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본토에서는 부모의 자녀살해 후 자살사건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중국의) 유교 가부장제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뜨거운 혁명을 성공해보았느냐?

이 책은 너무너무 강추하고 싶어 게으름을 이겨내고 꼭 독후감을 쓰리라 다짐하고 있는 책이지만, 이 페이지만큼은 특별하여 박제해 둔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같이 죽는 것을 “동반자살”이라는 아름다운 용어로 포장하는 문화는 유교+가부장제+자본주의(핵가족화)가 융합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 일본, 대만, 홍콩에서는 나타나지만 중국에서는 거의 없다고. 왜? (사진으로 찍은 부분을 읽어보면 알 수있다) 

유교모국 중국의 부모들이 자식을 독립적 인격으로 대하며 '소유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은 생각할 거리를 많아지게 한다. 혁명 혹은 사회주의적 제도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다. 같은 유교윤리라도 작용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거지. 반면 한국은 사회가 감당해야할 몫 까지도 오로지 가족이 감당해왔다.

*

Imf-신자유주의가 가장 심각하게 데미지를 입힌 것은 전라도도 노동계급도 아닌 “가족”이라 생각한다.
요즈음의 비혼도 페미니즘도 세대갈등도 뿌리는 그에서 기인하지 싶다. (나포함) 가장 친밀한 가족 관계에서 만들어진 상처라면, 그것을 바꾸는 것보다는 거부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인 거다. 하여 한국의 비정상적인 가족문화에 대한 심각한 분석과 비판없이, 왜 어른을 공경하지 않느냐, 왜 부모를 미워하느냐, 왜 결혼을 나쁘게만 보느냐 라고 묻는 것은 허망한 질책이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관계는 공포고 가족은 상처다. 

다행이(?) 나는 상처와 함께 사랑받는 기억도 있다. 양가적인 감정이 공존하기 때문에 버릴수도 무턱대고 믿을 수 만도 없다. 생선가시 발라내듯 섬세하게 나와 가족을 사랑하고 가꾸는 방법을 찾을 수 밖에.
개인적 삶은 그렇게 꾸려야겠지만, 사회는 답을 마련해야 한다. 가족구성원들이 과도하게 헌신하며 감당해온 안전망을 사회가 담보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천천히 멸망할 것이다.

*

386은 독재를 걷어내고 민주화를 가져온 후 신자유주의에 투항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민주화는 아름답기만한 용어는 아니다. (노파심에서.. 저 일베아님요)

87년과는 다른 중국의 49년과는 또 다른 모습의 혁명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것이 어떤 형태일까.
나는 피하지 않고 싶다. 우리는 우리대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당사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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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잔혹사 - 한국 현대사의 가려진 이름들
홍석률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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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근현대사 책 중에 가장 재밌게 읽었던 책.
내일이면 4·19다. 4·19는 보통 ‘학생의거’로 불릴 만큼 학생들의 희생이 도드라진 항쟁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역사의 한 단면. 사실 마산 앞바다에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을 때, 가장 먼저 분개하고 모여들어 행동한 사람들은 우리의 어머니-중년여성-들이었다.


“현장에 있던 미국 공보원 지부장은 민주당 당사 주변에 모여있는 군중들 중에는 학생만이 아니라 ‘아주 다양한 범위의 시민’들이 있었고, ‘여기에 참여한 중년 여성들의 숫자와 열기degree에 특별히 충격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p.200)”
“그런데 4월 혁명 직후 출간된 책들을 보면 2차 마산항쟁에서 여성들이 인상적인 역할을 했다고 언급한 경우가 거의 없다. 김주열의 시신을 보고 중년 여성들이 분개했고, 시위가 시작되자 ‘부녀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 뒤를 뒤따랐다.’라는 언급정도가 있다.(p.201)”


저자 홍석률은 한 장의 사진 (4월 혁명 당시 할머니들의 데모장면)으로부터 시작해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구석자리에, 아주 작게,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듯이 서술된 여성들의 행적 (p.191)”을 찾는다. 아직 서슬퍼런 한국전쟁시기 학살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1960년 “리대통령 물러가라”는 직접적인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행진한 최초의 이들은 이 마산의 할머니들이었다.

