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타고 내리는 것 조차 불가능한 매일의 만원 지하철 안에서 욕이 아닌 단어와 문장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가끔은 좋아하는 나만의 글쓰기 어플을 켠다. (PEN이라는 앱이다) 정갈한 명조체 글씨로 그즈음에 읽는 책들에 대한 단상이나, 복잡한 생활 속에서 떠오르는 어떤 기억과 마음들을 적을 때, 조금은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직은 언젠가 써봐야지!하는 글감 목록만 빼곡하지만, 어쨌든 나는 글을 쓴다. 이유는 없고. 그냥 쓴다. 대부분은 출퇴근 길에 쓰고, 주말에는 노트에 쓴다. 이 영화 주인공 패터슨 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어젯밤 영화를 보는 내내 난 내가 글쓰는 사람인게 정말 좋아졌다. “저기요! 저도요!” 손이라도 들고 나도 글쓰는 사람이라고 주인공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시는 아니지만, 저도 글을 써요! 가슴에 꼭 끌어안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책과 작가도 있고요, 저만 아는 비밀 노트와 앱도 있답니다. 
당신처럼... 저녁도 있으면 좋겠는 데... 저녁이 없네요(시무룩). 그런데 우리집 고양이는 산책을 안시켜도 되니 그건 내가 당신보다 좋군요!



주인공 패터슨은 도시의 버스운전기사다. 그는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시를 쓴다. 그렇지만 시인은 아니다. 나 역시 그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두번 틈틈히 글을 쓴다. 그러나 작가는 아니다.

글감을 고르고 단어를 떠올리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순간들. 조금씩 글이 되어가면서, 점점 더 명료해지는 쓰기 전까지는 몰랐던 내 마음 속의 이야기들.(이 영화는 그 과정을 보여준다..)
글을 쓰는 과정이 주는 회복의 시간을 알기에 휴식을 취하듯 쓸 뿐이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만약 내가 쓴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면 무척이나 서운하겠지만, 서운함 그게 다 일 것 같다.
그러고 또 쓰겠지, 뭐.

영화가 끝나고 엔딩자막이 올라가는 데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아 좋다. 정말 좋다. 아무럴 것 없는 이야기. 그게 다인 이야기. 그것 밖에는 없는 이야기. 
그래서 꽉 찬 이야기. 나도 그처럼 아무럴 것 없는 일상을 더 본격적으로 살고 싶다. (저녁, 저녁이 필요해..)


오늘 아침의 지하철은 책은 커녕 손도 꺼낼 수 없을 지경이라서 패터슨을 흉내내며 머릿속으로 이 글을 써보았더란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늦은 퇴근길. 아침에 머리로 썼던 글을 폰으로 적어보고 있다. 분명 아까 썼던 건 좀 더 근사했던 것 같은데...
여하튼 집에 다 와버렸네. 이 영화 너무 추천해! 두 번 봐야지! 세 번 봐야지! 네 번 봐야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0-05-20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감을 고르고 단어를 떠올리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순간들. 조금씩 글이 되어가면서, 점점 더 명료해지는 쓰기 전까지는 몰랐던 내 마음 속의 이야기들.

이런 식으로 글감을 단어를 문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우리 세계에서는, 작가라고 부르더라구요.
쟝쟝님 작가 맞아요. 작가입니다. 쟝쟝님 작가님~~~

공쟝쟝 2020-05-21 08:10   좋아요 1 | URL
누가봐도 시인인데 시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이 영화속 주인공에게 이입한 이유 중 하나 였어요. 뭔가 작가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순간 글쓰기가 즐거움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 같다는 이상한 마음??? 고맙습니다 단발님! 헤헤

감은빛 2020-05-21 0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매일 아침과 저녁 무료한 출퇴근 시간을 버티는 건 바로 글쓰는 상상이죠. 비록 신춘문예 응모했다가 떨어졌고, 현실에선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일지라도 상상 속에서 내 글은 너무나도 멋진 글이더러구요. 비록 얼마 못 가서 그 현실을 깨닫게 될지라도.

