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랜드 열다 페미니즘 총서 5
게일 다인스 지음, 신혜빈 옮김 / 열다북스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다시 상담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또 모범생답게) 선생님과 나눠보고 싶은 이야기들을 준비해서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한 시간은 생각보다 짧고, 매일의 상담 대화는 내 생각처럼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가끔 선생님께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아이같다는 생각을 한다. 칭찬이 부족했나보군, 이런다. (그렇다... 이토록 허세가득한 글을 써도 나는 아직 나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는 법을 잘 모르는 바부다.)


‘건강한’ 의존 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돈을 내고 칭찬을 받는 게 뭐가 어때서~ 또 이런다. 원래 돈으로는 내게 부족한 것, 내게 필요한 것을 사는 것이다. 나는 아주 똑똑한 소비자 현명한 투자자인 걸로. 어쨌든 약간의 알콜 의존증 때문에 다시 시작한 상담인데… 벌써 일년이 넘었다. 선생님 우리는 언제 이별할 수 있을까요? 대체 선생님과 완벽하게 이별한 인생을 깨우친 내담자가 있긴 한가요? 푸념을 하면 선생님은 상냥하게 ‘그럼요’ 이러신다. 난…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 이건… 삼십년이 더 걸릴 수도 있어 쌤, 우리 생각보다 더 많이 오래봐야할지도. 😔


상담실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냐고 묻는다면 다양하다. 서른 무렵의 첫 상담은 과거의 가족 관계(특히 주 양육자와의)를 톺았다. 난 스물 네번의 상담을 끝낸 후로 일기를 쓰고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했는 데… 겉으로 보기에 엄연한 정상 가족에 진입하기 위해 분투한 부모님들을 더 깊게 이해하고 싶었던 게 컸다. 나 자신의 양육환경을 고스란히 엄마 탓을 하는 게 여성 혐오적이라고도 느꼈다. 그리고 공부를 할 수록 그게 사실이었다. 내가 힘들어 몸부림치는 그것들은 ‘규범’으로 이미 체현되어 가시화 되지 못한 가부장제이다. 계급문제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가부장제-여성혐오가 굳이 %로 치자면 70%로 컸다. (실제로 신경정신과와 심리상담소의 내담자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15%는 자본주의… 나머지 15%는 기타 등등. 어쩌면 페미니즘은 나의 70%를 인정하는 인정투쟁이다. 


“(233) 잡지와 텔레비전에서 보는 여성의 신체—이것이 바로 미디어가 하는 일이다. 비정상적인 몸을 가시화해 정상으로 만들고, 실제 여자의 정상적인 몸을 비가시화해 비정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 결과 발생하는 건 사회가 만들어낸 심각한 이미지 장애다. 우리는 모두 문화의 메시지와 이미지로부터 우리 자신에 관한 관념을 형성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여자가 오히려 이상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234) 하지만 이 논의에서 중요한 지점은, *병적인 것은 우리 사회이지 병동에서 여러 장애를 진단받은 여자 청소년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쨌든 오랜 기간의 상담 이력(?)으로 미루어 나를 정신이 아픈 애로 보려거든 그렇게 보든 말든 상관 없는 데, 아프다는 걸 인정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덜 아프기로 선택했다*는 거다. 나는 그런 나는 좀 좋아한다. 내 기준엔 사회가 퍼붓는 그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감내하면서 아프지 않고 정상인 척 한다는 것이 좀 더 소름끼치는 일이다. (그 소름끼치는 몰골들을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자주 목격한다. 정상성을 획득한 저명 인사들의 글에서도 발견한다. 🤔 역시 내가 낫다.) 물론 나에게는 현대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부득불 계발한 족히 31개는 되는 페르소나들도 있지만 한 인간의 자아를 31개로 파상시켜 관리한다는 것은 통합할 만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여 대체로 인생을 무리하고 있다… 그나마 회사를 안다니니 망정이지… 후…. (회사 다닐 때는 술과 담배를 맥여서 빠른 마취를 통한 자아들의 기계적 조화를 꾀하였다. 지금은 화학적 조화… 응?)


아, 다시 돌아가 상담실에서 내가 나누는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내가 어떤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에 대한 것이다. 삶에서 경험한 사건들로 구성된 비합리적인 신념에 의거한 거라면 신념을 교정하고,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없어 신체화 증상만 나타나면 신체화 증상을 통해 감정을 찾고… 그런다. 이렇게 쓰니까 정말 간단한 작업 같네? 


