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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때 왜그랬을까
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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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서 나는 거절 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거절 당할 수도 있는 존재다. 라는 것을 이제야 본격적으로 깨닫고 있는 중이다. 난 좀 바보였다. 색맹은 테스트 하기 전 까지 자기가 색맹인지 모르는 것 처럼 나는 관계맹 비슷한 거였던 것 같다. 다른 관계가 가능할 거라는 것을 몰랐으므로 아주아주 밀착된(솔직한, 안불편한, 거리조절이 잘 안되는 가까운)관계만이 ‘진짜’관계라고 여겼다. (그런 관계들에 언제나 술이 함께였음은 최근에 뼈저리게 깨달아가고 있는 사실이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듣고 또 할 수도 있다 여겼으므로 인간관계 나름 자신있어! 뭐 이렇게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마저 바보였다. 맹. 맹추. 모른다는 걸 모르는 진짜 바보. 


꼭 친밀하지는 않더라도 나와 연이 닿은 어떤 사람을 내가 먼저 손절 할 수도 있다는 걸 안 것은 채 5년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벌써 5년이 흘러있네?) 전문가에게 한달치 월급쯤을 쓰고 난 뒤에야 나를 감정적으로 착취하고 끊임없이 가스라이팅하는 사람들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그때도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를 알고는 있었다. 나한테 너무 소중한 거라서 그게 그거 일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던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는 연락을 받지 않아 보았다. 문자도 씹어보았다. 어색했다. 혹시 길가다 마주치면 변명할 거리들을 수백가지 생각했다. 헤어짐의 초기 단계에는 그랬다.(이젠 아니다,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있다) 충분히 끊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는 데, 내 쪽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자체를 하지 못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누구에게라도 그랬다. 살면서 내 선에서 먼저 '얘랑은 절교해야지!'라는 마음을 먹어본 것은 스무살 때 정말 친했던 초등학교 동창 딱 한명이었다. (심지어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고, 오해였따) 언제나 열려있었던 나는 처음에는 좀 친해지기 어려워도 친해지고 나면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편이었다. 굳이 닫을 필요성을 못느끼는 나를 사람들은 머물렀다가 떠나가곤 했다. 항상 단단히 뿌리내린 나무같은 사람이고 싶었다. 나는 떠나보낼 수는 있는 사람이지만, 떠날 수는 없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했다. 어렵다고 느꼈던 것은 제멋대로 내 경계를 넘나들면서 휘젓고 어느날 보니 멀어졌다 또 느닷없이 나타나서 헝클어 놓고 가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열에 아홉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나는 언제나 맏이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손 윗사람들에게 서툰걸까?하고 고민을 많이 했더란다. 영 아닌 것 같을 때는 사소한 반항들도 해봤지만, 그럴 때 마다 내가 예민하고 복잡한게 문제가 되었다. (지금와서 알게된 나라는 인간은 나무보다는 부레옥잠ㅋㅋ 같은 사람이고, 생각이 복잡하긴 하지만 예민하지않고 둔감한 쪽에 가깝다.)


“(95) 그들은 심오하지 않다. ‘피해자’에게 관심도 없다.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쪽이 약자가 될 뿐이다. 그들은 단지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이다. (They do because they can.) 인간은 누구나 그들이 될 수 있다.  (…)  왜 나를 떠났을까? 왜 내가 아닌 그(그녀)지? 이건 우문도, 문장도, 질문도 아니다. 그냥 잘못된 진술, 나를 괴롭히는 지배 담론이다. 트라우마는 ‘가해자’때문이 아니라 ‘가해자’를 이해하려는 순간 시작된다.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같은 것은 필요없다. 전직 연인들은 그저, 이별이 한 인간의 정치학과 윤리학을 정확히 보여주는 지표일 뿐임을 인식하면 된다.”


언제나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상처받은 건 나였는 데, 상처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르겠다. 가끔 그 시절의 나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할 때의 나는 정말 깔깔깔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진지하게 생각하며 정색하는 것은 혼자 있을 때 뿐이다. 아주아주 어렵게 마음속으로 ‘이번 생에 우리 인연은 여기까진가 봐요’ 다시는 안 볼 결심을 하고난 뒤에야 그것들이 일종의 가스라이팅인 걸 안다. 


나는 후회하는가? 약간. 스스로에게 해명하고 싶은 건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취약했을까?하는 질문. 어쩜 그 질문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가 취약했던 것은 개인의 특성(이건 읽고 쓰면서 찾아본다)도 있지만 분명 구조적인 부분(이건 분노스럽지만 이해한다)도 있었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누구라도 내가 되면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알고 있다. 아주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나는 나를 알 수가 없었다. 나를 몰랐기 때문에 그도, 그들도 알 수가 없었다. 근데 그게 나였고, 부정? 부정할 수는 없고, 분노? 글쎄 그냥 그건 나니까. 그때 그건 나니까. 그건 비극이지만 역시 웃긴 비극이랄까. 웃게 된다. 


웃지만 헛헛한 나는. 나는 일기를 쓴다. 나야. 왜 난 나를 몰랐니. 왜 내가 나를 몰랐을까. 그 때의 나야. 나는 나를 알았어야지. 나라도 나를 알았어야지. 또 다른 내가 말한다. 모르긴 뭘 몰라. 알았지. 딱 그 만큼을 알았겠지. 더 알려고 노력 안했던 거지. 인정받고 싶었으니까. 사랑받고 싶었을테니까. 나를 아는 것보다 그게 훨씬 훨씬 더 중요했으니까. 요즘엔 덜 쓰는 편인데, 한 일주일 신나게 나여 왜그랬니를 쓰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왜’를 묻는 빈도가 매우 줄었다는 거다. 가끔 트리거가 눌리면 떠올려지긴 하지만,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해 더는 “사로잡혀”있고 싶지 않으니까다. 


