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러운 동기가 있는 편이 아무 이유도 없을 때 보다 견디기 쉬운 것도 아닌데
사랑은 왜이렇게 어려운가
이분법 탈피와 빨대
터프 이너프 - 진실을 직시하는 강인함에 관하여
데보라 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책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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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자마자 왜 한나 아렌트에 빠질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각자의 치임 포인트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하이데거 쓰레기!를 도합 열 번 씩은 외치고… 벤야민 이야기를 하다 갑작스럽게 도나 해러웨이로 대화의 주제가 이어지면서 우리 앞에 구워지고 있는 것이 삼겹살이라는 사실에 잠시 아이러니를 느끼다가… 또… 에 … 그러니까 도나의 심오함은 너무도 심오해서 <육식의 성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입장과는 핀트와 어긋나는 부분이 있지 않느냐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지 알 것 같은 상태를 내맘 알쥬? 우리 같은 맘이쥬? (…🤷🏻‍♀️) 퉁치고, 후식으로 누룽지를 먹으면서는 평소 내가 느꼈던 소통의 어려움과(…왜 어려움을 느꼈는지 니 글만 봐도 알 것 같다고 생각한 당신 정답!…) 푸코에 대해 신나서 떠들다보니 나만 떠들고 있네?… 점점 더 소통이 어려워졌고…ㅋㅋㅋㅋ 우리들의 대화는 미친듯이 고급스러워져서 급기야는 21세기의 신유물론과 양자물리학으로 마무리 되고 말았던 것이다.


“삶에 물기를 원했지만 이토록 많은 물은 아니었다” 이규리 시 <많은 물>

“삶에 지적인 대화를 원했지만 이토록 심한 지적임은 아니었다” 다락방님 말씀 ㅋㅋㅋ


아… 이 가슴이 다 웅장해지는 심하게 지적인 나 자신의 우정을 조금 자랑하면서, 

*한나 아렌트와 메리 매카시의 우정*에 대해 호들갑 떨고 싶어서 이 페이퍼를 써보려 한다. 잘쓸 수 있을까?


일찍이 아렌트 대모님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발표하시고 “너는 유대인인데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가 있냐, 이 심장도 없는 무정한 녀자야!”라는 (남자) 평론가들의 말에 아래와 같은 띵언으로 일침을 놓으셨다. 


“(130)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사랑’에는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저는 한 번도 어떤 민족이나 집단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독일인도 프랑스인도 미국인도 노동계급도, 아니 이런 종류의 그 어떤 집단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오로지’ 친구들을 사랑하며 내가 알고 믿는 유일한 종류의 사랑은 개인에 대한 사랑*입니다.”


저는 여기에 밑줄을 그으며 눈물을 훔치며…🥲 와. 아렌트 친구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좀 짱이잖아. 민족이나 인류보다 친구를 사랑한대. 아… 이 우정 진짜 짱인데? 하지만 이제 와서 아렌트님과 친구가 되기엔 임은 이미 가신 분이시니… 우리 천국에선 꼭 친구해요 아쉬운대로 현생에서는 한나 아렌트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아렌트 성님을 좀 베껴서 사랑해보는 것으로. (하지만 어려울 것 같다. 왜냐면 아렌트 해도 심한 독고다이…)


아렌트 성림이 페미니스트여서 “여성에겐 조국이 없습니다”라는 뜻으로 이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철저한 단독자로서 사유를 했으므로 집단으로서의 여성도 사랑하지 않으셨고, 그렇게 자신의 철학대로 살다보니 결론적으로는 어떤 페미보다 페미낭낭한 삶을 살아버리신 분!!이라 할 수 있겠는 데 솔직히 한나 아렌트가 너무 페미 거부하셔서 쫌 서운한 맘이 없던 건 아니었으나, 저는 대국적인 k-페미로서 그런 언니를 사랑합니다. 언니가 이런 저를 싫어하시면 저도 페미 정체성을 버릴 수 있…(을지는 두고보겠습니다. 아무튼 사랑해요. 아렌트 짱!) 


자, 집단에 대한 사랑을 완강히 거부하는 단독자 아렌트의 사유를 읽어보자. 

 

“(131)아렌트에게 무정의 화두는 사람이든 사실이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표상하는 구체성에 헌신하는 문제*다. 민족에 대한 사랑은 범주로서의 개념을 내포하기 때문에 관념에 불과하며, 관념과 의도적인 감정적 관계를 맺는다면 그건 실제 감정일 수가 없다. 모든 구체적 문제가 그러하듯 개인에 대한 사랑은 접촉으로만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특정한 성질에서 나온다. 아렌트는 정서적 감각이 현실을 감정의 관할에 할당한다고 암시하고 있다. *정서적 감각은 청자가 상상하는 감정에 먼저 주목한 후 눈앞의 현실에 이차적으로 주목하게 해 현실이 오히려 가상의 감정에 봉사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정은 독자를 향한 아렌트의 근본적 질타, 즉 현실을 직시하라는 요구의 핵심이다.”

이건 인용하니까 더 어려워진 느낌이다. 하지만 내가 공부하기 위해서 쓰는 거니까 상관없다. 


음… 아리까리 하므로 메리 매카시와 한나 아렌트가 ‘연대’와 ‘소속감’이 아닌 ‘고독’을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으로 선택했던 이유를 조금 더 가져와야겠다. (두 사람의 기이한 우정과 정치적 입장을 *2인 정당*이라 말한 사람들은 그러면서도 둘은 ‘같은 편에 *홀로*’ 있었다고 표현한다ㅋㅋ 끝까지 홀로인 개쎈 단독자 녀성들의 우정 <터프 이너프>를 통해 만나보시줘! 🤨)


“(191) 국가적 소속감은 개인을 대중사회의 고독과 소외로부터 보호해준다. 이데올로기적 연대가 제공하는 미래의 서사와 경험에 대한 일관된 이론은 대체로 황당무계하지만 달콤한 위로를 준다. 그리고 아렌트의 용어대로 *파리아* (pariah 배척당한 사람)로의 연대감이야말로 그중 가장 유혹적이다. 현대사회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강렬한 사교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파리아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는 그런 집단에서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거의 신체적 현상에 가까운 인간관계의 온기를 창출한다. 물론 박해받는 사람들의 온기가 훌륭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완전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면 그런 온기는 다른 방식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불꽃을 피우고 순수한 선에 도달할 수 있다. 활력의 원천이 되어주거나 살아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결국 삶은, 세속적인 의미에서, 모욕당하고 상처받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온전한 형태에 다다른다는 암시를 피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 활력은 말도 안 되게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바로 무세계성*이다.”


아렌트는 나치하의 유대인이라는 파리아였고, 수용소 생활도 경험했다. 그의 삶의 궤적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저 문장을 읽는다면 이이가 얼마나 독한 인간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거다. 그르니까 내가 치이는 거다. 졸라 너무 쎄니까 멋짐 폭발 오져버리는 거다. 어이 당신, 그러쿤~ 하고 음미하듯 읽지마라 ㅜㅜ 그냥 나온 사유가 아니다. 뼈를 우려낸!!! 고통에서 건져 올린!! 사유란 말이다. 무릎 꿇어. (쒹쒹)


아렌트가 말하는 ‘무세계성’을 슬그머니 짐작해본다. 같은 아픔을 겪었기에 더욱 끔찍하게 아꼈던 지금은 이별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과 분리되는 고통을 겪기 싫어서 삶의 어떤 부분을 직면하지 않고 유보하고 또 유보했다. 그만큼 내 삶도 유보되고 또 유보되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나의 자아가 가난했으므로 그리 비싸진 않았지만 분명 어떤 대가를 치렀던 것 같다. 이건 이 시점의 해석인 거고, 무슨 대가를 치르던 상관없이 그 온기와 활력감에 머무르고 싶기도 했었어서. 


