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 모두
레이먼드 카버 지음, 고영범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평점 :
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서는 거래처랑 통화하고 일을 했다.
우리 벌써 4년이 다 되어가나? 친구들과의 대화는 너무 재밌고, 실컷 떠들고 나니 낮이 밤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지막 자리에서 일어서는 데, 일 년만에 꺼내 신고 나간 여름 샌들 밑창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스타킹 올이 풀리는 장면, 걷다가 멀쩡한 구두 굽이 부러지는 장면 같은 것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성의 시공간을 제약하는 장치이고 현실에서는 쪽팔림으로 기능한다. 3센티가 채 되지 않는 나의 무력하게 덜렁거리는 샌들 굽은… 역시 쪽팔렸다. 왜냐면 4년 전의 나는 이들 앞에서 술을 잔뜩 퍼먹고 취해(물론 모두 취해 있었음)서 코트를 뒤집어 입었기 때문이다. ㅋㅋㅋㅋㅋ 기시감 ㅋㅋㅋㅋㅋㅋ사람이 이렇게 안변해, 응?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술 좀 조절인 자랑스러운 나님은 취해있지 않았으므로 킥킥 대면서 카페 점원에게 스카치 테이프를 빌려 샌들을 고정시켰다. 그렇다. 이건 자랑이다. 작년 여름 ~ 올해까지 가장 공들여 조정 중인 나 자신에 대한 실험은… 알콜 의존증(이름을 가져다 붙이니 좀 심각해 보인다. 아무튼 술 조절 능력 떨어짐)이기 때문이고, 대략 올해 부터는 성공하고 있고, 이 성공의 정도를 계속 주변인들에게 자랑하고 스스로에게 주입하면서 자존감을 높이고 있다 ㅋㅋㅋㅋㅋㅋ
암튼 아침에 모닝 페이지를 다 쓰고, 밀린 댓글도 좀 적고 오늘은 일요일이잖아? 오전 좀 만 더 놀자. 이러면서 잠자냥님 한테 땡스투한 레이먼드 카버 시집을 읽고 있었다. <우리 모두 all of us> 이 양장 시집은 꽤 비싸고 넘나 두껍다. 참고로 나는 아직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읽지 않았고, 그 소설의 명성은 건네들어 알고 있으며, 그가 꽤나 중증의 알코홀릭였다는 것은 시집의 목차를 펴자 마자 알겠다.
1부
운전중 술 마시기 24
롸? 🤷🏻♀️🤷🏻♀️🤷🏻♀️
첫번 째 시 제목이다. 세상은 그것을 음주 운전이라 부르는 데요… 님…?? ㅋㅋㅋㅋㅋ 아, 불길한 퇴폐미의 기운이 느껴진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본문 세 페이지를 넘겼다.
25 page
“난 아홉 살이었다.
평생을 술 근처에서
살았다. 내 친구들도
마셨지. 하지만 걔들은
술에 지지 않았다.”
(전 열아홉 살 부터 마셨는 데요, 암튼 극 공감…, 나의 술친구들은 술에 안 지더라고. 나만 술에 지더라고… 그리고 이 시는 쭉 계속된다..)
27 page
“그리고 또 다시 위스키를
마셨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돌아다녔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운이 좋군, 나는 생각했다.
세월이 흐른 뒤,
나는 여전히
아무도 없는 집, 아무도 돌아오지 않아
내가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실 수 있는 집을 위해
친구들, 사랑,
별빛 가득한 하늘을
포기하고 싶었다.”
아니……………… 레이먼드 카버 이 (술에) 미친 놈아….
아…. 졸라 수치스러운데 난… 널… 이해한다….
친구들이랑 마시는 것도 좋지만 친구들이랑 마시고 돌아와서 혼자 남겨진 집에서 마시는 게 더 좋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라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나는 이제 작년부터는 정말 이렇게 안 살기로 해가지고 ㅋㅋㅋㅋ 암튼 조절, 치료 중이거든요? (자가 치료 중임ㅋㅋㅋ) 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냐면 내 맨정신인 뇌가 아까워서 철학책을 읽는 사람이다 내가 ㅋㅋㅋㅋㅋ
조금 만 더 읽어보자.
37 page
“아내에게서 온 편지다. “뭐하고 지내?”
아내가 묻는다. “요즘 술마셔?””