“(101) 그러나 애초부터 원인은 없었을뿐더러 있다 해도 대단히 복합적이다. 혹 인과 관계가 밝혀졌다 치자. 하지만 그 뒤에는 ‘왜 하필 나지?’라는 더 치명적인 의문이 기다리고 있다. 악의 활동, 피해가 발생하는 시간은 짧다. 그러나 악의 이유를 묻게 되면 영원히 피해자가 된다. ‘왜’라고 질문하는 그 순간부터 ‘피해자 됨’의 진정한 의미, 불행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당하는 것을 넘어 사로잡히는 것이다. 악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피해자의 자아 존중감을 파괴하는 악의 본질이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무관심으로 악의 기능을 중단시키지자. 그럼, 누가 악과 싸우나? 그건 악 자신이 할 일이다.”  


내 자신의 문제에서만 빼고(어쩌면 그것에서 도망치기 위해), 별로 도망쳐본 적이 없었다. 누구에게도 잠수탄 적 없음과 어떤 일에서도 도망친 적 없음이 나의 자랑이었다. 뒤늦게 모든 질문에 대답할 필요도, 모든 연락에 답장할 필요도, 모든 약속을 지킬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았고, 진짜진짜 도망쳐서 안되는 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그렇게 분노해마지 않던 잠수타는 것이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일 때가 있다는 것도. 


그걸 알게 되는 순간 잠정적인 약속처럼 챙기고 있던 굉장히 많은 관계들과 이별했음은 덤이다. 그런데 그렇게 애써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았어도, 그 시절의 나는 모두들을 다 만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듯. 지금의 나 역시도 끊고 끊고 끊어도 또 끊어낼 관계들이 생겨나 있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이제와 새삼스럽게 재평가하게 되는 의외의 좋은 사람들도 있다. 


“(107)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대개 자기 자신, 가족, 연인……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여기’에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내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연락해줄 사람은 거리에서 처음 만난 이라도 지금 접촉하고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여기 없는 이’는 소용이 없다. 그런데 심지어 나는 돌아가신 엄마, 죽은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고 답한 것이다. 

인간이 옆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하는’이유는, 시간(미래나 과거)을 매개로한 권력욕 때문이다. 오지 않을 미래의 권력을 위해 현재 소중한 사람을 버리는 영화 속의 광해군이나 존재하지 않는 엄마와 과거에 살고 있는 나나, 어리석기가 한량이 없다.”


그 많은 이별에도 불구하고 끊어야한다는 생각을 재고해본 적 조차 없었던 마음속 깊이 소중하게 여겨온 관계가 있었다. 나는 변했고, 내가 변했음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오랫만에 만나 입을 떼는 순간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내가 마음속으로만 이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것도 바로 알아차렸다. 관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언제나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다. 태도가 변하지 않은 것은 나였고, 관계를 박제해두려 했던 것도 나다. 재빨리 사과했다. 네가 그대로 일 거라고 생각했어. 사과를 하고나니 이건 내가 손절당해도 할말 없겠구나 싶었다. 아니 어쩜 이미 진즉에 그쪽에서 먼저 나와 멀어지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조금 어렵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아, 그렇지. 인간관계에서 거리두기는 나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지. 내가 떠나온 만큼 너도 떠나왔을 것이다. 서글펐다. 조금 눈물이 났다. 헤어짐-멀어짐을 받아들일 때가 온 것이다.


 “(285) ‘미안’의 사유가 구조적 원인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구조에 대한 개인의 반응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실제 상황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 진짜 미안할 때는 할 말이 없거나 멀리서 오랫동안 미안해한다.”


친구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해줬지만 복잡한 것은 내 습벽이다. 아니다. 언어에 기대는 것이 내 습벽이다. 도서관에서 한동안 필요없어 밀쳐둔 심리 에세이들을 또 실컷 찾아 읽었다. 머리로는 다 알아도 여전히 난 실전에서 관계맹이다. 별로인 사람들에게 단호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보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금새 또 내 시선으로 넘겨짚고 있다. 공감도 잘 못해주고, 위로는 더욱 못한다. (네, 제가 관계에 대해 열심히 학습하고 있으나, 역시 그것마저 학습으로만 저장되는.. mbti에서 T-사고형-입니다...)


잘 돌본다고 돌보았는 데, 다육이 화분 하나를 죽이고 말았다. 뭔가 말라보여서 물을 듬뿍 준게 문제였다. 말라보였던 녀석은 쏟아지는 물공격에 까맣게 타버린 것 같은 모양새로 죽어버렸다. 엄마가 숟가락으로 하나씩만 주라고 했는데, 봄이되서 마른 건가? 마른게 아니라 애시당초 물을 자주자주 줘서 썩어가고 있었던 거였다. 상태가 안좋아보여서 더 신경쓴게 잘못이었을지도. 내가 화분을 대하는 방식이 관계를 대해온 방식과도 닮았다는 통찰에 닿았다. 아파보이고 시들어보이면 더 자주자주 많이 신경을 쓰고, 진지해지고 심각해지고, 그게 종종 어떤이들에게는 피로감을 줬다는 생각. 말좀 해주지. 니문제 아니라고. 나 자신없어서 더 그랬던 건데. 어쨌든 이건 모두 과거의 이야기고, 난 다육과의 사람들과는 친할 수가 없은 종류의 인간이라는 건 좀 알겠다. 


