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모닝 미라클 모닝
할 엘로드 지음, 김현수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미라클 모닝, 할 엘로드, 한빛비즈, 2016

0. 허허. 이런 책을 빌릴 줄이야. 새벽 두 시가 돼야 잠에 드는 철저히 야생형 인간인 내가, 아침형 인간에 대한 책을 보다니 개과천선을 뛰어넘어 천지개벽 수준이다.

1. 저자는 스무 살에 대형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해서 걷지 못하는 수준, 아니 생명을 겨우 이어갈 정도로 큰 상해를 입었다.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의사의 선고에도 꾸준히 노력해서 재기한다. 그뒤 영업직으로 일하며 개인 최고 실적, 팀 판매 실적 1위를 달성하며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이어간다. 성공적인 삶은 2007년 세계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무너진다. 명성도 돈도 모두 잃는다. 친구에게 자신의 좋지 않은 상황을 털어놓았다가 이런 말을 듣는다.

>친구 : 운동은 하고 있니?
>나 : 아침에 침대에서도 겨우 일어나. 근데 운동을 하겠니?

3. 달리기를 시작하라는 친구의 조언에 한걸음씩 내딛는 날이 이어지면서 저자는 깨달음을 얻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때 고안한 게 ‘미라클 모닝’이다. 이름을 붙인 이유는 간단하다. 저자가 아침에 실행했던 간단한 일이 마치 기적같이 자신의 삶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4. 보통 아침에 느끼는 감정은 ‘귀찮음’, ‘바쁜’, ‘정신없는’, ‘게으른’, ‘늦은’ 등등이 있다. 허둥지둥대는 아침을 보내고 서둘러 집을 나서면서 머릿속은 그날 해야 할 일로 잔뜩 헝크러져 부산해진다. 아침과 하루가 망가지는 소리가 들린다.
5. <원칙있는 삶>의 저자 스티브 파브리나는 잠에서 깨어나 맞는 첫 한 시간은 하루의 방향키라고 말한다. 저자도 이에 동의하며 아침을 최대한 충만하게 보내면 하루가 차분해지고 활기가 넘친다고 말한다. 아침에 자기계발을 하면 하루 종일 쌓이는 피곤함과 시간 부족 같은 핑계를 대기도 힘들기에 낮이나 저녁의 자기계발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6.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행동으로 저자가 권하는 것은 크게 여섯 가지. 천천히 호흡하며 명상하기, 큰 소리로 스스로에게 다짐하기, 자신의 꿈을 상상하기, 운동하기, 책 읽기, 그리고 기록하기이다. 단 1분씩이라도 여섯 가지 일을 하면 아침의 단 6분만으로 하루가 바뀐다고 한다. 또한 미라클 모닝은 철저히 개인 맞춤형이기 때문에 독자가 하고 싶은 행동을 원하는 때에 하면 된다.
7. 아침형 인간을 다룬 여타 자기계발서와 크게 다른 면모는 없는 책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찾는 이유는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기 때문이리라. 아침 6분이면 당신의 하루가 바뀌고 일주일이 바뀌고 결국 삶이 바뀐다니. 저자가 소개한 것들도 어려운 일이 없다. 알람이 울려도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만 누워 있고 싶고 적극적으로 하루를 준비하겠다는 건 말뿐이라는, 의식 저편 부정의 메시지를 지워버리자. 하루 6분만 투자해 아주 간단하고 혁명적인 여섯 개의 작은 습관을 준비해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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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큰 다짐을 하고 자기계발서를 잔뜩 사는 바람에 집에 읽을 게 넘쳤다. 갈 때마다 다섯 권씩 빌렸던 도서관 나들이였지만 저번주에는 서평 수업에 필요한 책과 꾸준히 읽는 시리즈물, 단 두 권만 손에 들고 나왔다. 불과 며칠 전에 집에 쌓인 책과 앞으로 살 책을 주로 읽겠다 했지만 알라딘에서 배달온 다섯 권 중 눈에 눈에 들어온 건 두 권밖에 없다. 게다가 연말에 다섯 권을 사기 전에 이미 강남 교보문고에서 네 권을 들고 왔다. 사놓고 안 읽은 책이 벌써 열 권 가까이 쌓인 셈이다. 물론, 예전에 사둔 책까지 합하면 200권이 훌쩍 넘어가지만.


