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하는 마음 일하는 마음 1
은유 지음 / 제철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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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섭취하면서 무럭무럭 자랐다. (옆으로?!)
타고나기를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 것을 좋아했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출판물들을 디자인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일이 흘러흘러 책디자인도 겸업하게 되었으며, 그러다보니 우연한 기회를 잡아 1인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이 책을 꼭 만들고 싶다!!’는 야심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책’이 만들어지는 공정을 한번 밟아보고 싶었다. 음. 아직은 재밌게, 그리고 가난하게.......(흑흑).... 출판이라는 공정을 밟아가고 있다.

기실, 책 만드는 것처럼 돈이 안남는 ‘장사’가 없다는 것이 책 출간을 준비는 요즈음의 나의 생각이다. 뚝딱 기계에서 뽑아지는 아메리카노 세잔 값이면, 지글지글 구워지는 삼겹살 1인분값이면 책 한권이다. 15분이면 소화할 수 있는 그것들에 비해 어떤 책은 만 하루를 다해도 소화하기 힘들다. 매일매일 사먹는 그것들처럼 쉽사리 지갑을 열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은 것처럼 배부른 책. 많은 사람들이 '사서' 더 많이많이 읽었으면 싶다. (정작 난 이 책마저 도서관에서 빌려읽었따...ㅡ.ㅠ)

“일상의 지배자, 인생의 중심축인 책이지만 그 책의 생장 과정에는 무지하다. 저자일 땐 원고를 출판사에 넘김으로써 1,2단계에 개입했다가 빠지고 독자일 때는 마지막 10단계에서 구매함으로써 참여한다. 중간은 모름이다. 서점에서 결제한 번으로 손에 쥐는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땀방울이 몇 백 만개 쯤 들어갔는지, 원고를 써서 한글 파일로 넘기면 몇 사람의 손길 거쳐 몇 리 길 돌아 독자에게 당도하는지 소상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책만 그런 게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세포 격인 상품을 우린 거의 모르고 사용한다. 농사짓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쌀을 얻어 밥을 먹고, 옷 만드는 사람의 처지와 얼굴을 모르고 옷을 사서 입는다. 결과물만 쏙쏙 취하니까 슬쩍 버리기도 쉽다. 그렇게 편리를 누릴수록 능력을 잃어간다. 물건을 귀히여기는 능력, 타인의 노동을 존중하는 능력, 관계 속에서 자신을 보는 능력. (p.5-6)”


작가 은유도 좋아하지만, 첫 책을 출간하기 위해 두리번두리번 정보를 채집하는 도중에 집어들었고, 바삐 허겁지겁 읽었다. 책 속에는 젊은 출판인들의 이야기가 있었고, 그들이 몸으로 겪어낸 삶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마음이 있었다.

‘출판하는’
‘마음’.
자기가 하는 ‘일’을 ‘소외’시키지 않으려 발버 둥하는 애씀이 있었다.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 애정의 다함에 대해 나는 나를 자꾸만 의심해야 한다. 한순간의 안도가 한 권의 책을 망칠 수 있다. 어려운 이름, 책. (p.25)”

그러니까. 책을 만드는 일은. 만드는 일이 아닌 짓는 일.
‘책을 짓는다.’ 집을 짓고, 밥을 짓고, 글을 짓 듯.
은유 작가는 책을 짓고 펴낸다고 했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이 ‘소외’되기 쉬운 이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 만큼 ‘가치’지향적인 직종이 또 있을까.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책’이라는 건 ‘만드는 자체’도 목적은 아니고, ‘팔리는 것’만 도 목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 책이 독자에게 가 읽히길, 누군가의 삶에 닿아 번지길, 저자 뿐 만이 아니라 출판에 참여하는 모두가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든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런데도 혼자만 열심인 건, 말하자면 그 일을 자기 혼자 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일이다.’-이시카와 다쿠보쿠, <슬픈인간>
책은 부단한 협동의 결과물이다. 저자의 힘으로만 나오는 게 아니며 출판사라는 보통명사 뒤에는 편집자, 북디자이너, 마케터, 제작자, MD, 서점인 등의숨은 노동이 있다. (p.14)”