무튼 집에는 다섯개의 화분이 있다. 한달에 한번 물을 줘야하는 식물도 있고, 일주일에 한번씩 듬뿍 줘야하는 화분도 있는 데, 물을 아주 조금씩만 상태를 봐가면서 줘야하는 종류의 다육이도 있었다. 가장 먼저 제일 예쁜 다육이를 보냈다... 흑흑.. 이젠 네 그루의 화분이 남았다. 물을 애정이라고 놓고 보면, 나는 선인장과 인 것 같다. 대체로는 방치일 정도로 내버려 두다가 어쩌다 한번, 그러나 줄 때는 아주 철철 넘치도록 많이.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빈번히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으면 부담스러워서 진득진득해지다가 뿌리부터 썩어 흘러내려 버릴 것이다. 나는 한번 듬뿍 받은 애정을 마음에 머금고 힘들 때는 조금씩 그걸 꺼내서 쓰며 살아간다. 그런 라이프스타일이 맞다. 솔직히 세상 사람들 모두 선인장 같았으면 좋겠지만, 세상엔 다육이도 있고. 요즘엔 이쁜 다육이가 대세인 것 같기도..?


“(76) 사람마다 인간관계 방식이 있다. 나는 깊고 짙고 부담스러운 만남을 원한다. 그러나 추구할 뿐 실현된 적은 별로 없다. 그런 관계로 살기엔 세상은 너무 바쁘고 나는 참을성이 없다. … 이해 관계든 진실한 관계든 어차피 모든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영원한 관계는 두 사람이 동시에 동작을 멈추거나 끝없는 자기 갱신의 매력이 교환될 때 가능하다. 전자는 죽는 것이고 후자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넘쳐났던 요 얼마간 과거의 관계 맺기 방식과 이제서야 알게된 나의 패턴을 추적해보면서, 내가 생각만큼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어떤 적극적인 노력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관계도 있다는 걸 체감했다. 한때 나는 이 관계를 잃으면 팔이 떨어져나가는 것 처럼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다고까지 생각했었다. 팔은 무슨. 고통의 강도로 치자면 아직 떨어질 때가 아닌 나흘된 딱지를 뜯는 정도의 조심스러움과 신경쓰임과 통증이었다. 이내 새살이 차오를 것이고, 우리는 멀어진 채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없었다가 있었다가 흔적을 남기고 이내 없어지는 것. 이것이 인연의 본질이었는 데, 난 미련해서 답답하게 뿌리내린 채로 오래오래 혹은 영원히 거기에 있고 싶어했던 건가 보다. 그래도 조금 서글펐다. 서글픔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한때 나에게는 내 몸처럼 아꼈던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근데 그건 그때의 이야기고. 나는 그 시절을 떠나왔으며,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지금을 산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 없던 시절들에 대해 잊을 순 없을 것 같다. 그 시간들을 보낸 건 분명 나였으니까. 내가 그때 왜그랬을까. 왜그렇게 어리석고 멍청했을까. 왜, 왜... 왜그렇게 한심했던거야, 대체 왜..

나는 삶의 다른면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분명 그랬다. 그 때는 그게 나였다. 내가 그런 나였던 게 좀 가슴이 아프다.

그렇다고 지금도 내내 가슴이 아픈채로 살고 있는 건 아니다. 지금은 지금을 산다.

- 다락방,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이 상태에 대한 페이퍼를 쓸지 말지 고민하고 있던 터에 다락방님의 서재에서 위 문장을 읽고서 다락방님의 글이 가리키는 것과 마지막에 쓰여진 문장이야 말로 지금의 내 상태를 가리키는 문장으로 훔쳐다 쓰기에 완벽하다는 😌 곤란하고 행복한 감동에 휩싸였다고 한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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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5-09 1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 나 인용당했어. 영광입니다!! >.<

저는 쟝님이 언어에 기대려고 하기 때문에 덕을 보는 사람에 속합니다. 쟝님이 언제나 언어, 언어를 언급해주어서 그럴 때마다 저 역시 그래 언어, 하고 되새기게 되거든요. 페미니즘 공부하면서 한순간 아 이것은 언어의 문제다, 우리는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 언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생각을 쟝님은 진작에 스스로 깨닫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대화가 어느 순간 언어의 문제로 흐를 때면 저는 그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배우게 돼요.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을 기대합니다.

공쟝쟝 2021-05-09 18:27   좋아요 1 | URL
이렇게 다락방을 정희진의 반열에 올려 드렸다!!!! ㅋㅋㅋㅋ 언어에 대한 사유는 조금씩 더 구체화해보겠나이다!!!
실은 요즘 한창 뭉뚱그려 덮어놓고 싶었던 어떤 시절과의 좋은이별을 위해 지내는 중이었거든요.
어제 만난 다락방님의 페이퍼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는 제가 다락방님이 아니라서 감히 알수는 없지만, 그냥 저자신을 거기에 대입해 놓고 읽어도 너무 좋았어요. 쓰는 다락방님은 가슴 아프셨겠지만, 읽는 전 걍 너무 좋았다고요. ㅎㅎㅎ
다부장님!! 일요일이 얼마 안남았습니다요!!어서 건필하세요!

새파랑 2021-05-09 18: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인간관계에 대한 공쟝쟝님의 글에 정말 공감이 되네요. 사람이 한결같기는 정말 어려운거 같다는......

