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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존재
김곡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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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관계에서 책 이야기란 어쩐지 내가 아는 척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차라리 가까운 이들과는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나누는 편이다. 각자의 이야기가 나눠지면서 서로를 한번 더 알아가는 기분이 좋다. 그래도 나는 영화보다는 읽는 것이 더 좋아 늘 책 이야기가 목말랐다. 책으로 소통하고 싶고, 연결되고 싶고, 같은 책을 읽은 감상들을 나누면서 대화하고 싶어서 #북스타그램 이란 걸 했다. (동시에 #북플 도 했지요~)


인스타의 특성상 긴 문장을 쓸 수가 없(ㅠㅠ 100자평도 1000자가 되어가는 나라는 인간) 었기에 북플(알라딘 서재)보다 힘들었다. 그래도 나름 재밌게 했던 것 같다. 나야 좋지만, 이 책을 누가 읽어? 팔려? 그러나 세상에는 정말로 <캘리번과 마녀> 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 존재했고, 나는 기뻤다. 사람들의 근사한 책장을 구경하는 것은 나에게도 내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게 했고, 잘 정리된 책상 위에 쌓인 책탑과 필사 노트들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내가 좋아해서 올린 책 리뷰에 작가님들이 눌러주는 ‘좋아요’는 놀라웠고, 영업하지 않았는데(!) 영업당해 읽었다는 감응의 글은 신기했다. 좋아하는 북스타그래머들이 읽는 책들을 그냥 따라 산 적도 많다.

하지만 인스타를 어슬렁어슬렁하다가 결국 서재에 정착했는 데, 내가 부담을 느끼지 않고 소화할 수 있는 ‘좋아요’가 50개 그 언저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알라딘 서재는 좋아요가 50을 넘기는 법이 없다. 완벽한 곳이다.) 그런데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내 간절한 욕구를 넘어서버린 북스타그램의 피로감. 그것의 정체는 뭐였을까. 책에서 힌트를 찾았다.

“(73)하지만 너무 많은 친구는 친구가 아니다. 너무 많은 ‘좋아요’는 좋음이 아니다. 외려 과잉 공급되는 친구들과 ‘좋아요’는 우정과 좋음의 가치를 폭락시켜 “자기 자신의 가치 절하(devaluation of the self)”를 초래한다. SNS 조울증이란 이런 거짓 자기의 인플레이션에 의한 진짜 자기의 파산에 다름 아니다.”
“(74) 그러니 SNS의 우울증의 원인이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에 있다는 견해는 사실이 아니다. 반대로 SNS의 우울증의 근본 원인은 SNS 조울 회로가 사용자의 영혼에 박아 넣는 이러한 “참자기와 거짓 자기 사이의 분열”로서의 자기 양극화, 그 절대적인 자기 박탈감에 있다.”


‘좋아요’ 인플레이션. 좋음의 가치 폭락. 무한히 공급되는 친구. 쉬운 언팔로우. 저자는 최악의 경우 SNS가 “자아의 원심분리기”가 된다고 표현했는 데, 탁월하다.

“(76) SNS 조울 회로는 자아를 전능감과 무능감, 과열과 급냉, 과잉과 과소라는 두 극단 사이에서 정말이지 빙빙 돌리고 돌리고 또 돌려서, 과잉된 흥분과 과잉된 무기력 외에 다른 어떤 현실감각도 찾을 수 없게 만들고, 심지어 그 둘을 판별 불가능하게 만든다. 진짜 세계는 휘발된다.”


책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내 소박한 욕구는 인스타그램 속 무한히 공급되는 친구들(?) 사이에서 매번 갈팡질팡했다. 책이 아니라 온라인 인맥을 만들고, ‘좋아요’를 받기 위해 접근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고, 꼬박꼬박 답 좋아요를 누르지 않은 죄로 언팔이 된 적도 ㅜㅜ 있었고, 질 좋은 리뷰로 얼떨결에 북플루언서(?)가 된 후 왕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는 친구들도 종종 보였다. 가장 슬픈 건 그래도, 어쨌든, 팔아야 하는 마케터들의 타임라인이었는 데… 좋아하는 것이 업이 된 이들의 ‘과로’를 보는 일…. 고생들이 많으세요….

무튼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나는 전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았다. 내 취미가 독서여서 참 다행이고(‘일’이 독서가 아니길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북플루언서가 아니기를 참 다행이다(좋아하는 것이 어느덧 ‘일’이 돼버리는 걸 보는 괴로움)!라는 생각은 많이 했는 데, 그것이 애정 하던 인친들의 ‘자기 박탈감’(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어버리는)’을 은연중에 느꼈기 때문이었나 보다.

SNS에는 ‘적당히’가 없는 데… 나 역시 ‘적당히’를 모르는 중독에 취약한 인간이기 땜시… 무튼 남들 책 구경에 푹 빠져있었던 ‘북스타그램’을 딱 끊었는데 그 이유는 (본론) 혹시라도 북플루언서가 돼버릴까 봐…!!!!!?????🤭 으하하하?????? 셀럽은 괴로워 보이더라고요. 전 셀럽이 되고 싶지 않았어... (이상 SNS 시대가 낳은 과잉 주체의 북스타그램 끊은 이야기).

그리고 초보 책벌레에서 이제 어엿한 독서 중독자(ㅋㅋㅋ 아니 또 중독이래ㅋㅋ)로 발돋움하고 보니 역시 책은 구경보다 읽는 게 좋고, 누군가의 인생 책, 추천 책 보다 내가 읽고 있는 책에서 만나는 책이 더 좋다. 책 속에서 책이 나오는, 책들 안의 하이퍼링크 연결고리 꿀잼. 아는 사람은 다 알지요?


***

사실 이 책에 대해서는 백자평에서 하고 싶은 말 다했는 데, 특별히 5장이 읽기에 훌륭하다고 느낀 이유를 좀 더 부연하고 싶다. 한국의 묻지마 범죄, 충동범죄에 대한 분석인 데- 지난 시기의 ‘연쇄살인’과는 다른 양상과 패러다임이라는 지적이다. 경계를 지워버린 과잉 주체에게는 ‘사회’역시 없으므로 그는 ‘반사회’적일 수 없고, 그러므로 그들의 충동에 ‘사회 불만’을 가져다 대지 말라는 주장이었다. 한참 n번방 사건으로 시끄러울 때, 조주빈 등에게 ‘범죄자에게 서사 부여하지 말라’는 담론이 일었는 데, 그것과 맥이 닿아있어서 솔깃했다.