“할머니 시위대가 마산경찰서 앞에 이르렀을 때 <동아일보>보도로는 약3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할머니들은 경찰과 몸싸움까지 하며 경찰서 안으로 밀려들어가 ‘고문경찰 잡아내라’‘살인경관 잡아내라’라고 외쳤다. 당시 새로 부임한 경찰서장이 할머니들을 만류하느라 눈물까지 흘리며 쩔쩔 맸다고 한다.… 마산의 할머니들이 경찰서 정문 앞에서 몸싸움을 하던 무렵인 4월 25일 오후 3시경 서울 시내 대학교수들이 당시 동숭동에 있는 서울대 교수회관에 모여들었다. 교수들은 이날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는데… 교수단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에는 “전국 각 대학교수단–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라고 적혀있었다. 이승만 퇴진구호는 여기에 없었다. 교수단 시위대가 거리로 나오자 시민들이 급속이 몰려들면서 “이승만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날 서울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다시 발생했다.(p.213)”

그렇다면 왜 한국 민주화의 역사 속에서 여성들의 투쟁은 지워지고 종종 축소되었을까?

“일단 여성들은 원천적으로 기록에서 배제된다. 어떤 일이 벌어진 후에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경과하여 작성된 기록들은 이른바 원천적인 기록(1차 기록 또는 당대의 기록), 즉 사건 발행 후 아주 가까운 시점에서 작성된 기록을 바탕으로 그것을 선별하여 작성된다. 이러한 선택에 당연히 권력관계가 작용한다. 주변부 인물들의 기록은 어렵게 기록되어 있어도 선별되지 않는다. 부차적이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도 있는데, 사건이 진행되어 어떤 결과가 발생하면, 그 결과를 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거나, 그러했다고 주장하거나, 그렇게 인정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사실을 기록하고, 나머지 사람들의 활동은 부차화, 주변화 시킨다. 그러다 보니 여성을 비롯한 주변부의 인물들은 또 지워진다. (p.202)”

역사를 서술하는 이도, 항쟁을 통해 권력을 잡은이도 ‘남성’인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에. 의도적 누락이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자기중심성이라고 할까. 그러나 이러한 역사서술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면, 역사발 전의 유의미한 주체였던 다수의 사람들의 힘이 지워져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것은 기록되지 못한 이들이 자신의 힘을 믿지 못하게 함으로써 향후 역사발전 가능성마저 봉쇄한다는 데 있어, 어쩌면 악의적이다.

“주변부에 위치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기록되지 못하고 기억되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다수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저변의 잠재적 역량이, 결코 엘리트에 비해뒤지지 않는 다수의 역량이, 이 사회에서 발휘되지 못하거나, 발휘된다 하더라도 제대로 평가받기는커녕 관심조차 끌지 못하며 가려지고 지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주변부의 약자를 기록하지 않는 역사는 다수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 역량을 실현할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고 차별과 무시 속에서 소진시켜버린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역사발전의 가능성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제약하는 것이다.(p.220)”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적히지 않은 역사들의 ‘행간’을 추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석률은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을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서술에서 부차화·주변화되면서 결국 “선거”때를 제외하고는 잘 보이지 않게 된 것이 현재 민주주의의 가장 잔혹한 측면이라며 책의 제목을 “민주주의잔혹사”라고 지었다.

마산의 할머니시위를 비롯해 최초의 민주노조였던 동일방직여성들의 투쟁 (그녀들에게 왜 하필 투척한 것이 ‘똥’이었는지), 빈민에 대한 탄압이자 ‘비국민’으로 간주되며 기본적인 인권도 없이 ‘청소‘당한 삼청교육대의 피해자들의 목소리 등 한국현대사의 기록되지 않은 역사들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부분은 힘이 없어서 적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너무 커서 적히지 않는 역사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정말 가려진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불균등할 수밖에 없는 한미동맹의 구조, 그리고 그 구조에서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력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강한 영향력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힘이 작용할 때 사람들은 이를 불가피한 것으로 수용하거나 순응하여 여기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도, 정면으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강하고 구조적인 힘이 작용한 부분은 역사 속에서 보이지 않거나 모호해지고, 소략해진다.(p.170)”

