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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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올해의 마지막 날, 올해의 마지막 책.

하루종일 까무룩 졸았다 책 한 페이지를 읽다, 몇장이고 슥슥 넘기다가 또 졸음이 오면 조는 채로.


내용을 이해하기보다는 문체의 생겨먹음이 신기해서 심혈을 기울이며 꼭꼭 씹어먹듯 읽게 되는.

반가운 느낌. 얼마만의 소설인지.


계속해보겠습니다.


아름답고 창백하고 쓸쓸한 느낌이다.

소라, 나나, 나기라는 세명의 청춘들도 그렇지만.


특별히 그들의 엄마인 애자와 순자가. 소설에서 묻어나는 그녀들의 삶이.

그녀들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 셋으로 상징되는 지금의 청춘들이 내리는 결론이.


_


(p.23)

아기 같은 건 싫다.

싫어.

실은, 싫어.

무서우니까.

모든 게 걱정될 테니까.

나나는 걱정되지 않을까.

모든 게.

어쩌자는 거야, 아기를 가져서.

숨 막혀.

화가 나.

어쩌자는 거야, 하고 화가 나.

어쩌려는 걸까, 하고 걱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어쩌자는 거야, 하고 화가 나.

나나는 애자가 될 셈인가.

애자가 될 거야?

애자처럼.

애자처럼 사랑해서 아기를 만들고, 아기를 가져서, 압도적인 엄마가 되는 거야?

애자처럼.


(p. 45)

다 자란 나나는 이제 엄마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미 엄마인지도 모른다. 새끼를 먹여본 손 맛. 그걸 갖추게 되는 순간도 오겠지. 언제고 오고 말겠지. 하지만 내게는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생각하고 있다.

엄마가 되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엄마가 된다는 것이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 회로가 그렇게 꼬여있다. 생각이 아니고 심정의 영역에서.

그러므로 애초에 아기는 만들지 않는 게 좋다.

아기를 낳지 않는다면 엄마는 없지. 엄마가 없다면 애자도 없어. 더는 없어, 애자는 없는 게 좋다. 애자는 가엾지. 사랑스러울 정도로 가엾지만, 그래도 없는 게 좋아. 없는 세상이 좋아.

나는 어디까지나 소라.

소라로 일생을 끝낼 작정이다.

멸종이야.

소라, 라는 이름의 부족으로


_



소라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 자기 하나로 삶을 끝내기로 했고, 나나는 버젓이 있는 아이 아버지는 상관없이 홀로 아이를 낳기로 했고, 나기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하는 엄마의 소망을 이뤄주지 않기로 하면서도 서글프다.


소라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 자기 하나로 삶을 끝내기로 했고, 나나는 버젓이 있는 아이 아버지는 상관없이 홀로 아이를 낳기로 했고, 나기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하는 엄마의 소망을 이뤄주지 않기로 하면서도 서글프다.


그들의 결론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어느 덧 삼십대. 결혼과 출산과 육아. 그런 것들이 먼 미래가 아닌 피부에 찰싹 붙어있는 데도.. 나역시 소라처럼, 압도적인 엄마 같은 게 되고 싶은 생각이 없고, 나나처럼, 이해할 수 없는 문법을 가진 타인들을 가족이라는 이유로 공부할 생각이 없다.


그 시절 모든 엄마들의 삶은 으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또 딸은 그렇게 엄마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가엾고 억척스럽고 쓸쓸한 ‘압도적인’ 엄마라는 존재는. 그런 엄마라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은. 사실, 어쩌자는 거야. 하고 화가난다는 소라의 입장 처럼. 싫고. 싫다.


나나의 예기치 않은 임신을 대하는 소라의 모습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나는 주제들이 있었다.


비혼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아이를 낳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가임기 여성의 출산지도를 만드는 정부.


사회과학적으로 말한다면, 살만한 세상이 만들어지면, 젊은이들은 아이를 낳을 것이고, 대한민국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정말 그런 문제일까. 조금 더 복잡한 문제는 아닐까. 조금 더 난해한 상처는 아닐까.


우리가 경험한 많은 엄마들. 대체적인 엄마라는 이름의 사람들. 그가 소설속의 애자처럼 엄마로서의 삶을 포기했든 하지 않았든과 상관 없이. 그냥 엄마라는 존재들.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하는지. 또 실천해야하는지. 

