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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악인열전 - 교과서에선 볼 수 없는 부끄러운 역사
임종금 지음 / 피플파워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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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책의 구절이 있다. “이근안은 홀로 1970년대를 살지 않았다.”라는 말. “그는 재수 없게 걸렸고, 그 시대에 암묵적 동의를 보낸 자들은 지금 애국노인이 되어있지 않느냐”라는 물음과.

그 대목이 소름 끼쳤던 것은, 종종 ‘구조’의 문제라며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안팎의 모든 불의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구조 앞에 개인은 무력할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가 그 구조를 유지시키는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물론 이 책에 나온 인간들은 어쩔 수 없지 않았다. 해서는 안될 ‘짓’을 과하게 악랄하게 한 자들이다. 아마, 인류가 역사를 만든 이래 어느 시대에 떨궈 놓는다 해도 그들이 ‘선량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한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인간에게 총과 권력을 내어주며 1000명을 죽일 수 있게, 기름을 부으며 부추긴 자들은-. 맨 꼭대기의 더욱 악랄한 권력이었다.

"(p.33) 
김종원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 사람 목을 잘라 이웃 지휘관에게 '선물'하는 게 장난이었던 김종원, 그런 그가 불과 20대 후반의 나이에 거의 무차별적인 권한을 받았고, 그는 살육으로 그 권한에 응답했다. 그것은 결국 이승만과 권부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 땅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김종원과 같은 비정상적으로 날뛰는 존재가 꼭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p.69) 
평소 조선인에 대해 민족적 감정이 좋지 않았던 일본인들은 이 유언비어를 믿었고, 경찰과 함께 자경단을 꾸려 조선인 학살에 나섰다. 그 결과 최근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불과 4~5일 사이 무려 2만 3058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했다. 학살의 규모가 예상보다 커지자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일본 정부는 9월 5일부터 학살 수습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조선인들을 급조한 ‘수용소’에 격리시켜 일본 주민과 분리했으며, 시신 처리에 나섰다.
이때 눈치 빠른 박춘금이 상애회원을 이끌고 나타났다. 박춘금은 상애회원 1000여 명을 이끌고 일본 당국의 수습작업에 적극 동참했다. 일본으로서는 이처럼 반가운 일이 없었다.

(p.172) 
기분이 좋아진 이승만은 국무회의에서 “여러분들, 김창룡 대령을 자식처럼 사랑해 주세요”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우리는 일제 36년을 기억할 때, 몇몇의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리지만, 뒤집어보면 그 36년간 대다수는 침묵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 ‘부역’ 했을 것이다. ‘박정희 독재’ ‘이명박근혜 시대’도 마찬가지.

많은 텍스트들이 사회의 많은 불의들을 ‘구조적 문제였다’ 정도로 정리 하곤 한다. 하지만 ‘구조’에 책임을 돌리면 개개인의 선택-삶들은 간과하게 될 때가 많다. 그래서 각각의 개인들에 묻어나는 사회를 생각하고, 때로는 구조 속에서 나타난 전형적인 개인들을 탐구해보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다. 물론, 생각하는 일이 좀처럼 쉽지는 않다. 그러나 친일파는 이완용으로 독립운동가는 유관순으로 정리해 외우고 끝낸다면, 역사는 우리 삶에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p.5)

해서 많은 것들이 잊혔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이완용이라는 이름을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다 숨어버렸습니다. 해방 후 부당한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학살된 수많은 민중에 대해서도 '시대가 그랬다'는 막연한 논리로 덮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적 상황이 그랬다 치더라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근현대사의 악인들이 있습니다."

싸이코패스 치안국장 (지금의 경찰청장)-김종원, 자기 동네 가족몰살을 취미삼아 했던 지역구 국회의원-이협우, 동포를 착취해 일본에서 최초 조선인 국회의원이 되고 일본내 항일인사 30만명을 총살할 계획을 세웠던 박춘금, 항일인사들을 고문하고 뒤처리를 담당하다 해방후에는 김주열의 시신을 유기했던 박종표, 항일운동과 공산당원이던 전력을 무기삼아 만주의 항일세력을 토벌시킨 변절자 친일파 김동한 등.

어떻게 이런 인간이 있을 수 있지? 싶을 정도로 질나쁜 근현대사의 ‘악인’들을 기록했다. 쉽고 흥미롭게 읽힌다. 그런데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충격적일 수 있겠다. 너무 끔찍하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현실만 받아들인다고 한다. 이렇게 피칠갑을 한 역사가 우리 역사였어? 현실부정 하게 되거나, 대한민국의 경찰 조직, 군 기무사령부 등등이 싫어질 수도 있다. 이런 역사를 덮어 놓고- 아무일 없었던 척, 정상인척 살아온 숱한 한국인들의 뇌구조를 의심해보고 싶어진다.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 역사가 현재와 외따로 흘러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의한 시대는 그들을 내세워주고 잘살게 해주고, 심지어는 죽어서도 국립묘지에 안장해주었다.(김창룡)

적폐청산이라는 말이 입에 오르내린지 일년 정도가 흘렀다. 난 이명박근혜만이 적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소망... ‘발본색원’은 불가능 할지라도 몇가지 작업은 하자... 이를테면 국가기관들이 ‘대한민국 악인열전’에 수록되어 있는 수준의 인간들이 자신들의 역대 상관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까밝히고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국립묘지안장에서 파내고 그들에게 수여된 훈장을 대대로 회수하고 재산도 환수하는.....

