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 동녘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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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을 떠올리면, 삶의 지축이 흔들리는 것 같은 어떤 강렬한 경험들이 생각난다. 역사 동아리에서 ‘민간인 학살지 답사’를 갔을 때, 어떤 책에서 ‘사회주의’가 가진 진짜 의미를 발견했을 때, 강의실에서 김상봉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을 때, 탐탁치 않아했던 운동권 선배가 학교‘안’에서 잡혀갔을 때, 2008년 촛불 집회에서 새벽이 올 때까지 물대포를 맞았을 때. 등등.

내가 알았던 세상이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닐 때.
막연히 불편했던 것들을 바꿀 수 있는 적당한 언어나 이론을 찾았을 때.
깨달음의 순간들.

그 후로는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왜냐면, 지축이 흔들렸으니까.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이 흔들리거나, 때로는 무너지는 것은 – 곧 나와, 내가있는 세상 전체가 달라지는 것이었으니까.

*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스무살의 나는 세상이 밉고 싫은 분노쟁이가 되었고, 이러다가 사회부적응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엉엉 울기도 했다. 화내고 우는 걸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더 큰 문제는 어제까지의 관계가 뒤틀리더라는 거다.

분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기들과 점점 멀어지고, 왜 이렇게 불만이 많냐? 그러다 취직 못한다.. 걱정해주던 선배들과도 거리가 생기고, 엄마 아빠가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고, 뭔가 무서워하던 운동권 사람들과 친해졌다.

그래도 화가 올바른 방향을 찾고 부터는 덜 까칠했던 것 같다.
˝내가 몰랐던 세상에 대해 분노 했던 것은, 내가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었구나.
그것을 지키고 바꾸기 위해서 실천하고 투쟁해야겠구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동료들이 가족보다 좋았다.

*

나이를 먹는 것은 그런 깨달음의 순간들의 강도와 횟수가 줄어든 다는 것일까. 어느 순간 익숙해져버린 관계들을 만나고, 익숙한 경험들을 하고, 익숙한 세상의 불의에 이런저런 비평을 하면서 한참을 지냈다. 이쯤 하면 많이 알았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느 덧 서른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그녀의 글을 읽었다.

(p.259) 며칠 사이 저는 젊은 여자 운동가에서 일순간 차별의 경험을 친절하게 설명해야하는 피해자의 위치에 놓였습니다. (...) 최근 효녀연합의 활동을 바라보는 언론이나 여론의 시선이 위안부 문제의 근원인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시선, 성적 대상화로 느껴져 성찰해보면 좋겠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참 많은 사람이 저를 보고 지적 허영심에 어리광을 부리고, 질투하고, 본질을 흐린다고 말했습니다.” 

한문장 한문장이 공감 되었다.
그 후, 그녀를 친구로 등록해서 여러 글을 읽었고, 지금까지 느껴왔던 어떤 답답함이 그녀의 글을 통해서 설명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감지하고 있었지만, 말하지 못한 것들에게 ‘언어와 개념을 입힌’ 내용이었다. 말과 글들로 구체화 된 것은 인식되기 마련이고, 인식된 이상 돌이킬 수 없었다.

‘페미니즘’이라는 다소 겁나던 주제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여성혐오와 관련된 여러 사회적 이슈들이 터져 나왔고, 망설이다가 심호흡을 하고 
“용기를 내보자. 공부부터.” 페미니즘 관련 글들을 주섬주섬 읽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잊고 지냈던 ‘지축이 흔들리는’ 깨달음의 시간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조금 더 느긋하고 천천히, 그런데 보다 근본적이고 강하게 ...

