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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6월
평점 :
지독히도 인과관계로 세상을 보려고 하는 타입인 나는 근래들어 의미와 개연성 찾기를 의식적으로 그만두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사실 정말로(우주의 생겨먹음조차 그러하다던데)도 세상이 인과관계로 돌아가지 않을 뿐더러, 인간사에 이유를 따져물어 서사를 만들어주는 노동 자체에 동력이 딸리기도 했고(인류애 바닥이랄까, 굳이 인간들을 이해하고 싶은 동기가 생기지 않았다), 모든 것에서 유의미한 의미를 찾아내려는 주변의 의미종자들에게 질려버렸기 때문인게 좀 컸다.
이 사태의 본질을 파악해야해! 모든 걸 의미화하는 그들은 음모론에 취약했고, 뭔가 중간이 삭제된 것 같은 그 음모론에 나는 도저히 동의가 안됐고, 하지만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의 인식론이 대체로 그렇듯 반박하려면 더 설득력있는 음모론을 가져와야 했고…. 논쟁하기 싫어서 아, 그렇군요?하다보면 나는 자꾸 뭘 제대로 모르는 애가 되어 들어줘야 했고… 때론 그게 빡쳐서 한번 붙자니 음모론(정치적 신념도 그렇지만, 신점ㆍ사주ㆍMBTI도 같은 맥락인 듯)에 설득 당하고 싶을 만큼 삶이 퍽퍽하기도 했을테지, 싶어 좀 짠했고- 뭐 이거저 다 떼고보면 나의 그 짠해함을 이용하기 위해 어째 이야기가 더욱더 극적이고 구슬퍼(?)지는… 인간사를 서사로 구축해 고통을 합리화하는… 속내들이 더는 보기 싫어졌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으으~ 듣기 싫어. 이유는 없어. 그냥 세상은 이유없이 원래 똥같은 거야!!!
인간관계나 사회를 파악하는 데 있어 골싸매고 이유를 찾는 진지한 태도가 멋있어 보였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뭐랄까… 살수록.. 살아갈수록.. 그런 태도가 더 편협하고 본질적으로는 더 쉬운 방식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의심은 뇌과학(!)에 따르자면 나름 신빙성있는 의심이었다!!
“(74) 뇌에서 그 방 안의 수많은 대화를 걸러내고 당신의 안녕에 중요할 수 있는 대화를 알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뇌는 우리를 위해 이야기를 만든다. 우리를 둘러싼 혼란스러운 정보를 추려서 중요한 정보만 보여준다. 이처럼 서사를 이용해서 복잡한 내용을 단순하게 만드는 방법은 기억에도 적용된다. 인간의 기억은 ‘삽화적’(무질서한 과거를 인과관계가 있는 지극히 단순한 순서로 경험하는 경향)이고 ‘자전적’(이렇게 연결된 삽화에 사적이고 도덕적인 의미가 담기는 경향)이다.”
“(77) 인과관계는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근간이며 뇌는 원인과 결과를 연결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자동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제 실험을 해보자. 바나나. 구토.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방금 전에 당신의 뇌에서 일어난 현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당신의 마음은 자동으로 시간의 순서를 전제하고 바나나와 구토라는 단어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상정하여 바나나가 구토를 일으키는 대략적인 시나리오를 만든다.””
서사중독. 그러니까..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우리 뇌는 인과관계를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인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사실. 흐음. 그렇군. 🤔 인과관계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부지런한게 아니라 게으른거였어..!! 여튼 그 방식이 되려 뇌에게 쉽다는 걸 안 것은 최근의 일이고, 나 스스로는 그런식의 마음씀이 꽤나 기운이 필요한 노동이라고 생각했었다. 어쨌든 머리를 굴려서 이해할 근거들을 찾아내고 마는 것도 노동이라면 노동이잖아? 두뇌의 노동!? 🧠
“(91) 우리의 편향과 오류와 편견에 관한 불길한 사실이 있다. 바로 미스터 B에게 그의 망상이 보이듯이 우리에게도 우리의 편향과 오류와 편견이 진실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남들은 다 ‘편견’에 치우치고 우리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처럼 느낀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순진한 사실주의’라고 부른다.”
난 불가해를 불안해하는 사람으로서 매사에 납득이 될만한 이유를 찾아보는 건 굳어져버린 성격같은거라, 어떤 식으로든 그래서 그랬던 거군, 사건의 원인을 찾아내고 내 방식대로 구축해놓은 매끄러운 편견 속에서 살아가기를 적극적으로 택하며 지내왔다. (한마디로 음모론에 취약한 의미종자라는 소리다.) 그게 맘이 편했다.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그래 그래서 그런걸 거야, 끄덕끄덕. 이 방식이 내 뇌피셜 이라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알았다.