5·16쿠데타의 형식적 명분이었던 “정군운동”의 주체들의 시대인식을 꼬집는 부분인데, 장면내각에 대해서는 반발하려 했던 이들이 그 구조가 가능하게 하는 압도적인 힘-비대칭적 한미동맹관계 규정력-에는 오히려 철저히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 지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힘’으로 인식조차 못할 정도의 ‘압도적인 힘’에 대해서도 당대의 역사가(혹은 엘리트)들은 필연인 것처럼 상정해 버려, 서술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꼭 역사만이 그럴까? 우리는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나?
박근혜는 옥살이를 해도 이재용은 풀려난다.
북핵에는 개거품을 물면서도 전세계에 가장 많은 핵을 보유한 미국의 핵에는 분노하지 않는다.
상업주의와 물신주의는 비아냥거리지만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미투를 지지하고 성폭력에는 욕을 하지만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너의 잘못을 문제 삼으면서 잘못이 가능하게 하는 구조는 문제 삼지않고,
구조는 문제 삼으면서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하다.

가까운 것은 너무 가까워서
먼 것은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잘 본다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
역사를 읽는 다는 것. 역사의 행간을 읽는 다는 것.

우리들의 읽고 보는 능력이 조금은 더 평등해져야지, 민주주의의 ‘잔혹함’이 조금 덜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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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간 젊은 영혼들의 기록
황광우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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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6월 항쟁 관련 자료를 찾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시인 윤동주의 <사랑스런 추억>의 마지막 구절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도 너무 사랑하거니와 학부시절에 즐겁게 읽었던 <철학콘서트>의 저자 황광우씨가 쓴 활동가 시절의 기록이라 하여,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어서 빨리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알라딘 온라인 중고서점에서 배송료 포함 4천5백 원에 득템!)

읽기 시작하자마자 얼마 안가 놀랐다. 무언가 익숙했다. 
이 책의 내용은 대학시절 술자리에서 자주 듣던 운동권 선배들의 경험담 아닌가!!. (-_-) 경찰을 앞에 두고도 태연하게 성공한 ‘도바리’라던가, ‘담배=혁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끊임없이 뻐금대던 기억. 그 와중에 틈틈이 연애를 하고, 두렵고 어려운 결심들을 하고, 흔들릴 때마다 동지들에게 한 말들이 생각나서 다잡는. 약간 허세스럽고, 그래서 더 정감가는. 대단할 것 없지만 그래서 대단한 그 시절의 서사.

술자리와 좀 다른 점은 -김남주, 윤상원, 박관현, 박기순, 윤한봉, 조성오, 노회찬까지.. 한 번씩은 들어본 전설의 이름들이 다 나온다는 것 정도? 그것도 고민 많고 짓궂기도 한 장난꾸러기 동료이자 동지로서.
80년 518~87년 6월 항쟁까지.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 시절의 투쟁사다. 



1.

사람마다 감동을 받는 장면이 다르겠지만, 내 눈에 유독 들어왔던 것은 유인물에 대한 묘사! 
저자는 유인물 살포 전문가(!)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일가견이 있던 종목이었다!!) 이를 테면 이런 구절.

"(p.25) 1980년 6월에서 9월까지 나는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을 원 없이 뿌리고 다녔다. 범죄란 하면 할수록 대범해진다. 지하 다방에서 내려가 손님들에게 유인물 뭉치를 던져놓고 잽싸게 사라진다. 도서관에 들어가 공공연하게 뿌리고 선 사라진다. 대학교 캠퍼스 화장실은 가장 안전한 유인물 배급소다. 화장실에다 유인물을 두고 오는데 누가 잡아?
역시 유인물을 뿌리는 작업에서 가장 힘든 것은 빈민가 가택 배포이다. 밤 열시부터 한 장씩 한 장식 신문 넣듯, 대문 안으로 넣다 보면 신경질이 난다. 부수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미아리 길음동에선 새벽 동이 틀 때까지 뿌린 적도 있었다.”

