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이랑 지음 / 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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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손가락 하나 까닥 하기 싫을 만큼 힘이 없었다. 세시간이 넘도록 낑낑대며 신발장을 조립했다. 더워서 헥헥 대다 하기 싫으면 누워있다가 힘나면 조립하다가 그랬다. 모서리가 자꾸 틀어져서 승질이 났다. 신발장 칸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홉스가 잔망스럽게 냐옹 거려도 예쁘지 않았다. 방바닥에 찰싹 붙어 천장벽지를 감상하고 싶었다. 시간아 가버려라. 오전히 훌딱 지나갔고 청소도 덜끝냈는 데 오후가 절반이 지났다. 나는 ˝대체 뭐하자는 인간인가˝ 싶어졌다. 끄트머리 세페이지 남겨두고 안읽고 있던 이랑의 에세이가 생각났다. 마저 읽자.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에세이 마지막 페이지의 소제목.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고 싶은 이랑, 세상사람들을 위로하는 노래를 만들고 싶은 이랑, 위로받고 싶은 이랑. 네이버에 이름이 치면 나오는 사람인 이랑. 나와 동갑내기인 그녀의 이십구세와 삼십살 일기를 훔쳐보는 것 같은 기분이더라. 공감이 되었고 위로도 되었다. 그리고 대체 뭐하자는 인간인지 싶었다 (;;) 무언가 대단한 서사는 없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쓴 날 것의 감정들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몇몇 페이지에서는 눈물이 터지기도 했다. (그의 담담 솔직한 이야기가 뭔가 더 찡했다. 사실 내이야기 인줄..)

(79p.)
부자가 되고 싶다. 국민연금이 나오기시작해도, 건강보험료를 내야해도, 월세를 내는 날이 다가와도 마음 졸이지 않는 부자가 되고 싶다. 하기 싫은 일은 안 해도 되는 부자가 되고 싶다. 하지만 나는 부자가 될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태어난 집이 부자가 아닌 것도 그렇지만, 내가 선택한 직업으로는 부자가 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사실 평소에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요즘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 자꾸 생긴다. 서른 살이 되었고, 처음으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가 내 앞으로 날아들었다. 액수가 생각보다 많아서 당황스러웠다. (...) 일일이 연락해야 했는 데 그것보다 어디 4대 보험이 되는 곳에 취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언제부턴가 청탁을 받으면 자동적으로 ‘얼마예요?‘하고 물었다. 글 한페이지, 그림 한 장이 얼마냐고 묻는 게 당연해지기 까지 나는 꽤 많이 버벅댔던 것 같다. 하지만 어렵게 입을 떼고 챙겨 받은 돈이 월세로, 작업실비로, 학자금 대출이자로, 공과금으로, 핸드폰 비로 쑥쑥 빠져 나간 뒤부터는 그 말이 점점 더 잘 나오게 되었다. 빠져나가는 돈은 나에게 ‘얼마 가져가겠습니다‘하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빠져나갈 돈을 미리 마련해두려고 열심히 돈을 벌어야만 했다. 하지만 버는 돈이 빠져나가는 돈을 따라잡지 못하고 언제나 헉헉댄다. ‘왜 돈이 없냐‘고 물었던 면접관에게 그렇게 대답했어야 했다.

(109p.)
생각하고, 이야기 하고, 친구를 만나서 묻고, 다시 생각한 결과,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일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항상 누군가를 금방 잘 좋아햇다. 그렇게 연인도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무작정 다가가서 ‘안녕 난 니가 좋아 우리 친하게 지내자‘라고 말했다. 이 말을 했을 때 통하는 사람과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나이를 먹을 수록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다.

*

얼마전 대중음악 시상식에서 개성있는 수상소감으로 화제가 되기 전부터 나는 그녀의 음악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었다. ˝잘알지도 못하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독특한 가사와 이랑 특유의 목소리가 재미있었다. 이렇게 솔직하고 재미있는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라니, 궁금하기도 하는 차에 그녀의 책이 나왔다는소식을 들었고 서점 매대에서 지인을 졸라 사 버리기 까지 했다.