최근에는 그게 mbti였는데, 어떻게 인간이 16가지가 있어? 그러면서도 성격유형 다 외워서 그래 쟤는 F니까 그랬을 지도 몰라...어쩌겠어, 이해하자..ㅋㅋㅋㅋ 😔 이렇게 살아왔다. 가끔은 이런 내가 피곤하고 소심한 것 같아 쪽팔렸다. 그치만 이해가 안되면 생각이 자꾸 생각나는걸?? 😩
그래도 요즘엔 내가 지금 과몰입모드구나, 가까스로 자각에 닿아 그럭저럭 빠져나온다. 너무 진지해질 때 마다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나여, 이 편견왕, 편협왕, 편파왕이여. 너 지금 그거 다 니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거고 너무 에너지쓰고 있고 여기서 더 진지하면 징그러워지니까 머리 굴리기 때려쳐!!!! 스탑스탑. 현타가 오면 아, 의미가 없어지고 의미가 없어지면 순간적으로 아주~ 홀가분해진다. 과몰입 해제 버튼이랄까. 암튼 요 버튼을 작동법을 발견하고서 매사에 시큰둥해지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고 있을 때 쯤.
서울 온 좀비물 마니아 엄마가 이번엔 다른 것을 보아야 한다며 평소보다는 살짝 톤이 높아져 리모콘의 권리를 주장하셨다. “아니, 동네 사람들이 목욕탕에서 하도 재밌다고 난리난리가 났길래. 아빠있을 때 같이 보자고 틀었거든? 세상에 둘이서 시즌1을 밤을 새고 봤다야”는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이야기다.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였으므로 나는 좀 피곤했다. 엄마가 틀어놓은 그 드라마는 등장인물 모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대동단결하여 시종일관 악을 질렀다. 아니, 무슨 드라마가 악을 지르지 않으면 대화를 못해? (나 자신은 시끄럽지만 시끄러운 환경은 싫어하는 편) 투덜대며 엄마 옆에 앉았다. 그리고………… 뭐여. 왜. 죽어? 죽여? 죽…네? 엉? 뭐…여… 뭐? 쟤랑 쟤랑 부부였는 데 쟤랑 쟤랑 또 약혼을 했다고?? 그럼 애들은…?? 어..? 헐, 아빠를 죽였어?? 공중파가 저런다고..? 그대로... 시간 순삭. 이게 한 화에서 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아니, 대체 어쩌려고 작가는??
네. 단 1명의 인물에게도 이입이 안되는 오로지 욕망 밖에 없는 인간들의 난투와 치정이 폭발하는 펜트하우스에 저는 5분만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엄마… 왜… 밤을 새고 봤는 지 알 것 같아…”
“(39) 뇌 스캔을 해보면 호기심이 생길 때 뇌의 보상 체계가 약간 자극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하자면 우리가 이야기에서 답을 궁금해하거나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마약이나 섹스나 초콜릿을 갈망하는 현상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분 좋게 불쾌한 상태, 그러니까 확실히 답을 알게 될 거라는 기분 좋은 약속이 되어 있고, 감질나게 불편한 가운데 초조하게 안절부절못하는 상태는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유혹과 같다.”
그리고 피같은 주말 동안 차마 시즌1을 다 찾아 볼 수는 없었으므로, 유튜브를 통해 몰아보기로 펜트하우스를 습득하였고… 뭐여!(흥분하면 사투리) 뭔디 이러케 재밌는거여!!!!!!!!😱 작가님의 필력에 감탄하며!!! 저게 말이돼?!!!!! 그치만 말이 안돼서 더 재밌잖아!!이러면서 언제나처럼 엄마의 추천작을 한껏 즐겨버렸던 것이지요.
내 황금같은 주말에 왜 주단테 따위를 검색하고 있는 거냐?라고 물으면서도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던 것입니다. 아니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전 몰두할 것이 필요했나봅니다. 워쩔껏이여. 이 몸 안에 흐르는 한국인의 피. 온갖 것에 스토리를 입혀줘야 속 시원한 나는야 인생극장으로 삶을 익혀온 의지의 한국인. 그렇다! 막장에 과몰입해서 먹고사니즘의 시름을 잊는 내가 바로 과로사회로 유명한 K-노동자다!!!!!!!! 막장이여 오라!! 몰아쳐라!!!!! ㅎ ㅏ ㅎ ㅏ ㅎ ㅏ
예, 사건의 전말은 그러합니다. 물론 회사를 그만두고 세상의 모든 시름이 잊혀지자 펜트하우스라는 드라마의 존재는 이내 잊혀졌고… 시즌2가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지만요... 하지만 그 주말의 나는 천서진과 주단테의 몰락을 비는 데, 한사코, 꾸준히, 열정적으로 진심이었다…?
