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iReaditNow 앱으로 종이책을 모두 정리했다. 책이 꽤나 많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는 적다.

좋은 책 읽기가 항상 목표지만 그럴 심적여유가 없어 손이 가는대로 읽기로 했다. 400권 가량 되는 놈들을 쭉 훑어보다가 쀨이 딱- 꽂히는 그런 책.

어제 고른 책은 이탈로 칼비노다. 이탈리아 작가로서 환상소설, 우화로 유명하다. 대표작은 남작 3부작이며 민음사에서 이탈로 칼비노 전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레 미제라블, 안나 카레니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얼음과 불의 노래- 읽고 싶은 책은 많았으나 당분간 긴 분량의 소설은 못 읽겠다. 10권 분량의 은하영웅전설이 발목을 잡고 있다. 처음엔 재밌었으나 갈수록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끝까지 읽어야겠지...

이탈로 칼비노를 마치면 위의 네 작품과 로저 젤라즈니를 조금 읽으려고 한다. 좋은 책을 만나는 건 항상 기쁜 일이지만 내가 책을 못 따라갈 게 분명하기에 슬퍼진다. 우울 우울. 아마 여기서 언급한 소설만 읽어도 1년이 휙 갈 듯하다.

The Giver는 원서로 이제 시작했다. 샬롯의 거미줄이 두 달 조금 넘게 걸렸는데 얼마나 고생할지 눈에 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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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을 쓰려다가 잡담로 선회


2015-058.


  온갖 문구류의 역사를 기술한 책이다. 단순한 역사의 나열임에도 한참 핫했던 이유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더러 문구도 좋아하기 때문이렸다. 적어도 난 그렇다. 책을 읽다가 괜찮은 구절이 나오면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해두고, 간단한 소감은 컴퓨터보다 노트에 볼펜으로 적는다. 때로는 어떤 필기도구가 맘에 드나 바꿔가며 시험한 적도 있다. 심지어 잉크 색이 마음에 안 들어 엊그제 채운 잉크를 싹 비우고 다른 색의 잉크를 넣기도 했다.


  미국의 문구 덕후가 이 쓴 책은, 사실 감상을 쓸 것이 없다. 나는 전문 서평인이 아니니까 책이 주는 중심 메시지를 잘 못 읽어낸다. 이런 류의 책은 감상이 사변적으로 흐르기 쉽다. 그런고로 형식이고 뭐고 내 이야기나 주구장창 하면 되지 뭐. 책은 저자의 손을 떠난 순간 독자의 것이고, 책을 읽은 이들은 자신만의 책을 기억한다. 부제도 '당신이 사랑한 문구의 파란만장한 연대기'니까, 내가 사랑하는 문구에 대해 털어놓으면 된다.


  가장 먼저 접한, 글씨를 쓰는 도구는 아무래도 연필이 아닐까 싶다. 크레파스나 색연필은 글씨를 쓴다기보다는 그리기에 바빴으니까, 적어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게다가 난 그림 그리기를 싫어한다.


  한 자루에 백 원. 싸디 싼 필기구의 기초. 솔직히 고백하자. 한뼘 정도 되는 연필 한자루를 끝까지 써본 적이 거의 없다. 부모님 세대에는 없어서 못 쓰던 연필을 계속 깎아서 쓰다 나중엔 볼펜 깍지에 꽂아서 썼다고 한다. 물론 나도 그렇게 썼지만, 연필 아까운줄 모르고 한 손에 안 들어온다 싶으면 버리고 새 연필을 꺼냈다. 아니, 사실은 다 쓰기도 전에 잃어버린 적이 훨씬 많을 것이다.


  작년 1월에, 올해에는 열심히 일기와 독서 기록을 쓰자며 필기구를 골랐다. 기존에 즐겨 쓰던 만년필과 볼펜이 있었지만 뭔가 다짐을 굳게 먹고 싶었다. 그러면서 멋까지 챙긴다면 금상첨화. 허세가 가득 차 세계에서 유명한 주황색 연필, 파버카스텔 보난자 연필 한 더즌을 샀다. 당시 한 자루에 오백 원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 원 가량 돈을 들여 산 연필은... 아직 책상에 고이 모셔두었다. 한 자루만 절반 정도 사용했는데, 이만큼 사용한 것도 용하단 생각이 든다.


