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민족 상.하 세트 - 전2권
강태진 글.그림 / 비아북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말에 머리 식힐 겸 볼까 싶어 사무실에서 가져왔다가, ‘첫부분만 봐야지~’ 앉은 채로 다 읽었다. 초 흥미진진. 서스펜스가 훌륭한 만화여서 중간에 놓을 수가 없었다.

<응답하라 1988>로 회자되는 시절의 이면 - 안기부의 고문과 조작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만화다. 주제도 그렇지만, 주인공이 남다르다. 고무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른 홍안의 주인공, 안기부 “고문 수사관” 박도훈. 뭐지 ? 싶은 복장은 그가 일(고문) 할 때의 복장이다.


p. 32 (1권)
“그럼 뭐야. 장실장님처럼 강한 사람이 되어서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돈많은 놈들이나 조지겠다?”
“맞아, 처음에 그런 생각이었어. 근데, 장실장님을 가만히 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 되어서 돈을 벌면 말이지. 그게 훨씬 더...”


돈 많은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어린 도훈은 돈보다 더 센 안기부 장실장을 만나고, 그 밑으로 들어가 간첩을 ‘잡는’게 아니라 간첩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게 된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 과연 그는 애국자였을까?

강태진 작가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 5공 시절의 시국사건과 관련된 조사들 중 가해자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애국심’, 진정 ‘국가’를 위하는 마음‘, 죄책감이 아닌 자부심”이라는. 이게 무슨 소리야. 작가는 그들 머릿속의 국가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고 한다.

만화를 덮고 난 나의 감상은... 안기부 직원 - 고문 수사관들의 ‘조국’과 ‘민족’은 그의 왜곡된 욕망을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한 거대한 기제일 뿐, 그들에게는 ‘조국’도 ‘애국’도 ‘국민’도 ‘민족’도 없다. 전혀 없다. ‘조국’의 크기만큼 부풀려진 거대한 자기 자신이 있으면 있었지. 누군가 그랬나. 박근혜는 자신의 아버지와 국가를 동일시 했고, 박정희는 저자신을 국가와 동일시 했다고.

그것이 무엇이든 - 선택의 시기에 주인공 도훈의 모든 결정은 99% 자기 자신, 자신의 욕망일 뿐이다. 더 강해지고 자하는.(그게 힘이냐 돈이냐의 선택일 뿐) 혹은 살고자 하는.

p.289 (2권)
“너 아버지 때문에 나한테 이러는 거야? 니네 아버지 죽은 게 내 잘못이냐고. 경찰이 도둑 잡는 게 나쁜 짓이야? 나는 그냥 내 일을 한거야. 그 사람들이 간첩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게 내 직업이라고!”

자기 일을 한 거란다. 아이히만이 떠오른다. 그러나 만화를 보면 안다. 그는 자기 일을 하지 않았다. 자기 일을 했다고 믿고 싶은 거겠지.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말하며 “아이히만을 생각할 능력이 없는 관료”라고 했다. 나는 일면 동의하지만, 동시에 비판적이다. 그들은 생각할 능력이 없지 않다. ‘자신(욕망)’을 위한 선택을 한 것이다. 거기에 명분까지 주면, 완전땡큐인 거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누구나 합리화를 하면서 산다.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타자를 해치는/지배하려는/배려하지 않는 욕망, 반성없는/으레하는/거대한 합리화는 좋지 않다. 그 자신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이 만화는 수작이다. 재미나 내용면에서도 그렇지만, 등장하는 사건들이 대부분이 (완전 비현실적인 간첩 부녀 빼고...) 현실 사건이다. “이 사건은 그 사건인가?”하면서 봤는데 2권에서 사건들이 쭉 나온다. 수지킴 사건, 서승 등 간첩 조작 시건, 미법도, 김동식 등등등 그 많은 사건을 고작 2권의 분량에 다 버무려 넣은 것이 대단하다. (그 많은 사건들을 애국한다면서 조작한 안기부 놈들이 더 대단한건가...)

후유증이 있었다. 만화를 다 읽고 잠들었는 데, 꿈 속에서 안기부 대공분실이 나왔다. 고문을 당했는 지, 고문을 한건 지 무튼 너무 힘들었다.

#족민과국조
뒤틀린 시절의 부역자들에 의해 뒤틀려져 버린 단어들 - ‘애국’‘조국’‘민족’이라는 단어는 이제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책에서 많이 조명하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애국’을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가끔 그들의 가치마저 싸잡아 폄하되는 것을 본다. 씁쓸하고 괴롭다. 단어의 의미가 제자리를 찾는 것. 그 단어의 원본들이 가진 의미가 자체가 빛을 잃고 사라지는 것. 불현듯, 지금 해야 하는 싸움은 후자를 막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