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타임 요가 다녀오는 길, 뻐근한 허벅지와 시장에서 풍기는 황홀한 냄새들. 봉다리 달랑달랑 크고 굵은 예쁜 딸기.

막 갈아낸 원두 냄새, 물을 주면 부풀어오르는 커피가루. 똑똑똑 커피내려오는 소리.

창밖보는 고양이, 고양이를 보는 나, 창밖의 하늘, 하늘을 보는 나. 모처럼의 미세먼지 상태는 보통.

세탁기 돌아가는 소음, 소음을 들으면서 쇼파에 비스듬히 기대 있기. 오늘 읽을 책을 펴놓고 심호흡 한 번, 허리 세워보기. 이내 자세는 무너지겠지만 그래도 시작은 번듯이.

눈으로 읽다가 좋은 구절 발견하기. 밑줄 긋기 그리고 때때로 소리내어 읽기. 이 부분 참 좋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 살펴보기. 이 부분이 왜 좋은지 머물러보기. 하지만 다음 부분이 궁금하므로 마저 읽기로 한다.

읽기, 줄긋기, 커피 마시기, 딴짓하기,
앉아있던 나는 어느 순간 누워있다.
낮잠자면 딱이겠다.zzz
낙원같은 느낌이 들어 두다다 생각나는 구절 꺼내오기.
사진찍기.


오후에는 시장에서 사온 계피로 뱅쇼를 끓여볼 예정이다. 오늘 저녁엔 책 맥이 아니라 뱅맥이 되겠군.

#나의행복포인트 #모처럼의휴식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랙겟타 2019-03-08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모처럼의 휴식시간을 만끽하고 계시는 군요. .^^
좋은 책도 읽고 계시고 (저도 있는 책인데 아직 못 읽은..;;)
그리고 뱅쇼! 아아니.. 뱅맥!? ㅎㅎ
이번 겨울에 감기걸렸을 때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쟝쟝님 글에 저도 마치 휴식시간인것 같은 느낌이 물씬 ㅎ

공쟝쟝 2019-03-08 15:56   좋아요 0 | URL
맥주 안주로 뱅쇼를 마시는 주정뱅이의 하루를 보낼겁니다😬 이 유토피아 책은 쇼님이 추천하셨던거 같은데 완전 좋아요~ 헤헤 얼른 읽어야지!! 어랜만이예요 겟타님^^

단발머리 2019-03-08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모습, 아름다운 광경이에요. 꿀휴식 되세요, 쟝쟝님^^

공쟝쟝 2019-03-08 15:56   좋아요 0 | URL
저의 휴식은 택배상자 오픈으로 완전함을 이루었어요..꿀 휴식하겠습니다! 얍얍!
 
잘돼가? 무엇이든 -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이경미 첫 번째 에세이
이경미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 망한 것 같아, 징징대는 내게 동생이 사주보러 가자고 했다. 새해 맞이 좋은 제안이군. 덥썩 물었다.

아뿔싸. 잊었다. 사주가 필요없는 나의 사주.
스물 몇살 때, 사주카페에 간적이 있었다. 같은 돈 냈는 데 나는 5분만 상담해주고 같이 간 언니는 40분 상담해줬다. 왜 나는 적게 해주냐했더니 사주에 사주 같은 거 안 믿고, 주변사람들 말도 안듣고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다며 니맘대로 살라고 했다.

그리고 수년 후.. 내 사주는 변하지 않았다. (아........ 사주는 원래 안변하는 거지.)

*


-선생님:마라톤 한번 뛰었네. 아무것도 하기 싫죠? 손가락 까닥하기 싫은 상태라고 나오네 지금.
-나: (내심 용하다고 느끼지만, 꿰뚫리기 싫어서) 아, 그런가요?
-선:보통 사람들은 평생가도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데, 어릴 때 이미 자신을 잘 알게 된다고 나와요. 본인 이미 깨달았으니 그대로 사시면 되겠네요. 그렇게 사세요.
-나: 더 하실 말씀은?
-선:궁금한 거 없잖아요.
-나: (오.어떻게 알았지..) 그렇긴 한데... 그래도, 저 인생 망하지는 않겠죠? 음.. 최근에 이것저것...다 때려치우기도 했고...
-선: (정색) 그런데 본인이 망했다고 생각 안하잖아요.
-나:그래도 굶어죽을까봐...
-선:일이 하기 싫어 죽겠어도 이미 일을 하고 있는 스타일이라서 본인 앞가림은 문제 없을 겁니다. 조직생활 하지말고 개인사업하세요. 남들 한테 맞춰주는 거 인제 안하고 싶죠?
-나:!!!
-선:살고픈 대로 사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실 겁니다.