말이 쉽지… 꽤 심오하다. 그러므로 내 글에서 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내가 그런 과정을 의식화 하기 위해 글을 쓰기 때문이다. 이 방법이 잘 맞는지는 모르겠고 누구에게나 맞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감정을 잘 못다루는 종류의 인간이고, 글을 쓰면서 나를 배운다. 어쨌든… 쓴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서 기특했으면 좋겠고, 나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또래의 여성들이 있다면 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조금 있다. 그러니까 이건 약속이다. 이겨내고 싶다는 약속. 미래의 나와 또래의 ‘나’들에게.


사실 7월의 초입에서 몇 년 전에 대충 봉합해둔 상처가 터져버리는 사건이 있었다. 나는 고통스러웠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후로 이상한 사명감에 불타서 주경야독… 과몰입 상태였고, 끝내 몸 까지 상했다. 이놈의 페미니즘을 끊어야지… 하는 상태까지 갔다가… 보름 정도 읽기를 끊고 놀라울 정도로 괜찮아졌… (-_-) 잘못된 진술이다. 페미니즘이 잘못된 게 아니라 인류 5천 년 치의 가부장제가 잘못된 것…은 맞는 데 그걸 내가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바꾸는 건 망상이잖아?🤷🏻‍♀️ 하여튼 나의 분노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고… 아무튼 요즘엔 페미니즘 ‘안’찾아 읽기를 혼자서 하고 있는 데…. 다음달 부터는 <다.미.여> 같이 읽기 하자고 유튜브에 질러놔가지고 빨리 평안을 되찾아야 한다. 워밍업 느낌으로 이 달의 페미니즘 한 권만 읽자고 했는 데…. 10월의 책이 <포르노랜드>여. 워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매운 맛. 


“(236) 이미지에 순응하는 건 유혹적이다. 주류와 일치하는 정체성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기쁨 또한 안겨주기 때문이다. 섹시한 외모는 남성의 관심을 끄는데, 가끔은 그게 힘을 키워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사람들이 *어떤 체제에 더 쉽게 순응하도록 하려면 그 체계의 본질이 억압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순응하는 것에 심리적, 사회적, 물질적 이득이 따르도록 하면 된다*. 많은 여자들이 남자가 성적으로 원하는 대상이 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잘 안다. .... 그런 종류의 관심은 남자가 성적으로 욕망하는 여자에게 퍼붓는 관심이며, 진짜 권력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덧없는 것이다. 포르노 문화 덕분에 점점 더 여자를 대체 가능한 섹스 상대로 바라보는 남자들이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힘을 가졌다고 느끼기 위해, 여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성적인 대상으로 포장해 그다음 남자에게 보여야 하며, 그렇게 해서 그 남자가 잠깐 자기를 욕망 어린 눈길로 바라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진짜 권력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덧 없는 것. 그것을 위한 여러 종류의 지난한 노동(?)을 끝낼 수 있는 손 쉽지만 어려운 방식에는 결혼이 있다는 생각을 좀 했다. 20대를 지나며 많은 여성들이 성적인 대상으로 포장하는 것에 지쳐 결혼을 선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나 역시. 그러려다 말았다. 


오늘 상담실에 가기 전에 내가 샘과 다뤄보기 위해 준비했던 이야기는 사랑 받는 것을 포기하는 마음에 관한 것 이었는 데… 정작 그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못하고… 나는 왜 이렇게 도장(사진 참조.. 결국 10월 초에 허리가 뽀사지고 분노 조절이 안되던 공쟝쟝은 스스로에게 페미니즘 안 읽기 + 매일 산책을 처방하고 당연히 성공했다… 나여 그만해…)에 집작 하는 가?에 관한 이야기만 줄창 파다 왔다. (왜긴 J여서?ㅋㅋㅋ)




선생님께는 못했던 이야기지만, 글로 좀 써둬야겠다. 이 책의 감상과도 따로 떨어지지 않은 이야기라 생각한다. 