이번에도 역시 나는 화가 났고, 분노의 화살은 여러 군데로 튀었고, 그렇게 관계가 재구성되었으며, 그 이전의 ‘나’로는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p.75) 막연하게 이론으로만 알았던 ‘페미니즘’이 삶으로 성큼 들어왔다. 지독하게 평범했던 일상이 지독히도 무섭게 다가온다. 지금 이 순간도 온라인에서는 많은 이들이 ‘사랑받는 여자의 조건’을 공유한다. (...) 이런 고민을 이야기 하면 “페미니즘에 너무 빠지지 말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내가 살면서 느껴온 많은 불편함을 설명해주는 페미니즘을 하나의 편협하고 비합리적인 신앙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가 나를 더욱 외롭게 한다. (...) 세상은 너무 견고한데 변한 건 혼자인 것만 같은 감정이 나를 짓눌렀다. 곁에 사람들이 있지만 아무도 온전히 내 아픔을 이해해주지 않을 것 같은 감정, 고독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고독이 찾아왔다." 

타임라인에서 읽고 곱씹었던 홍승은 작가의 글들이 페미니즘 에세이가 되어 책으로 나왔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지만, 차마 추천할 수 없는 이유는 제목과 같다. “당신이 불편해 할 것 같아서.”

그녀의 이야기는 분명 불편하다. ˝어떤 존재˝의 고통들이 ˝눈에 걸리적˝ 거리게 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일상의 폭력˝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면 미안해지고 화가 나기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 경험들이 썩 행복하기만한 과정은 아니다.

그래도 권한다. 알려는 노력도 없이, 문제점조차 느껴본 적 없이, 게을렀다는 것 자체가 _ 당신이 권력이기도 했음을 드러내는 일이며, 자신이 알게 모르게 누려왔던 권력을 감지하는 것부터가 진정한 존중-평등의 시작 이라고 생각하니까. 

신기한 것은 책이라면 소리 내서 읽어줘도 못 보던 여동생이 반나절만에 이 책을 다 읽고, 적극적으로 나에게 이야기를 걸어와 주었다는 것이다. (내가 불만쟁이가 되어 세상만사를 계속 가르치려 들었던..) 스무 살 이후, 취향 말고는 공유하는 대화가 극히 부족했던 우리에게 공감하고 깨달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책 이었다.

홍승은 작가가 앞으로도 많은 글들을 써주면 좋겠다. 그녀의 정직한 용기가 위안이 될 때가 많았다. 진정한 위안은 말이 아닌 삶으로 살아가는 것.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불편해져야겠다. 내 안에 있는 익숙한 폭력을 모르는 척 휘두르고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p.9)
오랫동안 나는 나를 해명해왔다. .. 어떤 질문은 궁금증 해소가 아니라 통제가 목적이라는 걸 그 때는 몰랐다.

(p.108)
그들은 왜 어떤 ‘의외의 폭력‘은 그토록 경계하면서 일상적 폭력은 가볍게 여기고 있는 걸까. 그 의외의 폭력이 우리 모두가 가담한 일상적 폭력에서 파생됐다고 말해도, 왜 시선은 전자로만 향하는 걸까.

(p.126)
언제나 나쁜 놈을 손가락질하며 거리두기 하는 것만큼 편안한 비판은 없었다. 외설적이고 자극적인 사건 속에서 ‘나쁜 놈’은 추악한 괴물로 그려지지만, 현실 속 그들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

(p.212)
나의 편리함은 누군가의 불편함을 수반한다. 나의 게으름은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어 누리는 권력이다. 나는 오늘 얼마나 많은 노동에 기대어 편리함을 누렸을까. 얼마나 많은 차별 속에서 모른 척 편리함을 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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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른에 읽었던 세권의 에세이
    from 쟝르개척 2018-11-12 20:02 
    서른의 언저리에서 물흐르듯 몇가지 결단을 하게되었다.그 전까지는 사람들에 별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구조’나 세상의 생겨먹음이 궁금했다. 세계의 모순에 집중했고 그리고 그것을 바꾸는 일을 하면 나의 삶은 가치있고 명료해지지 않을까. 달려왔다. 어느 날 부터인가 매일 아침을 마주하는 게 싫었고, 심리상담을 받은 후 그게 일종의 우울증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스스로는 아주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를 돌보는 것에 능숙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