그러니까, 아렌트의 말을 내 언어로 조금 더 풀자면 소속감을 가진 집단—그것이 이념이든 공통의 상처든, 특히 파리아의 경험이 있는 집단이라면 더욱더, 유난한 가족이나 지독한 연애도 포함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안에서의 끈끈하고 긍.휼.한 연대감이란 현실직시(전체 세계에 대한 인식)를 못하게 하는 마취제로서 기능한다는 거다. (이게 정치가 되면 좀 심각해지는 데… 애석하게도 현대의 인류는 항상 목도하고 있단말이쥐.) 


자신과 닮은 사람들 속에서만 있고 그 안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세계에 대한 인지를 교정하고 수정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파리아에게 파리아의 집단이 제공하는 친밀한 사교에서 한발 물러서서 거리를 유지하라는 충고를 할 때, 아렌트는 자족이 아니라 복수성을 권유한다. 즉, 인지 주체로서 자아는 친밀하지 않은 관계에 있는, 다른 상황에 놓여 있는 타자와 접촉해야 한다. 그렇다면 복수성과 공통감의 정치학은 *사실의 미학*을 요구하며 이는 *재현의 실천인 동시에 인지의 수양*이다.”


파리아/복수성/공통감 과 같은 개념들에 대해서는 아렌트를 읽으면서 다시 공부하기 위해 밀쳐둔다. 다만 아렌트가 전체주의 이후의 세상 —“전체주의적 해결책들은 전체주의 정권의 몰락 이후에도 언제든 다시 나타날 강한 유혹물의 형태로 살아남을 것이다”—을 살아가기 위해 개인들에게 요구하는 태도가 *고통스러운 현실직시/인지의 ‘수양’*에 해당하는 것이며, 그녀야 말로 사유와 삶을 통해 부단하게 이를 수양해 온 사람이라는 것 만큼은 매우 알겠다.


그러므로 자기가 아는 유일한 종류의 사랑이 있다면 그건 친구들에 대한 개인적 사랑💕이라는 이 불세출의 20세기 정치 사상가의 말을 우리는 흘려들어서는 안된다. 하여 이 시점(!)에서 우리는 그런 사상가의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본 후, 이 사상가가 말과 삶이 일치하는 찐 철학자였구나라고 쾅쾅 도장을 찍고, 아렌트 진짜 너무 좋아 개 멋져 사랑에 빠졌어!라는 호들갑을 떨고 있는 필자(ㅋㅋㅋ 이거 쓰지 말랬는뎈ㅋㅋㅋㅋ)랑 서재 이웃인 것을 감사한줄로 아세요. (응????ㅋㅋㅋㅋㅋ) 


돌아와서 ㅋㅋ

아렌트의 편집자이며 짱친으로서 지적인 우정을 즐겼고 그 자신도 미국의 저명한 비평가, 소설가였던 *메리 매카시*를 살펴보자.


“(204) 어떤 면에서 사실을 똑바로 직시하라고 도발하면서 매카시가 독려하는 “용기”는 역설적이다. 직시하는 자는 사실에 항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에 대한 항복은 수동성과 등치될 수 없다. *오히려 항복은 열린 마음으로 변화를 대하는 고통스러운 행위다.* 매카시는 지식인과 자유주의 기자들에게 사실을 막는 방어기제를 버리라고 요구한다. 지식인은 총기와 재기를 과시하는 대신 자신의 사유에 당혹스러운 의문과 불완전성이 틈입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확실성의 수사 대신 가설과 추정의 수사를 써야 한다. 자유주의 지식인은 안정된 위상에 안주하기보다는 잠재적으로 전복적인 사실이 논쟁에 들어오는 걸 허락함으로써 남들에게 불충해 보일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용기의 필요성을 토로하는 매카시의 진지한 태도는 그런 제안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방어기제를 버리는 용기! ㅋㅋㅋ 직시하는 자는 사실에 항복해야한다. 여러분 항복합시다. 고통스럽지만 인정합시다. 졌어요. 응? 우린 맨날 지지. 우리라니 그냥 나야 말로 현실에서 맨날 패배하지. 하하하하하하!!! 그래도 직시해야해!!! 무엇을?!! 현실을!! 현실을 직시하란 말이다!!! 자, 고통받아ㅜㅜ 막 후벼파ㅜㅜㅜㅜ 인생에 안도란 없어ㅜㅜㅜㅜ 


여튼 저 문장들 뒤에 매카시님이 쓴 “<자본론>을 한사발 거나하게 들이킨” 지식인 저널리스트 풍자소설(《The Company She Keeps》에 수록된 단편 ‘예일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의 초상’)이 인용되는 데, 살짝만 읽었는 데도 진짜 칼보다 강한 펜으로 팩트 폭행 오졌음 (쪼 아래 밑줄긋기 참조)… 읽고 싶다…😩 누가 좀 번역해주세요…로 새면 안되고, 그러니까 아렌트 머모님의 짱친 메리 매카시 성림 역시 ‘현실 직시’를 요구하는 강인한 ‘인지적 수양’을 하고 계신 분이셨던 것. 그것도 소설로. 미학적으로다가.


아… 여기서 또 정재승 박사님의 띵언을 불러와야겠다. 똑똑한 사람들의 가장 강력한 특징은 똑똑한 사람과 친구가 되는 능력이다…. 진리였구나. 진짜였어. 그렇다면 아, 진짜. 나 똑똑해서 어쩔꺼야ㅜㅜ 소주 마시면서 벤야민 죽는 이야기하는 우리 이제 어뜩하냐고…ㅜㅜ



사실은 아래의 문장들을 인용해 오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글인데…. 뭘 이렇게 많이 써서 또 5천자가 넘었다. 

메리 매카시가 쓴 한나 아렌트에 대한 추도사다. 한나 아렌트의 발목☺️ 이야기를 하던 매카시는 갑자기 


“(234)아렌트가 그녀를 방문하기로 했던 어느 날 친구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매카시는 아침 식사를 대접할 요량으로 작은 안초비 페이스트 튜브를 샀다. 아렌트는 그 안초비 페이스트 튜브를 보고, 그게 뭔지 모르는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카시는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친구를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다가 뭔가 잘못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한나는 남이 자신을 ‘아는’ 걸 원치 않았어요. 이상할 정도로 단호하고, 뭐랄까, 환원적인reductive방식으로 그런 고집을 피웠지요. 그런데 나는 한나를 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안초비 페이스트를 샀던 거예요. 언제나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건 사랑의 증표였죠. 그래서 결국 최후로 내린 분석은, *내가 한나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OP, 42) 추도사를 이처럼 순간적으로 저지른 실수로 마무리하며 매카시는 특유의 자기반성과 자책의 제스처를 취한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이렇게까지 거리두기를 하는ㅋㅋㅋㅋㅋㅋ 25년 지기의 친구 사이였다는 것이지요. (아렌트여… 아놔 이 지독한 사람아….)

선. 선. 선을 지켜야 합니다. 저는 아렌트를 사랑하지만ㅜㅜㅜㅜ 그러므로 선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러타. 그들 사이의 그것은 우정이 아니라 무정이었다.ㅋㅋㅋ


“(236) 무정은 공적 생활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일 뿐 아니라 *우정의 방부제*이기도 하다고. 우정, 정치, 미학에 똑같이 적용되는 엄격한 법칙으로서 무정은 불감이나 둔감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아렌트와 매카시가 수양한 고독은 감각을 탈피하는desensitizing것이 아니라 감각을 재건resensitizing해서 세계의 사실에 더 활짝 열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태다. 그러나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이런 상태는 타자에게, 친구들과 대화 상대들에게 깊이 반응하지 못하게 금한다. 사실의 미학은, 타자와 공존하는 상태에서 실천하되 친밀감은 피해야 한다. 그래야만 연대가 아니라 고독으로만 성취할 수 있는, 괴팍스러우리만큼 엄혹한 재현과 주목의 수양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생활과 개별성에 대한 존중. 각자의 고독에 대한 존중. 그녀들이 추구한 스타일의 우정은 심오하기도 하고 기이한 괴벽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이 연마한 고독이 어떤 감각을 ‘탈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감각을 재건(!)하기 위해서라는 문장에서 난 숨을 조금씩 나눠서 뱉었다. 그렇다. 어떤 감각은 연대가 아닌 고독으로만 성취할 수 있다. 