“(98) 충동범죄는 사이코패스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이코패스가 반사회적인 성향을 갖는 것은 그의 자아가 적어도 초자아에 저항하여 이겼기 때문이다. 반면 과잉자아는 초자아와 싸우지 않는다. 그를 흡수하고 먹어버린다.”
“(105)지난 세기의 범죄가 너무 많은 통제와 억압 때문에 일어났다면, 이번 세기의 범죄는 너무 많은 가능성과 자유 때문에 일어난다. … 충동범죄의 동기를 ‘불우한 과거’나 ‘사회 불만’에서 찾는 견해는 두 패러다임을 혼동하는 것이다. 그건 지난 세기에나 통용되는 구닥다리 프로파일이다. ‘피해의식’을 말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이전 패러다임과 혼동된다. 많은 ADHD 아동이 행동이 제한되면 흥분하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충동 범죄자가 폭발할 때 느끼는 감정이 이와 같다.”
“(108) 디지털 성범죄 역시 충동범죄다. n번방 사건에서 가해자들의 목적이 돈이나 성이었다고 볼 수 없다. 지겨워지면 파일을 지워버리거나 남에게 넘겨버리는 식의 통제 욕망도 부차적 차원에 남아있다. 거기에는 아무나 걸리면 ‘노예’로 만들어 영혼을 지워버리고, 몇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그 비명과 피눈물만큼이나 팽창해가며 스스로 전능하다고 여기는 망상적 과잉 자아의 망상적 과잉 발육 이외엔 다른 목적이 없다. ’n번방’의 관리자 문형욱의 ID는 ‘갓갓’이었다 ‘갓’이 두 번이나 있다. n번방 사건은 집단 묻지마 성착취다.
“(109) 만약 미디어가 범죄에 뭔가를 기여한다면, 그것은 폭력적인 내용이 아니라 하이퍼 한 형식의 교육을 통해서다. 즉 하이퍼미디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학습되고 모방되는 것은 하이퍼 한 인격 자체, 하이퍼 할 수 있다는 전능감 자체다. … 과잉 충동의 인간은 이미 걸어 다니는 하이퍼링크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막히면 폭발한다.”
“(110) 같은 이유로 소거 충동은 파일을 마우스 버튼 하나로 쉽게 지우고, SNS 친구를 언팔 버튼 하나로 쉽게 차단하는 클릭의 형식이 충분히 학습되고 교육되지 않으면 출현할 수 없는 충동 유형이다. 우리는 인간 공격성의 뿌리가 유아기의 전능 환상, 눈 한 번 깜박이는 것만으로도 세계를 절멸시킬 수 있다고 상상하는 그 “마술적 파괴성”에 있다는 대상관계이론의 견해를 지지한다. 오늘날 그 눈 깜빡임이 클릭이라는 날개를 달았을 뿐. ‘파괴충동’이나 ‘죽음충동’이란 말은 너무 추상적이다. 정확히 말해, 소거충동은 Shift + Delete충동이다. 친구삭제 충동이고 리셋충동이다.”


하하… 너무 다 가져왔나요? 그치만 너무 맞는 말이라서… (긁적긁적)

***

저자는 오늘 날의 과잉에 저항하는 윤리로 ‘타자’와 ‘경계’등을 언급하며 밀당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는 데, 매우 동의하고... 나 역시 과잉 사회가 낳은 과잉 존재이자 과몰입의 화신(!)이며 35년 산 프로중독러(최근에 친구가 붙여준 별명)로서…;; 과잉에 저항하는 나만의 방법을 적어보고자 한다. 그건 디즈니 영화 ‘소울’이다. (응?) 내 손에 떨어지는 단풍나무 씨앗, 길거리의 피자 냄새, 하늘 올려다보기, 바람 느끼기. 나는 일상에서의 감각의 순간들을 그보다 더 아름답게 포착한 영화를 아직까지는 못 본 것 같다.

머릿속의 나는 하이퍼링크 되어 온 세계를 뛰어다니는 전능감과 온 세계가 적으로 돌려지는 것 같은 고립감 사이를 줄 타며 조울증 적 자아를 느낄지라도. 현실의 관계는 가상의 관계보다 더 어렵고 지리멸렬하고 상처뿐일 지라도.

내 몸은 ‘지금’ 여기에 있고 그것은 명확히 ‘경계’ 지어져 있으며 그 경계로 인해 ‘느껴’ 지고 어떤 감각을 선사해준다. 당연히 고통도 준다. 나는 몸이라는 물리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고 한계가 있는 존재다. (비록 이 몸을 깎고 자르고 포장해 전시하는 게 이 미친 현대사회지만 ㅜㅜ) 본질적으로 내 몸은 ‘과잉’할 수 없으므로- 너무 많은 것들이 몰아쳐 정신을 차리기 힘들 때. 숨쉬기. 허리 펴기. 햇빛이나 바람 혹은 기온 느끼기. 그렇게 현실 ‘감각’ 회복하기.

현대의 기술들이란 대부분 ‘몸’이 가진 한계나 물리적(시/공간)인 한계들을 넘어서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자본이 지시하는 바라고 하더라도) 그러니 점점 그렇게 될테고 그걸 막을 수도 없다는 생각. 다만 자명한 것은 그 한계의 실체인 몸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 아닐까. 어떤 기술도, 어떤 자아도, 지금 여기 살아서 대사(!) 중인 내 몸을 대신할 수 없다. 타인을 만나는 훈련과 동시에 내 몸을 실감하는 훈련도 함께하기. 이미 ‘하이퍼링크’ 되어버린 세상을 뒤로 돌릴 수는 없으므로..


‘과잉(hyper)’보다 이 시대를 잘 요약하는 말은 없다. 너무 많은 정보, 너무 많은 상품, 너무 많은 관계 속에서 과잉행동하고 과잉경쟁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늘날 과잉은 단지 사물의 수량을 따지는 술어가 아니다. 과잉은 이제 삶의 방식, 존재방식 자체다.
과잉의 폐해는 대상이 너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외려 대상이 너무 없어진다는 데서 온다. 너무 많은 대상들이 주어지지만, 바로 그 때문에 진짜 대상은 판별할 수 없다. 오늘날 ADHA, 공황장애, 묻지마 범죄가 동시에 유행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모두 대상의 쓰나미 속에서 정작 진짜 대상은 잃어버리는 과잉장애들이다. 너무 많은 대상은 대상이 아니다. 너무 많은 친구는 친구가 아니다. 너무 많은 링크는 링크가 아니다. 패닉은 여기서 온다. - P5

오늘날 ADHD, 우울증, 일중독 같은상이한 증상들이 동시에 대중화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무리 달라 보여도 그들 모두는 하나의 동근원적인 질환, 즉 감각 및 행동의 경계가 와해되는 데서 오는 과잉조절장애다. 그 본질은 자아와 타자 사이에 확연한 경계선을 긋지 못하는 "결단력의 부재(indecisiveness)"에 있다. 사람들이 오해하는것과 달리, 우울증은 너무 많거나 적은 관계 때문에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의 끝을 지정할 수없어서 생긴다. ADHD는 집중력의 결핍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집중할 대상의 끝을 정할수 없어서 생긴다. 과로사도 ADHD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 과로사는 단지 과도한 노동 때문에 초래되 초래되는 것이 아니다. *과로사는 노동의 끝을 지정할 수 없어서 초래*된다. - P15

과잉주체는 주체가 아니다. 주체는 지난 세기 경계의 패러다임을 살아가던 근대적 인간이다. 그가 경계를 통해 누리던 행동과 생각의 조절방식 자체가 과잉주체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니, 과잉주체는 주체처럼 행동하고 반응하지 않는다.
*그는 과잉행동하고 과민반응한다. 과잉주체는 사유하지 않는다. 그는 과몰입한다. 과잉주체는 상상하지않는다. 그는 과대망상한다. 과잉주체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과장한다. 과잉주체는 관계 맺지 않는다. 그는 하이퍼링크한다. 과잉주체는 욕망하지 않는다. 그는 과흥분한다.* 과잉주체는 일하지 않는다. 그는 과로한다. 과잉주체는 숨 쉬지 않는다. 그는 과호흡한다. 과잉주체는 죽지 않는다. 그는 과로사한다…. - P19

