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의 창조
거다 러너 지음, 강세영 옮김 / 당대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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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한한 것은 없다. 모든 것에는 끝이있다. 인간의 종말을 믿는다. 

세상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관념은 언어일 뿐이다. 언어는 물질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세는 없다. 환생도 없다. 지옥도 천국도 연옥도 지금 여기에 있다. 나는 종교가 없다.


현 시점의 나에게 가장 유해한 사상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상이 무엇이든) 메시아니즘이다. 이는 무력한 인간일 수록 취약하게 작용하는 사상이라 세상이 혼란할 수록 창궐한다. 정치인의 모습이든 사이비 교주이든 연예인이든 기업가든 이념이든 기술이든 연인의 모습을 하든 간에… 구원자는 멸종할 때까지 재림할 것이다. 인간은 애초에 무력하기 때문이다. 


그 무력함을 통째로 끌어안아버린 채 삶을 도모하는 신앙적 행운은 내게 오지 않았고, 이제와서 인간의 무력함을 알았습니다, 투항하기에 나는 너무 질문이 많다. 신이 있고 없고는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신이 있건 말건 지금 내가 잘 사는 게 내게 중요한 문제다. 잘 사는 것. 그것은 중요하다. 그냥 얻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어쩌면 유신론자들보다 무신론자들에게 훨씬 중요하다.


고통은 지속되지 않는다. 내 생각에 고통의 경험을 되새기고 반복하는 것이 고통의 속성이다. 그래서 고통은 나쁘다. 똑같이 행복은 지속되지 않는다. 언제나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현실을 잊는 자극에 중독된 사람이다. 대체로 행복은 현실과 딱 붙어있는 안녕에 가까운 담담한 상태고, 우리가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종류의 감각과 감정은 행복이 아니다. 그건 취해있는 것. 도피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자에게 행복은 어려운 것이다. 도취를 행복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 현실 직시… 나는 이 단어를 스스로에게 읽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왜? 내가 이상주의자여서다. 

현실 도피… 그게 내 취미다. 그거 없이 못산다. 그래서 *현실 직시* 해야한다. 수시로 안해주면 ‘잘사는 일’과 멀어지더라.


난 현실에 없는 것, 좋은 것,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상정해두기를 좋아한다. 그걸 마음 속 벽 같은 데에 액자 같은 데에 걸어놓고 째려본다. 그러면 내가 어쩐지 그렇게까지 허접한 인간은 아니라는 위안이 든다. 점점 덥고 습해지는 날씨까지 포함해 매일은 현실과의 악전고투다. 달걀하나를 부쳐먹으려고 해도 치열한 (달걀 살 돈을 벌어야하고, 유정란 무정란 부터 닭이 어떻게 컸는지, 몇개를 살 건지, 얼마짜리를 사야 가장 합리적인건지, 사러 온 김에 다른 간식 더 살건지…) 협상을 해야하며, 내가 걱정한다고 해도 아무 영향이 없는 사건 사고들은 수시로 터져나와 휴대폰 알람을 울려대고, 아무리 은둔 생활을 즐긴대도 반면교사가 되어주는 빌런 같은 인간들은 도처에서 출몰한다. 


사니까. 살아가야하니까. 

나는 현대의 도시에 사는 독신 여성이니까ㅋㅋㅋㅋ 



2.


함께, 살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현대의 도시녀성인 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 어깨를 무례하게 치고 가는 놈도, 일 다끝났는 데 결제 안해놓고 잠수 타는 거래처 이사 놈도, 친구랑 소주를 마시는 데 괜히 궁시렁대며 시비를 터는 놈도, 달리기하다 (자주) 마주치는 노상방뇨 놈도, 한남의 사회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나라의 우두머리가 된 서울대 출신의 굥도… 삶에서 마주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니, 그런데, 왜, 가만히 있는 나를 열받게 이들은 다 중년의 남자인가… 그것이 현실이다. 아, 아무리 함께 안살아보려고 노력을 해보아도… 마주침 그것은 불가항력이다. ㅠㅠ


저것들은 좀비야. 무감각한 표정으로(이젠 징그럽지도 않다), 급소를 푸욱 쑤셔서 으드득 돌려서 후벼파 무찌르고 내 갈길을 가자! 라고 해도 숨돌릴 틈이 생겨 그것들이 내게 묻혀 놓은 흔적들을 들춰보면 어김없이 손톱자국 이빨자국이. 난 어디까지 감염된 걸까. 역시 이 세계를 살고 있는 내가 바로 절비(ㅋㅋㅋ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참조)로 구나. 


현실과의 악전고투 속에서 ‘나 자신이 되는 일’—이것은 나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일 수도 있겠다. 아니다. 어느 정도는 잃어버린 나 자신을 인정하고, 그래도 어디까지는 복구하는 일이다. 원상복구는 어렵다. 꼬매고 찢어진 누더기 같은 흉터들 사이로 돋은 새살을 보면서 오, 인생 좀 살아본 자의 스크라치하며 피식대는 것일 수도 있고. 남의 쭉 찢어져서 잘 아문 근사한 흉터를 보면서 오, 저 정도는 아니지 내적인 안도하며 감상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은 내가 걸어둔 이상주의 액자를 한번씩 쳐다보는 거다. 야, 너 안까먹었지? 하는 거. 나는 그렇게 살고 싶고, 이렇게 삶을 설정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던 중요한 텍스트가 있다.


