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깨어나는 마을
샤론 볼턴 지음, 김진석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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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땐 소설을 좋아했다. 독서반이었고, 꼬꼬마용 고전소설들과 먼나라 이웃나라 같은 만화, 어린이용 SF 소설도 꽤 진지하게 읽었다. 넉넉치 않은 살림이라 집에 책이 없어서 학급문고 같은데서 빌려 읽었던 기억이 난다. 머릿 속은 공상으로 가득했다. 조금 엉뚱한 꼬마였던 나는 읽은 내용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하며 동네를 걷다가 자주 넘어졌고, 수시로 어디엔가 부딪혀서 옷에 지저분한 것들을 묻혀왔다. 길을 잃은 적도 많았는데 그마저도 상상력으로 극복! 딱 한번 빼고는 어떻게든 집을 찾아냈었다. 


중학생 때 동네에 영화마을이 생기고 퇴마록과 드래곤라자를 필두로 한 판타지에 푹 빠졌을 당시 내 머릿속에선 소설 속의 장면들이 꽤나 근사하게 플레이 되었던 것 같다. 중3 드디어 집에 김유정 소설을 위시로 한 논술용 고전 전집이 들어왔고 1/3 정도 읽었던 것 같다. 어린왕자와 데미안은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꺼내 읽었다. 햄릿과 개선문을 좋아했고, 톨스토이와 괴테는 너무 두꺼워서 읽기를 미뤘던 듯. (그리고 영원히 미뤘...) 고등학교 때 가장 재밌었던 책은 역시 해리포터와 다빈치코드!! 그리고 국뽕이 무한대로 차오르는 김진명의 소설들!! ㅋㅋㅋㅋ 쉬는 시간엔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읽고 빡쳐하며, 야자시간엔 아라시의 노래를 듣고, 밤에는 고쿠센(일드)을 다운받아 보는 의식적 반일과 문화적 친일로 혼란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상할 정도로 고등학교 졸업 이후엔 소설을 안읽었다. 고전은 아예 빠이빠이 했고 판타지도 딱 끊었다. 한겨레문학상 탄 소설들이나 겨우, 그것도 정치적 목적(?)으로 읽었던 듯. 다시 소설도 좀 봐야겠다 싶어진 것은 아주 먼 훗날의 일인데, 그것도 동년배들의 한국소설 정도이지, 여전히 외국소설은 잘 안읽히고, 민음사/열린책들 등에서 나오는 고전은 세상 졸려서 못읽는 중이다. 정말! 안읽혀, 안읽힌다고!!! 남들이 다 좋아한다는 그리스인 조르바는 읽다가 차라리 나에게 니체 입문서를 다오!이랬고 위대한 개츠비는 뭐시 위대하다는 거여 짜증이 치솟았다. 그렇게 몇번의 시도와 패배 끝에 내 뇌엔 소설 읽는 근육이 퇴화되어버렸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포기해.. 포기하면 편해져.. ☺️

인문-교양서들을 읽으며 개념과 맥락이 이해될 때 나는 즐겁다. 가벼워도 재밌고 무거워도 무거운대로 이해 될 때 반짝 작은 희열이 있다. 그런데 소설은 이게 즐기려면 ‘상상’을 해야하는 범위인거라.... 인생에 별 스펙터클이 없었던 데다, 여행은 거의 한 적이 없고, 소설과 함께 영화나 드라마도 너무 멀리 했던 모양인지.... 그러니까 언제부턴가..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상상이 안된다. 상상이 안되서 너무 슬프다. 슬프니까 안읽고, 안읽어서 더 퇴화하고 ㅋㅋㅋ

이게 어느 정도냐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는 데, 드디어 고전격에 속하는 소설이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싶어 흥미롭게 읽어. 읽다보니 상상이 잘 안돼. 안되겠다!!! 더 재밌게 읽고 싶어서 무려 1988년의 영화 ‘프라하의 봄’(구하기도 어렵다)을 찾아내. 그리고 그걸 열씨미 본다? 나의 버석버석한 상상력에 필요한 이미지라도 얻어보기 위해. 그러면 당연히 소설의 내용을 처절하게 스포당하지😂 그치만 나는 책에 관해서 만큼은 의외의 근성이 있고, 스포한방이면 폭싹 식어버리는 영화와는 달리 소설은 ‘읽는 재미’라는 것도 있어서, 결국 이미지를 촉촉하게 추가해서 더 재밌게 읽어버린다규!! 😜

그렇게 ‘읽다가 상상이 잘 안되면 관련된 영화를 찾아서 보고 (없으면 시대적 배경이라도) 그걸 재료로 다시 읽기’는 비루한 상상력으로나마 재밌게 소설을 읽기 위해 고안해낸 나만의 방법이다. 상상이 안되서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덜 재밌게 읽는 것보단 스포를 당해도 그 재료들로 수월하고 풍부하게 읽는 편이 즐겁다. 


참고로 부작용도 있다. 이를테면 내 상상속 토마시는 훨씬 근사했는데 영화 속 토마시가 마른 멸치처럼 생겨서 소설 읽을 맛이 뚝 떨어진다거나 ㅋㅋㅋㅋ 디카프리오의 개츠비를 보고 헤어나오지 못해 소설을 읽다 말아 버린다거나(이건 걍 디카프리오가 너무 좋아서 소설에도 인물에도 이입이 안된 경우)ㅋㅋㅋㅋㅋㅋ

*

서문이 길었다.......

