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에서 살아남기 지혜의 시대
김대식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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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드러누워서 내가 뭘본거냥?!! 

너무 무서운 걸 읽어버렸다냥!!! 🙀



페미니즘에서 기본소득으로 4차 산업혁명으로 대체 종잡을 수 없긴 한데 묘하게 연결이 되는 요즘 나의 내 맘대로 읽기.....
<지혜의시대> 시리즈라 얇고 쉽겠다 후루룩 읽긴 했는데. 급 무서워져서 읽다 던질 뻔 했다.

50년 안에 지적노동도 인공지능이 대신 할거라고???
내가 하는 노동도 대단한 지적 노동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빠른 시일 안에 실업자(지금도 반백수 상태인데)가 된다는 소리! -> 역시 부동산이 답인가? -> 그러나 부동산은 커녕 동산도 얼마 없잖아!!! -> 그래, 국가가 나를 자르지는 않겠지. 이제라도 공무원 공부를 하자! -> 합격한다는 보장 없음. 그리고 공부 싫음 -> 망했다. 망했네. 나만 망하나? 다 망해라~~! 우하하!🐲🐲

4차 산업혁명이네, 호들갑이 많을 때 이런 저런 정보들을 주워 듣기야 했는데, 현실에서 기술이 이 정도로까지 진도를 빨리 빼고 있을 줄은 몰랐다. 특히 딥러닝 알고리즘이 만들어진지는 고작 4~5년이라고 해서 소름이 다 돋았네..

책 제목은 4차산업혁명에서살아남기 인데..살아남는 법 안알려준다.... 우리보다 센 인공지능이 나타나서 ‘결국 문제는 인간이다’하고 인류를 없애.....??? 응??? 지 않으려면 인류는 지금 부터 잘 살아가래. 근데 30년 안에 모든 인류가 잘살아가는 거 그거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 결국...??.. 

!!!!!!!!!!!!!!

여하튼 무서워... 무서워 죽는 줄. ...



* 문장들 *

(56)
알파제로는 보편적인 학습을 하는 인공지능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데이터를 주지 않으면 아무리 대단한 인공지능도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데이터를 주지 않아도 기계가 알아서 시뮬레이션을 하는 수준에 이르렀지요. 알파고를 볼 때는 그저 바둑을 잘 두는 기계에 신기했는데, 이제는 인공지능이 자기 멋대로 영역을 넓히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77)
신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똑똑해지면서 니체말대로 신을 죽였습니다. 인간이 기계에 지능을 준다면, 그리고 기계가 인간보다 똑똑해진다면, 기계는 인간을 어떻게 할까요? 인간이라는 신을 없애버릴지는 않을까요? 우리 앞에는 갈림길이 있는 셈입니다.

(80)
정보기술과 인공지능은 2차 기계혁명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2차 기계혁명은 현재진행형이라 언제 완성될지는아무도 모릅니다. 2차 기계혁명이 끝날 시점은 모르지만결과는 예측할 수 있습니다. 육체노동뿐 아니라 지적노동까지 기계가 대체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인공지능은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요.


(82)
저는 ‘인공지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하는 질문이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미래 사회에서 인공지능이 전기와 같은 역할을 하리라고 예측하기도 하는데, 이 말은 곧 모든 일에 인공지능이 쓰이리라는 것을 뜻합니다. 19세기에 전기가 처음 등장하고 당시 사람들은 전기로 무엇을할까 고민했지만 지금 보면 그 고민들은 모두 무의미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전기로 돌리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118)
인공지능도 스마트폰이나 전기와 비슷합니다. 게다가 이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습니다. 인공신경망, 갠, 강화학습 ... 인간은 이런 것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이미 알아버렸지요. 아는 것을 다시 잊기란 모르는 것을 알게되는 일보다 더욱 어렵습니다. 내가 잊는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여전히 기억하겠지요. 그러니 지금과 같은 흐름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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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3-24 0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뇌과학자들 중에서도 전 특히 김대식씨의 의견이 싸한~ 느낌을 많이 주었던 것 같아요. 이 책은 아니고 뭐였더라, 암튼 이 분 책 읽고 저도 며칠간 고민의 연속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흐름을 멈출수 없다는데서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느껴져요. 멈출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 그리고 나는 그 변화와 함께하는 나이를 약간 벗어났다는 안도감^^