모든 만드는 것이 그러겠지만, 특별히 더, 책을 만드는 일은 과정 자체를 돌보는 일이며, 누군가들과 부단히 협력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나는 책을 읽는 것이 저자와 만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출판하는 마음’을 읽고 나서는 저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 (편집자, 번역자, 마케터, 북디자이너, 출판제작자 등등)을 만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판권지에 있는(혹은 없는) 이름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은 마법 같은 일. 앞으로 ‘출판하는 마음’이 걸어 준 마법이 얼마나 더 갈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지난날들보다 더 감사해하며 열렬히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P.12)
"그 글은 좋지만 그게 책이 될 순 없어요."
나는 글과 책을 분간하지 못하고 있었다. 글이 내 안에서 도는 피라면,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 책은 누군가에게 읽힐 때만 의미를 지닌다. (...) 글의 총합이 책이 아니라는 것. 좋은 그이 많다고 좋은 책은 아니라는 것. 한 권의 책은 유기적인구조를 갖고 있으며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와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 일을 과단성 있게 솜씨 좋게 해내는 사람이 편집자라는 것, 저자는 외부자의 시선을 갖기 어렵기에 편집자의 말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 좋은 출판사보다 좋은 편집자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것.

(p.101) 홍한별, 번역자의 마음
생각만 해도 놓은 한 가지가 있는 사람, 말할 때 입이 절로 벌어지는 주제가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면 그게 직업인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고.
아이처럼 좋아요, 좋아요를 연발하는 그는 이를테면 이런 글을 아름답다고 느낀다. "언어의 결이섬세하고 미묘해서 순간 적으로 반짝이는 것.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표현, 적절하고 적확한 단어, 평범한 단어인데 낯선 곳에 쓰면서 새로운 쓰임새와 의미가 생겨나는 것."

p.137 (이환희, 인문편집자의 마음)
편집자는 저자에 대한 정서 노동이 불가피하다. 저자가 타당한 이유와 근거를 들어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경우는 합리적인 태도에 속한다. 상황을 조율하면 된다. 그러나 어떤 저자들은 편집자와의 업무관계를 사유화하여 책을 넘어선 요구를 하기도 한다. 실제 그에게 간혹 무리한 요구를 하는 저자가 있었지만 그럴 땐 조직의 결정권자인 사장이나 편집부 전체가 논의해서 드린 의견이라고 완곡하게 말하며 상황을 수습했다.
"저자 개인이 너무 자기애가 강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출판사에서 저자들을 좀 버려놓는 것 같기도 해요. 소위 갑 질을 안할 수 있는 사람인데 출판사에서서 과하게 모시고 대접해주니까 그래도 되는구나 하는 거죠. 특히 대형출판사가 저자들을 과하게 대접하고 챙기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p.175 (이경란, 북디자이너의 마음)
일부 출판사에서는 표지를 결정하기 전에 SNS에 시안을 올려 투표에 부친다. 그러면 표지 시안을 본 독자들을 색깔 바꾸어보라고 하세요, 글자 옮기면 되겠네요 등등 대수롭지 않게 댓글로 한마디씩 조언한다. 그런 참여가 신간 홍보를 낳기도 한다지만, 확정 전 시안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건 디자이너의 전문성을 해치는 일이다. 마치 편집자의 교정 전 원고를 독자한테 보여주거나 작가의 초고를 내보내는 격.

p.189 (박흥기, 출판제작자의 마음)
출판사에서 가장 큰 예산을 쓰는 사람도, 갓 나온 따끈한 책을 가장 먼저 만지는 사람도 제작자다.
그래서 그의 전화는 늘 통화 중이다.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 대표이사, 인쇄소 기장, 지업사 직원 들이 죄다 우리 제작 ‘팀장님’을 찾는다. 안팎으로 밀려드는 온갖 필요와 요구를 거뜬히 처리하고 진행해서 도도한 책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12년차 출판인. 그 비결은 되도록 "얼굴 맞대고"이야기 하기다. "책 만드는 일은 기계가 하지만, 기계를 돌리는 건 사람이니까" 인간관계가 곧 업무능력이 된다. 고교 시절부터 인쇄를 공부한 탄탄한 이론과 현장경험, ‘곰돌이 푸’를 연상케하는 너그럽고 부드러운 표정을 가진 그라면, 무엇이든 가능해보인다.

