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 산 책은 바디우 입문서 #가끔씩우리는영원을경험한다 와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사소한것들
어떤 독서는 정말인지 ‘사건’처럼 도래해 내게 ‘진리’처럼 작용할 때가 있어.이 시점에서 #알랭바디우 소개 받아(?)버렸는 데 (수학 공격 포함해도)바디우 나 좋은 듯! 이랬더니 “어제까지 지젝이라며!!” 지젝은 재밌고 바디우는 ‘좋.아.’ 그건 이 책에서 말하는 ‘형이상학적 충실성’ 때문일지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그는 20세기 후반에도 철학을 형이상학을 존재론을 못(안) 버렸대. 난 그런 사람 미워할 만큼 좋아해. 고지식하고 미련한 사람.실은 키건의 새 소설에 대한 나름의 감상을 이 바디우 입문서의 밑줄 그은 문장으로 갈음하고 싶었다.
“(27)실제 사건의 투사들로 스스로를 주체화하는 개인들은 세계의 이전 법칙들에 순응하지 않음으로써 그 세계의 새로운 부분을 산출하려 적극적으로 작업한다. 바디우는 이런 확장 부분을 ‘유적인 것the generic’으로 묘사한다.”
물론 이 문장에서의 투사는 鬪士(combatant) 일 테지만 소설 주인공 펄롱의 심리에 빗대어 投射(projection)로 읽어 두는 것이 좋겠다.
내 안에 저 밑바닥에 남은 경험의 흔적들(곧 나임)은 어떤 사건을 맞닥뜨릴 때 내 세계(혹은 루틴)의 법칙들을 휘저으며 출현한다. 나는 하지 않을 다른 선택을 하고 그리고 그것은 (사후적 해석일지라도. 혹은 묵살되어질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가끔씩. 진리가 된다. (진리라면 좋겠다.) 소설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삶에서의 그런 ‘사건’에 관한 섬세한 묘사였다.
‘충실한 주체’가 되고 싶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 ‘한 일’에 대해서는 실컷 후회할지라도.
그러니 오늘의 안녕에 안락에 충분히 머무를 테다. 하고 있는 일 때문에 하지 않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거든 나는. 어쩌면 정말은 하지 않은 일들 덕에 생겨난 이 틈새의 시간에. 소설을 읽고 개념을 소화하고 짤막한 것들을 사색하면서.
이다음의 충실한 삶을 위해.
“(40)인간은 수많은 세계들 속에 참여하고, 셀 수 없는 장소들에 출현하는 속성이 있는 동물이다. 이런 세계들의 무한성과 그런 세계들의 초월적 조직의 배경 하에,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거의 끊임없이 인간을 이동시키는 이런 종류의 객체적 편재성은 기적을 요구할 필요도 없이 그것 자체로 은총이다: 셀 수 없이 출현하는 온전히 논리적인 은총... 그 짧은 현존 속에서도 여러 번, 모든 인간 동물은 어느 한 진리의 주체적 현재 속에 스스로 통합시킬 기회를 부여받는다. 이념을 위해 사는 은총(삶 그 자체인)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며, 여러 유형의 절차로 부여된다..... 우리는 세계들의 무한성에 열려있다. 산다는 것은 가능하다. 따라서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Alain Badiou, Logics of Worlds (New York: Continnum, 2009) 513-5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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