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해빠진 소설이랑 안맞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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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ㅣ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평점 :
나는 열 여섯 살의 소년이다. 나는 막 인기 있는 라디오 드라마에서 ‘링컨’을 연기하며, 부자 동네에 살면서도 노동 계급을 위하는 건강한 사상을 지녔고, 풍채 당당한 신체와 성적 매력으로 유명 여배우와 결혼한 남자 ‘아이라 린골드’를 만났다. 그와의 만남이 있은 후, 나는 어쩐지 아버지와 멀어졌다. 아이라는 나와의 우정을 허락 받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와 악수를 하고 대화를 나눈다.
“(184)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는 순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나에게 상처 받을 수 있고, 이제 내가 아버지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아버지가 나를 더 필요로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또 내가 실제로 아버지를 두렵게 할 수도 있고, 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짓뭉갤*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뭐랄까, 이런 깨달음은 평상시 효의 관념과 너무 어긋나 애당초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다가온다. … 늘 양자로 삼기에 좋은 아이가 되려 했던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새로운 아버지를 찾으려는 시도에서 오는 죄책감을 피할 수 없었다. 내가 아이라나 다른 누구 앞에서 아버지를 비난하고 값싼 이득을 얻으려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내게 주어진 자유를 누리는 과정에서 다른 누군가를 얻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내팽개친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그런 감정이 들었다. 차라리 아버지를 미워했다면 쉬웠을 것이다.”
방금 가져온 문장은 이 소설을 통틀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문장이나 장면이 전혀 아니다. 그래도 책을 덮는 순간 탁 떠오르는 것을 보니… 어쩐지 내겐 이 부분이 소설의 중심부처럼 느껴지나 보다. <공산주의…>는 미국의 이야기다. 매카시즘 광풍의 전후를 다루고 있으므로 한국전쟁도 살짝 언급된다. 주인공은 ‘아이라 린골드’ 라는 공산주의 신념을 가진 사나이고, ‘나(네이선)’와 아이라의 형이 함께 그를 회상하는 형식이다. (그를 파괴한 것은 과연 신념이었을까요?ㅋㅋㅋ)
읽기에 따라서는 이렇게도 읽힌다. ‘나’라는 문학 소년이 청소년기에 만난 정신적 아버지들에 대한 이야기. 아이라 린골드, 머리 린골드, 조니 오데이, 리오 글럭스먼 … 외에도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일단은 이 정도. 모두가 개성적이면서도 어찌 보면 전형적 인물들이라 (살면서 한 두 번은 만났던 것 같은…? 라고 말하면 내 인생 굴곡진 거 너무 티납니까?ㅋㅋㅋ) 어느 부분에서 네이선이 매료되었는지도 확 알겠다.
그런데 이런 남자들의 이쁨(?)을 듬뿍 받으면서 신나게 성장한 작가 ‘나’가 이런 글을 쓰는 건 너무 당연한 것 같은 거야. 와… 미국 현대사의 정중앙에 놓여 인생 찐하게 살아본 남자 사람들의 이런 경험과 통찰과 이야기들을 아주 그냥 다 쭉쭉 흡수해서 걍 씀. 오류 투성이의 욕망 종자들이 아주 처덕처덕 발라져있음. ‘나’는 사실 작가 본인일 테니…. 진짜… 필립 로스… 나에게 남성 연대란 이런 것임을 알려줘버림. 끌어주고 믿어주고 함께 여자를 혐오하고 수치심을 공유하며 비밀을 덮어주고 나이 아흔이 되어서도 우리는 우리만 이해할 수 있지…하는 진심의 의리를 보여줘 벌임.
그런데 그건 그러타 치고… 진짜… 그 와중에 막 역사 사회적 사건 이데올로기 막 개입하고 막 그것들이 화학 반응해서 이때다 복수하고 파멸 시키고 배신 당하고… 인간 심리 취약함 막 폭발하고… 감정은 복잡하고 인간도 복잡하고… 아, 잘 쓴다 잘 써…. 이러고 있는 데 뭐?! 문학 작파하고 좌익 사상에 빠져 노동 운동에 이 한 몸 바칠까 고민하던 네이선에게 어디선가 리오가 나타나서 글쓰기 팁을 알려줌. 그리고 난 또 이걸 받아 적네?
