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본토에서는 부모의 자녀살해 후 자살사건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중국의) 유교 가부장제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뜨거운 혁명을 성공해보았느냐?

이 책은 너무너무 강추하고 싶어 게으름을 이겨내고 꼭 독후감을 쓰리라 다짐하고 있는 책이지만, 이 페이지만큼은 특별하여 박제해 둔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같이 죽는 것을 “동반자살”이라는 아름다운 용어로 포장하는 문화는 유교+가부장제+자본주의(핵가족화)가 융합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 일본, 대만, 홍콩에서는 나타나지만 중국에서는 거의 없다고. 왜? (사진으로 찍은 부분을 읽어보면 알 수있다) 아무튼 놀랍다.

유교모국 중국의 부모들이 자식을 독립적 인격으로 대하며 '소유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은 생각할 거리를 많아지게 한다. 혁명 혹은 사회주의적 제도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다. 같은 유교 윤리라도 사회적 안전망에 따라 작용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거지. 반면 한국은 사회가 감당해야할 몫 까지도 오로지 가족이 감당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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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신자유주의가 가장 심각하게 데미지를 입힌 것은 전라도도 노동계급도 아닌 “가족”이겠군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어렴풋한 IMF의 기억이지만, 그때 우리 가족도 참 힘들었다. 요즈음의 비혼도 페미니즘도 세대갈등도 뿌리는 그에서 기인하지 싶다. (나포함) 가장 친밀한 가족 관계에서 만들어진 상처라면, 그것을 바꾸는 것보다는 거부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인 거다. 하여 한국의 비정상적인 가족문화에 대한 심각한 분석과 비판없이, 왜 어른을 공경하지 않느냐, 왜 부모를 미워하느냐, 왜 결혼을 나쁘게만 보느냐 라고 묻는 것은 허망한 질책이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관계는 공포고 가족은 상처다. 

나는 상처와 함께 사랑받는 기억도 있다. 양가적인 감정이 공존하기 때문에 버릴수도 무턱대고 믿을 수 만도 없다. 생선가시 발라내듯 섬세하게 나와 가족을 사랑하고 가꾸는 방법을 찾을 수 밖에. 개인적 삶은 그렇게 꾸려야겠지만, 사회는 답을 마련해야 한다. 가족구성원들이 과도하게 헌신하며 감당해온 최소한의 안녕,안전을 사회가 담보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천천히 멸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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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은 독재를 걷어내고 민주화를 가져왔을지 모르겠지만 민주화 이후는 신자유주의이기도 했다.  
경쟁 생존 경쟁. 그러므로 우리에게 민주화는 아름답기만한 용어는 아니다.

87년과는 다른 중국의 49년과는 또 다른 모습의 혁명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것이 어떤 형태일까.
나는 피하지 않고 싶다. 우리는 우 리세대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당사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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