p.328 (이정규, 1인출판사 대표의 마음)
1인 출판사나 출판계 종사자를 다루는 방식이, 뭔가 전체 세계에서 특이한 지형에 있는 사람들, 약간의 독립군, 불리한 위세에서 돌파해내는 무엇처럼 묘사되는 거, 저는 별로거든요. 서점에 가면 제 책이 문학동네 책이랑 똑같이 경쟁을 하잖아요. 불리할 것도 없고, 유리할 것도 없죠. 그런데 불리함을 기본 설정값으로 해봐야 정신건강에 도움이 안돼요. 저는 큰데 만큼은 잘 못팝니다만 하실래요? 그래요. 웬만한 사람은 출판 업계가 불황인거 다 아니까 나의 책을 딛고 가라, 얘기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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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지 않을 자유 - 결혼과 비혼에 관한 새로운 태도
이선배 지음 / 허밍버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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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오빠와 토론을 위해 함께 읽은 책. 비혼주의에 대한 주장이나 비혼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많이 나올 줄 알고 골랐는데, 제목이 ‘선택하지 않을 자유!’ 임에도... 의외로 ‘결혼하는 것도 추천’하는 (게다가 저자는 결혼했다. 반전) 내용도 담고 있다.

확실히 세상이 변했다. “결혼 언제하냐?”는 질문 보다 “결혼 그걸 대체 왜하려고 하니?”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듣고 있으니까.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가지고 있던 질문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얄팍한 수준이나마 함께 ‘고민하고 읽고 나누려 한다’는 사실에 안심했을 뿐이지.

읽고 나서 둘이 하나는 확실하게 합의했다. 결혼과 출산은 별개의 사건! 이라는 것. 확실히 취직-결혼-출산-육아 등등 결이 다른 많은 것을 하나로 도식화 시켜 그 모든 것을 순차적으로 수행하며 살아가기엔 사회가 너무 살기 어려워진 것 같다. 일단 취직부터 걸리는 걸 뭐.

결혼제도 또한 사회의 산물이라는 것, 시류에 휩쓸리듯 비혼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는 것, 저자가 개인들에게 그것이 결혼이든 비혼이든 자신을 위해 선택할 수/하지 않을 수 있음에 대해 더욱더 진지한 고민을 하길 제안하는 동시에 “(결혼/출산)선택할 수 있는 자유” 또한 보장 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대책을 촉구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읽고난 뒤 나의 고민은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되었다. 소위 “며느리, 엄마, 아내”로 이름 붙여진 당위적 역할에 대해서 문제의식이 크다는 것과, 그것을 제외 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살아가는 것을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것. 두가지가 확실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결혼이 어려울 것 같다는 결론. 오빠는 책을 읽다가 불편했다고 했다. 결혼하자는 입장이 큰 만큼 기본적으로 ‘비혼주의’에 대해서 곱게 보고 있지는 못하는 듯.


p.136
안 낳을 선택권과 마찬가지로 원한다면 낳을 수 있는 선택권도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

p.133
결혼과 출산은 별개의 사건이다.

p.180 결혼과 가족은 다시 정의된다.
결혼은 영속적 개념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과 그 시대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확대-축소되며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결혼을 ‘여성들의 교환을 통한 남성집단의 통합‘으로 본 레비 스트로스의 고전적 정의가 과연 현대 사회에서 통할 지 의문이다.

p.231
"전 그냥 그 사람과 같이 있고 싶어요. 결혼이란 형식을 빌리든 아니든 상관은 없어요. 그런데 전형적인 한국식 며느리, 아내, 엄마 노릇은 하고 싶지 않아요. 만약 그 사람과 날 닮은 아이가 낳고 싶어지면 낳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설령 우리 중 하나가 돈을 벌지 못하거나 뜻이 맞지 않아 헤어진다 해도 큰 걱정 없이 키울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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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처는 해석이다.”

오랫동안 나는 마음의 상처에 천착했다. 그 상처의 본질은 무엇일까에 대해 사색했었다. 내게 가장 아픈 상처를 준 사람들. 그들은 공교롭게도 내가 가장 친밀하게 느끼고 있던 (혹은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 관계들이었다. 덧붙여, 그들은 나쁜 사람들도 아니었다. 의심할 바 없이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

어쩌면 정말로 치명적인 상처는 그 모순이었을지 모르겠다. 나를 상처 준 사람들이 하나같이 착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

그들이 나를 위해 했던 말은, 더할 나위 없는 ‘진심’이었다. 그 진심과 선함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의지가 선하다고 하여 내가 아프지 않은 것 또한 아니다. 나의 아픔은 그 아픔 나름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p.90)상처는 해석이지 그 자체로 폭력은 아니다. 어떤 행위이든 상처의 가능성이 있고, 동시에 어떤 행위이든 상처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상처는 절대적인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다.”

