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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반노동의 정치, 그리고 탈노동의 상상
케이시 윅스 지음, 제현주 옮김 / 동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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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의 일이다.
소주는 취하기 위해 마시고, 맥주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마시던 (지금은 둘다 맛있어서 마심) 이십대의 초반이었다. 막 사회 초년생의 길에 진입한 선배가 술자리에 와서 ‘딱 한입짜리(중요하다)’로 쏘맥을 말아서 마시면서 말했다. “빨리먹고, 빨리취하게.” 어린 나는 그 쏘맥이 어쩐지 비윤리적으로 느껴졌다. 왜 빨리먹고 빨리 취해야 한단 말인가. 기왕이면 술자리를 오래오래 즐기고 취할거면 천천히 취해야 하는 것 아닌가. 행복한 술자리를 왜 빨리 취해 급히 끝맺으려 한단 말인가!!!

지금와 생각해보면, 그 얼토당토 않은 윤리의식은 정말인지 젊었기 때문이다. 소비할 시간이 넘쳐흘렀기 때문이며, 모부님들께서 다달이 용돈을 줬기 때문이며, 쌩쌩 놀수 있는 체력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안다. “빨리먹고, 빨리취하”고 난 후 “빨리 집에가서/ 빨리 자고/ 빨리 일어나/ 빨리 일하러 가야한다” 뭐 그런 의무의 언어들이 생략되어 있었다는 것을.
그렇군요. 그 후딱 취해버리는(?) 딱 한입짜리 쏘맥은 압축적 근대화라는 한국의 현대사가 오롯이 담긴(!) 밀도 있는 한잔이었군요. (당시 술자리는 아마 근현대사 동아리 술자리 뒤풀이었던 것으로 기억...) 아아, 선배님. 오랜시간이 흘렀는 데, 당신의 간은 안녕하신지.

정말인지. 그 과학적 까닭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쏘맥은 빨리 취한다. 소주만 먹을 때보다, 맥주만 먹을 때 보다 세배 정도 빨리 취하는 것 같다. 특히 오래 전 그 선배가 말아마시던 쏘맥은 진짜 최고👍 마시는 과정 마저도 한입 탁~ 연거푸 석잔 정도면 뿅~ 여러모로 가성비 좋은 ‘압축 근대화 쏘맥’이렸다.

이후 그 압.근 쏘맥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수년 후 회식자리였다ㅋㅋㅋ 회식자리에서 나는 빨리 취하고 싶다. 어서어서 정신줄을 놓고, 취기에 딸려오는 희노애락을 즐긴다음, 그렇게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흘려보내고, 빠르고 진하게 술자리를 끝내고, 얼른 집에가서 발닦고 잠자고 싶은 것이다. 술마시는 시간도 아까워서 ‘빨리’ 취하기 까지 해야한다니. 이 얼마나 애잔한 월급쟁이의 삶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음. 이 책을 탁 덮는 순간 공교롭게도 난 그 쏘맥이 생각났다. (절대 술이 마시고 싶어서는 아니다.....) 그리고 취하는 시간도 아까워져버린 ‘일에 매인 삶’에 숙연해졌다.

나에게 탈노동- 일에서 벗어남-이란, 아주 천천히 취해도 되는 시간이 아닐까. 천천히 기울이는 술잔과, 꼭꼭 씹어먹는 안주와, 중간중간 끊겨도 어색하지 않은 대화 혹은 너무 열심히 읽을 필요는 없는 책, 스르르 이완되는 몸과, 도란도란 재잘재잘 시시콜콜 이야기를 느끼는 시간들. 음미하는 삶. 아, 여기 내 삶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구나를 감각할 수있는 여유.

요즘의 일상에선 쉽게 도모하기는 어려운 순간이고, 혹여 그런 여가(!)스러운 날이 온대도 한 이틀은 그저 잠만 잘 것 같지만. 어쨌든 취하고 싶다. 아주 아주 천천히. 편하게. 그리고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나서도 일어나 또 취하고 싶다. 으하하. 그렇게 닷새 정신줄을 놓고 나면, 분명히 나는 생각할 거다.

이제 생산적(!)인 일을 하자.
그게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227) 우리는 우리가 이미 원하는 것을 하고자, 또는 원하는 존재가 되고자 기본 소득을 요구하는 게 아닐지 모른다. 기본소득은 다른 것을 원하고 행하고 다른 존재가 되는 사람, 다른 종류의 삶을 고려하고 실험할 수 있게 허락하기 때문이다.”
“(264) 기본소득 요구에 대한 많은 반발 역시 비용보다는 윤리를 중심에 두며, 노동시간 단축의 가능성도 비슷한 우려를 일으킨다. ... 늘어난 비노동시간에 우리가 무엇을 할까 뿐만 아니라 무엇이 될까를 걱정하는 것이다.”



노동단축과 기본소득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통상 임금으로 정리되는) 일하는 시간, 혹은 일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한 재생산의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일에서 나를 빼면 나에게서 일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처음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당혹스러웠는 데, 불현듯 책을 읽고 있다는 게 떠올라 안도감 들었다.

아아, 다행이다. 삶에서 일을 빼면, 아무것도 없는가 했더니, 책 읽는 내가 남는다.
요즘은 무려 함께 책읽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니까. 나, 정말. 필요해.
일을 제외한 삶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들이.