책을 읽어 나가는 사이에 <신의 놀이> 앨범이 나왔다. 어떤 노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 지, 그 노래를 만들던 시절의 그녀의 심리상태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으니 노래가 더 의미있게 들렸다. 요리를 하듯 음을 섞고 멜로디를 버무리고 소스처럼 리듬을 넣는다고 했다. 막막하고 설레고 두려운 노래를 만드는 자신의 일을 그녀는 아주 아주좋아하는 것 같았다.

(p.100)
‘나는 예술가다. 그래서 잘났다. 남보다 낫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예술적이지 않은 사람들과는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어릴적 이탤리언 레스토랑 주방에서 1년동안 일한 것을 된 계기로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 나는 요식업에서의 경험이 전-혀없었지만 ‘예술가‘로서 ‘예술적 경험‘을 위해 그곳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자만심이 가득한 이력서를 써갔다. (...) 예술과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장은 이미 요식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직원들이 가게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는 지 나를 덥석 취직시켜주었다. (...) 설거지는 하루 일 양의 20분의 1 정도였을까. 일을 못따라 잡으니 주방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자존심을 세우려고 안달했다. 나는 ‘예술가‘니까 여기서 일하는 건 별거 아니다. 나는 요리사가 될 것도 아니고 요리에 대해 많이 알필요도 없다. (...)주방의 생태계도 모르며 나의 자만을 부추긴 사장이 미웠다. 나는 더이상 ‘예술가‘이기 때문에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생각은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고 버리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부엌에서 한사람의 요리사로서의 몫을 해내는 것 뿐! 생각이 그렇게 바뀌니 그동안 ‘예술가‘가 아니라서 친해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난 정말 미쳤었나보다) 요리사들과의 관계가 제일 중요해졌고, 나보다 적어도 스무 배 일을 잘하는 그들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느꼈다. 그들은 아침에 출근해 빵을 구웠고, 생연어를 분해했고, 다섯 가지의 파스타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능력자들이었다. 나보다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곳에서 일한 지 딱 1년이 되었을 때, 사장이 직원을 하룻 저녁에 모두 잘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점점 장사가 잘되기 시작한 가게를 ‘가족 사업‘으로 운영하기 위해.(...)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예술가로 살고 있다. 

그냥 예술가가 아니다.
이태리 요리를 할 줄 아는 예술가이다.

*

<죄송했습니다> 라는 글 중에서.

놀랄만치 ‘나는 운동가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 그 시절의 내 모습과, 그런 생각들이 깨져나가던 삶의 어떤 순간들과 겹치는 부분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것. 월세를 내고 세금을 내고 핸드폰요금을 밀리지 않는 것. 내 몫의 일을 해내는 것. 그렇게 한 사람의 몫을 감당하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한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

이태리 요리를 할 줄 아는 예술가 이랑 처럼.
언젠가는 ‘좋은 책‘을 만들 줄 아는 운동가가 되고 싶어졌다.
ㅡ 이랑의 솔직한 글이 좋다. 그녀의 노래 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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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른에 읽었던 세권의 에세이
    from 쟝르개척 2018-11-12 20:02 
    서른의 언저리에서 물흐르듯 몇가지 결단을 하게되었다.그 전까지는 사람들에 별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구조’나 세상의 생겨먹음이 궁금했다. 세계의 모순에 집중했고 그리고 그것을 바꾸는 일을 하면 나의 삶은 가치있고 명료해지지 않을까. 달려왔다. 어느 날 부터인가 매일 아침을 마주하는 게 싫었고, 심리상담을 받은 후 그게 일종의 우울증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스스로는 아주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를 돌보는 것에 능숙하지 않
 
 
cyrus 2017-07-20 1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월이 지나면 나와 통하는 사람들도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이럴 때 세월이 야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