공쟝쟝 2021-05-09 23:37   좋아요 1 | URL
한결같고 싶은 게 욕심이죠. 그 아집을 부릴 수 있는 건 어떤 권력이기도 하구여... 특별히 더 요즘 같은 세상에선 말이죠. 저는 시골아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답니다.

단발머리 2021-05-10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희진 선생님 글에 대한 감상을 수없이 읽어보았고 저 역시 선생님 글을 읽고 또 다시 읽는 사람이지만 쟝님처럼 잘 읽는 사람은 처음 본 듯 해요.
내가 정희진쌤 더(!!!) 좋아하지만 쟝님을 ‘정희진쌤 1등 해설가‘로 ‘임명‘합니다, 내가!!!!!

공쟝쟝 2021-05-11 13:48   좋아요 0 | URL
생의 어려운 고비를 희진님 만나 무사히 넘어왔더이다.... (아....!!!)
 
[eBook] 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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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도 인과관계로 세상을 보려고 하는 타입인 나는 근래들어 의미와 개연성 찾기를 의식적으로 그만두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사실 정말로(우주의 생겨먹음조차 그러하다던데)도 세상이 인과관계로 돌아가지 않을 뿐더러, 인간사에 이유를 따져물어 서사를 만들어주는 노동 자체에 동력이 딸리기도 했고(인류애 바닥이랄까, 굳이 인간들을 이해하고 싶은 동기가 생기지 않았다), 모든 것에서 유의미한 의미를 찾아내려는 주변의 의미종자들에게 질려버렸기 때문인게 좀 컸다. 


이 사태의 본질을 파악해야해! 모든 걸 의미화하는 그들은 음모론에 취약했고, 뭔가 중간이 삭제된 것 같은 그 음모론에 나는 도저히 동의가 안됐고, 하지만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의 인식론이 대체로 그렇듯 반박하려면 더 설득력있는 음모론을 가져와야 했고…. 논쟁하기 싫어서 아, 그렇군요?하다보면 나는 자꾸 뭘 제대로 모르는 애가 되어 들어줘야 했고… 때론 그게 빡쳐서 한번 붙자니 음모론(정치적 신념도 그렇지만, 신점ㆍ사주ㆍMBTI도 같은 맥락인 듯)에 설득 당하고 싶을 만큼 삶이 퍽퍽하기도 했을테지, 싶어 좀 짠했고- 뭐 이거저 다 떼고보면 나의 그 짠해함을 이용하기 위해 어째 이야기가 더욱더 극적이고 구슬퍼(?)지는… 인간사를 서사로 구축해 고통을 합리화하는… 속내들이 더는 보기 싫어졌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으으~ 듣기 싫어. 이유는 없어. 그냥 세상은 이유없이 원래 똥같은 거야!!! 


인간관계나 사회를 파악하는 데 있어 골싸매고 이유를 찾는 진지한 태도가 멋있어 보였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뭐랄까… 살수록.. 살아갈수록.. 그런 태도가 더 편협하고 본질적으로는 더 쉬운 방식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의심은 뇌과학(!)에 따르자면 나름 신빙성있는 의심이었다!!


“(74) 뇌에서 그 방 안의 수많은 대화를 걸러내고 당신의 안녕에 중요할 수 있는 대화를 알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뇌는 우리를 위해 이야기를 만든다. 우리를 둘러싼 혼란스러운 정보를 추려서 중요한 정보만 보여준다. 이처럼 서사를 이용해서 복잡한 내용을 단순하게 만드는 방법은 기억에도 적용된다. 인간의 기억은 ‘삽화적’(무질서한 과거를 인과관계가 있는 지극히 단순한 순서로 경험하는 경향)이고 ‘자전적’(이렇게 연결된 삽화에 사적이고 도덕적인 의미가 담기는 경향)이다.”
“(77) 인과관계는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근간이며 뇌는 원인과 결과를 연결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자동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제 실험을 해보자. 바나나. 구토.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방금 전에 당신의 뇌에서 일어난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당신의 마음은 자동으로 시간의 순서를 전제하고 바나나와 구토라는 단어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상정하여 바나나가 구토를 일으키는 대략적인 시나리오를 만든다.””


서사중독. 그러니까..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우리 뇌는 인과관계를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인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사실. 흐음. 그렇군. 🤔 인과관계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부지런한게 아니라 게으른거였어..!! 여튼 그 방식이 되려 뇌에게 쉽다는 걸 안 것은 최근의 일이고, 나 스스로는 그런식의 마음씀이 꽤나 기운이 필요한 노동이라고 생각했었다. 어쨌든 머리를 굴려서 이해할 근거들을 찾아내고 마는 것도 노동이라면 노동이잖아? 두뇌의 노동!? 🧠


“(91) 우리의 편향과 오류와 편견에 관한 불길한 사실이 있다. 바로 미스터 B에게 그의 망상이 보이듯이 우리에게도 우리의 편향과 오류와 편견이 진실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남들은 다 ‘편견’에 치우치고 우리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처럼 느낀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순진한 사실주의’라고 부른다.”


난 불가해를 불안해하는 사람으로서 매사에 납득이 될만한 이유를 찾아보는 건 굳어져버린 성격같은거라, 어떤 식으로든 그래서 그랬던 거군, 사건의 원인을 찾아내고 내 방식대로 구축해놓은 매끄러운 편견 속에서 살아가기를 적극적으로 택하며 지내왔다. (한마디로 음모론에 취약한 의미종자라는 소리다.) 그게 맘이 편했다.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그래 그래서 그런걸 거야, 끄덕끄덕. 이 방식이 내 뇌피셜 이라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알았다. 