판막, 친구는 판막이라고 했다. 다른 친구는 오래 전에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시간이라고 이야기 했었고. 나는, 내 표현은, 자꾸 휩쓸리는 마음에 방파제를 단단히 쌓는 것이라고 했었다. 모두 같은 말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알고는 있다. 자기만의 방이 오랫동안 없었던 나는, 나는, 여전히 판막이 얇고, 방문 닫는 것을 자주 깜빡한다. 그래서 아렌트와 매카시가 너무 멋있고 진짜 부러웠던 거다. 그래도 가끔 눈물 찔끔 나도록 감사한 것은, 지금의 내가 어떠한 수양의 결과로 고독 없이 사는 것을 연대 없이 사는 것 만큼 어려워하는 인간으로 바뀌었다는 거고, 이런 나의 친구들은 내 방문이 열렸다고, 내 판막을 더 두껍게 하라고 조곤조곤 알려주는 이미 고독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 그리고. 과음도 못하게 하고, 아렌트도 알고, 양자역학도 안다. 그렇다. 


사실 나만 더!!! 쎄지면 된다. 하지만 당장 쎈건 좀 부족하니까 더 똑똑해지는 걸로 보답하겠음. 

후... 현실을 직시한 우정이란🤷🏻‍♀️ 이토록 지적으로 충만하고, 참으로 어려워.


전체주의적 이상주의의 양극단—무사유로 표상되는 유아독존과 경계가 없이 흘러넘치는 혁명적 공감—사이에 선 현실주의자는 반드시 심리적고뇌의 양태를 관용하고, 심지어 포용해야 한다. 현실주의자는 아무리 극단적이라도 현실의 고통을 수용하고 의혹을 견뎌내고 갈등을 환영하고 예측불가능성에 동의하며 의식적 파리아의 소외와 격리를 떠안고 미래에 대한 통제를 양도해야 한다. *현실주의자가 되는 단 한 가지 길은 어떤 형태로든 지적·심리적 위안을 발견하면 일단 의심을 품는 것*이다. 그리고 아렌트는 우리가 함께 생존하려면 우리가 모두 이를 실천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렌트는 인간 존재의 끔찍한 면면들에 대한 환상을 증오했고, *그녀 자신과 세계를 "함께 건설하는 동지들"이 기꺼이 인간 존재가 가하는 상처를 받아들이길 원했다. 수난이 아렌트의 사유 개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어마하게 크다. 아렌트는 인간은 고통을 느낄 때 비로소 자기가 세계를 제대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믿었다.*
☺️ - P178

냉전 시대의 진보적 사회운동들은 하나같이 내밀하리만큼 친밀한 유대감과 집단동질감을 옹호했고, 이 기간에 걸쳐 아렌트와 매카시의 평판 역시 형성되었다. 따라서 실천은 물론이고 이론적으로도 유대감과 집단동질성을 거부한 두 여성은 그들의 지지를 당연히 예상했던 집단들로부터 파리아로 낙인찍혔다. 20세기 후반의 사회운동들이 공감능력의 치유력을 연대성의 접착제이자 진보 정치학의 연료로 권장할 때, 아렌트와 매카시는 소스라쳐 움츠러들었다. 사회 정의라는 목표가 아니라 그리로 가는 길이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공감능력이 없는 윤리학을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기에, 아렌트와 매카시는 전제가 다를 뿐 도덕적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기보다는 단순히 심리적으로 냉정한 인간들로 비쳐왔다.
☺️ 2인 정당 ㅋㅋ - P184

이 단편의 처음부터 끝까지 짐은 자신의 감정적 고통을 꼼꼼히 계산하는데, 바로 이 때문에 신념에 투신하지도 못하고 사실을 제대로 평가하지도 못한다. 하찮은 자신의 고통을 늘 수난으로 착각하면서 짐은 원칙을 고수하는 데 실패한다. "평균적인 지식인"의 놀랍도록 생생한 초상으로서, 짐에게 현실의 척도는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자기 경험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잘 봐줘야 입증이 불가한 것으로 생각하고, 심지어 타인의 망상인 것으로 치부하기도 일쑤다. 그 무엇도 짐을 관통하고 침투할 수 없으므로 짐은 결코 흔들리거나 변화하지 않는다. 짐의 변화불가능성을 통해, 매카시는 터프함의 자기기만적 양태를 또한 풍자한다. 짐은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자기가 사실에 직면하고 신념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믿지만, 고작해야 미미한 불편을 진정한 수난으로 착각할 뿐이다.
☺️ 메리 매카시 이 소설 너무 궁금함ㅋㅋ 하찮은 좌파 지식인의 짐의 너무도 하찮은 수난ㅋㅋ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는 신념ㅋ풍자 꿀잼각ㅋㅋ

아버스는 인간 작인의 실패를 양식화하여 이를 트라우마도, 특별히 의미 있는 것도 아닌, 평범하면서도 가시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런 식으로, 실패는 자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자신의 의도를 이루어내지 못한다.* 자기실현self-realization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유일무이하므로 실패가 특별한 것으로 남는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아버스의 작품은 작인과 그 한계에 관한 이야기다.
☺️ 작인, 행위자(Agent)와 행위 사이의 인과 관계. 인과적 힘. ‘작인‘(agency) 다른 번역은 없나? 어렵네... - P328

그러나 결국 디디온은 자기연민을 피하는 이상은 불가능하지만, 금욕주의는 우리를 위로하는 자기망상의 일환이라는 결론으로 타협한다. "우리는 이상화된 야생의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복잡성으로 인해 실패를 거듭하는 불완전한 필멸의 인간이고, 필멸의 운명을 밀어내면서도 항상 의식하고 있다. 이 필멸은 우리 안에 깊이 새겨져 있어 상실을 슬퍼할 때 우리는 또한, 좋든 나쁘든, 우리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다. 과거의 우리 자신 말이다. 이제는 없는 우리 자신 말이다. 다시는 될 수 없는 우리 자신 말이다."
☺️ 자기연민/금욕주의. 조앤 디디온 너무 특이해서 킵 해놓음. - P403

어떤 남성 지식인에 비교해도 ‘터프함’에서 뒤지지 않았던 이들은, *온정과 연민이란 수난자가 아니라 불행한 수난자들의 시련에 공감하는 자신의 도덕성에 심취하는 허영심에 불과하다*고 믿었기에, 무력한 감상주의를 거부하고 환상 없는 현실 직시에 근거한 유효한 정치적 비전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따라서 이들의 "차가움" 나아가 "비정함"은 현실을 대하는 감정의 온도라기보다는 잘 계산된 "지적 스타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진짜로 바뀌길 원한다면 다른 인간이 되어야 한다.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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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2-06-07 0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캬!!!!!!! 이웃인 것에 감사합니다!!!!!! ❤️❤️❤️❤️❤️❤️❤️
공쟝쟝님 페이퍼로 아렌트 엿보기 늠 재밌고 좋아요~~~~~^^

공쟝쟝 2022-06-07 02:21   좋아요 2 | URL
확실히 쓰면서 공부가 되긴 하거덩요 ㅋㅋㅋ 🫡 열공하겠습니다! 원래 후다닥 쓰고 난티님한테 댓글 달려고 했는데 이제 자야게쒀요 ㅠㅠㅠ

종이달 2022-06-07 0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공쟝쟝 2022-06-07 10:1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다락방 2022-06-07 09: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한나 아렌트 그 세권짜리 셋트.. 품절인데 중고가 막 9만원 넘네요. -.-

공쟝쟝 2022-06-07 10:09   좋아요 2 | URL
전 안도하고 있어요 ㅋㅋㅋㅋㅋ 그거 있었으면 텅장됨 ㅋㅋㅋㅋㅋㅋ 아 ㅠㅠ 혁명론 읽고 싶어요. 다 뿌수고 싶다 ㅠㅠㅠ 아렌트 신 접선해서 한국 정치 개박살 내버리고 싶다 ㅋㅋㅋㅋ

독서괭 2022-06-07 12:32   좋아요 1 | URL
한길사에서 나온 거.. 그거 저 가지고 있지롱요.. 안 읽었지만..