-끝-

=요약 : (이번 역시) 니 맘대로 하고 사세요.

사주팔자 같은 거 믿을 게 못된다고 생각했는 데,
본심 너무 꿰뚫려서 갑자기 사주 믿게 될 것 같았지만,
역시 사주를 믿으면 내가 왠지 지는(?)것 같아서 안믿기로.

*

“(229-231)
-제가 요즘 역학을 공부하는데요. 사람 운명은 정해져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들어요.
-(이경미)그럼 무섭지 않아요? 내 운명이 나쁘다는 걸 알게되면 어떡해요?
-나쁘더라도 전혀 모르는 것보다 그걸 아는게 더 마음 편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여기서 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이제부터 생각하면 되니까요.
....
그런데 『마인드 헌터』를 읽다가 문득 생각했다. 그래, 바퀴벌레와 같이 사는 지하 생활이나 바퀴벌레보다 더 끔찍한범죄 사건을 연구하는 지하 생활이나 어차피 인생 도망칠 수없다고.
이렇게 생각하니 진짜 무섭다. 여기서 더 나아질 방법이없다. 괜히 생각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지 말자.”


*

날 더러 이미 알고 있고, 자꾸 깨달았대서 돌아오는 길에 그게 뭘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대충 아래와 같다.
인생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됨 -> 그러므로 내 맘대로 할 수있는 범위 안에서 만큼은 내 맘대로 하고 살겠다 -> 움켜쥘 수록 빠져 나가던 인생이 손바닥 펴니까 손위에 놓여있음 -> 안 움켜쥐고 인생 바라보기. 움켜 쥐고 싶은 마음이 들면 딴 짓 하기.

팔자, 운명이 정해져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정해져 있다 한들 그걸 살아가는 나는 어차피 매 순간을 처음 겪어 낼거잖아. 그러니까 운명까지는 모르겠고, 인생은 너무 열심히 살면 억울하니 열심히 안사는 방향으로 정했다. 나는 아마 망하지 않을 것이다. 뭔가를 망할 만큼 쌓거나 채우거나 이루지 않기로 했으니까.

때때로 무리하려 들 때/열심히 하고 싶어질 때/ 마다
이경미 감독 말대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지 않기”

*

나라는 사람은 너무 고생하면 억울해서 맘이 좁아지고 남들한테 야멸차지고 그러더라, 고난을 이겨내면서 막 더 크게 깨닫고 맘 넓어지고 전혀 아니더라. 그러니까 나는 나의 고생과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그게 남한테도 좋은 것 같다는 생각.
뭐 요즘의 나는 그렇단 이야기.

*

이경미 감독 에세이의 효과 : 나 따위도 어쩌면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22)
사랑을 잃었다고 무너지면, 나는 끝난다. 나한테는 나밖에 없다. 매일 매시간 매초, 나를 때리며 악으로 버텨왔는데, 창피한 줄 모르고 아무 때나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그렇게 매번 눈물을 흘리고 나면 마음은 편해졌다. 숨 쉴 수있어서 좋았다.
그냥 내가 마흔을 목전에 둔 서른아홉 가을에 그랬었다는 이야기.

(137)
올해의 결심.
별로인 것을 두려워 말고 쓸 것.
정말 간절히 원하면, 원하지 말 것.
나나 잘할 것.

