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정말 너무 좋아서 (좋아하는 에세이의 경우 떠나보내기 싫어서 오랜기간 붙잡고 있다) 출간되자마자 사서 틈틈히 두번세번 앞으로 돌아가며 읽다가 드디어 4부에서 도저히 못읽겠는 순간이 와버림ㅋㅋㅋ 

왓더... 너무 근지러.... 낭만적 이성애 따위.. 무시하고 싶지만 글 너무 따뜻해서 무시가 안되서 힘들다...ㅋㅋㅋ 
내 삶 느무 팍팍하게 느껴져.. 사랑 없는 삶ㅋㅋ 자기만 있는 삶ㅋㅋ

여튼 정말 재밌게 읽다가, 아예 못읽겠는 거 보면 내 마음이 샘나나 보다. 
4부 때매 완독은 불가능... 5부로 넘어갈 것인가 그냥 덮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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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10-30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지 말고 증승스릅그스릉흡스드
 
일하는 마음 - 나를 키우며 일하는 법
제현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잘하는 것 한 가지만 있으면 대학간다’던 시절을 살았었다. 대학은 다들 잘가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이에 세상은 변해서 ‘n잡러’ 라는 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하나가지고 먹고 살기는 어려워진 그런 오늘이 되었다.

어떤 간판도, 전문성도, 자격증도 원천적으로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뚝뚝 잘려나가는 경력(단절)처럼, 삶도 툭툭 끊어져 버리는 것만 같다. 일은 어렵고, 잘해봤자 사장만 좋을 일 같고, 잠깐 정신 줄을 놓으면 내가 일인지 일이 난지 분간이 안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삶의 고삐를 일이 채어가게 내버려 두지 않으면서도, 막상 하는 일에서 무능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읽었다. 

“(10)경쟁이나 승자독식같은 말이 당연한 규칙이 되어버린 사회에서는 나의 치열함이 의도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일을 잘’하고 있는 저자가 조심스러우면서도 단단하게 일에 대해 여러 조언들을 해주었다. 대체로 끄덕끄덕 끄덕끄끄덕덕 하면서 읽었다. 

“(162)... 한 가지 일에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직종의 이름으로 전문성을 쌓는 방식은 하나의 자격 획득으로 경력 전체를 보장받을 수 있던 시대에나 유효한 것이다. ... 나는 전통적인 의미의 전문성을 어떻게 갖추느냐보다는 자신만의 탁월성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답했다. ... 크고 작은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며 우연히다음 단계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자신을 열어두는 것,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찾아가는 것. 전통적인 이름으로 담을 수 없는 파편적 경험들을 관통하는 이름을 붙이고말하는 것. 어쩌면 이런 조언들은 유동성이 불가피한 현실에 맞춰 진화한 자기계발의 복음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삶의 방식이 이틀에 걸쳐 논의되는 가운데, 기본소득을 주제로다루는 세션을 마련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몇가지 관통하는 단어가 있었는 데 이를테면 #디딤돌 이라거나 #탁월성 의외로 (짧게)등장하는 #기본소득 그리고 #이야기 (서사성)등등 이었다. 일하기 싫어~~~만 너무 생각하지 말고 (하지만 싫다고 해놓고 소처럼 일하는 나의 모순..) 나의 언어로 나의 ‘일’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갖춰야겠다는 나름 교훈(?)을 얻었다.


2.

자꾸자꾸 흩어지기만 하는 세상 속에서, 악착 같이 삶의 조각을 끌어 모아 ‘나의 서사’를 구축해 나갈 것. 
요즘 내가 관심있게 생각해보고 있는 부분이어서 인지, 책이 다루고 있는 많은 분야들 중에서 그쪽 조언이 가장 눈길이 많이 갔다. 세상은 자꾸 짧아지고 분절되고 잘려나가니까, 거기서 어떻게든 끊어지지 않아보려 하는 안간힘. 내 딴에는 그 안간힘이 나름의 투쟁(?)방식이다.

“(81)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로서 누군가에게 말할 필요가 있는데, 이 때의 이야기는 미래를 담는 그릇을 품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과거의 이야기는 스스로 바라는 남은 삶의 방식을 지시한다.”

