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돼가? 무엇이든 -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이경미 첫 번째 에세이
이경미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 망한 것 같아, 징징대는 내게 동생이 사주보러 가자고 했다. 새해 맞이 좋은 제안이군. 덥썩 물었다.

아뿔싸. 잊었다. 사주가 필요없는 나의 사주.
스물 몇살 때, 사주카페에 간적이 있었다. 같은 돈 냈는 데 나는 5분만 상담해주고 같이 간 언니는 40분 상담해줬다. 왜 나는 적게 해주냐했더니 사주에 사주 같은 거 안 믿고, 주변사람들 말도 안듣고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다며 니맘대로 살라고 했다.

그리고 수년 후.. 내 사주는 변하지 않았다. (아........ 사주는 원래 안변하는 거지.)

*


-선생님:마라톤 한번 뛰었네. 아무것도 하기 싫죠? 손가락 까닥하기 싫은 상태라고 나오네 지금.
-나: (내심 용하다고 느끼지만, 꿰뚫리기 싫어서) 아, 그런가요?
-선:보통 사람들은 평생가도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데, 어릴 때 이미 자신을 잘 알게 된다고 나와요. 본인 이미 깨달았으니 그대로 사시면 되겠네요. 그렇게 사세요.
-나: 더 하실 말씀은?
-선:궁금한 거 없잖아요.
-나: (오.어떻게 알았지..) 그렇긴 한데... 그래도, 저 인생 망하지는 않겠죠? 음.. 최근에 이것저것...다 때려치우기도 했고...
-선: (정색) 그런데 본인이 망했다고 생각 안하잖아요.
-나:그래도 굶어죽을까봐...
-선:일이 하기 싫어 죽겠어도 이미 일을 하고 있는 스타일이라서 본인 앞가림은 문제 없을 겁니다. 조직생활 하지말고 개인사업하세요. 남들 한테 맞춰주는 거 인제 안하고 싶죠?
-나:!!!
-선:살고픈 대로 사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실 겁니다.

-끝-

=요약 : (이번 역시) 니 맘대로 하고 사세요.

사주팔자 같은 거 믿을 게 못된다고 생각했는 데,
본심 너무 꿰뚫려서 갑자기 사주 믿게 될 것 같았지만,
역시 사주를 믿으면 내가 왠지 지는(?)것 같아서 안믿기로.

*

“(229-231)
-제가 요즘 역학을 공부하는데요. 사람 운명은 정해져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들어요.
-(이경미)그럼 무섭지 않아요? 내 운명이 나쁘다는 걸 알게되면 어떡해요?
-나쁘더라도 전혀 모르는 것보다 그걸 아는게 더 마음 편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여기서 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이제부터 생각하면 되니까요.
....
그런데 『마인드 헌터』를 읽다가 문득 생각했다. 그래, 바퀴벌레와 같이 사는 지하 생활이나 바퀴벌레보다 더 끔찍한범죄 사건을 연구하는 지하 생활이나 어차피 인생 도망칠 수없다고.
이렇게 생각하니 진짜 무섭다. 여기서 더 나아질 방법이없다. 괜히 생각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지 말자.”


*

날 더러 이미 알고 있고, 자꾸 깨달았대서 돌아오는 길에 그게 뭘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대충 아래와 같다.
인생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됨 -> 그러므로 내 맘대로 할 수있는 범위 안에서 만큼은 내 맘대로 하고 살겠다 -> 움켜쥘 수록 빠져 나가던 인생이 손바닥 펴니까 손위에 놓여있음 -> 안 움켜쥐고 인생 바라보기. 움켜 쥐고 싶은 마음이 들면 딴 짓 하기.

팔자, 운명이 정해져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정해져 있다 한들 그걸 살아가는 나는 어차피 매 순간을 처음 겪어 낼거잖아. 그러니까 운명까지는 모르겠고, 인생은 너무 열심히 살면 억울하니 열심히 안사는 방향으로 정했다. 나는 아마 망하지 않을 것이다. 뭔가를 망할 만큼 쌓거나 채우거나 이루지 않기로 했으니까.

때때로 무리하려 들 때/열심히 하고 싶어질 때/ 마다
이경미 감독 말대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지 않기”

*

나라는 사람은 너무 고생하면 억울해서 맘이 좁아지고 남들한테 야멸차지고 그러더라, 고난을 이겨내면서 막 더 크게 깨닫고 맘 넓어지고 전혀 아니더라. 그러니까 나는 나의 고생과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그게 남한테도 좋은 것 같다는 생각.
뭐 요즘의 나는 그렇단 이야기.

*

이경미 감독 에세이의 효과 : 나 따위도 어쩌면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22)
사랑을 잃었다고 무너지면, 나는 끝난다. 나한테는 나밖에 없다. 매일 매시간 매초, 나를 때리며 악으로 버텨왔는데, 창피한 줄 모르고 아무 때나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그렇게 매번 눈물을 흘리고 나면 마음은 편해졌다. 숨 쉴 수있어서 좋았다.
그냥 내가 마흔을 목전에 둔 서른아홉 가을에 그랬었다는 이야기.

(137)
올해의 결심.
별로인 것을 두려워 말고 쓸 것.
정말 간절히 원하면, 원하지 말 것.
나나 잘할 것.

(188)
내가 살림하는 사람이 못 된 이유는 아빠의 뜻을 따른 게 아니라 지독하게 소질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잘 돌볼 줄 아는 사람은 살림을 해도괜찮다. 살림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살림을 하면 온 집안이 불행해진다. 나는 지금도 아찔하다. 내가 만약 아이를 낳고 살림을 했다면 후회만 남을 육아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

(252)
시나리오를 쓰면서 경계하는 점.
나를 무고하고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으로 만드는 습관.
어려운 장애물을 대충 피하고 싶은 습관.
인물을 통해 남 탓 하고 싶은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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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2-12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 에세이 완전 제 스타일인데요.
제목만 보고 너무 쉽게(?) 생각했어요. 저도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그나저나 쟝쟝님 사주 진짜 좋은대요.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세요!!!

공쟝쟝 2019-02-12 20:47   좋아요 0 | URL
ㅋㅋ 저 이경미감독 영화 매우 좋아하거든요~~! 쿄쿄 ^^ 이경미월드를 살짝 엿볼 수 있는 재미난 책이엇어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