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칼춤을 춰 줄 망나니가 필요해.
어제 하루는 캄보디아 맥주를 마시며, 로제 떡볶이 국물에 교촌 허니 순살을 찍어먹으며(아. 너무 고급 져, 세상 가장 고급 진 메뉴 아닌가. 나는 성공한 인생이다🤤) 동생들과 <더 글로리> 파트2 정주행에 매진하였다. 다 끝내고 나니 심적으로 너무 지쳐서 급히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애꿎은 나의 파란색 스테들러 연필은 동생의 똥 머리 위에서 휘둘러지고, 자꾸 이렇게 굴면 정신과 의사 두 명을 섭외해서 널 가둬버리겠어. 난 그렇게 할 수 있는 네 핏줄이니까!! 와 같은 친족 드립을 시전하다가 요즘 백수 만끽 중 아버지께 오랜만에 모였다고 사진 찍어 보내 드렸다.
ㅋㅋㅋㅋㅋㅋㅋ 이미 <더 글로리> 시청 중인 아버지 (이게 cj 감송 집안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에게 단 한 번도 시집가라는 말을 한 적 없는 아빠는 요즘 부쩍 적적하신 모양인지 시집갈 기미의 기미도 없어 보이는 세 딸들에게 한 번도 물은 적 없는 남자친구 사진을 요구하시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 아빠... 미안해...1 아니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ㅋㅋㅋㅋㅋ
딸 2,3이 남자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보내자 그들의 탈모를 걱정하는 아버지. 그렇다. 내가 대머리를 싫어하는 것은 유전이었다. 나에겐 부계로부터 이어받은 대머리를 싫어하는 DNA가 흐르고 있었던 것....
그런데 아빠.. 미안해... 2........ 사랑은 불가항력. 나 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머리를 사랑하게 돼버린 웅?... 근데 지독한 짝사랑인 그 사람은 나를 절대 사랑할 리 없......는 게......이.... 나 지금 뭐 쓰니.
더 글로리에 감상평을 남기려고 한다. 파트 투에서 동은의 연진에 대한 대 복수보다 나를 즐겁게 한 것은 소소한 소복수(?)들 이었는데, 이이제이, 개로 개를 패는 자적자. 음음. 특히 아이들을 불법 촬영하는 남교사를 참 교육하는 장면 *더 패 버렷 더더더더!* 누워서 보다가 허리를 곧게 펴고 박수치며 전재준을 응원했다. 역시 무술을 연마해야겠다. 완벽한 복수를 위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물리적 폭력이 필요할 때 시원하게 사용(?)할 수 있는 체력과 근육인 듯? 그런데 이게 아니라 내가 쓰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12화에서 남교사의 불법 촬영 사진 파일을 몰래 건네주는 동료 교사에게
왜 자신을 도와주느냐고 동은이 묻는다.
- *여기까지 오는 것도 저에겐 용기였거든요.
저는 그 안에 든 걸로 못 싸우지만, 선생님이라면… 싸우실 것 같아요.*
언니, 저 마음은 뭘까.
난 좀 알 것 같아. 역시, 복수를 하려면 가벼워야 해. 몸이 가벼워야 한달까. 가해 집단의 권력에 잠식 당해 버린 사람들도 복수는 못하지만, 소중한 게 이미 많은 사람들도 복수는 못해. 지킬 게 많으니까. 자신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신중하게 도울 수는 있겠지. 저 선생님 저기까지 오는 것도 진짜 용기였다고 본다, 나는.
그렇다. 복수에 성공하려면 의지 말고도 여러가지 능력과 조건이 필요하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자가 증식하고 있는 책 더미들 말고, 고양이 한 마리 말고, (아 너무 많네. 이미 너무 많아져 버렸다. 복수에 대한 열망이 희미해졌나보다. 나 자신 긴장해랏.) 그 외에는 가뿐한 점점 가벼워지는 중인 나 자신. 때에 따라서는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난한 과정을 통해 선 긋기를 거의(?) 완수했다고 잠정적으로 그렇게 결론 내린 나의 원 가족에까지 생각이 미치고나니 이제 나는 정말 가볍다. 소중한 게 있긴 있지만, 잃으면 안될 만큼 매우 소중하지는 않아. 대도시, 1인 가구, 부양 고양이 1묘, 1인 사업자. 그러므로 나는 역시 복수하기 좋은 몸이다. 싸우기 좋은 가볍고 홀가분한 몸. 언제든 싸우고 싶을 때 싸우려면 소중한 걸 더는 만들지 않는 게 좋겠다고 다짐.
또 나는 내가 복수하고 싶은 사람을 떠올려보았다.
그는 소중한 게 있을까? 아마 내가 떠올리는 종류의 어떤 인간들은 나보다는 가진 것이 많을 것이다. 열렬히 추구했을테니 많아졌거나. 하지만 그들에게 정말로 무언가 소중한 게 있을까.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나는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없을 것 같은 데. 없다. 그렇다면 소중한 걸 망가뜨릴 수 도 없는 내 복수는 시작도 전에 이미 실패인가. 뭐 상관 없다. 이제 나는 좀 상관 없어진 것도 같기도. 그렇다고 잊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잊지 않고 닮지 않는 인간이 되는 게 내 복수라면 복수니까.
와, 제대로 된 히어로 물. 현실에서 학폭 피해자가 저렇게 복수하긴 어렵겠지?