이제 한 자루를 반 정도 썼다


  개인적으로는 글을 쓸 때 가장 편한 건 연필이다. 스치는대로 휙휙 적히는 볼펜도, 특유의 필기감이 느껴지는 만년필도 좋지만, 역시 연필만큼 마음 가는대로 글을 쓰게 해주는 건 없다. 연필심 특유의 종이에 걸리는 느낌이 글 쓰는 중간 중간 잠시 생각에 틈을 준다. 연필과 같은 허세의 느낌으로 스테들러 연필깎이도 샀는데, 어느정도 쓰고 뭉뚝해진 연필을 깎을 때마다 희열을 느낄 때가 있다. 벼...변태란 말은 아니고 줄어든 연필만큼 종이에 생각의 흔적을 남겼다는 게 눈에 보이기 떄문이다.(이게 또 잉크 양이 줄어드는 거랑 다르게 느껴진다)


이렇게 깜찍한 물건도 있더랬다. 열필깍지라고 해서 급하게 샀는데... 속았다. 2년간 오레오만 썼는데 잋마에 좀 바꿔볼까.


진짜 허세의 상징, 스테들러 연필깎이


  연필 얘기를 했으니 곁다리로 샤프도 살짝 말해본다. 사실 샤프는 뭐라 할 말이 없다. 학창 시절에는 굴러다니는 아무 샤프나 썼기 때문이다. 학생 샤프의 가장 기본인 검정색 샤프(브랜드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가격도 싸서 웬만하면 바꿀 일이 없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까지 비슷한 종류를 썼으니 말 다했다.


  샤프를 바꾼 건 딱 한번이다. 막 전역을 하고서 막 허세를 부리기 시작하면서. 역시 필기는 펜보다 샤프지! 하며 일본제 샤프를 샀다. 여태껏 쓰던 샤프는 심이 0.5mm였는데, 이놈은 0.7이었다. 한참 필기구를 다루는 블로그를 들락거렸는데, 거기서 소개한 굵은 샤프심은 되게 달라보이고 멋있어보였...다기보다 그냥 허세를 채우기 위한 도구였 듯싶다. 오래 쓰고자 샤프심도 세 통이나 샀다. 겉에 가격이 200이라고 써 있길래 보통 샤프심과 다르진 않네, 했지만 단위가 원이 아니라 엔이었다. 샤프심 세 통을 7천 원 넘게 주고 속은 듯한 느낌을 받으며 문구점을 나왔다. 물론 샤프와 샤프심은 1년이 채 가지 않아 잃어버렸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새로 관심을 둔 필기구는 만년필이었다. 모나미펜 같은 잉크펜이나 부드럽게 써지는 젤펜을 쓰는 건 뭔가 대학생답지 않아 보였다. 흰 종이에 사각거림과 함께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잉크- 그렇다. 이 역시 허세였다. 허나 얇은 펜만을 써오던 나에게 두꺼운 닙을 가진 만년필들은 불편했다. 결국 세필로 유명한 일본의 세일러 에이스를 샀다. 사고서 한동안은 신나게 썼다. 일기나 생각없이 쓰는 글에 사용하기 딱 좋았다. 가끔 닙 방향이 잘못돼 글이 멈추면 생각할 여유가 생겨 좋았다. 그것도 잠시뿐, 대학생이 되어서 오히려 많아진 필기량에 만년필은 조금 쓰기 어려웠다. 결국 고등학생 때와 같이 하이테크를 썼다.


  그렇게 잊혀졌던 에이스를, 남자 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고 의미 있는 시간이자 가장 잉여였던 기간인 군인 시절에 다시 손에 잡았다. 입대 전에는 사나흘 간격으로 기록을 남겼는데 입대 후에는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별 의미없는 일도 쓰고, 책을 읽고 간단한 감상도 끄적였다.(그때부터였을까요, 의미없고 허세넘치는 독후감을 쓰기 시작한 게) 부모님이 넣어주신 택배에 고이 담겨온 에이스를 1년 가까이 잘 썼건만, 상병 휴가를 나가서 망가뜨리고 말았다. 잉크가 잘 나오지 않아 만년필을 털다가 닙이 책상에 부딪혔다. 닙 앞쪽은 독수리 부리처럼 아래로 휘어버렸다.