지지난달 쯤엔가 서재에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어떤 감정적 노동들을 멈추자 이상하리 만치 남자 사람들과의 관계가 멀어졌다고 썼었다. 나는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것이 오랜 기간 내가 사랑받기 위해 선택한 성격(그것은 섹스하고 싶은 외모의 여성이 되는 것 이라기 보다는 나의 생각과 감정을 뒤로 미루고 끊임없이 정서적인 지지를 제공해주는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종류의 화법 —젠더화된 이해력, 젠더화된 공감 이라고 줄여서 표현한다—)을 고치는 것임을 점점 알아가고 있다. 이제 더는 예쁘지도 젊지도 않은 내가 그런 태도마저 취하지 않는다면 (돈을 많이 벌어…?ㅋㅋ) 정말로 이성에게 사랑받는 것을 포기해야하는 것이구나 했다. 앞으로 남은 삶에서 사랑 받을 수 없다는 건…. 


있지도 않은 사랑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은 좀 웃기는 일이지만…  꼭 그렇게까지 성격까지 바꿔야 하는 것이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냥,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가 않다. 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살아서 내가 얻은 건 함량 미달의 사랑과 약간의 인정. 치러야 한 댓가는 천연 자원처럼 제공해야 하는 언어/비언어적/감정적 노동과 웃음, 나 자신의 욕구를 잃어버림…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정말로 귀한 일이었다면 세상은 내가 이렇게 되기 전에 제 값을 쳐주어야 했을 것이다. 나는 더는 무리하고 싶지 않다. (이것이 누군가들에게는 무척이나 무례하게 보이겠지만, 강호의 도가 바닥에 떨어진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니 좀 참으셈.) 


온 사회의 부지런한 공모의 결과로 수 천 년을 여성에게서 무상으로 제공 받고 누려온 것들에게 세세한 값을 매기게 된 것은 분명 신자유주의의 성과다. 어쩌겠는가. 바깥에서 일해야 하는 현대의 여성들에게도 돌봄은 필요하다. 이제 돌봄은 여남 모두가 수행해야 하는 어떤 것이 되었는 데, 여자에게서만 그걸 얻으려고 하면 도둑놈 심보지 그게. 상호 돌봄 해주기 싫으면 혼자 살면 된다. 



어쨌든 여아는 ‘사랑받는 존재’로 사회화가 된다. 꽃처럼 방긋방긋 예쁘거나 꽃 처럼 꺾어야 하거나 꽃 다운 나이어야 하거나… 여자는 오랫동안 남자들이 사회적 성공을 이룬 댓가로 쟁취해야하는 트로피 같은 것이었다. 지금도 남자는 성공과 부를 추구하면 젊고 예쁜 여자가 절로 따라오지만(난 정말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커플이 싫다) 여자는 성공과 부를 추구하는 야망을 가지면 ‘집에 가서 애나보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사랑*받는* 것에 집중하는 존재로 사회화 된다는 것은 어떤 개념인가. 그것은 나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넘겨주는 방식으로 자라난다는 것이다. 애석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나의 주도권을 타인들에게 알아서 헌납하면서… 조금의 인정, 사랑한다는 제스처만으로도 나는 아주 상냥해지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남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살뜰히도 알아채면서, 정작 나에게 필요한 것을 그들이 해줄 것이라 생각했던가. 모르겠다.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받는 사랑의 속성이다. 사랑 받고 싶어하면… 사랑의 대상에게 의존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사랑 받는 것이 나쁜 일인가? 그것 역시 잘 모르겠다. 그럴 수 있으면 그런 거지 뭐. 좋았던 때도 분명 있었다. 사랑 받는 여자에게서 느껴진다는 그런 활력 같은 게 나에게 없었다고는 말을 못하겠네? 


“(237)이 여자 청년과 여아 다수가 지배적 문화에 꾸준히 저항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마음 맞는 또래 집단과 더불어, 현 시대의 여성성이 지닌 허위와 착취, 소비주의적 본질을 고발하는 이데올로기다. … 그러한 세계관과 마음 맞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부재한 상태에서, 많은 여자 청년들이 포르노 문화에 순응 하기를 거부하며 고립감이 들고 혼자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호소한다… 또한 이들은 자신을 성적으로 매력 있게 보이도록 하는 행위는 물론이고 원나잇 섹스도 거부하는데, 이 때문에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를 찾기도 쉽지 않다.” 

는… 왜 내 뼈를 때렸나. 아얏!