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서평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시리즈물은 읽기에 탄력이 떨어졌다. 즐길 책이 집에 많음에도 불구,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번뜩, 퇴근하고 도서관에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틈틈이 읽을 책도 한 권 더 꺼내들었다. 폭이 좁은 크로스백이 책 세 권으로 빵빵해졌다. 그러던 중 예약도서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오늘은 운명의 날이야. 도서관에 가기로 마음을 먹자 예약도서가 오다니. 오오.


도서관에 도착해 먼저 예약도서를 빌렸다. 요새 공부에 관한 책을 읽어 머리가 조금 복잡해서 미리 생각해둔 가벼운 소설도 한 권 꺼내들었다.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 두 시간 남짓 남았다. 그럼 짤막하게 읽을 책이나 찾아볼까- 하고 서가를 둘러본 게 실수였다.


가장 좋아하는 서가인 책, 독서에 관한 책이 잔뜩 꽂힌 곳에 서서 한참을 둘러봤다. 딱히 끌리는 책이 없어 이번에는 글쓰기를 다룬 책은 어디인지 찾았다. 줄리아 카메론의 책을 발견해 잠시 펴서 모닝 페이지에 대한 글 꼭지를 읽었다. 딱히 매혹적이지 않아 서가에 다시 꼽아두고 건너편으로 갔더니 거기는 만화 서가. 소년만화 종류는 아니고 일반서적 형태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책이었다. 일상을 세 컷으로 그린 <사금일기>라는 제목이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웹툰 ‘도자기’의 호연 작가의 책이다. 반 정도 읽다가 바로 뒷서가를 보니 이번에는 사진 책이 잔뜩 있다. 이론서부터 작품집, 사진에세이까지 책 종류가 다양하다. 유명한 사진집 <윤미네집>을 한참 들여다봤다.


열 시가 10분이 채 남지 않았을 때, 네 권의 책을 손에 들었다.




사진에서 가운데 네 권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이젠, 함께 읽기다>는 한 달 전에 빌린 책인데 읽지 못해 다시 빌렸다. 혼자 하는 독서가 시야를 좁게 만든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미라클 모닝>가 예약도서이다. 자기계발을 다짐하며 아침형 인간이 되겠다고 다짐했는데 실천은 전혀 하지 않고 관련된 책만 계속 읽는다. 앞뒤가 안 맞는 듯한 느낌. <반지의 제왕 2>는 이전에 읽은 1권에 이어 오랜만에 모신 책. 조승연 작가가 <반지의 제왕>을 언어학적으로 찬양해서 다시 바람이 들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드디어 손에 들어온 책이다. 매번 대출 중이어서 읽지 못했는데 오늘은 무슨 운이 틔였는지 서가에 있었다. 전자책으로도 산 책인데 역시 책은 종이책이지.


왼편 두 권은 지금 손에 든 책이다. <위대한 멈춤>은 하루에 3, 40쪽씩 읽는다. 처음 읽을 때보다 울림이 덜하지만 끝까지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편의점 인간>은 출간되자마자 사놓고 침대에 내팽긴 채 먼지만 쌓이고 있었다. 독서 기록을 보니 문학이 하나도 없어서 얇고 말랑말랑한 책을 고르다보니 이 책을 꺼내들게 되었다.


오른편 두 권은 어제 내게 온 책이다.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를 읽다가 느낌이 와서 샀다.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의 저자 윤성근 씨는 헌책방(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한다. 자신이 읽은 책만 팔기 때문에 많은 책을 빠르게 읽어야 했고 자신만의 속독법을 개발해 사용한다. 그러면서 슬로리딩을 말하는 책인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도 추천했다. 대학교 때 읽을까 고민했던 책인데 묘한 인연이다. <서평 쓰는 법>은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루고 유유 출판사의 신간이어서 샀다. 유유의 최신간 <소설의 첫 문장>은 이미 장바구니에 넣었다. 이 출판사는 초기작 <열린 인문학 강의>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이렇게까지 성장했다. 참 뿌듯(?)하다.