좀 읽은 지 오래된 인용문을 가져와본다. 다시 읽으면 20대의 나 처럼 좋을란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학시절의 내가 참 좋아했던 책의 한 구절 이다.

“(59) 오늘의 사학에서는 종말관을 가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 같이 인생관이 아주 물질적으로 되어버린 사람에게는 세계의 끝이 온다는 말은 견뎌내지 못하는 사상이다. 그들은 보이는 이 세계 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명을 구원하는 것은 이 사상일 것이다. 그 이유는 인류의 사상은 순간적인 조건 보다 영원한 미래에 의해 규정될 때 가장 원대성을 띠고 건전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가까운 언덕보다 저 무한한 거리의 별이 도리어 확실한 목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심판은 역사 사실로는 영원히 안 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믿음으로써만 역사를 바른 방향으로 끌 수 있다. *별을 바라보고 가도가도 별이 있는 곳에는 가지지 않는다해서 별은 거짓이란 말은 되지 않는다.* 가도가도 잡히지 않기 때문에 참이요, 지도 목표가 될 수 있다.

*실현되는 것이 이상이 아니라, 영원히 실현 안 되는 것이 이상이다.* 실현되는 이상은 실현되는 그 순간 죽어버리나 실현되지 않는 이상은 현실적으로 안 되기 때문에 뜻으로는 순간마다, 또 영원히 계속되어 실현이 되면서 이끌어가는 산 이상이다. *종말관은 인류 역사를 이끄는 정신적 항성이다.* (중략) 그러나 만일 그날이 없다면 이 무한히 계속될 고통의 운명에서 누가 능히 견뎌낼까? 종말이 온다는 말은 도리어 인류에게 희망을 약속한다. 더구나 그날이 예측할 수 없이 온다는 데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있다.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날이 온다. 언제 올지 모르게 도둑같이 온다. 이것을 믿는 데 역사 추진의 힘이 있다.”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 역사>


내 이상한 종말관에는 아마 함석헌 옹이있었나보다. (근데 이 책도 여혐심해가지고 아주ㅋㅋㅋㅋ 한국의 역사를 갈보의 역사에 비벼버리면서 갈보 왜 나쁘냐 꼭 필요하다 하는데 님아 그러니까 제발 제일 낮은 자리에 여자 할당하는 짓을 멈춰 제발. 너는 남자로 태어나서 갈보 못하잖아.) 종교 없는 내가 메시아니즘은 경계하면서도 종말론은 좋아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발견해 버림 ㅋㅋㅋㅋ


암튼 종말론 이야기 할건 아니고, 이상주의의 현실성에 대해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여성의 역사적인 종속의 기원을 다루고 있는 책 <가부장제의 창조>를 꼼꼼히 읽으면서 계속 저 구절을 떠올렸다. *별을 바라보고 가도가도 별이 있는 곳에는 가지지 않는다해서 별은 거짓이란 말은 되지 않는다.*


이상주의자인 내가 현실에서 극단적으로 아무리 추구해봤자 놈들이 걱정하는 페미니즘 유토피아는 도래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가진 이상(별) 자체를 조정 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을 현실주의 혹은 현실적이지 않다, 현실 정치에서는… 라는 말로 무모하다고 하는 것이 정말 맞나? 근래에는 이런 물음표들로 좀 구체화되었고 같은 주제로 친구와 운동장을 수십바퀴 돌면서, 모처럼의 더덕단 모임에서는 아주 핏대까지 올려가면서, 떠들었던 것 같다. 별 수 없네, 난 아직도 이상주의네. 


그래서? 



3.


나는 내가 별 수 없는 이상주의자인 게 좋다. 그런 성향이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좀비가 되어서 남의 살점을 씹어먹는 것에 대해 쾌감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채워지지 않은 허기를 해소하고자 애썼을 거다. 나는 허기 해소만이 목적인 텅-빈-인간들을 싫어하고 (어쩌다 그들이 그렇게 되었는지는 내 알바 아니나) 순간순간 쉽고 수월하게 그렇게 하고 싶었을 때, 신앙이 없으면서도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던 이유는… ‘좋은 것, 가장 좋은 것, 현실에서 발견할 수 없거나 어려운 것’들을 내 머릿 속에 어떤 언어/이념 적인 형태로 만들어 놓고, 그것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나는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그건, 나한테, 있다. 


현실은 이념이 되고 이념은 현실이된다. 그건 얽혀있고, 시간 속에서 변화한다. 위치에 맞게 다르게 해석되고. 사람에 맞게 다르게 도달한다. 나의 지나친 비약과 언어유희 같은 일반화, 오해를 살만한 거친 단어 선택은 좀 더 좋은 것, 좀 더 이상적인 것을 향한 글쓰기다. 그것은 그냥 글쓰기이지만, 또 그냥인 것만은 아니어서 조금 더 조금 더더 하면서 써보는 용기를 낸다. 언제나 용기를 내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쓰지 않으면 모른다. 나한테 그런 좋은 것을 추구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지. 


그걸 발견해서 나의 정신없는 자아에 이상한 관점들을 또 하나 추가한다. 걔들은 섞일 것이고 내 세계는 한번 더 혼돈의 카오스가 되고. 그런데 나는 정리를 잘하는 사람. 거기에 맞는 언어와 글씨를 또 찾고. 써보고. 나를 부정하고 또 나를 인정하고. 푸하하하. 과정 그 자체는 방법이며 목적이다. 


