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다가 영영 못 읽을까봐 - 강연으로 쉽게 시작하는 노벨문학상 읽기
심원섭 외 지음, 한국근대문학관 기획 / 홍시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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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단, 책의 만듬새가 예뻤다.

연보라색도 예쁘지만, 작가들의 일러스트와 인스타그램이 떠올려지는 정성스런 내지 편집.. 빌려봐서 몰랐는 데, 검색해보니 겉싸바리에는 노벨문학상 연보가 디자인 되어 있다고 한다. (센스+정성 돋고요) 무엇보다 넘나 뼈때리는 책의 제목 때문에 읽게 되었다지. 생각보다 내용도 알차서 읽고나니 교양이 막 쌓인 것 같은 기분.


2. 최진석_ ‘알렉시예비치 목소리 소설’

여전히 소설에 무지몽매한 내가 이 책에 언급된 작품들 중에 완독한 책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데미안>정도. 그래도 좀 읽었다고, 알렉시예비치 편은 특별히 잘읽혔다. 작년에 그녀의 ‘목소리 소설’을 읽으며 어찌나 마음이 복잡했던지 (방금 찾아보니) 당시 알라딘 독후감에 “결론내지 않음을 견디는 연습”을 하겠다고 적어놨었다.

소설을 읽는 내 머릿속은 혼돈의 카오스였는데, 뭔가 그 생각이 왜 떠오르는지도 설명이 안됐었다.🤯 이 책을 읽으니까 좀 정리되는 기분이다. 최진석님이 그 혼란함의 정체를 아주 장황하고 간결하게(?!) 설명해주셨다!!! (ㅠㅠ소설 다 읽고 독후감을 쓰고도 정리못한 부분을, 소설을 정리한 책을 읽어야 정리되는 나의 뇌는 참 나답다🤷🏻‍♀️🤷🏻‍♀️🤷🏻‍♀️)

“(125) 작품을 읽다보면 당혹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가가 인터뷰한 증인들의 상당수는 물론 여성들이에요. 그들이 호소하는 삶의 비극은 전쟁으로 인해 빼앗기고 훼손된 여성의 삶과 권리로부터 연유하는데, 문제는 그렇게 박탈당한 여성성이 전통적인 가부장제 하에서 형성된 여성의 이미지에 굉장히 가깝다는 데 있습니다. 증언자들은 여성으로서 ‘상적인’ 삶을 살지 못한 자기들의 일생을 한탄하고 슬퍼하며, 남자들이 일으킨 전쟁을 원망합니다. 그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남자들의 일’이기 때문이에요.”

“(131)그럼 알렉시예비치의 소설은 어디를 향하는 걸까요? 그녀의 문학이 갖는 진정성은 어디에 있을까요? 도덕인가요, 윤리인가요? 저는 방금 알렉시예비치의 소설에 나오는 여성 등장인물 들이 도덕적 경계 안에 머무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이 작가의 문학은 단지 우리의 통념에만 복무할 뿐, 별다른 새로운 의미를 갖지 않는 걸까요? 하지만 우리는 알렉시예비치의 문학에서 모종의 파토스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는 것도 분명하지 않습니까? 작가의 진정성이란 게 분명히 있는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발현했는지 캐물을 필요가 있어요. 달리 말해 그녀의 글쓰기가 어떤 진정성을 일깨우고 문학의 윤리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있다면, 내용이 아니라 형식(표현방식)으로부터, 사실의 형식이 아니나 허구의 형식이라는 이중의 시점에서 이야기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147) 알렉시예비치의 소설에서 여성적인 것을 찾아낸다면, 그것은 이런 유령적인 것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도덕을 말하지만 도덕을 빠져나가고, 사실을 추종하지만 늘 사실과 배치되거나 반하는 비남성적인 흐름이랄까요. .. 우리가 사실과 동치시키고 싶어하는 실재the real는 손에 잡을 수 있는 현실을 빠져나가 단지 흩뿌려지기만 하는 목소리로 실존하고, 그 목소리는 발성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직 듣기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목소리 소설은 본래 허구적일 수 밖에 없고, 그것의 윤리는 병리적일 수 밖에 없는 게죠.”

