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몬스터
이두온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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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몬스터 - 이두온 (창비, 2023)


이야기에 몰입시키는 재주가 뛰어난 이두온 작가답게, 첫 60페이지부터 많은 에피소드가 지나간다.

- 허인회는 젊은 수영 강사에게 자신의 남편이 바람을 핀다고 말한다.
- 엄지민은 불치병에 걸린 후 실종된 엄마 염보라를 찾기 위해 수영장에 등록하지만, 염보라의 행방은 묘연하다.
- 염지민은 염보라의 불륜남인 오진홍의 아내, 허인회와 마주친다.
- 허인회는 수영강사에게 줄 ‘떡값‘을 강제로 받아내기 위해 회원들의 집을 찾아다니다, 과거에 자신이 납치했던 염지민을 마주친다.


사건뿐이랴, 소설의 3요소 중 다른 두 개인 인물과 배경도 뭔가 일그러져 있다. 소설의 주인공격이자 뭔기 기괴한 사랑을 보여주는 허인회. 친절해보이지만 뒤에 꿍꿍이를 숨겨둔 것 같은 조우경. 바람을 피우던 염보라가 암에 걸렸다니 바로 내팽개친 오진홍. 수영장을 가득 매운 회원들. 엄마를 찾아다니는 엄지민도 처음에는 이상한 낌새를 풀풀 풍기더니, 나사 하나 빠진듯한 사람이 너무 많으니 개중 가장 정상인으로 보일 정도다. 게다가 수영장에 미혼반을 만들어서 회원을 유치하려는 연오시도 제정신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게 뒤틀린 세상이다.


제목 그대로 사랑에 미친 괴물들의 혼란한 이야기다. 이 와중에도 긴장감은 엄청나서 한자리에서 페이지를 스르르륵 넘길 수 있다. 중간중간 이게 필요한 에피소드인가, 이 떡밥은 풀리지 않았는데, 이야기가 너무 나가는 건 아닌가 싶지만, 바로 그런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이 소설의 정수다. 현실을 바탕으로 쓰이는 소설은, 현실과 마찬가지로 100% 명확하지 않아도 된다. 너무 잘 짜인 이야기라면 오히려 거부감이 든다. 작가도 모르는 소설 속 숨겨진 부분을 독자가 상상함으로써 소설이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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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지만 매일 씁니다 - 사소하지만 꾸준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귀찮 지음 / 아멜리에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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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툰을 그리시는 ‘귀찮’ 작가님의 책입니다. 원래 알던 작가님은 아니었고, 출판사에서 책 서평단을 모집하는 글을 보고는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작가님 계정을 바로 팔로우를 하고 몇몇 게시물을 봤는데, 그림도 글도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둥글둥글한 캐릭터와 정감 있는 문장들로 채워진, 적당히 서정적이고 적당히 현실적인 글들. 서평단에는 뽑히지 못했지만, 전자책을  주문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 표지에 쓰인 365라는 숫자와 ‘매일’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이 책은 작가가 1년 동안 쓰고 그린 그림일기입니다. ‘사소하지만 꾸준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라는 부제답게, 소소하고 지난한 일상이 담겨 있죠. 작가는 억지로 무게를 잡지 않고, 간단한 일상부터 작가와 인간으로서의 고민을 그려냅니다.

집 정원에서 키운 야채를 뽑아서 동생과 같이 먹고(놀랍게도 작가님은 문경에 사신답니다), 코로나에 걸려서 편찮으신 옆집 할아버지를 걱정하고, 매일 그리고 쓰는 일에 진력을 내다가도 그래도 어떻게든 해내고, 뭘 잘하면 신나하고 못하면 우울해하고… 여러가지 에피소드에 드러나는 작가의 솔직한 감정을 읽다보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납니다. 흐뭇하고, 그래요. 그 안에 담긴 따뜻한 정서에 맞아 맞아, 고개를 주억거리며 엄청 공감했죠.

매일 핸드폰 어플을 이용해 짧게나마 일기를 씁니다만, 작가님 덕분에 오랜만에 노트를 꺼내서 연필로 오늘 하루 생각을 적었습니다. 제 글씨는 여전히 엉망이고 내용도 그다지 특별하지 않지만, 하루에 하나씩 작은 생각을 모아가면 나 자신을 알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귀찮' 작가님의 <귀찮지만 매일 씁니다>는 하루하루의 소소하고 따뜻한 순간들을 글과 그림으로 담아내어 보여주는 책입니다. 작가의 감정이 담긴 짧은 글과 귀여운 그림들은 작은 위로와 공감을 선사합니다. 하루하루를 의미 있는 순간들로 채워가려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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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 수 없는 미래 - 황폐한 풍요의 시대,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방식을 모색하다
마이클 해리스 지음, 김하늘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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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저자가 밴쿠버의 쓰레기 매립지를 둘러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매립지에는 우리가 사용했던 물건, 망가진 물품, 잃어버려서 아쉬움을 남긴 소지품들, 미련 없이 떠나보낸 물건이 산처럼 쌓여 있다. 넓은 공간에 이런 쓰레기 산이 여러 개 드러나 있다. 쓰레기 매립지는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소비문화를 유지하는 데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물건을 잃으면서 우리 자신을 잃는 기분을 느낀다면 그 반대도 성립한다. 새로운 물건을 사면 새로이 회복되었다는 기분이 든다. 구매는 자기를 완성해주고 자기 가치를 확인해주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그리는 자화상에서 각각의 구매는 한 번의 붓질과 같다. _72쪽


<우리가 살 수 없는 미래>는 사회 문제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잘 알려진 마이클 해리스의 에세이다. 저자는 인류의 소비 패턴이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이미 지구의 수용 능력을 초과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도파민 과다의 시대에, 우리는 실제로 물건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이 너무나 강력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단순히 주장만을 내세우지 않는다. 자신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부터 시작해 그리스 철학, 현대인의 소비 패턴, 도파민에 대한 신경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켜켜이 쌓음으로써 주장의 층위가 한껏 깊어진다.


