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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헌정 - 5ㆍ18을 생각함 인문정신의 탐구 18
김상봉 지음 / 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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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7-11)

그렇다면 무슨 내력이 있어, 아직도 5·18을 모욕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까닭은 오직 하나, 아무리 죽이고 또 죽여도 5·18을 죽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의 빛앞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진리를 모욕하고 다시 그 심장에 못을 박음으로써 진리를 매장하려 한다. 그러나 아무리 대검으로 찌르고, 총알로 뚫어도 진리는 죽지 않는다.

 

… 악몽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역사, 제주에서도 남쪽 끝 모슬포 섯알오름에서 고양의 금정굴까지 전 국토가 학살터인 나라에서, 한맺힌 역사가 어디 5·18 하나뿐이겠는가! 국민을 지키라고 있는 군대가 국민을 학살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 초현실 주의적인 현실에서 누가 어떻게그 많은 죽음을 모두 애틋하게 기억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왜 아직 5·18인가? 게다가 하필이면 왜 모욕당하는 방식으로 기억되어야 하는가? 간단히 그 까닭을 말하자면, 그것은 5·18이야 말로 악령으로부터 선량한 사람들을 지키는 방패이고 대문의 빗장이기 때문이다.

 

… 1948년 제주에서 1980년 광주까지 이 나라의 권력자들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군대를 동원해 국민을 공격하고 학살하는 일을 말 그대로 밥먹듯이 해온 자들이다. 그런데 그 미쳐 날뛰는 군대 마귀들을 이 땅에서 몰아낸 것이 5·18이었다. 5·18은 이 땅의 민중들을 군대지옥에서 구원하고 해방한 사건이다. 또한 그것은 지금도 자기의 부모 형제자매를 향해 총을 쏠 준비가 되어있는 이 패륜적인 군대 마귀들을 향해 이 선을 넘지 말라고 박아놓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인 것이다.

 

… 그런데 광주가 있다. 1980년 광주의 역사가, 5·18이 있다. 총을 든 군인들 앞에서도 겁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경찰의 차벽으로도 막지 못할 정도로 민심이 흉흉해지면 결국에는 군대마귀를 동원해야하는데, 5·18광주항쟁이라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이 버티고 서있는 것이다. 그 기둥을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군대마귀를 동원할 수 없다. 그 빗장을 풀지 않고서는 이 땅을 군대지옥으로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이미 일어난 역사를 없앨 수는 없으니 할 수 잇는 일이란 오직 왜곡하고 모욕하는 것 밖에 없다. 5·18은 북한군이 벌인 소행이라거나, 홍어택배 어쩌고 하는 소리들은 모두, 다시 군대를 동원하고 싶은 은밀한 소망을 버리지 못한 무리들이 그들을 가로막고선 헤라클레스의 기둥 앞에서 이를 가는 소리요, 피에 굶주려 으르렁거리는 신음인 것이다.

 

*

 

몇 년 사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5·18이 왜곡되고 있다. 왜 그렇게 하는 걸까. 답답하던 차에 김상봉 교수님의 책이 나왔다는 걸 알았다. <철학의 헌정> 한문장 한문장 읽는데 2006년 (혹은 07년) 학부시절 철학과 강의실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에게는 세계가 확장되던 수업시간이 교수님께는 오랫동안 다듬어온 나름의 철학을 강의로 푸는 시간이었던가보다. 반가웠고 기뻤고, 잊었던 퍼즐들이 다시 끼워 맞춰졌다.

 

그래 그랬지, 총을 들었지. 5·18 이후 더 이상 통치자들은 총을 들지 못했지. 총을 들어도 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지. 그래서 모욕하는 거구나. 예전 같았으면 무력으로 밀어버렸을 텐데, 명분 만들고 이야기 만들고 법도 만들어야 하고…그러다보니 스트레스 심했나보네.

 

‘그놈의 5·18만 없었다면! 총들면 다 입 닥칠텐데! 저 징글징글한 시끄러운 국민들이 알아서 길 텐데.!!’

 

그들의 명맥이 사라지지 않고서는 (오늘 날 처럼 활개쳐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80년 광주를 모욕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겠구나. 잊지 않는 것을 넘어 싸우는 것이 여전히 몫으로 남아있구나.

 

*

(p. 31)

그러므로 5·18을 생각한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그것의 고통을 기억하고 따라 체험하는 데서 시작되어야합니다. 직접적인 고통과 그 고통이 주는 좌절과 절망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분노를 따라체험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결코 5·18과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따라 체험한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 하지만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는 나를 뛰어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나를 내가 선 자리에서 들어 올려 타자의 자리에 옮겨놓을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그것이 생각이 제자리에 머물러 수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남의 자리에 나를 두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그리하여 게으른 정신에게 남의 고통이란 제 편한 대로 해석된 관념적인 기호로 남기 십상입니다. 5·18을 생각하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따라체험하기에는 너무도 큰 고통이요 수난이었습니다.


*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는 나를 뛰어넘지 않으면 안됩니다.”


*


살아남은 자들의 거대한 슬픔이 번지는 것을 목도한 적이 있다.

 

대학교 1학년, 추적추적하게 비가 내리던 금남로의 5·18 전야제. 기념하러 갔고 구경삼아 간 그 곳엔 엉엉 억막힌 울음을 울고 있는 광주시민들이 있었다. 아직 한 세대가 다 가지 않은 25주기였다. 그 날, 홀로 슬프지 않았던 나는 몰라서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했다.