  남은 군생활은 모나미와 함께 했고, 전역 후에는 세필이 아닌 두꺼운 만년필을 써보고자 싸구려 파카 벡터를 샀다. 두꺼운 닙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에이스로 돌아왔다. 이번엔 에이스를 잃어버리고,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라미 사파리를 들였다. 사파리도 벡터만큼 두꺼워 적응하지 못했지만 투박한 벡터보다 훨씬 예쁘고 세련된 디자인이라 그럭저럭 쓸 만했다. 그럭저럭 1년을 버티다가 결국 다시 세필로 돌아왔다. 만년필의 맛을 잘 알지도 못하고 그런 것에 둔감할 게 뻔하기 때문에 싸고 가성비 좋은 입문용으로 버티기로 했다. 파일롯뜨 에르고그립. 투명한 색이어서 조금 지저분해 보이지만 막 쓰기에는 정말 좋은 놈이다. 그러고보니 여태까지 쓴 만년필들은 5만원이 넘지 않는다. 정말 좋은 만년필을 시필이라도 해보고 싶다. 워터맨에서 죽이는 게 하나 나왔다고 하던데, 검색해보니 70만원이다. 만년필에 이만큼을 낼 용기는 없다.


  에르고그립을 아무리 막 쓴다지만 불편할 때가 많다.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게 볼펜이다. 학창시절에는 좀 비싸더라도 하이테크를 썼다.(하이테크인지 하이텤-씨인지 아직도 알 길이 없다) 당시에는 하이테크만큼 가는 심도 없었거니와 한 자루에 2천 원의 가격은, 비싼 펜을 쓰면 공부를 더 잘할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을 주었다. 연필과 마찬가지로 하이테크도 끝까지 쓰지 못했다. 연필은 뒤에 볼펜 깍지라도 씌워 닳도록 썼는데 하이테크는 결코 그러지 못했다. 첫째는 잉크가 꽤나 많아서였고, 둘째는 심이 워낙 얇아 살짝 떨어뜨리기만 해도 고장나는 경우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좋아하며 새 펜을 샀다.


대학생 때는 예쁜고 보기 좋은 필기보다 빠르면서도 정확한 필기가 필요했다. 이런 필기에는 젤펜보다 잉크펜이 어울리리란 판단에 괜찮은 펜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돌아다녔다. 그렇게 발견한 놈이 BIC의 주황색 볼펜이다. 잉크펜의 대명사는 모나미다. 모나미는 싸고 편하지만 잉크똥이 어마어마하게 생겨 노트필기를 망치는 때가 더러 있다. 그에 반해 BIC 볼펜은 똥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필기감은 모나미보다 좋고 잉크 흐름도 나쁘지 않다. BIC 볼펜은 한번 살 때마다 세 자루씩 사왔고 가격도 싸 잃어버려도 부담이 적었다. 덕분에 그 많던 주황색 볼펜이 필통에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한동안 만년필을 쓰다 색다른 볼펜이 눈에 들어왔다. 알라딘에서 문학동네 이벤트를 열었는데 문학동세 세계문학을 사면서 추가금을 내면 헤밍웨이 글씨가 프린트된 모나미 153 NEO를 주었다. 이벤트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다 볼펜이라니! 모나미에서 이런 볼펜을 발매한지도 몰랐다. 볼펜에 혹해 분명 사놓고 책장에 계속 꽂아둘 책 하나를 골랐다. 펜은 묵직하고 모양도 마음에 들었다. 젤펜에 가까울 정도로 매끈한 필기감에 깜짝 놀랐지만 곧 노트 전체에 퍼진 악성종양 같은 볼펜 똥에 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 실망했다. 결국 장식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좋다던 파카 조터도 함께 들였으나 기대보다 필기감이 좋지 않아 잘 쓰지 않는다.