최근에는 그게 mbti였는데, 어떻게 인간이 16가지가 있어? 그러면서도 성격유형 다 외워서 그래 쟤는 F니까 그랬을 지도 몰라...어쩌겠어, 이해하자..ㅋㅋㅋㅋ 😔 이렇게 살아왔다. 가끔은 이런 내가 피곤하고 소심한 것 같아 쪽팔렸다. 그치만 이해가 안되면 생각이 자꾸 생각나는걸?? 😩 


그래도 요즘엔 내가 지금 과몰입모드구나, 가까스로 자각에 닿아 그럭저럭 빠져나온다. 너무 진지해질 때 마다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나여, 이 편견왕, 편협왕, 편파왕이여. 너 지금 그거 다 니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거고 너무 에너지쓰고 있고 여기서 더 진지하면 징그러워지니까 머리 굴리기 때려쳐!!!! 스탑스탑. 현타가 오면 아, 의미가 없어지고 의미가 없어지면 순간적으로 아주~ 홀가분해진다. 과몰입 해제 버튼이랄까. 암튼 요 버튼을 작동법을 발견하고서 매사에 시큰둥해지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고 있을 때 쯤.


서울 온 좀비물 마니아 엄마가 이번엔 다른 것을 보아야 한다며 평소보다는 살짝 톤이 높아져 리모콘의 권리를 주장하셨다. “아니, 동네 사람들이 목욕탕에서 하도 재밌다고 난리난리가 났길래. 아빠있을 때 같이 보자고 틀었거든? 세상에 둘이서 시즌1을 밤을 새고 봤다야”는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이야기다.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였으므로 나는 좀 피곤했다. 엄마가 틀어놓은 그 드라마는 등장인물 모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대동단결하여 시종일관 악을 질렀다. 아니, 무슨 드라마가 악을 지르지 않으면 대화를 못해? (나 자신은 시끄럽지만 시끄러운 환경은 싫어하는 편) 투덜대며 엄마 옆에 앉았다. 그리고………… 뭐여. 왜. 죽어? 죽여? 죽…네? 엉? 뭐…여…  뭐? 쟤랑 쟤랑 부부였는 데 쟤랑 쟤랑 또 약혼을 했다고?? 그럼 애들은…?? 어..? 헐, 아빠를 죽였어?? 공중파가 저런다고..? 그대로... 시간 순삭. 이게 한 화에서 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아니, 대체 어쩌려고 작가는?? 



네. 단 1명의 인물에게도 이입이 안되는 오로지 욕망 밖에 없는 인간들의 난투와 치정이 폭발하는 펜트하우스에 저는 5분만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엄마… 왜… 밤을 새고 봤는 지 알 것 같아…” 


“(39) 뇌 스캔을 해보면 호기심이 생길 때 뇌의 보상 체계가 약간 자극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하자면 우리가 이야기에서 답을 궁금해하거나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마약이나 섹스나 초콜릿을 갈망하는 현상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분 좋게 불쾌한 상태, 그러니까 확실히 답을 알게 될 거라는 기분 좋은 약속이 되어 있고, 감질나게 불편한 가운데 초조하게 안절부절못하는 상태는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유혹과 같다.”

그리고 피같은 주말 동안 차마 시즌1을 다 찾아 볼 수는 없었으므로, 유튜브를 통해 몰아보기로 펜트하우스를 습득하였고… 뭐여!(흥분하면 사투리) 뭔디 이러케 재밌는거여!!!!!!!!😱 작가님의 필력에 감탄하며!!! 저게 말이돼?!!!!! 그치만 말이 안돼서 더 재밌잖아!!이러면서 언제나처럼 엄마의 추천작을 한껏 즐겨버렸던 것이지요. 


내 황금같은 주말에 왜 주단테 따위를 검색하고 있는 거냐?라고 물으면서도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던 것입니다. 아니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전 몰두할 것이 필요했나봅니다. 워쩔껏이여. 이 몸 안에 흐르는 한국인의 피. 온갖 것에 스토리를 입혀줘야 속 시원한 나는야 인생극장으로 삶을 익혀온 의지의 한국인. 그렇다! 막장에 과몰입해서 먹고사니즘의 시름을 잊는 내가 바로 과로사회로 유명한 K-노동자다!!!!!!!! 막장이여 오라!! 몰아쳐라!!!!! ㅎ ㅏ ㅎ ㅏ ㅎ ㅏ


예, 사건의 전말은 그러합니다. 물론 회사를 그만두고 세상의 모든 시름이 잊혀지자 펜트하우스라는 드라마의 존재는 이내 잊혀졌고… 시즌2가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지만요... 하지만 그 주말의 나는 천서진과 주단테의 몰락을 비는 데, 한사코, 꾸준히, 열정적으로 진심이었다…? 


“(197) 윌리엄 플레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악당을 미워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미워해봐야 의미가 없다. 우리는 악당의 정체가 그의 세계에서 드러나기를 바란다.”

(215) 모든 주인공은 반영웅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 등장할 때는 대부분 결함이 있고 불완전한 인물이지만 변화를 견디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영웅이 된다. 주인공을 지지하는 이유를 한 가지만 꼽기는 어렵다. 공감을 얻는 비밀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핵심은 신경망에 있다. 이야기는 뇌의 여러 진화 체계에 작용하는데, 유능한 작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이런 신경망을 모두 발화시킨다. 여기에서는 도덕적 격분으로 떨리는 음을 조금 내고, 저기에서는 지위 게임의 팡파르를 울리고, 부족을 식별하는 방울소리와 우르릉거리며 위협적인 적대자의 소리를 내고, 위트의 나팔을 불고, 성적 매력을 드러내는 뱃고동 소리를 울리고, 부당한 골칫거리를 크레센도로 올리고, 씨실과 날실의 허밍을 하면서 새롭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극적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진다. 한마디로 독자의 뇌를 사로잡고 조작할 수 있는 악기를 총동원하는 것이다.”