하지만 아마 못할 거다. 국민 전체가 들고 일어나지 않는 한은. 대한민국의 ‘국가’기구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까. (오늘 기사보니까 국정원 개정안도 간첩운운하면서 자유당이 막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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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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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슬슬 불어오는 10월 하면 가을 전어가 아니라 10월 유신이 떠오른다ㅋㅋㅋ 유신과 관련된 책들 중 백미는 역시 홍구샘의 ˝유신˝인데, 박근혜 정권 한창 서슬 퍼렇던 2015년 무렵, 너무 적나라한 표지덕에 지하철 1호선에서 읽다가 어버이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 무서워 집어 넣은 기억이 있다. (사상의 자유는 커녕 독서의 자유도 없던 3년전 ㅠ)

바야흐로 하수상한 시절은 가고 지하철에서 꺼내 읽어도 무섭지 않은 시절이 왔다 ㅋㅋ

요새 자료 조사 차원에서 다시 읽는 중 인데, 시인 고은의 말대로 ˝정사와 야사의 변별을 뭉개버린 한홍구 특유의 생동의 역사서술˝이 탁월하다. 특히 책 중반의 여공애사는 다시봐도 눈물이 울컥울컥.


"(p. 166) 여공애사
장기간에 걸친 군사독재에서 1970년대처럼 노동운동 내에서의 성비가 여성 쪽으로 기울었던 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연구자들은 왜 여성들이 그토록 열심히 투쟁했는가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고 상당한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 이 자리에서 그 연구 성과를 검토하고 평가할 여유는 없지만, 나는 중요한 질문 하나가 빠져 있는 점이 늘 아쉬웠다. 모순이 존재할 때 사람들이 투쟁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970년대는 왜 여성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섰는가를 묻기보다는 왜 그때 남성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지 않았는가를 규명해야 한다.
여성 노동자들은 1970년대 내내 노동운동을 책임졌고, 대학생들조차 변변히 데모를 하지 못했던 유신의 마지막 순간 와이에이치(YH) 사건을 통해 철옹성 같던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는 단초를 열었다. 너무나 단단했기에 작은 충격도 흡수할 여지가 없어 깨져 버린 박정희 정권과는 반대로, 그 시절의 여성 노동자들은 한없이 약했기 때문에 오히려 무한히 강해질 수 있었다."


그러게 나도 언제나 비슷한것이 궁금했다. 이명박근혜시절 학생운동은 왜 여대들이 도맡아 하는지. 반값등록금, 국정교과서 문제, 언제나 집회의 현장에는 여대생들이 훨씬 많았다. (원래 학생운동권! 하면 남학생들의 이미지가 더 강한데 말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 국정원 대선개입과 세월호 사건에도 견고하던 박근혜 체제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위가 알려지는 순간 부터 겉잡을 수 없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

"(p.140) 장준하 의문사
시인 이광웅이 노래한 것처럼 이 땅에서 뭐든지 제대로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분단된 조국에서 통일을 위해 발 벗고 나서다는 것은 정녕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독재정권하에서 수많은 사법살인이 있었지만 민주주의만을 외쳤다고 죽이지는 않았다. 심지어 이승만을 저격했던 유시태나 김시현도 사형을 선고받지는 않았다. 그런데 통일을 외치면 꼭 죽였다. 조봉암이 죽었고, <민족일보> 조용수가 죽었고, 사회당의 최백근이 죽었고, 통혁당 사람들이 죽었고, 전략당 사람들이 죽었고, 뒤의 일이지만 인혁당과 남민전 사람들이 죽었다. 분단된 조국에서 참된 민족주의자의 길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다. "


친미 반공 청년 장준하도 결국엔 가닿을 수 밖에 없었던. 건드리지 말아야할 마지막 금기, 끝끝내 풀어야할 마지막 숙제, 지금도 목숨을 걸 만큼의 결단과 용기를 내야 말할 수 있는 그 주제.
통일 혹은 분단.
새 정부가 이 선명한 과제를 애둘러가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은 많은 의제들과 나란히 놓고 가야할 현대사의 가장 긴박한 주제 중 하나이다.