“(30) 지배의 우산이 제거되고 개념 정의가 여성과 남성에게 공유되었을 때 역사쓰기는 어떤 모습일까? *과거를 평가절하하고 범주들을 뒤집어 엎고 질서를 혼란으로 대체하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는 단지 자유로운 하늘 아래로 나가설 것이다. 하늘이 어떻게 변하며 별은 어떻게 떠오르고 달은 어떻게 도는가를 관찰할 것이고, 세상의 모습과 여성과 남성의 목소리 속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설명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아마 더욱 큰 풍요로움을 보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류의 잣대가 남성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임을 안다. *남성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 중심이다*. ..... 어쩌면 이전에 두 가지 배역이라는 부담을 져왔던 사람이 이제 더 자유롭게 순수한 존재의 즐거움을 연기하고 경험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직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세상의 먼 변방까지 항해했던 탐험가들처럼, 우리는 우리가 발견하게 될 것을 설명해야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시작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과정 그 자체는 방법이며 목적이다.*”



4. 


사실 페미니즘 정치…까지는 잘 모르겠다. 나 하나를 이 정도의 페미니스트로 만드는 거 그거 하나도 엄청난 고통(과 희열)을 수반하는 지난한 과정들이었기 때문에. 아, 나는 그냥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구나… 를 아는 것 만으로도 이토록 훌륭하게 똑똑해져 버렸는 데ㅋㅋㅋㅋ 이걸 막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하려고 생각하는 순간 막…막… 어후… 막막해. 역시… 못할 거 같다. 그냥 하던대로 열심히 알라딘에서 여성주의 책읽기 열심히 해야지. 


내게 성경 책은 없지만 페미니즘을 계속한다면 (아마 계속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성경처럼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버려서는 안되는 여성주의적 원칙들을 아주 확고하게 쥐고 있는 책이다. 특히 마지막 장이 그랬다. 이상, 별, 항성. 그러니까 그건 좀 움직이면 안되고 확고해야 하것 같다… 그걸 확고하게 설정해서 딱 박아 놓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 어느 정도의 현실적 타협은 해야하지만 ‘페미니즘’의 본질 자체를 바꿔버려서는 안될 것 같다.


“(396)우리는 반드시, 최소한 당분간은 여성중심적(woman-centered)이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가능한 한 가부장적 사고를 떠나야 한다.”


백래시. 분리주의를 비판적으로 평가했던 일부 강단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이라고 말하면서 어느 순간 페미니즘적 원칙을 져버린 것 같다. 일전에 모 교수의 주디스 버틀러 강연을 들으면서 했던 생각이다. 응? 저게 페미니즘이라고? 


요즘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라니… 그건 페미니즘일 수 있나? 대선을 거치면서 나의 그런 생각은 소위 진보 진영의 페미니스트 학자 집단들이 하는 (…ㅜ_ㅜ 정희진 까지도…) 말들을 듣고 보면서 점점 더 혼란해 졌는 데… “(394)제 각기 머릿 속에 최소한 한 명의 간직된 훌륭한 남성들”을 두고 있어서 그러신 지… 오로지 독학으로 독서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나는, 종종, 저게 왜, 페미니즘인건지 당최… 모르겠는 상황들이 현실에서 펼쳐지니까… 그래서 내가 하는 공부가 페미니즘 맞아요? 이럴 때가 있었는 데… 그 분들이 하시는 게, 되려 페미니즘적이지 않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좀 했다.


아무튼, 이 책에서 배운 몇가지 기준들을 원칙삼아 많이 배운 지식인 여성 페미니스트 교수라고해서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지 말 것이며, 이 책이 필요없어지는 날까지는 이 책에서 정리해준 페미니즘적 원칙들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 


“(396)가부장적 사고의 바깥으로 나가기가 의미하는 것은, 사고(thought)의 모든 알려진 체계를 향해 회의적이 되는 것이며, 모든 가정들과 서열짓는 가치와 정의들에 대해 비판적이 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것, 여성의 경험을 신뢰함으로써 누군가의 진술을 검증하기. 그런 경험은 대체로 하찮은 것으로 취급되거나 무시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지식을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 자신 속에 깊숙이 들어 앉아있는 저항을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페미니즘이 내게는 비교적 건강한 메시아니즘으로 작용해왔던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무력한 이 세계에서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부여 잡은 사상(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ㅋㅋㅋ)이긴 한데, 이게 안내하는 길이 더 혼탁하고 더 엉망진창이고 세상에 끈질기게 남아 실낱 같은 안전을 담보하는 마지막 구원 담론(낭만적 연애…와 가족…)마저 걷어차버리는 그런 사상이었던 거라… 난 부득불 나 자신을 더 굳걷히 부여잡을 수 밖에 없었고, 뭔가 ㅋㅋㅋㅋ 졸라 멘탈이 강해짐 ㅋㅋㅋㅋ


나. 여성인 나. 일하는 여성인 나. 좋은 학벌과 번듯한 직장이 없는 주제에 감히 결혼도 하지 않으려는 나. 심지어 돈을 버는 것에도 썩 진심이 아닌 나(노력을 안한 것은 아니었다 진쉼~;;;), 로맨스에 휴머니즘 마저 비웃고, 세상을 따돌리는 아싸가 되어 은둔생활을 하는 와중에… 이렇게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고 나도 아무도 안 사랑하는 채로 늙어가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했는 데 이미 그 상태라는 것을 알아버려서 아… 이 상태를 유지하면 되는 거구나를 제대로 깨달아 버린 나는 믿을 것은 나 자신 밖에 없다!!! 라는 현실 직시를 하고 페미니즘을 뼈 아프게 섭취하며, 아무도 안사랑해주면 나나 나를 사랑하자! 아주 건강하고 자립적인 존재로 재탄생해 버림😩