킹순옥(펜트하우스 작가님 별칭이래요)언니. 그대 진정 유능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여!!


사실 저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해 읽기 시작했는 데 말이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왜 읽었냐면… 펜트하우스에 몰입해 주말을 다 써버린 저자신을 해명해보고자 읽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게 재밌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또 습관적으로 이유 찾고 있음ㅋㅋㅋㅋㅋ) 그리고 알게 되었지요! 책에 따르면 우리 킹순옥 갓순옥 작가님이 ‘도덕적 분노’와 ‘지위 게임’을 이용하는데 천재라는 사실을!!!! 아아 순옥 작가님, 그대 훌륭한 뇌 조련자.


“(185) 가장 성공적인 이야기에서는 초반에 도덕적 분노를 자극한다.”

“(190) 참가자들에게 다른 사람의 부와 인기와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능력에 관해 읽게 하고 뇌를 스캔하자 통증을 지각하는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누군가가 불행에 처한 이야기를 읽히자 뇌의 보상중추가 활성화됐다.”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누군가의 불행으로 보상중추를 활성화 시켜버리는 인간 뇌의 생겨먹음…!! 

어쩔꺼냐고!! ㅋㅋㅋㅋ 재밌는 예시는 또 있습니다.

 

“(119) 신경과학자 새러 김블 교수는 뇌 스캐너로 참가자들의 뇌를 관찰하면서 그들의 확고한 정치 신념이 틀렸다고 입증해주는 증거를 접할 때 뇌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아보았다.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숲속을 거닐다 곰을 만날 때 일어날 법한 반응과 상당히 유사했다.”

이런거 너무 재밌지 않나요? 정치적 신념이 부딪힐 때 뇌는 곰을 만난 것 같다니ㅋㅋㅋㅋ… 어쩐지 싸우고 싶더라.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의 뇌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곰을 만나는 가…. 정치적 신념을 갖는 일이란 얼마나 위험천만하고 고난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지우길 얼마나 다행인가. 위험했어. 정말인지, 현대인은 너무도 위험한 삶을 살아가고 있어...😫 


“(128) 심리적으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자신을 영웅으로 생각한다. 도덕적 우월성은 사실 ‘유난히 강력하고 보편적인 긍정적 착각의 한 형태’다. ‘긍정적이고 도덕적인 자아상’을 보존하면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혜택이 주어질 뿐 아니라 신체 건강도 좋아지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살인자와 가정폭력범조차 스스로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믿고 피해자들이 먼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도발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도 우리는 건강하게 살자.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자. 저 악마같은 주단테도 사는 데ㅋㅋㅋ 하면서 펜트하우스를 보자. 나 자신을 영웅으로 생각하자.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자. 그게 좋은 것 같아. 뇌한테도 편한 것 같고.


“(147) 인간 조건에 관한 무섭고도 흥미로운 진실은 누구도 극적 질문의 답을 모른다는 점이다. 질문 자체가 우리 자신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왜 그렇게 느끼는지 알 수 없다. 왜 우울한지 가설을 세우면서, 도덕적 신념을 정당화하면서, 음악이 감동을 주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만든다. 우리의 자아 감각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완전히 통제한다고 믿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우리가 누구인지 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그래서 인생이 그렇게 골치 아픈 싸움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수수께끼 같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스스로를 실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뱉으면서 스스로도 충격받는다. 스스로를 질책하면서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라고 자문하고 체념하면서 언젠가는 나도 깨달을 날이 오기는 올지 의아해한다.이야기에서 극적 질문이 그렇게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는 주인공이 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그리고 주인공은 답을 모르는 법이지. ㅎㅎㅎㅎㅎ


무튼 이 책 재미졌다. 사실 한동안 내 관심은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재밌게 읽을 수 있을까?였고 늘 그렇듯 소설을 읽는 게 아니라 소설 읽는 법(ㅋㅋㅋ)을 찾아 읽게 되었는 데, 소설가들이 쓴 책과 평론가들이 쓴 책들 보다는 훨씬 내 타입이었다. 


아, 나 이런 책 좋아하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사실들에 재밌는 예시 왕창 넣어서 이유 만들어 주는 책들. 특히 내 뇌가 그런 거였어? 내 호르몬이 그런거였어? 아 도파민 때문이었어?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 근거 만들어 줘버리면… 좀 나 자신한테 상냥해 질 수 있잖아? 좋다, 좋다!