넌 나에게 똥을 줬어


알라딘 이벤트는 정말 매력적이어서 쓰잘데기 없는 물건도 사게 만든다. 위는 문학동네 필립 로스 펜홀더.



  양이 적지만 필기구를 이만큼 썼으니 예의상 노트를 쓸 때가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노트는 대학교 들어와서 쓴 첫 일기장이다. 대학 입학부터 군입대 전까지 천천히 쓰던 노트다. 커버가 잘 휘어지는 플라스틱이었고, 종이 질도 좋아 어떤 필기구로 쓰나 만족스러웠다. 만년필 잉크를 잘 받지 못하는 종이가 많은데 이 노트는 쓰는대로 쪽쪽 잘 받아먹었다. 군 시절에 두번째 노트로 하드커버를 선택했으나 딱딱한 촉감에 머리가 굳고 부담감이 밀려와서 실패. 그뒤로 서너권의 노트를 사봤지만 허사였다.


  좋은 노트를 알아보던 중 허세 부리기의 끝판왕, 몰스킨을 알게 되었다. 몰스킨이 허세라는 말이 아니다. 이 노트를 잘 쓰는 사람은 일정 관리, 글쓰기, 그림 그리기 같은 여러 일을 잘 한다. 분명 몰스킨이 아니라 싸구려 노트로도 잘 해낼 것이다. 나는 몰스킨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으니 결국 허세에 취해 산 것이 된다. 첫 몰스킨은 대학교 졸업반 때 산 소프트커버 포켓 사이즈 데일리다. 학교생활을 하며 매일 해야 할 과제를 적었다. 첫 몰스킨은 그나마 잘 사용했지만 두번째 구입은 거기에 더 허세를 더해 하드커버 라지사이즈 룰드를 산다. 일기장 목적으로 샀는데 결국 3개월을 못 채우고 때려치웠다. 하드커버란 하찮은 이유로.


  지금은 소프트커버 라지사이즈 플레인을 쓴다. 줄이 없는 백지인데 생각없이 쓰는데는 빈 종이도 괜찮다. 허나 다음에 살 땐 반드시 하드커버를 살 것이다. 몰스킨이 아닌 일반 스프링노트도 괜찮을 것 같다. 글씨를 못 쓰기 때문이다. 가운데가 찝힌 노트에 글을 쓰면 아무래도 글씨 쓰기가 불편하다. 그리고 사실, 몰스킨 종이질도 그닥 좋은 것 같진 않다. 파카 퀑크 잉크를 사용하는데 상당히 연함에도 종이 뒤에 너무 비치는 느낌이다.


지금 가진 몰스킨 노트. 좌측부터 독서기록장, 안 쓰는 하드커버, 소프트커버



  너무 연관성 없이 소재가 바뀌는데, 그런 건 차치하고 마지막은 포스트잇이다. 공부를 잘하던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포스트잇을 활용했는데 나는 대학을 마칠 때까지 그러지 않았다. 중요한 내용은 미리 요약본을 만드는 습관이 있어서 페이지를 골라 책을 펼 일이 많지 않았다. 포스트잇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부터다. 책을 읽고 독후감에 그럴듯한 문구는 남기고픈데 책을 접거나 종이에 낙서하기는 마음이 편치 않아 포스트잇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노랑 파랑 빨강 등의 보통의 포스트잇이었는데, 요즘엔 끝에만 색이 들어간 투명 포스트잇(포스트잇 플래그)을 쓴다. 이걸 살 때도 문제가 있었다. 2년 전에 문구점에서 5색 플래그 10세트 든 두툼한 플래그 통을 발견했다. 포스트잇이 얼마나 하겠어, 하고 계산대에 가져갔다가 8만원이라는 말에 기겁했다. 결국엔 이걸 다 쓸 거니까, 하며 사왔는데 이제 두 세트를 썼다. (사실 한 세트는 쓰다가 잃어버림) 한 10년은 쓸 기세다.



