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지옥일 때
이명수 지음, 고원태 그림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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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동틀 무렵에 선물 받은 책인데, 마음에 지옥이 닥칠 때 마다 듬성듬성 읽다보니 여름의 한 가운데서 다 읽게 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치유자 부부 이명수, 정혜신샘의 ‘시+치유제‘이다. 여러편의 시를 통해 상처를 더듬는다.

˝자기 속도로 가는 모든 것들은 옳다˝

띠지에 둘러진 문장이 그대로 위로가 되어 박혔다. 언제나 시간이 부족한 것 만 같던 공간을 떠나와 나의 속도가 불안할 무렵이었다. 더는 달려지지 않아 멈추었는 데, 나를 둘러싼 여러가지 속도들이 겹쳐서 혼란스러웠다. 정세의 속도라는 것은 언제나 숨이 턱끝에 맺힐 때까지 쫓아가도 뒤통수만 보여주었고, 바깥이었던 사회의 시간은 나와 분리되어 흘러갔다. 일상적 사회에 기준을 두자면 나는 20대를 다 날려버린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까지 계속 힘들거냐는 걱정어린 질문들을 받고 또 받고, 자책하다 나는 그냥 주저 앉아버리기로 하였다. 주저 앉은 나는 꼴사나웠다. 어루만지기 위한 손길도-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는 우악스런 손처럼 보였다. ‘제 속도를 존중해주세요!!‘ 이야기해도 사실 알고 있다. 가장 내 속도를 존중하지 않았던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

p. 72
치유자 정혜신의 처방은 간명하다. 걱정할 거 없다. 지금 일어설 수 없으면 일어서려 하지 않아도 된다. 더 주저앉아 있어도 된다. 꺾였을 때는 더 걸으면 안될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그걸 인정해줘야 한다. 충분히 쉬고 나면 저절로 걷게된다. 당신은 원래 스스로의 다리로 걸었던 사람이다. 그걸 잊지 않는게 중요하다. 다리가 부러졌을 때 깁스도 없이 정신력만 앞세워 걷겠다고 일어서면 근육과 신경, 혈관이 다 파열돼 다리를 절단할 수도 있다. .. 본래 나는 내 두다리로 걸었던 사람이다. 그것만 잊지 않으면 지옥을 빠져나간다.

*
책에 나오는 시들을 속도감 있게 읽어내릴 수 없었다. 텅텅 빈 여백들이 의미하는 바는 허겁지겁하는 그 독서들 말고 천천히 쉬어가는 조금 다른 독서를 했으면 좋겠다고 권유하는 것 같았다.

서문에 이명수샘은 자신은 심리적 금수저로 이 수저는 후천적이라고 했다. 심리적 결핍감이 없는 것은 전적으로 정혜신 덕분이라며 그에게서 충분히 넘치도록 오랜기간 ‘인정‘과 ‘칭찬‘이라는 영양분을 공급받았다고 했다. 첫장을 넘기며 나는 진심으로 그가 부러웠다. 끊임없이 공급되는 인정과 사랑, 온전한 내편.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 같았다.

p.53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편파성이 긴요할 때가 있다. 내가 누군가의 ‘꼭 한사람‘이 되어줄 때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직 ‘너‘라는 이유만으로 ˝내말이 그말이야˝맞장구 쳐주고 함께 펑펑 울어주는 편파적인 사람이 바로 그 ‘꼭 한사람‘이다. 속세에서는 엄마, 친구 연인, 스승, 친구, 동지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공감의 동지다. .. 하지만 누군가의 ‘꼭 한사람‘이 되어주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상대가 고통이 큰 상황일 수록 더 그렇다. 이렇게 무조건 지지하는게 옳은지, 몸에 좋은 약이 쓴 법이라는데 냉정하게올 바른 말을 제대로 해주는 게 더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 이러다 그가 내게 지속적으로 과도하게 의존하면 감당할 수 있을 지, 내가 그에게 ‘꼭 한사람‘이 될 자격이 있기는 한건지 갈등하게 된다.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갈등까지 포함해서 누군가의 ‘꼭 한사람‘이 되어주는 일은 언제나 옳다. 국민행복지수가 가장높은 나라 부탄에서는 ‘필요하다‘와 ‘원하다‘가 같은 단어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지금 내가 필요해서다. .. 필요해서 땡기는 거다. .. 왜 그런게 땡기는 지 분석할 필요가 없다. 자기결정에도 그 공식은 그대로 적용된다. 내가 그렇게 선택하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필요해서다. 그러므로 모든 ‘나의 끌림은 늘 옳다‘