“(370) 기숙사 방으로 데려간 목적은, 나 역시 대중을 미워하게 만들어 내 산문을 파멸에서 구하기 위해서였다.”
“(374) 네가 예술가라면 뉘앙스는 너의 과제야. 너의 과제는 단순화가 아니라고. 네가 아무리 단순하게 헤밍웨이풍으로 쓰겠다고 작정해도 너의 과제는 뉘앙스를 전하는 거다, 복잡하게 얽힌 걸 명료하게 하고 모순을 수용하는 것. 모순을 지우고 모순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모순 안에 놓여 있는 고통 받는 인간을 보는 것이야. 혼돈을 허용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것. *반드시* 그걸 받아들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선전이 돼버려. 정당을 위한 게, 정치 운동을 위한 게 아니라면 인생 자체를 위한 멍청한 선전이 되겠지. 선전하고 싶은 인생이 있다면 말이지만.”
“(375) 특수성의 본질은 규범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거다. *고통을 일반화 하는 것, 그게 공산주의고, 고통을 특수화하는 것, 그게 문학이야.* 그 대립에서 적대성이 나와, 모든 것을 단순화하고 일반화하는 세계에서 특수한 것을 살려내는 행위, 바로 여기서 교전이 벌어지는 거야. 공산주의를 정당화하려고 글을 쓰면 안 돼.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려고도 글을 써서도 안 되고. 어느 쪽에든 발을 들이면 안 돼. … 너는 이 세계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주 다른 방식으로 다루는 사람이야. 정치 투사는 세계를 변화 시킬 신념을, 강한 믿음을 소개하고, 예술가는 이 세계에 들어설 자리가 없는 창작물을 소개하지. 그 창작물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예술가는, 진지한 작가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걸 소개하는 거야.”
문제는… 필립 로스는 저 꿀팁을 진짜 자기 소설에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통을 일반화해서 삶의 동력으로 삼아버린 아이라 린골드를 비롯 아주 인간들이 펄떡펄떡 살아 숨쉰다. 솔직히 소설 내내 여혐이 낭낭한데 다 있을 것 같은 여자들이긴 하다. 즉, 이 아재는 어떤 의미에서는 여자 연구도 끝나신 분인 듯ㅋㅋㅋ (여자에 대해서 1도 고민 안하고 다 아는 것처럼 쓴 동양남작가들같은 여혐은 아니다) 암튼 고통을 특수화하는 문학을 어떻게 구현했는지 알고 싶다? 이 소설을 읽으세요. 띠용. (하지만 작가가 너무 미국 역사 덕후라 초반에 좀 힘이 많이듬)
아이라 린골드. 아이언맨…. 지나치게 허술한데 넘나리 뜨거운 공산주의자…. 아니 혁명가가 가장 갖고 싶은 게 가정과 자기의 아이인 게 말이 되나요…?ㅋㅋㅋㅋㅋ 하지만 말이 되지. 필립 로스니까. 그리고 인간은 원래 말이 안돼지. 푸하하하하.🤣🤣🤣🤣 문제는 인간이 모순 적 인거랑 상관 없이 인생은 더 엉망진창이라는 거야. 크허허 크하하 ㅜㅜㅜ 인생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가 없고, 엉성한 인간들이 만든 세상은 별 시덥 잖은 것을 크게 부풀려서 주인공들을 막 후두려 패고, 너무 처 맞은 인물들은 복수하고 싶은 데 멍청하고, 알고 보면 다 지가 싼 똥이고, 여차 저차 지혜로워지고 나면 이미 늙고 병들어서 곧 죽어버리지…ㅜㅜ (소설은 이런 내용이 아닙니다…)
그런데 진짜 재밌는 게 뭐냐면, 모순 왕 아이언맨이 모순없는 조니 오데이보다 천 만배는 인간적이면서 매력적이라는 거고… 그런 ‘나’가 머리 좀 컸다고 모순왕에 실망하면서, 모순없는 인간에 확 매료되면서도 결국 ‘나’ 자신은 모순인 것을 알고 자기한테 실망해 화자가 울어버리는 그 지점… 그 지점에서 와~ 나는 박수를 치는 데, 또 그 와중에 다른 정신적인 아버지 등장인물이 우는 ‘나’를 조롱하고 앉아 있네ㅋㅋ?ㅋㅋㅋㅋ 대체 네이선의 아버지는 몇 명인거냐…ㅋㅋㅋ 로스옹은 아버지가 많아서 글을 이렇게 잘 쓴 건가? 그런 건가요? 궁금하네요. 말 좀 해주세요.