이 날카로운 문장이 눈에 박혀서 한동안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책에서 설득하는 어떤 주의·주장과 상관없이. 텍스트가 박혀있는 문단의 맥락과는 전혀 상관없이.

내가 받은 상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에 대한 물음표가 하루 내내 떠다녔다.
그것은 어쩌면, 더는 이 상처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다는.
‘이제 그 모든 과정들을 상처로 남겨두지 말자‘라는 무의식의 반영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착한/ 사람들.

상처는 해석된 것이기에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다. 사실 이미 악의가 없는. 그들의 의도를 따져 묻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엄연히 ‘내가 해석하는 방식’이, ‘나를 상처 입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더는 아프고 싶지 않기에, 다른 방식의 해석을 - 그러니까, 이 다음의 삶을 도모해야 한다. 부디, 그러고 싶어졌다.

어쩌면, 이 문장을 읽기 위해 이 책을 만났던 것일까..
가끔은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내 멋대로 해석해버린-) 어떤 한 줄의 글이 나를 살리는 것도 같다. 실은, 그 한 줄을 핑계 삼아서라도 살아가고 싶은 것일 테지만. 



2. 


책에 대한 평.

어느 순간부터 자주 등장하는 낯선 단어 ‘폴리아모리 Polyamory’가 궁금해서 읽었다. 폴리아모리적인 욕망이 향하는 것은 ‘여러 명’이라는 숫자가 아닌 어떤 ‘자유로움’에 가깝다는 것. ‘다자 간’연애보다는 ‘비독점’에 포인트를 맞추고 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다자 연애’에만 집중하지 ‘비독점성’과는 상관없는 문어발식 사랑(ex. 나는 바람피워도 너는 절대 피지마~♬)은 폴리아모리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 (여러 사람을 소유하려는 모노아모리monoamory일 뿐)등을 배웠다.

어떤 형태의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방식이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것에 대해 놀랄 뿐이다. 처음의 설렘보다는 관계가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안정감이 내가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더 가깝기에- 일상을 계속해서 ‘변용’ 해야 하는 너무도 부지런한 그들의 ‘사랑’ 방식을 무리해서 납득하려 하거나,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을 갖기는 어려울 듯하다. 게으른 자에게 ‘폴리(여럿)‘는 물론 ‘아모리(사랑)‘도 피곤한 것. (더더군다나 난 사회성이 좋은 편도 아니라서 ‘하나 이상‘은 너무 힘들 것 같다ㅠ_ㅠ) 다만, 이러한 관계가 ‘존재’하고 있다니 ‘아, 그렇게도 존재할 수 있구나’ 하기로.

한편으로는 이미 ‘신자유주의화’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다양한 가족(혹은 관계 맺기) 형태에 대한 실험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요즈음의 한국은 ‘가족’혹은 ‘가정’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정의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한 것 같다. 전통적인 ‘가족‘ 또한 ‘안전한 관계‘가 아니라면, 또 다른 관계를 찾아 나서야지.
요컨대, 필요한 것은 상상력. 그리고 용기. 실제 책에도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p.104) 즉 우리는 폴리아모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모노아모리만이 의식적인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모노아모리란, 우리가 한 사람만 사랑하기로 ‘선택‘한 그런 폴리아모리이다. 무한한 공동체의 배치를 상상할 수 있다. 당신이 어떤 배치 속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상상하고 실천하고 구성하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지인 몇몇에게 ‘폴리아모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려 했지만, 입도 떼기 전에 제지 당했다. 생계도 피곤하다며... 사실, 그게 현실 인것 같다. 우린 N포 세대..ㅜ.ㅜ

책을 덮고 잠시 모두가 폴리아모리스트인 세상을 생각해보았다. 역시나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빈약한 상상력 ㅠ.ㅠ) 모르긴 몰라도 사회주의(이건 그래도 상상이라도 간다..)하고는 비교도 안될만큼 상당히 급진적인 모습일 것 같다.