“(391)역사적으로, 생각하는 여성들은 즐거움·일상성·즉시성을 가지고서 한 여성의 삶을 사는 것과, 생각하기 위해 한 남성의 삶을 사는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했다. 교육받은 수세대의 여성들이 한 선택의 대가는 잔혹하고 컸다. 다른 여성들은 의도적으로 혼자 살거나 혹은 다른 여성들과함께 삶으로써 성성별체계(sex-gender system) 바깥에 사는 것을 선택했다. 여성들의 사고에서 가장 중요한 진보 중 일부는,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위한 개인적 투쟁이 자신의 의식 속에 녹아든 여성들에 의해 우리들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그런 여성들은 대부분의 역사적 시간 동안 사회의 변두리에서 살도록 강요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일탈적‘인 사람으로간주되었으며, 그 때문에 그들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에게 일반화되기가 어렵고, 또 영향을 미치거나 인정을 받기도 어려웠다. 왜 체계 건설자 중에 여성은 없는가? 그 이유는, 자신의 자기(self)가 일반칭 (generic)에서배제되어 있을 때 그 사람은 보편적인 것들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추상적 사고의 구축이라는 인간적 사업에서 여성을 배제함으로써 생긴 사회적 비용은 한번도 계산된 적이 없었다. 우리가 우리에게 취해진 행동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명명하고, 그것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우리가 그 사업에 참여했던 방식을 설명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생각하는여성들에게 그 비용이 어느 정도였던가를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강간이 우리를 겁에 질리게 하고 우리를 종속상태에 머물러 있게하는 하나의 방편이었다는 것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또한, 비록 고의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우리의 정신에 대한 강간(rape of our minds)에 참여했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페미니즘. 나 자신이 되는 것. 나 자신의 경험을 신뢰하는 것. 나 자신을 구하는 내가 되는 것. 나의 섹슈얼리티가 아닌 나의 노동으로 나를 생산하고 나를 재생산하는 것. 적은 임금이나마 노동을 하는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그것만 해도 되었던 남자들이 만든 역사와 문자와 철학을 시간내서 공부하면서 조롱하는 것. 나의 가부장적 사고(남자 못잃어)에 대해서 비판적 검토를 계속하는 것. 그게 어쩔 수 없는 나라면 나를 조롱하는 것. 여자들이 쓴 글을 읽는 것. 여자들을 독려하는 것. 여자들을 사랑하는 것. 나를 사랑하는 것. 생각하는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 나의 경험을 신뢰하기 위해 노력하는 내 글을 쓰는 것. 나는 물리적으로도 사상적으로도 이제 더 이상은 소수가 아니라는 것을 힘으로 삼는 것. 인류의 절반 여성으로서의 나의 추상적 사고를 구축하는 것.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내게 남은 질문은… 인류 재생산이네…? (응?) 

매달 피를 흘리는 나는 재생산을 포기 했을까? 아니, 어쩌면, 아니? 어쩌면. 어쨌든. 아마도 포기한 것 같은 데… 내가 가장 사랑했던 존재는 엄마였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비혼을 마음 먹으면서도 끝끝내 포기 안되던 것이 엄마가 되는 거였던 거 같다. (어쩌면 엄마가 되고 싶어서 결혼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삶에 결정적인 것이 될 중요한 결단은 상황이 닥쳐야 내려지는 것이라서 아마도 나는 결단을 내리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재생산. 하지 않겠지. 



5.


그러니 현 시점에서의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살면… 내 세계는 끝난다. 내 대에서 완벽히. 기후위기든 핵폭탄이든 인류는 멸종할테지만 (여기에 더 좋은 세상으로 가자라는 상상력으로의 이상주의는 절대로 발동하지 않는 데…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보겠다…) 이렇게 되면 그런 인류의 종말과도 정말로 나 자신과는 상관이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미래는 알 수 없으므로 당장 내일이 나 자신이라는 유한한 종족이 끝나는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 폐색이 짙은 세계관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요? 라고 물어보면 대답은 간단하다.

무슨 소리!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은 명랑하게 삽니다.😉


여자가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명랑한 일인지 일단 살아보겠습니다.

살다가 이토록 똑똑한 내가 너무 싫고 힘들어서 미춰버리면 그건 다 여성 종속 5천년의 가부장제 탓ㅋㅋㅋㅋㅋ

내가 졸라 잘살고 엄청 근사하면 해질 수록 그건 페미니즘 탓 ㅋㅋㅋㅋ

남자를 잘못만나서 망하는 여자는 많지만 남자를 안만나서 망하는 여자는 없다.

내가 망하면 그건 남자 탓 내가 안망하면 그건 여자 탓.