이런 소비주의적 사고 방식에 대한 대안은 어떻게 될까? 이 부분에서 저자는 개인이 직접 제품을 생산하고, 자연의 숭고함을 즐기고, 타인을 배려함으로써 소비주의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완벽한 해법이 아닐지라도, 각 개인이 세상을 살아가는 즐거움을 늘림으로써 소비로 인한 행복에서 벗어나자는 제안이다.


수제는 인간이 수천 년간 살아남은 방법이다. 숭고함은 소비문화가 부상하기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빚어냈다. 돌봄은 아마 인간의 가장 중요한 생존전략일 것이다. 없어도 된다고 여겨지는 이런 이야기들은 사실 인간 삶의 토대를 이루는 요소다. _242쪽


환경 문제를 우려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행복이라는 것이 소유물이 아닌,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경험과 인간관계를 통해 찾을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심도 있게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이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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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출판사 이벤트로 가제본 책을 받았다. 공전의 베스트셀러였던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저자, 김지혜 작가의 신작이다. 전작이 우리 생활에 만연한, 자신도 모르게 생각하고 말하는 차별을 지적했다면, 이번 작품은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책은 “가족은 견고한 각본 같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줄 알았던 삶이 알고 보니 트루먼 쇼에 살고 있었다고? 물론 아니다. 우리는 평상시 그것을 못 느낀다. 잠에서 깨어 회사에 출근하고,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여 집에서 쉰다. 주말이면 밀린 잠을 보충한다. 이런 일상에서 각본은 끼어들지 않는다. 각본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가장 안전하게 생각하는 가족 관계 안에서 드러난다.


나는 나인데, 순간순간 부모님이 원하는 아들로서 살아간다. 결혼을 하면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 아이를 낳으면 부모로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된다. 물론 나는 이런 견고하게 묶인 가족의 담장 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낸다. 이런 현실은 자연스럽다.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있다. 동성애자 커플, 미혼모, 혼외자 같은 이들이다. 저자는 사회 제도가 보호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이 비정상이라며 밀어내는 사람들을 말한다.


책은 성소수자 문제가 만들어낸 균열을 따라 한국의 가족제도를 추적한다. 저자는 첫 장에서 동성애 허용 법안에 반대하는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구호에서, 가족 각본에서 며느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저자의 결론은 흥미롭다. 며느리가 남자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며느리가 반드시 여자여야 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동성애 커플의 이야기에서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지적하는 데까지, 저자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전복한다.


2017년에 출간된 <이상한 정상가족>과 결을 같이하는 책이다. <이상한 정상가족>은 아동의 인권을, <가족 각본>은 동성애 커플을 중심으로 시작한다. 과정은 다르나, 두 책 모두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가 만든 문제점을 고발하며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어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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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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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의 유령 - 다카노 가즈아키(황금가지, 202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다카노 카즈아키 작가의 <13계단>, <제노사이드>로부터 11년만에 나온 신작 <건널목의 유령>. <13계단>은 법률 시스템을 헛점을 고발하며 사회파 스릴러 소설의 걸작 반열에 올랐습니다. <제노사이드>는 전세계를 무대로 엄청난 스테일의 이야기를 펼치며, 페이지 터너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명작이고요. 국내에 발간된 작가의 모든 소설을 재밌게 읽은 저로서는 이번 신작 <건널목의 유령>은 쌍수 들고 환영한 책입니다.

 

주인공인 기자 마쓰다 노구치는 아내와 사별한 뒤 전국 일간지에서 여성지로 직장을 이동합니다. 하지만 그는 여성지의 취재환경과 문체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그는 여름이 시작되자 심령현상에 대한 기사를 쓰게 됩니다. 제보는 대부분 사람들의 착각이었지만, 시모키타자와역에서의 제보는 취재를 할수록 진짜 유령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죠. 마쓰다는 이곳에서 1년 전에 인명사고가 발생했고, 희생자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여성이었던 사실을 알아냅니다. 마쓰다와 동료들은 이 여성의 정체를 밝히려고 노력하면서 그 뒤에 감춰진 사건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소설은 엄청난 이야기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350쪽의 꽤 두꺼운 분량이지만, 단 이틀만에 모두 읽었습니다. 점심시간에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는 걸 잊을 정도로 몰입감 있었죠. 문장 구성이 복잡하지 않고 가독성도 높아서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일직선으로 쭉 나아가기 때문에 집중이 아주 잘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범인의 정체와 그들이 왜 그 행동을 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주요 관심사는 아닙니다. 결말을 보면 알겠지만, 이 소설은 끝까지 독자를 찝찝하게 만든답니다. 악인을 처단하거나,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어 승리의 감정을 뿜어내는 시원한 결말은 아닙니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악인은 결국 처단됐지만 그것은 마쓰다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에필로그에 들어가기 전의 마쓰다도, 독자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마쓰다와 동료들은 범인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정체와 사연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화류계에서 일했던 사실로 인해 그녀의 권리와 존엄이 잊혀지는 상황에, 마쓰다는 이러한 불공평한 사회에 항거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실패로 끝날지라도, 이러한 시도 또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는 결말부와 에필로그가 오히려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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