ㅋㅋㅋㅋㅋ 경험이 겹치니까, 너무 와닿는 거다.
때는 바야흐로 유인물 뿌리는 것이 제일 뿌듯 한 시절, 대학교 3학년! 학기 중에야 학생들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뿌리면 그야말로 “살포”할 수 있지만, 방학 중에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땀 뻘뻘 흘리면서 동네 상가와 아파트를 돌아서 돌아서 꽂았다. 그렇게 몇 시간을 돌아다녀도 땀에 젖은 유인물은 닳아지지 않았다. 오묘한 동질감. 이명박근혜 시절의 우리는 경찰보다는 경비 아저씨를 피해 도망 다녀야 했고, 수배나 구속보다 벌금과 시민들의 거절이 두려웠지만, 30여 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유인물 살포자(?)로서 고개 끄덕일 수 있는 공감 코드가 책 곳곳에 등장해 즐거웠다. 심지어 황선배님(왠지 다 읽고 나니 이렇게 불러야 할 것 같음)은 머지않은 항쟁의 예감마저 유인물 경험담으로 갈음하신다ㅋㅋ

"(p.203) 유인물을 뿌려보면 군중의 마음을 안다. 가리봉역이나 구로역에서 유인물을 뿌리면 혹여 좌경용공세력의 불순한 행동이 아닌가 의심하던 시민들이 이제 격려의 눈빛을 보냈다. 수고한다는 눈인사말이다.”

이 느낌 알쥐. 유인물 뿌려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ㅋㅋㅋ



2. 

"(p. 8) 역사가는 역사의 밖에서 역사를 보지만 실천가는 역사 속에서 역사를 만진다.”

한 시대를 실천으로 산 젊은이들의 기억.
질문이 생겼다. 대체 무슨 까닭이 수천의 젊은이들이 노동 현장으로, 교도소로 가는 것을 주저않게 만든 것일까. 책에서는 시대가 그러했다고 하지만, 그 시대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일까.

보다 더 절박한 질문 하나. 그렇다면 지난 30년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지금의 젊음들은 이 시대를 이렇게 살아가고 있단 말인가...!..

"(p.192) 독립운동가 이재유가 1936년 『적기』에 기고한 바 에 따르면, 1933년부터 3년간 검거, 투옥, 고문, 학살된 독립운동가가 자그마치 1만여 명이었다. 1930년대의 조선 인구는 2,000여만 명이었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때는 어땠을까?
1974년 박정희 정권이 전국의 운동권 대학생들을 민청학련 사건으로 싹쓸이했을 때 검거된 자가 1,000여 명이었다. 1977년부터 1979년까지 긴급조치 위반 구속자가 300명 이상이었다. 1983년 전두환 정권이 감옥에 가둔 민주인사와 학생의 수는 1,000명을 넘어섰다. 1986년엔 7,250명이 검거되어 4,610명이 구속되었다. 이는 1985년에 비해 2.5배 증가한 것이었는데, 1930년대 초반의 구속자 수와 비슷한 수치였다. 1980년대의 한국 인구는 4,100여만 명이었고, 전국의 교도소는 30여 개에 불과했다. 1,000명이 구속되면 한 교도소 당 30여 명의 정치범이 몰렸다. 교도소가 견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도 버티지 못했다. 그래서 1984년 전두환 정권은 유화 국면으로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

83년 전두환 정권이 데모로 구속시킨 민주 인사와 학생의 수가 1000여 명, 2010년대 한 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30 청년세대 자살자 수가 1000여 명.
그러니까,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지금의 시대가 “더 나아졌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만한 근거를.

저자는 책을 통해 “청년들로 하여금 심장이 불끈불끈 뛰었던 우리의 과거를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만지게 하고 싶다”했지만, 난 책을 덮고 나서 답답해지고 말았다. 2018년의 우리는 (살인정권이 아닌) 누구와/무엇과 싸워야 “오래 남아있을 만한” 젊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굳이 싸움일 필요가 더 이상 없다면, 우리가 관심을 쏟아야 할 그것이 ‘비트코인’일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하고.


3. 

이 좋은 책을 읽고도 불편해진 것이 – 내가 앞으로 싸울 것들이라는 힌트이려나. 