그러니까 ‘올해엔 소설을 다섯권 읽었네. 후우- 다시(소설 안.못.읽.으로) 돌아와버렸군...’라고 생각하고 있던 도중 이 책을 선물받게 된거다. 친애하는 알라딘 서재 이웃님께서 스릴러는 한권도 안읽어봤다는 나의 댓글에 실화냐며...... 그러게요. 믿기진 않겠지만 실화입니다. 상상을 못하는 저에게 무려 외국의, 그것도 스릴러, 심지어 고..고딕 미스터리 장르의 소설은 역시 장벽이 높았달까요;;;;;;;;;;;;;...... 읽어보라 다정하게도 책을 보내주셨다. 



응? 이게 은유가 아니라 진짜 뱀이라고? 응? 종교? 갑자기? 엉? 지금 내가 뭘 읽고 있는 거지? 하면서 600페이지 얇지 않은 책을 퇴근 후에 꼬박 3일만에 끝내버렸다. 확실히 재밌었다! 나는 범인이 궁금했고, 주인공의 변화와 성장스토리가 애틋했고, 무엇보다 뱀이라는 소재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등장하는 뱀들을 검색해서 봐가며 읽었는 데, 징그러우면서도 매혹된다고 해야하나. 그리고....(지금부터 본심구간) 읽으면서 너무 서운했다. 어쩌다 내 소설 뇌가 퇴화가 되가지고 참. 어쩌다가 내가 그 흔한 CSI같은 드라마도 본적이 없어가지고 참. ...아니 뱀 다큐라도보고 시작할걸 그랬나??.. 아이고.... 그니까 내가 상상력이 좋았다면 정말 너무 재밌게 읽었을 것 같은 데..ㅜㅜ 장면 장면이 재밌는 데 상상이 잘 안가....ㅜㅜㅜㅜㅜㅜ

“(343) 뱀들... 수십 마리.. 어쩌면 수백 마리인지도 몰랐다. 아이 장난감에서 리본이 풀려나오듯 뱀들이 풀밭에서 출렁거렸다. 미끈하고 촉촉한 몸체가 달빛을 받아 번득거렸다. 뱀들은 집단의 목적, 공동의 목표에 따라 이동했다. ...”


아.. 상상해보고 싶은 데, 뭔가 흡족하게 떠올려지지 않는다. 내가 상상력이 풍부했다면, 시각적으로도 촉각적으로도 정말 흡, 하고 숨멎할 장면이었을 것 같은 데.. ㅜㅜ 이 뿐만 아니라 소설 전체적으로 나의 비루한 상상력을 탓할 부분들은 너무 많았고, 그래서 앞으로 스릴러를 읽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영화를 많이 봐두리라 다짐했다. 이 재밌는 걸 더 재밌게 읽고 싶도다!!! 막판 저택에서의 결투(?)도 상상하기에 따라서는 정말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은 데... 생각이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서.. 그런데 읽다보면 다음이 궁금하니까 페이지 확확 넘어가고 그래서 ㅜㅜ 서글펐다ㅜㅜㅜㅜ 따싯, 앞으로 영화 많이 볼거야...ㅜㅜㅜ


<비밀은 없다>에서 손예진이 본격적으로 흑화하면서 운전대를 잡으면서 이런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자. 생각하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하자.”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고, 지금까지 본 모든 영화를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대사다. 쉽게 살고 싶을 때, 나약해지고 싶을 때, 나는 언제부턴가 이 장면을 떠올린다. 나를 구할 것은 나밖에 없다. 나를 먹여살릴 사람도 나 밖에 없다. 포기하고 싶으면, 의존하고 싶으면 댓가를 치러야한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시 생각하자.

여자 주인공이 절박한 상황에 쌩 혼자 내던져졌을 때. 결국에는 아무 것도 믿을게 없고 믿어서도 안되고 의존할 수 없고 의존해서도 안될 때. 그때 쨘 하고 남자주인공이 나타나서 구해준다면야 그거야 말로 클리셰고 신화고 동화(현실 속에서 그런 동아줄이야 말로 개 썩어문드러진 줄이기 십상이다. 걍 상황이 너무 힘드니까 내 절박함 투사한거다. 그딴 거 없고 혹시 있으면 의심해라.)이고, 그런 방식으로 문제해결하는 거 너무 싫으니까 - 나는 바란다. 특히 그가 여주인공이라면 끝까지 정신줄 잡고 생각하기를. 의탁하지 않기를. 두다리로 일어서기를. 독하게 독립을 쟁취하고, 내가 나를 구할 수 있다는 경험에 근거한 자존감으로 이후의 삶을 살아가기를. 만약 가능하면 그것을 기반으로 관계맺고, 연대하기를.

