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모른다.
그 시절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들이 아주 천천히 스며들어 앞으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그 모든 일들을 아직 해석할 능력이 없던 나날들. 이미 벌어지고 있는 데도 현실감이 없었던 남의 기억같은 기억들. 아팠는 데 이게 아픈게 맞는지 누구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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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렷한 기억은 없는데, 몸에는 그 시절의 감정들이 안 빠진채로 남아 있었나보다.
이 섬세한 영화가 가져다주는 어떤 분위기로 인해, 깊은 수영장에 멋도 모르게 빠져 텀벙대며 코로 귀로 물을 먹는 사람처럼 엄청 다양한 감정들이 마구마구 밀려들어 힘들었다.
시간이 흘러 이론이, 경험이, 언어가, 관계가, 그러니까 이게 무슨일인지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꽤나 쌓였는 데도 여전히 나는 삶에 당한다. 나는 이렇게나 자랐는 데도, 세상 똑똑한 척은 다하는 데도,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현실은 불가해하다. 이해하려 하면 할 수록 이해할 수 없음이라는 벽에 부딪힌다.
어떤 일은 청맹과니처럼 멍하게 지나가게 두다가 잠깐 울 것 같은 순간이 오면 아, 왜 이러지? 돌아보고 겨우 수습하거나 어쩔 수 없이 해석해 보거나. 이것도 살려고 노력하다보니 어찌어찌 생겨난 삶의 기술일 뿐, 대체적으로는 해석이 되지도 않거니와 이해해낸 것 같다 하더라도 후련한 건 아니다.
그래도 사건에 말과 글을 입히고 나면, 그 순간 만큼은 견딜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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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를 보면서 20년 전, 소녀시절의 무력감이 많이 생각났다.
함께 영화를 본 동생은 그때 너무 힘들었다고 지금이 더 낫긴 한 것 같다고, 그런데 지금은 지금 대로 또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고 했다. 나 역시, 실감한다. 내가 커진 만큼 세상도 무거워졌다는 걸.
20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를 기억할 때도 오늘 처럼 슬퍼서 눈물이 나면 어떡하지?
아 인생은 원래 이렇게 슬픈건가요,
아니면 내가 우울증인가요...쿨쩍😿왤케 만날 눈물이...
매일 관계가 무너지고, 어느 날은 다리가 무너지고, 이게 대체 무슨일이야 그럼에도 계속 견디고 사랑하려는 은희를 꼭 안아주고 싶었고, 영지샘 손도 꼭 잡아주고 싶었다. 적고보니 내가 나한테 해주고 싶은 거란걸 알겠다. 무기력한 소녀였던 나를 안아 일으켜주고 싶고, 잃어가면서도 남은게 많아 방향몰라하는 지금 나의 무력한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싶다. 위로와 안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