푸…푸하하… 술 처먹고, 가족한테 버림받고, 인생 탕진하는… 게다가 글을…쓰는 남자라니… 아아아아아아앍!!!!!!!!!!!!!!!!!!!!!!!!!! 정말 싫다. 너무 싫다. 넘 싫어. 극혐이야. 당연히 나는 레이먼드 카버 이 시키를 아프게 씨게 졸라 마니 패버릴 거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이 시집을 다 읽고 팔아 버려야지 하다가…
안되겠다. 가져야겠다, 오래오래 책장 한 켠에 꽂아둬야지, 하고
마음 먹은
46page
“그들은 이해 못한다; 난 잘 지내,
지금 있는 데서 아주 잘 지내, 이제 곧
나는 반드시, 나는 반드시, 나는 반드시 ……
나는 작정한다 이 세상 모든 시간을 가지기로,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로, 심지어 기적에 대해서도,
그러나 동시에 방어 자세를 취하기로, 어느 때보다
더 조심하기로,
더 경계하기로,
나를 범하려는 자들에 맞서,
내 보드카를 훔치려는 자들에 맞서,
나를 해치려는 자들에 맞서.”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인간은 이처럼 참 연약하고 부질없는 존재입니다. 나는ㅋㅋㅋㅋㅋ 그러나 정말 오만감이 교차를 하고요 막 ㅋㅋㅋㅋㅋ 그들은 이해 못할 수 있는 데, 이해 되잖아. 다 이해되지 않아요? ㅋㅋㅋㅋㅋ 여기서 졸라 반전은 자기 보드카 훔쳐서 마신 사람들 아들이고 부인임ㅋㅋㅋㅋㅋㅋ 뭐여 ㅋㅋㅋㅋㅋ 카버씨ㅋㅋㅋ 정신차려요 ㅋㅋㅋㅋ 술끊어욬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그래, 저는 (제 기준입니다.) 이해할 수 있는데요, 그래도, 사람이 나이를 35살을 먹으면, (그 전에 그러면 더 좋긴 하겠는 데) 그 이후부터는 자기 팔자 자기가 꼬는 짓은 이제 좀 그만하고 조절하면서 살자 ㅋㅋㅋㅋㅋㅋ 진짴ㅋㅋㅋㅋ 아 이 휴먼들아 ㅋㅋㅋㅋㅋ 벨훅스 머모님이 딱 정해줬다니까? 35살?ㅋㅋㅋ 그 전까지는 막살아도 이 후부터는 속죄하면서 살아ㅋㅋㅋㅋ 좀ㅋㅋㅋㅋ (그 이후 부터는 갱생의 여지가 없대요 ㅋㅋㅋ 치울 똥 보다 싼 똥이 더 많아서 ㅋㅋㅋㅋ)
어제 나는 집에 돌아와서 술을 혼자 더 마시지 않았고,
올해 들어선 술 조절에서 만큼은 유의미하고 획기적인 진전을 보이고 있으며,
그렇지만 그렇다고 술을 아예 딱 끊을 생각은 여전히 없고,
술, 가능하면 맨 정신으로 살거에요. 더 이상은 삶으로부터 달아나지 않을 거야. 히히.
그런데, 그런데, 레이먼드 카버, 술, 시, 레이먼드 카버, 술….
이 루저 감성 낭낭한 미국 남자의 시를 … 좋아하지 않을 수가 … 없네?
아 정말… 필립 로스도 그렇고 글 잘쓰는 미국 남자들 너무 짜증나…
이 시점에서 왜 친구랑 어제 나눴던 이야기 생각이 나는 걸까.
나 : 여성에게 조국이 어딨어, 스마트폰 있으니까 좁은 한국 정치걱정 대신 전 세계 여성들이랑 연대하면 됨, 인류 재생산 중단 고고싱~!
친구 : 그거 알아? 한국 영페미들은 4B(비혼 비연애 비출산 비섹스)하잖아. 근데 미국 페미들은 마지막이 안된대…
나 : 역시 우리가 최전선… 한녀 파이팅ㅋㅋ 그게 그렇게 못 끊을 일인가? 얽ㅋㅋㅋ 나 좀 슬픈데... 왜 한녀들은 왜 끊을 수 있었을까요…?(말잇못...ㅋㅋㅋㅋㅋ)
라고 말을 잇지 못하던 내가 바로 글쓰는(섹스는 알수가 없고) 미국 남자 못 잃어네ㅋㅋㅋㅋ
아… 빡친다… 정희진 샘이 1세계, 남성, 지식인 (한국에서는 명문대 출신 남지식인) 이 쓴 책 에지간 하면 읽지 말랬는 데... 말 들을 걸...
근데 걔들이 쓴게 너무 많다고요 ㅋㅋㅋㅋ 선생님아 ㅋㅋㅋㅋ
아아, 인간은 이처럼 구조 속에서 무력합니다. 암튼 난 이 두꺼운 책을 다 읽는 내내 얘 때문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으로 나에게 미션을 부여하기로 한다. 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레이먼드 카버 안되겠네... 안되겠어 ㅉㅉㅉㅉ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