친애하는 서재이웃님이 왜 이 소설을 좋아했는 지 알 것도 같다. 어쩜, 내가 이 소설이 좋다고 생각했던 이유와도 같을거라 추측해본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주인공 클래라는 타인의 도움을 거부하는 사람이지만, 소설의 후반부에 가면 그러한 그녀의 성향이 장점이 되어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생각해봐, 생각하자. 가만히 생각하자. 움직이자. 생각하자. 머리를 써! 라고 끊임없이 되뇌이는 클래라. 결국은 생각해내는 클래라. 쉽게 모면하지 않는 사람. 그녀는 의존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건강한 의존으로 나아가기 위해 먼저 자기자신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만약 위기의 상황에서 클래라가 보다 쉽게 도움을 요청하고, 타인과 함께하는 모험을 감수하고 헤쳐나가는 캐릭터였다면? 난 이 소설을 별로라고 생각했을 거다.

상처를 구실삼아 나를 무고한 피해자로 만들어 주저 앉아버리고 싶은 유혹을 경험할 때가 많았다.
물론 때때로 충분히 남탓, 세상탓을 할 필요도 있긴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닌 것 같다.

“(498) 나는 결단을 내렸다. “그냥 흉터일 뿐이에요. 그게 제 인생을 망치지는 않아요.”


상처를 통해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그래서 내가 이만큼 망했다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건재하다는 뜻이고, 아프지 않았으면 몰랐을 진실을 마주했다는 것이고, 결코 나 자신보다 흉터가 클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가닿기 위해선 나만의 해석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언어가, 이야기가, 타인의 삶이 필요하다. 비록 소박하더라도 시간을 들인 나의 해석이 없다면 결국 상처에 삶을 갖다 바치게 되더라. 물론 해석은 살아가면서 계속 변한다.

살아가야 하니까.
어떻게든 일어서야하는 나는, 아직까진 사람이 두려운 나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 간접경험은, 타인의 언어는. 불가해해서 위독해져버린 해묵은 상처를 해석해 내는 데 좋은 재료가 된다.



덧, 아 물론 순수하게 인생의 락도 된다!! 소설.안.못.읽의 삶을 극복하쟈~~~ 뇌야, 훈련해서 진화하쟈~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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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1-22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옳습니다. 논픽션은 속여도 소설은 안 속여요. 소설은 대놓고 거짓말이야! 하고 거짓말치니까....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11-22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프라하의 봄 토마시는 진짜 별로였다..저는 차라리 밀란쿤데라 할배 얼굴을 토마시로 상상하고 읽습니다. ㅋㅋㅋ

공쟝쟝 2020-11-22 10:51   좋아요 1 | URL
헐ㅋㅋ 젊은 쿤데라 고집스럽게 잘생겼네요?ㅋㅋㅋ 확실히 이편이 나앗겠어 ㅋㅋ 하지만 줄리엣비노쉬는 진짜 테레자였어요 ㅠㅠ 이뽀

단발머리 2020-11-22 12: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데.... 특히 서문이 너무나 좋아요. 이렇게 공쟝쟝님 독서역사에 대해 알게 되네요.
저도 아직 소설은 어려운데 철학책 척척 읽는 쟝쟝님이 소설도 섭렵하게 되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질까 기대감 200%에요.
햄릿이랑 개선문 좋아하는 중학생이라니!! 고급지고 품격있고 우아합니다. 전 중학교 때 뭘 읽었나 생각해봐요. 난 햄릿도 개선문도 모르는 중학생이었고, 흠....펄벅의 <대지>를 읽었네요. 난, 대지와 부활의 중딩.

공쟝쟝 2020-11-22 23:16   좋아요 0 | URL
매번 다정하게 좋아해주시는 단발님, 철학책 척척 이라고 말씀하시다니.. 철학입문서를 어려워하며 읽는 사람으로 정정해주세요. ㅋㅋㅋㅋ 펄벅의 대지는 개선문보다 두꺼워서 읽다 말았던 것 같아! 대지와 부활의 중딩 멋져 😘

수이 2020-11-22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른 멸치 대목에서 너무 웃어버렸어요, 쟝쟝님의 인생관을 짐작하게 하는 페이퍼, 그대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이구나 싶은.

공쟝쟝 2020-11-22 23:18   좋아요 0 | URL
강인해지고 싶고 독립적이고 싶어서 꾸역꾸역 독서하는. 그런 사람 되고 싶다용🤧

비연 2020-11-22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른 멸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11-22 23:1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제가 진짜 안좋아하는 상임..ㅋㅋㅋ 대머리만큼 싫엇!!

deadpaper 2020-11-22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쟝쟝 읽히는 어감이 좋네요

공쟝쟝 2020-11-22 23:19   좋아요 0 | URL
마지막 쟝 드립을 알아차려주시는 센스✌🏻
 
티끌 같은 나
빅토리아 토카레바 지음, 승주연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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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시골에서 막 올라온 휘둥그래진 눈을 한 여자.
그녀가 자신도 몰랐던 욕망을 발견하게 될지, 혹은 너무 순진한 나머지 비참한 세상의 매운 맛을 보게 될지 아직은 모른다. 다만, 영화 <브루클린>의 주인공 에일리스처럼 혼란스럽고 외로워 할 것임을, 그러다 이내 돌아갈 수 없게 된 스스로를 알아차리게 될것임을 안다. 결국 다시 돌아가기 위해 야심찬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다. 앞에 놓인 삶이 살기도 전에 지긋지긋해서 도망쳐온, 익명의 도시에서 더 지긋지긋해진 생계와 악전고투하게 되는, 그러다 본질이 변질되버리는 이야기가 바로 내 이야기다. 지긋지긋함은 같지만 살펴보면 다르다. 두번째의 것은 내가 선택했다. 그래서 더 슬프고 더 괴롭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는다. 혹여 돌아간다 하더라도 이미 많이 변해 본질이 없으니 돌아가지 않은 셈이된다. 그러니 이 소설을 어찌 좋아하지않을 수 있겠는가. 내 이야긴데.