공쟝쟝 2022-06-07 12:3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괭님 ㅋㅋㅋㅋ 한달에 두권 사는 분이 된데엔 이유가 있었군욬ㅋㅋㅋㅋㅋㅋ 이제라도 ㅋㅋㅋ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야..,,,,

독서괭 2022-06-07 12:50   좋아요 1 | URL
네 과거의 죄를 청산하기 위해 이러고 있습니다..😭

독서괭 2022-06-07 1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 읽고 저 두 친구분은 분명 v님과 공쟝쟝님일 것이다, 했는데 맞군요 ㅋㅋ 재밌게 읽다가 -단독자 아렌트의 사유를 들어보자. 인용문... 에 잠깐 단 커피를 준비하러 다녀올게요.. 어렵다..

독서괭 2022-06-07 12:22   좋아요 1 | URL
일단 아렌트의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바꿔 말해주는 공쟝쟝님을 서재친구로 두게 되어 기쁘고 감사합니다 ㅎㅎㅎ
근데 이 사상, ‘정‘을 강조하고 니편 내편 감정적인 문제로 엄청 옭아매는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정말 어렵겠는걸요. 저부터도 어려울 것 같고. 아렌트라고 쉽지는 않았을텐데, 그래서 더 대단해 보입니다. 그리고 삼겹살에 소주 마시면서 아렌트에서 시작해 양자역학으로 끝맺는 대화를 하는 여러분도 멋있어요♥

공쟝쟝 2022-06-07 13:08   좋아요 2 | URL
그렇죠… 너무 어렵겠죠… ㅠㅠ 그런데 그래서 너무 문제죠… 다들 지들이 파리아인 줄 아는 자기연민에 빠져버린 집단들이 정치를 한다면서 끌어다 쓰는 정념과 감정과 확증편향의 정치에 (이건 좌우 막론하고 페미니즘도 마찬가집니다…) 휘둘리는 먹고사느라 바빠 생각하는 게 버거운(근데 버거운거 맞아요? ㅋㅋㅋ 먹고는 살아서 생각 안하는거야?)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 대환장파티…
열려있어야 합니다. 자기 고통에 매몰되어 현실을 부정하면 안됩니다. 소중한 준거 집단을 옹호하느라 눈과 귀를 막아선 안됩니다. 알고리즘으로 취향마저 변하기 힘들어진 세상에서 아렌트의 가르침이 점점 더 중요해질거 같아요. 괭님아, 하지만 우리에겐 근사한 우정이 있습니다! 읽고 또 만납시다! ㅋㅋ (그 한길사 그걸 꺼내서 읽으세요!!)

단발머리 2022-06-07 1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삶에 지적인 대화를 원했지만 이토록 심한 지적임은 아니었다” 다락방님 말씀

˝아렌트 페이퍼를 원했지만 이토록 심오한 페이퍼는 아니었다˝ 단발머리 생각...

독서괭 2022-06-07 12:24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한분은 단발머리님이셨군요!

단발머리 2022-06-07 12:27   좋아요 2 | URL
토끼 귀에 얼굴에 수염 달고 빨간 안경테 쓰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 사진의 주인공은 페페로니 피자라서 우리 인간들은 셋 다 우스꽝스러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 ㅋㅋㅋㅋㅋㅋ 한 장 보내 드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06-07 12:30   좋아요 2 | URL
그런 사진은 올려주셔야죠 단발님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6-07 12:34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행입니다. 댓글로는 사진을 올릴 수가 없네요. 넘넘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6-07 12:45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제목만 심오하지 ㅋㅋㅋㅋ 내용은 ㅋㅋㅋ 사실 이이의 심오한 정치사상을 이보다 더 쉽게 쓸 수 없지 않아요? ㅋㅋㅋ 단발님 양자역학 쉽게 써보라고욬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6-07 12:50   좋아요 2 | URL
더 쉽게 쓰라고요!! 그게 내가 쟝쟝님께 요청하는 바 한 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양자역학 두 번 설명하면 지나가는 사람도 밀게 생겼어요. 우리 일단 오늘은 ㅋㅋㅋㅋㅋㅋㅋ 미시 세계 관심 접고 이 거시 세계를 살아갑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6-07 13:26   좋아요 2 | URL
이 책에서 제가 냄새 맡은 아렌트의 정치사상은 내 고통에만 매몰되지 말고 나와 삶과 경험의 지평이 다른 친구를 만나 세상을 짓는 일에도 용기를 내겠지만 중요한 건 연대 전에 고독할 줄 알아야 한다.. 함축되는 것 같습니다! (ㅠㅠ 아 근데 이거 너무 후려치는 거 같아 싫은데..ㅋㅋ 생각의 방식을 따라 읽어야지 아렌트적 사유의 고통을 알 수 있지 않겠나요?ㅋㅋㅋ 쉽게 터득하지 맙시다 ㅋㅋ아렌트 신께 예의를..)

단발머리 2022-06-07 13:00   좋아요 2 | URL
👍🏼👍🏼👍🏼 연대 전에 고독! 난 왜 요점 정리에 집착하는가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6-07 13:03   좋아요 2 | URL
공부잘하는 사람들은 그러더라 ㅋㅋㅋ ㅋㅋ 연대 전과 후에 고독 인 것 같습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전 후에 고독을 꼭꼭 낑겨넣어 사유하지 않으면 편한대로 사유하다 현실직시 못하고 유겐트된대요 ㅋㅋㅋ

단발머리 2022-06-07 13:05   좋아요 2 | URL
나만 읽기에 아까운 (아, 쟝쟝님 유명하지요?) 댓글들 모아 댓글 모음집 냅시다 ㅋㅋㅋㅋ 진심임 ㅋㅋㅋㅋ 우리 사이의 무정을 근거로한 권유임 ㅋㅋㅋㅋㅋㅋ

Persona 2022-06-07 13: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삭신이 쑤시고 아무한테나 치근덕거리고 앵기고 싶은 날이라 ㅋㅋㅋ 저 단단하고 깡깡한 게 좀 무서운데요. 근데 내가 단단하고 깡깡할 땐 저런 우정 괜찮은 것 같아요.

공쟝쟝 2022-06-07 15:55   좋아요 2 | URL
인누와요 귀욤이 펄도사님 ㅋㅋㅋ (치근덕 추군덕) ㅋㅋㅋㅋ 아 근데 좀 덥고 습도가 높네요 ㅋㅋㅋㅋ 저리가요 ㅋㅋㅋㅋ

Persona 2022-06-07 18:3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다행히도(?) 물리적으로는 치근덕대거나 앵기지 않아요. ㅋㅋㅋ 즐거운 저녁 되세요!