인생이란거 계획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문득 떠오르는 기생충의 송강호..), 일이 일어난 후에라도 더듬어 이야기의 형태로 이어붙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러려면 오늘을 잘 기록해야하는 데... 일못러인 본인은 맨날 일에 치여 겨우 살기 바쁨...답답쓰.... (일 잘하고 싶다.. 엉엉)


3.

요즘 인생이 힘든 건지(아니다. 나는 원래 그랬던 것 같다... 울보..) 끄덕만 하면 코끝이 찡해지는 데, 이 책 읽다가 진짜 코끝 갑자기 와사비 먹은 사람처럼 방심했으면 울뻔 했던 부분 적어둔다. 196페이지 용달기사님 일화. 거칠게 줄이면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일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려고 하는 뭐 그런 미담(?)이었는 데. 갑자기 삶의 고단한 무게감이 확 끼쳐옴.

힘든 상황에서도 저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미련한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좋아한다. 난 왜 이렇게 호구 같을까. 왜 오지랖을 부려서 손해보고 후회할까. 남 걱정하기 전에 나부터 걱정하자, 나부터 지키자 수시로 되뇌이는 데 잘안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반드시 열심히 자라서 나‘만’ 아는 으른이 될거다!!! 탕탕!) 천성인가 싶었는 데, 이번 명절에 확실이 알게 되었다. 이게 다 엄마, 아빠 때문이다. 오로지 착실하고 성실하게 사는 방식. 꼼수나 머리 따위 굴리지 않고, 누가 손해봐야하는 상황에 닥치면 그저 본인들이 그냥 손해보고 마는 태도!!! (그게 본인 딸들한테는 폐가 되기도 한다.. 흐어..아부지...어무이..) 난 대체로 선량한 나의 부모님들을 사랑하지만, 그들의 약지 못함이 지금도 마음이 쓰리다.

작가는 그 책임감 강한 용달아저씨 때문에 결국 엉엉 울었다고 한다. 내 와사비 포인트도 거기에 있다. 
아니까. 아저씨의 방식으로 잘되는 길이 얼마나 힘든지. 이 세계는 착실한 사람들이 착실해서 손해 보는 구조라는 걸. 물론 그 분들의 행복과 삶에서 느끼는 충만함은 매우 주관적이고 본인들만이 아는 것 일테다. 쉽게 안타까워하기도 무안한 부분이다. 결국 그들을 통해 나를 보는 거니까, 이 울고 싶은 마음은 그냥 내 마음인 거겠지. 난 아직 '손해 보면서도 착실하게 행복한 삶의 기술'은 터득하지 못했다. 조금은 약삭빠르게 나를 먼저 챙겨서 덜 억울하고 싶다.

그러니까. 세상은 더 좋아져야 한다.
용달아저씨 같은 분들을 앞에 세우지는 않더라도 뒤에 놓고 가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러면 나도 마음 놓고 두다리 뻗고 이리저리 재지 않고 착해질 수 있을 텐데... 아아 착하고 싶어..
뭔가 방법이 없을까. 답답쓰...


그리하여 다르게 살려면 유능해져야 한다.
- P10

-기본소득청소년 네트워크 BIYN, Basic Income Youth Network-
"그러나 우리는 처음부터 기특하거나 불쌍한 청년이 될 생각은 없었습니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건 곧 자기 자신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 무엇인지 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이 굳이 ‘기특’이나 ‘불쌍’같은 우회로를 선택할 이유는 없지요."
- P98

회사 밖이 지옥이 아니라고 믿을 수 있을 때만 회사 안도 전쟁터가 아닌 것이 된다. 그때야 비로소 모두가 불안을 무릅쓰지 않고도 ‘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 P144

우리는 서로 달라도 이해할 수 있다. 관계의 밑바탕에 동질감이 있을 때보다 가치 판단 없는 지적 이해가 있을 때, 나는 훨씬 더 안정감을 느낀다. 동질감은 대체로 착각이거나, 진실이라 해도 쉬이 흩어질 수 있는 것인 반면, 지적인 이해는 시간과 함께 축적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을 이해한다. 당신이 나와 같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보일러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보이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처럼, 나는 시간을 들여 공부함으로써 당신을 이해한다. 그런 이해를 통해 나는 당신과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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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피트니스 -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1
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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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시리즈’의 001번. 나에게는 이제사 처음 읽어본 이 시리즈의 첫 책이기도 하다. 

