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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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 - 정규 3집 늑대가 나타났다
이랑 노래 / YG 플러스 / 2021년 9월
평점 :
절판
(모 서재 이웃님 글 읽다가 갑자기 울컥함)
강제 노동요로 아이돌 뮤직만 듣는 내가 좋아를 넘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한국 가수는 나보다 한살 많은 이랑인데. 이 음반은 2020년대 명반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 달리기를 하고 일상을 챙긴다.
(멜랑꼴리가 없는 사람은 듣지 않길 권한다.)
나는 내 가족을 사랑한다. 가족 최애. 가족 최고. 엄마의 시집가 공격에는 수도권의 집값으로 응수한다. 여동생들과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아슬아슬한 권력의 균형(?)을 이루었다. 아빠한테 밥줘충 남동생한테 남동충이라고 킥킥 대며 씹어도 존경하고 사랑한다. 인간적으로는 짠하지만, 여성으로서는 대단히 분개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성애 중심 가부장제 중심)사회에서 부과한 의무를 잘 수행한 사람들이고, 이제와서 그들이 바뀔리도 없고 나 역시 바꾸고 싶은 생각이 없으므로, 나도 나의 의무만 형식적으로 다할 뿐이다~. 두분 다 이런 세상에 태어났으면 결혼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 덕에 여성 인권이 신장 되었기를 얼마나 다행인가!
정상 가족을 만드는 것은 (만들고 꾸려서 그걸 운영하는 것) 비수도권 출신의 안정적이거나 전문직이 아닌 여성인 나에겐 엄청엄청나게 노력해야 하는 거라는 걸 좀 정확히 안다. 꾹 참고 그렇게 해볼까했는 데, 그럴 기운이 없더라고. 걍 살아남는 데 에너지 다 쓰고 집에 오면 나도 아내(하다 못해 로봇 청소기라도)가 필요하다. 가족. 내가 가진 자원이 없으니까, 그 구조 앞에서는 그냥 희생만 해야 하는 위치라는 게 눈에 보여서 X까 걷어찼다. 그러고 난 뒤에야 내가 얼마나 정상성에 집착했는지 알겠더라. 세상이 행복이라고 정해 놓은 기준이 너무 높다는 것도. 그럼 난 행복할 수가 없는 건가요? 아니~ 난 지금 행복하기로 했다. 가족이 없어도, 가족 수준의 친밀한 관계가 없어도!!!
이런 세상(모두가 가족을 위해 자식/부동산에 투자해야 하는 수도권 중심)에서는 가족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며, 그런 나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나를 안사랑하는 남자랑은 잘 생각이 없어졌다. 그리고 나 정도의 자기애를 지닌 이성애자 남성은 이미 여자가 있다! (여성들은 똑똑하다!!) 게다가 난 매일 (대체로 여자들) 누군가가 죽고 죽어나가는 기사(스마트 폰)를 보면서 예의 한남들 예능 처럼 *나만 아니면 돼~*할 수 있는 썩은 사상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 주제에 뭔가를 바꿀 수 있느냐. 그건 조금이라도 뭘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해야죠. 그런데 모두가 덜 가졌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피해를 경쟁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뭔가들을 하고 있기는 하다. 이런 마음(측은지심?)이 나를 해치지 않고 보존하는 선을 알기 힘들어하는 캐릭터였기에 나는 나를 열심히 공부한다.
뭐, 암튼 가족 만들기를 포기하고 나니. 오로지 나 자신이 동기가 되어 혼자가 되어서도 자신을 잘 돌볼 수 있는 능력을 연마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노력 중이다. 가족을 포기했다고, 연애를 포기했다고, 친구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다. 나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게 만드는 친구들과 재밌는 대화를 하면서 (왜 대부분 비혼에 고기를 안 먹는 지는 모르겠음 ㅋㅋㅋ) 잘 지낸다.
서로가 서로의 동력이 되는 가정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그래도 가끔 나 자신*만*이 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지는 날들이 온다. 친구들은 그런 내게 애플 워치(운동 족쇄)를 채워주고 걸음을 걷게 잔소리 해준다. 나도 애들이 맨날 걷고 있어서 의욕이 생긴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주제에 아프면 안되니까 담배도 끊고, 술도 끊고, 운동도 하고 그렇게 산다. 무의식이 삐꾸나서 아무한테나 민폐끼치면 안되니까 걱정되어 정신건강을 위한 상담치료도 달에 한 번 씩 받고. 그러다 보면 과거에 사회화되기 위해 애썼던 내가 계속 불쌍해져서 아, 나 왤케 절케 불쌍하냐 일기 쓰고... 뭐 .... 그러다 또 아침마다 눈이 떠지므로 이불 박차고 일어나서 대충 열심히 산다.
생존하고 뇌가 남으면 가끔 어려운 책을 읽는다.
그러다 보니 요즘엔 재밌는 것(?)들이 조금씩 생겨난다.
재밌어도 돼지. 난 이렇게 훌륭하니까~. 게다가 난 제법 다정에도 소질이 있는 것 같다. 하하!
내 인생은 나 하나로 끝나므로 내일 끝내도 모레 끝나도 상관없다.
대신 오늘 당장 끝났을 때 나한테 쪽팔리긴 싫으니까.
명랑하게 살자. 살아있는 동안엔.
-이랑 노래 1. 좋은 소식 나쁜 소식-
젊은 친구 지구에 온 것을 환영하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곳이라네
둥글고 축축하고 북적대는 곳이라네
자네 이곳에서 고작해야 백년이나 살까
세이프 섹스를 하고 새 생명을 내보내지 말게
이 지구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 만들었다네
믿을 수 없다면 조간 신문을 사서 읽어보도록 하게
어떤 신문이든 어떤 날짜든 상관 없다네
젊은 친구 지구에 온 것을 환영하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곳이라네
둥글고 축축하고 북적대는 곳이라네
자네 이곳에서 고작해야 백년이나 살까
세이프 섹스를 하고 새 생명을 내보내지 말게
이 지구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 만들었다네
믿을 수 없다면 조간 신문을 사서 읽어보도록 하게
어떤 신문이든 어떤 날짜든 상관 없다네
-이랑 노래 2. 환란의 세대-
또 사람 죽는 것처럼 울었지
인천공항에서도 나리타공항에서도
울지 말자고 서로 힘내서 약속해놓고
돌아오며 내내
언제 또 만날까
아무런 약속도 되어있지 않고
어쩌면 오늘 이후로 다시 만날 리 없는
귀한 내 친구들아
동시에 다 죽어버리자
그 시간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선수 쳐버리자
내 시간이 지나가네
그 시간이 가는 것처럼
이 세대도 지나가네
모든 것이 지난 후에
그제서야 넌 화를 내겠니
모든 것이 지난 후에
그제서야 넌 슬피 울겠니
우리가 먼저 죽게 되면
일도 안 해도 되고
돈도 없어도 되고
울지 않아도 되고
헤어지지 않아도 되고
만나지 않아도 되고
편지도 안 써도 되고
메일도 안 보내도 되고
메일도 안 읽어도 되고
목도 안 메도 되고
불에 안 타도 되고
물에 안 빠져도 되고
손목도 안 그어도 되고
약도 한꺼번에 엄청 많이 안 먹어도 되고
한꺼번에 싹 다 가버리는 멸망일 테니까
약도 한꺼번에 엄청 많이 안 먹어도 되고
한꺼번에 싹 다 가버리는 멸망일 테니까
아아아 아아아 아아 너무 좋다
아아아 아아아 아아 깔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