공쟝쟝 2019-03-24 14:08   좋아요 0 | URL
역시 뇌과학분야 읽으셨네요. 전 이과(?) 분야의 책은 지식이 너무 없어서 읽어본 책은 이거 한권인데 뭔가 나몰라라 하던 부분이 확 열려버린 느낌. 김대식씨 책 조금더 읽어보려구요 ^.^
 
기본소득이 알려주는 것들 - 국민 복지의 뜨거운 화두, '기본소득'에 대한 입문서
야마모리 도루 지음, 은혜 옮김 / 삼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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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소득 책에서 페미니즘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기본소득 운동은 페미니즘 운동 속 주장 중 하나로 ‘보장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미국, 이탈리아, 영국 등 사례는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1970년대 전통적으로 임금노동의 축에 들지 않았던 가사노동, 돌봄 노동에도 임금을 도입하라는 주장이 있었는데 – 그것이 ‘돌봄에 대한 수당’이 아니라 ‘기본소득’의 형태로 요구되었다는 것이 탁월하다. 또 여기서 기본소득의 몇 없는 원리중의 하나인 ‘개인 단위로 지급한다’는 원칙도 도출되는 게 아닐까.
사실 현대 복지 국가의 전제(이며 신화)인 ‘완전고용’이라는 개념부터가 문제지만.(빻아서 문제라기보다는 진짜 현실과 안맞아서 문제.) 완전고용의 기준은 남성노동자다. 당시 경제의 기본단위가 가정-가장인 남성 부양자가 받는 가족임금-으로 설정되었으므로 복지의 사각지대엔 정상가정 테두리 바깥의 비혼모들이 있었다. 보장소득의 요구는 그녀들의 현실적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여전히 복지며 경제운영의 기준이 가족 기준인 것은 문제다. 가계소득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40%를 넘고, 나혼자산다 1인가구가 얼마나 많은 데.. 여하튼 되지 않을 완전고용 집어치우고 현실에 맞게 개인단위로 복지 자체를 셋팅해야 하는 시점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현실적 요구로 미리 기본소득 주장하셨던 70년대 여성운동가 머모님들께 박수🙌🏻🙌🏻🙌🏻

2.
대학교때 꽤나 증오했던 신자유주의 경제 사상가 밀턴 프리드먼을 이 책에서 보게 될 줄이야!!?!! 버뜨 난 열린 사람ㅋㅋ 우파의 주장이라고 덮어놓고 비난하지 않겠음.. 좌우를 넘나드는 합리적 기본소득의 미래로 함께 갑시다!! 재용씨도 함께가요. 당신도 돈 받는다고~ㅋㅋ


3.
일은 무엇, 노동은 무엇, 돈은 무엇, 가족은 무엇, 국가는 무엇인가?!
와 같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어머, 나, 철학자가 되려나봐....😨


4.
아쉬운 건 일본책이라 그런지 일본 예시들이 많았다는 것. 그리고 입문서라기엔 상당히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대학때 거시경제, 경제사상사 등등 다 배웠는데 왜 때문에 한계세율 같은 용어 하나도 기억 안나는 거지?? (좌절) 경제용어 너무 많아.. 핵심을 정말 잘 간추린 느낌이긴 한데...사실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기본소득 취지 정도에 동감하고 싶은 분이라면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플랜 그 책이 초심자 한테는 맞을 듯. 이 책 읽고 좀 정리해보다가 더 어려워서 그 책으로 다시 읽었다..ㅜㅜ