(p.162)
실제로 대중의 욕망이 변화한 것이라면, 그 변화의 기제는 무엇일까. 사실 폴리아모리가 소개되는 시점부터 한국 사회는 가족과 공동체, 성과 사랑에 대해서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이해를 구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p.227)
우리 각자는 하나의 우주와 같다. 그러므로 가족이 된다는 것은, 둘 이상의 우주가 장기적으로 교차한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혼자서는 어느 정도 인력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더라도, 교차하는 순간 그 인력들은 복잡해지고, 별들은 충돌하고, 어떤 공간은 소멸하고, 결국 여러 심급의 카오스로 뻗어나간다. 카오스에 대해 우리는 불안을 느끼는 존재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해체된 카오스 속에서도 오히려 그 카오스 자체에 대해 일관된 긍정을 찾을 수 이는 것, 이것이 바로 폴리 아모리의 가족형태인 폴리피델리티가 꿈꾸는 상태일것이다.

(p.242)
폴리아모리는 윤리적인사랑이아니다. 횡단하는 사랑이며 그 자체로 자연의 사랑이다. 어차피 우리는 사랑하고 있고 사랑하게 되어있다. 올바른 사랑을 찾으러 형이상학을 맴도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에게 마주한 강렬함을 그 자체로 기쁘게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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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 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
최세진 지음 / 메이데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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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나의 애인님은 무려(!)장발의 헤비메탈 뮤지션이었다고 한다. 진지한 글, 단정한 옷 매무새, 라식을 하고도 뿔테 안경을 고수하는 지금의 모습을 생각하면 유추하기도 어렵지만, 그 것은 진실인 것 같다. 이를테면 rage against the machine의 killing in the Name을 들려주며 눈을 반짝일 때.

나는 묻는다. “이 익숙한 음은?!! H.O.T 노래 아냐?”
그는 손사래 치며 열변을 토한다. 90년대에 제일 좋아하는 그룹이었는 데 의외로 빡센 사회주의자들라며. 어디다 에쵸티를 갖다 대느냐며...
“사회주의?!? 우리 에쵸티 오빠들 노래가 얼마나 애국적이었는지 알아?!? 장우혁이 랩으로 애국가도 불렀다고!! 난 오빠들이 없었으면 사회주의는 커녕 사회문제에도 눈뜰 수 없었어~ 아이야 몰라??”
목소리를 높였지만, 신선했다. 90년대 처럼 자본주의가 기세등등하던 때에도 사회주의 뮤지션들이 있었다고? 게다가 쵸티오빠들이 그들의 노래를 샘플링하였단 말이지... 후덜덜.. 비틀즈의 반전운동 같은 거야 귓등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너무 생소했던 거다.

애인님은 뮤지션들이 얼마나 급진적이었는지에 대해서 즐거워하며 수다를 시작했다. 

이야기중 가장 놀랬던 것은 역시 첨바왐바의 텁썸핑. 
이 노래가.. 그런 노래였다니... 퍼..펑크... 민중가요.....?!

흥미로웠다. 기사 같은 것들을 검색하다 첨바왐바, 존레논 등등을 다루고 있는 책을 발견했다. 제목이 멋있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미국의 엠마 골드만이 했던 말이라고 한다. 이미 절판되었으므로, 알라딘 중고 결제.

사회 문화 구석구석에 숨겨져있는 좌파적 상상력을 알려보겠다는 취지의 책인데, 솔직하고 거칠게 내 평을 이야기 하면 “혁명 오덕이 쓴 책” 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저자 지금 뭐하실지 궁금함)

SF소설과 게임, 펑크뮤직, 해커 분야에서부터 인물로는 체게바라, 쇼스타코비치, 미야자키하야오, 마르코스까지..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진보진영통신모임 바.통.모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하며 구석구석에 숨겨(?)진 ‘혁명’의 키워드들을 찾아내고 있다. 놀라울 따름..

뭐,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이상으로 자본주의는 치밀했고, 또 생각보다 더 세상은 빨갱빨갱했다. SF 소설의 대가인 H.G 웰즈가 사실은 사회주의자 였고. 그가 남긴 <타임머신>이라는 소설은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타임머신...)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자본주의’를 비판 한 거고, <우주전쟁>은 (스필버그의 그 우주전쟁 원작 맞다) 화성인의 지구침공이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빗댄 소설이라는 것.. 등등. 구석구석 감춰진 사회주의 창작자들이 놀라워서 반갑고 재밌더라.