*

회사에서 종종 라디오를 켜놓을 때가 있는 데, 코로나19를 맞이한 요즘 낮시간 라디오의 가장 핫한 주제는 가족과의 시간을 대체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인 모양새다. 모부의 재생산 노동을 놀이로 대체하는 유리창 닦기 놀이와 집안일 놀이 등의 발명부터, 수백번을 저어야 한다는 달고나 커피함께 만들기까지.... 끝나지 않는 방학 때문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육아맘들은 육아맘들대로, 또 가족과의 시간을 늘려야하는 아버지들은 아버지들 대로 힘든 모양새다. 차라리 일하러 가고 싶다는 일상을 돌려달라는 사연들이 빗발친다.
관련해서 재밌는 일화가 책에 있었는 데, 뭔가 쓴웃음을 짓게 만든 부분이라 공유해온다.

“(244 ) 난제는 이랬다. “가족 친화적인” 포춘 500대 기업 한 곳에서 일하는 부모를 위해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데도, 그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직원은 왜 이렇게 적은가? 많은 직원이 일과 집안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 한계치까지 혹사당한다고 느낀다고 답했으면서도 말이다. 회사 정책에 대한 연구와 직원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혹실드는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인터뷰한 사람들은 일터가 점점 집같아지고 집이 점점 일터 같아지기 때문에 일터에서 더 시간을 보내고 집에서 시간을 덜보내는 쪽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혹실드는 미국인들이 무급 육아노동의 가치는 점점 폄훼되고 돈 받는 일은 과대평가되어, 결국 가족보다는 일의 상대적 매력이 높아지는 문화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혹실드는 이런 시간 구속은 부모들에게 당연히 많은 스트레스와 부담을 지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특히 더 해롭다고 말한다.”

ㅋㅋㅋㅋㅋㅋㅋ기껏 저녁이 있는 삶 만들어줬더니 차라리 일터가 좋다는 모순.....ㅋㅋㅋㅋ 

코로나 시대의 우리네 삶ㅋㅋ

나 역시 내 생계를 내가 책임져야 하는 순간부터는 시간을 돈으로 계산하는 셈 방법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일하지 않는 시간 - 결국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그 시간- 들은 버리는 시간이고, 버리는 시간들이 버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 가끔은 휴일도 짬을 내 악착같이 알바를 하거나, 그게 아니면 조금이라도 가성비있는 소비를 하기 위해 분투했던 듯. 안그러면 괜히 손해보는 느낌이랄까. (가성비 찾다가 귀한 시간을 더 쓰기도 하는 모순) 혹실드가 불러내온 일화는, 돈받는 일을 과대평가하는 사회 속에서의 가정과 재생산 노동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볼 거리를 안겨준다.

“(253) 오늘날 사회적 재생산이 사유화되고 무급 가사노동의 젠더 분업이 여전한 것을 감안하면, 고용된 여성의 노동시간이 줄어든다 해도 그녀의 가정 내 노동 -집안일, 장보기, 육아, 노인돌봄-이 늘어나 추가 시간을 금새 채워버릴 수 있다. 현재의 가정 내노동이 조직화된 방식이 문제시 되지 않고, 고용주들이 사회적 재생산노동의 책임을 지는지 여부로 노동자들을 계속해서 차별할 수 있다면, 모든 노동자를 위한 노동시간 단축을 얻어내지 못할 것이다. 결국 그저 긴 노동시간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던져 주는 것들 - 파트타임, 유연근무, 시간외근무, 복수의 불안정 노동 등의 증가-을 손에 들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의 페미니즘적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지원의 부족과 젠더 분업 문제 모두를 직면하고 적극적으로 맞서야 한다.”
“(259) 노동윤리와 가족윤리가 여전히 일체의 역사적‧정치적‧문화적 타래들로 한데 엮여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무급 재생산노동의 조직화와 분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임금노동의 시간제에 맞서는 시도는 언제나 근시안적인 것이 된다.”


중요한 지적이다.



*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의 착취와 소외를, 페미니즘은 자본주의가 은폐해온 재생산 노동과 노동의 위계(젠더화된 노동)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마르크스와 페미니즘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이 책은 나에게 이 이론들에 포섭되기 쉬운 또 다른이면 -노동윤리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일에 맞선 삶. 노동해방이 아닌, 노동(윤리)으로 부터의 해방.

단순히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읽기전 나의 오만이었다. 소득이나 재분배, 평등의 시각을 넘어 ‘일’과 ‘일의 윤리’에 대한 관점에서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분석은 꼭 필요한 작업이며, 어쩌면 이 세계의 변화를 위해 보다 근본적으로 논파되어야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지금의 노동윤리를 가능하게 하는 가족윤리(혹은 사회적 재생산의 사유화)/ 무급 재생산 노동 / 젠더분업화를 함께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도.

“(193)델라코스타는 가족을 임금시스템과 연결지어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화를 이루는 한 축으로 설명함으로써 가족 제도가 노동 형태를 제공하도록 도울 뿐 아니라, 국가와 자본에게 사회적 재생산 비용의 책임을 상당부분 면제해 주는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202) 여성이 요구하지 않는다면 가족은 계속해서 자본을 위해 기능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노동과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페미니즘이 너무도, 너무나도 절박하게 필요한 이유다.

일이 너무 어렵게만 느껴져서 울고 싶었던 요 몇달 동안, 꼼꼼히 읽었던 이 책에 대해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다. 언제나처럼 첨부하는 아래의 두 단락은 어떤 다짐들로.


***

“(181) 정치적 전망들은 깨지기 쉽다. 전망들은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다. 한 세대에서 생겨난 사상은 다음 세대에서 흔히 잊히고, 또는 제지 당한다. 한 시대의 진보적 사상가에게 불가피하고 현실적으로 보였던 목표들을 이후에 온 이들은 공상적이라거나 유토피아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선반으로 치워버린다. 급진적 시도가 이루어지는 특정한 시기에는 목소리를 찾았던 열망이 다른 시기로 가면 사그라지거나 심지어 완전히 침묵한다. 모든 진보운동의 역사는 절반쯤 기억되는 그런 희망들과 실패한 꿈들로 어질러져있다. - 바버라 테일러 <이브와새로운 예루살렘>”

어질러진 실패한 꿈들 안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아내어 다시 이어 붙이는 것.