"(p.73) 평생의 동지요, 반려자로 살아주어야 할 나의 연인은 너무 연약하였다. 그 연약함이 드러날 때마다 나는 먼 장래를 위하여, 서로를 위하여, 이별의 결단을 고뇌하여왔다.

(p.118) 우리의 역사를 노동자가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미친 듯 써 내려갔다. 책을 보름 만에 탈고하고 나서 후배들의 자취방을 돌아다녔다. 이대 아내는 임신 6개월,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나가서 일주일을 소식도 없이 외박하였다. 새댁을 혼자 버려두고 뭣이 좋아 그렇게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아내는 이때의 고립감‧절망감이 뼈에 사무치게 되었고, 지금까지 바가지의 근원지가 되었다." 

군데군데 나온다. 이제는 곱게 보이지 않는 동의할 수 없는 여성에 대한 부당한 시선과 행동들. 전형적인 큰 일-사소한 일 나누기, 해일 오는 데 조개 줍는다는 식의 마인드. 불편했다.

황광우씨 부인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앞으로는 이런 제목의 수기도 나오면 좋겠다 싶다. “혁명가와 그 동료들의 밥까지 지은 아내”라든가. “수배 끝난 남편은 수배 시절보다 더 자주 집에 안 온다. 차라리 수배인게 나았어” ㅋㅋㅋ 등등..............

당시 선배들이 쟁취한 제도적 민주주의는 숱한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 투쟁했기에 겨우 얻을 수 있었지만, 오늘 우리가 원하는 ‘민주적 인간관계’란 굳이 목숨까지 바치지 않고 지금도(그 때에도)당장 실천할 수 있는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존중’그 자체라는 것.

"(p.222) "무릎 꿇고 사느니 보다 서서 죽길 원한 단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그렇게 우리는 살았다. “전두환은 해볼 수 있어도 미국은 이기지 못한다”는 장인어른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전두환의 퇴진은 사실상 미국의 굴복이었다. 박종철은 갔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할 것이다. 우리 민중의 가슴속에." 

는 마지막의 이 책의 문장. 전두환의 퇴진이 사실상 미국의 굴복이라는.. 
관점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도 궁금...

미국은 한번도 굴복한 적이 없거니와 이 땅에서 손 뗀 적도 없다. 
6‧29는 미국의 작품이었다. 전두환은 살아서 내려왔고,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군복 입은 자들이 양복으로 바꿔 입은 것이 민주화였다. IMF 외환위기와 이어지는 구조조정 역시 미국의 작품이었고, 87년에는 없던 문제들 (이를테면, 부동산, 비정규직) 마저 생겨났다. 

정말로. 미국은 굴복했는가?

하루에 세 명의 학생이 대공분실에 끌려가지는 않지만, 하루에 세 명의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우리가 이름 붙인 여기는 헬조선이고, 지금의 청년 세대를 분노케 하는 것은 꼰대와 개저씨다. (이 개념만큼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 복잡해져버린 싸움, 민주화 이후 더 팽배해진 무기력과 개개인을 잠식하고 있는 분노. 나는 87년 생이다. 내가 경험한 역사는 책 이후의 시기 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대부분 최근에 만들어진 문제들이다. 도대체 87년 이후, 우리의 역사엔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4.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젊음에 대해 생각했다.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꽤 진지하고 심각하게 10년가량 해왔던 나의 학생운동 경험도 떠올려보았다. 나 개인이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고, 끔찍했던 박근혜 정부가 문재인 정부로 교체된 나름의 역사적 순간도 목격했으나,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라는 시구처럼 곱씹어지지 않는 것은.
패배주의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 젊음을 지나는 중이어서 인 것일까.

"(p.8)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잠기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몸속에 잠겨있는데 우리는 느끼지 못할 뿐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여전히 암담하다. 좋아지는 속도가 나빠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간 젊은 영혼들의 아름다운˝ 싸움이 사라지지 않았으되 잠겨 있는 역사라면, 지금이야말로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면 좋겠다. 그것이 내 몸속에 잠겨 있다면 진심을 다해 인식하고 싶다. 잘 살고 싶으니까. 정말로. 잘. 살아보고 싶으니까.