“(149) 역사에 기입되지 않은 비가시적 실존으로서의 증언들, 그들의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들리지만 입증할 수 없고, 기록되지 않은 것이기에 허구적이지요. 건전하고 승리에 찬 도덕이 아니라 우울증적 충동으로만 표현되기에 병리적이라고 할 만해요. 우리가 증인들의 이야기에서 남성의 도덕과 권위, 질서의 각인을 필연적으로 찾아낼 수밖에 없는 것은 그와 같은 병리성의 일면일 겁니다. 요점은 여성 증언자들의 목소리에 포함된 남성 도덕을 발견해 그들을 힐난하거나 절하시키는 게 아니에요. 차라리 여성의 목소리에 실린 남성과 도덕의 파열점, 그 좁은 틈새로부터 흘러나와 이리저리 유동하는 비일관적이고 망가진 목소리를 포착하여 끝까지 듣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유령적 대상을 포착하기 위한 방법 역시 유령적이라는 것은 불가피하지 않겠어요? ‘사실의 문학’이 아니라 ‘유령적 글쓰기’로 알렉시예비치의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진실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듯 합니다.”


음하하! 기억해 둘 만한 문장들을 가져와 보았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 제가 그래서 혼란스러웠던 것이로군요? 책을 읽으면서 가려웠던 부분이 잘 긁힌 느낌이었습니다.
최진석님 그대, 배우신 분.


3. 니논한테 물어봤어?

“(258) 1931년 11월 54세의 헤세는 36세의 젊은 니논과 세 번째 결혼을 합니다. 특이한 점은 성생활을 배제한 결혼생활을 약속했다는 것이지요. 결혼식 후 부인은 이탈리아로 혼자 신혼여행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같이 있으나 따로인 결혼생활을 하면서 남은 평생을 헤세에게 헌신합니다. 그녀는 가사를 도맡고, 책을 읽어주고, 편지를 대신 써주고, 방문객을 통제하면서 거의 부모와 같은 돌봄으로 헤세를 지켜줍니다. 영리하고 이해심 많은 니논의 애정과 그녀 스스로 자처한 봉사를 헤세도 좋아했습니다. 그는 스위스 남쪽 지방의 아름다운 자연에 침잠하여, 시와 소설을 쓰고 수채화를 그리면서 만년의 안정을 찾습니다.”

얼마 전에 이외수의 (전)부인 인터뷰를 읽었던터라, 절대로 곱게보이지 않았던 문장. 정말로 그녀가 평생 스스로 ‘자처한 봉사’를 행복하게 했을지도 미지수이지만, 이런 이야기(큰 인물 뒤에 현모양처)가 너무 흔해서 싫다. 이런 서사가 당연해지면 ‘엄마가 잘못해서, 부인이 악처여서 내가 성공을 못해’ 류의 대환장 주장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여성의 돌봄없이 알아서 혼자서도 잘해내며 대작 쓰는 남성 작가 찾기는 정말 하늘의 별따기로구나. 반면에 몰래 쓰고, 쓰다가 쫓겨나고, 애키우며 쓰고, 도저히 안되겠어서 혼자 살며 쓰는 여성 작가는 너무 흔하다.

모든 것에 대해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언설대로 문학이 끝났니 어쩌니 한다면, 그건 남자들이 쓴 문학이 끝난 것이라는 생각.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었으나 '여백으로만 남아있던 돌봄'을 다시 텍스트로 적어 내리는 것이 문학과 (어쩌면)여성들에게 남은 몫 일 것이다. (난 오래오래 살아서 그 적히지 않은 것들을 실컷 읽을것이다!!💪)

저 단락을 읽으면서 작품에 대해서는 찬탄하더라도, 작가에 대해서는 환상을 가지지말자라고 다시 한번 다짐하였다. 자기를 돌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작가들의 곁에서 끝까지 여백이 되어버린 그네들의 돌봄에 대한 나름의 의리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남자 저자들 연보 뒤져서 지 빨래 지가 돌렸는 지, 싱크대 개수대 비우고 나서 남은 음식물 낀거 수세미로 뽀득뽀득 닦았는지 확인해보고ㅋㅋㅋ 아닌 상태에서 삶과 세계를 고뇌하고 있으면 별을 반개씩 깎겠습니다!!!!