“(348) 아마도 더큰 위험은 우리가 너무 많이 원한다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원하지 않는다는 것에 잇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함으로써 페미니스트들은 덜이 아니라 더 요구하게 되기를 고려해야 한다.”

더 요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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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일 아침, A호선에서 B호선으로 환승하는 구간. 우글우글 사람들과 부대껴지는 그 시점. 읽던 책을 덮(거나 끄)고 숨을 한번 들이킨다. 책을 펴는 것 조차 민폐가 되는 좁은 간격의 인류 속으로 몸을 우겨 넣으면 오늘의 ‘일’이 시작된다. 일하기 위한 정신상태로 무장하기. 잠옷을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것 처럼, 나의 어떤 자아는 접어서 개워 넣고 다른 종류의 자아를 꺼낸다. 생각을 생각하지 않는 자아와 내 몸을 잊는 자아다.

부대껴오는 모든 몸들에 인격을 부여하지 않아야 한다. 언제나 처럼 안정적으로 하루를 시작하려면 말이다. 이 한칸의 객실 안에는 얼마 만큼의 사람이 탈 수 있을까? 100명, 200명, 설마 300명?... 세보진 않았지만, 300명 넘을 것 같다. 가끔 파업이 있거나, 지하철 연착이 되는 날이면 없는 인류애를 발휘하며 사람들을 아주 깊숙히 끌어안게 된다. 숨이 막힐 정도의 진한 포옹이다.

지하철 파업이 이어지던 날의 출근 길이었다. 한발 재겨설 틈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밀고 들어오자 누군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와, 미쳤나봐. 진짜.” 만약 가까이 있었다면 이런 귓속말을 해줬을 거다. “안미쳐서 타는 걸거예요, 아마” 미쳤으면, 이 고생을 해가며 일하러 안나가겠지.

“(14) 오늘날 ‘생계를 꾸리려면’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사회적 관습이라기 보다는 자연 질서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진다.”

매일, 매일 또 매일. 출근길의 지하철을 탄다. 그때 마다 내 옆의 이 사람을 구체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내 몸만을 생각할 수도 없다. 모두들과 나까지 배려하려 들면, 그걸 지하철에서 매일 아침마다 해야한다면, 나는 아마 정말로 미쳐버릴 것이다. 자신의 몸과 타인의 몸을 싫어하지 않기 위해 몸의 존재 자체를 잠시 잊어버려야 하는 회사원 300명 x n명.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해서 일을 하러 가는가?

“(12) 하지만 보통의 시민이 일에 쏟는 것으로 여겨지는 시간(일로부터 회복하는 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을 위해 훈련하고 조사하고 준비하는 시간까지 포함하여)만을 간단히 따져 보아도, 일의 경험은 좀더 고찰할 필요가 있다.”



2.

엘리베이터에 탈 때는 나의 본모습과는 조금 다른 자아를 장착한다. 앞으로 퇴근 시각까지 ‘잘 웃고, 잘 울고, 화내고, 생각이 많은 나’는 밀어 넣어둔다. 자주 웃으면 실없어 보이고, 회사 사람들에게 우는 ‘여자애’로 프레임 씌워지기는 정말 싫으며, 화를 폭발시키면 해고 당할 것이고, 생각을 하게되면 일을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13) 일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사람들은 통치자와 피통치자라는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로 말려들어 간다. 실제로 직장은 대부분이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가장 직접적이고 명료하며 실체적인 권력관계를 흔히 경험하는 곳이다. 일은 단순히 경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온전히 정치적인 현상으로서 탐색할 여지가 많은 대상이다.”

회의시간.
대표는 결과물로 말하라고 이야기한다. 업무는 효율적으로, 대답은 큰 목소리로, 일장연설을 들으면서 하품을 참는다. 빈틈을 보이지마. 퇴근 시각까지는 너희의 시간을 산 것이므로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빻은 소리를 들으면서도 “내 말이 틀려?” 질문에는 고개를 젓는다. 일과 중에 가장 힘든 시간이다. 귀담아 듣는 ‘척’하기. 일이 하고 싶은 ‘척’하기. 왜 모든 대표들은 말하기를 좋아하는 걸까. 여기는 학교가 아니라 회사라면서, 뭘 저렇게 가르쳐주려는 걸까. 저는 일을 배우고 싶지, 인생을 배우고 싶지는 않은데요. 하지만 그게 일이다. 당신의 노오력과 뛰어남으로 성공한 이야기를 새겨듣는 ‘척’ 하는 일. 경청과 싹싹함으로 무장한 직원에게 나가는 월급은 덜 아까울 것이다. 나는 그의 환심을 사야 한다, 악착같이. 필기까지 하면서 열심히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을 하다보니 어느덧 이게 척이 아니라 나의 진심은 아닐까하고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그가 가르쳐준 (다른 의미의) 인생공부를 배워버렸다. 복종하면서 자발적이라는 연기까지 끼얹어 복종하기. 아아, 나의 일. 혹은 사회생활.

“(14) 일터는 사적 영역으로, 사회구조보다는 일련의 개별 계약이 낳은 산물로, 정치적 권력 행사의 장이 아니라 인간 욕구의 영역이자 개인 선택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3.