(188)
내가 살림하는 사람이 못 된 이유는 아빠의 뜻을 따른 게 아니라 지독하게 소질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잘 돌볼 줄 아는 사람은 살림을 해도괜찮다. 살림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살림을 하면 온 집안이 불행해진다. 나는 지금도 아찔하다. 내가 만약 아이를 낳고 살림을 했다면 후회만 남을 육아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

(252)
시나리오를 쓰면서 경계하는 점.
나를 무고하고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으로 만드는 습관.
어려운 장애물을 대충 피하고 싶은 습관.
인물을 통해 남 탓 하고 싶은 습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9-02-12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 에세이 완전 제 스타일인데요.
제목만 보고 너무 쉽게(?) 생각했어요. 저도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그나저나 쟝쟝님 사주 진짜 좋은대요.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세요!!!

공쟝쟝 2019-02-12 20:47   좋아요 0 | URL
ㅋㅋ 저 이경미감독 영화 매우 좋아하거든요~~! 쿄쿄 ^^ 이경미월드를 살짝 엿볼 수 있는 재미난 책이엇어욥!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 SNS부터 에세이까지 재미있고 공감 가는 글쓰기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에 대한 평을 남길까 했는 데, 저자에 대한 평을 남기고 싶어졌다. 종종 팟캐스트로 만나는 이다혜 작가에 대한 인상은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확신을 얻었다. 그는 ‘매우’ 똑똑한 데다 트랜디하기까지 하다!
업데이트 안되는 아재지식인들 글 읽다가 문화적 감수성이 풍부한 소위 X세대 언니들의 글을 읽으면 가끔 눈이 화~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이 그랬다.

숱한 ‘글쓰기 팁’ 책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요즘, 이 분야의 적지 않은 책들을 읽어왔다. 솔직히 이만큼 섬세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글쓰기 관련 책은 못봤다.
“(213)소확행 시대의 글쓰기”에 최적화된 듯도 싶은 책. 대단한 작품을 준비중이신 분들 보다는 sns에 리뷰를 잘써보고 싶은 평범한 소시민(?)들께 권한다. 언제부턴가 한 사회의 문화적 총량이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읽고 쓸 때 늘어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또 과감히 써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114)
우리 모두는 어떤 면에서 기인이고, 하나뿐인 방식으로 망가진 존재이고, 그 상태로 살아가기 위해 소통하는 법을 어렵게 배 워가는 거라고, 그러기 위해서 제대로 듣는 법을 익혀야 말하고 쓸 수 있다고.

(127)
간접경험과 직접경험, 그리고 그 모두에 존재하는 나 자신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기. 글쓰기. 나 자신이 되겠다는, 가장 강력한 행동.

(157)
어떤 일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상처에 대해 쓸 수 있다는 말은 상처를 잊었다는 뜻이 아니라 상처와 함께 사는 법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당신이 도저히 글로 옮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언제가 되면 글로 옮길 수 있을까. 서두르지 말자. 이것은 이기고 지는 배틀이 아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1-14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4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뒷북소녀 2019-01-14 1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저 예전부터 장바구니에 담겨 있던 책인데 바로 결제합니다.

공쟝쟝 2019-01-14 21:54   좋아요 0 | URL
으앗🤗 책읽고 난 뒤의 뒷북소녀님의 멋진리뷰 기대할게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 인생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
정문정 지음 / 가나출판사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은 심리적으로 좀 타격이 있다.
소화 안되는 말들을 너무 많이 들었더니, 무기력하다.
나름의 제지를 해도, 계속해서 “자기 생각만”을 강요하는 사람, 심지어 그게 “선의고 호의”라고 착각하는 상사는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하니까 인류가 다 밉다.

“(p.173) 좋은 의도로 조언을 하느라 그러는 것이기에 정색하기도 뭐하다. 그렇다고 참고만 있기에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 서로 상처받지 않고 대화를 종결하는 데 필요한 자기만의 언어를 준비해두어야 한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주로 두 개의 문장을 사용한다. 바로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와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다.”

평소엔 나름의 대처법으로 잘 넘어갔는 데, 오늘은 역습당했다. 그분의 가스라이팅에 지쳐 같이 일하던 동료가 그만두었기 때문ㅠㅅㅠ 같은 공간에 나 밖에 없어서 계속 당했다.. 못참고 “알아서 할게요” 했다가 더 혼났다...