바람돌이 2022-06-07 2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아렌트의 저 용기. 그 시절에 유대인의 비극앞에서 대놓고 민족이나 집단을 사랑한 적 없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용기.
너무 멋있어서 넘사벽이네요.
게다가 이렇게 멋진 페이퍼를 쓰다니 공쟝쟝님도 저에게 넘사벽인 분이 될 것 같아 미리 슬퍼하고 있어요. ㅠ.ㅠ

공쟝쟝 2022-06-07 23:47   좋아요 2 | URL
아렌트의 멋있음에 공감하는 바람돌이님이 있어 보람된 오늘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 왜 왜 슬퍼요… ㅠㅠ 설마 제가 아렌트좀 좋아한다고 정치에 입문하기라도 할까봐요? ㅋㅋㅋㅋㅋ ㅋㅋㅋㅋ

mini74 2022-07-08 17: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ㅎㅎ 댓글도 넘 재미있었던 글이네요. 축하드려요 공쟝쟝님 *^^*

거리의화가 2022-07-08 17: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댓글은 달지 못했지만 재미나게 읽었던 글이었어요. 이렇게나 유쾌하게 지적인 대화를^^ 멋지신 분들!ㅎㅎㅎ

새파랑 2022-07-08 18: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간장공쟝공쟝쟝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적립금으로 필립로스 구매 추천합니다~!!

그레이스 2022-07-08 1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공쟝쟝님 ~

러블리땡 2022-07-09 2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

thkang1001 2022-07-10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휴일 보내세요!

독서괭 2022-07-1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려요~~ 이 책 읽어보고 싶어요!
 

젠더트러블 읽다보니 괴로워져서 ㅋㅋㅋ 저리 밀쳐뒀던 디디에 에리봉쓰의 미셸푸코 다시 읽는 중… (원래 거악은 차악으로 맞서는 것?응?)

1/3 정도 읽었었는 데 생각 안나서 걍 맘 비우고 처음부터 다시 읽고 있다. 그러고  또 1/3 딱 읽고나니 고비가 왔다. 그래서 열심히 구글링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 남의 연애사가 제일 재밌지.


좀 악취미긴 하지만 미셸푸코의 러브레터 놀리고 싶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ㄷ ㅏ 주었기에 ㄷ ㅓ 줄 것이 없는 사랑~~~~ 이라니 공부만큼 사랑도 열정적이었던 그ㅋㅋㅋ



서른살 푸코가 사랑한 남자 장 바라케 

그는 푸코에게 음악과 사랑을 알려주고~ 쿨내 진동하게 떠났다! ㅋ

아주!! 칼같은 이별을 한것으로 보인다?!? (불쌍한 푸코 띠로리 ㅜ) 




찾아낸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은… 아아… (지못미) 

맨 왼쪽 바라케 맨 오른쪽 푸코  (함께 찍은 사진을 찾은 것이 어디냐 ㅋㅋㅋ)


심심하면 미셸 푸코 소환해서 꼽주기는 이제 나의 공공연한 길티플레져가 되버린 듯.


놀린 거 좀 미안하니까



머리카락 있는 잘생긴 프랑스 인텔리 버전 푸코 사진도 함께 올려놓기…


ㅋㅋㅋㅋ 옹? 내가 알던 그 푸코 맞지유?? ㅋㅋㅋ



1955년 8월 스웨덴으로 떠나기 직전의 마지막 추가 두렵다고 하면서 그는 바라케에게 하루 종일 그를 욕망하며 보내고 있다고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그는 타인에게 속해 있다는 것, 타인에게 소유된다는 것, 또 타인의 기쁨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제 알게 되었다고 했다. 마치 빨간색실이 짜여져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되듯이 그의 팔이 만들어 내는 엮임 속에 자신의 모든 삶이 미끄러져 들어가 행복과 아름다움과 힘의 직물이 짜여진다고도 했다. 그러고는 자신을 아낌없이 다 주었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은 줄 것이 없으며, *"당신은 내 욕망과 무관하게 순전히 당신의 쾌락만을 위해 나를 취하면 됩니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그것이 자신의 ‘비밀’이며 이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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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7-06 0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머리카락 있는 잘생긴 푸코.. 머리가 이렇게 중요합니까? 세상에나....
젠더 트러블 어떡하지..나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근데 쟝님아, 어제 플랭크는 했어요?

공쟝쟝 2021-07-06 10:18   좋아요 2 | URL
당연히 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7-06 11: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머리카락 있는 것도 그닥........;;;

공쟝쟝 2021-07-06 11:39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님은 얼굴에 관대하지 않구나 ㅋㅋㅋㅋㅋㅋ 못살아 ㅋㅋㅋㅋ 머리털난 푸코는 대머리푸코보단 덜 괴팍해보이는 걸로 합시다 ㅋㅋㅋㅋ

잠자냥 2021-07-07 12:21   좋아요 1 | URL
사실 머리카락 휘날리는 저 푸코 애인도 그닥........;;;;

공쟝쟝 2021-07-07 16:51   좋아요 1 | URL
그냥 푸코가 싫다고 말해!!!! (저는 좋아하게 되버렸어ㅋㅋㅋㅋㅋ) 푸코자식ㅋㅋㅋ

그레이스 2021-07-06 1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머리 없는 푸코가 훨씬 매력적이네요^^

공쟝쟝 2021-07-06 15:13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도 혹시 대머리를.....?!!
저는 정말 전두환 때문에 (정말로 대머리에 대한 원체험이랄까 ㅋㅋㅋ 나에게 대머리 = 전두환) 대머리가 싫은데.. 제 맘속에 들어온 첫 대머리 그는 바로 푸코...

그레이스 2021-07-06 15:2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푸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때문인듯 합니다. 각인된...^^

syo 2021-07-07 11: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체사진 가운데 분 씬스틸 쩔었다.... 푸코는 방금 사람 하나 썰어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온 표정.

공쟝쟝 2021-07-07 16:5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아놬ㅋㅋㅋㅋ 표현 느무 찰떡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 사람하나 썰….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 빈센트 반 고흐 전기, 혹은 그를 찾는 여행의 기록
프레데릭 파작 지음, 김병욱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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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람을 한면만 보고 멋대로 이상화하면 안된다. <반고흐, 영혼의 편지> 속에 나타난 고흐는 이상을 위해 자기 자신을 너무 몰아붙여 안쓰러운, 선량하고 미련한 사람이었으나. 프레데릭 파작이 쓴 전기 속에 나타난 고흐는 일종의 구원자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실패자이자, 세상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집요하게 자신을 완성하려는 괴팍한 고집쟁이 그 자체다. 게다가 연애는 드럽게 못하고, 무슨 사창가는 왤케 많이 다니는 거며, 평생 가난에 시달렸다면서.... 빈대생활 와중에 길에서 거둔 여자와 살림도 차리고, 그녀의 사생아‘들‘까지 거두어 갓난아이까지 키워내는 정녕 박애...주의자... (내 가족이었으면 진짜 뒷목 잡고 쓰러졌다.) 그를 후원해준 동생 테오에 대한 궁금증이 더 깊어짐. 부처의 환생인가.


라고 마구마구 화내며 적었지만,

읽으면서 ‘빈센트’라는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의 입체적 매력에 더 흠뻑 빠졌다. 파작의 유려한 문체도 한 몫 했지만, 고흐의 글들이 그의 생애와 함께 적절히 인용·배치되어 조금 더 깊이 이 인물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문장들.