본격적인 일이 시작되면 일에 집중한다. 사실 아침 회의에 비하면 본격적인 일은 훨씬 수월하다. 물론 어렵다. 힘들고. 그런데 일은 일만 보면 된다. 굳이 윗사람들의 들볶아댐이 없어도 나는 내 노동이 투여되는 과정와 결과물을 좋아한다. 사실 일을 좋아하고 일로 좋은 평가를 받을 때 기쁘다. 일을 할 수 있어서 좋고,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많다. 그런데 아침에 혼을 빼앗기고, 하루 종일 일에 절어있다가, 어찌어찌 퇴근을 하고 또 한 시간을 꼬박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일에 질려버린다. 그래서 일이 싫다.

자아를 개워 넣는 것은 쉬웠는데 본디의 자아를 다시 꺼내서 입는 것은 어렵다. 일 모드에서 스위치를 끄고 다시 나로 돌아오는 회복의 시간은 어떤 루틴을 거쳐야 한다. 나는 일년 넘게 동네 요가원에 다니는 중인데, 요가를 마치고 돌아와 씻고 나면 이제서야 분리된 자아가 합쳐져 온전한 내가 된 것 같다. 잠에 들기까지 한 시간 가량, 책을 읽거나 일기나 글을 쓴다.

“(12) 결국 최고의 일자리조차 삶에서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해버린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확실히 해 두자. 우리가 이런 조건을 그저 체념해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이상할 것은 없다. 의아한 것은 이렇게 일해야만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기꺼이 일을 위해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야근이 많아서, 회식 때문에, 생리중이라, 친구나 가족과의 만남이 있어서, 너무 들볶여 피곤이 극에 달해서, 요가를 가지 못할 때 생긴다. 일하는 자아에서 원래의 자아로 돌아오지 못하는 상태로 시체처럼 잠을 잘 수 있는 주말만을 기다려야 한다. 자아를 갈아입지 못한 나는, 시간이 생겨도 그냥 멍을 때린다. 에너지 소모가 제일 적은 (그러나 재충전은 되지 않는) 유튜브 보기나, sns에 좋아요 누르기, 인터넷 쇼핑하기, 그러다 스르르 잠자기. 회복이 안된 나는 별로다. 생각하지 않는 상태.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나 자신을 모르는 상태. 욕구 불만의 상태.

심리상담 이후 버리고 싶지 않은 습관이 생겼는데, 독서와 일기다. 정확히는 그를 통한 스스로를 공부하는 시간 갖기. 그 시간들을 꼭 만들어내야만 덜 불안하고, 덜 우울하다. 일을 잘하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반드시 그 과정들을 통해서 나를 돌봐야 한다. 스스로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로 덧없이 분주하던 과거의 모습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다시금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살지 않는 것이 낫다고까지 생각한다. 내가 일(정확히는 임금노동)을 하는 이유는 안정적으로 그 시간들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쉽지 않다. 언제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자해야하고, 일하는 시간을 줄이려면 매우 집중해서 열심히 일해야한다. (그럼 기운이 없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면 결국 ‘일’로 보상받고 싶어지고, 인정받고 싶어진다. 인정받아 직급과 연봉이 올라갈 수록 그에 맞추어 일을 더 잘해야 하고 많이 해야할 거다. 일에 바빠 일하는 ‘나’는 돌보지 못하는 상태로, 나 자신을 몰라 분열하는 나로 다시 돌아가겠지.

일에서,
도망 칠 수는 없을까.
왜, 일이란 적당히가 없는 걸까.

“(62)일에 맞서 삶을 지키려는 더 광범위한 정치적 노력,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삶을 누리기’위한 노력의 일부로 두가지 요구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일 대 삶’이라는 표어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 표어는 반노동 정치를 위한 힘센 프레임을 제시하고 탈 노동 상상에 기름부을 수 잇을 만큼 충분히 포괄적이면서도 예리하다.”



4.

한때 나는 ‘효용 가치론’의 맹점을 비판하며 열렬히 ‘노동 가치론’의 옳음을 주장하는 비뚤어진 경.영.학도로서 (아, 그래서 학점이......) 누구보다 책에서 말하는 ‘노동윤리’의 시각을 체화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신성한 노동’의 의무 어쩌고 해왔으나, 일을 열심히 하면서 드럽게 일하기 싫다고 징징대는 본인의 모순 때문에 노동자 단결도 전에 자아분열로 환장하며, 나는 왜 이모양인가 잠시 방황하였다. 요즘은 기본소득 책 몇권과 때맞춰 발발한(?) ‘4차 산업혁명’ 기사들을 읽으며 아주 “일 그거 AI가 할건데?” 탈노동을 넘어 반노동, 게으를 권리, no노동 하는 (그러나 반전으로 입만 그렇고 일상은) 일벌레로 살아가는 중이다.

“(38) 나는 일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그리고 계급투쟁 대신 반노동 정치학을 추구하고자 한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뭔가 저자가 추구하겠다는 정치학에 엄청난 신뢰가. 옹, 내가 반노동 그거 마음으로 이미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정말 너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언제나 일에 쩔어 피곤해서 두페이지 읽다 딥 슬립.) 어렵긴 어려웠는데, 한문장 한문장 내 현실과 너무 맞닿아 있는 거라. 막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 데, 마음만큼은 뭔말인지 다 알겠어. 게다가 내가 관심있는 페미니즘에 마르크스주의를 함께 살펴보시겠단다. 얼씨구, 좋구나. 두 주의만으로도 황송했는데 기본소득에 주30시간 노동 이야기도 해주신다고 하고, 니체까지 끌어들여 유토피아에 대해 검토하신다니 지금 엄청 신뢰상승. 


