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기쁨 - 책 읽고 싶어지는 책
김겨울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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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선선해지고 목 뼈가 제 궤도(?)를 찾으면서 요즘 책읽기에 다시 속도가 붙었다. 어느 정도냐면, 분량으로 쳤을 때- 하루에 너끈히 한권은 해치우는 듯?!? (여러 책을 한꺼번에 읽는 편이므로 정확하지는 않다..)

책을 읽다보면 책을 엄청나게 더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아, 이거 읽는데 저거 읽고 싶다. 그거도 읽어야 하는 데..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 처럼 읽고 있으면서 읽고 싶은!? 들뜬 마음이랄까.
이럴 때는 요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서 잠시 배를 부르게 만든다. 마치 예전 부모님 세대 배고픈 아이들이 물배를 채우는 것 처럼. 헛배라고 해야하나. 진짜로 허기를 채운 것은 아니지만, 빵빵 배가 불러져서 순간적으로나마 만족스러운 상태가 된다.

북튜버로 유명한 겨울서점의 ‘독서’에 관한 책이다. 가독성이 매우 좋아서 좀 놀랐다. 도서관에서 절반쯤 보다가 집에와서 침대에 누워서 안쉬고 한번에 완독. 이는 구어체에 가까운 문장의 영향도 있지만 김겨울씨가 의도한 대로 책의 무게 자체가 가벼웠기에 이뤄낼 수 있는 쾌거!!!라고 생각한다.

“(p.38) 뭐니 뭐니 해도 책의 무게가 가장 원망스러울 때는 누워서 책을 읽을 때다. (...) 누워서 책을 읽으려고 들면 정말 온갖 포즈를 다 시도하게 된다. 오른쪽으로 누워서 왼쪽 페이지를 읽다가, 왼쪽으로 몸을 돌려 오른쪽 페이지를 읽다가, 이도저도 불편해서 엎드려서 책을 읽다가, 팔과 허리가 아파서 누워서 책을 읽다가... 이걸 반복하고 있지면 아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것이 무슨 시지프스의 고난이란 말인가 싶어지는 데, 책을 읽느라고 그 생각을 어느 새 잊게 된다.”

초 핵공감. 심지어 누/워/서 읽으려고 전자책 산 것까지 나의 마음 당신의 마음 ❤️

북튜버라는 작가의 직업답게 책의 물성에 민감한 모습이 좋더라. 난 곳곳에서 비슷한 코드를 발견하며 흐뭇했는 데 - 이를테면, 표지의 디자인을 넘어 내지의 줄간격과 자간. 각주 등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 책의 무게와 판형, 심지어 사용하는 종이에 따라 독서의 쾌감이 달라짐을 언급한달지, 그런 부분들. (책은 역시 미색모조지ㅋㅋ 나만 그런게 아니었어!)

게다가 그녀의 책사랑은 단순히 모양에서 끝나지 않았는 데, 책의 냄새를 언급하며 에틸벤젠 어쩌고하는 화학분해 작용과정까지 언급할 때는 ‘역시 아무나 북튜버가 되는 건 아니었나보군’ 리스펙 하기로 하였다.

“(p.287) 그러니까 이건, 몸부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활자 시대의 종언을 듣고 싶지 않아 저 멀리 떠나는 영상 세대에게 보내는 구조요청인지도 모른다. 아직 활자는 살아있다고, 그러니 데리고 가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비관적으로 보기에 나는 활자를 지나치게 사랑한다. 사랑하는 대상의 미래가 죽음이라 믿는 이는 없다. 그래서 미래가 책에게 그리 잔인하지 만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사람들은 계속 책을 읽을 것이고,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처럼 머리는 식히고 배는 불리면서 빠르게 완독했음!
북튜버로서, 책덕후로서 이제는 저자로서 김겨울씨가 품고 있는 이상에 나도 동감하게 되었다. 그녀가 승승장구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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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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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아팠다. 아프다는 말을 하기 질릴 정도로 계속 아프기만 했다.
8월 첫주 쯤엔 잠도 자기 힘들 정도로 아팠고, 글을 더듬더듬 적는 지금도 미약한 두통 때문에 힘들다.
물리적 고통보단 자꾸 나약해지는 마음이 싫었다. 계속 이렇게 아프기만 하다가 돈도 못벌고 가난하게 늙어가면 어떡해? 불안에 기마저 쭉쭉 빨려들어갔다.
.