공쟝쟝 2020-05-21 08:14   좋아요 1 | URL
세상에서 제일 좋은 글은 바로 상상속의 내가 쓴 글...!! 공감하셨군요 ㅋㅋ
그래도 글쓰는 (혹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우리는 조금 근사하지 않나요? ㅎㅎㅎ
 

주말이라 영화한편 봐야지! 했는데 코로나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메가박스에서 명작 리플레이를 한다. 저렴한 오천원에. 영화관에서 다시보고 싶은, 띵작인 건 아는데 선뜻 보지는 못했던 영화들이 리스트에 있었고, 그중에 슬플것 같아서 미뤄두고 있었던 로마가 있었다. 오- 너로 정했어 ㅋㅋ!! 바로 예매하고 영화관에 갔는 데, 관객이 두명 있었나? 널찍한 영화관에서 사람들 눈치 볼 필요 없이, 신나게 부스럭 거리며 실컷 쿨쩍거리며 잔잔 + 감동 + 오열의 두시간 반을 보냈다.


*

청소와 빨래, 또 청소와 빨래라는 집안일의 백색소음으로 가득한 영화는 중후반 쯤에 의외의 스펙터클을 선사하고 (생각해보니 맥시코는 사파티스타의 나라 아니었던가!) 끝없는 파도의 물먹임을 삶에 은유하는 듯한 장면을 보여준 뒤 다시 청소와 빨래로 돌아온다.


영화의 백미라는 바닷가 씬에서 나는 몸서리를 쳤는 데,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의 바다에서 수영하며 놀다가 호되게 당한 유년시절의 기억이 소환되었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성난 파도, 짠물, 숨막힘, 통제할 수 없는 몸, 발이 닿지 않는 순간의 공포. 뒤집어진 바다에는 오만 쓰레기와 모래자갈이 섞여있어 온몸이 얻어 맞아 아팠다. 영화관 스크린에 꽉찬 검은 바다를 보며 그날 그 바다의 숨막힘을 떠올렸고, 지금 내가 겪어내는 것들 역시 별로 다르지 않게 느껴져 지겨웠다.
인생=바다, 혹은 바다보다 더 무서운 우리들 인생살이여!


원치 않는 파도에 푹절어가며 물먹는 클레오, 휩쓸리지 않고 불러야 하는 이름과 구해야하는 존재들, 부둥켜 안음, 고백. 나는 펑펑 울었는 데, 이건 어떤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그냥 짜증의 눈물이었다. 아, 사는 거 힘들어 ㅆㅂ~~~ 굳이 왜 다 이렇게 힘들어야 해??????

*

삶.
영화처럼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 보거나, 멀리서 조망했을 땐 쪼끔, 찰나, 아름다울 수 있겠으나 - 대체적으로 지겨운 일상의 노동을 반복해야하고, 그 와중에 환상적으로 행복한 순간이 찾아온다면 반드시 그만큼의 댓가를 치러야 하며,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란 사랑스럽고 귀찮고, 고용주에게 굳이 아프고 슬픈 비극을 설명해야 잘리지 않고 쉴 수 있고, 술한잔 할려고 하면 옆테이블에서 잔 치고 가고, 매번 선택은 너무 어렵고, 그래서 신중해봤자 결론은 도찐 개찐, 할 일들은 언제나 발앞에 엎질러져 있고, 나만한 사연 가진 인생들이 주변에 드글드글 한데 이와중에 역사는 개입하고, 사건들은 생겨나고, 상처를 주고 받고, 느낄 새도 없이 일들은 벌어지고, 눈물도 아껴뒀다 가성비로 흘려야함. 아- 클레오ㅠ인생 지겨워!!!!! 내 인생 같아!!!!!!

*

그러니까 저는 황금같은 주말의 두시간 반동안 지겨운 인생을 편집한 영화를 본 것입니다. 의미부여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한참 인생이 지겨워진 저로서는 지겨워서 슬퍼버린 것입니다.