나의 젊음은 선배들의 그것에 비하면 부족하게 치열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치열함으로 감히 바란다. 30년 뒤의 젊은이들은 자살하지 않기를.
세상이 더 좋아질 거라고 확신할 수 있기를.


(p.102)
˝어이, 광우, 후배들이 날더러 학생회장 하라는데, 해야하나?˝
˝후배들이 하라믄 해야하는 것 아니오?˝
나의 대답이 박관현의 죽음을 재촉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1981년 서울 수유리 전복길의 고모댁에 피신하고 있었다. 현상 수배는 지하생활자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든다. 체포된 박관현은 고분고분 수감생활을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먼저 간 박기순, 윤상원이 매일 밤 꿈 속에 나타났을 것이다. 김영철이 광주 교도소벽에 자신의 머리를 박아버리고 정신병자가 되었듯이, 그날 함께 죽지 못한 우리들은 미쳐버리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 그렇게 박관현이 갔고, 이어 신영일 형이갔고, 이어 김영철 형이 갔고, 이어 박효선 형이 또갔다.

(p.183-4)
희한한 일이었다. 모든 피의자들은 고문 하루 안에 다 항복하였다. 대학3학년생, 그 어린 놈이끄떡하지 않은 것이다. 내무부 장관까시 시찰한 상황이다. 치안본부 고문관들은 당황하였을 것이다. 뭐, 이런놈이 다있어?
고문은 살인을 가장한 협박이다. 이대로 가면 죽을 것 같은 공포심리 상태로 인간을 몰아넣는 과정이다. 죽이지 않으면서 죽음으로 가고 있다는 공포심을 자아내는 것이 고문관의 기술이다. 죽임은 고문의 실패작이다. ... 박종철은 고문받다 죽은 고문치사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고문에 대한 항거 속에서 죽음을 선택한 고문저항였다.

(p.214)
지금 생각해보면,1987년 6월은 우리가 꿈꾸는 혁명의 시절이었다. 우리는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책에서만 봤지 현실에서 본 적은 없었다. 6월항쟁이 끝나고 나서야 이런게 혁명적 상황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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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민족 상.하 세트 - 전2권
강태진 글.그림 / 비아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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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머리 식힐 겸 볼까 싶어 사무실에서 가져왔다가, ‘첫부분만 봐야지~’ 앉은 채로 다 읽었다. 초 흥미진진. 서스펜스가 훌륭한 만화여서 중간에 놓을 수가 없었다.

<응답하라 1988>로 회자되는 시절의 이면 - 안기부의 고문과 조작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만화다. 주제도 그렇지만, 주인공이 남다르다. 고무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른 홍안의 주인공, 안기부 “고문 수사관” 박도훈. 뭐지 ? 싶은 복장은 그가 일(고문) 할 때의 복장이다.


p. 32 (1권)
“그럼 뭐야. 장실장님처럼 강한 사람이 되어서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돈많은 놈들이나 조지겠다?”
“맞아, 처음에 그런 생각이었어. 근데, 장실장님을 가만히 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 되어서 돈을 벌면 말이지. 그게 훨씬 더...”


돈 많은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어린 도훈은 돈보다 더 센 안기부 장실장을 만나고, 그 밑으로 들어가 간첩을 ‘잡는’게 아니라 간첩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게 된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 과연 그는 애국자였을까?

강태진 작가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 5공 시절의 시국사건과 관련된 조사들 중 가해자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애국심’, 진정 ‘국가’를 위하는 마음‘, 죄책감이 아닌 자부심”이라는. 이게 무슨 소리야. 작가는 그들 머릿속의 국가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고 한다.

만화를 덮고 난 나의 감상은... 안기부 직원 - 고문 수사관들의 ‘조국’과 ‘민족’은 그의 왜곡된 욕망을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한 거대한 기제일 뿐, 그들에게는 ‘조국’도 ‘애국’도 ‘국민’도 ‘민족’도 없다. 전혀 없다. ‘조국’의 크기만큼 부풀려진 거대한 자기 자신이 있으면 있었지. 누군가 그랬나. 박근혜는 자신의 아버지와 국가를 동일시 했고, 박정희는 저자신을 국가와 동일시 했다고.