“(15) 안젤라는 집(좀 더 정확히는 잠시 신세지는 여자의집)으로 3번 전차를 타고 갔다. 전차는 텅 비어있었다. 안젤라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모스크바 사람들을 보려다 갑자기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전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아가씨, 왜 울어요?”라고 묻는 사람은 고사하고 그녀를 애써 위로하는 사람도 없었다. ‘인생은 길고 앞으로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라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조금씩 그녀의 슬픔에 빠져들었고, 그들 역시 어느새 훌쩍이기 시작했다. 어린 아가씨의 슬픔과 자기 연민에서 비롯된 흐느낌이었다. 물론 자기 연민 만으로도 눈물을 쏟을 이유는 충분했다.”

다정도 하여라, 함께 훌쩍여주는 모스크바의 사람들. 안젤라, 2020년의 서울 사람들은 이어폰을 꼽고 스마트폰을 본답니다. 눈물은 아마 마스크 속으로 감출 수 있을거예요.

지하철에서 서울사람들을 구경하려다 갑자기 통곡이 밀려왔던 날들이 생각났다. 사연있는 젊은 여자처럼 보일까봐 고개를 푹숙였는데 사람들은 내가 우는 거 다 알았겠지. 줄줄줄 흘러가지고 닦이지도 않을 정도로 터진 눈물이 멈춰지지가 않았다. 서울 살이 4년차까진가 그랬다. 정작 운 사연은 기억 안나는 데, 여튼 기분이 비참했고, 그 와중에 서울 사람들은 너무 다들 멀쩡해 보여가지고 더서러웠고 나만 이방인같았다. ‘저는 지금 어딜가나 사람이 있어 놀라운 인구밀도와 이동하기 위해 버려지는 속절없는 시간들이 3년 째 적응이 안돼서 눈물이 차오르는 데 여러분은 이게 일상이라는 거죠?’ 4년이 지나고 나자 놀랍도록 적응이 되었다. 지금은 도시의 이 무심한 다정함이 좋다. 그것도 매우.

“(319) 마리나는 앉아서 개미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개미들은 모두 자기 힘 닿는 한, 혹은 힘에 부치는 양의 흙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등에 무거운 달걀을 이고서 일렬로 가고있었다. 개미는 무거운 짐에 눌렸다가도 계속 끌고 갔다. 가는 도중에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멈췄다 가기도했다. 아마 멈춘 그 순간에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는지도 모른다.”

이번주를 버티게 한 것은 지난주에 읽은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소설이다. 아마 올해 최고의 소설이 될 것 같다. 나도 그녀들처럼 바삐 살아내자. 이악스러운 사랑스러움. 계산을 하긴 하지만 결국은 아주 쪼꼬만 계산인. 사실은 다음의 생존을 위한,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은 선택과 현실인식. 그리고 그 현실인식에 도움되는 사랑, 현실, 또 사랑들. 사랑이 지날수록 그녀들은 뻔뻔해지지만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여자들에게 뻔뻔함의 의도와 선악을 묻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96) 그녀는 두 부류의 남편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부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고, 두 번째 부류는 돈 많은 남자였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남편은 아내한테 붙어서 살아간다. 그러면 여자는 둘이서 함께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물론 힘든 일이다. 반면 돈 많은 남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무례하며 결국은 아내를 버린다.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가는 당나귀로 살 것인지, 자기를 마구 짓밟고 척추를 부러뜨려도 참고 살 것인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물론 지조와 성공 두 가지를 다 갖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하지만 하나를 가지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

여자, 아직은 세상과 자신이 궁금한 여자. 자신을 잘 몰라 불분명한 경계선 때문에 많은 것을 침범당하게 내버려두는 여자. 혹은 침범하는 여자.

바삐 몰아치는 세상 속에서 물정을 몰라 어물쩡하던 그녀들은 살아야하고 살아있으므로, 매일매일 먼지를 닦아내고 끼니를 만들어내면서도, 가진 자원들을 재료 삼아 삶에 불어닥치는 문제들을 해결해간다. 문제는 계속해서 생겨난다. 그 와중에 사랑한다. 아무튼 기운이 넘치는 여자들이다.

“(197) 마리나가 창가로 다가왔다. 루스탐을 발견하고는 그녀 역시 시선을 그의 눈높이에 맞췄다. 그들의 시선이 만나는 자리에 엄청난 양의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 전기장에 모기나 딱정벌레가 앉는다면 그대로 죽어서 떨어질 것이다.”