*
그렇게(이렇게) 사는 거
의미 있을까?
의미없지.
그런데 사는 거 의미 원래 없잖아.
그놈의 의미 땜에 데여놓고 그걸 몰라.
걍 살자.
중간중간 하늘 (혹은 물에 비친 하늘) 올려다 보며.
지겨운 개똥 같은 것들만 대충 쓱싹 치워가며.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연 2020-03-08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보겠다고 넷플인가에 찜 해두었는데^^

공쟝쟝 2020-03-08 23:30   좋아요 1 | URL
싸운드 빵빵하게 하고 보세요~! 추천추천

비연 2020-03-09 10:22   좋아요 0 | URL
오케! 다음 주 주말의 명화로 보겠나이다 ㅎㅎㅎㅎㅎㅎ
 

1.
시얼샤로넌과 티모시샬라메는 정말 잘어울린다. 로리가 격정적으로 조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는 (결말을 알고 있었으므로) 거의 허벅지를 찌르다 시피하며, 허물어지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내가 조였으면 이미 입술로 대답했음ㅋㅋㅋ


의식적 자아는 비혼주의 조를 열렬히 지지하고 있었으나, 무의식은 이미 연애와 사랑을 넘어 바람직한 엔딩~ 결혼으로 달려가고 싶어했다. 둘이 넘 잘어울리잖아. 그냥 싸우면서 행복해지라고!! 가만, 행복? 둘이 맺어지는 것만이 진정한 행복이야?

아아, 내 안의 낭만적 이성애에 대한 열망은 얼마나 뿌리 깊은 지😭😭 그럴 수도 그렇지도 않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 커플이 잘되길 지지합니다! 따위로 생각이 빠질려고 해서 나 자신이 짜증났다. 하긴 나서 자라 지금까지 들어온 대다수의 이야기가 그녀는 그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알콩달콩 잘살았습니다였는 걸 뭐. 로맨스라는 지긋지긋한 이데올로기, 이건 뭐 마약처럼 끊기 어려운 종류 같다.
넷플 빨강머리 앤도 시즌3까지 보면서 손이 다 덜덜 떨리더라. 길버트랑 앤 잘되는 거 보고 싶어가지고... 흑흑.


2.
배우 그레타거윅은 물론 감독으로서의 그녀를 애정하다 못해 사랑하고 있으며(프사로 해놓을 만큼), 시얼샤로넌과 티모시샬라메를 각각 2010년대 최애 외국 여남 배우로 꼽는 나로서는, 유년시절 못해도 스무번은 읽은 작은아씨들이란 소설을 그 감독이 이 배우들로 무려 페미니즘으로 다시 썼다고까지하니 너무너무 보고 싶어 몸살이 날 정도였다. 넷플릭스 크리스마스에 개봉이라는 말 듣고 크리스마스 날을 손꼽을 정도.
그러나 예기치 못한 코로나의 습격으로 함께 보기로한 멤버와 만날 약속을 차마 잡을 수 없었고, 결국은 주말에 함께 방구석에 있을 자매1과 자매2를 꼬셔서 데리고 #다큰아씨들 을 급결성하여 함께 영화관람을 했다. 게으른 세자매에게 주말 세시 영화관람은 매우 이른 시각이었다. (다행이 광고중에 도착) 시작하자마자 완전 이입된 다큰아씨들은 ‘너무 좋아’를 외쳤다. 저거 정말 우리같아 ㅋㅋㅋ 하면서. 

영화 마치 가의 자매들은 박씨자매들에 준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기실 자매들은 모이면 시끄럽다. 만고의 진리인가. 조가 고데기로 메그의 머리를 태워먹는 신을 보며 소녀시절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생각났다. 동생과 고데기로 싸우다가 (싸움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고데기를 안껏다는 걸 잊어버려서, 시내에서 신나게 놓고 집에 돌아왔더니 우리방이 다 타있었다. 타서 사라진 매직기, 까맣게 재가 앉아 닦아도 지워지지 않던 내가 사랑했던 책과 cd들. 자욱한 연기를 배경으로 한 그날 저녁의 살벌하던 식사. 그 와중에 니가 안껐다는 책임전가와 추궁. 등등.
작은아씨들 보다 더 격정적이었던 우리들. (그리고 다 컸는 데도 싸움 ㅋㅋㅋㅋ 심지어 영화보고 오는 길에도 몇번 싸울뻔함)