5.
어떤 논리든 받아들이는 건 감정의 영역. 기본소득은 돈 때문에 의미없는 일을 정말정말 열/심/히 해온 사람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 듯 싶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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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자. 복지국가의 세 가지 이념은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는 격언과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말라‘라는 격언을 섞어놓은 것과 같다. 의식이 족해야(생존권이보장되어야) 예절을 알기 때문에(시민으로서 사회에 공헌할 수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장시스템은 임금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을 우선시한다. 그리고 우리 중 다수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금언을 체화하고 있다. 이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말이며 성경에도 똑같은 구절이 있다.(데살로니가후서」 제3장 10절) 그러나 이 성경 구절과 우리가 체화하고 있는 금언의 차이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람은 먹어도 된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복지국가 시스템은 이 사고방식에 기초하여 설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임금에서 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 등 사회보험 납부금을내고 고령·질병·실업 등에 대해 보장을 받을 수 있다.- P52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 일할 수 있는데도 일하지 않는게으른 사람이나 일할 수 있는데도 할 수 없는 척하는 사람과정말로 일을 할 수가 없는 사람을 구별하여 그들에게만 생활보호 등의 형태로 소득보장을 시행한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는 사람 중에서 ‘일하고 싶어도 할 수없는 사람‘을 선별해내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복지국가 시스템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성립된다. 그리나 적어도 일본에서는 이 장에서 살펴본 대로 실패한 것 아니까, 생활보호를 받지 못해 길에서 얼어 죽는 사람들과 저조한표착률 데이터를 마주하면 실패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돈이없어서 생명을 빼앗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한 합의 위에생존권이라는 개념과 복지국가라는 제도가 구축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일본형 복지국가가 한 것은, 생명에 서열을 부과하여 구별하고 열등한 생명을 폐기하는 일이었다.- P53

기본소득 구상안을 향한 주된 비판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부당하게 엄격한 제도라는 의견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대략 아래와 같은 논리로 답한다.
기본소득이 보장되는 상황에서는 생존을 위해 노동을 강제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이 일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사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돈에 상대적으로 큰 가치를 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더 적게 일하는 사람은 (역시 단순하게 말하면) 시간에 상대적으로 큰 가치를 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중략) 판 파레이스는 후자를 ‘게으른(lazy) 사람’이라 칭할 수 있다면 전자를 ‘일에 미친(crazy)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겠냐며 논의를 이어나간다. 기본소득 제도하에서는 게으른 삶도 일에 미쳐 있는 삶도, 또는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은 ‘어중간한 (hazy)’방식의 삶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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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3-15 13: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실... 최근의 사회 문제에 대해 뭘 물어보아도 제게 답은 ‘기본소득’이라서요.
문제는 ‘일’, 노동의 범위죠.
자본주의 사회에서라면 출근해서 쓰러질때까지 일해야 일이라 하니...ㅠㅠ
우리가 하는 의미있는 일들이 ‘쓸데 없다’고 말하는 생각과 싸워야하는데 그게 쉽지 않거라구요. 갈 길이 멉니다.

공쟝쟝 2019-03-15 13:46   좋아요 0 | URL
그래도 막연히 ‘대안이없다’라는 핑계들로 싸울 때(?) 보단 좀더 좋은 세상으로 가는 하나의 무기(!)를 발견한 것만 같아 기본소득이 참 고마웁게 느껴집니다. 왜 여태껏 몰랐을까 라고 생각두 들고요. ㅎㅎㅎ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지혜의 시대
변영주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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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는 평생 잘 안(못)보던 영화를 일주일에 한편이라도 보려고 노력하는 데, 그건 전부다 <방구석1열> 정확히는 변영주 감독 때문이다.

등장하는 패널들, 소개되는 영화들 다 좋지만 특히 감독님이 무슨 말 할때마다 진심 귀 쫑긋 해서 듣게된다. 그의 다듬어진 피씨함에 한번, 감독은 영화를 저렇게 보는구나 하면서 두번 감탄한다. 요즘은 별로 재미없던 영화들도 다 재밌다. 신기한 경험이다. 그나저나 방구석 1열 엄청 챙겨봤는데 감독님 이젠 본업이 충실하러 가신대서.. ㅠㅠㅠㅠ 아쉬워하며 올레 티비로 재탕해서 또 봐야지(ㅋㅋㅋㅋ).
방구석1열을 함께 보고 셋째가 말하기를 “와, 우리나라 같은 영화 선진국이 출발비디오여행 영화 소개로 지금까지 만족해 왔다는 게 신기할 정도”라고. 그러게 말이다.
영화 소개 프로그램이라기엔 시사 같고 교양 같은데 또 시사교양이라기엔 예능 같고.. 이번주엔 박찬욱감독 출연이라는 데 더 잼나게 봐야지😘~! 케케

여하튼 변감독님의 짱짱팬이 되어서 책을 읽었고 역시 그가 더 좋아졌다. 창작의 원칙과 태도 -어떻게 살고자하고, 무엇을 사랑하는 지 -에 대한 강연록인데 두께에 비해 생각할 거리들이 참 많았다.