나는 나자신이라는 신을 명랑하고 건강하고 심각하게 주조하는 지적 오만을 지속해볼 생각입니다. ^^


“(397) 가부장적 전통 속에서 훈련된 사고인 우리 자신의 사고에 대해 비판적이 되기. 결국, 그것은 지적 용기, 즉 혼자 우뚝 설 수 있는 용기, 우리에게 닿는 것보다 더 멀리 뻗으려는 용기, 실패를 감수하는 용기를 발달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사고하는 여성에게 가장 큰 도전은 안전과 승인을 추구하는 욕망으로부터 그 모든 것 중에 가장 ‘비여성적인’ 자질 —세계를 다시 질서짓는 권리가 스스로에게 있음을 주장하는 최상의 자기 과신인 지적 오만—로 옮겨가려는 도전이다. 신을 만드는 자의 자기과신, 남성 체계건설자들의 과신으로.”


덧, 남들은 메소포타미아가 힘들었다는 데... 난 정말 기독교의 성경을 몰라서 힘들었다...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정말 잼난 책이었음. 강추강추! 별 열개! 

‘가부장제의 성립’ 기간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대략 기원전 3100년부터 기원전 600년까지 약2500년에 걸쳐 전개된 과정이다.

😉 그리고 그것은 5000년 째 현재 진행형이다. - P22

시작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과정 그 자체는 방법이며 목적이다.

😉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 주는 활력. - P31

그래서 우리의 탐색은 가부장적 체계의 역사에 대한 탐색이 된다. 남성지배체계에 역사성을 부여하는 것과, 그 기능과 양상이 시간에 감에 따라 변화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과 뚜렷하게 결별하는 것이다. 이 전통은 가부장제를 비 역사적이고 영원하며 눈에 보이지 않고 불변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그것을 신비화 하였다.

😉 가부장제는 인간이 ‘창조‘한 거다. 그건 그러니까 ‘폐기‘할 수 있다. 물론 그걸 만든 성이 폐기할 순 없고, 여성들이 교육받고 글자를 익힐 기회를 가질 때까지 견고했다... 지금도 정신 못차린다ㅋㅋㅋ 폐기는 여자가 한다. - P56

산업사회라는 대담한 신세계를 출범시킨 현대 남성들이 오염이나 생태계에 대한 영향과 관련된 결과들을 알지 못했던 것만큼이나,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도 그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과정과 결과에 대한 인식이 발달할 수 있었던 시점이 되었을 때는 이미 그 과정을 멈추기에 너무 늦었다. 적어도 여성들에게는.

😉 모든 악행은 악한 의도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지... ㅋㅋㅋ 이제 그만 망쳐 ㅋㅋㅋ 비켜 ㅋㅋㅋ - P90

그러므로 사유 재산의 첫번째 전유는 재생산자인 여성의 노동력에대한 전유로 구성되어 있다.

😉 그렇다.
- P91

그 경험은 노예제가 발명되기 이전에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집단의 여성들을 종속시켰던 경험이다.
*여성억압은 노예제보다 먼저 일어나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 이 책의 핵심 문장이다. - P139

그 태동기부터 고대 국가는 가부장적 가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가족의 질서정연한 기능과 공적 영역에서의 질서를 등치시켰다. 가부장적 가족을 공적 공동체라는 건강한 유기체의 기초적 건축블록, 즉 세포에 비유한 것은 메소포타미아법에서 최초로 표출되었다. 그것은 3천년에 걸쳐 이데올로기와 실천 속에서끊임없이 강화되어 왔다.

😉 국가는 시작부터 가부장적 가족제에 의존했다. 그래서... 국가는? 여성에게 조국은 없다ㅋㅋ 기본 소득 도입하면 생각해 볼게... - P211

여성에 대한 성적 규제는 계급형성의 기초이며, 국가를 떠받치고 있는 토대 중 하나이다.

😉 남자는 계급으로 분할되어 있다. 여자는 섹슈얼리티와 계급으로 분할되어 있다. 그런데 그 계급은 여성의 성적 규제를 하지 않았으면 만들어 질 수가 없었다. - P249

만일 우리가 뱀을 다산 여신의 오랜 상징으로 이해한다면, 이것은 유일신 사상을 확립하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조건이다. 그것은 언약 속에서 울려퍼지고, 재차 단언될 것이다.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신만이 있을 것이며 다산 여신은 악이기 때문에 내던져지고 죄의 상징 그 자체가 될 것이다.

😉 아. 뱀이. 뱀이.. 뱀이다아... 응...? - P341

창세기에서 유일신 사상의 발달은 추상적 사고의 경향과 보편적으로 타당한 상징의 정의라는 면에서 인류의 엄청난 진보였다. 이 진보가 가부장제를 강화시키고 지지하는 사회구조와 조건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역사의 비극적 재난이다. 따라서 상징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 자체는 여성을 주변화하는 형식 속에서 일어났다.

😉 난 좀 추상적인 사고하길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 사고는 남자들이 하는 거다라고 말할까봐 걱정했는 데, 여자도 안시켜줘서 그렇지 잘한다고 해서 아주 기분 좋았음 ㅋㅋㅋ - P342

이성애 주의자 페미니스트들도 역시 여러 시대에 걸쳐 여성들과의 우정에서, 선택한 독신생활에서, 혹은 사랑과 성의 분리에서 힘을 얻었다. *사고하는 남자들 중 누구도 생각하는 대가로 자신의 자아 정의와 사랑에서 위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

😉 여성의 자아를 강화해주는 사람은 다른 여성 밖에 없다는 거 너무 맞는 말이고... 남자들은 생각과 공부하는 것의 댓가로 자신의 정의와 사랑에서 위협 받아본 적 없다는 것도 너무... 와 너무 억울하다... 나 여자애가 공부잘해서 뭐할거냐 라는 말 들으면서 컸는데. 틀린 말이란 거 알면서도 아주 잘하지는 못하니까 공부는 내 길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던거 좀 화남... - P394