도서관 책 반납하러 갔다가 집어왔는데, 아무튼- 유명한데에는 이유가 있는 듯.

예전엔 사회에 대한 지식량이 늘어남을 느낄 때 독서가 의미있다 생각했는데, 요즘엔 일상에 작은 통찰을 주는 글들을 만날 때 훨씬 재밌고 기분이 좋다. 요 에세이는 재미도 있었지만 의미도 놓치지 않았다. 몸이 고장나기 시작한 인권‘운동’movement가가 ‘운동’exercise으로 피트니스를 하면서 생긴 변화가 주요 골자다. 소소한 일상에 소금간처럼 살짝살짝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이 배어있어 맛깔나게 읽었다.

머리를 쓰는 것이 더 익숙하던 ‘나’와 몸을 사용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트레이너 ‘나이스’의 우정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고보니 만나게 되는 사람만 만나는 세상에서, 접점 없는 다른 종류의 사람을 겪을 수 있는 쉬운 공간은 ‘운동’하는 곳인 듯. 나도 얼마 전까지 체력좀 키워보겠다고 동네 체육관에서 복싱을 배웠는데, 거기서 초딩 중딩들과 아이스크림도 먹고 떡볶이도 쏘면서 말을 섞어볼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응??ㅋㅋ).

정말 다른 두 사람이 각자가 가진 삶의 노하우로 손바닥 짝 마주치 듯 같은 앎에 도달할 때, 혹은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을 존중하게 될 때, 나도 모르게 크으~하며 책끝을 접었다..(빌린 책인데.. 죄송..) 피트니스를 하면서 그런 관계, 그런 배움을 얻어내는 ‘나’의 모습, 진짜 운동(exercise, movement 둘다) 하는 사람 같아서 멋있었다.

작년에 읽었던 <마녀체력>이나 <여자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어떤부분, 요 <아무튼 피트니스>도 그렇고... 중년에 접어든 여성들이 운동하는 이야기를 읽으면 느끼는게 참 많다. 슬슬 의식적으로 몸 관리를 해야하는 나이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인가.

주름이나 흰머리 보다는 약해지는 체력에서 ‘늙어가는 구나’ 느껴져 주눅들뻔했는데, 요 언니들의 글을 읽고 “늙어가면서도 체력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나여, 그러나 희망과는 별개로 ‘운동을 해야’ 한단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하자.



"난 이대로 막 살다가(=폭음과 폭식을 즐기다가) 혹시 병 걸려 죽을 것 같으면, 다 정리하고 여행을 떠날 거야, 이리저리 원 없이 떠돌다가 아무도 모르게 이국에서 죽을 거야."
그 계획을 듣고 다들 웃으며 ‘나도 나도’햇다. 나보다 연장자인 한 사람만 내 얘기에 심각하게 말했다.
"류! 병이란게 그런 식으로 오는 게 아녜요, 쌩쌩하게 활동하다가 한 번에 죽을 병이 오는 게 아니라구요."
"네?"
"여기저기, 조금씩 조금씩 아파요, 만성적인 병이 늘어요. 병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그이 말이 맞았다. 나는 지금 당장 죽을병에 걸린 건 아니었다. 이 병과 죽을 때 까지 살아야 한다. 나는 ‘마지막 여행’ 대신, 살기로 했다. - P8

그런 그에게, 나는 굶으면서 하는 운동은 반대한다고, 샘은 왜 그렇게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운동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냥요."
나이스는 그냥 그렇게 하는 거라고 했다. 그냥 되고 싶은 것, 그냥 그렇게 만들고 싶은 몸이 있다고 했다. 내 관점에는 맞지 않지만 나이스의 ‘그냥’을 그냥 존중하기로 했다. - P102