지난 세기의 대미를 장식했던 ‘중2병’과 이번 세기 대유행 중인 ‘관심병’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미학적으로 중2병의 허세는 대상을 잃은 자아의 애도인동시에 그럼에도 건재한 자아의 찬미다. 중2병은 멜랑콜리 병이다. 이는 경계의 패러다임에 속한다…. 중2는 애도한다. 애도는 상실을 인정하고 기억함이다. 그로써 *나의 경계를 지킴*이다. "난 지금 미쳐가고 있다. 이 헤드폰에 내 모든 몸과 영혼을 맡겼다. 음악만이 나라에서 허락하는 유일한 마약이니까. 이게 바로 지금의 나다." 중2는 제정신은 상실했어도 ‘나라’라는 국경을 가지고 ‘지금의 나’ 도 가진다.
- P65

반면 초고속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에서 자라난 관종은 정반대의 패러다임이다. 중2가 멜랑콜리 환자라면, 관종은 조증 환자다. 그는 허세를 어그로로 대체하며, ‘좋아요‘와 조회 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과잉한다. 관종은 멜랑콜리하려야 할 수가 없다. 만인이 그의 잠재적 친구이자 팔로워다. 관종은 추방 되려야 될 수가 없다. 무한정한 네트워크가 이미 그의 국가다. 중2처럼 마약도 따로 필요 없다. 좋아요가 이미 관종에겐 마약이다. - P65

클라인의 유작은 *<외로움에 관해서>*였다. 이 짧은 논문에서 그는 인간에게서 외로움은 결코 제거되지 않으며, 대상세계 속에서 외로움은 필요하다고까지 말한다. 왜냐하면 외로움이란 자아와 대상이 서로에게 타자로서 분리되는 고통, 그로써 자아도 대상도 "결코 완전할 수 없음을 깨우치"는 고통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완전하지 않은 대상만신뢰의 대상이 된다. 완전한 것은 믿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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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6-12 17: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인스타 비공개 해놔서 에잉 나 훔쳐보지 말라고 그러나 ㅋㅋㅋ했다니께요…이런 심리적 조정 과정이 있었구만요

공쟝쟝 2021-06-12 18:18   좋아요 4 | URL
아닠ㅋㅋㅋ 그럴리가 ㅋㅋㅋㅋ 여보세요, 이 과잉존재여ㅋㅋㅋ

새파랑 2021-06-12 18: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인스타가 궁금하네요. 도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ㅋ 북스타그램(?)은 책사진을 예쁘게 올리는게 목적인거 같아서 저는 잘 안맞더라구요..... 그래도 가끔 눈팅만 하는건 재미있더라구요^^

공쟝쟝 2021-06-12 19:42   좋아요 3 | URL
좋아요 50이 되지않는 사진 드럽게 못찍고 글만많은 북스타그램이요 ㅋㅋㅋ (사실 절대 북플루언서될 수 없었어.. 신포도랄까..?) 지금은 안해요 ㅋㅋ

붕붕툐툐 2021-06-13 0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왠지 인기가 너무 많아진 북스타그램을 자랑하는 거 같기도 하네요? ㅎㅎㅎ
전 쟝쟝님의 긴 글이 좋습니다. 아 물론 짧은 글도 좋구요~🙆

공쟝쟝 2021-06-13 08:56   좋아요 3 | URL
인기가 많아질 까봐 걱정이 되었다는 자의식에 대한 자랑 ㅋㅋㅋㅋㅋ 🙆🏻‍♀️

바람돌이 2021-06-13 04: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이 어떤 마음인지 알거 같아요. ㅎㅎ
저는 딱 여기가 제 능력에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의 공간이에요. 여기서 더 뭔가를 해야 한다면 아예 책읽을 시간이 없어질까 두려워서 다른거 안함요. ㅎㅎ

공쟝쟝 2021-06-13 09:04   좋아요 1 | URL
맞아요~~~진짜 그래요~~~ 이것도 겨우하는 ㅋㅋㅋㅋㅋ) 왜 하루는 24시간이고 우리의 체력은 한계가 있을까요… ㅠㅠ

그레이스 2021-06-13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것 같아서....
사실 저를 돌아보고 긴장중입니다.^^

공쟝쟝 2021-06-13 09:05   좋아요 1 | URL
저두 책읽으면서 걱정하다가 … 우리야 그래도 인터넷 습득한 세대지만, 인터넷이후의 세대들의 자아감각이란 정말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돌아보게 된다능…

다락방 2021-06-13 08: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08 쪽 인용 때문에 이 책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공쟝쟝 2021-06-13 09:08   좋아요 1 | URL
책의 5장 부분입니다!! 저는 이 장이 가장 신선(?)했습니다. 하이퍼링크의 사회에서 포르노란 절대 성해방이 될 수 없다는 생각 한번 더 했어요.

꼬마요정 2021-06-13 1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고 싶어요!! 영업 잘 하십니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에서 ‘모자람보다 못하다’로 바꿔야 하는 걸까요?

공쟝쟝 2021-06-13 20:02   좋아요 2 | URL
영업하지 않았는데 영업당하시다니… 호호호(??)

독서괭 2021-06-15 11: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글 조금 읽고 나서 PC로 정독해보려고 일단 좋아요만 눌러놨다가 이제야 정독했네요. 저도 좋아하는 작가 좀 훔쳐보려고 얼마전에 인스타를 깔고 북스타그램을 깔짝깔짝 해보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역시 북플이 제일 적절하고 좋은 것 같아요. 장문의 양질의 리뷰(공쟝쟝님의 이 글 같은!)는 인스타에서는 불가능하죠. / 그러고 보니 N번방 추적기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사놓고 안 읽고 있었는데 생각났어요^^;;

공쟝쟝 2021-06-15 17:04   좋아요 2 | URL
평소 눈여겨보던 작가들의 생활을 스리슬쩍 엿볼 수(?) 있다는 것도 인스타그램을 끊을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죠!! 하지만 읽기와 소통과 때때로 쓰기까지 독려되는 이곳 북플의 무한 매력에 저도 사로잡힌 것 같습니다. 좋아요가 너무 많아질까봐 걱정 안해도 되고요 ^^?? N번방 추적기! 저두 읽어야 할텐데요..^^;;;; 아, 이럴 땐 정말 몸이 여러개 였으면!
 
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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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겨울, 적지않은 시간을 보낸 일터를 정리하고 나왔다. 어떻게든 견뎌보려 궁리했었는데, 그 궁리를 그만두면 동시에 내 있을 곳 역시 사라지는 거구나. 나라는 존재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고, 어떻게든 교체될 수 있고, 고유하지도 뛰어나지도 않은 흔해 빠진 - 흥 하고 풀고 버려지는 티슈 한 장 같은 거,구나, 했었다. 두루말이 화장지처럼 아낌없이 낭비할 수는 없을지라도 한 번 쓰면 버리는 건 똑같은. 곽에서 뽑아쓰는 티슈. 그것도 딱 한 장 짜리.

현(실)자(각)타임 - 자유로운 모양새로 나풀나풀 땅바닥으로 하강하는 기분으로 일기를 썼더란다. “나는 티슈 한장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기분이 아주 더럽다. 내 기분과 상관없이 누군가는 또 뽑혀 쓰이기를 원할 것이고 결국 그곳은 바뀌지 않겠지. 여기가 아닌 어디라도 그러하겠지... 그렇다면 내가 바뀌어야 하는걸까.”