3.
내가 왜 이 책을 그토록 좋아했는 지 기억났어.
우리집도 가난했잖아.
그래서 각자가 갖고 있는 욕망들을 실컷 요구할 수가 없었잖아.
메그는 옷, 조는 책, 베쓰는 피아노, 에이미는 물감 등등. 근데 옆집 할아버지가 쨘 나타나서 한번씩 정말 갖고 싶어하던 그것들을 선물해 줄 때, 그게 그렇게 좋은 거야. 넘 행복한 거야.
라고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동생들에게 말했더랬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여전히 자매들 각자의 욕망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리고 이제는 자기들의 힘으로) 성취되기를 바라는 사람이구나. 어릴 때는 소망이, 물건처럼 참 단순했는 데, 다 커버린 지금의 소망과 욕망은 참 간단치가 않다는 것 등등을. 

작은 아씨들 속 작은 이야기들 처럼, 나와 자매들의 작은 이야기들이라면 유년시절 그것들을 포함해서 언제든지 넘쳐난다. 자주자주 그것들을 꺼내 써봐야겠다. 초딩시절 내 롤모델이었던 조 마치 처럼.

_
_

마지막으로 인용하는 영화속 대사를 글 말미에 적고 싶은데, 기억이 안난다. 
두번째 관람 한 후 다시 적어놔야지.
(집에 모셔둔 원작도 좀 읽자 ㅋㅋㅋㅋ)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0-03-01 16: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정말 좋아해서 수십 번 반복해서 읽은 책이어서 영화를 꼭 보고 싶었는데
결국은 코로나19로 포기했어요~~
정말 아쉬웠는데
어쩔수없이 집에서 봐야겠어요^^

공쟝쟝 2020-03-01 18:50   좋아요 2 | URL
알고보니 모든 문학소녀들의 어린시절 최애 소설 리스트에 베스트였던 작은아씨들이네요~! 영화 참 좋았어요. 배우들의 호연도 연출도 최고😊 당분간 코로나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으니 넷플 공개를 기다리고 있어야겠네요 :)
 
[eBook] 벌새
김보라 쓰고 엮음, 김원영, 남다은, 정희진, 최은영, 앨리슨 벡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덜 힘들고 싶어서 그토록 열렬히 읽었던 수많은 사회과학, 심리분석 책들. 울화를 게워내듯 일기에 썼던 어린시절의 기억들. 어떤 관계에서는 도망치고, 어떤 인연과는 단호하게 이별하고, 인생의 진로를 바꾸고, 삶의 태도를 바꾸고, 나름의 공부를 하고, 그 와중에 생활에 바빠하면서. 겨우 괜찮아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데, 있었는 데, 그랬는 데.

훅 들어오는 무심한 (제 멋대로의 사랑을 근거에 둔)공격에는 속수무책이다. 일주일째 엉망이다. 몸의 컨디션도, 마음의 컨디션은 더더욱. 온 마음을 끌어모아 괜찮다고 스스로를 토닥이고 있었는 데, 끌어모을 힘을 뺏겨버렸다. 다 헝클어졌다. 전화 한 통에.

건조하게 말하고, 다치지 않게 거절해도 됐는 데, 감정이 너무 많이 섞였다. 아플말만 골라찝어 딱딱 말하는 단호하고 독기어린 내 목소리가 낯설다. 문제는 그렇게 못되게 말하는 나는 그를 사랑한다는 거고, 힘없이 잘못을 시인하는 그 역시도 나를 사랑한다는 거겠지. 그 굴레. 가족.

사랑이라는 권력에 있어서 결국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된다는 말에 반박하고 싶다. 더 많이 인식하고 있는 쪽, 더 많이 이해하고 있는 쪽이, 약자다. 그런데 약자이기에 때때로 가해자가 된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가해자인 약자.

사랑했으나 인식이 깊지 못했던 어른들은 세상의 잘못된 관점까지 수용해서 아이를 사랑했고, 아이는 둔탁한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았으며, 자기 자신과 사랑을 모르게 되었다. 어느새 어른이 된 아이는 그들의 좁고 편견많은 사랑이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사랑의 형태가 생겨난 바탕까지 공부하여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사랑의 노동이었다. 사랑하기위해서.
이따금 이해되지 않는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덜 미워지게 되는 경험들은 나를 알기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사랑을 사랑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서.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용서하고 싶어서. 그런데 몰랐던 것을 알아갈수록 가닿는 결론은 이렇다. 결국 나는 그들을 완전히는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것. 사랑과 상처는 별개가 아니라는 것. 나를 해치는 요구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사랑을 들이민대도 단호히 싸워야 한다는 것. 세상이 들이미는 사랑의 기준에 대해 끊임없이 따지고 되짚어 물어야 한다는 것. 구체적으로. 실질적으로. 집요하고, 생생하게.