내가 운동을 열심히 병행하는 삶을 살면 건강할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렇다고 병이나 장애가 없을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느 쪽 길에 들어서건, 그 길마다 나름의 삶이 있을 것이다. 건강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temporarily able-bodied‘라는 표 현을 쓰자는 운동이 있다. 건강은 일시적인 것이므로 아픈 사람이나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자는 뜻에서 제안된 말이다. (...) 운동을 해서 몸이 좀 좋아졌다고 ‘내가 해봐서아는데’ 또 다른 버전을 만들지 말자. 똑같은 산수로 서로 다른 생을 비교할 수 없다. 생애 주기에 따라서가 아니라 나에게 특화된 나의 몸과 활동이 있다. 늙지 않기를 바라는 대신 나이 듦과 더불어 살아가자. 운동을 하면서 ‘성공적인’ 나이듦 같은 건 생각하지도 말자.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삶을 의미한다. 또 하나의 정신승리를 거부하자.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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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19-09-22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이팅입니다:-)!

공쟝쟝 2019-09-22 17:37   좋아요 0 | URL
체력은 역시나! 화이팅 이지요~!

에곤 실례 2019-09-22 1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발레도(운동량 엄청 나겠더군요) 재미있고,
정말 재미를 따지자면 아무튼 술이 끝내주죠. ㅎㅎ

공쟝쟝 2019-09-22 17:41   좋아요 0 | URL
오호, 아무튼 시리즈 마니아 시군요🤭? 아무튼 술! 부터 한번 읽어보겠습니당!! ㅋㅋ

syo 2019-09-22 2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 아무튼 시리즈 전반적으로 재밌다
2. 김혼비는 재밌다.
1 2 = 3. <아무튼, 술>은 짱이다.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공쟝쟝 2019-09-22 21:53   좋아요 0 | URL
김혼비작가님이라면 쇼님이 좋아하는 우아하고 호쾌한!!!!! ㅋㅋ (아직안읽음) 우아하고 호쾌한 먼저 읽어야짘ㅋㅋㅋ!!

블랙겟타 2019-09-22 2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핫한 아무튼 시리즈죠ㅋㅋㅋ
저도.. 이젠 몸 관리를 해야겠구나 생각이 들어요. 너무 게으른게 크지만.. 하하하..;;;

저도 이 시리즈 몇 권 읽어봤는데 이 책도 읽어봐야겠구... 위의 syo님이 말하신 아무튼 술도 읽어봐야겠네요. ( •ᴗ•)

공쟝쟝 2019-09-22 21:55   좋아요 1 | URL
자자 우리는 아무튼을 읽으며 발레든 요가든 피트니스든 그게 무어든 불어나는 몸을 관리 하도록 합시다! 마침 북플이 독보적도 런칭했으니ㅋㅋㅋㅋ 다들 움직엿~~~~~!!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 독보적 유튜버 박막례와 천재 PD 손녀 김유라의 말도 안 되게 뒤집힌 신나는 인생!
박막례.김유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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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빌려서 버스에서 쓱 훑어보다가 눈물샘 터져서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다. 첫페이지부터 너무 훅 치고 들어와서, 깜짝 놀랐음. 물론 초반의 짠함이 후반부의 신남으로 후련하게 상쇄되지만, 앞부분은 입술 깨물 각오 하고 읽어야 한다. 그녀의 젊은 시절이 너무 기구하니까. 그런데 기구하다라는 말도 참 덧없이 느껴지는 것이- 박막례님의 기구한삶이란 반세기 전의 너무도 평범한 한국 여성의 삶이기에

그 시절은 모두에게 다 기구한 삶을 선물했던 듯 하다. 어쩌면 별일 없이 평탄한 삶이 특별한 삶일 지도 모르겠다. (이건 누굴 탓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 현대사 정말 나빴다..라고 할 밖에....)