분명 여기에 더 있으면 안될 것 같아 박차고 나온 것은 나였는 데, 거기엔 일말의 후회나 미련이 없는데. 왜 후련하지 않은 걸까. 이 더러운 기분은 뭔가. 딱히 누군가를 탓하거나 미워할 수도 없었다. 그 때, 내가 느낀 건 굴욕감이었을까.

“(160) 신자유주의 하에서 모욕은 흔히 굴욕의 모습을 띠고 나타난다. 예고 없이 실직을 당할 때, 일한 대가가 터무니 없이 적을 때, 아무리 절약해도 반지하 셋방을 벗어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굴욕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은 모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모욕은 구조가 아니라 상호 질서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를 해고한 사장도,월세를 올려달라는 주인집 할머니도 나를 모욕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시장의 법칙에 따라(즉 구조의 담지자로서 구조가 명하는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그들은 매우 예의바르게, 심지어 미안해하면서 자기들의 입장을 전달하지 않았던가? 누구도 나를 모욕하지 않았다면, 내가 느끼는 굴욕감은 전적으로 나 자신의 문제가 된다. 신자유주의 전도사들은 이것을 자존감의 결여 탓으로 돌린다. 그들의 주장은 이런식이다. 실직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굴욕으로 느껴진다면, 당신에게 자존감이 부족한 것이다. 당신은 혹시 어린시절에 사랑을 충분히 못 받은 게 아닐까? 그렇다면 먼저 당신의 내면에 있는 상처받은 아이를 달래주어야 한다! 자신의 가치를 믿어라! 그리고 당당해져라! 당신이 긍정적일수록 재취업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때 부터였나. ‘누구도 쉽게 대체할 수는 없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게. 그런데 그건 어떻게 되는 거지? 척척척 모든 걸해내고, 나 없으면 안될 정도로 열나 유능해지면, 그렇게 일을 엄청 잘해버리게 되면, 나만의 고유한 능력치가 있게 되면, 그러면 이 쓰고 버려지는 드러운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걸까.

버려진 티슈는 생각했다. 그런데 그능력을 키우려면 일터로 돌아가야하는 거 잖아. 결국 더 노오오력해야한다는 거잖아. 누구 좋으라고? 나? 구겨진 티슈는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구깃한 마음으로는 노력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구김살 없이 기꺼이 쓰고 버려질 젊은 깨끗한 열정의 마음들이 지천에 널려있는 세상이 보였다. 더는 타협없이 생계의 몫을 다해야하는 조건에 놓인 타인의 몸들도 보였다. 다들 왜 저렇게 부지런한거야. 난 또 왜 이렇게 게으른거야.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자 게으른 티슈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월세가 무거워졌다. 안되겠다, 엉엉. 이미 쉽게 뽑아쓰고 버려질 몸, 인정하자. 나는 대체가능하다. 언제라도. 어떻게라도. 그러니까 너무 잘하려고 하지말자. 정성을 다하려고 하지말자. 아주 쉽게 대체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자. 그래! 더 싸서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두루말이 휴지가 되겠어!!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있는 고용주 여러분, 저를 마구마구 풀어써주세요. 풀려쓰이는 동안만큼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월급은 밀려선 안돼요. 왜냐 월세는 밀리면 안되니까요. 몇가지 자기계발 공정을 통해 두루마리 휴지로 거듭난 티슈에겐 의외의 좋은 점이 있었다. 저렴하고 막쓸 수 있을 지라도 두루말이 본인에겐 티슈시절에 없던 휴지심이 생겼다는 것. 그것은 텅비었지만, 그래도 심은 ‘심’이다. 나에게 있어 심은 일을 하되 일에 나를 너무 투영하지는 말자는 마음. 일하는 자아와 일하지 않는 자아를 분리시키겠다는 내적 선언.

“(87) 고프먼의 관점에서 사람이란 곧 연기자를 말하는데, 우리는 사회라는 무대 위에 올라가서 실제로 연기를 하면서 우리의 사람자격을 확인받게 된다. ...그는 가면이 우리의 인격의 일부이며 우리는 가면을 씀으로써, 즉 어떤 역할 또는 성격을 연기함으로써 비로소 사람이 된다고 주장한다. ‘어떤의미에서 이 가면이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품고 있는 관념 - 우리가 수행하려고 애쓰는 역할-을 대표하는 한, 이 가면은 우리의 더 진실한 자아, 우리가 되고자 하는 자아이다.’ ... 여기서 얼굴과 가면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해두기로 하자. 인격과 성격을 구별하듯이 우리는 이 둘을 구별해야 한다. 가면이 우리가 연기하고자 하는 성격과 관련된다면, 얼굴은 그 가면의 배후에 있다고 여겨지는, 연기자로서의 우리의 주체성과 관련된다.”

휴지심이 생겨난 두루말이는 새로운 일터에서 모욕쪽에 더 가까운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지금의 나는 진짜 ‘나’는 아니고 일하는 척하는 나를 연기 중”이라고 되뇌일 수 있었다. 달리 어찌 방법이 없었다. 나긴 나인데 내 전부는 아니어야해! 인용된 고프먼의 글을 읽으며 탄복했는 데, 정밀한 사회학적 용어로 서술된 내용들이 피부와 찰싹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내가 연기한다고 가정해야 살아갈 수 있었다. 그것을 가면이라고 부르던, 연기라고 명명하든- 일과 자아를 일치시켜서 온전한 굴욕감을 삼키는 것 보다.. 진짜 ‘나’는 다른 곳에 있고, 나는 여기서 연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연기는 사회생활을 하는 대부분이 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지금 당하는 여러가지 모욕은 진짜 ‘나’를 훼손할 수 없다고. 너는 나를 쓰고 버리더라도, 진짜 ‘나’는 버려지지 않는다고.

대체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나라는 현실자각은 끝났는 데. 또다른 문제가 생겨났다. 이 지독한 연기를 끝마치고 ‘진짜 나’(편의상 이걸 자아라고 해두자)로 돌아갔으면 싶어진 것이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자아가 있었으면 좋겠어. 딱 잘라 뜯어내 버릴 수도 없는 이 매일의 기꺼운 연기를 고생했다 토닥이면서도, 또 내일의 연기를 위해 아껴둘 수 있는 가꿔도 볼 수 있는 내 안의 훼손할 수 없는 - 그 무엇. 나는 자아가 있었으면 했다. 그것을 찾아보마 마음먹었다. 솔직히 집착했다. 이 글을 쓰기 바로 전에 알라딘에 올렸던 글도 그런 내용이었다.

자아를 찾자. 자아가 되자. 자아를! 얼굴을! 자아여! 가면 뒤 내 진짜 얼굴이여! 그러나 책은 곧바로 “(89)나는 지금 가면 뒤에 연기되지 않은 진짜 자기가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를 연기하며, 심지어 일기를쓸 때도 그러기 때문에, 진정한 우리 자신이 어떠한지 결코 알 수 없다.”고 하네. 나빴다. 흥. 칫. 뿡.

사실, 이 책도 고프먼도 내가 자아라고 이름 붙인 어떤 것(고유한 개인의 내면- 혹은 본질 같은 것)을 다루지는 않는다. 내 뜻대로 신나게 오독해보고 싶었으나, 오독할 건덕지없이 완전봉쇄 당했다.