*

"(p.365-345) 남민전 사건
남민전 사건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이고 어쩌면 황당하기까지 했다. 남민전 전사들의 헌신성과 민주화운동 진영의 보통사람들이 느꼈던 황당함 사이의 거리는 인혁당 사형수 8명의 억울한 죽음을 엏게 받아들였느냐의 차이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 광주가 있기 5년 전, 인혁당 8명이 목숨을 빼앗겼을 때, ‘그들은 나일 수 있고 내가 그들일 수 있었다. 그들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일 수 있었다.(홍세화)‘고 생각한 사람들은 불행히도 많지 않았다. 인혁당은 그렇게 쓸쓸하게 죽었고, 남민전 전사들은 그만큼 더 돌출적으로 과격했다. 이재문은 전창일의 부인을 통해 인혁당 사형수 8명의 가족으로부터 가신 이들이 입었던 속옷을 모아 남민전의 깃발을 만들었다.
... 이재문은 1차 인혁당 관련자이고, 김병권은 해방전략당, 신향식은 통혁당 관련자였다. 꼭 그렇게 모으려 했던 것은 아니지만, 1960년대를 대표하는 전위조직 관련자들 중에서 탄압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 꼭 이런 처지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남민전이라는 지하 비합법 전위조직에 가담한 사람들은 혁명가로서 옳다고 생각한 일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었다. 목숨을 걸었다는 것만으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겠지만, 목숨을 걸어본 사람들의 행동을 가벼이 평가하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니다. 조직의 모든 기밀을 담은 문서보따리와 모든 증거물과 수배자들이 한꺼번에 털려버린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그 어두운 죽음의 시대를 치열하게 산 남민전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안도현의 짧은 시 한 구절을 한 번은 외어 보아야 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난 왜 이 문장을 공유하고 싶었을까.
미지근한 싸움은 참고, 제대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싶어했던 시인 ‘김남주‘가 몸담기도 했던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남부군 유격대 이후 최초로 무장혁명을 도모한 조직었다고도 하고, 남한 혁명의 전위조직에 대한 열망이 모인 조직이기도 했다한다. (그것이 진짜인지도 알수 없거니와 일망타진 되어 실현되지도 못했다.) 나 또한 처음에 남민전 이야기를 들었을 때, 뜨악 했었던 기억이 있다. 인혁당 사법살인에 대한 정서와 연결되었다는 것을 읽고 나니,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5월 광주학살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80년대 민주화운동도 더 제대로 볼 수 있듯, ㅡ 비슷하게 모두는 세월호와 지난해의 탄핵을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한다ㅡ
맥락. 인과관계, 혹은 그러하기까지.
그러니까, 누군가의 간절함을 절박한 투쟁의지를, 헌신적 삶의 방식을, 어느 순간 고루하다고 여겼던 - 연탄재 발로 차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들더라.

탄핵 이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위해 기꺼이 싸우는 사람들을, 그만큼 절박하게 실천으로 역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을, 고맙게 여길줄 아는 마음의 복원이 시급하다.

*

"(p. 439) 신유신의 밤
유신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는 이 난을 통해 많이 설명했지만, 충분히 다하지는 못했다. 먼저 유신시대는 죽음의 시대였다. 최종길, 장준하와 인혁당 관련자들만 희생된 게 아니었다. 유신시대는 군대에서 1년에 근 1500명이 죽던 시대였다. 유신시대 전체가 아니라 1년에 1500명의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죽어갔다. 유신 전체로 치면 1개 사단이 전쟁도 치르지 않았는데 전멸한 것이다. 아니, 전쟁 없이 죽었다기보다는 박정희가 민주주의를 상대로 치른 전쟁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이다. 민주화가 이룬 가장 중요한 성과는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는 것보다도 그 죽음의 행렬을 멈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년에 1500명의 젊은이가 소리 소문 없이 죽어나가도 입 한번 뻥끗할 수 없는 것이 유신시대였다."


한홍구는 이를 ‘민주화가 살린 목숨들‘이라고 표현했다. 민주화가 되서 나아진 것이 정말로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일년에 1500명이 죽던 유신시대를 1000명 좀 안되게 죽던 전두환 정권시대를. 우리는 군사독재라고 부른다고.
민주화 이행기를 거처 2000년대가 되면 군대내의 연내 사망자수는 100명 안팎으로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물론, 단 한 명도 죽어서는 안되므로 그에 만족할 수는 없지만. 확 줄어든 사망자 숫자표를 보면서, 아 그렇구나. 유신은 그런 것이었구나. 소름이 끼쳤다. 막연하던 군사 독재를 살짝 엿보고 온 느낌이랄까.

<어버이 연합>으로 대표되는 그 시절을 산 사람들의 다소 괴기한 사고방식을 아에 이해 못할 일은 아니구나 - 그렇다고 그들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싶었다. 말도 안되는 자가 통치하던 말도 안되던 시기. ˝군대에서 살아 나오는 것˝이 정말로 장-한 그런 시기. 그것이 군사독재였다.

*

"(p. 22-24) 유신의 몸과 광주의 마음을 가진 그대에게
그러나 유신시대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뼈대를 만든 시기다. 유신 체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민주화운동 세력조차 유신시대에 만들어진 사람들이었다. 1970~1980년대의 민주화운동 세력은 한마디로 유신의 몸과 광주의 마음을 가진 세대였다. 그들은 목이 터져라 자유와 민주를외쳤지만 정작 자유를 누려본 적도, 민주주의가 몸에 밸 기회도 갖지 못한 불행한 세대였다.
...
유신시대는 일제가 키워낸 식민지 청년들이 장년이 되어 사회를 운영해간 시기였다. 이 시기는 친일잔재 청산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 친일잔재를 청산하려던 세력이 거꾸로 친일파세력에게 역청산당한 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참혹하게 보여준 시기였다.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박정희를 사령관으로 하는 병영국가는 그가 청년기를 보낸 시절 만주국의 국방 체제나 일본의 총동원 체제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다. 황국신민으로 타어나 황국신민으로 자라난 ‘친일파’ 박정희의 진면목은 청년장교 시절보다도 만주국이나 쇼와유신의 실패한 모델을 다시 살려낸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
누군가에게 박정희는 ‘아, 박정희!’이지만,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악, 박정희!’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1970년대는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시작되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 1970년대는 평화시장에서 타오른 전태일의 불길로 시작된다. 평화시장이라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세월을 보냈어도 사장의 역사와 시다의 역사가 쉽게 하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