빠지는 사랑에 속수무책인 시절을 지나 완숙해진 그녀들은 때때로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하려 하거나 사랑하기로 한 것을 사랑하기도 한다. 사랑은 불가항력일까? 천만에 어떤 사랑은 전혀 어렵지 않다. 젊음 혹은 매력을 이용해서라도 자신의 가능성과 재능을 꽃피워보려는 그들 삶의 노력방식을 십분 이해했다. 내게 그런 재능과 목표가 있었다면, 하나밖에 모르는 그런 사람으로 사는 것이 가능했다면, 뭐가 대수일까. 하나를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게. 하지만 그녀들은 다른 것을 포기하는 방식을 취하지도 않는다. 가능하면 여러가지 다 갖는게 뭐가 어때서? 만약 가능하지 않다면, 깔끔하게 손터는 것도 방식이다. 애초에 가진 게 없었으니 0이 되어도 본전이라고 속편하게 생각한다.

“(122)
“내가 성공하다니요?” 안젤라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니콜라이(안젤라의 돈많은 애인) 말이야…”
“아…….” 안젤라는 영혼 없이 ‘아’를 길게 발음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성공이 아닌 자기 자신의 성공을 원했다.”


소설은 가까운 과거의 러시아 여성들의 삶을 다룬다. 몇편의 단편을 제외하고는 한 여성의 일대기를 빠르게 크로키하고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82년생 김지영보다 농밀하게 내면을 그려낸 55년생 마라쯤이라해둘까?

소설을 덮고서 심장이다 저릿저릿했다. 삶에 대한, 퍽이나, 깔끔한 인정. 아, 참, 열심히도 살았구나. 그것은 슬프거나 애석해할 필요가 전혀 없는, 과몰입할 필요도 없는 그냥 사실일 뿐이다. 가끔 너무 열심히 사는 것 같을 때, 이렇게까지?하며 억울하고 서글펐는 데. 이렇게까지해야 겨우 유지할 수 있었고, 그렇게까지해서 작게나마 얻어낸 것들을 포기할 수도 없더라. 열심, 그것은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벌을 걸친 댓가일 뿐.

한동안 내가 천착해 읽었던 책들은 어떤 부분을 잡아채며 못견딜 순간들을 견뎌낼 자그마한 단서를 제공했었다. 응시하는 글들이라고 해야하나. 그런데 살만큼 살아본 작가가 속도감있고 담담하게 그린 통째의 삶들은 그 머무름을 배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부분에 과몰입하지 않는 여성작가가 그리는 전체로서의 이야기. 나에게는 적당한 순간 적당히 찾아온 소설이었다. 부분에 천착하다 보면 과몰입하게 되고, 과몰입하는 순간 내가 가장 딱해지고 불쌍하게 느껴진다. 솔직히 술도 안마신 채로 자기연민에 빠진 어른을 보는 것은 볼썽사납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자주 술을 마시고(자기연민 좋아), 그 상태를 자책없이 유지하고 싶어 결국엔 돈을 벌고 운동을 하는 것 같다. 알콜 중독자라는 소리다..

“(133) 나타샤는 여전히 술을 마셨지만 예전과 달리 매일은 아니었다. 며칠간 마시면 오랫동안 맨정신으로 생활했다. 이를테면 3일 동안 술을 마시고, 3일 동안 숙취가 지나고, 3주동안 금주를 하는 식이었다. 의학 용어로 ‘관해’라고 불렀다. 3주에 한 번 관해는 정말 엄청난 발전이었따. 하지만 의사들은 완치를 보장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최면술 치료를 권하지도 않았다.
최면술 치료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 침투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방법을 사용하면 사람이 변하는데, 보통 상태가 악화되곤 했다. 나타샤가 지금처럼 근면하고 명랑하고 착한 상태로 사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다. 맨정신으로 우울하고 탐욕스럽게 사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이었다.”

중요한 진실에 굳이 가닿을 필요는 없다. 약간은 미친채로 (그러나 미친척한다고 믿는채로) 근면하고 명랑하고 착하게 살자. 어쩜 그게 진실아닐까. 버티는 티끌에게 필요한 것은 생활과 갈증해소일 뿐! 목이마르다. 더 많은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더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사랑하고 싶어졌다. 좋은 소설이라 많이 읽히면 좋겠다. 모처럼 자신있게 추천한다.



#고양이는달에도흔들리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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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1 08: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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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1 09: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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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1 14: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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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1 15: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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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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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은 읽지 않는 장식용 책들로 가득하다. 그냥, 너무 장식용 책들이라서 눈길조차 주지 않지만 그 날은 뭐라도 빼들고 가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무의미했다. 정확히는 살아가는 일에 의미를 부여할 에너지가 남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겠지. 어느 영화의 장면처럼 툭 치거나 후 하고 불면 사라지는 입자들처럼 남김없이 흩어지고 싶은 아주 늦은 저녁의 퇴근 길.

“(p.38) 먼지. ... 작고 쓸모없는 물질, 청결을 위해 제거되어야 하는 것, 모든 생명체가 덧없이 소멸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존재하는 형태. ... 한곳에 정주하는 일 없이 작은 바람에도 속절없이 흩날리며 지금껏 나는 살아왔으니까. 태어나지 않았다면, 하고 가정할 때 마다 세상 곳곳을 누비는 먼지를 떠올리던 날들이 있었으니까.”

단순한 제목의 단순한 표지. 소설의 시작은 무심하고 물끄러미 흘러갔다. 나 역시 무감각하게 읽기 시작했다. 더웠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생각하기 싫을 때는 역시 누군가가 안내하는 이야기가 최고지 하면서.

