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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의 창조
거다 러너 지음, 강세영 옮김 / 당대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오늘은 7월 1일이다. 2022년이 또 시작되었다는 뜻이지. 아직 나에겐 6개월이나 남았다. 다시 태어나야한다! (문학 읽는 여자로)
어제까지 해야할 일 + 읽어야 할 책 뭔가 다 쌓아져만 있었던 까닭은… 유튜브 만들고 앓아버렸기 때문이다. (뭐랄까… 너무 피곤했다…)
음… 요즘의 나는 혼탕 잡탕 뒤죽박죽이었는 데, 거기엔 엉망진창 뒤메질 독서가 한 몫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거, 읽고 싶은 거, 너무 많아서 욕망의 화신이 되어서 욕망에 계속 몸부림치고, 그래도 할 일을 먼저 해야하니까 하기 싫어하면서 마음이 답답해지고. 행복한 고민 같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난 정말 고르는 게 싫어… 아무튼 오늘은 반드시 <가부장제의 창조>를 마저 다 읽어야지! 일단 이것만 딱 읽는 거야. 그리고 7월 1일이니까 다 리셋해버리자. 읽다 만 거에 스트레스 받지 말자!!! ㅜㅜ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어떻게 안받아? 스트레스를 어떻게 안받냐고…첨에 퇴사했을 때는 아, 이렇게 영원히 매일 매일 살아간다면(일하고, 책읽고, 운동하고, 글쓰고) 정말 좋겠다라고 느꼈더랬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 데 일은 하기 싫어서 꼴도 보기 싫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한다. 뭐가 바뀐 걸까. 내 태도가 바뀐 거겠지. 일이 지겹다기 보다는 매번 매번 열과 성을 내려고 하는 내가 지겨운 데, 열과 성을 낸다고 해서 반드시 흡족할만한 결과나 상황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좀 피로해져서 열과 성을 놓는 순간, 바로 탐탁치 않은 피드백이 들어온다. 기분 좋은 상태일 때는 당연한 일로 생각되는 데, 지치고 피곤한 상태로는 완전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하는 건가……. 😞세상에는 대충대충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알고 있다. 나도 대충대충 살고 싶다. [부산일보] 개인회생 변제금에서 주식·코인 손실금 뺀다… “2030 구제”
http://mobile.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2062911033609116아니, 근데 이건 무슨 개 같은 소리냐ㅋㅋㅋㅋ 주식·코인으로 (아니, 니네 다 빚투 한거잖아, 감당하려고 저지른 거 아니었어?) 저토록 대충 살아도 국가가 2030을 구제해 준다는 데, 왜 나는 안 구제해주냐, 나는 일케 내 노동력을 갈아가면서 사는 데… 왜 난 대출도 안해죠? 엉?(그거야 너는 월급쟁이가 아니라 개인사업자여서야. 아니 근데 코인을 왜 구제해주냐고… 참나… 자본주의야! 자본주의 제대로 하라고!! 적자 생존 몰라? 앙?) 그르니까 이왕 대충 살꺼 아주 막장으로 대충 살아야하는 건가? 역시 삶이란 기투 기투 기투 빚투인가. 미친 거 아닌가. 이쯤 살았으면 인생에서 교훈을 찾고 싶은 데. 굳이 찾아낸 교훈이 “대충 살아야 한다”란 말인가?그렇다면, 오 예쓰- 음, 오, 아, 예, 어쨌든 이렇게 엉망진창 뒤죽박죽 일 때 나는 보통 글을 써서 정리한다. 그러면 좀 살 것 같아진다. 구 공감고자이며 감정을 느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물론 다종 다양한 심리학책은 감정을 부정하지 말 것이며 회피하지 말 것이며 충분히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딱 여기서 끝나니까 구체적으로 나 자신이 어떻게 하는지 적어두겠다.)는 아래와 같은 생각들을 하면서 감정을 대한다. *감정은 지나간다, 변한다, 일시적인 것이다*
*감정은 지나가는 것이지만 또 현재 상황에서의 느끼는 감정은 진짜다.*
*좋았던 것도 아팠던 것도 다 진짜.*
*진짜는 진짜인 채로 느끼고. 상황이 허락하는 한에서 표현하면서도, 결국은 상황도 감정도 변화할 것임을 아는 것.*
나는 뚝딱 뚝딱 이런 것들을 써두면서 감정을 받아들이고, 또 인정해주려고 노력한다.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고 어떤 감정이냐고 계속 물어봐주지 않으면 보통 잘 느끼지도 못한채 몸 어딘가에 쌓이고 잠복해 있다가 (내 경우엔) 알 수 없는 무기력으로 찾아오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연습이 좀 효과가 있는 것 인지, 이젠 의식적으로 물어봐주지 않아도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이런 것이구나… 하면서 그렇다면 좀 잘 느껴보도록 하자… 하면서 대놓고 느낀다. 슬플 때는 슬퍼할 시간을 충분히, 화날 때는 충분히 화내기(대체로 글로 화냄ㅋㅋㅋ 분노를 글로 배웠습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감정은 ‘진짜’이지만, 현재가 일시적인 것 처럼 감정 역시 ‘일시적’이라는 거다. (이 사실은 특히 좀 아플 때 꽤 위안이 된다. 