4. 제목 good👍

이번 주 책 읽을 시간이 통 안나서, 버스타고 오가는 동안만 독서시간으로 사용했는 데, 제목 탓인가 금새 읽어버렸다. 조근조근 구어체의 강연해주는 느낌의 책들도 대중교통에서 잘 읽히는 것 같다. (점점 대중교통에서 책읽기 마니아가 되어가는 듯)

유튜브로 영화 소개영상 보고 난 후 막상 그 영화는 안보고 다 본 것 처럼 느껴버리는 문화생활 가성비(?)주의자인 나같은 사람에.. 이처럼 책을 소개해주는 책이란... 네, 참 잘읽었고요, 노벨문학상 받은 작품들 덕분에 다 읽었으니.. 다른 책 볼 시간이 늘어났네요. 감사합니다? 🤣
미루다 영영 못 읽을 노벨문학상 작품들을 대강이나마 훑었고 영영 미루게되었으며 (ㅋㅋㅋ) 그래도 오르한 파묵 소설과 에세이, 언제나 읽다 포기했던 <유리알 유희>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끗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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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u 2019-06-07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밌게 읽기좋게 쓰시네요 부럽습니다
덕분에 이 책에 관심을 가져 봅니다

사소한 오타 : 금새 -> 금세

^^
신나는 하루 보내세요!

공쟝쟝 2019-06-07 09:18   좋아요 0 | URL
앗!! 고맙습니다! 사소한 오타가 아니라 정말로 잘못알고 있었어요 ~ㅋㅋㅋ 금세! 기억하겠습니다 ^_^

붕붕툐툐 2019-06-13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페이퍼 읽으니 저도 관심이 확 생기네요~ 읽고 싶은 책에 살포시 담겠습니다:)
 
태도의 말들 - 사소한 것이 언제나 더 중요하다 문장 시리즈
엄지혜 지음 / 유유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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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48시간 법칙을 만들었다. 순간 기분이 상하더라도 일단 참고 본다.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황당한 말을 들어도 우선 좀 참는다. 메일을 쓰다가 전송을 누르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나의 이 기분 나쁨을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나은가 따져 본다. 24시간이 지나고도 마음속이 부글부글 끓는다면, 또 24시간을 참는다.
이틀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질 때가 많다.”

_
그제 늦은 열 한시경 갑자기 속에서 깊은 빡침이 올라와 매우 정갈한 아무말 대잔치를 적어 발송해보내려다, 문득 이 책에 나온 48시간의 법칙이 생각나서 이틀 뒤에 보내려고 아껴놨었다.
이 책 읽기를 얼마나 다행인지 ㅠ_ㅠ...