“(p.43) 파리 한 마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주위를 맴도는데도 노파는 거푸집으로 찍어낸 조각상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노년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관성이 되어버린 외로움과 세상을 향한 차가운 분노, 그런 것을 꾸부정하게 굽은 몸과 탁한 빛의 얼굴에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모습.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타인을 보며 세상으로부터 버려지는 나의 미래를 연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복희는 노파의 이름일까.”


그러고 보면 나는 시시한 오늘을 만들기 위해서 꽤나 노력해왔다. ‘꽤나’라는 부사는 나 자신에게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실은 아주 애써왔으니까. 이따금 견딜수 없어지는 것은, 계속 애써야 하니까. 너무 바빠 혹은 너무 힘에 부쳐 정신 줄을 놓고 싶은 순간에, 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에도 ‘그래도’를 꼭 마음 한켠에 품고 사니까. 숨막혀 하면서도 숨쉴 구멍 하나를 머릿속에 만들고 있을 때 나의 표정은 살아있기 보다는 정물같은 모습일 것이다. 매일 아침의 지하철에서 나는 그런 정물에 가까운 사람들의 표정을 곰곰이 뜯어보기도 했었더랬지. 요즘은 꽉 낀 마스크 때문에 그 조차도 어렵지만.

그래도 정물은 아니니까. 사람이니까. 아무리 표정이 없어도, 내가 알아챌 수 없다고 해도. 그러니까 내가 힘들다고 해서, 내 고통이 아주아주 크다고 해서 쉽게 단정짓지는 말아야할. 누군가의 삶. 곡진한. (아직은 들여다볼 엄두가 나지 않는.)

“(p.176) 이제 내게 추연희 라는 이름은 복희 식당에서 노동하던 노년의 여성만을 지칭하지 않았다. 상실하면서도 꿈을 꾸던, 상처 받았으면서도 그 상처가 다른 이의 삶에서 되풀이 되지 않도록 애를 썼던, 너무도 구체적인 한 인간이었다. 추연희, 1948년 생, 백복희의 두 번째 엄마.....”

사람은,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어떤 온기를 지닌 존재라는 건. 너무도 구체적이고 복잡한 궤적의 총체라 쉽게 알려하거나 품으려 들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난 아직 나 자신도 모르잖아, 나 하나로도 이렇게 벅차잖아. 하면서. 여전히 그 생각에 변함은 없지만.

퇴근길 꼬박, 늦은 밤 꼬박. 길지 않은 소설을 몰입해서 읽고 “사느라 살아내느라 너무 고생한” 한(혹은 여럿) 여성의 삶과 이별하며 정말 많이 울었다. (울고 싶어서 소설을 이용한 것인가.... ) 이 눈물의 의미는 뭔가, 생각하다 나에게 그런 마음이 여적 남아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가 아프다고 해서 누군가가 아프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라는 마음. 그냥 나도 덜 힘들고, 너도 덜 힘들었으면 좋겠는 마음. 사랑하고 싶은 마음 끝에 매달리는 나약한 나에 대한 불신의 마음. 완전할 필요가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머리로 알면서도 아직 누군가를 마음에 들이기는 힘들겠다는 마음까지도.

내가 이렇게 치사해 엉엉.

그렇게 울고 나니까 그래도 쪼금은 더 잘 살고 싶어지더라. 뭐 어떻게 구체적으로 방법은 생각안나지만 누군가를 사랑은 못해도 너무 나만 생각하며 살지는 말아야지 그랬다. 그래, 나는 먼지가 될 것이고 언제고 암흑으로 돌아가겠지만. 사는 건 어차피 고생이고, 이,그,저 고생하다 헤집어진 마음의 상처에 단정하지도 않은 짧은 댓글을 다는 것 말고는 맞서는 방법을 모르는 나이긴 하지만. 얼른 단단해져서, 조금은 더 강해져서, 스스로 믿는 구석이 손톱만큼이라도 생겼을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만약 그런 기회가 온다면, 그것이 가능하다면, 내가 허락할 수 있을 만큼의 마음 한 조각은 내어주자고.
그냥, 계산 없이, 단순하게.
가능한 만큼만, 진심으로.

시시 때때로 비릿한 냉소가 올라오긴 하지만, 난 역시 착하고 따뜻한 게 좋다.
위악보다는 위선이.
위선보다는 진짜로 선한게.
그리고 기왕 선할거면 너무 무르기보단 적당히 단단했으면 좋겠어.
물론 단단함이 선함을 압도하면 안되지.
적당히 무른 단단함으로 선하게 살고 싶다. 으앙.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너무 쉽게 살지는 말자.

그러다 사는 게 너무 어렵고 아파지면,
어렵지 않고 착한 소설 한편 읽고 울다 자야지.
그런 날 읽기 맞춤했던 좋은 소설이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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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31 0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1 0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1 0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1 0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lex 2020-09-07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한 진심 / 조해진 지음˝ 읽으란 얘기인지, 말란 얘기인지 모르겠습니다. ‘독후감‘과 ‘외로움‘이 겹쳐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사서 읽어도 될까요?