“오늘 저땜에 기분 안좋으셨다면 죄송합니다.”
퇴근이라도 좀 가뿐하게 하려고, 전향적인 태도(굿바이 인사 섞인 분위기 푸는 말)를 취하자 마자 집가려고 가방 든 상태에서 “내 기분보다는, 니가 일에 대한 관점이 잘못된 것 같은데 그걸 고치지 않으면 blah~~blah~~~~” 십오분 서있었네??

어쨌든 그렇게 한 껏 내 관점 교정해주시고 내 인생설계를 해주시다가 자신의 말이 자기도 멋졌는지 뿌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나에게 정말로 도움되었다고 생각하시는 듯 해서... 무기력하고 슬펐다.

너무너무 피곤해서 오자마자 잠들었다가 열두시 넘어서 깼네.. 망했다.. 잠 안온다..

업무 지시는 안하고, 자꾸 인생 조언을 하려고 하시는 관리자 급 여러분, ‘업무’ 솔선수범으로 자신의 ‘멋진 인생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세요.
또 “내가 진짜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다” 는 우리 가족도 내 친구도 나한테 해봤자 안듣는 말 이므로 결국 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하는 말일 뿐입니다. 주어를 바꾸세요. “내가 진짜 너 땜에 빡쳐서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하는 말이다”로.

그러고 보니 이 책 #무례한사람에게웃으며대처하는법 그만둔 그 동료가 넘 안쓰러워 읽어보라고 빌려줬었는 데.... 새로운 직장에서는 더 좋은 상사 만나시길.. 아니면 웃으며 잘 대처하시거나 ㅠㅡㅠ

그리고 앞으로 나님은 나이 어린 사람 포함 모든 사람에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랍시고 5분 이상은 떠들지 않기로 하자. 5분이 넘어가면 결국 자기 위로일 뿐.


"(p.20)터벅터벅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어도 밖에서 묻혀온 부정적인 말들은 털리지 않고 방까지 따라 들어왔다."

"(p.188)직장 상사는 당신의 멘토가 ‘원래’ 아니다. 사람은 나이가 더 많다고 해서, 경험이 더 많다고 해서 저절로 현명해지지 않는다. 드라마 〈미생〉에서 사원 장그래의 멘토였던 오상식 과장처럼 뒤에서 자신을 돌보고 신뢰해주길 바라겠지만, 그런 사람은 드라마에서나 존재한다. 자신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강하게 어필하면 직장 상사가 그 속내를 헤아려줄 것 같은가? 그런 일은 절대 없다"

"(p.222)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자꾸 참으면 내가 무기력해진다. 무례한 사람을 만난다면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나만의 대처법을 갖춰야 한다. "다들 괜찮다는데 왜 너만 유난을 떨어?" 하는 사람에게 그 평안은 다른 사람들이 참거나 피하면서 생겨난 가짜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인류는 약자가 강자에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라고 함으로써 이전 세대와 구별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8-11-09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저 사람 뭐야, 그냥 이것만 읽어도 딥빡치네요... 공장쟝님, 빨리 저런 더러운 기억 지워버려요. 으아, 진짜 저 욕 별로 안하는데 저절로 욕이 나와요... 이런 쌍쌍바....
저 책은 제목과 표지는 매우 익숙하나 별로관심없던 책인데, 인용문이 참 와닿네요.
여튼 뒤늦은 댓글이지만, 오늘은 좋은 말 좋은 일만 가득하셨기를...!

공쟝쟝 2018-11-09 16:47   좋아요 0 | URL
여기에 쓰고나니 분이 좀 풀렸어요! 고마워요~!! 피쉬님 >.<
 
마음이 헤맬 때 몸이 하는 말들 - 자존감이란 몸으로부터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디아 지음 / 웨일북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름내내 아팠다. 아프다는 핑계로 일을 놓을 수 없는 나이라는 것을 알았다. 찌는 듯한 더위의 시간들을 후끈한 파스로 겨우 버티었다. 일이 다 끝난 후에야 통증들을 돌 볼 수 있었다. 엑스레이니 CT니 했다. 부담스러웠다. 그 흔한 실비보험 하나 들어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험을 든다는 것은 어쩐지 현실에 정박한다는 느낌이었다. 그 보다는 이자며 생활비도 빠듯한데, 보험들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사고나면 그냥 죽는 거지 뭐. 쉽게 여겼다. 젊었으니까.
아프고 나니까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무사해야 한다.
무사하고 싶다.
_