아무튼 책을 읽는 우리는 모두 시종일관 아이언 맨 왜저뤠… 이런 시선으로 보다가… 진짜 빨갱이 인 것만 빼면 넘나 형편없는 쓰레기라 ㅋㅋㅋㅋ 근데 빨갱이가 이 인간의 코어임ㅋㅋㅋ 하지만 빨갱이가 그러면 안되지 않나?ㅋㅋㅋ 그런 걸 다 하는 빨갱이라 매력적인 빨갱이라고요 ㅋㅋㅋㅋ 여튼 읽다 보면 독자는 계속 왜 저뤠… 하는 나 자신이 더 엄청난 모순(내 앞가림 못함)을 가진 존재임을 깨닫게 되고요? ……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완전히 하…. (나한테는 반전이었지만 남들한테는 반전 아닐 수 있음.) 이걸 이렇게 쓴다고요?
와.. 거장한테 이런 말 하면 안될 거 같은 데… 필립로스 옹… 이 아메리칸 girl 여우같은 girl 🦊 365일 춤만출래…. 나 지금 뭐 쓰고 있냨ㅋㅋ(흥분했음)ㅋㅋㅋㅋ 에이쒸….
모든 것을 단순화하고 일반화하고 싶은 건 내 욕망이다. 그렇게 하면 삶이 편해질 것 같았냐? 그렇지도 않고, 미학적이지도 않은 것 같다. 뒤메질, 뒤메질 처럼 살아야지… 그래야 관대해진다….
언젠가 잠자냥님이 나이 들면서 점점 사회 과학 읽는 병 탈출하고 문학 읽는 독서가로 정착했다고 했는 데….
아… 알고는 있었지만 잠자냥님 진짜 깨달으신 분이셨고요… 그리고 질 좋은 문학 한편은 이렇게 사람을 초라하게 만듭니다…. (사람 참 초라해진다….)
“(366) 사회에 반항하고 싶어? 그렇다면 내가 방법을 알려주지. 잘 쓰는 거야.”
네. 로스옹의 이 불한당 같은 가르침. 뼈에 새기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이상한 독후감은… 단발머리님께 헌정 하는 데요… 이 책은 단발머리님이 나한테 선물한 책 이거덩요… 근데 단발님 <공산주의…> 보셨어요? 이거 정도면 중간 맛이라는 데… 매운 맛은 어떡해? 읽고 싶은 데…ㅜㅜ 겁이 난다. 좋아하기 싫은 데…. 매운 맛 읽고 필립 로스 너무 좋아하게 되버릴까봐… 아… 내가 바로 미국 남자못잃어였어… 나라는 페미니스트…ㅋㅋㅋㅋㅋ 정말 끔찍하다ㅋㅋㅋ
난 정치를 하면 안되고 예술을 해야 하는 몸인가 봄ㅋㅋㅋㅋㅋㅋㅋ 바로 어저께 좋은 것 가장 좋은 것을 ‘별’로 박아놓고 추구하겠다고 써놓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아 참, 그런데 이 소설 이렇게 끝난다.
“(538) 별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모든 사람은 우울에 빠지는 성향을 타고나지만, 일부만이 우울을 습관화한다. 어떻게 습관이 되는 걸까? …. 배신을 당하면 그 습관이 생기는 거야. 정답은 배신이었어.
🦊 나는 여기서 어떤 질문을 하게 되는 데. 배신당하지 않으려면 역시 믿지 않는 것이 최선 아닐까 하는. 그러나 매번 배신이 두려워 믿지 않겠다고 몸부림쳐도, 결국 믿고 싶은 대로 믿어야지 그나마 숨쉴 틈이 생기는 것 아닌가. 배신에 익숙해질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이것은 같은 말인가, 다른 말인가.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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