“(61) 처음에 사람들은 호기심에 이끌려 이 신참 전도사의 설교를 들으러 왔으나, 그의 설교를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더 오기를 망설인다. 그의 설교를 듣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욕설을 하는 일이 잦아진다. 금방 줄이 듬성듬성해진다. 빈센트는 이에 개의치 않고 더욱더 열심히 설교한다. 그는 정원의 오두막에서 자기로 결심한다. 그의 그런 자기 희생에 사람들이 불안해한다. 방의 안락함을 거부하고 밀짚 위에서 잠을 자는 이 ‘하느님의 미치광이’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누구이기에 빵과 쌀과 당밀만 먹고, 차가운 날씨에 맨발로 걷고, 포장용 천 조각만 걸친단 말인가?”

ㅎㅎㅎ
이런 부분이 딱 이 부분만 있지는 않아서, ‘이 인간 참 징하다!’ 고 감탄(!)했다. 그가 화가여서 다행이지만, 꼭 화가가 아니라도 뭐라도 되었을 것 같다.... 😨😨

다만 현실에서 이런 전도사를 보면 좀 무서울 것 같고, 이런 선생님을 보면 도망다닐 것 같으며, 그가 보험설계사나 뭐 비슷한 계통의 세일즈를 했다고 생각하면.... 후우... 화가여서.. 창작자여서 다행이다.. 😞 빈센트씨, 진로를 잘 설정하셨군요..

“(254) 형의 주머니에서 테오는 형이 쓴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편지는 다음과 같은 말들로 마무리된다. ‘글쎄, 내가 해야 하는 일, 난 거기에 내 인생을 걸었고, 그 일로 내 이성은 반쯤 망가져버렸어 - 그래, 좋아 -한데 내가 아는 한 너도 장사꾼 부류는 아냐. 그래서 내 생각엔 너도 마음을 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정으로 인류와 더불어 행동하면서 말이야. 대체 뭘 어쩌려는 거야?’”

광기와 맞닿아 있는 듯한 집요한 정열. 꾸준한 열심. 자신이 아는 만큼을 삶에 구현하려 했던 현실에서 만나기 진짜 힘든 사람. 그래서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겠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에게는 생애를 통틀어 쓸 수 있는 일정량의 ‘생의 에너지’ 같은 것이 있어서,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그 에너지를 다 써버린 이들은 빠르게 세상을 떠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이를테면 고흐나 벌써 올해 30주기라는 기형도 같은. 그들의 시간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들 안에서는 매우 천천히 흘러서 ㅡ 고작 서른 몇 해 뿐 일지라도 남들이 평생 느낄 것을 다 느끼며, 순간순간을 강렬하게, 아주 밀도 있게 자기 몫을 다살고 간 것은 아닐까하고.

범인인 나는 밀도 있는 삶보다는 가늘고 길고 몸이 건강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어떤 작품 속이든 혹은 역사 속 인물이든 고흐같은 삶에 눈을 떼지 못하게 되는 것을 보면 역시 인생이 한,번, 뿐인 것이 아쉽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욕심. 그 삶들이 탐나서 영화를 보고 책을 읽을 때가 많다. (엿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배불러서 엄두는 안나는 듯?ㅋㅋ)

늦은 저녁 카페테리아, 압생트를 앞에 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에 대한 논쟁적 이야기를 끊임없이 횡설수설 하고 있을 사회성이 없어보이는 고흐를 상상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나는 그의 전혀 신경쓰지 않은 외모에 놀라지 않을 것이며, 따뜻한 시선으로 그 맥락없는 이야기를 채근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며 끝까지 들어주고 싶다. 물론 다음 날 눈뜬 빈센트는 취한 어제가 기억 안나겠지만, 그래도 다른 아침들보다는 후련한 마음 상태였으면.

_
-

덧, 갑자기 미안하네...;;; 전날이 기억은 안나지만 기분만큼은 후련했던 20대의 숱한(!!!!)아침들.
아, 따뜻한 눈의 내 사람들아~ 이제와서 사과할게...미안. 난 고흐도 아니었는데.....ㅜ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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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아! 광기 발작 이후의 차가운 평온을 말 해주는 그의 자화상, 무감동한 시선으로, 입에 파이프를 물고 있는 그의 그 귀 잘린 자화상 앞에서 나는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던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밭두렁 길에 잘린 밀밭,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하늘, 그리고 풍경의 거짓 정적에 흠집을 내는, 검은 십자가 같은 그 까마귀들은 또 얼마나 감동적 이었던가.
물론 나는 미술관들에서 그를 다시 보곤 했다. 그는 환한 빛 속으로 솟아올라, 언제나 곧장 나의 두 눈에 부딪히곤 했지만, 그러나 나는 그를 잊고 있었다.
그의 남프랑스 그림은 나의 숨을 멎게 하곤 했다. 그 많은 물감, 그 많은 색깔, 그 많은 태양이라니.

(50)
1878년 7월 5일, ㅡ너무 힘든 공부에 낙담한 빈센트는 에턴의 부모님 댁으로 돌아간다. 암스테르담에서 보낸 이 열다섯 달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기다. "내 인생 최악의 시기였다."
그는 자신을 실패한 설교자로, 아니 실패자 그 자체로 여긴다. 그런 감정이 그에게 소학교 시절의 불행들을 상기시키고, 자신의 실패를 곰곰이 되씹으며 그는 지독한 엄격주의자 프로테스탄트로 행동한다. 자신의 수치를 한입 가득 들이마시는 것이다.

(216)
이제 빈센트는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 그에겐 포도주잔이 거부된다. 그는 압생트에 만취하던 때를 기억한다. 그에게 생생한 색깔을 고취시킨 것은 바로 파리의 카페들에서 미친 듯이 마시던 알코올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림을 좀 더 칙칙하게 그리고 싶어"한다. 때때로 그는 창문의 쇠창살 앞에서 되씹는다. "무슨 짓을 해도, 돈 문제는 여전히 군대 앞의 적처럼 저기 있구나."

(255)
빈센트가 죽은 지 6개월 후, 1891년 1월 25일, 테오 반 고흐도 위트레흐트의 한 요양소에서 구금생활을 하다가 사망한다. 두 형제의 시신은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작은 공동묘지에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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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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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상주의자였던 고흐에게 사랑하는 동생은 돈(현실)에 대한 인식을 끊임없이 환기 시켜주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림을 추구하면 따라올 수 밖에 없는 자신의 경제적 무능이, 뒷바라지하는 동생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만들고 종래에는 그의 마음을 황폐하게 했을 것이다. 


고흐가 조금 더 뻔뻔한 류의 자의식 과잉의 혹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자기‘만‘너무 중요한 인간이었더라면 미쳐버릴 일은 없었을 것이고, 동생(테오)에게 당연한 듯 요구했을 것이며, 그랬다면 테오가 미쳤을 지도 모르겠다.
부인의 식모살이로 번 돈을 사업으로 날리는 인간, 누나가 여공으로 뒷바라지 해서 공부시켜놨더니 지가 잘나서 명문대(?)갔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어쩐지 예시에서 젠더가 강조되는 것은 요즘 읽는 책들 영향탓),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남모르는 희생과 헌신을 너무도 당연히 여기는 이기적인 인간들 (나포함) 세상에 꽤 많잖아.

˝(47)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리는 일에 대해 네가 반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나도 가능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마.˝

하지만 이 인간은 정말 끊임없이 미안해 했고, 미안해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매번 최선을 다해서 생의 에너지를 다 소진시켜 버린듯 하다. 고흐는 너무 착하고 동생을 사랑했고, 동생 테오도 너무 착하고 고흐를 사랑했다. 이 형제들의 삶은 서로 너무 사랑해서 생긴 파국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

˝돈이 없구나, 돈 때문에 미안하구나, 돈을 좀 보내다오, 언젠가는 네게 돈을 부탁하지 않고 싶은데, 돈이 없구나˝가 슴슴이 베인 그의 편지. 먼저 서울에 취직한 죄로 3년 정도 경제적으로 신세졌던 동생이 생각나서 많이 괴로웠다.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정말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그 마음. 미련하고 안쓰럽고, 또 이해되기도 하고 해서. 결국엔 세상에 지고, 미쳐가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많이 울었다.


