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쟝쟝님 / 사랑하기에 떠나신다는 그 말
주말에 홉스랑 영화 한 편씩 봤다.
둘 다 보고 감성 척척해져 버렸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왔기 때문에 가습기를 꺼냈는데, 가습기를 틀지 않아도 될 만큼 아주 척척했다. 흡…
특히 <비커밍 제인>은 <설득> 읽고 난 후에 봤는데… (설득을 보려고 넷플을 켰다가 비커밍 제인을 보고 말았다죠) 제인 오스틴 역의 앤 해서웨이여. 매력적이어서 미치는 줄. (제임스 맥어보이를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연기 살살해라…) 그러고 보면 니콜 키드먼의 버지니아 울프(영화 <디 아워스입니다>)도 그렇고. <메리 셸리>에서 메리 셸리 역의 엘르 패닝도 그렇고. 여성 대작가님들 그냥 이야기만 들어도 멋져서 미춰벌이는 데, 대배우님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기해 주니까😭 뭐랄까 외모 필터 껴가지고 더 사랑하게 되어 버리는 효과가 있다. 아 쒸 ㅠㅠ 작가 주인공인 영화 많이 찍어 주세요. 내가 다 본다, 그리고 다 읽는다.
그런데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곧 보게 될 <조용한 열정>의 디킨슨 배우는 누구지? 브론테 자매가 나오는 영화는 없나요? 말고도 글 쓰는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원한다! 나는 원한다!! 갑자기 원한다!!!! <비커밍 제인>이랑 <작은 아씨들> 정말 좋은 데… 주인공이 글쓰는 여자들이라서 좋아한 거 같아. 아, 물론 나에겐 제임스 맥어보이 같은 사람 남자는 없는데요… 와 진짜. 저는 정말로 영화를 보면서 이 새끼가 개새끼지만 정말 황홀한 개새끼였다ㅋㅋㅋㅋㅋ 그에 비하면 <작은 아씨들>의 티모시 샬라메는 착했지. 착했다. (사실 조의 글에 비평해주는 사람은 루이 가렐 이지만ㅋㅋ 난 그냥 티모시가 좋아요ㅋㅋㅋㅋㅋㅋ)
여러분. 이런 영화 더 알아요? 로맨스여도 좋지만 로맨스 아니어도 된다!!! 왜냐면 나 머리했거든요. 작가처럼 보일라고. 내가 아는 한국에서 작가를 직업으로 가진 연기를 한 배우는 딱 세명인 데 셋 다 방송작가야. 정소민은 너무 예쁘니까 패스하고 한 명이 <그들이 사는 세상>의 김여진이고 다른 한 명이 <술꾼 도시 여자들>이선빈인데 둘 다 긴 빠마 머리여서 왠지 머리 빠마 하면 작가처럼 보일 거 같아서 머리 빠마했는 데… 네, 작가 같아 보입니다. 이제 집필 활동만 하면 되는 데, 주말 내내 누워서 영화만 봄… 창작의 고통이란? 🤷🏻♀️
하여튼… 제인 오스틴은 평생 결혼 안 하고 살면서 성공한 소설가가 되고,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함께 라랄랄라 행복한 결혼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실화인 바, 영화 자체에 대한 스포일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의 삶을 다룬 영화 <비커밍 제인>에서의 제인 오스틴은 남자 주인공이랑 바람 나서 떠나다가 말고 다시 돌아온다. 나는 결국 그녀가 떠나지 않을 걸 알고 있었기에 더 마음이 아파서 죽겠더라. 그러니까.
이것은 나에게 어떤 주제다. 아주 오래 전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면서 생각했다. 떠나고 싶다고. 배두나처럼. 난 그처럼 떠날 거라고 다짐했나. 그런데 언제나 그러지 못했다. 사실 이별을 배운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여전히 서툴고,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야만 이별을 수행할 수 있다. 어쨌든 <비커밍 제인>에서 오스틴이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더 많이 그녀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나는 차마 떠나지 못하는 여자들을 알고 있고, 나 역시 일정 부분은 그런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득 생각난다. 나폴리 시리즈의 릴라도 떠나지 못한다.) 그래. 나는 미련한 편이지.