아픔없는 세상을 꿈꾸기도 했고,
상처주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아니,
지금도 한다. 종종.

거기에는 고통을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무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고통에도 아픔에도 목적이라는게 있는 것일까.



고통이 자아의 경계 역할을 한다는 구절을 읽으면서, 아픈 걸 인정하자고 생각했다.
그래 여기까지가 나다.
꽉 짜여있는 일상이라는 타임테이블에 해야할 ‘일’들, 해낸 ‘일’들 만이 내가 아니다. 몸이라는 공간에 엄연히 실존해 있는 감각하는 주체가 곧 나다.
그러니까,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내 ‘몸’에 대해.
몸이 자기를 잊지 말아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신호를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 당장 부정해버려야할 증상으로 여기니 불안, 불평만 늘어갔던 거다.

.
.

성숙하게 아픔을 인식하는 것이 서툴다.
부정, 비명, 주저 앉음. 혹은 심각한 낭만화.
있는 그대로 아픔을 인식하지 않은 채, 쉽사리 누군가의 고통을 대신 말했던 적도 있다.
부끄럽지만 타인의 고통을 대상화 했던 적도, 일을 풀어가는 수단으로 여긴 적도 많았다.
그리고 여전히 어떤 고난을 패기 있게 맞받아쳐나가는 것이 가장 멋지다고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
그런데,
어쩌면.

아픔 없는 세상이라 표현하는 천국이 정말 구원일까.
내가 획득하지 않은 평안과 원래부터 주어져있는 건강이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좋기만 한 것일까.

그런 물음이 생겼다.
아파서. 아프니까.
아프지 않았음 몰랐을 거다.

여전히 아픈게 싫다.
근데 싫어하면서도 생각은 좀 해야지 한다.
그 아픔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사랑의 출발점일지도 모르니.

“나병(한센병)이 생긴 피부는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고통은 촉각과 함께 퍼져있어 ‘자아’의 경계 역할을 한다. 내가 느끼는 것까지가 자아라고 한다면, 말단 부분의 감각이 없어진 나병 환자들의 자아는 손이나 팔 혹은 다리만큼 줄어드는 셈이다. 고통이 몸의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함으로써 어떤 사회구성체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당사자를 당신 안으로 불러들여 마치 그 고통을 자신의 것인 양 반응하는 동일시.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 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사랑의 한계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
-
#멀고도가까운 6장 감다,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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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채만한 황소가 사정없이 나를 들이받아댔던 한 달이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고 몸마저 고장이 났는 데, 그게 또 묘하게 현실성이 없어서, 치받는 황소들을 남일처럼 응시하면서 바지런히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생로병사와 관혼상제.
이 것들은 삶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런 것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마치 남일인 듯 무심히 지난 삼십년을 살았는 지 모르겠다.
덕분에 삼년전부터 나는 삼십년치의 상수들을 굉장한 변수처럼 겪어내는 중이고,
아무것도
어떻게도
해결하지 못했다.

이 여덟가지가 사실은 삶처럼 이어지는 모든 것들이라는 안 것 만이라도 다행인 걸까.

그 중에 최고는 역시 엄마의 병.
이건 그냥 꿀꺽 숨을 참게 될 만큼, 사실은 회피하고 있는 주제다.
지금은 그것을 깊게 파고들어 생각하지 않아야만 괜찮은 척 지낼 수 있다.

