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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15주년 기념판, 양장)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1.2.3.4네 권의 책을 다 각각 맛보았다.
1. 내 기억에는 2010년? 가장 오래된 판본. 읽을 준비가 안되었던 거겠지. 세상이 젠더로 이루어졌다는 걸 똑바로 보기에 나는 너무도 (명예) 남성이었다. 20대 초반의 나는 잘난 척이 심각히 심해 여남 모두를 한심하게 느꼈다. 내가 선망하고 타협하여 일정 부분 누려왔던 것(그것이 계속 가능할 줄 알았던)이 가부장적 권력이었다는걸(여성의 20대 초반은 그런 부분이 있다) 인정하기 싫었던 것일지도. 할튼 그때는 제목조차 이해 못 했다. 왜 ‘의 도전’인지. 페미니즘이면 페미니즘이고 내가 그것에 도전하는 거면 ‘에 도전’인데. 걔가 도전을 받는다고? 얘가 도전을 한다고? 몇 페이지 읽다가 말고 어려워서 중간에 놓았던 기억. (페미니즘은 어려운 것이라는 고정 관념이 생김.)
2. 2017년. 개정 증보판. 핑크 표지.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 집에 꽂힌 동생의 공부가 이미 가득한 책을 빌려서 읽었고…. 책으로 온몸을 두드려 맞아서 아마도 앓았다. 6살 어린 동생을 경외했다. (2015년 무렵부터 동생은 언니들과의 대화를 아예 단절해 버리는 것으로 저항 중이었다ㅋㅋㅋ) 지대로 페미 각성한 그녀는 다른 세상을 보겠다며 책들을 남기고 워홀을 떠났고, 핑크 도전 책을 독차지해 읽다 보니 정들어서 동생이 돌아와도 내 집으로 챙겨가 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책 훔침ㅋㅋㅋ (정희진 책 2권 훔친 이력 있음. 다른 한 권은 영원히 내 책장에. 장발쟝)
3. 2020년 15주년 기념판. 훔친 동생의 책을 돌려주기 위해 나오자마자 사서 다시 읽었고. 1부까지만 읽고 2부는 읽지 못 했다. 페미니즘 공부가 사회운동이며, 통치의 방식은 담론이므로 해석이 곧 변혁이라는 기념판 서문에 밑줄을 그어두었다. 어떻게 해석할 건가. 그건 좀 어려웠으므로 언어가 쌓일 때까지 책을 읽었다. 방금 이걸 적어보려고 책 빼들었는데 지금의 나는 “(11) 타인의 말을 억압할 때, 그 억압에 저항하지 않을 때. 더 큰 고통을 맞게 된다” 선생님의 문장을 몸으로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고통. 어떤 말이 억압적인 말인가. 여기서 감정은 나의 지표다. 그걸 과거처럼 무시하면 안됨. 내 몸에 기입되어 있는 이 반응들을 때로는 나의 생각보다 더 믿어야 하는 까닭.도 난 좀 안다. 나는 내가 잘 살아왔다는 걸 감히 느낀다. 고통의 개별성. 몸의 개별성. 잘 살아야 한다. 자신을 살아야하며, 나는 그래도 된다.
4. 새로운 빨강 책은 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 기념품이었고, 나는 샘의 팟캐스트를 구독하기 시작한 둘째 동생에게 선물로 주었다. 책 공포증을 앓고 있는 그녀는 얼마 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언니, 가만 보면 자기가 지식인인 줄 앎ㅋㅋ 그녀의 남친은 말했다. 너네, 언니 지식인 맞음! 지금 너만 모르고 있는 거. ㅋㅋㅋ
동생 남친이 인정한 지식인이 되기까지ㅋㅋㅋㅋ 왜 그렇게까지 읽었을까. 요즘 나는 내가 신기한 데.
그게. 좋았다. 그것만이 좋았다.
는 말 밖에는 못하겠다.
그리고 지금도. 좋음.
정희진의 글을 통해 이해받았다. 주위 사람들에게서는 받지 못했던 이해를. 내가 그렇게 느꼈다. 그런데 나는 책의 어떤 말들을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더 잘 이해하고 싶었다. 내게 이해를 준 사람에게 나도 이해라는 성실한 노력으로 대답하고 싶었나. 그게 어쩌면 독자와 저자 사이에 일어나는 어떤 우정일까.
어쨌든. 현 시점을 지나는 내게는 서로의 글을 읽어주는 종류의 우정들이 점점 생겨나고 있고, 그건 삶에 없던 종류의 우정이라서. 너무도 귀하고 소중했다. 소중하다. 내가 더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사람. 내가 더 잘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 나는 그런 욕망을 느끼고. 있다.
서로의 오독을 정정하지 않는 과정에서의 배움도 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스스로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를 너무 많이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단호하게 헤어져야 하는 것도. 한 번에는 너무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우니까 매일 조금씩 이별하기. 천천히.
새로운 세상(인식)에 도전하기 위해서.
이별에 익숙해져야함을.
책을 통해 배웠다.
<교양인 인스타그램 오늘. 샘의 신간이 나올까? 기대하라는 문장에 내 맘은 두근두근.>
"이제까지 철학은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앞으로 철학은 세계를 변혁할 것이다." 한때 우리를 열광시켰던 이 말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바로 반박되었다. 지금 세상을 다르게 해석하는 자체가 변혁이라는 사실, 담론의 힘을 모르는 이는 없다. 여성주의는 이론과 실천, 물질과 언어의 이분법을 비판하고 *새로운 언어가 곧 사회 변화임을 보여줌으로써 인류의 앎과 삶에 혁명*을 가져왔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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