여자는 ‘사랑 받으려면 ~야 한다’ (~에는 예뻐야, 어려야, 잘 웃어야, 약간은 멍청해야, 가슴이 커야, 귀여워야, 섹시해야, 꿀벅지여야, 뼈 말라야, 혹은 적당히 말라야, 등등 아주 할게 많음 … 포르노 이미지에 순응한 댓가로 전신에 오르가슴이 찌릿찌릿한 인생 섹스를 수시로 맛볼 수 있다면 뭐 내 타협할 의향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 이 책을 읽어보니 니네 비아그라 없이는 그런 거 안된다며… ㅋㅋㅋㅋ)를 포기한다는 건… 


때에 따라서는 매우 홀가분한 일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권장할 일 만은 아닌 것도 같다. 10월 한달 동안 나는 비비언 고닉의 에세이를 읽었는 데… 하… 정말 처절하시더라. 난 좀 해보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타협도 할 건데요… 여튼 지금은 아니란 소립니다. 그래도 아주 좋은 귀감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허허. 


어쨌든 이성애자로 연애를 못한지 꽤 오래된 나는… 나의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을 똑똑히 바라본다. 음… 역시 별로 건강하지… 못하다. 그래도 사랑 받는 느낌은 좋은 데… (누가 나 좋아해주면 그건 좋긴 한데… 괜히 돌려줘야 할 것만 같은 정직한 사람…) 그러나 남자에게 혹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 사는 삶이란… 본질적으로 내 삶의 주도권을 그들에게 내어주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사랑 받고 싶을 때가 있지. 특히 힘들고 아플 때, 기대고 싶을 때. 때때로 사랑 받고 싶어지는 그 마음을 어떻게 포기해야 하는 건지… 포기한다고 포기가 되는 건지… 사실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암튼 사랑 받지 못하는 두려움보다 내 삶의 주도권을 남에게 맡겼을 때 느꼈던 무력감이 더 두려운 일이란 건 좀 안다. 건강한 주고 받음... 이렇게 생겨 먹은 난 그걸 연습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고.




2022년 10월의 힘들었던 시기를 통과하면서, 나는 사랑 받기 위해서 자아를 조절하는 에너지를 자아를 탐구하는 데에 더 쏟기로 맘 먹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랑 받기를 포기했다고 한들 사랑하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사랑할 대상이 이미 죽은 사람, 책 속에 있는 사람들인 게 요즘 나의 문제긴 한데…(롸?)ㅋㅋㅋㅋ 뭐, 사랑 꼭 섹스!가 있어야 합니까?! ㅋㅋㅋㅋ 


실물 대상이 딱히 없는 것이 좀 별로긴 하지만(정말 이젠 남자 연예인도 못 좋아하겠음.... 빌어먹을) 나는 사랑 받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거야!라고 생각하니까 뭔가 내 안에서 좀 힘이 생겨난 느낌이 들었다. (남자들은 이렇게 힘 있는 존재로 사회화가 된다는 말인가? 좀 화나는 군.) 첫째 대상은 일단 난데, 내가 나를 알아가고 사랑해야 하는 일은 평생 해야 하는 일인 거다. 흡. 첫 판 부터 최악의 빌런이 나와 벌임ㅋㅋㅋㅋㅋㅋ 그게 나는 사랑을 하기엔 좀 까탈스러운 복합적이고 다양한 욕망을 가진 존재라서.... (쿨럭!!) 


여튼 <포르노랜드>는 이런 나를 사랑하는 일이 제법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남자들에게 사랑 받는 것보다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아주 여러모로 백만 배 나은 일임을 알려주었다...  이건 백자평에 다 못써 내가 남긴 댓글인데 나만 보기 아까운 띵문이라(ㅋㅋㅋ) 긁어왔다.😫🫢


"현실의 언어를 사용한 번역자의 노고에 박수👏👏  받아들이기 역한 용어로 쓰인 책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게 현실인 것도 사실이다. 있는 것은 있다. 있게 되어버린 것이 현실이다. 현실을 오독할 권리는 분명 있지만, 내가 모른다고 없는 것은 아니며, 알게 되면 있는 것을 없다고는 할 수는 없게 된다. 다 그런 건 아니라는 거짓말에 오랫동안 속았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비정상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가시화와와 비가시화. 본다는 것이 이토록 철저히 젠더화되어있었다면, 앞으로의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 지를 아는 것이며 무엇을 보려하지 않는 지를 아는 것이다. 하나마나한 개탄과 과거 미화가 아닌 참담한 현실에 대한 아픈 인식만이 내가 희망이라고 믿는 태도다. 물론 너무 아파 죽겠지만, 아프다고 죽는 것은 아니다." 