황소같은 폭염과 끝나지 않은 일과 차곡차곡 쌓이는 카드빚과 아픈 몸. 저 밑바닥에는 엄마의 병이 낫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오빠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꽉 틀어막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한 번 새어나오기 시작하니까, 꾸역꾸역 밀려나왔다.
배고픈 데 밥 함께 먹어주지 않았다고 부러 쫄쫄 굶고 투정하는 거.
나도 이런 나의 퇴행이 싫지만 꼭 이런 식이다.
뭐,결론은 하루 뒤 삼겹살로 극적 화해를 이루었지만.
화해와 동시에 오늘은 엄마의 통증에 차도가 있어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에어콘이 왔다는 것.
모처럼 누워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

데우스엑스마키나

알고보니 삶이라는 건 정교하고 거대하게 설계된 절정과 갈등해소의 장 일지도 모르겠다.
무신론자 이지만, 요즘은 간절히 신이 있기를 바란다.
기도하고 싶어서.
아프지않았으면,
건강했으면,
누구라도.
안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만이라도. 나 자신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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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신혼여행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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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난 김에 작가 장강명에 대해 써야겠다나는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표백>과 <한국이 싫어서> 두 권을 읽었을 뿐이고머리가 좋은 작가라고 생각했다지금을 사는 청년들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는 소설의 소재선택이 잘 먹혀들어간 것이라고 여겼다.

 


 20대 후반 내내 거의 소설을 읽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거의 책 자체를 안 읽었다.) 유일하게 읽은 것이 <표백>이었다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학벌 청년자살이런 것들이 궁금해서 읽었다다 읽고 나서 앞으로 이 작가의 소설을 다시는 읽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내가 욕을 하면서도 끝까지 그의 소설을 다 읽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몇 년 후, 주변에 탈조선을 하겠다는 인간들이 자꾸 늘어났다그리고 <한국이 싫어서>를 읽었다헬조선 탈출파에 관한 이야기였다먼저 것 보다는 나았지만 역시 읽는 내내 불편했다.


그 후로도 그의 작품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댓글부대>라던가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라던가댓글 따위를 일삼는 일베들과는 상종을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나는 대단한 반전평화주의자였기에 그 책들은 제목만으로도 불편해 읽지 못했다.

(그리고 여전히 거기까지 헤아리고 싶지는 않다. ...)

 


나는 자살을 생각해 본 적도 없고이민은커녕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었다하지만 동시대를 살고 있는 또래 친구들의 생각들을 이해해보고 싶었다.

 

소설 속 그들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 했다어디에서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 지 찾기 어려웠다그러나 소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비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았다정확히는 누구의 생각을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이나 권한이 나에게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좀 너무 차갑다. 꼬였네...

어쨌든 그런 느낌을 주는 소설가였다장강명이라는 이름은.


*

 

그 생각이 깨진 것은 <5년만의 신혼여행>과 팟캐스트 <책이게뭐라고>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동생의 지적 때문이었지.



올해 초에 도서관에 갔다가 이 책을 발견대여해서 다 읽었다동생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행복에 관한 주제가 등장했고 나는

 

“‘심지어 내 행복 리스트에 이런 것도 있어올해 6월에 지방선거가 있었어그때 투표하러 가면서 신도림중학교 옆을 걸어가는데 여름이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었어나무에 파릇파릇하게 잎이 났더라고그 길을 걸어가는데 그때 너무 행복했거든왜 그날은 내 행복 리스트에 오르는데화이트 비치에서 석양을 본 경험은 목록에 오르지 못하지?’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HJ가 가난한 집 딸의 자세를 아직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다어떤 즐거움을 맛볼 때도 늘 본전을 생각하는 습관이 그녀의 몸속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토요일에 소파에 편히 앉아서 컴퓨터로 라디오 스타를 보는 데에는 전기료밖에 들지 않는다샌드위치는 내가 전날 밤에 마트에 갔다가 사 온 떨이 상품이다. 30퍼센트나 40퍼센트 정도 할인된 물건이었을 것이다그녀가 마시는 커피는 인스턴트커피 중에서는 꽤 가격이 비싼 프리미엄 제품이지만그래 봐야 스틱 하나에 350원정도 밖에 안 한다이 정도 비용을 들이고 이 정도 기쁨을 맛보다니그게 HJ가 그 순간을 행복하게 느낀 이유다. (p.201)”

 

책에서 읽었던 이 내용을 이야기 해주었더랬다.