일이 방해만 안하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 휴일! 신난다~




"(27) 전통적인 노동관을 문제 삼는 것은 노동에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 다른 방식으로 생산적 활동을 구성하고 분배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노동이라는 울타리 밖에서도 창의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 노동사회의 문제를 공론화 하고 정치적 문제로 제기 하기 전에 일을 수용하고 일과 자신을 동일시 하도록 이끌며, 일을 강력한 욕망의 대상이요 열망이 향하는 특권화되 영역으로 자리매김 하도록 돕는 기제 (노동윤리 등)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28) 페미니즘의 두가지 전략 - 임금노동으로의 여성 진입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과 무급 가사 노동의 가치를 재고하고 그 책임을 양성 간에 공평히 나누는 데 초점을 맞추는 전략-의 공통된 문제점은 노동에 대한 정통의 지배담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페미니스트는 단순히 더 많이 일할 수 있게 혹은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더 적게 일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41)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만, 그리고 부자유보다는 불평등에만 협소하게 초점을 맞추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빈곤해진다. ... 고로 나는 노동의 착취와 소외에 대한 비판에 더해,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로서의 권력과 권위의 정치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를 위해 마르크스 뿐만 아니라 1970년대 페미니즘의 몇몇 갈래를 살펴볼 것이다."

"(44) 나의 관심사는 일에 대한 페미니즘 정치 이론을 발전시켜 일 그 자체 - 일의 구조와 윤리, 일의 싪천과 관계-가 불평등을 일으키는 기제일 뿐 아니라 자유에 대한 정치적 문제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63)어째서 일하고, 어디서 일하고, 누구와 일하고, 일할 때 무엇을 하고 얼마나 오래 일하는가가 모두 사회적 합의이고, 따라서 당연히 정치적 결정인 것이라면, 이러한 영역 중 더 많은 부분을 어떻게 해야 토론과 쟁투의 범위로 되찾아올 수 있을까? 일의 문제는 일이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독식한다는 데만 있지 않다. 문제는 일이 사회적, 정치척 상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데까지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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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왜오열] 인생은 단짠단짠
    from 게으른 독서생활자의 수기 2020-03-06 19:51 
    5.2019년의 매우 초반. 엄마는 올해를 시작하며 엄청나게 좋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꿈 덕분에 올해는 다 잘될거야, 그러니 우리 딸 화이팅! 전화를 받는 날은 파혼을 결심하고 언제쯤 집에 말해야 할까 우물쭈물 대던 시점이었다. 이때다, 대차게 결혼을 작파한 나의 선택(!) 그것이 바로 올해의 대운었노라 선언했다. 엄마는 할말하않으로 전화를 끊으셨다. 그리고 이후의 나는 진심으로 결혼으로부터의 탈출보다 더 훌륭한 대운이 어디있나 싶어졌다고 하는데...
 
 
반유행열반인 2020-01-24 04: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막 다 읽고 나니 내가 출근했다 퇴근한 거 같이 지치고 눈물나고...내내 수고하신 쟝쟝님, 연휴 동안에는 본디 쟝쟝님 갈아입은 채 잠옷 입고 종일 뒹굴 듯 그저 푹 쉬세요. 복직예정자는 점점 다가오는 출퇴근 급 두려워지는 시점입니다. ㅎㅎ

공쟝쟝 2020-01-24 11:17   좋아요 1 | URL
두려워마요.... 제가 경험한 건 아니지만, 듣고 본 경험담에 의하면 .. 엄마가 더 힘드니까요... 일하면서 해방감을 얻는 엄청난 삶의 내공을 느끼실 거예요 ㅋㅋㅋ 축하드려요!

반유행열반인 2020-01-24 13:47   좋아요 1 | URL
저는 엄마고 일이고 다 해방되어 자유인으로 살고 싶은데... 제도권과 자본주의 내에서 월급 금액 슬며시 보며 적당히 타협하는 삶으로 버텨야겠지요ㅎㅎ 들이 받을 일 있음 적당히 들이받고 ㅎㅎㅎ축하 감사드립니다!!

공쟝쟝 2020-01-24 21:46   좋아요 1 | URL
반님을 위해서라도 기본소득의 세상으로 가야겠어요!! 다치지 않게 들이받는 생활! ^^ 참, 설 즐거이 보내세요!

반유행열반인 2020-01-24 21:56   좋아요 0 | URL
쟝쟝님도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syo 2020-01-24 10: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연휴가 왔습니다.....
전 일을 처음 해 봐서 이제야 진짜 연휴가 뭔지 알겠어요... 슨배님..... 리스풱....

공쟝쟝 2020-01-24 11:18   좋아요 2 | URL
자 이제 잠옷 자아를 꺼내시고, 책을 읽으소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소서🙏 ㅋㅋ 기다리고 잇엇다!!

붕붕툐툐 2020-01-24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토닥토닥~ 넘 고생 많으셨어요~ 한 줄 한 줄 너무 공감이 됩니다. 플러스 일하는 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고 헛소리하는 사람들에게 분노감이 드네용....

공쟝쟝 2020-01-24 11:20   좋아요 0 | URL
분명 일만으로 삶이 구성되어 일로써만 인정받거나 받지 못하는 억울한 자들 일 것입니다.. 스에상에 일말고 재밌는게 얼마나 많은데..!

다락방 2020-01-24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의 일과 독서가 어우러진 페이퍼 너무나 좋고요! 여러가지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명절 화이팅!!