그리고 그 인식에 따른 실천은 때때로 나를 폭군같은 가해자로 만든다. 뒤늦게 다그치는 것이다. 당신들의 편한 선택이, 스스럼없이 살아온 삶이, 사느라 바빠 잊은 질문없음이 나에게 얼마나 폭력이었는지 아느냐고. 아마,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대답을 얻기 위해 묻지 않았으니까. 질문은 그저 복수다. 왜 아픈지도 모르고 앓았던 숱한 과거와 그 결론인 오늘에 대한.

대체로 난 그 많은 질문과 화를 아주 꾹꾹 눌러 담아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그냥 희미하게 웃을 뿐이다. 모르는 척. 힘 없는 척. 그런데, 참는 다는 것은. 결국 참는 것일 뿐. 참지 못하겠는 날은 온다. 당신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쓴 나에게 마치 보란 듯이 - 내가 바라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을 줄 때, 핏줄이라는 이유로 당연하다는 듯 어떤 요구를 할 때, 손톱만큼도 나를 생각하지 않고 말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할 때. 그 밖의 어떤 때, 때, 때.

지난 주말의 통화가 그러했다. 결국 난 참지 못했다. 무례함을 튕겨내기만 했음 좋았을 텐데, 어떤 포인트가 건드려졌고, 안전핀이 뽑혀버렸고. 그래서 내가 먼저 과거의 잘못을 꺼내는 몇마디를 얹고 말았고, 너무 쉽게 투항같은 사과를 받아버렸고. 결론적으로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싸움을 해버린 셈이 되었다. 난 일주일째 가해자가된 패자의 얼굴을 하고서 앓았다. 오늘 쯤은 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아파서 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제는 상처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게 가끔은 낯설다. 그 시절엔 그토록 날뛰고 온몸으로 표현해도 “어린 것이 넌 뭘알아! 알필요없어!” 발언권은 커녕 알 권리 조차 보장해주지 않던 어른들이, 이제는 한명의 의견을 가진 어른으로. (어른이기만 하다면 좋으련만,) 당신들의 처지를 이해해줄 수 있는, 결국은 당신들이 기댈, 당신들 지난 삶을 보상할 어떤 결과물로 대한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분명 너무 많이 이해하면 나에겐 독이 될 앎들이다. 더는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한다. 이미 마음은 다 알겠어서 괴롭다. 당신이 되어본 것은 아니지만, 당신이 처한 상황의 곤궁함은 나 역시 비슷하게 겪고 아는 것들이기에.

그런데 나는 당신에게 짐지우고 싶지 않아 부러 말하지 않는데, 당신은 왜 나에게 말하는 건가. 왜 날 이해시키려하는가. 결국 그에 대해 더 많이 알아버린 나는 약자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은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 인식을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어쨌든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지식과 애정을 동원해서 당신을 알기위해 노력한다. 이해되는 사정 앞에서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이가 가닿을 곳은 무력감. 한계의 세계.

*

글을 쓰는 동안 얼마전 읽었던 영화 <벌새>의 시나리오집이 생각났다.