갑자기 동생이 언니 장강명 싫어한다 하지 않았어?” 이런다응 싫어근데이상해자꾸 읽게 돼. ... 라고 하다가 깨달았다벌써 세 권째 읽었다는 사실.

 

좋아하지 않는 한 저자의 책을 세권 째 읽고 있다는 것은그가 강준만이나 진중권(엄청 난 다작 작가)이 아니고 서야 나에게는 없던 일게다가 소설가였다나는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이고그 때까지만 해도 세권 이상의 책을 읽은 소설가는 박민규 밖에 없었던 거다약간의 충격을 느끼면서 엄청 웃었다이상해 나싫어하면서 왜 읽고 있지게다가 그 사람 글들은 어쩐지 구체적으로 다 기억나...

 

거참 희한하다고 수다를 떨면서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고 이랬는데,

 

동생 왈 언니 그거네동족혐오.”

 

무슨 소리야내가 세상을 얼마나 애정 있게 바라보고 스스로도 따뜻해지려고 노력하는 데!

에세이도 그렇고 소설들도 그렇고 장강명은 너무 시니컬해.

세상 지가 제일 잘난 경영학과 예비역 같다니까?

 

*

 

 

약간의 현실 부정 시간을 가진 뒤..... 동족혐오 인정했다. (심지어 나 경영학과..)

 

나 잘 안된다세상 따뜻하게 바라보는 거인간에 대해 공감하고 미래를 낙관하는 거엄청 열심히 노력한다조금의 실마리라도 찾아서 괜찮다고 다독이고샅샅이 뒤져서 희망꺼리 발견해 내고 감동해서 막운다막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이야기 나오면 마음이 눅눅해지면서 '다행이야 이런 게 남아있어서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거 나라는 인간이 비관적이고 시니컬하다는 반증이다애초에 낙관하는 사람은 그렇게까지 노력해서 희망을 좇지는 않을 테니까.


내가 자살을 하지 않는 것은 미래를 낙관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살다가 그냥 죽어버리는 건 억울해서고내가 이민을 가지 않는 것은 한국을 긍정해서가 아니라 한국 말고의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요컨대 죽는 것보다 이민가는 것보다 지금 여기서 그냥 사는 게 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것.

 


*

 

 

그렇다면 장강명은 어떤가.

 

그가 그런 소설을 쓴다고 해서 자살을 부추기며이민을 준비중이며전쟁예찬론자이고 일베인가?

 

그의 글들에서 대체적으로 풍기는 비판적 냉소가 피부를 찌르는 가시 같기는 하다그렇지만 내가 소설들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상처를 마주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였던 것 같다상처를 마주본다라그런데 과연 장강명은 글로 나를 찔렀을까?

 

텍스트는 거기에 있다내가 손대지 않으면 찔릴리 없다읽은 건 나고그가 나를 상처 입힐 의도를 가지고 쓴 '편지'는 아니니, 아프고 불편했다면 그것은 내 어딘가가 취약했다는 것일 게다.

 

장강명이 포착하려고 하는 어떤 부분그가 소설로 그려내는 어떤 생각들이 너무 비관적이라며 그냥 털어버리기엔 아까웠다설령 그것이 냉소적 공격이라 하더라도조금 더 섬세하게 생각해 볼 필요는 있는 것이다몸 어딘가가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면 건강검진 전체를 받아볼 필요가 있는 것처럼그가 추상해내는 세상의 뒤틀리고 꼬인 부분을 팔리는 소재’ 정도로 치부하고 넘겨버리기엔허구 속 인물들이 너무 현실적이라 아팠고, 아팠으므로 생각할 거리가 많아졌었다.