하루가 채지나지도 않은 다음날, 자고 일어나자마자 안보내길 잘했다 싶었다. 어차피 내가 화난 건 나만의 사정이고 상대방의 사과를 받고 싶은 것도(진심이 아닐테니까) 화낸다고 뾰족한 방법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사라졌다거나 마음이 편해지지도 않았지만, 다스리지 못한 분노로 상처주지 않은 건 다행이라도 생각한다.
유용한 구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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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107) 
어느 날, 피해 여학생 중 한 명이 다른 여학생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해자들이 더(?)놀란다. 그녀는 성폭행을 당한 다음 날, 삭발을 하고 단정한 교복 차림으로 등교해 공부에 매진한다.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못한다. 가발을 쓰지 않는 한, 삭발한 채 원조 교제 시장에 나갈 수는 없을 테니까. 이 지옥에서, 여성 특히 10대 소녀들의 가치는 섹스 뿐이다. 그러므로 ‘삭발한 계집애는 필요 없다’. 그녀는 그렇게 그들에게 쓸모없는 여자가 됨으로써 살아남는다.
세상이 망했지만, 망한 사회도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그 사회가 원하는 주체가 되려고 한다. 그래야 성원권을 얻으니까. (...) 성폭행을 당하면 인생을 포기하고 그들이 원하는 여자가 되어야 하는가? 고통스럽게도 이 영화의 여학생들은 그 방식을 택한다. 그런데 그 소녀는 삭발이라는 ‘반여성적인’외모로 이렇게 선언한다. “너희들이 나를 망치기 위해 아무리 발악을 해도, 나는 너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이 소녀가 희망을 찾는 방식은 망한 세상의 타자가 되는 것이다. (....)
상처의 크기는 권력의 크기이기도 하다. 상처를 강조하면 상대방의 권력도 커진다. 그 소녀는 ‘상처받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권력에 저항하고 그들을 비웃는다. “너희들은, 나를 망칠 만큼 대단하지 않아.” ‘우리’는 상처받았음을 강조하는 대신에 저들의 폭력을 폭로해야한다. ‘우리’의 상처가 크고 작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슈가 되면, 우리는 지배 집단과의 싸움보다 누가 더 큰 상처를 받았는가를 두고 ‘경쟁’하게 된다. 문제는 ‘그들’이 사는 메커니즘 자체이고 그들의 잘못이지 ‘우리의 약함’이 아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주체이자 타자이다. 물론 이것은 곡예다. 주체가 되는 방식은, 여성이지만 남성의 규범을 따르는 ‘주변부 남성’이 됨으로써 가능하다. 타자되기는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고 낙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성폭력과 성매매라는 제도에 강제당함으로써 성적 타자로 만들어진 상태에서는 ‘반여성’이 되어야 한다. 남자들이 원하지 않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 이 영화에서는 삭발, 즉 자원으로서 외모를 버리는 것이다.(...) 나는 이 소녀의 저항방식을 알려준다. 피해자는 여성의 성 역할이다. 이 소녀는 피해자 역할을 거부했다. 




내가 사랑했던 영화에 내가 사랑했던 장면을 내가 왜 좋아했는 지 말로 표현하지 못했었다. “쿠노야ㅜㅜ잘해써.. . 츠다야ㅜㅜ아..안돼..” 당시 내 감상의 전부. 15년 전 소녀였던 나에겐 언어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페미니즘이 없었다.

오늘 내가 사랑하는 작가가 그의 프리즘으로 영화 장면을 해석한 글을 읽었다. 20년 가까이 흘렀는데도 텍스트가 지금과 딱 붙어있다. 

15년 동안 잊지 못한 영화 속 장면에 적절한 각주가 생겨 너무 반가웠던 나는 거의 페이지들을 씹어먹을 뻔 했다.

(102)이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관객이 있고,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관객이 있을 것이다” 

맞춤한 언어가 없어 너무 아파 후자의 관객이었던 나, 근 미래에 ‘(두 번은 볼 수 없었던)인생 영화’를 한번 더 보기로 마음먹다. 이젠 소녀도 아니거니와 영화가 폭로하는 고통에 당하지만은 않는 무기를 갖게 되었으므로.

덧, (mp3시절) 릴리슈슈 ost 였던 Glide 귀에 닳도록 들었는 데, 오랜만에 생각나서 멜론 뒤졌으나 찾을 수 없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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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가 된 독자 -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양병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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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구엘은 ‘세계 최고의 독서가’라는 데, 대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내용의 절반은 이해 못했어.😭)

이 얇은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무척 방대하다는 것에서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책의 구조가 돋보였다. 


1. ‘세상’이라는 거대한 ‘책’을 읽는 ‘독자’라는 큰 메타포(은유)안에서
2. ‘독자’에 붙어온 세가지 메타포-여행자, 은둔자(상아탑), 책벌레-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서양의 고전들을 훑고
3. 고전의 내용과 주인공들을 ‘독자’로 한 번 더 은유해낸다.

이를 테면 망구엘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상아탑에 갇힌 독자’로 비유했는 데 그 내용을 읽다보니 ‘아, 햄릿이 이런 내용이었어??’(원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생각하게 되어 버린달까.