 

모든 것에서 기꺼이 용감한 박막례님이 유일하게 부끄러워하는 주제는 자신의 못배움이었다. 책에는 그녀가 글을 익히는 것 조차 탐탁치 않아하는 분위기들이 푸념처럼 섞여있는 데, 이게 실화냐 싶을 정도라서 한숨이 푹푹 난다. 비교적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그녀 역시 여자가 많이 배우면 집나간다는 근거로 공부를 안시켰다고 한다. (잠깐 뒷골 당겨서 말잇못...)

 

근데, 사실인 것 같다. 배운 여자, 똑똑한 여자들에게 결혼과 출산과 육아란?????? 배운 것도 없고 똑똑하지도 않은 나도 직관적으로 알겠다. 현대의 여성이라면 뒷목잡고 쓰러질 이 속담은 사실 가부장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는 말이었던 것이다. 여자는 집 안에서만 기능해야 한다는 것. 집은 여성을 묶어두는 곳이라는 것. 공부는 집 밖의 세상을 알려준다는 것. 그리하여 공부한 여자는 집 안에서만 머무를 수 없다는 것

집안에 여성을 묶어두면서 유지해 온 가부장적 질서는 여성이 집바깥의 삶을 건네다 보는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질서와 싸우기 위해 우리는 악착같이 많이 배워서 집을 나가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까지 실컷, 실컷 나가있어야 한다. 당연히 돌아가지 않아도 좋다.

 


*

 


나에게는 몇가지 눈물 샘 코드(그 주제가 나올 낌새만 보여도 눈물 펑펑남)가 있는 데, 그 중에 하나가 엄마-가난-헌신-뒷바라지정도로 축약되는 자기 삶 없는 엄마라는 여성의 모습이다. 버스에서 참지 못한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면서, 이 눈물의 의미는 뭘까 곰곰이 생각했다

감사와 미안함 40%, 안타까움 20%, 공포 20%, 기타의 감정 20% 정도로 구성되어있지 않나 싶다. 20%의 공포에 대해 추가설명 하자면, 나도 엄마처럼 살까봐 되시겠다. 엄마처럼 살기는 싫은 데,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하고, 나에겐 엄마가 필요하고. 그 오묘한 역설.

 

엊그제 유키즈온더블록이 틀어져 있어서 생각없이 보고 있는데, 출연자 중 한명이 영상편지를 보내면서 엄마, 이젠 제발 편하게 엄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고 했다세상의 모든 딸들이 하고 싶은 말 아닐까. 그런데 정작 엄마는. 삶의 많은 시간을 누군가를 돌보느라 송두리째 써버린 엄마는

뭐가 하고 싶을까

하고 싶은 것이 있긴 할까.


 

*

 

70대의 유튜버가 되기 전까지 박막례님의 삶도 그러했다. 누군가의 밥을 해주기 위해서만 기능하는 삶. 도저히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는 삶. 이제 더는 밥을 안해도 된다는 은퇴를 앞두고, 할머니는 치매 위험진단을 받으신다.

 

“(56) 70평생을 아버지 때문에, 남편 때문에, 자식들 때문에 허리가 굽어라 일만하며 살다가 박막례 씨, 치매 올 가능성이 높네요.’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불쌍한 인생. 할머니가 병원에서 치매 위험 진단을 받은 날, 내 나이 스물일곱이었고 인생은 진짜 불공평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나는 어떤 생각에 단단히 미쳐있었다. 우리 불쌍한 할머니, 이대로 죽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

 

“(62) 치매는 의미의 병입니다.

내 존재가 더 이상 큰 의미 없다고 판단할 때 뇌세포도 서서히 감소하게 되고, 그렇게 기억력을 잃어가는 병.... 그러니까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판단이 들 때 우울과 시련이 나를 잠식하면서 뇌세포가 하나 둘 손상되는 마음의 병.

그래, 애꿎은 두더지나 잡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할머니가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존재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당신 삶의 의미를 찾게 하자!”

 

어떤 사람에겐 자기 자신의 삶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겐 최소한의 자신을 확보하기 위해 누군가의 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수도 있다. 모두가 당신 자신의 삶을 찾으라고 너무 쉽게 말한다. 별 상관없는 사람에게 하는 으레의 조언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어떤 조언이라면, 그것은 먼저 나 자신의 변화를 걸어야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김유라PD가 할머니 삶의 의미를 위해 사표를 낸 것처럼 말이다.