“(112) 어떤 건 나 때문에 힘들어요. ‘내가 무능력해서, 내가 잘 몰라서, 내 재능이 부족해서’ 그래서 힘든 게 있어요. 그런 것과 ‘내가 여성이라서 힘든 것, 내가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서 힘든 것’을 명확하게 구분해내면 승리할 수 있어요. 능력이 부족한 건 공부하면 되고, 여성이라서 힘들면 옆의 친구와 손을 잡으면 돼요. 다른 게 힘들다고 하면 그 나름대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우리가 왜 매번 지냐면 이것들을 하나로 뭉뚱그려서보기 때문이에요. ‘아, 나 진짜 힘들어.‘ 이렇게만 보면 집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와도 연대하기 힘들어요.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힘든지가 분명해야 연대가 되는 데, 그냥 힘든 걸로는 연대가 안 돼요.
차별에 대처하는 방안은 없지만 고난을 이겨내는 방안은 이것입니다. 언제나 그 고난들을 분리해내는 거예요. 나의 고통이 뭉텅이가 아니라 제각각이라고 생각하면이겨낼 수 있습니다.”



난 편견이 많고 내 방식으로 생각하길 좋아한다. 미리 재단하기도 하고 왜곡해서 보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고 싶은 데, 사실 무엇을 볼 것인지부터 이미 왜곡의 시작이라, 덜 편견쟁이가 되기 위해 이 강연의 팁을 머릿속 저수지에 깊이 던져 놓는다.

뭉뚱그리지 않을 것. 구체적일 것. 해상도를 높인 섬세한 시야로 바라볼 것. 그것이 나를 침해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할 것!
언제나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
고마워요, 변영주 감독님!🙏🙏



(6)
지금 우리는 한때 모두 같은 전선에 선 동지였는데, 네가 배반했다거나 내가 변절했다며 각자의 그 작디 작은 깃발을 흔들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애초에 같은 전선에 섰던 적이 없으며, 조심스럽게 우리의 교집합을 조금씩 확인해보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각자의 깃발을 흔드는 이들에게 누가 당신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아직은 교집합의 크기가 외로움과 욕망에 비해 작을 뿐이라는 그런 말을 하고 싶다. 나아가 결국 우리가 교집합을 키우기 위해 해야 할 단 하나의 일은 ‘너’의 이야기를 수줍게 듣는 것밖엔 없다는, 그런 이야기를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또다시 강연에 나서게 되었다.

(65)
대개 멋진 문장을 만나면 그 문장이 어디서 나온 누구의 말인지 기억하고 그 문장을 정확하게 외우려고 노력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일부러 그걸 안 외워요. 그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 대신 그 말을 내가 왜 좋아하는지를 생각해요. 내가 왜 이 문장에 반했지? 내가 왜 이걸 계속 읽고 있지? 내가 왜 다시 찾아보고 있지? 그 이유를 계속 생각해요.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 그 문장이 제 입에서 조금 다르게 나와요. 저는 그 달라진 문장을 기억합니다. 그럼 그 말은 제가 한 말이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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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19-03-16 0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방구석 1열은 애청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이번주도 박찬욱특집도 봤어요^^

공쟝쟝 2019-03-16 23:41   좋아요 1 | URL
저 오늘 봤는데 후어어 역시 좋더라구요
 


“(129) 기본소득 구상안을 향한 주된 비판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부당하게 엄격한 제도라는 의견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대략 아래와 같은 논리로 답한다. 
기본소득이 보장되는 상황에서는 생존을 위해 노동을 강제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이 일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사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돈에 상대적으로 큰 가치를 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더 적게 일하는 사람은 (역시 단순하게 말하면) 시간에 상대적으로 큰 가치를 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중략) 판 파레이스는 후자를 ‘게으른(lazy) 사람’이라 칭할 수 있다면 전자를 ‘일에 미친(crazy)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겠냐며 논의를 이어나간다. 기본소득 제도하에서는 게으른 삶도 일에 미쳐 있는 삶도, 또는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은 ‘어중간한 (hazy)’방식의 삶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나의 게으름이 옹호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은 문장. (기본소득없는 사회에서 게으를 권리 따위는 없다는 슬픈 현실은 잠시 미뤄둔다) 게으르고 싶다. 미치기 싫다. 게으르고 싶다!!!! 앍얽앍~~🤧