공쟝쟝 2020-01-24 11:47   좋아요 0 | URL
같은 책읽기 화력붙으니, 북플앱 알람이 저를 씹어 먹을 기세입니다 ㅋㅋ 같은 책 읽고 페이퍼쓰기 이거 재밌어요!!! 돈안주는 행복한 일 알려쥬셔서 감사해요 ㅋㅋ (매번 늦게 읽어서 나중에 밀린 페이퍼 읽던 사람)

무식쟁이 2020-01-24 1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에서 나온 후 분리되었던 자아를 다시 찾는 시간. 현대인에게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공감백배입니다. 몸담고 있는 직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차차 일 속에서도 자아가 고개를 드는 날이 다가올겁니다. 분리의 시간이 점차줄어들며.. 분리와 합체 과정 간소화서비스가 내재화되며 점점 업데이트 된달까요.. (요즘 한창 연말정산 기간이어서.. 뭐래..)
공쟝쟝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공쟝쟝 2020-01-24 12:10   좋아요 1 | URL
(다행스럽게도) 아직 아내와 엄마라는 자아는 장착하지 않아서 두가지 자아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간소화서비스 간절히 바라는데, 일이란 간소화시키고 나면 또 어려운 업무를 제시하시더라구요!
설 잘쇠시구, 종종 좋은 글로 만나요^.^

단발머리 2020-01-24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요. 쟝쟝님 페이퍼~~!!!
쟝쟝님의 지하철 속생각, 회의시간 속생각 넘 맘에 와닿네요. 어여 읽고 다음이야기도 풀어주세요~~

공쟝쟝 2020-01-24 21:47   좋아요 0 | URL
오 ㅋㅋㅋ 다음이야기를 시리즈로 적어볼까요? 부조리한 일의 세계 ㅋㅋ

블랙겟타 2020-01-25 0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사회생활이란걸 제대로 해보지 않은... 서울에 살아본 적이 없는 저로선 이렇게 글로만 간접적으로 느껴보는데요... 언젠가 저도 저 안에서 아둥바둥 하고 있겠죠? ㅠㅠ
쟝쟝님의 정성글 잘 읽었어요. 휴일은 푹 쉬시길요.:D
 
미루다가 영영 못 읽을까봐 - 강연으로 쉽게 시작하는 노벨문학상 읽기
심원섭 외 지음, 한국근대문학관 기획 / 홍시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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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단, 책의 만듬새가 예뻤다.

연보라색도 예쁘지만, 작가들의 일러스트와 인스타그램이 떠올려지는 정성스런 내지 편집.. 빌려봐서 몰랐는 데, 검색해보니 겉싸바리에는 노벨문학상 연보가 디자인 되어 있다고 한다. (센스+정성 돋고요) 무엇보다 넘나 뼈때리는 책의 제목 때문에 읽게 되었다지. 생각보다 내용도 알차서 읽고나니 교양이 막 쌓인 것 같은 기분.


2. 최진석_ ‘알렉시예비치 목소리 소설’

여전히 소설에 무지몽매한 내가 이 책에 언급된 작품들 중에 완독한 책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데미안>정도. 그래도 좀 읽었다고, 알렉시예비치 편은 특별히 잘읽혔다. 작년에 그녀의 ‘목소리 소설’을 읽으며 어찌나 마음이 복잡했던지 (방금 찾아보니) 당시 알라딘 독후감에 “결론내지 않음을 견디는 연습”을 하겠다고 적어놨었다.

소설을 읽는 내 머릿속은 혼돈의 카오스였는데, 뭔가 그 생각이 왜 떠오르는지도 설명이 안됐었다.🤯 이 책을 읽으니까 좀 정리되는 기분이다. 최진석님이 그 혼란함의 정체를 아주 장황하고 간결하게(?!) 설명해주셨다!!! (ㅠㅠ소설 다 읽고 독후감을 쓰고도 정리못한 부분을, 소설을 정리한 책을 읽어야 정리되는 나의 뇌는 참 나답다🤷🏻‍♀️🤷🏻‍♀️🤷🏻‍♀️)

“(125) 작품을 읽다보면 당혹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가가 인터뷰한 증인들의 상당수는 물론 여성들이에요. 그들이 호소하는 삶의 비극은 전쟁으로 인해 빼앗기고 훼손된 여성의 삶과 권리로부터 연유하는데, 문제는 그렇게 박탈당한 여성성이 전통적인 가부장제 하에서 형성된 여성의 이미지에 굉장히 가깝다는 데 있습니다. 증언자들은 여성으로서 ‘상적인’ 삶을 살지 못한 자기들의 일생을 한탄하고 슬퍼하며, 남자들이 일으킨 전쟁을 원망합니다. 그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남자들의 일’이기 때문이에요.”

“(131)그럼 알렉시예비치의 소설은 어디를 향하는 걸까요? 그녀의 문학이 갖는 진정성은 어디에 있을까요? 도덕인가요, 윤리인가요? 저는 방금 알렉시예비치의 소설에 나오는 여성 등장인물 들이 도덕적 경계 안에 머무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이 작가의 문학은 단지 우리의 통념에만 복무할 뿐, 별다른 새로운 의미를 갖지 않는 걸까요? 하지만 우리는 알렉시예비치의 문학에서 모종의 파토스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는 것도 분명하지 않습니까? 작가의 진정성이란 게 분명히 있는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발현했는지 캐물을 필요가 있어요. 달리 말해 그녀의 글쓰기가 어떤 진정성을 일깨우고 문학의 윤리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있다면, 내용이 아니라 형식(표현방식)으로부터, 사실의 형식이 아니나 허구의 형식이라는 이중의 시점에서 이야기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147) 알렉시예비치의 소설에서 여성적인 것을 찾아낸다면, 그것은 이런 유령적인 것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도덕을 말하지만 도덕을 빠져나가고, 사실을 추종하지만 늘 사실과 배치되거나 반하는 비남성적인 흐름이랄까요. .. 우리가 사실과 동치시키고 싶어하는 실재the real는 손에 잡을 수 있는 현실을 빠져나가 단지 흩뿌려지기만 하는 목소리로 실존하고, 그 목소리는 발성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직 듣기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목소리 소설은 본래 허구적일 수 밖에 없고, 그것의 윤리는 병리적일 수 밖에 없는 게죠.”