가부장제 체계는 역사적인 구성물인 만큼, 그것에는 시작이 있고 끝도 있을 것이다. 가부장제의 시간은 그 경로를 따라 거의 끝나가고 있는것 같다—가부장제는 더 이상 남성들 혹은 여성들의 욕구에 봉사하지못하며, 군사주의 · 위계 그리고 인종주의와의 뗄 수 없는 연관성 속에서 지구상에 있는 생명의 존재 자체를 위협한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 올 것인가, 어떤 종류의 구조가 우리가 아직 알수 없는 사회조직의 대안적 형태를 위한 토대가 될 것인가? 우리는 전에없던 변형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무엇인가로 형성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 이미 너무 망해서 더 망할 수 가 없는 페미니즘 하기 참 좋은 시대입니다. - 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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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7-07 08: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단 이 책이 쟝님께 쟝님만의 성경이 된다는 것이 너무 뿌듯합니다. 제가 쓴 책도 아닌데 왜... 아무튼 뿌듯하고요.

이 리뷰를 읽다가 생각나는 걸 좀 적어볼게요. 우선, ‘구원자는 멸종할 때까지 재림할 것이다. 인간은 애초에 무력하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에 대해서요. 저는 믿는자에게는 그 힘이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게 무엇이든요.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의 힘은 작용할 것이고 사주팔자를 믿는다면 사주팔자의 힘은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여기엔 어떤 전제가 있느냐, 그 어떤 힘, 인간보다 더 큰 힘,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믿게 하는 힘, 그 전에 존재해야 하는것은 ‘인간의 믿음‘, ‘믿는 존재인 인간‘ 이라는 것이죠. 제가 최근에 엔도 슈사쿠의 <침묵> 을 읽으면서 이 생각을 더 확고히 하게 됐습니다. 고통당할 때 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라고 작가는 묻고 결국 신은 늘 우리와 함께 있었다, 라고 말하지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믿는 존재가 인간인 것이죠. 정말로 신이 있느냐 보다 우선하는 것은 신이 있다고 믿는 혹은 없다고 믿는 인간이요. 이건 아마도 제가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쟝님이 적어주신 말, 그러니까 인간은 애초에 무력하므로 구원자는 계속 나타날 것이다, 라는 것은 바로 저의 이런 생각과 같은 흐름이라고 봅니다.


저는 정희진 쌤의 강연에 갔다가 ‘워마드는 페미니즘이 아니에요‘ 라는 말을 듣고 크게 실망을 했었어요. 그리고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 하고나서 ‘너는 페미니스트니까‘ 라며 저에게 어떤 기질, 성향(자신들이 바라는) 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요. 이 과정에서 나를 어떤 단어로 정체화하고 정의내리고 감별하는 것은 나에게 쓸모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행동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타낸다고 했잖아요? 저는 제가 믿는 바를 행동으로 보이자, 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행동이 어떤 효과를 봤으면 좋겠고요. 그런데 효과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극단적이어야 합니다. 부드러운 말로 설득하는 것은, 특히나 페미니즘에 있어서 아무 효과를 주지 못해요. 묵살되는 언어가 될 뿐이지요. 그런점에서 저는 모든 여성들이 극단적인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불가하겠지요. 우리는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가도록 합시다.


재생산에 대해서라면, 저는 또 한번 깨달았어요. 쟝님의 리뷰를 읽으면서요.
저는 엄마를 사랑하고 조카들을 사랑하지만, 제가 재생산을 함으로써 저만 바라보는 존재가 생긴다는 것, 제가 무한히 사랑하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또 저를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는 존재를 만든다는 것은, 역시 제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라는 것을요. 저는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고 의지도 없다는 생각이 쟝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새삼 듭니다.


아무튼, 읽고 씁시다!!

공쟝쟝 2022-07-07 09:43   좋아요 3 | URL
제게 페미 성경을 쥐어주시다니ㅋㅋㅋ 아주 꼭 마음에 들었습니다. 페미니즘이 너무 방대하고 훌륭하고 최신식의 사상이라 그 안에서 복잡해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데, 그러다 보면 영판 다른 소리를 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여성주의자가 여성주의를 버린다?ㅋㅋㅋ 그냥 말 좋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성주의 하다 만 거 아닐까요?) 근데 이것 저것 다 좋을대로 떠든 뒤에 자기가 하는 게 페미니즘이라고 하는 건 좀 싫기도 하고, 기준이 좀 애매했거든요. (무언가로 정체화하는 것의 위험성과는 별개로 최소한의 기준이 있어야 하는 데 그것의 근거 마저 회의 하게 하는 게 페미니즘 특유의 급진성이긴 하지만^^)