살아가는 것도 노동이므로 내 삶이라는 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 (탕탕탕)
_
기본소득 궁금해서 진짜 오랜만에 경제 관련한 교양 서적 보는 데, 통 멀어져있던 분야라 좀 어렵게 느껴진다. 
생각안하고 읽으면 아무런 이해없이 글씨만 읽게 되므로 긴장해서 읽고 있음ㅎ
_
내 평생 놀고 먹고 쉬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도 지옥 아닐까?) 그런데 일을 시작한 순간 깨달았다.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한다는 거. 일로 자아실현 하면 좋겠지..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구.. 그리고 안하면 죽는 자아실현이 정말 자아실현입니까??? 
평범한 사람에게 일을 쉰다는 것은 가족에게 기생하는 미안한 삶, 혹은 외롭게 혼자 죽어가는 노후를 떠올리며 무지 불안해지는 삶을 뜻한다. 그러니까 때때로 일을 안해도 ‘살아갈 수’는 있는 사회로 가는 논의 정말 필요하다.
_
아, 인류야, 쌓아논 재부도 많은데 이젠 그럴 때 되지 않았니? 내 생각이 글러먹은 거야?
-1월 내내 놀고 2월도 연휴 핑계로 놀았으니 이젠 일해야하는 데, 열시에 울리는 거래처 전화 받기 싫은 나태한 기본소득 주장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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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2-07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실 제가 격렬한 기본소득빠입니다. 쟝쟝님이 이러시니 매우 든든합니다.

공쟝쟝 2019-02-07 17:14   좋아요 0 | URL
저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제도를 찾은 것 같아요. 아직 공부가 부족하지만 기본소득 빠라면 저도 곧 한 빠 하게될것 같습니다😬

syo 2019-02-07 18:06   좋아요 0 | URL
뒤지지 않는 빠가 되도록 저도 열심히 읽어야겠어요🤓
 


7-8장 요약 및 밑줄. 공유하고 싶어서, 가져옴.

인터넷 (당시 아르파넷ARPAnet)이 미국 국방부용으로 개발되었을 때, 과학자들은 공식업무보다 사교적 용도로 사용했다. 정부는 이를 팔려고 내놓았으나 AT&T 마저 인수 제안을 거절했고, 인터넷은 결국 공짜로 풀렸다.

인터넷이 더 발전하리라 생각한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나 사교 공간으로서 비상업적 인터넷은 끊임없이 성장했다. 모뎀을 소유한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껐고, 마케팅 담당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인터넷을 상업적 용도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인터넷 이용자들은 상점 사이트 보다 채팅방과 토론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웹에 비즈니스가 남아있었지만, 인터넷 연결과 그를 통한 대화는 압도적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p.132) *디지털 네트워크의 - 연결/접속 편향성
알고보니 콘텐츠가 왕이 아니라 ‘접속(contact)’이 왕이었다. 그리고 이른바 ‘소셜미디어’가 태어났다. ... 기업들이 계속해서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은 인터넷이 소셜 미디어로 ‘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본래부터 그랬다. 인터넷의 역사는, 그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되풀이해서 뿌리치는 소셜 미디어의 이야기로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

주도적인 기업들은 그 순간에는 영원할 처럼보이지만 빠르게 사라진다. 한국의 경우 다모임, 싸이월드, 프리챌, 그리고 블로그, 페이스북의 흥망성쇠를 생각해보라. 때때로 인터넷의 사교적 속성은 특정한 서비스의 비즈니스적 편향도 내쳐버린다. 즉, 우리가 연결(접속)되고자 하는 욕구는 상업적 욕망을 압도한다.

게다가 이 새로운 미디어는 기존의 활자, 라디오, 방송국처럼 ‘일방’과 ‘독점’이라는 형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한명의 개인이 전 세계적 규모로 소통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기업과 정부가 전과 같은 마케팅과 소통을 하기는 어렵다. 신화와 담론은 해체되고 거짓은 바로잡힌다.

“(p.152) 한 자동차 회사가 소비자들에게 그 회사의 신차 텔레비전 광고를 만들게 했을 때, 공교롭게도 기름잡아먹는 SUV를 비판하는 반광고가 가장 인기 있는 비디오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 통렬한 풍자들은 인터넷에 공유되고 전파되며 심지어 텔레비전을 통해 재방송되기까지 한다. 뉴스이기 때문이다. 그 자동차 회사는 대화를 이끌어냈다. 다만 그 회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을 뿐이다.”