"(p.145) 피카소
피카소는 당내에서 계속되는 비판에도 자신의 미술관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발언이나 행동이 당에 해를 줄까봐 늘 조심했습니다. 그것은 ˝뭐라해도, 미술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혁명이 잘못되는 것보다는 미술이 잘못되는 게 낫다˝는 발언에서도 드러나듯 혁명에 대한 그의 신념은 매우 깊었습니다. "

이를 테면 피카소가 이정도의 공산당이었던 것도 나는 몰랐던 거지.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 같지만 혁명은 겨우 지난 세기의 이야기이고, 우리세대가 혁명에 대해 냉소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익히 아는 옛날 사람들이 혁명을 꿈꾸지 않았으리란 법은 없는 거다.

"(p.171) 첨바왐바
첨바왐바는 1985년 첫 음반 <革,Revolution>의 표지에 ‘우리의 음악이 단지 즐거움만을 주고, 행동을 고무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음악은 실패한 것이다‘라고 새겨놓았는 데, 지금도 자신들의 역할이 ‘진실을 폭로하고, 투쟁을 선전·선동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첨바왐바는 당시 <革>의 속지를 통해 ‘분열을 중단하고, 함께 투쟁하자‘라고 호소하며 ‘자본가들이 심어놓은 환상을깨고 지금이 바로 투쟁을 위해 일어설 때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의 그러한 메시지는 변함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사건이 생길 때마다 사건에 대한 입장을 담은 노래를 만들며 노동계급과 민중의 투쟁을 선동하고, 자본주의와 우경화한 노동당에 대한 풍자를 노래 가사에 녹여냅니다."


"(p.177) 첨바왐바
1998년 ABC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음반을 훔치는 것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사람들이 우리 음반을 품치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첨바왐바는 공식 홈페이지에 ˝만일 우리 음반을 훔치려거든 Virgin, HMV, Our Price,Tower, Andy‘s Records, Woolworth, Boots, WH smith 와 같은 대형 체인점을 추천한다. 동네 작은 레코드 가게 보다 큰 체인점에서 훔칠 때 도덕적인 딜레마를 조금 적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대기업들을 전혀 동정하지 않는다˝고 올려놓아서 대형음반판매 업체들이 첨바왐바의음반들을 카운터 쪽으로 급하게 옮기기도 했습니다."

*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체게바라, 멕시코 등의 남미의 혁명전통 이야기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냈는 데, 이 책이 출간되던 2000년대 중반 무렵은 멕시코의 사파티스타-마르코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등등 남미에서 일어나는 혁명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던 시절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많은 세계 민중들에대한 연대 감수성 같은 게 있었던거 같기도 하고. (왜 이렇게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지는 모르겠당)

"(P.190)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라는 단어의 뜻은 앞서 이야기 했듯이 바퀴벌레입니다. 하지만 바퀴벌레라고 모두 같은 바퀴벌레는 아닙니다. 혁명가요의 제목이 ‘바퀴벌레‘로 된 것은 당시 혁명군인 농민군의 비참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하고, 농민군을 돕기 위해 여인네들이 음식바구니를 메고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바퀴벌레들이 줄줄이 걸어가는 것 같아서 라고도합니다. 그런데 넓은 차양의 멕시코 전통모자인 솜브레로를 쓴 혁명군들의 사진을 보니 아마 죽이고 죽여도 다시 나타나는 바퀴벌레떼 같아서 지은 이름이 아닐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라쿠카라차>는 당시 판초 비야와 농민군의 혁명을 찬양하는 노래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19세기 말 동학혁명을 노래한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꽃에 앉지 마라‘같은 거죠."

*

책의 마지막 장은 2002년의 반미 촛불 집회를 활동가로서 지켜보며 느낀 소회와 토론해야할 쟁점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특히 ‘대중운동’과 ‘인터넷’에 대한 깊은 고민들이 인상적이었다. 그 무렵 진보주의 활동가들이 그 주제를 어느 수준으로 토론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자본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것 같지는 않다.