 

당신 삶의 의미를 찾게 해주고 싶었다는 손녀의 조력이 없었다면, 할머니 인생이 부침개처럼 뒤집힐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읽히기도 한다. 물론 나의 경우 요즘 뭘 읽든 뭘 보든 페미니즘 적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는 터라, 할머니와 손녀의(자매들의) 멋진 연대로 읽었다.

 


*


 

후반부의 막례님 인생 2막 부분도 좋지만, 시간이 없다면 앞부분의 젊은 막례님의 이야기 정도만 읽어도 무방하다. 그녀의 열다섯, 스물다섯, 서른다섯의 삶을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다. 내가 살면서 만나온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그녀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 박막례님의 이야기는 엄마의 친구 이야기에서건, 더러 내비치는 본인의 이야기에서건, 목욕탕의 아주머니 수다들에서건 분명히 들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책에서 그녀들의 목소리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그녀들을 다룬책은 있었겠지만, 날것 그대로의 들이 담긴 책은 드물다. ‘이야기(드라마)’수다는 그녀들의 것이었지만 은 그녀들의 것이 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삶을 서사화하고 그것을 글로 남길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분명히 권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홀로 있을 수 없는 그녀들의 모든 서사는 드라마에 투사되고, 그러고도 남은 말들은 글이 아닌 수다로 쏟아졌을 것이다. 내가 아는 그녀들(혹은 나)- 눈을 감고 뜨면 내일이 와있고, 내 일들이 펼쳐져있었겠지.

 

그래서 귀했다. 밥만 했다’, ‘작년과 똑같이 살았다와 같은 무뚝뚝한 한 줄 짜리 구술. 일상에 삶이 잡아먹혀버린 사람이 쓸 수 있는 최선의 글이라고 여겨졌다. 한 줄을 제외한 나머지 페이지의 빈 공백이 사실은 그녀가 담고 있는 무수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


, 책 리뷰에 요즘 여자들이 힘들다고 징징대는 데, 할머니처럼 고생을 해봐야 페미니즘 어쩌고 하는 소리 못할거다라는 류의 댓글을 읽었다. 아니, 오독도 이런 오독이 없다. 박막례님은 다시 태어나면 남편과 결혼 안하고 기계랑 살 거라고 하셨다.ㅋㅋㅋ



내가 할머니처럼 70세 노인이었다면
다시 저 두려운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을까?
아니, 나는 죽음이 두려워 가만히 앉아 있었을 거다.

그러니까 박막례의 인생 역전은 내가 옆에서 등 떠민게 아니라,
이날 다시 바다로 직접 그 두 발로 걸어 들어간 할머니의 용기에서 시작된 기적이었을 것이다 - P92

한번은 할머니가 밥 먹으러 온 에버랜드 직원한테 "삼촌, 나도 에버랜드 구경 한번 시켜주면 안 돼?"라고 하니까 정말 구경을 시켜줬다. 그런데 들어가면 뭐하나, 아무것도 안 태워주는데.
박막례답게 ‘나도 더럽고 치사해서 안 탄다’고 웃어넘기고 집으로 왔단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이 할머니에게 너무 박했던 것 같다. 본인 나이를 자각할 시간도 없이 쉬지 않고 일만 하며 살다가 이제 좀 여유가 생겨 돈 내고 놀이기구 좀 타볼랬더니 늦게 왔다고 뒤통수 맞은 거다.
인생, 진짜 뭘까?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 아쉬운 게 없는 거야?
열심히 살아야 해서 열심히 살았는데도 그게 꼭 잘 산 게 아닌 것 같은 상황이 너무 쉽게 벌어진다. - P225

"귀신이고 나발이고 난 무서운 게 아무것도 없어. 다시 내 인생을 돌아다보기 싫어. 내 인생이 젤로 무섭지. 내 인생만치 무서운 게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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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8-20 0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리뷰는.. 뭡니까. 할머니처럼 고생을 해봐야 페미니즘...
하아-
뇌 너무 투명해주시네요. 하아-

쟝쟝님 리뷰 써주니까 너무 좋다. 자주 오고 자주 좀 써줘요!