모두가 연결된 소셜 네트워크 공간이란, 일방의 대화도 양방의 대화도 아닌 다대다 대화이다. 저자는 이제 기업과 정부가 대중을 움직일 무슨 정교한 장치들을 더 짜낼 것이 아니라, 간단한 원론(품질과 진실 이라는)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한다.

디지털 기술은 ‘급여를 벌기 위해 노력하는 노동자이며, 대중매체의 반복적인 신화에 편안해 하는 소비자’라는 ‘산업혁명시대의 인류’를 변화시켰다. 아무리 광고 대행사들이 이용자들을 ‘소비자’로 타겟팅 한다 해도 넷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자신을 ‘소비자’로만 가두지 않는다. 우리는 “소비자, 생산자, 투자자, 비평가, 그리고 다른 어떤 역할이든 맡으면서” 또 다시 하나 이상의 기반에서 서로 ‘연결contact’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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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있다. 초창기 ‘공유와 무료(혹은 참여 민주주의)’가 매력 포인트였던 인터넷 기술이 언제부턴가 천편 일률적으로 상업화되어간다고 걱정했었는 데, 또 그렇게 보기만은 어렵구나. 생각해보면 걱정 이전에 염증부터 느꼈던 우리들 이었으니까. 나 또한 노잼 콘텐츠 보다는 광고 일변도의 계정부터 언팔하기도 하고, 블로그에서 페북이나 인스타 등등으로 플랫폼을 옮겨온 주된 이유는 심해지는 광고와 선동이 지겨워서였다.

그렇다. 난 문화적 소통을 원했다! 그런 소통이 된다는 가정하에, 그것이 진실이고, 윤리적이며, 취향저격이라면 영업 당할 의향 마저 있었다!!

누구의 의도대로도 움직여지지 않는 살아있는 유기체 같은 공간. 저자가 그리는 소셜시대의 미래는 디스토피아도 유토피아도 아닌 듯. 하긴... 미래에 대한 숱한 장밋빛, 흑빛 전망들이란, 결국 여러 겹의 혼재된 색깔들로 현재에서 구현되어 왔을 뿐. 그럼에도 더 나은 미래란 현재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린 것이라.. 사색하게 되는 지점들이 많아진다.

이제는 아무도 넷상의 자아와 현실의 자아가 선명하게 구분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역으로 모두의 공격에 노출되었단 뜻이다. 이 사실 자체는 되돌릴 수도, 어떤 방향으로 제지시킬 수도 없다.

하여, 오늘에 맞는 새로운 윤리 의식을 정립하는 시도들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이미 있는 데, 나만 모르는 건가요?) 물론 누군가 (그것이 주커버크라 하더라도 ㅋㅋㅋ) 어떠한 강령을 만든대봤자 것도 그냥 선언 정도로 끝날 가능성이 부지기수지만. 뭐 3.1운동에도 기미독립선언서는 있었던 법이니.. 다소 무망하게 들릴지라도, 그런 시도를 통한 개인의 다짐들이 생겨난다면 적어도 이 혼돈의 카오스 sns가 누군가를 죽이는 일 만큼은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를 테면 ‘좋아요 개수가 나의 인격적 성숙은 아니다’ ‘그 사람의 넷상의 인성과 실물 인성은 보정된 셀카만큼 다르다.’라던지.. (응??? 써놓고 후회중)

여하튼 ‘접속/연결’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저자의 통찰에 새삼 감탄 중이다. 계속 읽어나가 보기로 한다.

“(p. 138 )
콘텐츠가 왕이었던 적은 결코 없다. 접속이 왕이다. 그럼에도 네트워킹 기술이 약속하는 새로운 수준의 인간적 유대감과 공동작업의 가능성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고파는 자원인 콘텐츠의 형태가 아니라, 우리가 모두 속해있지만 거의 모르고 있는 더 거대한 유기 조직체 속의 동질세포임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 접속, 곧 사회적 유기 조직체를 함께 건설하려는 이 욕구야 말로 지금까지 디지털 기술을 이끌어 온 힘이다. 더 많은 접속과 만남을 향한 본능은 지금의 자신보다 더 위대한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 우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진화적 명령이다. 원자들이 모여 분자가 되고, 분자가 모여 세포가, 세포가 모여 유기체가 되듯이, 우리 유기체들은 더 높은 수준의 조직으로 발전하기 위해 서로 네트워킹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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