공들여서 느끼자. 느껴야만 지나간다.) 그리고 스스로가 제대로 알아차려주면 ‘변한다’. 알아차려주지 않으면 ‘안좋은 방향으로 변한다’. 그걸 삶이 복수한다고 표현한다. 내가 내 몸을, 감정을,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서 삶이 복수를 했기 때문에, 길었던 억압의 시간 만큼 호되게 당했기 때문에, 뭐든, 내가, 내 감정이 먼저다, 먼저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이런 나를 잘 알아차려주기 위해 난 반드시, 일기를 글을 써야 한다. 몇 년 습관을 들였더니 안쓰면 슬퍼지는 몸이 되었다. 기왕이면 루틴하게 쓰는 것이 좋겠다 싶은 데, 일이 바쁠 때는 또 언제나 처럼 뒷전이라 … 6월 중순 무렵부턴 모닝 페이지를 하기로 했고, 오늘 같은 날(새로 시작하는 날 이니까)은 좀 많이 써야할 것 같아서 일찍 일어났다. (그래서 페이퍼도 썼당)알고 있다. 글은 삶을 초과할 수 없고(그래서도 안되고), 삶의 진실은 글자에서 발견한대도 결국 살아야만 마주할 수 있다는 것. 그렇지만 책과 글씨들을 부여잡았을 때, 나는 겨우겨우 ‘내’ 삶을 붙잡는 느낌이었다. 내가 쓰는 글씨들은 결국 ‘진짜’일 수는 없고, 내가 언어로 구체화하길 좋아하는 어떤 이념(?)이란 긴장하지 않는 순간 너무도 수월하게 앞에 있는 ‘존재’를 무력화 시키는 무기로 변하곤 하지만.그래도 글은 남는다. 그래서 무섭다. 그래서 대단하다. 가능하면 감정을 적어두고, 그것에 대해서 사유하기를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은 —어쩌면 소문자인— 나의 역사를 쓰는 것일 수도 있고, (훗날 이불킥을 하게 되더라도) 적혀있는 글씨들은 진실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삶의 흔적이며…, 현재에서 휘발되어 버리는 ‘진짜’들이 정말로 ‘진짜’였다는 거의 유일에 가까운 증거이며, 동시에 나 자신이 ‘감정’대로만 행동(느끼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조금 더 디테일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믿는 구석으로 앞으로의 삶에서 작용하겠지.요컨대 중요한 것은 쓴다는 행위 자체이다.“(p.18) 의미부여 과정에서의 주변화”
글씨들을 독점하고 있어서, 그것들을 쓸 수 있어서, 결국에는 역사를 썼고, 과거에 대한 해석의 권한을 독점했고, 그것을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노예화하는 권력으로 사용했고. 수천 년 동안 바로잡을 기회를 다 날려버리고도 끝끝내 지배를 영속화하고 싶어 “여성은 추상적인 사유 능력이 떨어진다”(2022년의 현실에서는 여자치곤 꽤 잘하네?라는 말들로 존속한다)라는 참으로도 (현실과 관계없는) 추상적인 주장을 합리화 하기 위해 진화론, 생물학, 유전자 까지 다 가져다 쓰는 관념종자 남성집단의 (일론 머스크는 달에 가는 쇼를 팔고, 2030은 달까지 가자 현생 꼴아 박으며 코인을 하고… 아아, 추상은 정말 남자들의 것인가…) 문명보다 더 오래된 지배의 기원을 탐구하는 책을 읽고 있다. 수치스럽게도 추상화와 일반화, 이념적 비약은 내 특기라서 (ㅋㅋㅋ) 내가 집중해서 읽게되는 부분은 현실이 관념이 되는 과정과 관념이 현실로 작용하게 되는 역사적 과정이다. 그러나 나는 남자가 아니기에, 이 과정을 되찾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로 했다. 기록된 과거의 경험을 새롭게 정렬하면서 내 삶의 주도권을 나 스스로가 되찾는 것. 이 추상화의 과정은 현재 나의 삶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다른 인간존재를 잔인하게 대하고 그/그녀에게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노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보다 한수 높은 중요한 발명은, *지배당하는 집단을 지배하는 집단과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물론 그런 차이는 노예가 될 사람들이 타지방 부족구성원, 말 그대로 ‘타인’일 때 가장 명백하다. 그러나 그 개념을 확장하고 노예화된 사람들(the enslaved)을 어떤 면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것,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 남성들은 그런 지정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정신적 구성물은 대체로 어떤 현실 속의 모형들에서 나오며, 과거 경험을 새롭게 정렬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 경험은 노예제 가 발명되기 이전에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집단의 여성들을 종속시켰던 경험이다. *여성억압은 노예제보다 먼저 일어나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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