그것이 무엇이든 - 선택의 시기에 주인공 도훈의 모든 결정은 99% 자기 자신, 자신의 욕망일 뿐이다. 더 강해지고 자하는.(그게 힘이냐 돈이냐의 선택일 뿐) 혹은 살고자 하는.

p.289 (2권)
“너 아버지 때문에 나한테 이러는 거야? 니네 아버지 죽은 게 내 잘못이냐고. 경찰이 도둑 잡는 게 나쁜 짓이야? 나는 그냥 내 일을 한거야. 그 사람들이 간첩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게 내 직업이라고!”

자기 일을 한 거란다. 아이히만이 떠오른다. 그러나 만화를 보면 안다. 그는 자기 일을 하지 않았다. 자기 일을 했다고 믿고 싶은 거겠지.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말하며 “아이히만을 생각할 능력이 없는 관료”라고 했다. 나는 일면 동의하지만, 동시에 비판적이다. 그들은 생각할 능력이 없지 않다. ‘자신(욕망)’을 위한 선택을 한 것이다. 거기에 명분까지 주면, 완전땡큐인 거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누구나 합리화를 하면서 산다.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타자를 해치는/지배하려는/배려하지 않는 욕망, 반성없는/으레하는/거대한 합리화는 좋지 않다. 그 자신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이 만화는 수작이다. 재미나 내용면에서도 그렇지만, 등장하는 사건들이 대부분이 (완전 비현실적인 간첩 부녀 빼고...) 현실 사건이다. “이 사건은 그 사건인가?”하면서 봤는데 2권에서 사건들이 쭉 나온다. 수지킴 사건, 서승 등 간첩 조작 시건, 미법도, 김동식 등등등 그 많은 사건을 고작 2권의 분량에 다 버무려 넣은 것이 대단하다. (그 많은 사건들을 애국한다면서 조작한 안기부 놈들이 더 대단한건가...)

후유증이 있었다. 만화를 다 읽고 잠들었는 데, 꿈 속에서 안기부 대공분실이 나왔다. 고문을 당했는 지, 고문을 한건 지 무튼 너무 힘들었다.

#족민과국조
뒤틀린 시절의 부역자들에 의해 뒤틀려져 버린 단어들 - ‘애국’‘조국’‘민족’이라는 단어는 이제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책에서 많이 조명하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애국’을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가끔 그들의 가치마저 싸잡아 폄하되는 것을 본다. 씁쓸하고 괴롭다. 단어의 의미가 제자리를 찾는 것. 그 단어의 원본들이 가진 의미가 자체가 빛을 잃고 사라지는 것. 불현듯, 지금 해야 하는 싸움은 후자를 막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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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악인열전 - 교과서에선 볼 수 없는 부끄러운 역사
임종금 지음 / 피플파워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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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책의 구절이 있다. “이근안은 홀로 1970년대를 살지 않았다.”라는 말. “그는 재수 없게 걸렸고, 그 시대에 암묵적 동의를 보낸 자들은 지금 애국노인이 되어있지 않느냐”라는 물음과.

그 대목이 소름 끼쳤던 것은, 종종 ‘구조’의 문제라며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안팎의 모든 불의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구조 앞에 개인은 무력할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가 그 구조를 유지시키는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물론 이 책에 나온 인간들은 어쩔 수 없지 않았다. 해서는 안될 ‘짓’을 과하게 악랄하게 한 자들이다. 아마, 인류가 역사를 만든 이래 어느 시대에 떨궈 놓는다 해도 그들이 ‘선량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한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인간에게 총과 권력을 내어주며 1000명을 죽일 수 있게, 기름을 부으며 부추긴 자들은-. 맨 꼭대기의 더욱 악랄한 권력이었다.