 
쏟아지는 지금의 뉴스들에 허우적 거리다 보면, 세상이 왜이렇게 망해가나 망연자실할 때가 있다. 그럴 때, 홍구 샘 책을 보면 용기가 생긴다. 그래도 이만큼 이겨왔구나. 아, 누군가는 감사하게도 저렇게 싸워왔구나. 갈길이 멀지만 그래도 힘내야겠다.

그러고보니 당면한 투쟁이 벅차 바로 앞의 변화에 조급해 불안한 맘이 들 때, 한국의 근현대사 공부만한 안정제가 없었던 것 같다. 거창할 필요 없이 지금의 싸움을 잘 싸우는 것이 가장 역사적으로 사는 방법이란 걸.

요새 역사 책 많이 읽었더니 마음이 좀 느긋해졌다. 현실이 너무 바빠 현실감각이 떨어질 땐, 역사책 추천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는 것 처럼 내가 딛고 있는 땅의 큰 그림이 훤히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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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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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회과학 서적은 앙상하다. 나는 개념으로 짜여 진 그 앙상한 느낌을 좋아한다. 저자 엄기호씨의 책은 사회과학 서적인데도 앙상하지 않다. 그의 글에는 촉감이 느껴진다. 살아있는 것 같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사례가, 그의 시선이 얽혀들어 분석되는 세상이 그렇다. 그는 학문과 생활이 따로 떨어져있지 않은 학자일 것이라 추측해본다. 이런 ‘지식인’이 아직있다는 것은 ‘위로’되는 일이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위로’를 가까스로 ‘박민규의 소설’에서 받았다는 본문 속 어느 학생의 예시처럼. 나는 그의 글에서 요즘 좀처럼 만나기 힘든 위로를 받았고 가능성을 보았다.

이 책은 촛불이 일어나기 전­ - 그러니까 박근혜정권의 통치 하에서 기획되고 집필되었을 것이다. 아주 먼 옛날의 일 같지만,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이야기다. 그 때의 우리는 암담했고, 무력했다. ‘싸그리 망해버려라‘ 많은 사람들의 정념을 엄기호는 ‘리셋‘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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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망치는 것이건 창조하는 것이건, 그 힘으로부터 배제되어 자신은 그저 무기력하게 자기 자리에 앉아있기만 한다고 느끼는 세상이다. 이런 근원적인 무기력감은 세계를 다루고 싶은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그 방식은 가난과 전쟁의 폐허에서 나라를 다시 만드는 ‘재건‘이 아니다. 그렇게 재건한 국가가 부정의하고 불평등하기에 체제의 전환을 꿈꾸는 ‘변혁‘도 아니다.
세계 자체를 원점으로 날려버리려는 ‘리셋 reset‘인 것이다. … 그것이 현실적이어서가 아니라 유일하게 상상가능 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바꿀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아예 현실을 날려버리는 것만이 유일하고 ‘즐거운’ 상상이 된다. … 이렇듯 가장 허무주의적인 것만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이미 그 사회의 다른 모든 가능성이 봉쇄되었다는 뜻이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에 기인한 ‘과격한 무기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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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출간되지 마자 읽기 시작했고, 한번은 통독, 한번은 정리 분석하며 읽었고, 이 책만큼은 늦게라도 서평을 써야겠다 싶어 다시 읽었다. 처음에는 한국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여러 인간의 유형 분석에 공감했고, 두 번째 읽을 때는 우리사회에 남은 가능성에 대해 곱씹었고(그 때는 촛불 직후였으므로)- 세 번째 읽고 난 지금은 리셋만큼이나 아득한 과제들이 겁이 난다.