“(197) 윌리엄 플레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악당을 미워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미워해봐야 의미가 없다. 우리는 악당의 정체가 그의 세계에서 드러나기를 바란다.”
(215) 모든 주인공은 반영웅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 등장할 때는 대부분 결함이 있고 불완전한 인물이지만 변화를 견디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영웅이 된다. 주인공을 지지하는 이유를 한 가지만 꼽기는 어렵다. 공감을 얻는 비밀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핵심은 신경망에 있다. 이야기는 뇌의 여러 진화 체계에 작용하는데, 유능한 작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이런 신경망을 모두 발화시킨다. 여기에서는 도덕적 격분으로 떨리는 음을 조금 내고, 저기에서는 지위 게임의 팡파르를 울리고, 부족을 식별하는 방울소리와 우르릉거리며 위협적인 적대자의 소리를 내고, 위트의 나팔을 불고, 성적 매력을 드러내는 뱃고동 소리를 울리고, 부당한 골칫거리를 크레센도로 올리고, 씨실과 날실의 허밍을 하면서 새롭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극적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진다. 한마디로 독자의 뇌를 사로잡고 조작할 수 있는 악기를 총동원하는 것이다.”
킹순옥(펜트하우스 작가님 별칭이래요)언니. 그대 진정 유능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여!!
사실 저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해 읽기 시작했는 데 말이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왜 읽었냐면… 펜트하우스에 몰입해 주말을 다 써버린 저자신을 해명해보고자 읽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게 재밌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또 습관적으로 이유 찾고 있음ㅋㅋㅋㅋㅋ) 그리고 알게 되었지요! 책에 따르면 우리 킹순옥 갓순옥 작가님이 ‘도덕적 분노’와 ‘지위 게임’을 이용하는데 천재라는 사실을!!!! 아아 순옥 작가님, 그대 훌륭한 뇌 조련자.
“(185) 가장 성공적인 이야기에서는 초반에 도덕적 분노를 자극한다.”
“(190) 참가자들에게 다른 사람의 부와 인기와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능력에 관해 읽게 하고 뇌를 스캔하자 통증을 지각하는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누군가가 불행에 처한 이야기를 읽히자 뇌의 보상중추가 활성화됐다.”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누군가의 불행으로 보상중추를 활성화 시켜버리는 인간 뇌의 생겨먹음…!!
어쩔꺼냐고!! ㅋㅋㅋㅋ 재밌는 예시는 또 있습니다.
“(119) 신경과학자 새러 김블 교수는 뇌 스캐너로 참가자들의 뇌를 관찰하면서 그들의 확고한 정치 신념이 틀렸다고 입증해주는 증거를 접할 때 뇌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아보았다.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숲속을 거닐다 곰을 만날 때 일어날 법한 반응과 상당히 유사했다.””
이런거 너무 재밌지 않나요? 정치적 신념이 부딪힐 때 뇌는 곰을 만난 것 같다니ㅋㅋㅋㅋ… 어쩐지 싸우고 싶더라.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의 뇌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곰을 만나는 가…. 정치적 신념을 갖는 일이란 얼마나 위험천만하고 고난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지우길 얼마나 다행인가. 위험했어. 정말인지, 현대인은 너무도 위험한 삶을 살아가고 있어...😫
“(128) 심리적으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자신을 영웅으로 생각한다. 도덕적 우월성은 사실 ‘유난히 강력하고 보편적인 긍정적 착각의 한 형태’다. ‘긍정적이고 도덕적인 자아상’을 보존하면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혜택이 주어질 뿐 아니라 신체 건강도 좋아지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살인자와 가정폭력범조차 스스로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믿고 피해자들이 먼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도발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도 우리는 건강하게 살자.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자. 저 악마같은 주단테도 사는 데ㅋㅋㅋ 하면서 펜트하우스를 보자. 나 자신을 영웅으로 생각하자.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자. 그게 좋은 것 같아. 뇌한테도 편한 것 같고.
