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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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장강명이 제안한 ‘독자들의 새로운 문예운동’이라도 하는 듯 비장한(!) 각오로다가 독후감을 쓴다. 어쩐지 힘이 들어간 글이라서 더 못 쓸 것 같긴 하지만... 오랜기간 암흑물질(?) 독자 인생을 접고 나름의 코멘트로 죽어버린 한국의 출판-문학 시장을 살리는 데 기여해야겠다!!!!!!!! (부릅!)

당선, 합격, 계급.
또! 장강명이다. (이쯤 되면 팬인 것 같다. 인정해야할 듯.) 10년 치 기자짬밥 뚝뚝 묻어난다. 아, 이런 르포도 쓸 수 있구나. 멋지다.

문학공모전에 관심 1도 없었던 데다가, 400쪽이 넘어가는 두꺼운 책이었는데도, 한 번의 지루함 없이 시원하게 읽어 내려갔다. 원래 르포라는 장르가 이렇게 흥미진진한가? 추리소설 같기도, 사회적 문제를 소재로 쓴 에세이 같기도 하다. 공모전과 공채 시스템, 혹은 간판이라는 것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계급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밝혀내고 있으며, 작가 나름의 해결책까지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공모전을 준비하는 개인들을 위한 팁까지. 속속들이 깔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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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지대는 인정 투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는 곳이 된다. 명확한 기준이 없으니 그 지대에 놓인 사람들로서는 그 기준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되도록 필사적으로 애쓴다. 어떤 기준을 적용해도 평판에 손해 볼 일이 없는 사람 (핵심에 있건 완전히 경계밖에 있건)만이 그런 논쟁에 무관심할 수 있다. (p.294)”

완전한 경계 밖. 책을 읽으면서 어떤 박탈감 같은 게 들었다. 여지껏 시스템에 들기 위한 간절한 노력들을 해본 적이 없다. 시험도 공모전도 공채도 도전해 본 적이 없다.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욕심이 없었다.

이미 그럴듯한 대학이라는 간판이 없으므로, 노력해도 제도권 안에 들기는 어렵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시험을 잘풀기 위한 공부는 하기 싫었고, 돈을 벌고 싶었지만 회사에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사회생활이 싫었다..) 노력해도 안되는 세상을 통째로 비웃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노오력은 커녕 노력조차 하지 않았구나 싶다. 닥치는 대로 알바를 하고 근근이 끼니를 때우지냈다. ‘남들 다 그렇게 살아’를 부정하는 것만으로도 기를 쓰고 살아야했다. 그렇게 외곬으로 제도의 바깥에서 씩씩대며 분투했지만, 세계는 견고했다.

서른이 되자 현실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하던 알바에 실력이 붙어서 개인사업자를 냈다. 월세, 건강보험료, 통신료, 세금들이 딸려온다. 1인분의 몫을 벌어먹고 살기 위해 하루를 빠듯하게 써도 최저 생활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어제는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면서 근로장려금 신청도 했다. 근로장려금은 일을 하고 있지만, 소득이 적은 일하는 사람에게 국가가 주는 지원금이다. 


“대체로 어떤 시험을 치고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그 신비로운 권위를 얻는다. 그 집단은 주류문단일 수도 있고, 명문대일 수도 있고, 대기업일 수도 있다. 시험에 합격해서 그 단체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만 한번 들어가고 나면 쉽게 퇴출되지 않는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그 단체 구성원이 되는 입시에 통과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일종의 자격증처럼 작동한다.
이 신비로운 권위를 ‘간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p.289)”


꼭 간판을 따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공채나 공모전에 도전하지 않아도, 영세 사업자인 나의 삶은 너무 바쁘고 책 한권을 읽기 위해 고독으로 침잠할 수 있는 겨를 조차 없다. 난 계급상승을 포기한 흙수저다. 한국사회가 인정투쟁을 하다가 탈락된 이 말고도 애초에 인정받을 생각이 없는 이들까지 ‘루저’라고 부른다는 것을 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지만 세속의 기준에서) 난 ‘루저’다.