공쟝쟝 2020-09-07 18:21   좋아요 0 | URL
사서 읽으셔도 되는 소설입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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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권고 사직을 당했다. 죽을 상을 하고 있을 것 같아서, 시간을 내 만났더니 의외로 싱글벙글이다. 퇴직금은 없었지만 실업급여가 나온다나. 쉬는 김에 뱃살타파를 위해 헬스를 끊었다고 한다. 헬스를 다니다 보니, 문득 헬스 트레이너가 되볼까? 싶었다고. 아서라, 배 나온 트레이너한테 누가 pt를 받겠냐. 아, 그건 좀 그렇지? ㅋㅋㅋㅋㅋ

너는 어찌 지내냐 묻는다. 나? 야근. 그제도 그그제도 아마도 내일도 모레도. 요가 끊어놨는 데 야근 보름 넘게해서 하루도 못감. 돈을 바닥에 버리는 중이야. 헬스라니 부럽당! 어제는 문득 걱정이 되서 구글에 과로사를 검색해보았어. 근데 나 정도로는 안죽는 대.

이상하다. 짤린건 쟨데, 죽을 상은 내 얼굴이었다. 꿱.

야, 니가 물어보니까 깨달았어. 요즘 삶이 실종됐어. 저녁이 있는 삶은 무슨, ...삶이....없다..... 그러고 보니 네놈의 싱글벙글은 ‘삶’을 가진자의 해맑음이로구나!!! 하나도 안부럽지만 어쩐지 약 오른다!!!!!!!!!

“... 너의 시간이 넘쳐 흐르는 얼굴을 보니 넉달 전 프리랜서 (반백수)때 내 기분이 생각나”
“어쨌는데?”
“대체로 불안하고 자주자주 행복했어.”
“헐ㅋㅋㅋㅋ표현 찰떡ㅋㅋ넘나 내 기분”
“웅, 내가 말해놓고도 괜찮아서, 놀람ㅋㅋ”
“근데 지금은?”
“지금은 (멋진 표현 생각중..)불안하지는 않은데 행복하지도 않아. 그래도 불안한 것보단 나은 듯”

어떻게 인생에 중간이 없냐? 극단의 둘 중 하나 밖에 없는 거여?? 어쩔수 없잖아. 어차피 빈민청년의 삶은 놀거나 갈리거나다. 그러니, 갈리지 않는 동안은 행복해라. 자주자주. 그러자, 그럽시다!

의미는 없는데, 재미는 있는 이야기를 하며 쉴새 없이 큭큭댔다. 실업급여에서 나온 짠내나는 커피를 얻어 마시고 ..나는 칼국수를 사줬다. 우리는 끊임없이 토크 박스를 굴렸지. 최근에 그가 본 사주 이야기, 나이드는 이야기, 살이 찌는 이야기. 그리고 바로 이 책 이야기를 했다.

*

일의 기쁨과 슬픔.

이 책 재밌더라ㅋㅋ
엇! 나도 읽고 있는 데.
졸라 공감되지.
응. 인간이 치사해지는 모습이 너무 우리들의 이야기야ㅋㅋㅋ

“맞아맞아. 있잖아 근데 말야, 여기서 주인공이 빛나언니가 잘 살기를 바라잖아”
“웅 나도 비슷한 경우 있었는 데, 뭐랄까 떨떠름 하면서도 그녀의 방식으로 그냥 잘~살았음 싶던데”
“내 생각엔 주인공이 좀 더 형편이 나았기 때문에 그런거야. 만약에 빛나가 더 좋은데로 시집갔거나, 주인공이 더 못살았어봐. 배 아파서 부러워서 잠도 못자고 저부 퍼부음 ㅎㅎ”

그런가.😯
그럴까.🤔
그럴 수도.🤭 (새로운 해석!!)

*

정말 후루루룩 읽히는 리얼리즘(!) 소설이다. 단편 한편 한편이 다 막 공감이 된다. 

그래요, 요즘 젊은 것들은 이렇게 치사하고도 계산적이면서 합리화를 잘한답니다😘

아주 막연히 언젠가 내가 소설을 쓴다면 내가 만난 인간 군상들과 나 자신에 대한 풍자소설을 쓰지 않을까 했었다. 그런데 장류진 작가님이 다 써버렸네?... 내가 쓰려던 게 진짜 딱 이런 느낌이었는 데 ㅋㅋㅋㅋㅋ 아쉽다 쩝. 안녕.... 쓰지 않(았)을, 내 미래의 소설이여... 하지만, 다음 책이 기대되는 새로운 동년배 작가를 만난 것이 훨씬 더 반가우니. 내 쿨하게 너를 보낸다. ㅋㅋㅋㅋ

대체로 불안하고 자주자주 행복하던 반백수 시절이 그리운.. 야근에 야근에 야근으로 연명하는 연말이다. 요즘 나에게는 유일하게 허락된 독서타임인 출퇴근 길, 좋은 벗이 되어준 소설!

추천합니다! 한 번 읽어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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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9-12-16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체로 불안하고 자주자주 행복했어!! 명문장~

공쟝쟝 2019-12-17 14:33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ㅋㅋㅋ 🥰 알아주시니 고맙습니다!