제인 오스틴이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하고 더 훌륭한 것들을 보았다면 더 대단한 작가가 되었을까? 글쎄, 그건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제인 오스틴은 돌아왔다. 그리고 제인 오스틴은 제인 오스틴이 되었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인물들. 한정된 경험. 한정된 세계관 속의 한정된 명분 속에서 한정된 계산을 하는 사람들. 그러나 한정과는 상관없이 그녀의 작품은 탁월하다. 투사, 억압, 합리화, 전치… 심리학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대사와 서술에 다 나온다. 제인 오스틴은 인간을 알고 썼다. 그녀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현실의 인물들처럼 살아 움직인다. 대작가에게 한정된 공간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 누군가는 돌을 볼 때, 누군가는 다이아몬드를 보는 거다. 그것이 다이아몬드가 될 때까지. 갈고. 닦기. 제인은 떠나지 않아도 충분했던 것이다.
언젠가 100자 평에 “결혼, 결혼, 지겨워!”라고 했지만 앞으로 나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더 좋아할 예정이다. 영화를 보고 나니 그녀의 작품들이 정말 새롭게 보인다. (물론 그녀가 가.난.한. 상류층이라는 건 역시 넘어야 할 과제다… 난 사교계와 댄스와 파티는 못 읽겠어…) 역시 작가를 알고 작품을 봐야 하는 건가 봐!!!
<설득> 속의 앤은 품위를 지키고, 감정을 느끼며, 오해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해에 가닿는다. 더 깊은 이해에 가닿을 때까지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지켜보는 사람, 응시하는 사람, 조용히 내면을 톺는. 진지한 앤은 찬찬히 본다.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배려한다. 그녀는 찬찬히 본 사람이기에 어느 순간에는 행동과 말이 단호해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앤은 승리한다. 다 읽고 이 작품을 오스틴이 마지막에 썼다는 걸 알았다. 그렇구나. 말년의 오스틴은 이토록 안정적(?)이었나 보다. 소설을 읽으면서 차분해지는 경험은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모처럼의 차분함이 휘저음 당해벌임 리비도 폭발ㅋㅋㅋㅋㅋ 제임스 맥어보이 너 누구냐ㅋㅋㅋ)
제인 오스틴은 대중들이 가장 열렬하게 사랑하는 작가다. 200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대다수의 독자들은 평범하게 살아간다. 떠나지 못한다. 우리의 결말은 살아있는 한 결말이 나지 않기 때문에 해피 엔딩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개인의 삶에서 (내버려 두지 않은 채로) 충분히 곰곰이 기다렸다가 ‘다른 이해’에 가닿는 순간은. 묘미 아닌가. 다른 곳에 나를 세워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성장이라면 성장보다 더 해피한 ‘해피’가 있나? (돈??ㅋㅋㅋ)
비커밍, 제인. 제인은 글을 쓸 것이다. 나는, 나 역시 글을 쓸 것이다.
점심에 돈가스 나베를 먹기로 했기 때문에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헤어질 결심>을 한 번 더 봤다. 처음에 봤을 때는 “같은 종족”에 꽂혔다. 이번에는 각자가 가진 ‘결핍’이 읽혔다.
해준은 언제나 잠이 부족하다. 서래를 만나고 잠들 수 있게 된다. 한국에 와서는 다정한 시선을 받아본 적 없었을 서래는 그가 떠나고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언젠가 사랑의 시작은 결핍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었다. 대상에게서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이 없으면, 관계는 지속되지 않는다는 다소 차가운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것이 없었을 때는 잘 모른다. 그것을 겪기 전까지는 그것이 그토록 결핍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없다. 없다는 것은 그런 거니까.
찰나의 충족. 간절한 갈망. 나는 내가 그런 것들을 원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런 것들이 그토록 없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마침내. 헤어질 결심을 한다. 왜냐면. 나는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다시 돌아와야 하는 사람이니까.
서래는 한국말이 서툴 때마다 묘하게 웃는다. 나는 그 웃음이 좋다. 해준이 피를 싫어한다고 수영장 바닥을 벅벅 청소하는 것도 웃기다. 그렇게까지 안 했어도 됐는 데. 하긴. 나도 좋아하는 사람이 싫어하고 아파하는 것은 싫다. 하지만 나 땜에 그런 건 좋아 ㅋㅋㅋ
사랑은 할만한 걸까.
이별은?
잘은 모르겠지만 <비커밍 제인>을 보고 알았다.
돌아와서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