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87년의 승리를 말하지만, 어떤 사람은 91년의 처참한 패배를 기억한다.
그 패배의 상징적 인물 - 강기훈, 그리고 91년의 봄을 불러 온 다큐영화가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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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을 알고 있었다. 아주 잘은 아니더라도.
91년 박승희 열사의 죽음과 80년의 광주에서의 죽음들은 대학 신입생 시절 내 마음에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삶이 막 피어날 것 같던 스무살 5월에 만난 ‘추모’ 문화제들. 슬퍼하기에는 너무 활기찬 캠퍼스. 밤이면 술 돗자리가 펴지는 너른 잔디밭 한구석에 쳐진 천막과 영정사진들과, 꺼지지않게 하던 향과.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추모 행사는 매년 이어졌고, 지금도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 시간이 흘러 이젠 더 어색한 모습일테지만, 잊지 않으려하는 그 노력들은 참 귀했고 지금도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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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먼저 간 사람들, 죽은 자들의 삶을 대신해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그렇게 말했을 때, 부끄러웠다.
너무. 부끄러워져서 꽤 많이 울었다.
나 조금 못되처먹게 생각했었다. 오지랖 떨지 말자. 나 하나 죄 덜 짓고 살자. 누구 돕겠다고, 헌신이랍시고, 기꺼이도 못 바칠 거. 억울해하면서 가까이 있는 사람들 괴롭히지 말자. ‘내’ 삶을 살자. 그리고 기왕이면 ‘잘’살자. ‘나’한테 잘해주자.
자기애가 부족했던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 ‘나한테 잘해주자’라는 말은 유의미할지 몰라도, ‘죽은 자’들에 사로 잡혀있는 영화 속 증언자들을 앞에서는 그 생각들이 사라졌다. 불에 데인 것 처럼 속이 화끈 거렸다.
남 걱정 하지말고, 나 하나 잘 건사하자는 다짐이 부끄럽고 무섭게도 생각 되었다. 알고 있었으면서. 잘 알고 있었으면서. 누군가의 삶을 갈아서, 때로는 누군가의 죽음까지 다져 넣어서 그렇게 세상이 움직여왔다는 것을.
그런데도 마치 나 하나만 안전할 수 있다면, 보호할 수 있다면 일단 만족하자고 그렇게 합리화하고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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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스무살 무렵이다. 노동운동하시는 학회선배를 출범식 술자리에서 본적이 있다. 물어봤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게 되신거냐고. “알아서. 몰랐으면 몰랐지 알아버려서.”라고 돌아온 대답이 선명하였다.
20대의 난 때때로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웠지만, 그래도 모르는 척 하지는 않으려고 했다. 사실, 알 수록 나를 유지하기가 힘들었었다. 더 닳기 전에 나를 쓰려는 마음을 잠구자. 알면 가까이 하면 견디기 힘드니까 모르자, 멀어지자. 딱 거리두기 할 수 있을 만큼 더 알려하지 않은 채 선을 그었다. 선을 넘지 못하겠다. 누구나 열사가 될 수도 없는 것 처럼, 안다고 해서 무조건 전사가 될수도 없다고. 그렇게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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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 삶을 지금도 누군가는 살아가고 있다.
모를 수 있는 것도, 잊을 수 있다는 것도 권력이다. 알아버린, 잊을 수 없는, 자기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때론 이미 죽어버린 그들 앞에선.
죽은 사람들을 몫을 다 하겠다며, 자기 삶을 기꺼이 바치는 사람들에게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만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라는 걱정도 폭력이다.
내 사는 게 바빠 그걸 잠시 잊었다. 여전히 장례식 중인 사람들에게 사람처럼 살면 안되냐고 마음 속으로 때론 입밖으로 물었던 잘못들. 미안해서 정말 반성 돼서. 영화 끝나고 입을 열기 싫어질 정도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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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사는’ 그 사람들 덕에 우리는 가까스로 ‘자신으로’ 살 기회를 얻게 된 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남겨진 삶을 ‘대신’산다는 그분 들의 ‘삶 없음’을 연민하거나 걱정하지 않아야겠다. 다만 부끄러워 할 것. 미안해 할 것. 기억할 것. 고마워 할 것.
목숨을 바치거나, 삶을 바치거나 할 수는 없는
그저 부끄러워 할 밖인 나는,
적어도 고민은 멈추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어떻게해야 덜 못된 노인으로 늙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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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봄 #91년봄 #많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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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8-11-26 1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아서. 몰랐으면 몰랐지 알아버려서˝
그 말의 무게감을 감히 알 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미 그 세계를 봐 버려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쟝쟝 2018-11-25 21:34   좋아요 0 | URL
너무 무거운 대답이죠. 그 선배님 얼굴도 성함도 기억안나는 데, 그 단단한 대답은 너무 생생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