“(89) 가면의 뒤에 - 즉 얼굴의 자리에- 있는 것은 어떤 종류의 내면성이 아니라, 신성한 것 또는 명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얼굴을 개인이 맡은 역할이나 그 역할에 대한 그 사람 고유의 해석, 혹은 연기를 통해 그가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자기 이미지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얼굴은 그처럼 개별적이고 가시적인 것이 아니다. 얼굴은 결코 가면과 분리될 수 없으면서도 가면의 뒤에 있다고 상상되는 무엇이다. 어떤 사람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리고 그가 만들어내는 것이 가면에 불과함을 알면서도 그 가면을 굳이 벗기려하지 않을 때, 나아가 그의 연기에 호응하면서 그가 가면을 완성하도록 도와주고, 실수로 가면이 벗겨지더라도 못 본 체 할 때, 한 마디로 그의 가면 뒤에 있는 ‘신성한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할 때 그 사람은 얼굴을 갖게 된다. 고프먼은 얼굴을 유지하는 것이 상호작용의 목표라기보다는 조건이라고 말한다. 상호작용의 목표들은 보통 서로 얼굴을 잃지 않고 또 잃지 않게 하려는 노력속에서 진행된다.”

저같은 독자들이 혹여 다른 길로 샐까봐 열심히 쓰기로한 방향대로 글을 끌어가시는 김현경 저자님. 그렇다. 이책은 개인의 소외감이나 자아의 발견이 아니라 사람-장소-환대에 대한 텍스트 였떤 것이다!

“(25) 이 책은 영혼과 육체의 대립 속에서 간과되어온 그림자의 문제, 다시 말해 ‘사람’의 문제를 다룬다.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되는가?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인 것인가? 다시 말해서 ‘사람’이라는 것은 지위인가 아니면 조건인가? 조건부의 환대 역시 환대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환대가 언제라도 철회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환대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여기서 나는 일종의 귀류법을 사용하여 -즉 절대적 환대 없이는 사회가 생겨날 수 없음을 보임으로써- 절대적 환대의 필요성을 증명하려 하였다.”

두루말이는 책을 덮고 고마워졌다. 비록 나는 쓰이고 버려지겠지만, 속은 텅 비어있지만, 어디에 발붙일지 몰라 언제나 불안하지만, 내가 누군지 잘 모른대도, 자아나 내면을 갖추지 않는 대도, 혹여 정말로 휴지조각처럼 온 세계가 나를 대한다 하여도. 그래도 태초에 절대적인 환대를 받았다는. 기억없는 그윽한 기억에 대해.

어쩌면 작고 험난한 내세상과 맞서느라 까먹은 진짜 문제에 대해 어렴풋이 환기해주는 책인지도 몰랐다. 현실에서 느끼는 무력감이나 굴욕감이 커지고, 사람들에게 실망할 수록 ‘구조-사회-역사-등등에 기대는 큰 언설’들이 허공을 헤집는 것만 같았었다. 그래서 차라리 통제가 되는 가장 작은 단위 - 자아(도통 있는지 모르겠는)에 몰두, 자아에 집착했을 지도.. 존엄은 엿바꿔 먹은 것 같은 일상 속에서 너에게 나를 모조리 다 바치지는 않았어!라는 ‘정신승리’로서의 손톱 만큼 남은 상념과 시간들의 확보 = 자아.(이렇게 쓰니 조금 가엾다.) 그 역시 나를 한 장의 티슈로 만들어버린 알고보니 신자유주의씨의 큰 그림이었나. 혹사시키고 내몰아, 모두를 알 수 없는 허망한 자아찾기 게임에 몰두시키는?

아아, 언제나 눈 똑바로 떠야한다. 눈은 똑바로 뜰텐데, 지금 그만두면 좀 아쉬워 질 것 같으니 저는 당분간 이 게임에 심취해 있겠습니다. 설령 없다한들, 그게 그닥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한들, 있다고 믿고 살아가는 것만이 지금을 사는 방식이라..... 두루말이는 변명한다. 내 휴지심 안엔 꽤 근사한 무언가가 들어차 있을 지도 몰라!!! (구겨진 휴지 자신일 가능성이 높다)

“(242)신원을 묻지 않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 복수하지 않는 환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절대적 환대이다. 누군가는 우리가 한번도 그런 사회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운동의 현재 속에 그런 사회는 언제나 이미 도래해 있다.”

이 책의 제목을 봤거나,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그러겠지만, ‘환대’라는 눈에 익지 않은 그 단어에는 🥺 괜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버린다. 그러고보면 이 눈물의 정체는 그리움이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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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0-25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야요, 너무 좋쟎아요오~~!! 암튼 저도 이 책 샀는데 (배타고 오고 있는 중;;;) 인용한 구절이 저는 왜 잘 안 읽히지? 넘 어려워. ^^;;; 글을 읽으면서 우리 쟝 님의 글은 머리 쏙 들어오는데 인용글은 게속 주변을 맴돌아서 몇 번을 읽었는데도 이해가 안;;; 나 아무래도 난독증? 아니면 더 심각하게 이해능력 부족? 자아를 생각하기도 전에 난관에 부딪침요.ㅠㅠ 하지만 책 제목에 왜 환대가 들어가는지 알게되어서 끄덕끄덕,,,우야쯘둥, 우리 쟝 님 글 정말 잘 쓰신다!!^^

공쟝쟝 2020-10-25 11:45   좋아요 0 | URL
이 책 전체적으로도 하나의 완결성(?)을 갖고 있는 책이라 주욱 따라가면서 읽어야할 것 같아요. 인용한 밑줄들은 와닿았던 구절들이었는 데, 개념에 개념들을 저자 말대로 일종의 귀류법으로 논증해서- 인용만으로는 매력을 느끼기 어려우실지도. 어서 배타고 넘어간 책을 환대하시어, 누리시기를...!!

봄밤 2020-10-25 1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버려진 휴지가 단단한 심을 가진 휴지로 성장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네요. 너무 좋으면서도 어렵게 느껴졌던 책인데 다시 읽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가끔 등장하는 고양이의 얼굴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기분 좋은 오전이네요!

공쟝쟝 2020-10-25 11:48   좋아요 1 | URL
그날은 티슈가된 기분이었다... 로 시작한 글이었는 데 쓰다보니 휴지의 성장서사...로 결론 나서, 역시 나는 성장서사 중독인가 ㅋㅋㅋㅋ 하고 웃었더랬죠! 귀여운 냥이 종종 찍어올리겠어요! 일요일 오후 잘 보내세요^.^

난티나무 2020-10-25 15: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휴지심,에 오! 감탄하며 읽다가,
그만 얼마전에 여기 출시된 ‘심 없는 휴지’가 생각나고 말았어요.
현대 사회는 우리의 심도 부정하면서 끝까지 다 풀어써 버리려는 작정일까요.