"(p.33) 
김종원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 사람 목을 잘라 이웃 지휘관에게 '선물'하는 게 장난이었던 김종원, 그런 그가 불과 20대 후반의 나이에 거의 무차별적인 권한을 받았고, 그는 살육으로 그 권한에 응답했다. 그것은 결국 이승만과 권부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 땅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김종원과 같은 비정상적으로 날뛰는 존재가 꼭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p.69) 
평소 조선인에 대해 민족적 감정이 좋지 않았던 일본인들은 이 유언비어를 믿었고, 경찰과 함께 자경단을 꾸려 조선인 학살에 나섰다. 그 결과 최근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불과 4~5일 사이 무려 2만 3058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했다. 학살의 규모가 예상보다 커지자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일본 정부는 9월 5일부터 학살 수습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조선인들을 급조한 ‘수용소’에 격리시켜 일본 주민과 분리했으며, 시신 처리에 나섰다.
이때 눈치 빠른 박춘금이 상애회원을 이끌고 나타났다. 박춘금은 상애회원 1000여 명을 이끌고 일본 당국의 수습작업에 적극 동참했다. 일본으로서는 이처럼 반가운 일이 없었다.

(p.172) 
기분이 좋아진 이승만은 국무회의에서 “여러분들, 김창룡 대령을 자식처럼 사랑해 주세요”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우리는 일제 36년을 기억할 때, 몇몇의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리지만, 뒤집어보면 그 36년간 대다수는 침묵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 ‘부역’ 했을 것이다. ‘박정희 독재’ ‘이명박근혜 시대’도 마찬가지.

많은 텍스트들이 사회의 많은 불의들을 ‘구조적 문제였다’ 정도로 정리 하곤 한다. 하지만 ‘구조’에 책임을 돌리면 개개인의 선택-삶들은 간과하게 될 때가 많다. 그래서 각각의 개인들에 묻어나는 사회를 생각하고, 때로는 구조 속에서 나타난 전형적인 개인들을 탐구해보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다. 물론, 생각하는 일이 좀처럼 쉽지는 않다. 그러나 친일파는 이완용으로 독립운동가는 유관순으로 정리해 외우고 끝낸다면, 역사는 우리 삶에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p.5)

해서 많은 것들이 잊혔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이완용이라는 이름을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다 숨어버렸습니다. 해방 후 부당한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학살된 수많은 민중에 대해서도 '시대가 그랬다'는 막연한 논리로 덮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적 상황이 그랬다 치더라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근현대사의 악인들이 있습니다."

싸이코패스 치안국장 (지금의 경찰청장)-김종원, 자기 동네 가족몰살을 취미삼아 했던 지역구 국회의원-이협우, 동포를 착취해 일본에서 최초 조선인 국회의원이 되고 일본내 항일인사 30만명을 총살할 계획을 세웠던 박춘금, 항일인사들을 고문하고 뒤처리를 담당하다 해방후에는 김주열의 시신을 유기했던 박종표, 항일운동과 공산당원이던 전력을 무기삼아 만주의 항일세력을 토벌시킨 변절자 친일파 김동한 등.

어떻게 이런 인간이 있을 수 있지? 싶을 정도로 질나쁜 근현대사의 ‘악인’들을 기록했다. 쉽고 흥미롭게 읽힌다. 그런데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충격적일 수 있겠다. 너무 끔찍하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현실만 받아들인다고 한다. 이렇게 피칠갑을 한 역사가 우리 역사였어? 현실부정 하게 되거나, 대한민국의 경찰 조직, 군 기무사령부 등등이 싫어질 수도 있다. 이런 역사를 덮어 놓고- 아무일 없었던 척, 정상인척 살아온 숱한 한국인들의 뇌구조를 의심해보고 싶어진다.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 역사가 현재와 외따로 흘러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의한 시대는 그들을 내세워주고 잘살게 해주고, 심지어는 죽어서도 국립묘지에 안장해주었다.(김창룡)

적폐청산이라는 말이 입에 오르내린지 일년 정도가 흘렀다. 난 이명박근혜만이 적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소망... ‘발본색원’은 불가능 할지라도 몇가지 작업은 하자... 이를테면 국가기관들이 ‘대한민국 악인열전’에 수록되어 있는 수준의 인간들이 자신들의 역대 상관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까밝히고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국립묘지안장에서 파내고 그들에게 수여된 훈장을 대대로 회수하고 재산도 환수하는.....

하지만 아마 못할 거다. 국민 전체가 들고 일어나지 않는 한은. 대한민국의 ‘국가’기구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까. (오늘 기사보니까 국정원 개정안도 간첩운운하면서 자유당이 막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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