최근에 서재 안에서 나의 페미니즘 모먼트와 관련된 글을 읽으면서 왜 내가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페미니즘 적 원칙들은 명확해질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페미되신 선생님들의 페미니즘은 제가 알 수가 없고, 저는 넷상의 혐오표현(일베)들과 불법 촬영물 이슈가 각성 계기 였거든요. 가부장제의 창조도 거슬러 올라가서 여성의 종속에 대해 다루잖아요? 여성 종속의 모먼트! 그걸 추적한 대단한 책이었다 생각합니다! (강간… 이 있었겠더라고요… 강간이…) 생각하는 여성들에게 정신적 강간을 저질러왔을지도 모르겠다고 적힌 부분에서 저는 그토록 제가 생각하기를 두려워하고 내 생각을 말하는 것에 조심스러워했던 과거들이 좀 떠올랐구요…. “(394)사고하는 남자들 중 누구도 생각하는 대가로 자신의 자아 정의와 사랑에서 위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음. 그렇대요. 이거 너무 충격적인 문장예요. 여자들 한테 너무 슬프고... 뚫린 입이라고 말을 막하면서 여자들이 말막하면 어떻게 그런 말을… 이러면서 자아에 상처입는 남자들을 많이 봤는 데... 징징대지 마라 진짜 경고한다 내가ㅋㅋㅋㅋ

믿음에 관해서라면… 저는 침묵을 꼭 읽어본 후 믿음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무언가를 믿어요. (걍 나 자신에 대한 다짐일 수도 있어요….) 종교인의 그것과는 뭐가 다른지 같은 지 잘 모르겠지만 단발님이랑 대화하다 보면, 아… 꼭 신을 믿지 않는 내가 나로 살기 위해서 만들어낸 방법들이 종교적 차원에서는 구축이 이미 되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좀 있었어요. 그것이 맞건 말건 조금 더 ‘건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에 대해 함석헌 옹의 글을 읽으면서 좀 끄덕끄덕 했고요. 칸트처럼 수확을 기대하지 않고 씨앗을 뿌리는? ㅋㅋㅋㅋ

재생산… 이건 제가 좀 더 생각하겠습니다. (생각을 피해온 것일지도?) 이젠 삼십대 중반 넘어서 난자 얼리는 것도 별 가망이 없고…. 뭐 점점 더 못하는 노산의 나이가 되어가고 있어서 몇 번의 유혹만 더 물리치면 자연스럽게 포기할 거 같은 데 ^^ (엉?) 하지만 다락방님이 조카들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모습이 제게 참 귀감이 됩니다? … 저는 꼭 조카 아니더라도 인류애 회복하여 사랑하고 싶고요… 내 애는 안 키우지만 키우고 싶은 사람들 잘 키우라고 매달 모단체에 후원합니다…ㅋㅋㅋㅋ

그러니 애 안낳아본 여자에 대한 혐오를 멈춰라!

수하 2022-07-07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91쪽에 나와있는 문장이 무척 가슴에 와 닿네요..

아직 2장까지밖에 못 읽었는데, 얼른 마저 읽고 싶습니다.
다 읽고 다시 와서 쟝님 글 읽을래요.

저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안했던 사람이었는데요, 엄마가 되고 나니 그게 참 힘들지만 의미가 있는 그러나 강요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엄마가 된다는게 어떤 건지도 잘 모르면서도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알았다면 저는 절대 엄마가 되지 않았을 거예요.. (이런 말할 때마다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공쟝쟝 2022-07-07 15:33   좋아요 1 | URL
우린 같은 여성이라서 서로를 십분 이해하지만, 또 그래서 무조건 다 같아!라고 묶기엔 너무도 다른 경험들을 하고 다른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더 힘을 내어서 떠들고 읽고 쓰고 또 떠들고 논쟁하고 그러다가 지치면 쉬고 또 힘나면 나는 대로 읽고 쉬고해야한단 걸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댓글예요!
저는 낳지 않은 / 낳아서 길러보고 싶었던 / 하지만 존재조차 하지 않게 만들어버린 / 없는, 없을, 없앤 / 미안해 할필요 없는 원래부터 없었던 제 아이를 생각하면서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야겠다라고 맘 먹어 볼게요. (뭔가 심오한 댓글이 되었다)

거리의화가 2022-07-07 13: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것보다 대학 때 읽으신 책 보고 흠칫했네요ㅎㅎ 저 책 일단 한국통사 하면 손에 꼽히는 책이라 읽자 해서 구입은 해뒀는데 손이 안갑니다^^; 그걸 무려 대학 때 읽으셨다니 아후~ 대단~! 역사책 읽다보면 특히 여혐 등 보기 싫은 장면들을 마주하게 되어서 괴로울 때가 많아요. 제대로 읽자 생각하며 비판적으로 읽기 중입니다!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지 말기~ 태도는 역사책 읽기에도 유용한 것 같습니다.

재생산은 하지 않으니 저도 제 대에서 삶이 끝나겠네요. 끝나는 삶까지 열심히 살아야겠어요. 그리고 비혼주의자 쟝쟝님 응원합니다!

공쟝쟝 2022-07-07 15:40   좋아요 3 | URL
대학때 읽는 책들은 인생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 같아요. 함석헌 옹의 저 책은… 한학기 수업 교재라서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거화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제가 숨겨진 현대사 덕훕니다. (응?)ㅋㅋ 알라딘은 페미되고 부터 시작했고… 이제 맛 없어서 역사 안읽지만..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법률가들>은 아주 수작였습니다… (응?) 추천드려요.