불가능할 것 같은 정권교체를 이뤄낸 이 후에도, 나를 둘러싼 존재들의 배열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저건 아니지 싶은 것이 박근혜에서 김기춘에 대한 판결로, 여혐살인으로, 장군 부인의 갑질로 바뀐것 외에는. 여전히 나의 하루는 기운이 없고, 생계는 언제나 위태로우며, 일상은 벌여놓은 일로 가득차 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리셋‘만큼이나 과격한 변화를 원했던 것은 - 거대한 세상을 포함한 나 자신의 일상이 변화하길 바랬기 때문이리라. 아직 변화가 부족했다면, 남은 에너지를 그러모아 ‘다음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것일 게다. 다음의 싸움은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저자의 말대로 다시 ‘존엄‘과 ‘안전‘을 위한 투쟁, 그리고 투표소만을 넘어 모든 곳에서의 민주주의, 일상에서의 ‘존중‘과 ‘협력‘을 위한 각자의 결단과 노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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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6)
인간의 존엄이란 생물학적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의 존엄을 넘어 사회적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의 존엄을 의미한다. 사회적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의 존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른 이의 삶을 내 삶의 동반자로 여긴다는 말이다. 그의 존엄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를 삶의 동반자로서, 공동세계의 일원으로서 존중한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그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나와 함께 공동세계를 짓고 있는 그의 활동, 그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말이 된다. 그의 말을 묵살하고, 그의 활동을 파괴하는 것이야말로 ‘사이로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에서의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파괴행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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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중학교 윤리 교과서 이후로는 들춰보지 않았을 - 평등, 존엄, 협력 과 같은- 우리가 다시 되짚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개념‘들을 꺼내어 현실과 대입하며 친절하게 서술하고 있다. ‘방귀보다 못한 말‘만 듣고 보다 ‘개념의 핵‘이 명징한 말들을 읽다보니 고개가 끄덕여지고 생각할 것이 많아졌다. 막연히 걱정이 되었던 촛불 이후의 투쟁- 불투명했던 다음 싸움의 과제들도, 책이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어서 덮고 나니 무언가를 마음먹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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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11-214)
1987년의 민주주의는 군사독재를 끝내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삶의 민주화에는 실패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교복 입은 동료시민’이기보다는 여전히 ‘잡아야 하는’ 학생이었다. 여성들은 사회 진출을 보장받은 것처럼 보였지만 경제 위기 국면에서는 여전히 가장 먼저 해고를 당했다. 학교와 가정, 공장과 사무실, 우리의 일상 공간 앞에서 1987년의 민주주의는 멈췄다.

민주주의가 멈춘 곳에서 혐오와 폭력, 차별이 독버섯처럼 자랐다. 투표소에서만 평등한 사회에서 사람들의 존엄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성폭력, 비정규직 노동자를 노예처럼 부려먹고 한계 너머로 밀어붙이는 노동 착취, 끊임없이 모욕을 강요당하는 소위 갑질과 감정노동 등. 이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을 평등한 동료 시민으로 대하지 않는 민주화의 실패를 뼈저리게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하는 지점이 여기다. 우리가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투표소에 표를 찍으러 갈 때만 ‘동료 시민’인 것이 아니다. 대의제 앞에서 멈춰버린 민주주의를 그 너머로 밀어붙여야 한다. 왕을 뽑고 그 왕에게 우리의 권리를 위임한 뒤 다시 삶의 자리에서는 노예로 내려오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차라리 왕의 머리를 잘라버림으로써 왕의 부재 이후 발생하는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주의다.

... 그러므로 박수는 일종의 서약이다. 내가 앞으로도 당신들의 말을 말로 인정하고 경청하겠다는 서약이 바로 박수다. 그 자리에서 청소년의 말이 들을 만하다고 박수를 친 사람이라면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길거리에서도 그들의 말을 역시 들을 만한 말로 대해야 한다. 그들을 ‘그날만’ 단지 동원의 대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므로 박수를 친 자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앞으로도 내가 그들을 동료 시민으로 대할 것인지 아닌지 말이다.

만일 아니라면 그들을 동원의 대상, 즉 ‘쪽수’로만 여겼다는 것을 고백해야만 한다. 100만이라는 숫자를 채우는 하나의 ‘점’으로만 여겼다고 말이다. 내가 ‘점’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민주주의지만 상대가 나를 ‘점’으로 여기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파괴다. 민주주의는 동료 시민을 동원의 대상으로 여기는 순간부터 파괴되고 부패된다. 그것이 1987년 이후의 민주화가 우리에게 남긴 뼈아픈 교훈이다.

... 나는 우리 사회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협력과 존엄. 광장에서 점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기꺼이 점으로 협력하자. 그러나 광장에서 나란히 점으로 있던 다른 이의 얼굴을 기억하자. 그 얼굴이 가진 나와 평등한 존엄, 나와 평등한 목소리의 힘을 기억하자. 삶의 전 영역에 드리워진 히드라처럼 증식하는 왕의 목을 치자. 만약 내가 왕이라면 기꺼이 내 목을 치자. 그래서 삶의 전 영역에서 ‘동료 시민’으로 서로 만나자. 민주주의가 실패한 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_

*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는 세번 다 울컥했다.
실패한 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믿어야 한다‘는 저자의 목소리가 구원 같았고, 힘을 주었다. 사실, 변화의 시간을 감각하는 속도가 너무 짧아서 도저히 ‘역사’가 가능한 것 같지 않은 우리 세대에게,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그의 요청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저자는 ‘시간을 이기고 변화를 보라’지만, 좀 더 긴- 시간 감각을 갖는 다는 것이 어떤 말인지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철저히 파편화된 세계,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휘발되어버리는 SNS속 숱한 정보의 폭격 속에서 일상이 너무 피로하기도 하고. 사실 무엇보다 ‘평등과 존엄-존중‘이라는 관계에 대해 ‘원‘체험이 애초에 없기 때문에. 살아보지 않아봐서 살 수가 없는.

하지만 알고 있다. - 이 책이 주문하는 것은, 비록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결단을 해야한다는 것.
내가 왕이라면 기꺼이 내 목을 치자. 엄기호씨가 요청하는 것은 그러한 결단이고, 나는 오랫동안 그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기다려왔는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제서야 들리는 것일지도) 과연 나는 응답할 용기가 있는가? 꾸물꾸물 8개월이~~ 지나서야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잊어버리지나 말자 싶어서.