“(108) 햄릿이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어서가 아니라 학문적 가르침에 잔뜩 얽매여서다. ‘대학의 교리 문답 서를 모두 잊고, 현실의 경험에서 다시 배워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소재에 꽂혀서 영화나 책 등을 보면 그 영화가 나에게 만큼은 다 그 소재 위주로 해석되어 버리는 것 처럼, 이 세계 최고 독서가(!) 망구엘은 그 명성 답게 숱한 책의 내용들을 ‘독서’라는 행위와 ‘(어떤 유형의)독자’라는 키워드로 다 해석해 내버리신다.

어찌보면, 진정한 책 덕후가 집필한 책 속에 나온 책 덕후들의 은유+분류 라고 할 수 있을 듯??😏

*

독자로서의 나는 여행자의 목적을 가지고, 사실은 은둔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 섭취의 내용은 책벌레 유형인 혼종의 형태를 하고 있다. 텔레비전 소리로부터 도망쳐 슬그머니 방문을 잠그는 나에게 어제도 엄마는 “그놈의 책책책~” 하시지만, 가끔은 내가 읽어서 이렇게 세상에 적응을 못하나 싶기도 하지만, 😢

나는 정말인지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읽는다. 좀 더 많이 이해하면 이해되지 않아서 화나는 상황들이 줄어들 거든. 물론 무심코 이해해버려서 나를 해쳐온 것들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않을 권리도 가르쳐 준다. 책은.


“(168) 우리는 ‘독서하는 피조물’이다. 단어를 섭취하고, 단어로 이루어져있으며, 단어가 존재의 수단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단어를 통해 현실을 파악하고, 자아도 확인한다.”

*

어쨌든 기회가 주어진다면(?) 몽테뉴로 살아보고 싶다. 3층에서 책을 읽다 지치면 2층 침실로 내려와 쉬는 삶이라니. 게다가 3층에는 다섯개의 서가마다 천권의 장서가 빼곡히 꽂혀 있었다고 한다.


덧, 사진 설명 - 진짜 책벌레가 나타났다!!.jpg

“(13) 세 번째 메타포는 ‘독자=책벌레‘라는 메타포다. 책벌레라는 개념은 좀목에 속하는 곤충에서 유래하는데, 이 곤충은 종이와 잉크로 구성된 책을 실제로 먹어치우는 벌레로 일찍이 안렉산드리아 시대부터 ˝도서관의 청소부˝로 악명을 날렸다. 책벌레란 독서를 통해 지혜를 얻지 못하고, 마치 좀벌레가 책을 먹어치우듯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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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4-17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낚였습니다 -

이 책 사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세월의 날카로운 이빨에 짖이겨지는...

우리의 시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네요.

공쟝쟝 2019-04-17 17:41   좋아요 0 | URL
하지만 전 독서량이 미미하여 이 책을 매우 어렵게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읽었습니다 ㅠㅠ 서양 고전문학 책좀 읽으신 분들께는 추천입니다! ㅋㅋ
 
나에게 다정한 하루
서늘한여름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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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우를 먹었다.
실컷 먹었다. 맥주도 먹었다.
그렇게
<나에게 다정한 하루>를 보냈다ㅋㅋㅋ

동세대의 멋진 창작자를 발견하면 마구마구 응원하고 싶다. 이번 책 역시 너무 좋았다. 게다가 서밤님이 점점 페미니스트로 변하는 모습도 멋지다. 언제나 공감가는 저자의 고군분투. 그를 응원하는 것은 어찌보면 나를 응원하는 것 같기도 해서 응원하면서 더 힘이 난달까.

“(326)
힘들었던 이야기들만 적어서 기억하면
힘든 날 희망을 찾을 수 없다.
내 인생이 제법 마음에 드는 오늘이 있었다고
잊어버리지 않게 또박또박 적어놔야 한다.
힘든 날 눈을 감고 떠올릴 수 있는 하루를
무너졌을 때 다시 돌아올 어떤 지점을
마음 안에 품고 살아야 한다.
돌아갈 곳을 안다면 조금은 덜 두려울 것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 쓴다.
좋은 날은 귀하기 때문에
좋은 날을 만나면 기억해둬야 한다.
그래야 힘든 날에도 다시 돌아갈 곳을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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