(SNS에서 돌아다니던 인상 깊었던 짤... 이대남은 웹툰으로도 로맨스 안본다능....)



여자는 ‘걸레‘ 로봇으로, 남자는 ‘종마‘ 로봇으로 전락하는 이 세계에서, 애정에 기반한 섹스가 있을 리 만무하다. 포르노 섹스의 핵심은 사랑을 나누는 게 아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그런 행위와 연관 짓는 기분과 감정-유대감, 공감, 상냥함, 배려, 애정은 혐오와 더 흔히연관되는 것들-공포, 반감, 분노, 경멸, 멸시-로 대체된다. *포르노에서 남자는 혐오를 나눈다. 섹스가 매번 폄하를 최대치로 전달하도록 설계되기 때문이다.* 남자가 음경을 여자의 입에 밀어 넣어 숨을 못 쉬게 하든, 항문을 세게 연타해 빨갛게 드러나게 하든, 포르노 섹스의 목적은 남자가 여자에게 얼마나 큰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남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지가 중요하며, 이는 행위의 속도와 타이밍, 본질을 결정하는 사람은 남자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행사하는 권력은 성행위와 그에 수반되는 신체및 언어폭력에 아로새겨진다. - P43

청소년 시기는 본래 수많은 정체성을 하나씩 입어 보며 어떤 게 자기에게 맞는지 알아보는 단계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설명해 줄 존재 양식을 모색하는 시기다. 젊은 여자에게 주어지는 정체성 중 가장 눈에 띄는 게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고 자신을오로지 성적인 존재로 부각하는 정체성이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성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된다. - P105

많은 남자들이 반성적 질문을 던질 기회를 거부하는 이유는, 포르노가 자신의 섹슈얼리티, 여자와의 관계와 소통에 미치는 영향에 좌절하며 고통에 빠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포르노 세계 속 엄격하게 통제된 형태의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어 포르노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미친 영향을 감정적 측면에서 재고하는 영역으로 진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 대부분의 시간 동안문화가 남자에게 포르노는 재밌고 무해하며 그 본질은 판타지라고 말해 왔기 때문이다. - P184

텔레비전에서 예컨대 흑인이나 유대인을 계속해서 인종차별적,혹은 반유대주의적으로 그리는 드라마나 시트콤이 쏟아져 나온다고 가정해 보자. 백인 남자가 이들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얼굴을 가격하고,
목을 조르며 그들의 입에 이물질을 집어넣는다면 어떨까? 추측건대 격한 항의에 부딪힐 것이고, 그러한 이미지는 단지 판타지라는 이유로 옹호받지 못할 것이며 보이는 그대로 간주될 것이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가하는 가혹행위다. 포르노는 폭력에 성적인 외피를 덧씌우며 그것을 비가시화하며, *결과적으로 그 폭력에 저항하는이들은 반폭력주의자가 아니라 반섹스주의자로 규정된다*.
😕 반포르노주의자가 반섹스주의자는 아닌데 반섹스주의자 취급하면 뭐 그러라고 하세요. - P194

아마 이 연구의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원나잇 섹스에 참여한 집단중 남자들이 다른 어떤 집단보다 우울증상을 적게 보였다는 점일 것이다. 이들은 원나잇 섹스에 참여한 여자 집단보다 쾌락은 더 많이, 죄책감은 더 적게 느낀 것으로 드러났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남성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방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자는 섹스 파트너가많을수록 이상적인 남성상에 더욱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 이것이 실화라면 여남은 정말로 적대 계급 아닌가. - P240

이는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아와 성인 여자에게 발생하는 증상과 똑같다. 그렇다면 그 영향측면에서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자기가 속한 바로 그 문화에 의해 폭력을 당하며 자란 여아들의 한 세대를 배출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그문화를 피할 길은 없다. 사회화라는 행위 그 자체에 문화의 규범과 태도를 내재화하는 일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화를 하나의 거대한 집합적 가해자라고 한다면, 점점 더 많은 여아와 성인 여자들이 자기 자신을 단순한 성적 대상물로만 보도록 사회화되면서 정서적, 인지적, 성적 문제를 겪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 P245