공쟝쟝 2019-08-20 09:20   좋아요 0 | URL
설마 그말 나올까 했는데 설마나왔음 ㅋㅋㅋ 뇌청순 ㅋㅋㅋ
그르게요.. 자주 좀 와야하는 데 ㅠㅠ 인생의 낙인데... 나 맨날 왤케 바쁨??? ㅠㅠ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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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읽겠노라 벼르면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바가지 타놓고 책상에 앉은 밤인데, 사실은 실컷 쓰고 싶은 날 인가보다.

오늘, 아니 어제는 이별했다 믿었던 어떤 과거들이 발목을 잡았고 내 나름의 방식으로 그것을 뿌리치는 다른 종류의 사건이 연달아 두 번 일어났다. 두 사건 다 마음 속 상처와 무관하지 않았고,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눈물이 나지 않고 화가 났다. 책을 읽다 말고 일기장에 왜 때문에 어이가 없고 화가났는지 적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모든 진실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만 보이는 것이며, 나는 그것을 왜 이제서야 쓸 수 있는 것인지.
아니 어쩌자고 난,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 종료되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만 겨우겨우 적을 수 있게 된 것이며, 차라리 적지않고 그냥 덮어버려도 누구도 뭐라하지 않을 사건들을 헤집어 파고, 시간내어 곱씹는 지. 그래야만 괜찮아지는 건지.

누군가들이 ‘넌 너무 과거에 매여사는 것 같다’는 말을 했었다. 하나같이 나를 잘 안다는 사람들이 나를 위한답시고 해준 말이었지만 이 밤, 콕콕 찔리는 느낌으로 되살아나는 것으로 보아 그 말은 ‘나를 의심하게 하는 그때의 나에게 해가 되었던 말들’이었지 싶다.

‘과거에 매여있다’라...
여전히 그 혐의를 벗을 수는 없지만, 조금씩 그 과거들이 아주 멀었던 과거에서 꽤 가까운 과거로 당겨지고 있는 느낌.
여전히 비슷한 실수와 잘못들을 반복하긴 하지만, 상처를 인식하는 시간과 아픔을 깨닫는 시점이 조금씩 당겨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오늘의 일기를 적으면서는 조금 안도했다. 그만큼 나 자신에게 주목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무언가들을 예전보다는 빨리 캐치해내고 있다는 것이겠지. 여전히 더딘 편이지만.

과거에 매여있는 미련한 나를 좋아해보려고 한다.
과거와 재빨리 단절하고 냉큼 내딛는 미래만큼 위험한 것도 없거니와,
과거에 산다(?)는 내가 과거를 떠올리며 위로받는 것은 명확히 현재이기도 해서. (그 말을 한참 들을 때는 현재를 긍정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제 와서야 옛날의 일들을 겨우 꺼내서 생각하고 적어내리는 것은
그 시절을 낭만화하기 위함도 마냥 자책하며 진저리 치기 위함도 아닌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해석해 내야만 나는 지금의 삶을 한 발짝이라도 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뚜벅뚜벅 살아가보려고.

요즘 내가 공들이도 있는 것은-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 정도다. 열심히해도 별로 지치지 않고 내키면 언제고 그만할 수 있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내가 연마(?)하고 있는 이것들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는 데 맞춤한 문장이 생각나서, 이름붙여 보았다.

“삶을 해석하는 능력”
난 그 능력을 키우고 싶은 거였다.

언젠가는 과거가 아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잘 해석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혹은 지금처럼 사후에라도 해석하는 것을 주저않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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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2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19-06-12 19:55   좋아요 1 | URL
붕붕툐툐님 안녕하세요, 정말 왜 우리 친구가 아닌거죠? ㅋㅋㅋ !!!!! (저도 이렇게 익숙한데..) ㅋㅋ 먼저 친구 신청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