비연 2019-12-17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쉬고 싶은 1人, 예전 잠시 쉴 때가 문득 그리워지게 되는 글이네요... 인생;;;

공쟝쟝 2019-12-17 14:34   좋아요 0 | URL
쉬고 싶은데 ㅜㅜ 그럼 영원히 쉬게될까봐.... 하하하~~~

정프로 2023-04-29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댓글로 소설 하나 읽은 느낌이에요

공쟝쟝 2023-04-30 10: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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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의 구로-가디 지하철은 얼마나 지독하던지. 영화 부산행처럼 문을 비집고 질서 없이 들고 나가는 사람들 틈에서 허우적 대었다. 지하철 인구밀도가 심각한 날이면, 나는 예의 그 소설을 떠올린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셔야겠지만, 그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전철을 타야 하고, 전철엔 이미 탈 자리가 없다. 타지 않으면, 늦는다.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곳을 택하겠는가.
처음 열차가 들어오던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열차라기보다는, 공포스러울 정도의 거대한 동물이 파아, 하아, 플랫폼에 기어와 마치 구토물을 쏟아내듯 옆구리를 찢고 사람들을 토해냈다. 아아, 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뭔가 댐 같은 것이 무너지는 광경이었고, 눈과 귀와 코를 통해 머리 속 가득 구토물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야! 코치 형이 고함을 질러주지 않았으면, 나는 아마도 놈의 먹이가 되었을테지. 정신이 들고 보니, 놈의 옆구리가 흥건히 고여 있던 구토물을 다시금 빨아들이고 있었다. 발전(發電)이라도 일어날 기세였다. 힘! 그때 코치 형이 고함을 질렀다. 해서, 엉겁결에 - 영차,영차 무언가 물컹하거나 무언가 딱딱한 것들을 마구마구 밀어넣긴 했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어찌 내 입으로 그것이 인류(人類)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박민규, 카스테라


부득이한 인류들.
각자의 사정으로 서둘러야 하는.
굳이 한발 재겨설 수 없는 그 틈으로 온몸을 우겨넣어야 하는.
어제 회식한 것이 분명한, 누군가의 코트에 배인 찌든 고기와 알콜냄새를 한껏 맡으며 생각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미간을 찌푸려 안쓰러워하며 오져하며 물어볼 것 같다고. 
“고생이다야, 그래도 어떻게 먹고는 살아보겠다고 나왔냐잉?” 
그러면 또 난 대답할 거다. 
“넵넵! 전 아직 괜찮은 데, 이렇게 많이 이 모냥으로 만드는 건 무슨 악취미래요? 하나님 좀 너무함.”


누군가를 쉽게 연민할 수 있었던 시기의 나를 떠올려 본다. 내가 감히 그러했구나 하고. 그때 내 주머니 속에는 이만원이 있었는데, 밀린 방값 육십만원이 없어서 우는 친구가 너무 불쌍했었다. 무슨 용감함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방값은 아버지에게서 나왔다는 게. 어쩐지 부끄러웠었다. 
그 순간 그게 왜 떠올랐을까. 그때의 내가 정말 이상하다. 하나님과 나의 거리만큼.


자수성가가 자랑인 사람들을 종종 본다. 때때로 존경심을 갖기도 했던. 그 시절 그들의 운과 그들의 출발선은 극복할 수 있을것도 같았다면, 다만 나에겐 젊음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겠구나, 한다.


집 가까운 곳에서 불이 난 적이 있다. 그때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느 뉴스에서 본 고양이가 인덕션과 함께 재가 되었다더라,를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인덕션에 락을 걸면서, 나 지킬 것이 많은 사람이 되었네? 했었다. 잘 포장해봐야 박스 세네개 겠지만, 그만큼을 잃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하염없었다. 
다 내손으로 이룬거야 하기엔 아직 갚고 싶은 빚이 많이 있다.


자수성가하지 못해서 다행이다. 아직은 어떤 식으로든 감사함을 느끼니까. 당연한 것이 없으니까. 노력한 만큼 돌아온다는 믿음을 설파하기 어려우니까. 술잔이 졸고 누군가가 자신의 성공담과 실패담에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인생은 그런거야 라고 단정지을 수가 없어져서, 막막함을 함께 까무룩 막막할 수 있으니까, 그 속상함이 주는 위안이 있다.

시대를 지나는 모두가 자기 세대는 과도기라고 생각한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생각이 깊어졌다.연민은 줄고, 책임 질 것들은 많아지고, 더 얻고 싶은 것은 없으나 잃을 것들에 대해서 셈하고 있다.


매일을 겪어내면서, 고단해지면서, 용감함이 사라지면서, 지킬 것들을 지켜가면서, 미워할 것들은 미워하면서.
부득이하게 폐를 끼치기도 하면서.
쉽게 슬퍼하기보다는 자주자주 미안해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더디 갈 수는 없어 꾸역꾸역 몸을 밀어넣던 그 사람들과 함께.


금요일의 심야버스는 생각보다 사람이 없어서, 잠들어버리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적어보게 되더이다. 서로 미안해하며 몸을 밀착시키던 오늘의 지하철과, 치열하게 빠져나가기 위해 결전의 태세를 갖추던 나와, 이만원. 택시를 타지않아 아낀 내돈 이만원. 등등.

누군가의 곤란함에 대해 수월하게 연민하지않게된 것은, 불행일까 다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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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3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3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3 1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3 18: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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