 쿨쿨 자는 무기력한 저녁들이 꽤 오래 지속된다고 느꼈을 때, 들어온지 한 달 만에 (역시) 90년대생인 동료가 “절레절레, 노답”이라며 사무실을 그만 두었다. 아. 그냥 그만두지는 않았다. “여기가 무슨 대단한 데인줄 아느냐, 사람이 떠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등등 주옥같은 명언을 사무실 최고의 꼰대 상사에게 투하하고 떠났다.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러나.. 폭격이 지나가고 난 뒤.. 남은 나는 그 꼰대를 달랬다. (그날 집에서 혼술을 취할때 까지 마셨다...괴로워서..) 이내 새로운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가 또 떴다. 누군가가 새로 오는 것을 반갑게 맞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구하는 김에 한명 더 구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반년 정도 고민했던 말을 겨우겨우 했다. “저도 이제 그만두겠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들었던 생각은 하나다. 나도 일조하고 있었구나. 수직적이고 부당한 조직 안의 문화를 그냥 참고, 견디고, 그만두지도 않으면서. 이것들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구나. 그렇게 기성세대가 되어가고 있었구나. 나. 이미 낡았구나.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고 생각했는 데- 견딜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기득권’이라는 뜻인 걸까나.

*

그래서. 이 책이 위로가 되었다.

아직 무엇도 가지지 않았고, 이 세상에 기여한 바도 없으며, 그리하여 이 “모순이 내 것이 아닌” 90년생들이 (그것이 병맛과 솔직함과 간단함일 지라도) 자신들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와 세상에 인입되고 있다는 것에.

“(155) 90년대생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이 곧 나의 성장이라는 공식을 배격한다. 새로운 세대는 ‘회사에 헌신하면 헌신짝이 된다’는 인터넷상의 ‘직장 계명’에 동의하고, 이를 넘어서 충성의 대상이 ‘회사’여야 할 이유가 있냐고 반문한다.”
“(156) 과거 70년대 생과 그 이전 세대에게 충성심이라는 것은 단연 회사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90년대생에게 충성심은 단연 자기 자신과 본인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충성의 대상이 다르고 그 의미도 다르니 갈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90년대생들을 위한 조직 문화 개선 방안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충성도에 회사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느냐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157) 앞서 말했듯이, 90년대생들은 IMF 직격탄을 맞은 70년대생들과 상시 구조조정의 가능성을 가져왔던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쑥대밭이 되었던 80년대생들의 모습을 보고 자라왔다.”


‘회사가 싫다’ ‘퇴사가 좋다’류의 책들이 너무 많이 나오고 은근히 조장되는 분위기를 걱정하는 글을 본적이 있다. 이 책을 보고 나서는 그 걱정이 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부양가족이 없고 아직 젊다면 적극적으로 이직하고 퇴사하고 때려쳤으면 싶어졌다. 소위 회사라는 곳이 사람을 마치 티슈처럼 사람을 뽑아쓰고 버리는 거 지금까지 계속해서 봐왔으니까. 버려지기 전에 먼저 버리는 게 왜 나쁜가. 그렇게라도 답답한 이 시스템에 균열을 내야하는 것 아닐까. 그 균열을 견딜 수 없다면 기성세대와 회사들이 제대로 변화해야 하는 거지.

*

‘열외’를 인정하지 못하는 몸의 기억을 가지고
‘그래도 어떻게 얻은 일자리인데’라는 을의 감수성을 꾹 내면화한
80년대생인 내가 애매하게 타협했던 것들이
우리 모두를 더는 해치지 않도록
새세대들에게는 절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그러니까 이 책의 멋진 표지처럼 90년생들이 그들만의 스타일로 착착착 전진하기를 바란다. 
난 눈 흘기지 않고, 기꺼이 내 무언가를 내놓을 용의도 있으며, 박수치고 응원할거다. 진심!!!

적고 보니 어쩐지 나의 퇴사일대기네.
90년대 생들 만세!