책 속 벡델감독과의 대화에서 김보라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명상과 심리학 그리고 트라우마에 관한 책을 많이 읽게 됐고, 그즈음 가족들에 대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오히려) 중학생 때는 안 그랬다. 그때는 가족들과 싸울 수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또 대학생이 되면서 가족들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그때는 가족들이 나를 ‘나쁜 년’이라고 불렀다. 나는 가족들이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만 하고 가족들을 추궁하는 나쁜 딸이었다.”
“나는 언제나 가족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드는 ‘골칫덩어리’였다. 어쨌든 나는 그 역할을 받아들였고 우리 가족의 역사와 트라우마로 파고들어 우리가 나눠야만 하는 대화를 나누도록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을 매몰차게 밀어붙인 것은 후회가 된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에 와서는 가족을 정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단순히 그들이 내 생물학적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사랑할 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난 혈연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서로를 지지하고, 안정감을 줄 때 진짜 가족이라고 느낀다. 내가 어렸을 때는 가족들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은 정말이지 가족들에게서 많은 안정을 얻는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에 대해 생각했었다. 감독은 가족들이 남긴 상처에 대해 가족 직접 집요하게 추궁했다고 한다. 그 인터뷰를 읽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눈물이 났었다. 얼마나 지난한 과정이었을지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빠졌다.
사랑할 수 있으려면, 정말로 그러려면 용감해야한다. 나 자신도 그러하거니와 사랑의 대상 또한. 자신과 대상에 대한 용기가 부족한 것일까. 살짝 들추려는 것만으로도 내가 무척이나 상처 주고있고, 또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직은 무리다. 어쩌면 영원히 무리하지 않음으로 평화롭고 싶다. 감정을 쓰는 것이 싫다. 마음을 쓰는 것은 온 몸을 쓰는 일이다. 머리만, 머리로 충분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이라도. 이해하기. 미울 때는 밉다고 말하기.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

*

“ 영지 :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지?
은희 : 불쌍해요. 집도 추울 것 같은데…
영지 : …그래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마.
은희 : 네?
영지 : 함부로 동정할 수는 없어. 알 수 없잖아.”


영화에서 내 마음에 가장 깊게 흔적을 남겼던 대화. 순전히 저 대화를 활자로 읽고 싶어서, 시나리오 집을 샀다.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함부로 동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화면이 시야를 가득 채운 영화관에서 보고 듣게 되었을 때, 후드득 몸을 떨었다. 고마워서. 언제나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 그러나 스스로에게 해줄 때는 생명력이 떨어지는 이야기, 타인의 목소리로 정말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해주는 영지샘이 너무 좋았다. 책으로 읽는데도 콧날이 시큰해져서 전철에서 혼났다.

타인의 고통을 연민의 감정으로 대체해 버리는 것이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쉬운 동정과 연민마저 허락하지 못하는 감정의 불구들이 넘쳐나는 것이 우리의 사정이지만) 고통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허락된 것은 연대투쟁, 혹은 연민하기 정도가 다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연대할 수 없으니 대체적으로는 연민. 그것이 무관심보다는 윤리적인 태도라고 믿었다.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 상상력이 없었던 거다. 여전히 누군가의 심연과도 같은 고통을 흘깃 보게 될때는 아득하다. 나에게도 그 깊은 심연이라는 못은 있지만, 같은 겪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기에 ‘안다’ ‘이해한다’라는 댓글을 달 수도 없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하는 고통이라면, 기준을 세운다.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함부로 동정하지 않을 것. 감정적 호들갑을 윤리적 안도로 바꿔치기 하지 않을 것. 불쌍해하는 자신에 안주하지 않을 것. 조심스럽게, 조금씩,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알려고 할 것.

*

토로하듯 써낸 글에 마침표를 찍어야겠다.
(어쩌면 약자의) 사랑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기’를 택한 내가 사랑에 대해 이해한 바는 (지금까지는) 이렇다.
사랑의 출발점은 ‘인식’이며, 알고자 하는 노력없는 ‘사랑’이란 가능하지 않다는 것. 그러나 안다는 것은 사랑의 출발일 뿐 사랑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 아는 것 이상의 사랑에 대해서 나는 아직 말할 수 없다는 것.
어쨌든 나 자신을, 세상을, 당신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는 아직까지는 그 모두를 ‘사랑’해 보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 정도.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0-01-18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보시는 거 보고 저도 어제 도서관 갔다 이 책 빌렸어요. ㅎㅎㅎ

공쟝쟝 2020-01-18 13:32   좋아요 1 | URL
영화도 보셨나요? 대부분은 책이 좋은데, 벌새는 영화가 더 좋았습니다! 물론 최은영, 정희진, 김원영님의 글과 벡델과의 인터뷰도 좋답니다(!)