"(p.318-19) 인터넷이 평등하다는 편견을 버려
하지만 인터넷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현재의 인터넷 소통 구조는 이 방식으로 결코 극복될 수 없습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정보의 빈부 격차를 바탕으로 하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익을 취하는 현재 구조를 방치한 채 그들의 시혜를 요구하는 운동은 단기적으로는 유효하지만, 대안적인 전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커뮤니케이션 구조에서 자본주의적 소유제도 그 자체를 뒤집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계급문제는 계급적 관점에서 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본이 사유화한 인터넷을 사회화하고, 그 운영방식을 민주화하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두고, 그 안에 다양한 전술적인 활동을 배치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티즌과 함께 시작된 촛불은 15년 뒤 박근혜 탄핵이라는 나름의 정치적 성과로 이어졌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혁명은 어느 순간 ‘펑’하고 터지는 것이 아니라, 나날이 계속되는 일상이라서_ 여전히 오늘의 논쟁, 투쟁, 소란에 속이 시끄럽기는 하지만.

*

"(p.9)
그리고 이제 기나긴 혁명은 우리에게 예전보다 많이 ‘자유롭고 불순한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그 ‘자유롭고, 불순한 상상력’으로 감추어진 것들을 꿰뚫어보고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즐거운 상상력’으로 바닥부터 전복해 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일상에 대한 전복의 상상력이 또다시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팔려나가거나 ‘개인적인 반항’에서 머물지 않으려면, 언제나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모순과 거시적인 변혁의 관점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전히 버릴 수 없는, “혁명”에 대한 바람. 그리고 그 혁명을 만들어가는 순간이 ‘춤 출 수 있을 만큼’ 즐거워야 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당연하지만 구현은 어렵기도 한 내용이라서, 책속의 사례들이 참 좋았다.

자본은 미디어를 장악하고, 미디어는 모든 문화를 다 장악해 버린 것 같지만_ 다른 세상을 향한 우리의 상상력을, 우리의 혁명을, 우리의 춤을 가져갈 수는 없을 것 같다. If I can‘t dance, it‘s not my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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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긴긴 연휴에는 끝장낼 수 있지 않을까?하여 도전한 크리스하먼의 민중의세계사
(학부생 시절부터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였으나 언제나 중세에서 멈췄던 그 두꺼운 책)
나 자신을 과대평가 했나봄.. 추석내내 열심히 읽었는 데도 292페이지 ㅠㅠ 그래도 어떻게 저떻게 산업자본주의까지 왔당!! 맥주를 마시며 산업혁명까지는 달려보련다(불끈_!) 러시아 혁명 백주년을 기념하며 시월 안에는 요 책의 끝을 보자는 다짐.

참고로 책은 두꺼워서 그렇지 무척 재밌다. 우리가 아는 정치적 변화들 뒤에 흐르는 생산력-관계의 맥락들이, 선사시대부터 쭈욱 일관되게 정리되어 있다. 지긋지긋한 왕조나 영웅들 이름을 안보니까 좀 더 쉽고, 콜롬버스 같은 인간들 잘근잘근 씹아주시니 공감되서 좋고... 지배계급과 제국들의 몰락 역사를 보니 현대의 제국도 얼마 안남았다 싶기도 하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는 한줄로 정리되는 모든 격변이 당시를 살았을 이들에겐 끊임없이 이어지는 변하는 것 같지 않는 날들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미분된 지금의 시간과 미미한 존재일 뿐인 나자신의 느리디 느린 변화 또한 멀리서 보면 격변 이겠거니.

"(p. 244) 수백 년 이상 계속된 서유럽 사회의 변화들은 느리긴 했지만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그것은 흔히 당시 사람들은 거의 느낄 수 없었던 그런 변화들이었다. ... 느리고 간헐적이긴 했지만 계속해서 생산 기술이 발전했다. 그래서 16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12세기는 물론 14세기에도 보지 못했던 장비들이 넘쳐났다. 주요 도시마다 있었던 기계식 시계, 물레방아와 풍차, 무쇠를 만들 수 있는 용광로, 배를 건조하고 의장하는 새로운 방식과 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장비들, 전쟁용 대포와 머스킷 총, 전에는 소수의 도서관에 신주처럼 보관된 필사본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원본을 대량으로 복사할 수 있는 인쇄기가 바로 그런 것 들이었다. "

*

르네상스도 루터의 사상도, 인쇄기가 없었다면 거대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스마트 폰이 없었다면 2016년의 촛불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문자, 안경이나 인쇄기, 종이와 전구가 없었더라면 인류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일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쓰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론을 얻고, 그게 움직임이 되고. 칼과 총이 발달하고, 물리적인 힘으로 외화되고, 어떤 정치적 변혁을 이뤄내는 과정.

지금의 우리는, 내가 만지고 있는 이 아이폰은, 어느 페이지 쯤에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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