 

시니컬한 작가 장강명은 소설 속에서 어떤 답을 내놓지 않더라도그 소설을 내놓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세상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물론 그가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지는 않다.)

 

 

*

 

 

동족혐오.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너 왜 이렇게 꼬였냐고참 잘났는데 못났다고그리고 따뜻해 보이는 데 차갑고성질은 고약한 데 착하긴 하다고여러 가지 모순이 공존하는 평가들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난 '사실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으면서 정말로 말을 못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구나. '그렇게 비관적 독설을 해놓고서도 결국은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구나이런 내가 싫지만 또 싫지 않다.(...좋아한다...)

 

 

뭐 그런 느낌으로다가.

작가 장강명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에는 그가 하는 팟캐스트도 듣는다.

들으면서 생각한다.

 

.... 나랑 생각하는 거.. 거의 비슷해젠장인정하기 싫다라고.

 



 

*문장들*

 

p. 29-31

 

솔직히 내 부모님과 HJ가 왜 서로 친하게 지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명절에 싫다는 아내를 자기 부모님 댁으로 굳이 데리고 가는 남자들은 왜 그러는 걸까보기 싫은 친지들을 만나러 큰집에 가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해마다 명절이 지나면 이혼 상담이급증하고 형제간 폭행으로 누군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꼭 나오는데다들 그런 위험을 각오하고 친지들을 만나는 걸까.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아마 그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뭔지 정확히 모를 것이다그냥 막연히 명절에는 가족이다 모여야 한다고 하니까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뭔지 알지만관습의 압력에 맞설용기가 없다어떤 사람들에게는 경제적인 동기가 영향을 미친다부모님에게 사업 자금을 빌리기 위해서라든가 그들을 저렴한 베이비시터로 활용하기 위해 평소에 다소간의 투자를 해야 한다.

 

나는 그런 사례에 하나도 해당하지 않는다나는 살고 싶은 인생의 방식이 있다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그리고거기에 필요한 리스트를 혼자 작성해보기도 한다그 리스트 가장 위에 써 있는 항목은 물론 HJ와 나의 행복한 결혼 생활이다다음으로 소설가로서의 성공이 있다부모님과 잘 지내는 일도 그 리스트에 올라 있다그 그림에는 나와 HJ 사이에서 꼬리를 흔들며 뛰어다니는 충직한 개도 한 마리 있다그러나 부모님과 HJ와 내 동생 부부와 조카가 나란히 서서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마지막장면 같은 분위기로 화기애애하게 웃는 모습 같은 건 그 그림에 애초에 없다.

 

부모님은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까그 그림에 내가 협조해야 하는 걸까글쎄우리 집 창고 문에는 효도는 셀프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HJ가 붙였다). 내 부모님은 나에게 효도를 받고, HJ의 부모님은 HJ에게 효도를 받으면 안 될까?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에 대해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다내 가족관은 기타노 다케시보다 훨씬 건강하다나는 내 가족을 아무도 내다 버리고 싶지 않다다만 그들을 서로 만나게 하지 않을 뿐이다그들이 서로를 대형 폐기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해.

 

 


p.83

 

쾌락 또는 행복의 총합 이론에서 HJ의 부재는 내가 죽어야 할 이유가 될까나는 HJ를 만나기 전에도 잘 살아왔다주관적으로 느끼는 쾌락과 행복의 정도를 수직선에 표시한다 치자그렇다면 나는 늘 그 표식을 수직선에서 0보다 오른쪽에양수 쪽에 표시해왔다그러니까 지금까지 자살하지 않고 살아온 것이다그리고 HJ를 만나 그 표식이 굉장히 오른쪽으로 뛰었다고 얘기할 수도있다낭만적으로 평가해살고 싶은 정도가 10점대에서 90점대로 뛴 것이다. HJ가 사라지면 그 점수는 다시 10점대로 돌아온다그러나 여전히 0보다는 위이며이 점수에 따르면 나는 HJ 없이도 사는 게 합리적이다.