“(149) 역사에 기입되지 않은 비가시적 실존으로서의 증언들, 그들의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들리지만 입증할 수 없고, 기록되지 않은 것이기에 허구적이지요. 건전하고 승리에 찬 도덕이 아니라 우울증적 충동으로만 표현되기에 병리적이라고 할 만해요. 우리가 증인들의 이야기에서 남성의 도덕과 권위, 질서의 각인을 필연적으로 찾아낼 수밖에 없는 것은 그와 같은 병리성의 일면일 겁니다. 요점은 여성 증언자들의 목소리에 포함된 남성 도덕을 발견해 그들을 힐난하거나 절하시키는 게 아니에요. 차라리 여성의 목소리에 실린 남성과 도덕의 파열점, 그 좁은 틈새로부터 흘러나와 이리저리 유동하는 비일관적이고 망가진 목소리를 포착하여 끝까지 듣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유령적 대상을 포착하기 위한 방법 역시 유령적이라는 것은 불가피하지 않겠어요? ‘사실의 문학’이 아니라 ‘유령적 글쓰기’로 알렉시예비치의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진실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듯 합니다.”


음하하! 기억해 둘 만한 문장들을 가져와 보았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 제가 그래서 혼란스러웠던 것이로군요? 책을 읽으면서 가려웠던 부분이 잘 긁힌 느낌이었습니다.
최진석님 그대, 배우신 분.


3. 니논한테 물어봤어?

“(258) 1931년 11월 54세의 헤세는 36세의 젊은 니논과 세 번째 결혼을 합니다. 특이한 점은 성생활을 배제한 결혼생활을 약속했다는 것이지요. 결혼식 후 부인은 이탈리아로 혼자 신혼여행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같이 있으나 따로인 결혼생활을 하면서 남은 평생을 헤세에게 헌신합니다. 그녀는 가사를 도맡고, 책을 읽어주고, 편지를 대신 써주고, 방문객을 통제하면서 거의 부모와 같은 돌봄으로 헤세를 지켜줍니다. 영리하고 이해심 많은 니논의 애정과 그녀 스스로 자처한 봉사를 헤세도 좋아했습니다. 그는 스위스 남쪽 지방의 아름다운 자연에 침잠하여, 시와 소설을 쓰고 수채화를 그리면서 만년의 안정을 찾습니다.”

얼마 전에 이외수의 (전)부인 인터뷰를 읽었던터라, 절대로 곱게보이지 않았던 문장. 정말로 그녀가 평생 스스로 ‘자처한 봉사’를 행복하게 했을지도 미지수이지만, 이런 이야기(큰 인물 뒤에 현모양처)가 너무 흔해서 싫다. 이런 서사가 당연해지면 ‘엄마가 잘못해서, 부인이 악처여서 내가 성공을 못해’ 류의 대환장 주장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여성의 돌봄없이 알아서 혼자서도 잘해내며 대작 쓰는 남성 작가 찾기는 정말 하늘의 별따기로구나. 반면에 몰래 쓰고, 쓰다가 쫓겨나고, 애키우며 쓰고, 도저히 안되겠어서 혼자 살며 쓰는 여성 작가는 너무 흔하다.

모든 것에 대해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언설대로 문학이 끝났니 어쩌니 한다면, 그건 남자들이 쓴 문학이 끝난 것이라는 생각.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었으나 '여백으로만 남아있던 돌봄'을 다시 텍스트로 적어 내리는 것이 문학과 (어쩌면)여성들에게 남은 몫 일 것이다. (난 오래오래 살아서 그 적히지 않은 것들을 실컷 읽을것이다!!💪)

저 단락을 읽으면서 작품에 대해서는 찬탄하더라도, 작가에 대해서는 환상을 가지지말자라고 다시 한번 다짐하였다. 자기를 돌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작가들의 곁에서 끝까지 여백이 되어버린 그네들의 돌봄에 대한 나름의 의리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남자 저자들 연보 뒤져서 지 빨래 지가 돌렸는 지, 싱크대 개수대 비우고 나서 남은 음식물 낀거 수세미로 뽀득뽀득 닦았는지 확인해보고ㅋㅋㅋ 아닌 상태에서 삶과 세계를 고뇌하고 있으면 별을 반개씩 깎겠습니다!!!!


4. 제목 good👍

이번 주 책 읽을 시간이 통 안나서, 버스타고 오가는 동안만 독서시간으로 사용했는 데, 제목 탓인가 금새 읽어버렸다. 조근조근 구어체의 강연해주는 느낌의 책들도 대중교통에서 잘 읽히는 것 같다. (점점 대중교통에서 책읽기 마니아가 되어가는 듯)

유튜브로 영화 소개영상 보고 난 후 막상 그 영화는 안보고 다 본 것 처럼 느껴버리는 문화생활 가성비(?)주의자인 나같은 사람에.. 이처럼 책을 소개해주는 책이란... 네, 참 잘읽었고요, 노벨문학상 받은 작품들 덕분에 다 읽었으니.. 다른 책 볼 시간이 늘어났네요. 감사합니다? 🤣
미루다 영영 못 읽을 노벨문학상 작품들을 대강이나마 훑었고 영영 미루게되었으며 (ㅋㅋㅋ) 그래도 오르한 파묵 소설과 에세이, 언제나 읽다 포기했던 <유리알 유희>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끗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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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u 2019-06-07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밌게 읽기좋게 쓰시네요 부럽습니다
덕분에 이 책에 관심을 가져 봅니다

사소한 오타 : 금새 -> 금세

^^
신나는 하루 보내세요!