공모전과 시험을 준비한 사람들만큼 절절하게 읽을 수는 없었다. 다만 나는 약간은 소외당하는 기분을 느끼면서 책을 읽었다. 간판을 욕망해본적도 없다는 사실이 어떤 도덕적 우월감을 가져다 주지는 않았다. 127만명의 청년들이 ‘9급 공무원’이라는 비생산적인 시험에 몰두하는 것은 분명 사회적 낭비이지만, 시험을 안봤다고 내 인생을 안낭비 한 건 아니라서.

경계지대는 인정투쟁이 치열하겠지만, 인정에 무관심하다고 해서 생계가 치열하지 않은 것도 아니니까. 하물며 간판이라는 신화를 쟁취한 이들-합격자들의 세계-라는 것은 몇 억 광년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런 내가 이상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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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자에게는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당위성을 줘야 먹혀요. 그 당위성을 위해 문학상이나 명사의 권위가 필요한 거고요. 학교에서 ‘꼭 읽어야할 책’같은 독서 목록을 받아왔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그런 식으로 책을 고르는 것 같아요.”
이건 독자들에게 장편소설 공모전이 좋았던 이유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읽어야할 책을 골라야하는 수고를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딱지가 대신해주었다는 얘기다. (p.49)”

르포 초반, 시기별로 내러티브를 가지고 전개되는 문단-한국문학의 흥망성쇠(혹은 명과암) 부분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아아, 이런 모습으로 한국소설이 흘러왔구나 눈에 그려졌다. 그리고 오랜기간 잊고 살았던 ‘퇴마록’과 ‘드래곤라자’ 이후로 끊겨버린 ‘식음을 전폐한 책읽기’가 그리워졌다... 갑자기 재밌는 장르문학 읽고 싶다.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 권위를 갖게 된 것은 상금이나 역사가 아닌 ‘독자가 문학작품을 고르는 데 게을러서’라는 식의 분석 일리 있다. 그러고 보니 딱히 문학작품을 즐겨 읽지 않지만 굳이 눈도장을 찍은 소설은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었다. (읽고 난 후, 박민규 소설 말고는 다 노잼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수년간 한국소설은 읽지 않았고, 요즘 들어 한권 두권 찾아보며 알게되었다. 한국문학이 재미없었던 게 아니라, 내가 나의 취향을 찾는 데 참 게을렀던 거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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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불이익은 누군가의 거대한 악의 없이도 발생한다. … 여기서 분명히 밝혀둔다. ‘누군가의 거대한 악의가 없어도 부조리가 발생할 수 있다’라는 말은, ‘현재 아무도 악의가 없다.’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과거에 어떤 시험을 합격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넘어선 우월의식을 틀림없이 품고 있다. 과거에 그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을 미자격자, 무면허자로 몰아 배제하려는 이들도 존재한다. 다만 그런 흉한 생각을 품은 자들이 싹 사라진다 해도 여전히 이런 구조에서 배제와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기리라는 이야기다.” (p.285-287)

거대한 악의가 없다는 의미에서 악의적인 이 시스템. 구조적 불의와 개인의 내면은 미묘하게 얽혀있다. 단단히 얽힌 매듭을 칼로 잘라내 버리듯, 사회를 뚝딱 개혁 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봄비가 촉촉하게 스며들어 언땅을 녹이고 새싹을 틔우 듯. 개인들의 작은 노력과 섬세한 제도개혁이 황폐한 한국의 계급사회에 스며들어야 할 것 이다. 장강명이 주문하는 정보의 확대도 좋은 방법이다.

현 체제를 일단 그대로 인정하고 시종일관 세밀하게 접근하는 저자에 비하면 나는 조금 더 급진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현실을 ‘지양’하기 위해서 저자만큼 현실을 가지고 치열하고 치밀하게 고민해 본 적 있는 가? 사실 없다. 고민이 세밀하지 못했기에 내는 결론들도 뭉툭하지 않았었나 반성한다. 조금 더 섬세해져야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 살아가고 있는 청년으로서 – 청년을 주요 소재로 소설을 쓰고, 또 청년들의 겪는 문제에 진지하게 르포까지 써낸 (중년의) 장강명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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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빠서 글쓰기는커녕 읽는데도 오래걸렸다. 2주 넘은거 아니겠지.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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