 

어쩌면 이건 너무 단순한 수식일지도 모른다인간에게는 상실의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상실이라는 사건의 과정그 기울기의폭력성과 낙폭의 크기가 중요할 수도 있다그렇다면 순간의 비통함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

 


p.203

 

안나 카레니나에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에 대해 말하는 문장 있잖아.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다 다르다였던가그만큼 행복해지려면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는 뜻인 거지그중 한 조건만 모자라도 불행한 거고행복을 느끼려면 알맞은 온도멋진 경치적당한 배부름이 필요해배부른 게 아주 배불러서도 안 돼그리고 갈증이 나지 않아야 하면서 화장실도 가지 않아야 하고몸의 자세도 편안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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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2018-05-11 12: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강명 소설가를 비롯한 사회의 어떤 대상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이나 관점에 있어 흡사한 부분이 있어서 제 말인줄 알고 깜짝!
결국 누가 날 찔러서가 아니라 스스로 찔리거나 스스로 찔러보려고 하네요. 그런 충격들이 어느 경우엔 날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책은 책 자체로 좋아서읽기보다 글을 통해 저를 찌르기 위해 읽는다는 말. 그건 제가 책을 읽는 이유에요. 그래서 사실 책에게 평점 주는 일을 때로 거부하기도 해요. 아주 좋은 텍스트라 할지라도 제가 자극을 어떻게 받는냐에 따라 텍스트는 다르거든요.

데미안 2018-05-11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는 책을 선택할 때 저를 잘 찔러주는, 혹은 답답한부분을 찔러주는 책을 더 선호하게 되네요!

공쟝쟝 2018-05-11 14:19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공감하는 (혹은 공감할만하다고 생각하는..) 구절이 좋아서 책을 읽었는 데, 독서의 양이 늘어날 수록 점점 다른 생각을 가진 책을 읽는 경험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특히 저는 제가 싫다고 느끼는 구절에서 멈추는 경우가 왕왕 있는 데요.
소설 데미안에 이런 구절이 있죠. ˝너가 누군가를 싫어한다면 그건 그 사람 안에도 있고 너 안에도 있는 그 무언가를 싫어하는 거야. 우리 안에 없는 건 우리를 화나게 하지 않아.˝ (그러고보니까 데미안님이시네요.)

책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싫다는 느낌이 들면 그것이 내 안에 있다는 게 찔려서 그런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근래에는 장강명이 가장 큰 예였던 것 같아요.
‘아무리 세상이 그래도.. 아.. 저 생각들 좀 .. 너무 나간 거 아닌가?‘ 갸웃했던 그 거부반응은 사실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는 어떤 억압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데미안 2018-05-11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때 읽은 데미안은 잊을 수가 없네요. 내용을 다 기억해서가 아니라 그 당시 받았던 충격이랄까요? 다시 한번 읽어봐야하는데 망설여져요. 그 때 느낌들이 달라질까봐...그런데 오늘 적어주신 문장은 역시나 저를 깨게 하는 말이네요. 내 안에 있기에 더 두려운 어떤 것들로 타인에게 분노하는 인간이 되어버리는 우를 범하는 나란인간. 나부터 들여다보고 나부터 바뀌어야 하는 이유인거죠?

공쟝쟝 2018-05-11 15:58   좋아요 0 | URL
데미안.. 읽을 때 마다 느낌이 조금씩 달라지긴 하는 데, 확실히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 제일 컸던것 같아요!! 저 역시~청소년기의 최애 소설입니다.

봄밤 2018-05-11 1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이렇게 집중해서 읽기는 처음이에요! 잘 읽고 갑니다 :)

공쟝쟝 2018-05-11 19:26   좋아요 0 | URL
넘나리 기분 좋은 댓글! 고맙습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