- 2020-02-11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인생을 살면서 봤던 글중 가장 공감가는 글인 것 같아요 . 글 하나하나가 모두 공감이 되네요 . 글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울컥했어요 . 최근에 저도 책도 열심히 읽고 나름 나아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튀어나오는 기억들이 마음을 아프게 하네요 . 글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히 빼곡히 그동안 느꼈던 제 마음을 모두 적은 것 처럼 공감이 되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는것만로 굉장한 위로가 됐어요 . 특히 사랑했으나 세상에 잘못된 관점까지 아이를 수용해서 사랑하고 , 때론 나를 가해자로 만들고 , 어떤 방식으로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 결국 더 많이 알아버린 사람이 약자가 된다는 것도 그래서 이해하려 노력한다 . 그리고 함부로 동정할 수 없다. 라는 부분이 가장 공감 됐어요 .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에 계속해서 이해하려고 노력 해야하는 건 제 자신이지만 요즘은 받아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모두가 인생이 처음인 것 처럼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였을테고 . 아빠도 아빠가 처음 이였을 테고 , 오빠도 오빠가 처음 이였을테니 결국 고통은 있을 수 밖에 없고 완벽한 사람은 없다 라고 생각 하면서요. 그래도 여전히 그 기억들이 저를 아프게 하겠지만 언젠간 아프지 않는 날이 오게 될 거라고 믿어요 .
책 관련 수기 처음 댓글을 다는 글이여서 굉장히 서툴고 두서가 없네요 .. 좋은 글 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기다리며 읽을 수 있는 글이 생겨서 너무 기쁘네요 !

공쟝쟝 2020-02-12 19:57   좋아요 0 | URL
어머나 이런 고맙고 위로되는 댓글이.... ㅠㅠ 책을 읽으면서 상처가 해석되면, 조금은 숨통이 트이긴 하지만 해석은 해결은 아니므로 그래도 아프죠...
글에 공감이 많이 가셨다니, 기뻐요. 두서가 없다셨지만 문장마다마다에 진심이 느껴저서 저또한 위로가 되었어요.
고통에 해석을 입히고 주석을 주렁주렁 달아가면서, 우리 함께 조금씩 숨쉴틈을 넓혀 나가요. 댓글 너무 감사합니다🙏
 
러브레터 - [초특가판]
이와이 슈운지 감독, 토요카와 에츠시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누군가 인생영화를 물어오면 언제나 ‘러브레터’라고 대답했었다. 가장 좋아하는 감독 역시 단연코 이와이 슌지였다. 이 목록은 꽤 오랫동안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20대 내내 영화를 거의 안봤다. 이제서야 영화가 재밌다. 극장에서 혼영 때리는 맛도 알아버렸다.
어쨌든 러브레터의 재개봉 소식을 듣고, 친구에게 내 인생 영화좀 함께 봐달라고 요청했다. 해상도 낮은 모니터로 울면서 보던 이 영화를 극장에서 꼭 보고 싶었다.

일요일 오전의 한산한 지하철을 타면서, 여러번 다시 보았던 러브레터를 마지막으로 본지가 어느덧 10년도 넘게 흘렀다는 것을 알았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친구에게 말했다. “어떡해. 나 겁나. 다시 봤는데, 싫어하게 될까봐.” 페미니즘 이후에 떠나보낸 작가와 작품들이 그 얼마였던가. 물론 그 페미니즘 덕에 촘촘하고 세밀하게 사랑하게 된 것들도 많지만. 이별은 언제나 아픔을 동반하는 법. 그토록 좋아했던 이 영화가 나를 아프게 한다면 좋아했던 만큼 아플 것 같아서 겁이 났다.

*

군데 군데 답답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영화가 싫어지지는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하얀 눈, 겨울, 편지, 도서관, 나카야마 미호의 헤어스타일과 잔잔바리 음악들. 으아아~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것들 총집합. 스크린으로 보니까 확실히 또 좋은 거다.

그렇지만 사춘기 시절에 몸살나게 좋아했던 그 감성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가만, 떠올려보자. 이 영화가 그렇게 좋았다고? 왜지?
집에 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했다. 뭐였더라. 뭐였더라. 뭔가 지나간 코드가 있었는 데..... .

