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 저문 밤이다. 연휴라서 여수에 다녀왔다. 6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난 뒤라 여독이 풀리지 않은 것 같은 몽롱한 하루를 보냈다. 엄마가 만든 누룽지, 엄마가 담근 된장, 엄마가 손질해 놓은 홍합과 멸치 등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서울에 왔다. 나는 서울에 왜 와있는 건지 모르겠다.

연휴 내내 엄마는 아프다고 했다. 연휴 내내 엄마 손을 주물렀다. 엄마 손가락 마디마디가 퉁퉁 부어있었다. 류마티스 관절염. 너무 너무 아파보였다. 손을 주무르다가 울었다. 이게 뭐냐고. 이 손이 뭐냐고. 엄마도 울었다.

어버이날이니까 하고 동생들이 노래를 불러드렸다. 나는 부르지 않았다.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엄마 손이 다 닳아있어서 부르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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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관절염 약을 타러 두달에 한 번씩 서울에 온다. 서울에 와서 딸들집에서 놀아도 될텐데 엄마는 자꾸 내려가겠다고 한다. 하루만 더 있다가! 말해도 자꾸 빨리 가봐야 한단다. 이유는 하나, 아빠 밥을 해줘야 하니까. 되먹지 못한 자매들은 입을 모아 아빠를 욕한다. 아빠가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시켜먹으라 해. 차려 먹으라 해. 페미니즘 공부를 하면서 더 극성스러워졌다. 그건 정말 아니야. 엄마, 파업해!

엄마가 씁슬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난 평생 너희 아빠 밥해주고 싶었다야. 인제사 할수 있게 됐는 데, 손이 이렇게 돼부렀다. 속이 상해분다.”
자매들은 모두 벙쪘다. 엄마를 고속터미널에 데려다 주고 울었다. 그러니까 그러네. 정작 엄마는 아빠 밥을 못해줬다.

엄마는 평생 밥을 차렸다. 매일매일 삼시 세끼. 할아버지 밥, 할머니 밥, 삼촌 밥도 차렸고, 우리 사남매 밥도 차렸다. 그건 엄마의 일이었다. 우리는 엄마의 밥을 먹고 자라났다. 아빠는 새벽에 일을 나가서 아주 늦은 밤에 들어오거나 들어오지 않는 날도 많았다. 한참 자랄 때, 아빠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아, 있다. 아빠는 새벽마다 비몽사몽깨어 속이 받지 않으니 누룽지를 먹고 나갔다. 아빠는 평생 열심히 일해서 밥을 벌어왔지만, 우리는 딱 밥만 먹고 살만큼 가난했다. 아빠는 그토록 밥을 벌어오면서 정작 사랑하는 부인의 밥을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

우리는 어느 덧 다 자라서 대학을 가고 여수를 떠났다. 내가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항상 앓고 있던 할아버지와 절대 밥을 하지 않았던 할머니는 병들고 나이들어 세상을 떠났다. 아빠는 이제 기운도 없고, 일도 없고, 열 명이라는 생계를 다 떠안지 않아도 되므로 주말은 쉬고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온다. 시간이 생겼다. 지긋지긋한 바깥 식사가 아니라 엄마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는 데, 아빠는 이제 이가 아프다. 물렁물렁한 것, 많이 씹을 필요가 없는 것만 먹을 수 있다. 엄마는 손목과 손가락이 아프다. 요리도 설거지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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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모는 성실했고, 세상의 도덕을 기꺼이 이행했고, 서로를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하는 것이 느껴진다..) 막 드라마 급은 아니더라도, 두분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런데 아름다운 이야기는 언제나 슬프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언제나 후순위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또한 언제나 뒤에 두어야 했던 부모님의 삶은 그들 자신이 없음으로 해서 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어느 덧 어른이 된 나는 나를 없애는 것이 사랑인 줄 알고 사랑할 때 마다 스스로를 없애보려고 했었다. 어느 날, 아무리 나를 줄여도 더 이상 내가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느낌이 왔다. 부모님에 비해 내 사랑의 크기가 부족했던 걸까. 아직도 그 해답은 찾지 못했다.

상처, 혹은 (잘못된)사랑의 실패를 경험한 나는 서른이 넘어서 ‘대체 나는 누구인가?’묻고, ‘자아’(따위)를 찾기 시작했는 데, 아마 이번 생에는 못찾을 것 같다. 부모님께 그것이 미안하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약속하는 것은 ‘적어도 슬프고 아름다운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엄마 아빤 본인들처럼 못나게 살지 말라고 하신다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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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가 엄마도 아프고 아빠도 늙어가는 데 너희들 중 누구라도 내려와서 지내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다. 사실 우리들 중 자신이 왜 여기있는 지 제일 모르는 사람은 나다. 그러니 내가 여수로 가는 게 맞는 건가 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다가 말았다. 여전히 나 자신 하나도 제대로 감당 못하고 있는 데, 눈에 안보이니까 덜 걱정하지 가까이 있으면 울화통이 치미실 거다, 분명.

나의 부모는 그렇게 손발이 닳아지도록 나를 사랑했는데, 이상하다. 왜 나는 나를 사랑하는 게 이토록 힘든 것이며, 그렇다고 그들의 손발이 되어드리는 사랑조차 못하겠는 건지.

사랑이 어렵다.
어려워서 자주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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