개인적으로는 뇌과학ㆍ심리학 실험에 관한 예시들이 즐거웠지만, 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독자들이라면 책에 나오는 소설들의 플롯 분석이 재밌을 것 같고, 영감을 찾는 창작자들이 읽으면 좋을 꽤 쏠쏠한 팁들도 담겨있다. 다만, 백자평에도 썼지만 이 책은 자꾸 침팬지를 가져온다. (윌스토씨 당신, 그게 바로 쉽게 생각하는 거라고.) 대부분의 진화심리학이 그렇듯 자연스럽게 의뭉스러운 성차별 요소는 들어있다. 그런 부분을 너그러이 용서할 수는 없어서 별을 빼긴 했지만- 3월에 읽은 비문학 중 제일 재밌어서 추천하고 싶었음. 라고 3월에 쓰다 말았던 글을… 4월 10일에 올립니다. 전 제 게으름에 관대하니까요 ㅋㅋㅋㅋ


그런데 펜트하우스2는 어떻게 끝났대요? ㅋㅋ 검색좀 해봐야겠다~! 뿅!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두려움에 대한 치료법이 바로 이야기다. 뇌는 희망에 찬 목표로 삶을 가득 채우고 그 목표를 성취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삶의 냉혹한 진실에 직면하지 않게 해준다. 이야기는 우리의 존재에 의미가 있다는 착각을 일으켜서 삶의 혹독한 진실을 외면하게도 해준다.- P13

결국 뇌의 궁극적인 사명은 상대를 통제하는 일이다. 뇌는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과 그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지각하고 그 사람들을 통제해야 한다. 세계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P31

영화 〈블레이드러너〉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 그렇다. 복제인간 로이 배티가 죽기 직전에 릭 데커드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 인간들이 믿지 못할 것들을 봤어. 오리온자리의 어깨 위에서 포화를 내뿜는 공격함들, 탄호이저 게이트 근처의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C-광선을 봤지."
C-광선! 탄호이저 게이트! 이름만 언급해도 그 경이로움이 실재한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낯선 것들은 무서운 공포소설의 괴물들처럼 우리의 뇌가 끊임없이 모형을 생성해서 만들어진 상상의 결과일 때 작가의 상상보다 더 실제처럼 느껴진다.- P54

좋은 이야기는 인간 조건을 탐구한다. 극의 표면에서 벌어지는 사건보다 인물에 더 집중한다. 낯선 마음으로 떠나게 되는 흥미진진한 여행이다.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우리가 그 인물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극적인 싸움을 제공하는 이유는 그가 성공하고 매력적인 미소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가진 결함 때문이다.- P84

우리만 깨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만 갈등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만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다. 우리만 음침한 생각과 씁쓸한 회한과 때때로 증오에 찬 자아에 사로잡히는 것도 아니며 우리만 두려운 것 또한 아니다. 이야기의 마법은 현실의 사랑이 범접하지 못할 방식으로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준다. 이야기는 어두운 두개골 속에서 우리가 그렇게 외롭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선물한다.- P266

당신은 이미 이 질문의 답을 알 수도 있다. 모른다면 이제는 알아야 할 때다. 근원적인 상처의 계기가 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인물이 갖게 된 신념은 이제껏 어떤 식으로든 그를 보호를 해왔을 것이다.-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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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4-10 13: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너무...졸렸어요 ㅋㅋㅋ

공쟝쟝 2021-04-10 17:04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알아요 ㅋㅋㅋ 리뷰봤어 ㅋㅋㅋ

새파랑 2021-04-10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펜트하우스가 재미있는 원인을 책에서 찾아내시다니^^
‘도덕적 분노‘와 ‘지위 게임‘이 드라마의 인기 이유라는데 납득이 갑니다. 전 이 드라마를 본적은 없지만ㅎㅎ 그리고 세상에는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게 더 많은거 같아요. 공쟝쟝님 말대로 세상은 원래 똥같은 것~! ㅋ

공쟝쟝 2021-04-10 17:05   좋아요 2 | URL
유명한 알라디너 한분이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은 오늘의 똥(글)을 싸자...ㅋㅋㅋ

미미 2021-04-10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어봐야겠네요!! 펜트하우스 후반 부 띄엄띄엄 봤는데 법정씬에서 너무 웃었어요. 엄기준의 악역은 충격 그 자체ㅋㅋ

공쟝쟝 2021-04-10 17:08   좋아요 2 | URL
반님은 졸렸대요 😔 엄기준이야 말로 악역처럼 생기지 않았나요? ㅋㅋㅋ 나 착한역은 본적 없는 것 같지 왜?

syo 2021-04-10 17: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과가 게으른 거였어?? 이래놓고 이 글 속에서 쟝님 대체 몇 개의 인과를 발견하고 안심하시는 겁니까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4-10 17:46   좋아요 0 | URL
게으른 거였어? 어쩐지! 😒 그럼 어쩔 수 없네... 게으르자! ㅋㅋㅋ 를 썼사옵나이다:

2021-04-12 0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3 0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3 0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 SNS부터 에세이까지 재미있고 공감 가는 글쓰기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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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평을 남길까 했는 데, 저자에 대한 평을 남기고 싶어졌다. 종종 팟캐스트로 만나는 이다혜 작가에 대한 인상은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확신을 얻었다. 그는 ‘매우’ 똑똑한 데다 트랜디하기까지 하다!
업데이트 안되는 아재지식인들 글 읽다가 문화적 감수성이 풍부한 소위 X세대 언니들의 글을 읽으면 가끔 눈이 화~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이 그랬다.

숱한 ‘글쓰기 팁’ 책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요즘, 이 분야의 적지 않은 책들을 읽어왔다. 솔직히 이만큼 섬세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글쓰기 관련 책은 못봤다.
“(213)소확행 시대의 글쓰기”에 최적화된 듯도 싶은 책. 대단한 작품을 준비중이신 분들 보다는 sns에 리뷰를 잘써보고 싶은 평범한 소시민(?)들께 권한다. 언제부턴가 한 사회의 문화적 총량이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읽고 쓸 때 늘어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또 과감히 써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114)
우리 모두는 어떤 면에서 기인이고, 하나뿐인 방식으로 망가진 존재이고, 그 상태로 살아가기 위해 소통하는 법을 어렵게 배 워가는 거라고, 그러기 위해서 제대로 듣는 법을 익혀야 말하고 쓸 수 있다고.