서평을 쓰면서 저자의 다음 책인 <공부공부>를 주문했다. 이 책에서 던진 과제들을 이행하는 데 개인이 어떤 노력을 기울 일 수 있는 가에 대한 대답을 주는 책이면 좋겠다.



p. 5-10
나를 포함해 역사를 믿는다고 말하는 내 주변사람들을 보면 이들의 감정상태는 ‘조울증‘에 가깝다. 역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이 보이면 몹시 환호하고 열광한다. 그러다 다시 그 역사가 뒤로가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 끝없이 절망한다. 자기가 역사의 주인 이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역사의 변덕에 따라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끌려다닌다... 우리는 광장의 조증과 삶의 울증을 반복하고 있다. 삶의 울증이 심각할수록 현장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광장의 조증을 갈망한다.... 역사를 믿는다는 것은 이 조울증에서 벗어나 평상심을 회복하는 일이다. 절망보다 좀 더 긴 시간 감각을 가지고 삶의 현장을 보는 것, 광장의 찰나에 흥분하기 보다 좀 더 긴 시간감각을 가지고 광장을 보는 것, 이것이 역사를 믿는 사람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

p. 49
만능감에 젖은 존재가 모든 것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책하는 주체는 반대로 모든 것을 자기의 책임으로 돌린다. 유능한 신은 벌하고 무능한 신은 후회한다. 이 두주체에게는 도무지 ‘바깥‘이라는 것이 없다. 결국 모든 것을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를 자책하는 주체는 모든 것을 자기의 탓으로 돌린다.

p. ​27
첫 번째로 냉소다. ... 실패가 당연하다고 생각할 때 상처를 덜 받는다. 냉소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겠다는 단단한 결심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냉소하는 사람들일수록 다른 사람들에게는 냉소를 통해 큰 상처를 준다는 점이다... 이들의 냉소는 협력에 대한 거부다.. 냉소적 주체는 그저 ‘잉여’가 아니라 공동세계를 파괴하는 괴물이기도 한 셈이다.

p. 32-33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우리가 터득해야 했던 것이 내가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기술‘이었다면, 지금 현재 우리가 터득하고 있는 것은 외면을 넘어 ‘타자-세계를 파괴하는 기술‘이다. ... 자기만 사랑하라는 명령에 따라 살지만 자기가 될 수 없는 시대다. 자기(가 되고자 하는 것)에 대한 꿈이 무너지며 나타나는 이 무기력이 증오가 되어 타자와 세계를 파괴한다. 이 시대에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이 타자와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p.115
모욕과 무시가 만연하다보니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 존중의 경험이 없는 사회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무관심‘과 ‘무기력‘은 생존 전략이자 윤리적 선택이다. ... 왜이렇게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우리는 살아오면서 끔찍할 정도로 존중받아본 적이 없다. ... 존중에 대한 ‘원체험‘이 없다보니 무시를 당했을 때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도 잘 모른다. 재수 없다고 생각하고 세상이 원래 그렇다고 체념하면서 분노할 뿐이다. 대신 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앞서말한 ‘소비자‘ 혹은 자신이 가진 조그마한 권력으로 온갖 방식을 동원해서 위세를 부리는 ‘갑질‘이다. ... 당연히 그것은 자신이 만나는 노동자의 존엄을 짓밟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p.209
돈을 주고 그 내용과 흐름을 소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어떤 기술도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이 놀이가 재밌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소비라로서의 평가만 가능하다. 어렸을 때부터 새로운 제안을 하는 협력의 기술이 아닌 평가, 즉 품형하는 기술만 늘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비자는 제안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대의 제안에 품평하는 존재다. 제안과 관련해서 그는 완전히 무능하다.
그러므로 폐허가 되다시피한 이 사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똑똑한 소비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상대의 말을 새로운 제안으로 돌려줄줄 아는 ‘협력의 기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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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존엄 사이 -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를 만나다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9
은유 지음, 지금여기에 기획 / 오월의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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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분의 조작간첩사건의 피해자들의 증언을 묶은 책입니다.

 

하고 있는 일과도 관련이 있고, 최근에 좋아하게 된 작가 은유가 지은이라 집어 들었습니다. 막상 펼쳐보니, 책을 기획한 <지금여기에>를 제가 알고 있더라구요. 심지어 사무실에 가서 소소한 활동을 함께 한 적도 있었고책에 아는 이름이 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간첩으로 몰려 국가에 의해 삶을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왜 몰렸냐구요? 지은이가 내린 결론은 그래도 되니까, 그렇게 한 것이다입니다. 단순하고 허망하지만 그게 진짜 이유가 맞더군요.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는 간첩이 필요했고, 그런 국가에서 출세하기 위해 이근안과 같은 자들은 간첩을 만들어 냈습니다.

 

조작간첩에도 트랜드가 있습니다. 글을 모르는 납북어부, 한국말이 서툰 재일동포. 최근에는 신변을 보호해주거나 변호사를 구하는 방법도 모르는 탈북자들을 간첩으로 만드려다 국정원의 거짓말이 들통나 망신을 당했었죠.