˝(243) 나는 단순하지만 지속적이고 결정적인 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해왰다. 그런데 이제는 이미 패배한 싸움을 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 성격의 나약함이 문제인지도 모르지.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자책감만 남았다. 발작이 일어난 동안 그토록 소리를 많이 지른 까닭도 그 때문이겠지. 나 자신을 지키고 싶은데 지킬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자신이 선택한 어려운 길, 돌아보지 않음,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까지 완벽해야한다는 강박. 그리고 현실적인 이유로 중도반단한 (돈과 명성에 그림을 파는) 이들에 대한 분노. 그 분노는 자기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와 현실과의 타협을 튕겨냈을 것이다.

아, 미련한 사람. 그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책을 읽으면서 그 미련한 열정을 응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고흐가 미치지 않으려면 무용한 응원보다는 부자 후원자가 필요했겠지!? 성격상 멋진 후견인이 나타나도 미안해서 (고갱 등 더 고생하는 화가들) 더 자신을 질책하며 몰아붙였을 것 같지만. (넘 깨끗해서, 영원히 고통받는 영혼ㅠㅠㅠ)

*

종종 타인의 우직한 신앙과 신념을 비웃기도 하고, 그것에 옳고 그름을 가져다 대려하는 나의 편협이 조금 비루하게 느껴졌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 모든 것을 내어주고 하나를 취하여 붙잡는 이들이 못나 보일때가 있다. 어쩌면 부러운 걸지도.
모든 열정을 낭만화할 필요는 없지만 고흐같은 낭만적 열정가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응원할 수있는 마음을 남겨둬야지.

*

덧, 젊고 열정있는 예술가, 창작자들게 사회적 보장과 지원을 해주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85)
여전히 흡족해 할 수 없었다. 기억 속에는 낮에 본 장관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도저히 그 그림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장면의 흔적은 남아있었다.

(107)
나는 개로 남아있을 것이고, 가난할 것이고, 화가가 될 것이다. 또 나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169)
오늘 아침, 꽃이 핀 자두나무가 있는 과수원을 그리고 있는데, 갑자기 멋진 바람이 불어오더니 다른 곳에서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을 보았다. 그럴대면 작고 하얀 꽃잎들이 햇빛을 받아 불꽃처럼 반짝이곤 한다.
그 자면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순간순간 땅이 진동하는 걸 바라볼 각오를 하고 그림을 그렸다. 이 하얀색 화면에는파란색과 라일락색, 노란색이 많이 있다. 하늘은 하얗고 파랗다.

(174)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220)테오
형은 내게 빚진 돈 얘기를 하면서 내게 갚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 내가 형에게 원하는 것은 형이 아무런 근심 없이 지내는 거야.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건 맞아. 우리 둘 다 가진 게 별로 없으니 너무 많은 짐을 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 하지만 그 정도만 염두에 둔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있을 거야. 아무것도 팔지 않더라도 말이지.
...하지만 그 많은 그림을 한점당 100프랑으로 계산하는 건 이해할 수가 없어. 그 그림이 100프랑씩에팔리기를 바란다면 그건 아무 가치가 없다는 말이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이 지긋지긋한 사회는 그걸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 편이거든. 하지만 이사실을 알고 있다면 우리도 사회가 하는 대로 하면서 이렇게 말하자고, 우리도 그거 필요 없다고 말이야.
...형이 너무 힘들게 일해 와서 마치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할 때면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를 거야.
다른 무엇보다 난 그게 사실이라고 믿지 않아. 실제로 형은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것도 이 땅의 위대한 사람들처럼 품위 있게. 물론 형이 지나치게 곤궁하게 살아왔다고 느끼지 않도록,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빵을 갖지 못해아프게 되는 일이 없도록 적절하게 내게 미리 경고를 해주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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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코 후미코 -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 제국의 아나키스트
야마다 쇼지 지음, 정선태 옮김 / 산처럼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017년에 만난 인물 중 가장 매력적이었던 사람. 가네코 후미코. 그를 알게 된 것은 영화 <박열>. 영화를 본 후 박열보다 후미코가 더 짙게 마음에 남았었다. 깊이 매료되는 대상이 있다면, 그 인물이 가진 매력과 함께 자신의 무의식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차였다. 내 안에 무엇이 그렇게 그녀에게 공명했는지 알고 싶었고, 평전을 읽기 시작했다. 


“일본인 식민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었던 조선인이라는 존재가 후미코에게는 ‘보였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물론 자신과 같지는 않았지만,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는 조선인들이 할머니 보다는 친근한 존재로서 곁에 있었다.(p.74)”

그녀가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인 것이 좋았다. 무적자, 일본인, 여성, 그리고 부모에게 마저도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어린아이. 어쩌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깊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후미코는 다른 이의 고난에 무감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고통에만 몰입되었다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울음을 울면서 타인의 눈물을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회주의 사상이 나에게 특별히 새로운 것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다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는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통해 형성된 나의 감정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확인해주었을 따름이다. 나는 가난했다. 지금도 가난하다. 그 때문에 나는 돈 있는 사람들에게 혹사당하면서, 가혹한 대우를 받으면서, 괴롭힘에 짓눌린 채 살아왔다. (p.114)”

나는 가난했다. 지금도 가난하다. 한번도 부자였던 적이 없다. 꾸준히 이어지는 물질적 결핍. 나는 그녀가 가난해서 좋았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후미코가 놓쳐버린 행복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박열과 한참 사상운동을 하고 있을 때, 활동을 지지하는 누군가가 그들의 경제생활을 고려하여 간이식당을 낼 것을 제안했다. 후미코는 자신들에게 처음 찾아온 행운을 즐겁게 승낙했다. “정말이지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운명입니다. 나는 나물 무치는 법까지 연구했는데..(p.426)” 물론 식당을 낼 겨를도 없이 그녀는 대역죄인이 되었다. 식당주인이 된다해도 그들이 부자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는 가난과 싸우고, 생계와 싸우면서도 세계의 생겨먹음을 걱정하고 천황제와도 싸웠으며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싸웠다.

“이런 세상에서는 고학 따위를 해서 훌륭한 인간이 될 턱이 없다는 것을! 소위 훌륭하다는 인간들만큼 하찮은 자는 없다는 것을 나는 명확히 알았다! 사람들에게서 훌륭하다는 말을 듣는 게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참된 만족과 자유를 얻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바로 나 자신이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지금껏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노예로 살아왔다. 너무나 많은 남성들의 장난감이기도 했다. 나는 나 자신의 삶을 살지 않았다. (p.115)”

기성의 가치관에 편입되기 위해 아등바등한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 무엇보다 나 자신을 살 수 없다면 훌륭할 필요도 없다는 것. 그녀는 ‘자기 자신’을 살기 위해 거듭 마음 먹는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세상과의 투쟁.

나 또한 끊임없이 궁구하고 있다. 나 자신을 살면서 누군가와 연대하는 방법. 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기꺼이 헌신하는 방법. 세상과 싸우면서 세상을 닮아버리지 않는 방법..