장 지글러의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를 방에 두고 나왔다. 읽고 다음 주 토요일까지 서평을 써야 한다. 첫 서평 첨삭 기회를 놓쳤기에 이번에는 이 악물고 읽고 써야 하는데, 읽을 책을 이렇게 마련해두고 시간이 없다고 징징대니, 큰일이다. 내일부터 당장 읽기 시작해야겠다.



12월 말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을 정리하니 제대로 된 책이 없다. 나쁜 책이라는 말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읽자던 고전문학도, 인문학 서적도, 역사서도, 과학서도, 한 권도 없다. 시간 때우기용 소설, 책은 읽지도 않으면서 책을 다루는 책,  공부는 안하면서 뻔질나게 읽는 자기계발서, 크게 건질 것 없었던 에세이. 짧은 기간이지만 연초에 했던 다짐과 그새 멀어졌다. 앞에 수북이 쌓인 책을 보고 마음을 다시 다잡는다. 겨우 내린 결정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지 않게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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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새해가 일주일이 지나갔다. 2017이라는 숫자가 꽤나 어색했는데 지금은 익숙하다. 짧게나마 매일 뭔가를 기록해서인지 하루하루를 잊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작년 말과 이번달 초에 생각했던 책 읽기, 일기 쓰기는 꾸준히 하고 있다. 나쁘지 않다. 물론 서너번은 그날 하지 못해 다음 날 기록하는 식으로 꼼수를 부리지만, 어쨌든.



여행 도중 혼자 지내면서 책 읽기를 즐겼지만 가끔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고, 그럴 때면 신기하게도 놀라운 인연이 어디선가 나타나곤 했다. 당시 나의 내면에는 타인의 접근을 쉽게 만드는 개방적인 측면과 어딘지 모르게 연약한 구석이 있었고, 이 때문에 과거 경험하지 못한 방식과 차원으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이는 믿은과 인내심을 가지고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에 나를 맡겨보는 실험이기도 했다. 서두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다음 단계를 기다리고, 호기가 오면 붙잡는 그런 실험이었다.
- 위대한 멈춤 158, 159쪽. 2부 3장. 여행. 조지프 자보르스키의 책에서.