 

이들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조작하기 쉬운 사람들. 국가의 거짓말에 항변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 자신을 온전하게 보호할 수 없는 사람들. 그리하여 조작이 성공할 수 있는 사람들. 우리가 대표적으로 알고 있는 이근안은 그런 사람들의 냄새를 맡는데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P. 115

눈물을 흘려서 한강수 되고 한숨을 쉬어서 동남풍 된다고이근안이 그 작자가 우리한테 한 짓 때문에 너무 많이 울었어요생선 팔 때도 울고 생선 판 돈으로 보리나 쌀 사서 집에 들어갈 때도 울고집에서는 울지도 못하죠내가 울면 애들이 타닥타닥 우니까 집에서 울지 못해.

이근안이 키도 크지 않고 뚱뚱해요몸도 좋아요그 작자가 우리 아바이우리 어머니나에게 한 생각만 하면 지금도 심장이 벌렁벌렁 뛰어나도 우리 아바이 처럼 글을 몰라요은행에 갈 때도 다른 가족을 데리고 가는데 … 덜컥 도장 찍어준 걸 생각하면.

아바이 잡혀간 지 열흘 쯤 됐나그 작자가 집으로 찾아와서 서류뭉치를 내밀고 이 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3일안에 남편이 나온다그래요이 서류가 뭐냐고 물어보니까 변호사를 사는 서류래요. ‘안심하고 찍어라그러면 남편이 3일안에 온다.’ 또 그러는 거예요저랑 시어머니는 그 말만 믿고 덜컥 찍었죠… 나중에 재판할 때 보니까 그 서류가 아바이가 간첩을 만났다는 내용이었어요우리 아바이가 간첩이라고 내가 증인을 섰대요그 사실을 알자마자 시어머니랑 저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했어요.”

 배운 사람들 하는 짓 보고 못 배운 걸 한탄하지 않았다김흥수


*


인터뷰 속 피해자들은 ?’를 따져 묻습니다. ‘왜 나일까?’였던 질문은 내가 뭘 잘못했을까?’라는 반성 섞인 질문으로 변합니다. 그때, 간절하게 점수를 올려달라던 학생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았던 것을 잘못했구나, 혹시 내 먼먼 조상이 죄를 지었던 것은 아닐까.

   

P.170

어느 순간에는 우리 조상이 사람들을 거느리고 살았다면 살면서 죄를 지은 게 있었겠다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어요나는 후손으로서 이 시점에서 죄를 가혹하게 받나보다.”

자기 생각없인 못사는 사람 꼭 지켜주고 싶었다이정미 심진구


*


이근안치들이 맞춤한 간첩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그렇게 해도 되는(별탈없는)” 사람들인게 맞습니다만,  정말 그들은 그렇게 다뤄도 되는 사람들이 맞았던 걸까요?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들의 증언 곳곳에는 폭력으로 짓누를 수 없는 어떤 것 -그것이, 존엄 일지도 모르겠습니다-이 묻어납니다. 통찰, 반성, 꿋꿋함 그리고 노동.



납북어부 간첩조작사건, 김흥수 오음전 부부



몇몇 대목에서 슬픔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피해자들이 지닌 선량함 때문입니다. “죽기전에 큰 배를 빌려서 자신이 모는 배에 아내를 태워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 글을 몰라 간첩이 된 납북어부의 소박한 소망에서 울컥했고, 그들의 소망 만큼이나 순박하고 따뜻한 부부의 사진 속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P. 220

드디어 연락이 닿았고 광주역에서 만났다열아홉 살이 된 아들을 그는 바로 알아봤다광주에서 3일을 같이 지내고 헤어질 때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내가 아버지한테 해줄 건 다 했고아버지 내하고 인연 끊읍시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가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버지는 내 인생에 아무 도움이 안됩니다.”

얘가 경찰 시험에 필기 까지 합격했는데 면접에서 떨어진 거지필기도 붙고 만능 스포츠맨이고 떨어질 이유가 없어단지 아버지가 간첩이라는 이유로 그런 거야나한테 그래놓고 올라가서 한 달 도 안돼서 한강에서 투신자살한 거야애가 그렇게 죽은 것도 나는 몰랐어요. 4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풍문으로 들었어요.”

― 열네 살 납북어부 억울해서 공부하고 돈 벌어 남주다김용태



마지막 인터뷰. 짓지 않은 죄로 아들마저 먼저 보내고, 아들 삼아 키운 남의 자식들에게는 돈을 떼이고, 재심무죄판결로 받은 보상금을 손가락질 하던 형제들에게 다 갈라줘 버리고, 술을 안 먹으면 잠이 안 온다던 김용태씨의 이야기는 많이 먹먹했습니다.

 

내 것 없이 다줘도 돌려주지 않던 세상과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상에 돌려주기 위해 장학재단을 차리겠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더는 사람을 못믿겠다고 했으면서도요.

 

무엇 때문에?

오후의 시청 벤치에 앉아,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는 간첩조작의 피해자로만 남고 싶지 않은 것 같습니다. 타인의 연민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은듯 했습니다. 그가 남은 삶을 잘 살아내서 자신을 배신한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것은 책의 기획의도처럼 힘과 용기 혹은 희망, 그 비스무레한 것이 아닐까 하고.