*

맞장구 쳐주기만 하면 버릇 나빠지기라도 한다는 듯, ‘그래 네 말이 맞아‘에 꼭 ‘그렇긴 한데‘ 를 달아야만 직성이 풀리던 지난 날들. 타인의 속상한 상처 앞에서 꼭 그렇게 중립을 지킬 필요가 있었던 걸까. 되돌이켜 생각해보니 다 들어줄 수 있는 말들도 인내심있게 들어줄 수 없었던 것은 누군가를 위로해줄 아니, 그 시간과 어두움을 함께 견뎌줄 마음의 양이 충분하지 않아서였다. 여기에 쓰고 저기에 닳아가는 내 마음이라는 것이 -충분치 않으니, 함께 견뎌주어야 하는 타인의 상처를 보는 것이 두려웠던 거다.

그렇게 누군가의 상처받은 마음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수록, 나는 자신의 상처에게도 ‘그건 아닌것 같은데‘를 달아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자신에게 야멸찼던 시간들. 내가 자초했던 나의 지옥.

여전히 나는 나의 마음을 채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래도 덜컥덜컥 찾아오던 지옥같은 순간들을 유예시키는 방법을 조금 알 것도 같다. 타인의 속도가 아닌 나의 속도를 존중하는 것. 관계에서 감정이 부대낄 때, 이따금 타인의 속도를 가늠해 보는 것.

어제는 땀을 뻘뻘흘리면서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들었다. 종종 나는 나에게 가장 편파적이어 왔던 사람들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린다. 아직은 마음이 덜 찬 것 같다. 채우고 채워 언젠가는 도전하리라. 

나에게 편파적이었던 이들에게 누구보다 든든한 ‘꼭 한사람‘이 되는 것.



p. 247
누군가의 입에서 ‘그럴 줄 몰랐다‘는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일타쌍피의 지옥문이 열리는 구나 예감한다 ...
가까운 이가 구설로 곤경에 처하면 먼저 당사자에게 물어라. 어떻게 말할지는 그 다음에 판단하면 된다. 내가 코너에 물릴 때 가깝다고 생각한 이가 내 편을 들지 않고 중립을 지키면 당사자는 그걸 중립이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공격하는 적군으로 간주한다. 너무 힘들어 여유가 없어 그렇다. 내가 그 상황에 처해도 똑같은 심리상태가 된다.
잘 모르면 멈칫해야한다. 정확하게 모르면 침묵해야한다. 그럴 줄 몰랐다고 혀를 차는 일은 게으르고 잔인하다. ‘그럴줄 몰랐다‘말하기 전에 물어라. 단지 묻는 것만으로 양방향 지옥문이 사라진다는데 그러지 못할 이유가 뭔가.

p. 262 내 욕망에 취해 경계를 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맘이 약해서 힘든 사람을 보면 참지 못해서 자꾸 손해를 보게 된다‘는 이도 있다. 착한 오지라퍼들로 인해 주위사람이 편해지고 세상이 밝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자기 외로움이나 자기 인정욕구, 자기현시 욕망이 동력이되는 오지랖은 오지랖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건강하고 적절한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는 일이다. 넘어서는 안되는 경계를 넘은 대가가 연이어 나타나는 건 당연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면 숙고해서 감당할 만큼만 개입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자꾸 개입하게 된다면 내부적인 다른 욕망때문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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