“‘당신은 민족운동가이십니까... 나는 사실 조선에서 오랫동안 산 적이 있기 때문에 민족운동에 몸담고 이는 사람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조선인이 아니어서 조선인처럼 압박당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 조선의 독립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3.1운동에 깊은 공감을 보였던 후미코가 이런 질문을 던진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그것은 후미코가 자신이 밑바닥 체험과 피차별의 경험을 거울삼아 조선인의 해방운동에 지속적으로 깊은 공감을 보이기는 했지만, 자기가 억압민족에 속해있는 까닭에 피억압 민족인 조선민족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있는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p.124)”


내가 그녀에게 푹 빠진 또 다른 이유, 솔직한 단호함이다.
당신과 함께 싸울수 있지만, 나는 당신이 아니다.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고 하여 섣부르게 그를 다 이해했다고 단정 짓지 않는 모습.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며 연민과 동정 또한 평등일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

“기성의 가치관에 저항했던 박열은 빈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일본에 의해 억압받고 있는 민족적 체험에 입각점을 두고서 열정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 박열의 이렇듯 철저한 투쟁자세는, 지금까지 만났던 일본인 사회주의자의 기성가치관에 대한 타협적 태도와 달리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왔음에 틀림없다. 자서전에 후미코는 박열을 만나고서 “저다지도 그를 힘차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찾고 싶었다. 그것을 나의 것으로 삼고 싶었다”고 술회했다.
후미코는 박열이 “직접적인 민족운동가는 아니지만 언제나 자아에서 출발하여 그 운동을 위해 생명을 걸 수 있는 힘을 가진 남자라는 것을 알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후미코가 박열을 자신에게 맞추어 해석한 것이다. 후미코가 자기를 철저하게 투시함으로써 비전향 즉 반천황제를 꿰뚫고자 했던 데 비해, 자기 사상의 기저에 민족을 두고 있었던 박열은 그녀만큼 자아를 깊이 있게 탐색하지는 않는다. 제국주의 나라의 국민은 내셔널리즘으로부터 탈피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그리고 당연하게도 억압받은 식민지 민족의 구성원에게는 개인의 해방보다 민족해방이 우선하는 과제라고 말할 수 있지만, 민족과 개채로서의 자아의 관계를 심도 있게 묻지 않은 것이 박열이 얼마 안 있어 옥중에서 조선민족으로부터 이반하여 천황제에 굴복하고 전향한 내적원인이 아니었을까. (p.142)“


자신에게서 나온 것을 살기 위해 분투했던 후미코와 투쟁에 헌신적이었으나 자아를 탐색하는 데는 서툴렀던, 그러나 분명 탁월한 조직가이자 혁명가였을 박열. 그 둘의 마지막 모습이 같지 않았던 이유는 두 사람이 처한 민족적 입장이 다르기도 했겠지만, 남녀 성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본다. 

끊임없이 침해당하는 것이 기본값이었던 여성, 후미코에게는 스스로의 안을 깊이 더듬어서 그것을 지켜내고 빛내며 살아가는 것-자신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박열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겪은 남성 활동가들 중에는 ‘지키는 운동’을 하더라도 ‘확장’이 기본값인 경우가 많았다. 즉, 문제를 해결하고 일이 잘되게 되는 데-타인을 설득하는 것-중심을 둔다.

“....동시에 여자로서도 박열에게 만족하고 있었기에 몇 가지 문제를 뛰어 넘어 박열과 함께하는 죽음을 긍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후미코는 구리하라 가즈오에게 보낸 것으로 보이는 편지에서도, 한 달에 60전 이상 차입해줄 여유가 있다면 박열에게 주고 싶다. 뭔가를 먹게 하고 싶다. 자신을 포함에서 동료들의 박열에 대한 몰이해가 실패의 희생물로 그의 쇠약한 신체를 옥사에 갇히게 하고 말았다고 말한 뒤 ‘그가 뭔가 먹을 수 있게 해주세요. 간절히 바랍니다. 그의 부탁은 가능하다면 뭐든 들어주세요’라면서 박열에 대한 아내로서의 생각을 적고 있다. (p.312)

사랑꾼 후미코. 부러워서 열심히 연표를 뒤적인 결과, 스물 세 살의 짧은 생애 동안 박열과 함께 살았던 시기는 대략 1년 6개월 정도.. 한참 뜨거울(?) 때 형무소가 갈라놨으니 이 절절한 편지가 더욱더 이해되는 바,
그렇다 하더라도 재판장에서 마저 

“나는 박열을 알고 있다. 박열을 사랑하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모든 결점을 넘어 나는 그를 사랑한다. ... 부디 우리 둘을 함께 단두대에 세워 달라고. 박열과 함께 죽는 다면 나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박열에게 말해두고자 한다. 설령 재판관의 선고가 우리 두 사람을 나눠놓는다 해도 나는 결코 당신을 혼자 죽게 하지는 않을 것 이라고. (박열 후미코 재판기록 748족)” 

이런 뜨거운 고백을 할 정도인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 가장 좋았다. 

법정에서 이런 고백을 받은 박열의 기분은 어땠을까. 아니, 사랑이라는 것은 응당 이래야 하는 게 아닐까. 소유와 집착이 아닌, 이상과 연대-존중과 결심, 투쟁.영화 속 대사와 책 속의 이 구절은 몇 번을 반복해 읽어도 여전히 내 마음을 떨리게 한다. 법정에서 후미코의 이 선언은 박열 개인에 대한 사랑의 선언임과 동시에 일본 천황제(일제는 천황제를 바탕으로 민족주의를 강화하며 곧바로 제국주의로 나아갔다)에 대한 목숨을 건 투쟁이자, 식민지 조선에 대한 연대이기도 했다. 

“나는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실행해 보’는 것 이에는 그것을 시험할 만한 적당한 방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리얼리스트입니다. 그리고 실천가입니다.. 누가 뭐라해도 자신의 생각, 자신이 말한 것만은 모조리 실행합니다. 적어도 실행해보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말이나 훌륭한 논리가 내 앞에 널려있습니다. 하지만 실천할 수 없는 말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실행의 시련을 거쳐야만 비로소 확실한 것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실행해 봅니다. 한 곳에 고착되지 않고 흐르면서 자신의 생명의 성장을 추구하는 나는 내일 일을 걱정하여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영악하지 못합니다. 동시에 어제 말한 것에 얽매어 오늘을 말하고 싶은 것을 거둬들일 정도로 갇혀있지도 않습니다. (p.308)”

후미코는 실행을 통해서 자신의 사상을 형성하고, 또 실천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구체화하는 방법론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녀의 삶과 그녀의 사상은 일치했다. 그 일관됨이 좋았다.

“불령사 동인의 회합 장소였던 박열의 집에는 ‘불령사’라는 표찰이 당당하게 걸려있었다. 이층벽에는 붉은 잉크로 커다란 하트무늬가 그려져 있었고, 그 안 에는 검은색으로 ‘반역’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씌어있었다.(p.168)”

시대가 그들을 반역자로 몰지 않았다면, 다소 급진적인 자신들의 생각을 이처럼 개구지게 표현하면서 앳된 스물세 살의 얼굴을 하고 살아갔겠지.

슬픔과 고난으로 엉겨붙어있는 그녀의 짧은 생을 사랑한다.

평등과 존엄을 자기 자신에서부터 출발해서 살아보고자 했던 그녀와 같은 사람 덕분에, 나는 감히 아직까지는 ‘모든 인간은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떤 선언이나, 제도가 아니라 - 자신이 선언하고, 평생 지켜가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좋아하는 만큼 그녀를 닮아가고 싶다. 정말로. 



나는 박열을 알고 있다. 박열을 사랑하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모든 결점을 넘어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나는 지금 그가 나에게 저지른 모든 과오를 무조건 받아들인다. 먼저 박열의 동료들에게 말해 두고자 한다. 이 사건이 우습게 보인다면 뭐든 우리 두 사람을 비웃어 달라고. 이것은 두 사람의 일이다. 다음으로 재판관들에게 말해두고자 한다. 부디 우리 둘을 함께 단두대에 세워 달라고. 박열과 함께 죽는 다면 나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박열에게 말해두고자 한다. 설령 재판관의 선고가 우리 두 사람을 나눠놓는다 해도 나는 결코 당신을 혼자 죽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박열 후미코 재판기록 748쪽)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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