포르노 문화에서 주어지는 가소화, 일반화, 정형화된 섹스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도 성적인 존재로 살아갈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그러한섹슈얼리티는 사회 운동이 정해줄 수는 없다. 그것은 개인에게 귀속된것이고 우리 각자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성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달렸기 때문이다.
포르노 문화에 저항하는 운동은 남자 또한 동참해야 하는데, 이들도 자기가 소비하는 이미지에 의해 비인간화되고 격하되기 때문이다. 포르노 제작자와 공조하지 않겠다는 남자들의 거부 표시는 그 산업이 주장하는 정당성을 무력화할 뿐 아니라 이윤에도 타격을 입힐 것이다. 우리는 포르노가 남자에게도 해롭다는 것을 오래도록 주장해 왔지만, 너무 오랫동안 여자만이 이 약탈적인 산업에 맞서 싸워왔다. 포르노에대한 저항이 남자에게 주는 것은 유대감, 친밀감, 공감을 찬양하는 섹슈얼리티, 종속이 아닌 평등으로 가득한 섹슈얼리티다.
평등에 기반한 섹슈얼리티는 결국 평등에 기반한 사회를 필요로한다. - P322

포르노에 대한 비판을 섹스에 대한 비판이라며 호도하는 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알고 싶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만약 이 책이 노동 착취와 환경 파괴, 우리의 식단과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근거로 들어- 맥도널드를 비판하는 책이라면 어떨까? 저자를‘섭식 반대론자‘나 ‘반음식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까? 독자 대부분이 산업(맥도널드)과 그 산업의 상품(햄버거)을 먹는 행위 자체와는 분리해서 생각하고, 저자의 비판은 패스트푸드 산업의 광범위한 영향에 초점을 둔 것이지,인간의 먹고자 하는 욕구와 먹는 행위가 주는 기쁨을 겨냥한 게 아니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포르노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이 성을 긍정하면서도 인간의 욕구를 상업화하고 산업화하는 행태를 반대하는 페미니스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까?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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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0-31 09: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게일 다인스는 이 책에서 뼈 때리는 말을 참 많이 합니다. 아마도 30년간 연구해왔기 때문에 맞서 싸울 수 있었던가 아닌가 싶어요. 그만큼 본인이 패야 하는게 무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이지요.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힘들면 쉬어가면서 우리 다락방의 미친 여자도 달려봅시다!

공쟝쟝 2022-10-31 09:27   좋아요 1 | URL
아주 구석구석 시원하게 잘 패시더라고요. 너무 대단하시고 1 학교에 1게인 다인스 보급을 주장하는 바입니다.
저는 번역자님도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 진짜 남초 커뮤니티와 포르노 사이트 용어를 사용해서 번역을 하신 거 잖아요? 마지막 역자의 변에서도 나왔지만 포르노의 언어를 다루는 게 대단히 대단히 고역이셨을 것 같다능.
달리기, 좋습니다. 사실 이 책은 매우 선명해서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제 독서가 한 고비를 넘었을 수도 있고요.

잠자냥 2022-10-31 0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 귀여워 고양이..... >_<
나도 저기 가서 같이 안고 있고 싶다.... >_<

공쟝쟝 2022-10-31 09:59   좋아요 2 | URL
무덤덤한 표정이 킬링포인트😻저도 많이 힐링받은 이미지 입니다. 자냥을 워해서라도 근사한 고양이 짤을 줍도록 해야겠군요 ㅋㅋㅋ

mini74 2022-10-31 10: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본야동관련 글도 읽었는데, 싫어 싫어에서 좋아좋아로 바뀌는 야동들도 큰 문제란 생각들어요
웹툰으로도 로맨스 안본다는 글 진짜 맞는거 같아요. 공쟝쟝님 완독 고생많으셨습니다 ~

공쟝쟝 2022-10-31 10:08   좋아요 2 | URL
저는 일본 성진국 어쩌고하는 남자들의 담론도 소름끼치도록 싫더라고요… 특유의 자아 없이 흐느적 거리는 여자들은 일본 문학 전매특허인가 싶기도 하고. (하루키… 으으…) 거기엔 야동문화도 분명 있었을 겁니다. 일본남 한남 서양남 백인남 정말 다들 그러지 말자….

2022-11-03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3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15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15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