비혼/주의/까지는 아니지만… 결혼 제도에 대해서는 (특히 한국의 며느라기~문화에 대해서는) 살짝 건네다 본 것 만으로도 치를 떨었습니다. 여자가 여자를 미워하게 만드는 최전선에 고부관계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대로라면 인류 재생산과 마찬가지로 비혼에 안착하게 될 것 같고요. 그런데 제가 한번도 제가 설계한대로 인생이 굴러간 적이 없어가지고, 단정짓지는 않습니다 ㅋㅋㅋㅋㅋ 네 뭐 그러합니다… 제가 이나이 먹고 유튜브를 만들고 있을거라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므로 ㅋㅋㅋㅋ 일단 끝나는 삶까지는 우리 열심히 살아요 ^^ 화이팅!

거리의화가 2022-07-07 17:11   좋아요 2 | URL
엇 쟝쟝님 이렇게 더 알아갑니다ㅎㅎㅎ <법률가들> 책은 못 읽어봤는데 참고해볼게요 고부관계 쉽지 않죠 그나마 저는 시월드 참 편하게 지나가는구나 생각합니다 시어머니가 안 계시고 시할머니만 계셔서^^;
미래는 알 수 없으니 예단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재미난 게 인생이고^^

독서괭 2022-07-07 1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메소포타미아보다 성경이 힘들었다, 저요! 저도 성경을 몰라서.. 함무라비법전이 더 익숙한 것만 같은 느낌? ㅋㅋㅋ
긴 글 읽다보니 앞부분에서 하고 싶었던 말 까먹고.. 음..
아 인용해주신 30쪽 저도 넘 좋았어요! 그리고 *별을 바라보고 가도가도 별이 있는 곳에는 가지지 않는다해서 별은 거짓이란 말은 되지 않는다.* 이 문장 참 좋네요. 다 쓸데없어, 하는 체념적 현실주의와 반대로군요? 이상적 현실주의? 현실적 이상주의? 전 별보다 새우깡 찾으며 가는 사람 같지만.. 쿨럭.. 약간 다른 얘기긴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괴테의 구절이 생각납니다. ˝올바른 목적에 이르는 길은 그 어느 구간에서든 바르다˝
앞으로도 쟝쟝님의 읽고 생각하고 쓰기를 응원합니다~^^

공쟝쟝 2022-07-08 11:26   좋아요 1 | URL
저 였나 제 mbti였나 모르겠는 데 저를 설명한 표현 중에 ‘현실주의자 인 척 하는 이상주의자‘ 라는 표현이 있었어요. 끄덕끄덕 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현실의 새우깡엔 별 관심이 없어요. 그러나 언제나 진짜 행복은 새우깡 먹을 때 느껴지는 것 같다요 ㅋㅋㅋ

독서괭 2022-07-08 11:31   좋아요 1 | URL
별을 바라보면서도 새우깡 먹을 수 있어요! 쟝쟝님 옆에는 입에 새우깡 갖다 넣어주는 분들이 계시니 문제 없습니다 ㅋㅋㅋㅋ

공쟝쟝 2022-07-08 11:3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입천장까질까봐 소주도 부어주는 분들… 사랑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7-10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좋은 글을 이제 읽었네요^^
지난 번에 분명 뉴스레터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공쟝님의 글을 읽은 기억이 없더군요.
안 읽었어~ 안 읽었어~ㅋㅋㅋ
‘현실주의자인 척 하는 이상주의자‘ 인 공쟝님!!
진짜 맞는 말 같은데요?
저는 그게 참 건강하게 다가옵니다.
늘 공쟝님의 글은 읽고 나면 건강해지는 기분이에요. 현실을 직시하지만, 멘탈을 더 강하게 만들어 주는 믿음직스런 부분들이 있어요.
저도 작년부터 여성주의 책을 계속 읽게 되는 이유는 좀 더 올바른 자아를 확립하고 싶어서..라는 욕구가 큰 것 같아요.
이 사람 말, 저 사람 말들을 듣다 보면 좀 혼란스러울 때가 많은데 중심을 잡으려면 아무래도 지식이 많아야 겠구나! 싶더군요.
공쟝님은 중심을 빨리 잡아가고 계신 듯!!^^
재생산은 여자 인생의 행복과 연결 된다는 것은 저도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반반인 것 같습니다. 제 곁에 결혼은 했지만 재생산 하지 않고 살아가는 친구가 있거든요. 보고 있음 또 막 부럽기도 하고..ㅋㅋㅋ
요즘 결혼하는 조카들도 재생산 하지 않는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어 이젠 당연하게 받아 들이게 되면서...재생산이 꼭 의무일 필요는 없구나! 생각하게 되었죠.
삶이 확 바뀌게 되는 것 같아요.
재생산에 대한 제 생각은 그래요ㅋㅋㅋ

공쟝쟝 2022-07-10 22:13   좋아요 1 | URL
자아 확립. 여성에게 여성주의는 좋은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가 읽은 거의 모든 것은 여성이 아닌 남성들 혹은 남성언어의 훈련에 익숙해진 여성들이 쓴 글들이기 때문이죠. 때로는 가장 많이 읽은 여성이 가장 앞장서서 여성을 혐오하는 글을 쓰는 것을 우리는 보기도 하고요. 나의 위치를 선명하게 인식하고 내가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 목소리가 진짜 내 목소리를 심문하는 글을 쓰면서 나의 언어를 발명하는 것. 우리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생산에 관련해서도 더 많은 이야기와 담론들이 필요하구요 ^^... 생식/번식ㅋㅋ에 관해서는 별로 할말이 없고... 다른 소리 같지만 나무님의 훌륭하고 건강하고 먹음직스러운 상차림이라는 재생산 노동들이 저는 근사한 재능이라고 생각하고 부럽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