(127)
간접경험과 직접경험, 그리고 그 모두에 존재하는 나 자신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기. 글쓰기. 나 자신이 되겠다는, 가장 강력한 행동.

(157)
어떤 일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상처에 대해 쓸 수 있다는 말은 상처를 잊었다는 뜻이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사는 법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당신이 도저히 글로 옮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언제가 되면 글로 옮길 수 있을까. 서두르지 말자. 이것은 이기고 지는 배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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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4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뒷북소녀 2019-01-14 1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저 예전부터 장바구니에 담겨 있던 책인데 바로 결제합니다.

공쟝쟝 2019-01-14 21:54   좋아요 0 | URL
으앗🤗 책읽고 난 뒤의 뒷북소녀님의 멋진리뷰 기대할게요!!
 
독서의 기쁨 - 책 읽고 싶어지는 책
김겨울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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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선선해지고 목 뼈가 제 궤도(?)를 찾으면서 요즘 책읽기에 다시 속도가 붙었다. 어느 정도냐면, 분량으로 쳤을 때- 하루에 너끈히 한권은 해치우는 듯?!? (여러 책을 한꺼번에 읽는 편이므로 정확하지는 않다..)

책을 읽다보면 책을 엄청나게 더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아, 이거 읽는데 저거 읽고 싶다. 그거도 읽어야 하는 데..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 처럼 읽고 있으면서 읽고 싶은!? 들뜬 마음이랄까.
이럴 때는 요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서 잠시 배를 부르게 만든다. 마치 예전 부모님 세대 배고픈 아이들이 물배를 채우는 것 처럼. 헛배라고 해야하나. 진짜로 허기를 채운 것은 아니지만, 빵빵 배가 불러져서 순간적으로나마 만족스러운 상태가 된다.

북튜버로 유명한 겨울서점의 ‘독서’에 관한 책이다. 가독성이 매우 좋아서 좀 놀랐다. 도서관에서 절반쯤 보다가 집에와서 침대에 누워서 안쉬고 한번에 완독. 이는 구어체에 가까운 문장의 영향도 있지만 김겨울씨가 의도한 대로 책의 무게 자체가 가벼웠기에 이뤄낼 수 있는 쾌거!!!라고 생각한다.

“(p.38) 뭐니 뭐니 해도 책의 무게가 가장 원망스러울 때는 누워서 책을 읽을 때다. (...) 누워서 책을 읽으려고 들면 정말 온갖 포즈를 다 시도하게 된다. 오른쪽으로 누워서 왼쪽 페이지를 읽다가, 왼쪽으로 몸을 돌려 오른쪽 페이지를 읽다가, 이도저도 불편해서 엎드려서 책을 읽다가, 팔과 허리가 아파서 누워서 책을 읽다가... 이걸 반복하고 있지면 아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것이 무슨 시지프스의 고난이란 말인가 싶어지는 데, 책을 읽느라고 그 생각을 어느 새 잊게 된다.”

초 핵공감. 심지어 누/워/서 읽으려고 전자책 산 것까지 나의 마음 당신의 마음 ❤️

북튜버라는 작가의 직업답게 책의 물성에 민감한 모습이 좋더라. 난 곳곳에서 비슷한 코드를 발견하며 흐뭇했는 데 - 이를테면, 표지의 디자인을 넘어 내지의 줄간격과 자간. 각주 등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 책의 무게와 판형, 심지어 사용하는 종이에 따라 독서의 쾌감이 달라짐을 언급한달지, 그런 부분들. (책은 역시 미색모조지ㅋㅋ 나만 그런게 아니었어!)

게다가 그녀의 책사랑은 단순히 모양에서 끝나지 않았는 데, 책의 냄새를 언급하며 에틸벤젠 어쩌고하는 화학분해 작용과정까지 언급할 때는 ‘역시 아무나 북튜버가 되는 건 아니었나보군’ 리스펙 하기로 하였다.

“(p.287) 그러니까 이건, 몸부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활자 시대의 종언을 듣고 싶지 않아 저 멀리 떠나는 영상 세대에게 보내는 구조요청인지도 모른다. 아직 활자는 살아있다고, 그러니 데리고 가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비관적으로 보기에 나는 활자를 지나치게 사랑한다. 사랑하는 대상의 미래가 죽음이라 믿는 이는 없다. 그래서 미래가 책에게 그리 잔인하지 만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사람들은 계속 책을 읽을 것이고,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처럼 머리는 식히고 배는 불리면서 빠르게 완독했음!
북튜버로서, 책덕후로서 이제는 저자로서 김겨울씨가 품고 있는 이상에 나도 동감하게 되었다. 그녀가 승승장구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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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게 하는 글과 상처주는 글은 분명 다르다. 전자는 생각하게 하고, 후자는 생각을 더 하지 못하게 한다.

성찰하는 글이 좋다. 모든 글이 삶에 작용 할필요는 없다. 그러나 너무 많은 글이 삶을 배반한다. 투머치인포메이션, 너무 많은 짧은 글들이 삶들에 생채기를 낸다. 오늘도 쉽게 sns를 들여다 보면서, 삶이 녹진하게 배인 깊은 글들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다. 글을 수월하게 읽지 말아야지. 인스턴트 처럼 쉽게 쓰지도 말아야지. 생각을 분명하게 해야지. 감정에 편한대로 생각들을 삼키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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