공쟝쟝 2020-10-26 08:04   좋아요 0 | URL
심없는 돌돌이 휴지라니 ㅠㅡㅠ 그럼 그 휴지는 어디에 거는 걸까요... 휴지에 이입했던 주말이었는 데, 그 휴지 참 쓸쓸하도다...

syo 2020-10-25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가 홉스한테 똥그라미쳤나! 홉스 피부색과 책 표지색의 저 어우러짐은 무엇인가.....
자는데 주먹쥐고 있는 것 좀 봐 ㅠㅠㅠ 엉엉

공쟝쟝 2020-10-26 08:04   좋아요 0 | URL
엉엉... 혼자 냄겨두고 출근하는 에미 맘은 찢어집니다... 귀여운 자 ㅠㅠ
 
[eBook] IMF 키즈의 생애 - 안은별 인터뷰집
안은별 지음 / 코난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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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추석 이후부터 출근러가 되었다. 고작 8개월만에 나의 멘탈이 프리랜서 생활을 견디기엔 아직 나약하단 걸 깨달았다. 도저히 불안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이 없을 때는 굶어죽을까봐 걱정되었고, 일이 있을 때는 일이 너무 많이 밀려와서 해치울 걱정하느라 바빴다. 시간이 많기는 한데, 도저히 내 일상이 조절 안되더라...

사무실 그만두면 자유롭고 시간이 넘칠 줄 알았는 데, 복세편살 빈둥대고 게으르게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많은 시간을 불안해 하는 데에 다 쓴 듯.. 하아.. 내 멘탈무엇.. 😿

모르겠다, 모아둔 돈이 좀 있었으면 그 시간들이 덜 불안했으려나? 


*

어쨌든 일이 있는 날엔 일을 하면서 다음 일 수배하느라 불안하고, 그렇게 일 스케줄이 겹치면 무리하게 되니까 내 몸이 버텨줄까 불안하며, 일이 없을 때는 없으니까 또 불안했다. 한참 일없던 어느 날은 정말로 이대로 일이 없으면 나는 앞으로 어떡하나..... 걱정으로 잠이 안와서 뒤척이다 날을 샌 적도 있었다.😨

농노에서 노동자가 되는 것은 착취당할 자유라고... ㅋㅋㅋ 
그런데 imf이후의 한국 자본주의 산물인 나는 사회가 착취를 안해주니ㅋㅋㅋ 
농노도 노동자도 아닌 상태가 외롭고 버거워 불안해하느라 심리적 에너지를 다 사용하고 있더란다. 

물론 여러가지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책을 읽으며 멘탈을 잡아보려 초반엔 노력했다. 그러나 뭔가 읽을 수록 내가 아무 대책이 없이 때려쳤구나ㅠ싶어서 (하긴 대책 보다는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리고 역시 도망치기는 잘했다고 생각..후회는 없지만, 당장 월세가 넘나 걱정ㅠㅠㅠㅠ) 결국 열심히 잡코리아만 뒤지는 신세... 그걸 뒤질 수록 더 불안해졌다... 하지만 멈출수도 없었다. 그걸보며 불안해해야 뭐라도하는 것 같았으니까.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냥 나는 ‘불안’을 동력으로 인생을 굴리는 자였던 거다. 
막판에는 그냥 계속 이렇게 불안하기만 할까봐 그게 더 불안할 정도 였으니...


*

여튼 도저히 프리랜서 못하겠어!!!! 아무데나 받아주세요!!!회사에 뼈를 묻고 일하겠습니다!!! 모드로 구직. 요즘엔 새 직장, 새 업무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다. 다크서클이 더욱더 진해지고 있음.. 그래도 따박따박 월급 들어올 생각하니 지난달 대비 불안의 총량이 50%는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실존적으로는 불안하며...(이 일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내 몸이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지?), 일이란 무엇이든 힘을 들여야 하는 거니깐(그래야 고용주가 돈을 주니깐..) 집에오면 녹초가 되어 잠든다... 
내 인생 너무 어려워...



출퇴근 오명가명 길바닥에 하루 두시간 반씩 버리기 아까워, 이북 읽기 중인데 (이전 사무실은 출퇴근 버스가 널럴했는 데, 요즘다니는 코스는 신도림역 거치는 마의 코스라... 도저히 종이책을 펼칠 수 없다..)ㅡ 하필 출근 첫주에 읽은 책이 IMF키즈의 생애였다. 


나 역시 아이엠에프 키드이고, 사는 게 참 생존 같고, 피곤하고, 나만 힘든가 다들 어찌 살고 있나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는 데.... ㅠㅠㅠㅠㅠㅠ 고작 일곱명 인터뷰인데도 .. 그냥 토닥토닥.. 다들 힘드셨쥬... 10대때는 아엠에프땜에 힘들고, 20대 내내 이명박그네랑 함께 보내느라 힘들고, 30대 됐는데 이룬게 아무것도 없는 데 일은 하기 싫죠... 힝... 어쩜좋니..... .... 우리 존재 홧팅이어요....ㅠㅠㅠ 쥬륵...


*

제일 와닿는 인터뷰이는 홍스시씨였다. 그냥 다 내 얘기 같았다. 그녀의 불안에 대한 문장이 참, 너무 내 마음 같았다. 안불안해 본적이 없어서 만약 불안하지 않는 상태면 그 상태가 끝날까봐 불안해할거라는 말... 일이 잘되서 대박이 나도 내 몸이 안 받쳐줄 것이 걱정된다는 말.... ㅠㅠㅠㅠ .....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살던 몇달동안 마음에 불안이 똬리를 틀고 앉아서 나갈 생각을 않는다는 걸 알아챘다. 항상 친구처럼 지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잠을 안재울 정도로 커진 모습을 보니 별 것 아닌 걸로 치부해선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잡아먹힐지도 모르겠어. 아니 이미 잡아먹혀 살아왔나.. 일단은 내 안의 이 어마무시하게 큰 불안을 알아챈 것이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다. 다만 좀 많이 무서웠으니까, 해결을 좀 해봐야겠다... 앞으로는 요놈을 잘 탐구해볼 요량이다.

근데 내일 출근해야하는데 핸드폰으로 막 쓰다 보니 벌써 한시반... ㅠㅠ 퀭... 😴😴😴😴😴






진짜 아무 걱정이나 불안 없이 편안 하루를 느껴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런 날이 오면 아마 그게 끝나는 것 때문에 또 불안해 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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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가방 2019-10-14 0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되는 심리네요.
하던 일 그만두고 작은 일 하나 직접 시작했더니 그렇게 힘들지 몰랐다는..
새 직장생활 화이팅입니다

공쟝쟝 2019-10-14 07:45   좋아요 0 | URL
회사안은 전쟁터, 회사밖은 지옥이라는 말이생각나네요! 월요일 힘찬 하루 보내셔욥^.^

반유행열반인 2019-10-14 0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질적으로 불안이 높아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잠을 설치곤 합니다.
12년 a 공교육과정이 우리한테 체화한 게 뭐겠어요. 정해진 시간 요일에 특정 장소에 투신해야 보상 받고 아니면 박탈과 낙오라는 불안을 심어 그대로 이용하기 좋은 노동자로 만드는 것이었겠죠.
그래도 과감하게 프리랜서 도전도 해 보시고 다시 일자리도 구하셔서 자기 힘으로 사시는 일에 조금은 자부심을 느껴도 될 것 같습니다. 저는 (휴직 중이지만) 지금 일을 그만두면 대체 절 받아줄 일자리가 있기나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에겐 구원과 위안의 독서와 글쓰기가 있잖아요. 일터가 그 바탕(경제적으로든 스트레스의 반동으로 부추기든)이 되고 있는 부분도 있으니 건강 해치시지 않게, 받는 만큼만 쉬엄쉬엄(?)하셔요. 나중 걱정은 나중에. 화이팅.