“(147) 인간 조건에 관한 무섭고도 흥미로운 진실은 누구도 극적 질문의 답을 모른다는 점이다. 질문 자체가 우리 자신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왜 그런 행동을 하고 왜 그렇게 느끼는지 알 수 없다. 왜 우울한지 가설을 세우면서, 도덕적 신념을 정당화하면서, 음악이 감동을 주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만든다. 우리의 자아 감각은 신뢰할 수 없는 화자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완전히 통제한다고 믿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우리가 누구인지 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그래서 인생이 그렇게 골치 아픈 싸움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수수께끼 같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스스로를 실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뱉으면서 스스로도 충격받는다. 스스로를 질책하면서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라고 자문하고 체념하면서 언젠가는 나도 깨달을 날이 오기는 올지 의아해한다.이야기에서 극적 질문이 그렇게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는 주인공이 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그리고 주인공은 답을 모르는 법이지. ㅎㅎㅎㅎㅎ
무튼 이 책 재미졌다. 사실 한동안 내 관심은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재밌게 읽을 수 있을까?였고 늘 그렇듯 소설을 읽는 게 아니라 소설 읽는 법(ㅋㅋㅋ)을 찾아 읽게 되었는 데, 소설가들이 쓴 책과 평론가들이 쓴 책들 보다는 훨씬 내 타입이었다.
아, 나 이런 책 좋아하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사실들에 재밌는 예시 왕창 넣어서 이유 만들어 주는 책들. 특히 내 뇌가 그런 거였어? 내 호르몬이 그런거였어? 아 도파민 때문이었어?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 근거 만들어 줘버리면… 좀 나 자신한테 상냥해 질 수 있잖아? 좋다, 좋다!
개인적으로는 뇌과학ㆍ심리학 실험에 관한 예시들이 즐거웠지만, 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독자들이라면 책에 나오는 소설들의 플롯 분석이 재밌을 것 같고, 영감을 찾는 창작자들이 읽으면 좋을 꽤 쏠쏠한 팁들도 담겨있다. 다만, 백자평에도 썼지만 이 책은 자꾸 침팬지를 가져온다. (윌스토씨 당신, 그게 바로 쉽게 생각하는 거라고.) 대부분의 진화심리학이 그렇듯 자연스럽게 의뭉스러운 성차별 요소는 들어있다. 그런 부분을 너그러이 용서할 수는 없어서 별을 빼긴 했지만- 3월에 읽은 비문학 중 제일 재밌어서 추천하고 싶었음. 라고 3월에 쓰다 말았던 글을… 4월 10일에 올립니다. 전 제 게으름에 관대하니까요 ㅋㅋㅋㅋ
그런데 펜트하우스2는 어떻게 끝났대요? ㅋㅋ 검색좀 해봐야겠다~! 뿅!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두려움에 대한 치료법이 바로 이야기다. 뇌는 희망에 찬 목표로 삶을 가득 채우고 그 목표를 성취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삶의 냉혹한 진실에 직면하지 않게 해준다. 이야기는 우리의 존재에 의미가 있다는 착각을 일으켜서 삶의 혹독한 진실을 외면하게도 해준다. - P13
결국 뇌의 궁극적인 사명은 상대를 통제하는 일이다. 뇌는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과 그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지각하고 그 사람들을 통제해야 한다. 세계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 P31
영화 〈블레이드러너〉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 그렇다. 복제인간 로이 배티가 죽기 직전에 릭 데커드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 인간들이 믿지 못할 것들을 봤어. 오리온자리의 어깨 위에서 포화를 내뿜는 공격함들, 탄호이저 게이트 근처의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C-광선을 봤지." C-광선! 탄호이저 게이트! 이름만 언급해도 그 경이로움이 실재한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낯선 것들은 무서운 공포소설의 괴물들처럼 우리의 뇌가 끊임없이 모형을 생성해서 만들어진 상상의 결과일 때 작가의 상상보다 더 실제처럼 느껴진다. - P54
좋은 이야기는 인간 조건을 탐구한다. 극의 표면에서 벌어지는 사건보다 인물에 더 집중한다. 낯선 마음으로 떠나게 되는 흥미진진한 여행이다.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우리가 그 인물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극적인 싸움을 제공하는 이유는 그가 성공하고 매력적인 미소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가진 결함 때문이다. - P84
우리만 깨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만 갈등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만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다. 우리만 음침한 생각과 씁쓸한 회한과 때때로 증오에 찬 자아에 사로잡히는 것도 아니며 우리만 두려운 것 또한 아니다. 이야기의 마법은 현실의 사랑이 범접하지 못할 방식으로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준다. 이야기는 어두운 두개골 속에서 우리가 그렇게 외롭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선물한다. - P266
당신은 이미 이 질문의 답을 알 수도 있다. 모른다면 이제는 알아야 할 때다. 근원적인 상처의 계기가 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인물이 갖게 된 신념은 이제껏 어떤 식으로든 그를 보호를 해왔을 것이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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