공쟝쟝 2019-06-07 09:18   좋아요 0 | URL
앗!! 고맙습니다! 사소한 오타가 아니라 정말로 잘못알고 있었어요 ~ㅋㅋㅋ 금세! 기억하겠습니다 ^_^

붕붕툐툐 2019-06-13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페이퍼 읽으니 저도 관심이 확 생기네요~ 읽고 싶은 책에 살포시 담겠습니다:)
 
은유가 된 독자 -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양병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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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구엘은 ‘세계 최고의 독서가’라는 데, 대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내용의 절반은 이해 못했어.😭)

이 얇은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무척 방대하다는 것에서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책의 구조가 돋보였다. 


1. ‘세상’이라는 거대한 ‘책’을 읽는 ‘독자’라는 큰 메타포(은유)안에서
2. ‘독자’에 붙어온 세가지 메타포-여행자, 은둔자(상아탑), 책벌레-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서양의 고전들을 훑고
3. 고전의 내용과 주인공들을 ‘독자’로 한 번 더 은유해낸다.

이를 테면 망구엘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상아탑에 갇힌 독자’로 비유했는 데 그 내용을 읽다보니 ‘아, 햄릿이 이런 내용이었어??’(원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생각하게 되어 버린달까.

“(108) 햄릿이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어서가 아니라 학문적 가르침에 잔뜩 얽매여서다. ‘대학의 교리 문답 서를 모두 잊고, 현실의 경험에서 다시 배워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소재에 꽂혀서 영화나 책 등을 보면 그 영화가 나에게 만큼은 다 그 소재 위주로 해석되어 버리는 것 처럼, 이 세계 최고 독서가(!) 망구엘은 그 명성 답게 숱한 책의 내용들을 ‘독서’라는 행위와 ‘(어떤 유형의)독자’라는 키워드로 다 해석해 내버리신다.

어찌보면, 진정한 책 덕후가 집필한 책 속에 나온 책 덕후들의 은유+분류 라고 할 수 있을 듯??😏

*

독자로서의 나는 여행자의 목적을 가지고, 사실은 은둔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 섭취의 내용은 책벌레 유형인 혼종의 형태를 하고 있다. 텔레비전 소리로부터 도망쳐 슬그머니 방문을 잠그는 나에게 어제도 엄마는 “그놈의 책책책~” 하시지만, 가끔은 내가 읽어서 이렇게 세상에 적응을 못하나 싶기도 하지만, 😢

나는 정말인지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읽는다. 좀 더 많이 이해하면 이해되지 않아서 화나는 상황들이 줄어들 거든. 물론 무심코 이해해버려서 나를 해쳐온 것들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않을 권리도 가르쳐 준다. 책은.


“(168) 우리는 ‘독서하는 피조물’이다. 단어를 섭취하고, 단어로 이루어져있으며, 단어가 존재의 수단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단어를 통해 현실을 파악하고, 자아도 확인한다.”

*

어쨌든 기회가 주어진다면(?) 몽테뉴로 살아보고 싶다. 3층에서 책을 읽다 지치면 2층 침실로 내려와 쉬는 삶이라니. 게다가 3층에는 다섯개의 서가마다 천권의 장서가 빼곡히 꽂혀 있었다고 한다.


덧, 사진 설명 - 진짜 책벌레가 나타났다!!.jpg

“(13) 세 번째 메타포는 ‘독자=책벌레‘라는 메타포다. 책벌레라는 개념은 좀목에 속하는 곤충에서 유래하는데, 이 곤충은 종이와 잉크로 구성된 책을 실제로 먹어치우는 벌레로 일찍이 안렉산드리아 시대부터 ˝도서관의 청소부˝로 악명을 날렸다. 책벌레란 독서를 통해 지혜를 얻지 못하고, 마치 좀벌레가 책을 먹어치우듯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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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4-17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낚였습니다 -

이 책 사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세월의 날카로운 이빨에 짖이겨지는...

우리의 시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네요.

공쟝쟝 2019-04-17 17:41   좋아요 0 | URL
하지만 전 독서량이 미미하여 이 책을 매우 어렵게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읽었습니다 ㅠㅠ 서양 고전문학 책좀 읽으신 분들께는 추천입니다! ㅋㅋ
 
포스트자본주의 새로운 시작
폴 메이슨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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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끝났다는 데, 포스트의 자본주의에 대한 해설은 두께에 비해서는 거의 없는 편이고.. 주로는 지난 200년 자본주의 역사 다시 되짚어 주시며 여러 좌파 경제학자들의 논의와 (주류경제학이 백안시하는) 노동가치론 가져와서 지금의 기술정보화경제의 잠재력이 신자유주의(자본주의)와 왜 불화할 수 밖에 없는지 설명하여 준다. 나름 유의미 한데 나의 지금 궁금증과는 상관없는 책이어따..
스아실 기본소득 내용 기대하고 빌려왔는 데, 마지막에 두페이지 할애하고 있는 것도 반전이고... 어쩐지 제목과 부제에 대단히 낚여버린 듯한.. 그래도 오랜만에 좌파 어쩌고 사회주의자 어쩌고 하는 책 읽으니 고향(?)에 돌아온 듯.. 편하고 또 불편하구나...쩝. 어쨌든 반대만 하지 말고 내부에서 대안 만들자는 말엔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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