 

2학년 부터였던 것 같다. 5·18때마다 망월묘역 한구석에서 까만 얼굴을 시커멓게 태워가며, 외운 것 같기도 하고 이미 내 언어 같기도 한 열사의 이야기를 목메어가며 가이드 했었다. 적게 잡아 100명 많게 잡으면 1000명도 될 것 이다. 대부분이 기껏해야 한 두 살, 많으면 다섯 살 후배들이었고, 때로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있었다. 부러 시간내 찾아오는 이들에게 기꺼이 발품을 팔아주는 젊은이들에게 광주를 이야기했다. 나름의 미안함을 덜고 싶었던 것 같다. 광주의 고통에 연대하고 싶었다. 전대 캠퍼스 곳곳, 어떨 때는 금남로, 특별히 망월묘역. 윤상원 열사의 마지막 말을 읽어주기도 하고, 김남주의 시를 읽히기도 하면서.. 도청의 마지막 새벽을 잊지말아달라, 같은 말을 수 번 하면서도 매번 진심이었다.

 

그 때의 나는 내 말의 무게를 알았던 걸까.

몰랐었지만 지금에 와서야 알 것 같은 것은.

 

듣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오월을 간직했을 거라는 것.

 

자살은 있어도 열사는 없던 시대. 스펙이나 경쟁의 삶이 아닌 열사의 죽음을 먼저 배운 조금은 특이한 나의 대학생활. 우리 지역의 우리 학교의 시간은 다른 대학의 그것과는 다르게 참 느리게 흘렀었지. 그 느림에 빚진 것처럼 나도 참 열정적으로 느리게도 살아 왔구나.

 

그 때 나는 오월과 한 몸 같았는데, 요즘의 나는 어색하다. 내 안에 무언가가 변한 것일까 아니면 고통 앞에서 겸손해 진 것일까. 그래도 그때 말을 많이 해놓아서 다행이다. 내 말이 내 발목을 잡을 테니. 언제고 선택의 순간에, 기꺼이 발목이 잡히기를.

 

*


(p.94-5)

.. 하지만 시민군은 거절하는 그에게 한사코 수류탄을 떠안기고 떠났다는 것이다. 마치 김밥을 먹으면서 같이 먹으라고 친절하게 사과라도 건네는 듯이.

 

생각하면, 피와 김밥 옆에 수류탄이 같이 있는 탁자는 얼마나 초현실주의적 정물인가. 하지만 그 정물 앞에서 우리가 겸허한 마음으로 조금만 더 머물러 깊이 생각하면, 이 그림 속에는 얼마나 심오한 통찰이 담겨있는 가. 사랑은 피를 나누는 것이며, 밥을 같이 먹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 사이의 참된 사랑과 연대를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사랑은 마지막에는 같이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시민이 똑같은 방식으로 싸울 수는 없다. 수류탄을 건넸던 시민군이 헌혈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기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싸울 것을 요구했다면 수류탄이 아니라 총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들은 총을 들고 싸우던 시민군이 헌혈차에는 총이 아니라 수류탄을 주고 갔다는 것은 그들이 헌혈하는 사람들에게 자기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싸우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 없다면서 받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굳이 수류탄을 강요하듯이 떠안기고 갔다는 것은 똑같은 방식으로가 아니라 하더라도 모든 시민이 같이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요청이었을 것이다.

 

만남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같이 기쁨을 나누는 것에만 존립하는 것이 아니다. 기쁨은 언제나 만남의 마지막 결과이다. 사랑의 기쁨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언제나 같이 나누는 고통의 터널을 지나지 않으면 안된다. 고통은 수동성이다. 하지만 내가 타인과 고통을 나눌 때 나는 자발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요, 그런 한에서 고통을 나누는 것은 그 자체로서 능동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고통 속에 하릴없이 같이 머무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고통은 본질적으로 그것의 부정을 지향한다. 고통의 주체로 하여금 고통을 부정하게 만들지 않는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닌 것이다. 그런 한에서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고통을 다시 부정한다는 것, 다시 말해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같이 행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고통의 원인이 외부의 적대적 타자인 한에서 고통을 극복하기위해 같이 행위한다는 것은 같이 싸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한에서 사랑은 같이 아파하는 것 뿐만아니라 같이 싸우는 것. 자기의 전 존재를 걸고 같이 위험에 맞서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피와 밥 곁에 수류탄이 놓일 때, 사랑의 성찬은 완성되는 것이다.


*

 

타인의 고통에 기꺼이 참여함으로써 함께 싸우는 것.

 

5·18에 위대함을 가져다 붙일 수 있는 이유는

놀랍게도 그 항쟁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싸우는 것도 모자라죽음까지 무릅 쓴 용기를 내며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려 했다는 것.

그러한 항쟁 공동체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기에 철학자 김상봉은 5·18을 '씨알 공동체'이자 '서로주체성의 현실태'로서 계시된 '우리 모두의 나라'라고 썼다.

 

고통의 연대와 응답으로서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를 '철학'하는 것 - 여러가지 묵직한 질문들과 마주하며, 5월의 마지막 날, 마지막 장을 덮는다.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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혬혬 2017-07-2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사준 책?!ㅋㅋㅋ

공쟝쟝 2017-07-28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랫나? 역시상봉샘

혬혬 2017-07-28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좋나보네^^

공쟝쟝 2017-07-28 23:09   좋아요 0 | URL
믿고 읽는 김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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