(116)
90년대 생들에게 솔직함이란 기존 세대의 솔직함과는 그 범위가 다르다. 그들에게 솔직함이란 자신의 솔직함뿐 아니라 남들의 솔직함도 포함한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예를 들어 본인들을 고용한 기업이라든가 소비재를 파는 기업들에게서 솔직함이 보이지 않는다면 인정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169)
˝본인에게 주어진 휴가를 다 쓰지 않고 휴가를 다녀오지 않은 것이 마치 더 일을 열심히 한 듯이 으스대는 선배들을 볼 때면 얼간이같이 느껴져요. 내 휴가를 내가 사용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요. 얼마 전에 팀장님이 지나가는 말로 ‘휴가가 너무 잦은 거 아닌가?’라고 하는데 기분이 안 좋았죠. 지적하려면 업무적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180)
영화 <신과 함께>의 원작자로 유명한 웹툰 작가 주호민 씨는 본인의 2008년작 <무한동력>의 명대사로 꼽혔던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가 이제는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꿈이 꼭 없어도 되는데 너무 꿈을 강요한 건 아니었을까?”라고 말이다. 새로운 세대는 꿈을 쫓으라는 기성세대의 충고가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음을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다.

(213)
몇 년 전, 한 대기업은 ‘역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겸비한 경영진이나 선배들이 1대1로 신입 사원에게 진솔한 지도와 조언을 해준다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반대로 차용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대표 신입 사원들이 본인이 속한 조직의 임원에게 역으로 본인의 진솔한 조언을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두 달도 가지 못해 폐지되었다. 회사에서 내세운 표면적인 폐지 사유는 ‘임원이 참여할 시간이 아직은 부족해서’였지만, 실제로는 ‘너무도 솔직한 신입사원의 의견을 임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서’였다.

한 부서에서는 근무한 지 1년이 되는 사원이 임원에게 “상무님은 회의 시간에 본인의 의견만 말하고, 반대되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답정너 스타일입니다. 부서 회의도 강압적이어서 부서원들이 솔직한 의견을 제시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음에 벌어진 일은 그리 놀랍지 않다. 솔직한 역멘토링에 얼굴이 굳어진 임원이 관리자에게 신입 사원 교육을 똑바로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제도의 취지는 무색하게 되었다. 이런 사달이 난 이유는 프로그램의 설계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에 참여하는 경영진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며, 참여를 할 진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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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9-01-29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다시 그런 불합리한 상황에 들어가게 된다면, 다시는 침묵하지 않을 거예요

공쟝쟝 2019-01-29 17:26   좋아요 0 | URL
암요. 그래야지요. ^_^
침묵하고 싶어서 침묵했던 적도 있지만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저 자신의 언어가 없었던 것도 같아요. 그리고 말보다 이미 몸이... 알아서...
대개의 불합리는 압도적이라 인식도 잘 안되었던듯. 우리 꼭 기회(?)가 생긴다면 제대로 말할 수 있도록 해요~
 
선망국의 시간 - 당신은 지금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나요?
조한혜정 지음 / 사이행성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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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삶을 일구려 노력할 수록 삶이 파괴”되는 것 같은 느낌. 따뜻하고 넉넉하고 싶은 데 자꾸만 삐죽거리는 마음.

그만 두었다. 이미 많이 그만두었는 데, 또! 그만뒀다. 작은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사내정치(?)랄까, 아니 어쩔 수 없이 ‘을’의 위치에서 감당해야하는 감정노동이 점점 버거워지고 있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피곤해져서 잠들어버리기 일쑤였으니까.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기까지 내가 사회 부적응자인 것은 아닌가 백번을 자문해봤다. 아. 적응 못했구나. 그런데 더는 적응할 에너지가 없다...ㅜ_ㅜ

이젠 일이 없으면 꼼짝없이 반백수 상태에 놓이게 되는 말이 좋은 프리랜서다. 제발 올해는 아무 일이나 막 받지는 말자고 다짐은 하는데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때려치우고 나니 더 때려치우고 싶다. 그밖의 나를 둘러싼 여러가지들을 문제들로부터. 도망쳤나? 아니다. 적절한 때에 그만두는 것도 용기라고 동생이 말해주었다. 물론 겁은 난다... 나만 이 모양인건 아니겠지? 굶어 죽지는 않겠지? 이대로 혼자 외롭고 쓸쓸하게 늙어가진 않겠지? 지레 겁먹어서 하는 걱정과 불안들.

선망국의 시간을 다시 읽는다.