공쟝쟝 2019-10-14 19:55   좋아요 1 | URL
맞아요! 우리에겐 위안의 독서와 글쓰기와 다정한 알라딘 서재 마을이 있네요! 이번생이 아예 망하지 않은 포인트 ^^ 나중걱정은 나중에할게요, 따뜻한 댓글 고맙습니다!
 
90년생이 온다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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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수련회’에 가서 기합을 받았다. 빨간 모자를 쓴 조교들이 무섭게 다그쳐댔다. 터질 것 같은 허벅지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저녁에는 촛불을 켜고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MT를 갔다. 선배들은 멤버십 트레이닝이라고 했다. 그런데 편한 옷을 입고 ‘해쳐모이’라고 하는 거다.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앉았다 일어났다, 좌로굴러 우로굴러 했다. 그래도 대학교인데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열외’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 때문에 한번 더 기합을 받게 되는 건 민폐같았다. 입이 댓발 나와 기꺼이 기합을 받지 못해 ‘열외’가 된 동기가 있다며 쪼그려앉아 뛰기 횟수가 늘어났을 땐 솔직히 짜증나기도 했다. 나 역시 내 몸을 겨우겨우 통제하고 있었으면서 그랬다. 그렇게 다 같이 고난을 겪고 나니 끈끈해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랬다.

그랬다. 그랬는데. 그런데. 그러한데. 지금은 그때가 무섭다. 몸서리 쳐지도록. 그 시절의 그들이 무섭다. 정확히는 그것을 ‘견딘’ 내가 무섭다.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어 있는 내 몸이 무서운 것 같기도 하다.

“(11)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임모 씨와 최모 씨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꼰대’라는 존재다. 임모 씨 곁에 ‘명문대 나와서 기껏 준비하는 게 9급 공무원’이라며 무책임한 참견을 하는 꼰대가 있다면, 최모 씨 곁에는 ‘네깟 게 뭘 안다고’라며 그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꼰대가 있다...1990년대생들은 그들이 자라온 학교와 주변에서 이러한 ‘꼰대질’ 속에 살아왔고, 이제는 사회인이 되어 직장의 꼰대들과 직접 마주하게 되었다. 이 책은 1990년대생들이 이 ‘꼰대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방식을 취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꼰대의 세상은 어떻게 이들을 받아들여야 할지 답을 찾고자 한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느끼는 일상적 불합리에 대해 90년대 생인 동생은 ‘극혐’이라며 “당장 때려치우라”고 했다.

나는 참아 왔고, 견딜 수 있었고, 떠나지 못했고, 싸우지도 못했다. 싸우는 사람들이 어떻게 내쳐지는 지 봐오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달리 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믿었고, 그래서 참을만 하다고 여겼을 지도 모르겠다.

또 엄마가 늘상 말했으니까. “남의 호주머니의 돈 빼먹기가 제일 어려운거다.” 나를 다그치는 관리자 사람도 그랬다. “사회생활이 원래 다 그런거야.”

이 정도면 괜찮은 처우라고도 생각했다. 정확히는 여기마저 그만두면 정말 영영 사회생활을 못하는 낙오자(열외)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더 컸다.

일갔다 오면 잠만 쿨쿨 자는 무기력한 저녁들이 꽤 오래 지속된다고 느꼈을 때, 들어온지 한 달 만에 (역시) 90년대생인 동료가 “절레절레, 노답”이라며 사무실을 그만 두었다. 아. 그냥 그만두지는 않았다. “여기가 무슨 대단한 데인줄 아느냐, 사람이 떠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등등 주옥같은 명언을 사무실 최고의 꼰대 상사에게 투하하고 떠났다.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러나.. 폭격이 지나가고 난 뒤.. 남은 나는 그 꼰대를 달랬다. (그날 집에서 혼술을 취할때 까지 마셨다...괴로워서..) 이내 새로운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가 또 떴다. 누군가가 새로 오는 것을 반갑게 맞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구하는 김에 한명 더 구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반년 정도 고민했던 말을 겨우겨우 했다. “저도 이제 그만두겠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들었던 생각은 하나다. 나도 일조하고 있었구나. 수직적이고 부당한 조직 안의 문화를 그냥 참고, 견디고, 그만두지도 않으면서. 이것들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구나. 그렇게 기성세대가 되어가고 있었구나. 나. 이미 낡았구나.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고 생각했는 데- 견딜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기득권’이라는 뜻인 걸까나.

*

그래서. 이 책이 위로가 되었다.

아직 무엇도 가지지 않았고, 이 세상에 기여한 바도 없으며, 그리하여 이 “모순이 내 것이 아닌” 90년생들이 (그것이 병맛과 솔직함과 간단함일 지라도) 자신들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와 세상에 인입되고 있다는 것에.

“(155) 90년대생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이 곧 나의 성장이라는 공식을 배격한다. 새로운 세대는 ‘회사에 헌신하면 헌신짝이 된다’는 인터넷상의 ‘직장 계명’에 동의하고, 이를 넘어서 충성의 대상이 ‘회사’여야 할 이유가 있냐고 반문한다.”
“(156) 과거 70년대 생과 그 이전 세대에게 충성심이라는 것은 단연 회사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90년대생에게 충성심은 단연 자기 자신과 본인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충성의 대상이 다르고 그 의미도 다르니 갈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90년대생들을 위한 조직 문화 개선 방안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충성도에 회사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느냐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157) 앞서 말했듯이, 90년대생들은 IMF 직격탄을 맞은 70년대생들과 상시 구조조정의 가능성을 가져왔던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쑥대밭이 되었던 80년대생들의 모습을 보고 자라왔다.”


‘회사가 싫다’ ‘퇴사가 좋다’류의 책들이 너무 많이 나오고 은근히 조장되는 분위기를 걱정하는 글을 본적이 있다. 이 책을 보고 나서는 그 걱정이 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부양가족이 없고 아직 젊다면 적극적으로 이직하고 퇴사하고 때려쳤으면 싶어졌다. 소위 회사라는 곳이 사람을 마치 티슈처럼 사람을 뽑아쓰고 버리는 거 지금까지 계속해서 봐왔으니까. 버려지기 전에 먼저 버리는 게 왜 나쁜가. 그렇게라도 답답한 이 시스템에 균열을 내야하는 것 아닐까. 그 균열을 견딜 수 없다면 기성세대와 회사들이 제대로 변화해야 하는 거지.

*

‘열외’를 인정하지 못하는 몸의 기억을 가지고
‘그래도 어떻게 얻은 일자리인데’라는 을의 감수성을 꾹 내면화한
80년대생인 내가 애매하게 타협했던 것들이
우리 모두를 더는 해치지 않도록
새세대들에게는 절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그러니까 이 책의 멋진 표지처럼 90년생들이 그들만의 스타일로 착착착 전진하기를 바란다. 
난 눈 흘기지 않고, 기꺼이 내 무언가를 내놓을 용의도 있으며, 박수치고 응원할거다. 진심!!!

적고 보니 어쩐지 나의 퇴사일대기네.
90년대 생들 만세!