응 어려울 거야. 희생양 이론이라는 게 있어. 어떤 사람이 희생양이 되는 지 알아?
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
그것도 맞는 데, 더 정확하게는... 그 집단 안에서 복수가, 반격이 불가능한 사람.
헐.
무섭지. 그러니까, 그러더라고. 인간 종이 참 그렇게 허접해. 그럴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더라고. 보복 안 당할 거라는 확신이 있을 때 더 잔인해질 수 있대. 권력에 취하는 거지. 어릴 때는 머리가 덜 커서 멍청하니까 피해자들도 미래에 성장할 수 있다는 게 안 보여. 그러니까 저렇게 개망나니처럼 학폭을 하는 거고. 근데 크면서는 더 영악해 지는 것 같아. 냄새를 맡는 거지. 저항이 불가능한 사람들의 냄새. 어디까지 사회가 받아들이고 못 받아들이는지 까지도 귀신같이 알아서 조종해. 입도 딱 씻을 수 있어. 너는 깨끗해? 네, 선택이었잖아! 이럴 수 있게? 어떻게 보면 드라마가 정말로 맞는 게 그런 의미에서 모든 피해자들의 최초 가해자는 가족인 거지. 마지막 보호를 해줄 수가 없는. 무능한.
.......
언닌 대체 왜 그렇게 드라마를 분석하면서 보는 거야? 머리 안 아파?
나? (눈 번뜩) 복수하려고.
헐....ㅋㅋㅋㅋ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명심해야 한다. 순식간에 피해자로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복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걸. 건드려도 되는 사람처럼 보여서는 절대 안돼. 특히 여전히 성별 이중 규범이 강하게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어떤 식으로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사회는 여자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사실 원래 보호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좀처럼 폭력 남편을 벗어날 수 없었던 현남의 꽃무늬 원피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모든 학대가 일방적인 폭력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게 판타지 같아. 폭력과 다정함. 협박과 회유. 그루밍.
정도를 넘어서는 가해자들의 특징적인 기준은 뭐냐면 기분이다. 자기 기분.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해자를 너무 단순하게 그린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터득한 냄새(?) 맡는 법, 가해 종족(?)에 대한 어떤 시선이 있다. 사회의 도처에서 암약하고 있는 그들은 전혀 복잡하지 않다. 되려 멀리서 보면 너무 단순하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저 자신만이 소중하기에 끝까지 자기를 중심으로 정당화, 서사화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과정에서 타인은 생존이든 번영이든 자기애적 만족이든 도구일 뿐이다. 무엇이든 도구화하는 데 능하다. 스스럼이 없다. 그들은 때로는 처연한 피해자의 얼굴을 한다. 아니. 자주 한다.
소중한 것을 단 하나도 만들지 않으면서 18년 동안의 복수를 준비한 동은은 자신의 복수를 위해 도구처럼 여겨야 할 사람들 앞에서 문득문득 흔들린다. 그가 *복수에 성공* 할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었던 건 능력을 갖추기도 했지만, 흔들리는 종류의 사람이었기 때문일 거다.
시즌2의 마지막 화에서 연진에게 꼭 맞는 지옥을 선사한 동은은 18살의 자신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여겼는데, 지나고 보니 순간순간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 낸다. 다행스럽게도 멈추었던 그녀의 19살이 시작된다.
"피해자들이 잃어버린 것 중에 되찾을 수 있는 것이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나의 영광, 명예, 오직 그것 밖에 없죠. 누군가는 그것을 용서로 되찾고, 누군가를 복수로 되찾는거죠. 그것을 찾아야만 비로소 원점이고 그제야 동은후배의 열아홉살이 시작되는 거니까요. 저는 동은후배의 원점을 응원하는겁니다. 그사람은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덜 불행해지려는 것 뿐이거든요." - <더 글로리> 주여정의 대사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용서하고, 복수할 수 있는 사람은 복수하면 된다. 하지만 되찾을 수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진짜 용서도 진짜 화해도 진짜 보복도 그게 진짜라면 그걸 추구하는 과정에서 본질이 변한다. 본질이 변하고 나면 복수는 복수가 아니게 될지도 모르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변해야 한다고. 그러니 가해자들은 변해야 하는 순간에도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변화할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 저 자신의 얄팍한 생존을 위해서만 겉으로만 변하는 척 하는 종류의.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달리기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복수는 체력인데, 나에겐 나대신 뛰어줄 주여정이 없으므로ㅋㅋㅋ 내가 주여정이 되어서 체력도 만들고 돈도 암튼 뛰어야 한다. 문동은처럼 복수어린(?) 김밥을 먹고 싶어서 저녁에 김밥 집 갔는데, 참치김밥 4800원이어서 울 뻔 했다. 없던 빈혈이 다 돋는 물가 상승이다. 참치 김밥은 사 먹고 커피는 집에서 내려마시기로 했다.
나에겐 명랑한 기분을 유지하는 게 최고의 복수다.
자 이젠 복수 타령 그만하고 생존할 시간이다.
업무텐션 올리려고 탑골쏭 너무 많이 들었더니 요즘 내 안에선 엠씨몽이 흐른다.
사랑에 빠져버린 내 소중한 사람아.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유승준도 듣겠다.
이 세상에 나의 너보다. 소중한 것이란 건 내게.
소중....소중..........
소중하다는 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