“(31) 지금, 조국 근대화 프로젝트 아래서 압살당한 기성세대나 고삐 풀린 자본이 명령하는 무한 경쟁 프로젝트에서 살아남은 젊은 세대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좀 다른 시간, 쉬어가는 시간,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족끼리도 서로의 존재가 ‘슬픔’이 되는 시간을 벗어나는 것, 서로에게 “그간 살아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불가능할까요? 제대로 생각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이제 모두 휴가를 떠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맞네. 조한혜정 선생님의 조언대로 쉼의 시간, 휴가다운 휴가를 나한테 선물하자. 아주 열심히 달려온 편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쉰 것도 아닌 것 같아서.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곧 제주로 떠난다. 비록 일주일이 채안되는 시간이지만, 그냥 - 그냥 인채로 여행이라는 걸 해보기로. 혼자 훌쩍~ 떠나보는 여행은 처음이니까. 한 이틀은 아주 아주 푹- 쉬고, 많이 걸으면서 자꾸 자책으로 빠지는 성찰이라는 것도 좀 더 긍정적으로 해보리라. 그리고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고. 위로와 격려도 받고.

부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걱정으로만 뒤척이던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라고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117) ‘근대의 미래’ 다음에 올 텅 빈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저항이 나/우리 스스로가 평화로워지는 유일한 길이기에 ‘자기애의 이름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멈추고 싶다. 회복되고 싶다. 이미 다 그만뒀지만 더더 많이 그만둬버리고 싶다.
그렇게 다 때려쳐도 나는 망하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알고 싶다.
그리고 진심으로 ‘걱정’이 아닌 ‘위로’를 건네고 싶다.
조건없고, 우러나오는 “수고했다”는 말을.
나 뿐만이 아닌 모두에게.


(104)
답답한 건 그런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충분히 이야기를 할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 시간을 못견디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본론을 말해봐”하는 사람이 하나 있으면 그 단위는 아무 가닥도 못잡은 채로 목소리 큰 사람에게 끌려다니다가 허탈하게 끝나고 맙니다.

(224)
나는 좋은 사회란 사람들 얼굴에 화기가 돌고 홀아버지가 아이 하나를 잘 키워내는 사회라 생각한다.

(238)
정치의 시작은 만남이다. 적대의 촛불은 소통과 상생의 촛불로 진화할 수 있을까?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고 만나는 것, 자백이 아니라 고백이 하고 싶어지는 자리, 도움을 청하고 의논하는 약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되는 것, 이것이 시민정치의 승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가면 좋겠다.

(244)
그는 섣부른 대안을 찾아 나서지 않고 파국 속에 던져지는 것, 현실의 고통과 비참을 마주하는 것, ‘무너지는 마음’을 바라볼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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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5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5년 넘게 일해오면서 일년 정도를 쉬었는데 그때도 정말 불안해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었네요.
뒤돌아보면 또 어떻게든 일을 하게 되어 있고 굶지는 않고 있으니 쉴 기회가 생겼을 때 잘 쉬어둘걸.. 그런 후회가 들더라구요.
쟝쟝님은 저같이 후회하지 않게 주어진 아니 선택한 재충전과 쉼의 시간 제대로 누리시길 바랄게요. ^^

2019-01-15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미사이드 - 여성혐오 살해의 모든 것
다이애나 E. H. 러셀.질 래드퍼드 엮음, 전경훈 옮김 / 책세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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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페미니즘 읽기책 <페미사이드>의 늦은 리뷰를 올립니다.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심각하게 읽었던 부분은 4부(매스미디어, 포르노그래피, 고어노그래피) 입니다. 종종 ‘포르노그래피’를 표현의 자유로 정당화하는 논리들에 가끔 꿀먹은 벙어리가 되곤 했기 때문이죠. 일상에서는 “그거 다 여혐이야~!”라고 나이브하게 맞받아치긴 하지만 야동을 보는 것 보다 안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요즘세상에 모든 인간관계에 “님 노답! 차단!”을 맥일 수도 없고.. 감정적 대응 이전에 나름 합리적인 설명을 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책 덕분에 조금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단 저자는 포르노그래피와 성애물erotica을 구분합니다. 여기서 성애물은 성차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성을 묘사한 것이라면 포르노그래피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394)포르노그래피는 성적으로 노골적인 성차별의 선전물이다. 앤드리아 드워킨과 캐서린 매키넌Catharine MacKinnon은 포르노그래피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포르노그래피는 ‘이미지 그리고/또는 언어를 통해 여성의 성적인 예속을 노골적으로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는 다음 사항 중 하나 이상이 포함된다.
① 여성이 성적 대상, 물건 또는 상품으로서 비인간화되어 제시된다. ② 여성이 고통이나 모욕을 즐기는 성적 대상으로 제시된다. ③ 여성이 강간당할 때 성적 쾌감을 경험하는 성적 대상으로 제시된다. ④ 여성이 묶여 있거나, 난자당하거나, 신체를 절단당하거나, 멍들거나, 육체적으로 상처를 입은 성적 대상으로 제시되다. ⑤ 여성이 성적으로 복종 또는 굴종하거나 전시되는 자세나 위치로 제시된다. ⑥ 여성의 신체부위들이 - 질이나 가슴이나엉덩이를 포함하되 거기에만 한정되지는 않고 - 전시되어 여성의 존재가 그 신체부위들로 축소된다. ⑦ 여성의 본성이 창녀인것으로 제시된다. ⑧ 여성이 물건이나 동물에 의해 삽입당하는 모습으로 제시된다. ⑨ 여성이 비하, 상해, 고문을 당해 피를 흘리거나 멍들거나 상처 입은 모습으로 불결하거나 열등하게 제시된다. 맥락상 이러한 상태에 성적 매력을 부여한다(Dworkin andMacKinnon 1988, 36)’ 헬렌 론지노Helen Longino는 포르노그래피를 ‘비하적이거나 가학적인 성적 행위를 재현하거나 묘사하여 그와 같은 행위를 승인하는, 그리고/또는 권장하는 성적으로 노골적인자료(Longino 1980, 44)라고 정의한다.”