(116)
90년대 생들에게 솔직함이란 기존 세대의 솔직함과는 그 범위가 다르다. 그들에게 솔직함이란 자신의 솔직함뿐 아니라 남들의 솔직함도 포함한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예를 들어 본인들을 고용한 기업이라든가 소비재를 파는 기업들에게서 솔직함이 보이지 않는다면 인정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169)
"본인에게 주어진 휴가를 다 쓰지 않고 휴가를 다녀오지 않은 것이 마치 더 일을 열심히 한 듯이 으스대는 선배들을 볼 때면 얼간이같이 느껴져요. 내 휴가를 내가 사용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고요. 얼마 전에 팀장님이 지나가는 말로 ‘휴가가 너무 잦은 거 아닌가?’라고 하는데 기분이 안 좋았죠. 지적하려면 업무적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180)
영화 <신과 함께>의 원작자로 유명한 웹툰 작가 주호민 씨는 본인의 2008년작 <무한동력>의 명대사로 꼽혔던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가 이제는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꿈이 꼭 없어도 되는데 너무 꿈을 강요한 건 아니었을까?"라고 말이다. 새로운 세대는 꿈을 쫓으라는 기성세대의 충고가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음을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다.

(213)
몇 년 전, 한 대기업은 ‘역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겸비한 경영진이나 선배들이 1대1로 신입 사원에게 진솔한 지도와 조언을 해준다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반대로 차용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대표 신입 사원들이 본인이 속한 조직의 임원에게 역으로 본인의 진솔한 조언을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두 달도 가지 못해 폐지되었다. 회사에서 내세운 표면적인 폐지 사유는 ‘임원이 참여할 시간이 아직은 부족해서’였지만, 실제로는 ‘너무도 솔직한 신입사원의 의견을 임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서’였다.

한 부서에서는 근무한 지 1년이 되는 사원이 임원에게 "상무님은 회의 시간에 본인의 의견만 말하고, 반대되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답정너 스타일입니다. 부서 회의도 강압적이어서 부서원들이 솔직한 의견을 제시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음에 벌어진 일은 그리 놀랍지 않다. 솔직한 역멘토링에 얼굴이 굳어진 임원이 관리자에게 신입 사원 교육을 똑바로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제도의 취지는 무색하게 되었다. 이런 사달이 난 이유는 프로그램의 설계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에 참여하는 경영진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며, 참여를 할 진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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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9-01-29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다시 그런 불합리한 상황에 들어가게 된다면, 다시는 침묵하지 않을 거예요

공쟝쟝 2019-01-29 17:26   좋아요 0 | URL
암요. 그래야지요. ^_^
침묵하고 싶어서 침묵했던 적도 있지만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저 자신의 언어가 없었던 것도 같아요. 그리고 말보다 이미 몸이... 알아서...
대개의 불합리는 압도적이라 인식도 잘 안되었던듯. 우리 꼭 기회(?)가 생긴다면 제대로 말할 수 있도록 해요~
 
선망국의 시간 - 당신은 지금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나요?
조한혜정 지음 / 사이행성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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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삶을 일구려 노력할 수록 삶이 파괴”되는 것 같은 느낌. 따뜻하고 넉넉하고 싶은 데 자꾸만 삐죽거리는 마음.

그만 두었다. 이미 많이 그만두었는 데, 또! 그만뒀다. 작은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사내정치(?)랄까, 아니 어쩔 수 없이 ‘을’의 위치에서 감당해야하는 감정노동이 점점 버거워지고 있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피곤해져서 잠들어버리기 일쑤였으니까.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기까지 내가 사회 부적응자인 것은 아닌가 백번을 자문해봤다. 아. 적응 못했구나. 그런데 더는 적응할 에너지가 없다...ㅜ_ㅜ

이젠 일이 없으면 꼼짝없이 반백수 상태에 놓이게 되는 말이 좋은 프리랜서다. 제발 올해는 아무 일이나 막 받지는 말자고 다짐은 하는데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때려치우고 나니 더 때려치우고 싶다. 그밖의 나를 둘러싼 여러가지들을 문제들로부터. 도망쳤나? 아니다. 적절한 때에 그만두는 것도 용기라고 동생이 말해주었다. 물론 겁은 난다... 나만 이 모양인건 아니겠지? 굶어 죽지는 않겠지? 이대로 혼자 외롭고 쓸쓸하게 늙어가진 않겠지? 지레 겁먹어서 하는 걱정과 불안들.

선망국의 시간을 다시 읽는다.

“(31) 지금, 조국 근대화 프로젝트 아래서 압살당한 기성세대나 고삐 풀린 자본이 명령하는 무한 경쟁 프로젝트에서 살아남은 젊은 세대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좀 다른 시간, 쉬어가는 시간,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족끼리도 서로의 존재가 ‘슬픔’이 되는 시간을 벗어나는 것, 서로에게 “그간 살아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불가능할까요? 제대로 생각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이제 모두 휴가를 떠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맞네. 조한혜정 선생님의 조언대로 쉼의 시간, 휴가다운 휴가를 나한테 선물하자. 아주 열심히 달려온 편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쉰 것도 아닌 것 같아서.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곧 제주로 떠난다. 비록 일주일이 채안되는 시간이지만, 그냥 - 그냥 인채로 여행이라는 걸 해보기로. 혼자 훌쩍~ 떠나보는 여행은 처음이니까. 한 이틀은 아주 아주 푹- 쉬고, 많이 걸으면서 자꾸 자책으로 빠지는 성찰이라는 것도 좀 더 긍정적으로 해보리라. 그리고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고. 위로와 격려도 받고.

부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걱정으로만 뒤척이던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라고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117) ‘근대의 미래’ 다음에 올 텅 빈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저항이 나/우리 스스로가 평화로워지는 유일한 길이기에 ‘자기애의 이름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멈추고 싶다. 회복되고 싶다. 이미 다 그만뒀지만 더더 많이 그만둬버리고 싶다.
그렇게 다 때려쳐도 나는 망하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알고 싶다.
그리고 진심으로 ‘걱정’이 아닌 ‘위로’를 건네고 싶다.
조건없고, 우러나오는 “수고했다”는 말을.
나 뿐만이 아닌 모두에게.


(104)
답답한 건 그런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충분히 이야기를 할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 시간을 못견디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본론을 말해봐"하는 사람이 하나 있으면 그 단위는 아무 가닥도 못잡은 채로 목소리 큰 사람에게 끌려다니다가 허탈하게 끝나고 맙니다.

(224)
나는 좋은 사회란 사람들 얼굴에 화기가 돌고 홀아버지가 아이 하나를 잘 키워내는 사회라 생각한다.

(238)
정치의 시작은 만남이다. 적대의 촛불은 소통과 상생의 촛불로 진화할 수 있을까?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고 만나는 것, 자백이 아니라 고백이 하고 싶어지는 자리, 도움을 청하고 의논하는 약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되는 것, 이것이 시민정치의 승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가면 좋겠다.

(244)
그는 섣부른 대안을 찾아 나서지 않고 파국 속에 던져지는 것, 현실의 고통과 비참을 마주하는 것, ‘무너지는 마음’을 바라볼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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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5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5년 넘게 일해오면서 일년 정도를 쉬었는데 그때도 정말 불안해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었네요.
뒤돌아보면 또 어떻게든 일을 하게 되어 있고 굶지는 않고 있으니 쉴 기회가 생겼을 때 잘 쉬어둘걸.. 그런 후회가 들더라구요.
쟝쟝님은 저같이 후회하지 않게 주어진 아니 선택한 재충전과 쉼의 시간 제대로 누리시길 바랄게요. ^^

2019-01-15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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