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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큰아이가 어렵게 세상 구경을 하고 남들보다 힘들게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는게 엄마인 나에게는 참으로 힘든 경험이었다. 그렇게 돌이 한참을 지나도 못 걷는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면서 일찍 태어나게 만든 내가 죄인 같아 마음이 쓰였다. 그래도 병원에서 아이에게 아무런 문제는 없으니 많이 연습시키고 엄마가 도와주라는 말씀에 한시름 놓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이 복잡한 시기에 병원 대기실에서 처음으로 접했던 선생님의 책이 <내 생애 단 한번>이었다. 기다리기 지루하고 조바심 나는 마음을 편하게 달래주었던 선생님의 글... 그리고 마저 보지 못한 뒷부분은 책을 구입해서 보겠노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이에게 마음쓰고 바쁜 삶에 치이다보니 잊고 살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이들 책을구입하기 위해 서점을 들락거리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보고 '아차!!!' 싶었다. 그리고 이 책이 선생님의 유작이 되었다는 소식은 더욱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병상에서도 마지막 원고를 고쳐가며 공을 들였다는 책을 읽는 동안 살아가는 한순간이 모두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애간장을 녹이던 큰아이가 태어난지 21개월만에 첫발을 내딛던 모습이 생각났다. 지금은 보통의 아이들과 똑같이 자라 학교생활도 너무 잘 하고 있는데 그때는 왜 그리도 안달이 났었는지... 아이가 일찍 태어난 것도 아이가 아픈것도 모두 내 탓 같아 '왜 나한테만 이런일이...'라며 살았었는데...  

선생님은 자신이 1급 신체장애인이고 암투병을 하고 있는 삶이 비참하지도 않고 나름대로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불편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 장영희, 문학 선생 장영희에 초점을 맞춘 인터뷰글에 기자가 붙인 제목 '신체장애로 천형 같은 삶을 극복하고 일어선 이 시대 희망의 상징 장영희 교수'를 보며 심히 불쾌했다고 말한다. 천형이라고 불리는 삶에서도 축복을 찾아내는 너그러운 마음이 부러웠다. 인간으로 태어남에 감사하고, 주위에 늘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일이 있는 것에 감사하고, 알아들을 줄 아는 머리와 아픔을 나누는 마음이 있는것에 감사한다는... 그리고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있어 책을 낼 수 있고 선생님 책에서 힘을 얻는다는 말이 축복이니 '천형'이 아닌 '천혜'의 삶이란다. 이런 선생님의 글을 이젠 남겨진 책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선생님의 글은 꾸밈이 없고 소박하다. 영문학자 대학교수라는 타이틀의 묵직함 보다는 옆집 사는 언니가 살아온 얘기를 해주는 듯 하여 편안하다. 하지만 편안한 글 속에 녹녹하지만은 않았던 선생님의 삶에서 희망이라는 것을 배운다. 유학 막바지에 심사만 남겨놓은 논문을 잃어버리고도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기껏해야 논문인데 뭐. 그래, 살아 있잖아...... 논몬 따위쯤이야.' 선생님은 그것을 예고 없는 순간에 절망이 왔듯이 예고 없이 찾아와 속삭여 주는 희망의 목소리라고 말한다.  

선생님의 글 하나하나가 재미나고 따뜻하고 슬프기도 해서 웃다가 울다가 하며 책장을 넘겼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재능이라고 얘기하는 모습... 게을러서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모습... 중국산 부세를 굴비라고 속아서 사오는 모습... 자살을 예고하는 제자를 지켜주지 못해 안타까워 하는 모습... 그 중에서 어느 제자에게 했던 얘기가 제일 마음에 남는다. 똑똑했던 제자가 사랑에 실패하고 딸아이와 의연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가슴이 아파하며 했던 얘기... 그 얘기는 얼마전 내가 속상한 일이 있을때 누군가 나에게 힘내라며 해주었던 얘기와 같았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메고 다니는 운명자루가 있고, 그 속에는 저마다 각기 똑같은 수의 검은 돌과 흰 돌이 들어 있다더구나. 검은 돌은 불운, 흰 돌은 행운을 상징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이 돌들을 하나씩 꺼내는 과정이란다. 그래서 삶은 어떤 때는 예기치 못한 불운에 좌절하여 넘어지고, 또 어떤 때는 크든 작든 행운을 맞이하여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는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아마 너는 네 운명자루에서 검을 돌을 몇 개 먼저 꺼낸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남보다 더 큰 네 몫의 행복이 분명히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p.115-  

선생님은 자신이 신체장애와 암을 극복한 사람으로 기억되기 보다는 좋은 글을 남겨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사람으로 남기를 원하실 것이다. 나 또한 그녀를 편안한 모습으로 삶에 대해 얘기해주던 옆집 언니로 기억하고싶다. 그리고 책을 마무리하며 했던 얘기를 가슴에 담고 싶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걸으며 살 것이다. -p.232- 

지금 여러가지 일이 꼬여 마음이 복잡하고 삶의 고비(?)를 힘들게 넘기고 있을 친정 오빠에게 이 책을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내 생애 단 한번>도 구입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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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07-02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리뷰에 비하니 너무 멋져요.^^

같은하늘 2009-07-02 17:36   좋아요 0 | URL
과찬이십니다...
전 솜씨가 없어서 그림책 리뷰만 올리는 사람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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