밤새 더위와 저림으로 뒤척이고, 낮에는 약먹으면서 모니터 앞에 앉았고 이삿짐을 날랐다.
쉴때도 고개를 숙이기 어려웠다. 거실 에어콘 앞에 정좌하고 앉아 아무생각도 없이 있을 수 있는 마블 영화를 마스터했다. 이 상태가 영원하지는 않겠지. 더위만 물러가도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나를, 내 몸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여름을 보냈다.
어느 날부턴가 폭우가 쏟아졌고, 가을이 성큼 와있었고, 드디어 일을 줄였고, 병원에 갔고, 체육관에 갔다. 열심히 다녔다. 그 일만이 내 일인 것 처럼 몸에 몰두했다. 나는 무사해야하니까. 건강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_

한참 안좋을 때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헤맬 때, 몸이 하는 말들>
˝(p.7) 몸은 단지 머리를 이고다니는 도구가 아니다. 그 자체로 완벽한 지성을 갖고 있다. 몸은 마음이 길을 잃었을 때 어떻게 살면 좋은지 속삭여준다.˝

몸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던 걸까. 삶의 세팅을 다시해야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삶에서 감각하는 삶으로.
발산하는 삶에서 응축하는 삶으로.
무엇보다 스스로를 돌보고, 자신 부터 존중할 수 있기를.
_

곰곰이 읽었고, 천천히 읽었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엉엉 울었다. 무한히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안했다.
방치한 내 몸에게, 잊어버린 내 몸에게 많이 미안했다.

˝(p.44) 몸은 내가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마땅히 희생을 치러야 하는 도구인가?
몸은 내 감정의 배출구인가?
그렇다면 몸이 존중받을권리가 있는가?˝


몸을 나에 속한 어떤 소유나, 브랜드가 아닌 하나의 ‘지성‘을 가진 어떤 인격체(?)로 대하는 저자의 관점이 마음에 들었다.
너무 ‘내 것‘이라고 여기면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 처럼, 몸도 그러했다.
따로 떨어져있는 존재로 내 몸을 바라보니 - 저질체력이라고 원망하고, 호르몬의 노예라고 못마땅해 하던 - ‘몸‘에게 사과부터 해야지 싶었다.
_

행복은 어떤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일 수도, 관계에서 오는 충만함일 수도 있다. 동시에 행복은 내 몸과 따로 떨어져있지 않다. 나의 ‘몸‘이 감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행복이다.
“(p.56) 행복은 몸을 훑고 지나가는 감각이다. 몸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식물이 햇볕 쪽으로 온몸을 향하듯이, 행복한 감정을 일으키는 쪽으로 몸을 돌려가며 산다. 행복에 대한 센서는 살아 있는, 더 생생하게 살고자 하는 몸에서 나온다.˝
_

˝(p.189) 일상에서 숨을 자주 의식하면 고요해진다. 고요한 순간에는 나를 보고 있는 또 다른 나에 대한 시선을 얻을 수 있다. .. 숨으로 자주 고요를 불러오면, ‘나‘가 넓어진다. 나를 포함한 풍경이 곧 나임을 볼 때,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책에는 몸을 의식하는 법, 숨을 잘 고르는 법 등 일상에서 응용할 수 있는 작은 팁들과 그 배경이 되는 원리들이 빼곡하다. 가벼운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몸 자체에 대한 사색과 설득력있는 정보들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나는 책에 따라서 몇가지 루틴들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호흡하기, 의식하기, 움직이기.(그 전에 잘못 잡혀있는 일상의 습관을 몇가지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 싶다.) 쭉 잘해왔는데~ 요즘 또 바쁘다는 핑계로 좀 지지부진 해졌다. ˝많은 청정한 하루˝들을 쌓아야한다. 몸이 내지른 여름의 비명을 단단히 새겨듣자. 내 정신머리야, 라고 다그치기 위해 적어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10-18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9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