   

P.8

모든 폭력이 발생하는 원리가 그렇듯이 가해자는 그래도 되니까조작한 것이고피해자는 그래도 되는 사람들이니까 조작대상이 됐다.


*


그래도 되니까 했다라는 가해자의 논리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이근안 나쁜놈, 안기부 개자식들, 이것이 국가라고?”하면서 미워하고 이를 갈고 욕하는 것으로 -금새 휘발되는 즉자적 분노로-만 세상의 많은 서사들을 대해서는 안되겠다 싶어졌습니다. 부지불식간에 그래도 되니까저질렀던 많은 것들이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존재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겨왔을지. 사실 저는 그 문장 앞에서 섬뜩했습니다. 무감각하게 살아간다면 나 또한 언제든지 가해자가 될 수 있겠구나. 내안에 있는 폭력을 경계하는 것.

 

덧붙여, 간첩조작 피해자들의 한 많은 사연을 안타깝게만 슬프게만 읽지 않기 바랍니다. 그분들이 잔혹한 고문과 사회의 외면에도 망가지지 않으려 애쓰며 기어이 살아온 것이야 말로, 세상에는 그렇게 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라는 증거일 테니까요. 책 제목 폭력과 존엄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삶이지 않을까요?

P. 7
국가라는 추상적 실체가 폭군처럼 들이닥칠 때 일상은 어떻게 파괴되는가. 그 폐허 위에서또 다가오는 하루를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는가. 망가진 일상을 복구하는 힘은 무엇인가. ‘왜 하필 나일까’라는 물음의 도돌이표를 어떻게 안고 사는가.

P.11
끊어진 용수철처럼 자주 주저앉곤 했지만 내겐 그럴 권리가 없었다. 세상의 악에 대한 무지는 나의 게으름 일 뿐, 그 엄연한 시간을 살아낸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P.11
끊어진 용수철처럼 자주 주저앉곤 했지만 내겐 그럴 권리가 없었다. 세상의 악에 대한 무지는 나의 게으름 일 뿐, 그 엄연한 시간을 살아낸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P. 85
문학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아주 특별한 것, 자연적인 것, 어두운 것, 낡아버린 것, 빠져드는 것, 아슬아슬한 것임을 소녀 순애는 마음으로 느꼈다. 설명할 순 없지만 울컥한 것, 불안하지만 설레는 것, 외롭지만 고고한 것을 이야기하는 문학에 빠져들었다. 그건 어쩌면 너무도 일찍 자신에게 닥친 상실과 떠돎을 체험한 탓에 생긴 끌림인지도 모른다.

P.139
백살일비.
양민 백을 죽이면 그 중에 게릴라 한명이 끼어있을 것이고 양민 이삼만을 죽이면 이삼백의 게릴라는 완전히 소탕될 것이라 했던, 그리하여 수만의 양민이 희생되고 마을이 송두리째 불탔던 핏빛 낭자한 사건. … 생과 사는 우연에 맡겨졌다.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4·3의 상흔을 숙명처럼 안고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갈 방법을 도모해야했다.

P.153
책, 산, 바다, 사람, 그리고 말하기. 그의 일상 복귀를 도와준 것들의 목록이다. 특히 그는 말 할 대상이 절실했다. 자신의 죄 없음, 억울함, 막막함, 허무함, 살 만함, 감사함 같은 감정의 치밈과 요동을 터 놓아야했다. 답답했으니까. 그리고 한 존재가 말하기 위해서는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말할 권리는 그래서 곧 들릴 권리이기도 한 것이다.

P. 188
“우리 큰 딸 하는 말, 아빠는 항상 연구하고 어디서 남들을 가르치는 게 성격에 맞는 거 였는데 그게 너무 안 되니깐 도저히 이 세계에서 살 수가 없었다고, 만약에 아빠가 다시 태어난다면 이 생애에서 자기가 쌓아올린 학문을 갖고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거예요. … 그 사람의 논리나 설교를 들으면서 와, 이 비싼 강의를 내가 듣는 구나했죠. 어떤 때는 내가 키우는 강아지가 있어요, 강아지하고 둘이 들을 때가 있어요. 아이들은 학교생활로 바빠서 나가고. 그럼 강아지도 경청을 했어요. 정말이에요, 들어요.”

P. 222
“이상하게 술을 안 먹고 나면 가슴이 허전해. 이쪽이 하나 없는 거 같고. 가끔 그런 게 있어요. 그동안에 참 마음고생도 많이 했고 사람들한테 배신도 많이 당했고. 이 사람은 내가 이만큼을 주면, 내가 열 개를 주면 최소한 열 개는 몰라도 한 다섯 개는 줄 것이다. 이랬는데, 보니깐 사람이 안 그렇더라고요. 이 사람한테 더 이상 나올 게 없다 싶으니까 돌아서는 게 인간이더라고. 그래 이제 내가 사람을 안 믿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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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7-28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견디기 힘들어하는 감정이 ‘억울함‘ 인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책을 잘 못 읽어요..

공쟝쟝 2017-07-28 18:22   좋아요 0 | URL
억울하기만 하지는 않았어요. 너무 억울한 사연이지만 딛고 일어서는 모습에서 피해자들이 피해자로만 읽히지 않더군요. 오히려 존엄이 읽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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