올해 겨울 휴가로 설연휴를 택했다. 4일의 연차 사용과 대체휴일까지 겹쳐 환상적인 9일 휴가를 다녀오게 되었다(팀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길게 쉬면 다른 친구들은 해외를 다녀오던데, 이번에는 작년 추석에도 뵙지 못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설에는 자중하려고 한다.
설 연휴 앞 5일(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을 내리 쉬면 어디를 갈까 응당 고민해야 하지만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머리가 베베 꼬이던 시기였다. 설비 업무를 한 달 정도 하면서 이제 좀 적응한다 싶으니 바로 다음 달에 공정 근무를 하라고 하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못하는 나로서는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가 극한까지 치달았다. 부서를 옮기고 설비 근무를 볼 때도 회사를 떠나고 싶었지만 12월 말은 말 그대로 죽고 싶었다. 아무 의미없이 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때에 휴가를 생각하니 오히려 막막했다. 한참 고민하다가 어디 쳐박혀서 며칠 동안 마음대로 지내는 건 어떻냐고 자문했다. 조용한 곳에 가서 혼자 지내며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잔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읽고 싶을 때 읽는다. 아무 계획 없이, 아무 일행 없이, 오롯이 나만 방에 앉아 스스로 침잠하기.
생각만 해도 좋았다. 앞으로의 시간에서 아무런 돌파구도 실마리도 찾지 못할 때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지내는 시간은 얼마나 기쁠지 상상했다. 전국의 북스테이를 찾다가 결국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종일 책에 파묻힐 수 있는 파주 지혜의숲 위의 지지향을 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고 정신도 조금은 말짱해졌다. 완전히 혼자 지내자고 했던 휴가도 여자친구와 다녀올 예정이다. 같이 가는 대신, 절반은 함께 절반은 혼자 지낸다고 선언했다. 처음 침잠을 선택한 것을 긍정해준 그이기에 이번에도 흔쾌히 승락했다.
조지프 자보르스키의 구절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떠나 혼자 지내면 무슨 의미일까.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는 생활이 반복된다면, 아니,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겠지. 밖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 공간에 나와 책만 있다. 서로 얘기하고 놀고 때로는 윽박지르며, 그냥 있는다. 내 안으로 파고들어 다른 나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허나 밖을 걸어다니며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분명이 큰 의미이다. 구글맵에 의존하지 않고 되는대로 걷는다. 때론 길을 잃고 해매다가 멀리 걸어오는 타지인에게 물어물어 다시 아는 곳으로 돌아온다. 모르는 사람, 모르는 길, 모르는 광경.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상황들이 덮쳐오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여행의 맛이다. 그대로 우리 인생의 예견이기도 하다. 30년 동안 함께 살아온 ‘나의 시간‘이지만 당장 1분 앞만 봐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발걸음이 향하는대로 다니면서 공기와 바람과 풍경과 사람과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긴다. 나를 조금씩 깨닫고, 그렇기에 다른 이가 궁금해지고 그들에게 한발짝이라도 다가갈 수 있는 시간. 멀찌감치 떨어져 타인을 바라보는 시간. 남을 보면서 동시에 나를 알아가는 시간. 그런 시간들이었으면,
좋겠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전보다 조금 더 걷고 싶다. 멋있고 예쁜 광경을 찾으려 애쓰며 주위를 둘러보며 걷지 않고, 그냥 발바닥이 땅에 닿는 그 느낌을 느끼며, 조금 더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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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수요일에 도서관을 못 갈 것 같아서 아예 오늘 가기로 했다. 다섯 권을 모두 반납하고 오늘 빌리려 했던 책을 검색한다. 온라인 서평 수업에서 첫 책으로 쓰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전부터 빌리고 싶었던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퇴사학교 글쓰기 수업에 들고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인 김무곤 선생의 <종이책 읽기를 권함>, 총 세 권. 하지만 퇴사학교 글쓰기 수업 신청을 못하는 바람에 마지막 책은 다시 서가에 꽂아두었다. 페미니스트는 100쪽이 되지 않아 그냥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상당히 좋은 책이었다. 다만 책으로 읽기보다는 그냥 테드 강의를 보는 게 좋았을 성싶다. 책과 강의의 깊이, 넒이가 그리 차이나지 않는 듯하다.
아주 쉬운 책이다. 어려운 글 하나 없고 성내는 말 하나 없다. 왜 페미니즘이 필요한지에 대해 조곤조곤 말할 뿐이다. 옮긴이 말마따나 누구를 비난하기보다 모두를 초대하여, 앞으로 이렇게 해보자고 말한다. 책 자체가 워낙 짧을뿐더러 모두 갈무리해도 좋을 책이라 짧게 발췌문만 남긴다.


내가 열네살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우리는 오콜로마의 집에서 무언가에 대해 언쟁하고 있었습니다. 둘 다 책에서 배운 설익은 지식으로 가득 차 있던 때였지요. 논쟁이ㅡ 주제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한참 주장하고 또 주장했더니 오콜로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던 것은 똑똑히 기억납니다. ˝있잖아, 너 꼭 페미니스트 같아.˝
그것은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말투에서 알 수 있었지요. ˝너 꼭 테러 지지자 같아˝라고 말하는 듯한 어조였거든요. (11, 12쪽)

(선략/다른 사람들이 페미니스트에 대해 안 좋은 의견을 말하면 저자가 유쾌하게 반박하고서) 물론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농담이었지만, 이것만 보아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함의가 깔려 있는가, 그것도 부정적인 함의가 깔려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싫어하고, 브래지어도 싫어하고, 아프리카 문화를 싫어하고, 늘 여자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화장을 하지 않고, 면도도 하지 않고, 늘 화가 나 있고, 유머감각이 없고, 심지어 데오도란트도 안 쓴다는 거지요. (14쪽)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목격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아이만 계속해서 반장이 되면, 결국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라도 반장이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럼다˝고 여기게 됩니다.(16쪽)