“(411) 페미니스트들은 포르노그래피를 선전의 한 형식”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여성을 소유하고 사용하고 소비할 수 있는 대상, 상품, 물건으로 보는 관점을 유포하며, 그에 수반되는 믿음을 강요”한다고요. 물론 주류학계에서 이러한 주장들은 무시됩니다. 그러나 생각을 좀 달리해서 우리가 거북해하지 않게 받아들이곤 하는 이론들을 검토해봅시다. 저자는 ‘광고’와 ‘욕망’을 끌어오죠.

갤브레이스는 《부유한 사회 The Affluent Society》에서 “(413)[현대 광고의] 중심 기능은 욕망을 창조하는 것 -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욕구를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라고 말합니다. 그 밖에도 광고가 대중들의 의식과 욕망을 형성한다는 류의 언설은 특별히 새로운 이론이 아닙니다.

그리고 “(412) 이것은 정확하게 러셀이 ‘어떤 남성들에게 여성들을 강간하길 원하는 성향을 갖게 하는 역할’이라 부른 포르노그래피의 능력이다. 포르노그래피가 이런 역할을 행하는한 가지 방법은 ‘이전에 강간 묘사 장면에 자극되지 않았던 남자들에게 자극적인 여성 누드를 반복적으로 강간과 연결하여 보여준 뒤 나중에는 강간 장면에 자극되도록’가르치는 것이다.”

저는 이 부분이 사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비재 광고’가 ‘자본주의’의 선전방식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면 현대의 ‘포르노’란 ‘가부장제’의 또 다른 선전방식일 수 있다는 주장도 비약은 아니다 라는. 그래서 한편으로는 무서웠습니다. 가부장제의 선전물들이 얼마나 여성을 끔찍하게 다루는지 대충은 알고 있으니까요.

현실은 더 시궁창입니다. 강간을 넘어 살해로. 포르노그래피는 페미사이드로 연결됩니다.

“(398) 페미사이드와 포르노그래피 사이에 그나마 존재하던 구멍이 숭숭 뚫린 경계는 스너프 필름(snuff 여배우를 고문하고 사지를 절단하고 살해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모든 포르노그래피가 스너프 필름은 아닙니다만, 궁극의 포르노(?)에 스너프가 위치한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저자의 글에 따르면 미국의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어렵지 않게 ‘성인’ 혹은 ‘호러’섹션에서 소프트 스너프 영화들을 구할 수 있다고 해요. 예상하셨겠지만, 소프트가 연출된 살해라면 하드 스너프는 정말로 살해하는 장면을 담은 필름으로 이 경우는 비밀리에 비싸게 거래된다는 군요. 오늘날 처럼 데이터를 공유 복제하기 쉬운 사회에서 스너프 류의 영상들은 더 구하기 쉬워졌겠죠. 마치 몰카가 ‘국산야동’으로 둔갑해 흔해져버린 것 처럼요.

물론 포르노를 보는 모든 남성들이 여성을 강간하지는 않습니다. 포르노그래피가 ‘페미사이드-여성혐오살해’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당연히 ‘모든’이들이 그럴리 없죠.

그러나 아주 ‘일부’라도 영향을 받는다면? 
그에 대한 피해를 여성들이 일방적(그것도 강간과 살해라는 방식)으로 치러야 하는 것이라면?