기억났다. 내가 그 영화를 보고 또 보았던 이유.
마지막 나레이션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전해지지 않은 고백들)

“가슴이 아파서 이 편지지는 아마 부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

전하지 못했던 진심, 삼켰던 말과, 차마 할수 없었던 이야기와, 해소되지 않아 목에 칼칼하게 남은 어떤 마음들.

이츠키가 느낀 가슴 아픔이 어떤 것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잊혀진 첫사랑이 보낸 늦게 도착한 고백에 대답을 못하게 되어 애석하다는 건지, 아니면 그의 애인이었던 히로코에게 미안함으로 가슴 아프다는 건지.
다만, 그 무렵 내가 그 대사에 투사했던 감정은 ‘말하지 못한 마음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던 듯 하다.

언제나 고백은 어려웠다.
사실, 고백이 어렵다기 보다는 내 마음이 어려웠다.

어떤 책을, 영화를, 음악을, 연예인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말할 수 있고 정말 실컷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일상에 존재하는 누군가를, 조심스럽게 품어왔던 꿈을 입밖으로 꺼내어 말하는 것이 나는 어려웠던 것 같다.

사춘기 때의 난 사람과 꿈에 대해서 만큼은, 그것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고 결단을 해야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게 무서웠다. 꺼내어 말했는 데 지키지 못할까봐.

그래서 결국, 단 한번도.
누군가에게 제대로 마음을 전하거나,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주장해보지 못한 채 십대를 보냈다.

*

좋아하는 것을 잘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참는 마음.
혹은 좋아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서 참는 마음.
그래도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는 거라서, 조용히 그 마음들을 간직하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영화 <동주>를 정말 좋아하는 데, 영화 속 동주 역시 좋아하는 ‘시’를 실컷 좋아한다고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딘가 부끄러워서, 무언가 결단해야 할 것 같아서.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에게 정말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식은 ‘쉽게 말하면 안되고, 참아야하는 것이고, 간직해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쉽게 진심을 전하는, 실컷 해버리는, 신나게 푹 빠져버리는, 열정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의 용기를?)을 동경했다.

*

가슴 아파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결국은 표현하지 못해서 앓았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츠키의 편지야 영화보는 내가 읽지만, (또다른 이츠키의 러브레터는 그가 죽고 나서도 2년 후에 도착한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슬프네...) 그 때 내가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은 그대로 묻혀버렸구나. 그래도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적어도 나는 아니까.

*

안녕. 소심했던, 무지 진지했던...
나의 십대. 사춘기.
그리고 영화, 러브레터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19-12-29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나요!! 나는 잘 지내요!!! 중학생 때 봤다는 기억만 남고 다른 내용은 기억이 안 나요. 사랑 영화 소설 보며 콩닥대던 게 먼 옛날이구나...

공쟝쟝 2019-12-29 21:28   좋아요 1 | URL
콩닥콩닥이라니... 흑흑.... 이 영화는 사랑영화가 아니라 이별 영화지만... 콩닥콩닥은 저도 아주 먼옛날.... 천년전 같아요

레삭매냐 2019-12-29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굉장히 오래 전에 이 영화를
봤는데... 보는 내내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뭐 그래도 정말 좋았다는 그 느낌.

가끔 설산을 바라 보며 오겡기데쓰까
라고 외쳐 보고 싶어지는 느낌이랄까요.

어려서 제 인생영화라고 생각했던
<시네마 천국>의 오리지널을 보면서
느낀 회의감이 손에 잡히는 듯 합니다.

공쟝쟝 2019-12-30 17:33   좋아요 0 | URL
시네마천국을 인생영화로 꼽으시는 분이 많군요ㅎㅎ 오랜 영화에서 느껴지는 향수가 있는 것 같아요! 레삭님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주어 고맙습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다락방 2019-12-30 0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님, [윤희에게] 봤어요? 러브레터 보고 부치지 못한 편지 얘기하니까 똭 윤희에게 생각나네요. 그 영화 꼭 봐요, 꼭!! 저 믿고 꼭 봐요. 알았지요?

공쟝쟝 2019-12-30 17:34   좋아요 0 | URL
벌새, 우리집, 매기에 이어 4대 올해의 한국영화라고 명성이 자자 하더군요. 올해안에는 어렵겠지만 볼꺼예요! 쿄쿄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