(선략/남동생 루이스는 지금 시대에 여성인권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이후 둘이 시내에 차를 몰고 나갔다가 한 남자가 주차 공간을 찾아준다) 남자의 유달리 연극적인 몸짓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떠나면서 남자에게 팁을 주기로 했습니다. 나는 가방을 열고 손을 넣어 동늘 꺼낸 뒤 남자에게 건넸습니다. 남자는 내가 건넨 돈을 기쁘고 고맙게 받은 뒤 루이스를 향해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루이스는 놀라서 나를 보며 말했습니다. ˝왜 나한테 고맙다는 거지? 내가 돈을 준 것도 아닌데.˝ 그러더니 루이스의 얼굴에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남자는 내가 가진 돈은 무엇이든지 결국에는 루이스에게서 나왔으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루이스가 남자이니까요. (19쪽)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수치심을 가르칩니다. 다리를 오므리렴. 몸을 가리렴.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여자로 태어난 것부터가 무슨 죄를 지은 것인 양 느끼게끔 만듭니다. 그런 여자아이들이 자라면, 자신에게 욕구가 있다는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하는 여성이 됩니다. 스스로를 침묵시키는 여성이 됩니다. 가식을 예술로 승화시킨 여성이 됩니다. (37쪽)

젠더는 대화하기 쉬운 주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주제를 불편하게 여기고, 심지어는 짜증스럽게 여깁니다. 남자도 여자도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리며, 혹은 젠더 문제를 성급히 부정해버리려고 합니다. 현 상태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란 늘 불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안되나요?˝ 왜 안 되느냐 하면, 껏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ㄴ다. 이 문제가 그냥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문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남자들은 페미니즘이란 개념에 위협을 느낍니다. 내 생각에 그런 반응응 남자아이들이 자라면서 받았던 교욱, 즉 그들은 남자니까 ˝당연히˝ 우위를 차지해야 하며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그들의 자존감이 훼손될 거라는 가르침이 야기한 불안감 탓입니다. (43, 44쪽)

남다든 여자든, 맞아, 오늘날의 젠더에는 무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롲바아야 해, 우리는 더 잘해야 해, 하고 말하는 사람이라고요. 여자든 ㄴ마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52쪽)

(옮긴이의 말에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왜 오늘날 새삼스레 페미니스트 선언이 필요한지를 말하는 책이다. 더구나 그 선언을 더없이 다정하고 유쾌하게 말한다. 누구를 비난하기보다 모두를 초대하여, 앞으로 이렇게 해보자고 말한다. 어느 나라, 어느 문화, 어느 연령의 사람에게든 일말의 껄끄러운 마음 없이 선뜻 건넬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어느 성의 사람에게든. (91,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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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am 새벽에 일어나서 잠시 수다 떨다가 여섯 시부터 책을 읽었다. 생각보다 정신이 말똥말똥하고 집중이 된다. 뒤 30분 동안은 무라마키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하루키보다 훨씬 유쾌하다. 하긴 읽었던 하루키의 책이 고작 소설 세 권이었으니. 잡문집은 말그대로 잡문이어서 정말 별로였는데 이번 에세이집은 너무 마음에 든다. 역시 에세이스트로서 칭찬이 자자한 하루키답다. 출근 때문에 책을 덮었지만 일만 아니면 한번에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밌고 매력적이다.
서평쓰기 수업 때문에 억지로 편 책인데 내게는 의외의 행운이다. 그런데 이거 서평을 어떻게 쓰지. 애초에 서평은 커녕 간단한 독후감밖에 쓰지 못하는 나로서는 영...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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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05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후감이나 서평이나 둘 다 똑같습니다. ^^

양손잡이 2017-01-05 18:40   좋아요 0 | URL
느낌이 뭔가 달라서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