범람하는 ‘포르노의 시대’.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에 대한 강간 - 그리하여 결국 여성에 대한 살해로 이어지는 야만에는 그러한 욕망을 부추기는 미디어들의 선전이 분명 작용합니다. 저 역시 이전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상징되는 권력의 작품 검열과 규제에 대해서는 반대하며,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입니다만, 어디까지가 ‘자유’와 ‘권리’로 허용되어야 하는지... 정말 어렵네요.

다만 이것 하나는 알겠습니다. 포르노그래피와 스너프 필름은 적어도 여성인 제가 자유롭게 세상을 활보할 수 있는 권리를 신장해주지는 않는 다는 것을요. 꼭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도 토막나고, 난자당하고, 사지가 절단되는 류의 작품을 요즘처럼 흔하게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관련한 페미사이드의 한 단락을 가져옵니다.

“(378-9) 포르노그래피가 “기술적으로 정교화된 여성 인신매매”라면, 더 나아가 스너프는 일종의 하이테크 린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실제 성차별 살인을 담은 영화나 비디오를 시청하는 남성들의 행위가 미국 내에서 문화적 관례로 ‘정상화될’수 있다는 악몽 같은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실제 살인을 촬영한 영상물과 구분되지 않는 ‘연예 오락’자료가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되는 한, 정부 역시 연쇄살인의 공모에 직접연루된 것이다.
미국 헌법은 기업의 통제를 받는 미디어가 없던 시절에 작성되었다. 그때는 사진이나 영화도 없었고, 대량파괴용 기술도 없었으며, 여성이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헌법이 여성들에게 제공한 미심쩍은 혜택 가운데 으뜸가는 것은, 오락과 광고가 포함되는 ‘매스mass’미디어에서 동료 여성이 모멸을 겪고 사지를 절단당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 권리다. 그에 버금가는 혜택은 공격무기를 지닌 남성에게 공격당할 권리다. 이 두가지 권리 모두 포르노그래피 비즈니스와 총기판매 사업에 종사하는 백인 남성들에 의해 철저히 보호받는다. 이들은 진보적인 변화를 막기 위해 정계에 로비하고 선전활동을 벌이는데 수백만 달러를 지출한다.
권리장전은 글로벌 공동체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의 기술수준을 지닌 다원주의 사회에는 적합하지 않다. 업데이트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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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 SNS부터 에세이까지 재미있고 공감 가는 글쓰기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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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평을 남길까 했는 데, 저자에 대한 평을 남기고 싶어졌다. 종종 팟캐스트로 만나는 이다혜 작가에 대한 인상은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확신을 얻었다. 그는 ‘매우’ 똑똑한 데다 트랜디하기까지 하다!
업데이트 안되는 아재지식인들 글 읽다가 문화적 감수성이 풍부한 소위 X세대 언니들의 글을 읽으면 가끔 눈이 화~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이 그랬다.

숱한 ‘글쓰기 팁’ 책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요즘, 이 분야의 적지 않은 책들을 읽어왔다. 솔직히 이만큼 섬세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글쓰기 관련 책은 못봤다.
“(213)소확행 시대의 글쓰기”에 최적화된 듯도 싶은 책. 대단한 작품을 준비중이신 분들 보다는 sns에 리뷰를 잘써보고 싶은 평범한 소시민(?)들께 권한다. 언제부턴가 한 사회의 문화적 총량이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읽고 쓸 때 늘어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또 과감히 써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114)
우리 모두는 어떤 면에서 기인이고, 하나뿐인 방식으로 망가진 존재이고, 그 상태로 살아가기 위해 소통하는 법을 어렵게 배 워가는 거라고, 그러기 위해서 제대로 듣는 법을 익혀야 말하고 쓸 수 있다고.

(127)
간접경험과 직접경험, 그리고 그 모두에 존재하는 나 자신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기. 글쓰기. 나 자신이 되겠다는, 가장 강력한 행동.

(157)
어떤 일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상처에 대해 쓸 수 있다는 말은 상처를 잊었다는 뜻이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사는 법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당신이 도저히 글로 옮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언제가 되면 글로 옮길 수 있을까. 서두르지 말자. 이것은 이기고 지는 배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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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4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뒷북소녀 2019-01-14 1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저 예전부터 장바구니에 담겨 있던 책인데 바로 결제합니다.

공쟝쟝 2019-01-14 21:54   좋아요 0 | URL
으앗🤗 책읽고 난 뒤의 뒷북소녀님의 멋진리뷰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