심정의 영역에서.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대부분은 소라같은 결론에 다다르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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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4)

나는 여성으로서의 어머니를 몰라. 노동하는 그녀를 안다. 거리에서 변변한 바람막이도 없이 새까만 얼굴로 장사하던 그녀. 남자들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시장에서 호객하고 다투던 그녀. 매일밤 얻어맞은 것처럼 잠들던 그녀.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것 처럼 잠들었다가도 새벽이면 목에 수건을 두르고 집을 나서던 그녀. 열개의 손가락이 모두 곱은 그녀, 어머니의 여성은 진작 중단되어 버렸다. 내가 모르고 있을 뿐, 어쩌면 어머니가 썩 괜찮은 섹스를 경험하기도 하며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신난다. 차라리 그 쪽이 좋다.

_


여성으로서의 엄마를 생각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여성이다. 나는 여성이고, 머지 않은 미래에 엄마가 될지도 모른다.


선택하지 않은 자명한 상황은 때때로 나를 열받게 한다. 어쩌자고 인류는 여성의 삶을 어머니의 삶으로 대치시켰는가. 그것도 그렇게 오랫동안이나. 그런데 어쩌자고 또 이놈의 자본주의는 어머니의 삶 마저도 세상으로 끌어내 이윤으로 만들기 시작했는가. 그리고 나는 왜 하필 이 시대에 태어나 그런 혼란스런 어머니상을 갖게 되었으며 어느덧 나이가 들어 엄마를 ‘선택’해야하는 시점에 오고야 말았단 말인가.


더 이상은 자명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 더욱 혼란스러운 걸지도 모르겠다.

여성이고 싶은 것도 아니고, 더더욱이나 엄마 이고 싶지는 않고, 그저 ‘사람’이고 싶은 건데.

결혼, 출산, 육아 앞에서는 이토록 무력한 느낌이다.


소라처럼, 나나처럼, 다른 선택을 해볼 수도 있는 걸까? 나는 그런 용기가있나? 아니, 이 사회에서는 그냥 '평범한 엄마'가 되는 것이 더 큰 용기 잖아.



_

(p.221)

나는 말했다.

공룡이 사라졌잖아.

어.

멸종했잖아.

멸종했지.

멸종이라서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것 같지만 실은 천만년이 걸렸대.

그랬대?

천만년에 걸쳐서 서서히 사라진 거야.

꽤 기네.

길지.

그렇게 금방망하지 않아.

세계는, 하고 덧붙이자 나나가 말했다,

그렇게 길게 망해가면 고통스럽지 않을까.

단번에 망하는게 좋아?

아니.

그럼 길게 망해가자.

망해야 되?

그렇게 금방 망하지는 않겠다는 얘기야.

_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를 더듬으며, 피식 웃었다. 그 어떤 급진적인 단어 없이도 이렇게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소설이라니. 아름답고 쓸쓸하고 창백하다.


천천히 망해가자. 그 때 까지 계속해보자. 아, 이러한 계속은 멸종 아닌가.

지금의 한국이 청춘에게 제시하는 것은 멸종. 그렇게.

(목적어가 없는) 계속해보겠습니다.


어느 날 덜컥 나나처럼 아이를 만들고, 낳기로 하고,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계속해보겠습니다” 잘지내는 것 같아보이는, 엄마가 되어버린 내 또래의 엄마들은 또 정말로 어떻게들 지내는지. 궁금해지는. 그런 2016년 마지막 날이다. 그러고 보니 2016년은 강남역사건을 계기로 – 기웃거리면서 주저하던 페미니즘을 드디어 공부해본 한해였기도 하다. 몇 가지 생각들이 더 머릿속을 돌아다니지만 더 적지는 않으련다.



서점에서 표지가 너무 예뻐서 사길 잘했다.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이 있는 소설일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앞으로 황정은 소설을 몇 권 더 읽어 보기로.


삶에 마음에 드는 작가나 감독이 추가 되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다.

어쨌든.

새해에는. 조금더 많은 소설을.

다짐해본다.




(2016.12.31)



(p.9).
너무 소중하게 너무 열심히 들어서 기억에 남지 않고 몸이 되어버린거야.
몸?
들었다기 보다는 먹은 거야. 기억에도 남지 않을 정도로 남김없이 먹고 마셔서, 일체가 되어버린거야.
아침에 먹은 우유 한모금이 피가 되고 근육이 되는 것처럼, 그 이야기들이 전부, 내 피가 되고 뼈가 된 거야, 라고 말한 뒤 애자는 자기가 한 말을 생각해보는 듯한 모습으로 다시 생각에 잠겼다.

(p.40)
나나와 나는 소중하게 그것을 먹었다. 성장기였으므로 그 밥을 먹고 뼈가 자랐을 것이다. 뼈에도 나이테라는 것이 있다면 나기네 밥을 먹고 자란 시절의 테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뭐랄까, 나기와 나나와 나는 말하자면, 한뿌리에서 자란 감자처럼 양분을 공유한 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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