재앙의 시작



  문구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방향이 바뀌고 있다. 손글씨를 쓰는 건 특별한 일이다. 사랑하고 고마운 이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손편지를 쓰거나, 힐링을 한다고 좋은 글귀를 필사한다. 간단한 메모는 이미 스마트폰이 가져갔다. 자판을 두드려 입력할 수도, 목소리를 남길 수도 있다. 문구는 이렇게 사멸해가는가?


  절대 아니다. 문구의 디지털화는 전자책과 비슷하다. 미래학자들은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잡아먹으리라 점쳤다.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들이 사라졌는가? 비중이 줄었어도 여전히 남아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구의 디지털화는 아날로그의 완벽한 대체가 아닌 또 다른 방식일 뿐이다. 에버노트를 못 쓴다고, 메모앱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고 자신을 탓하지 않아도 된다. 현대의 흐름을 지나치게 따라가려는 강박은 버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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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12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믿었던 헤밍웨이 펜이... (부들부들) 펜에 대한 한줄평에서 양손잡이님의 심정을 느꼈습니다. ㅎㅎㅎ 그런데 저는 처음에 연필깎지가 츄잉껌 통인 줄 알았어요. ^^;;

양손잡이 2016-01-07 20:30   좋아요 0 | URL
미니쓰레기통인줄 아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난 뭐든지 갖고 싶다. 그게 고가의 물건인든 뛰어난 재능이든, 그 어떤 것이든 동경하는, 어쩌면 썩 좋지 않은 습관이다.


  특히 책상에 앉아 문자와 공부하는 인문학, 철학, 과학보다 예체능이 더 탐난다. 체보다는 예에 욕심을 내는데, 운도이야 어차피 몸 쓰는 것. 그저 행동하는 근육만 조금 단련이 되면 큰 무리 없이 남들과 즐기기 어렵지 않다. 운동을 못하는 편이 아니었으니 이리 느낀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 대표 골키퍼로 다른 학교와 축구시합에 나간 적이 있다. 농구를 시작하고선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꾸준히 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런데 예술 쪽은, 당최 뭐가 되지 않는다. 음악은 어릴 적에 피아노를 쳐서 '듣는 법'은 알지만 느끼고 소리를 내는 법을 전혀 모른다. 바이올린, 피아노를 배웠어도 기계적으로 음만 내는 법을 배웠지, 진짜 음악을 연주한 적이 있었던가.


  대학 동창 중 피아노를 제법 잘 다루는 친구가 있다. 한번은 페이스북에 자신이 친 피아노 곡이라며 동영상을 올렸다. 깜짝 놀랐다. 화질은 안 좋지만 들리는 음악은 수준급이었다. 상상을 뛰어넘어 적어도 내 귀에는 원곡만큼 멋있었다. 덧글로 네가 친 거 아니지, 라고 쓰려다가, 내 몰지각함과 질투심니 너무 드러나는 것 같아 관뒀다.


  마침 여자친구도 피아노를 즐겨 치고 그걸 듣다보면 즐겁고 신나기에 나도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말했다. 운동과 피아노 강습을 겸하기 힘들어 시작은 못했...던 게 아니다. 시간은 핑계다. 기숙사 지하에 피아노 한 대가 있어 언제든 가면 연습할 수 있다.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발걸음을 떼지 않는 것뿐이다.



  여자친구에게 전자키보드를 잔뜩 물었다. 회사 기숙사에서 나와 따로 나만의 공간에 살면 키보드를 하나 사서 피아노 연습도 하고 음악 작업도 할 거라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캬, 음악작업이라니, 정말 그럴 듯해보이지 않는가! 말도 안되는 소리다. 올해 초에 한 친구는 통기타 연습을 해서 멋진 노래와 함께 공연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결국 나와 비슷한 헛소리일 뿐이라는 게 며칠전 밝혀졌다.


  올해 초였던가, 캘리그라피에 관심을 두었다. 회사 게시판에 동호회를 만든다는 글이 올라왔다. 워낙 악필이다보니 책이나 인터넷으로 독학하긴 힘들 것 같아 가입신청서를 들이밀었다. 인원이 부족해 결국 동호회는 시작하지 못했다. 내친김에 글씨 교정이라도 해보고자 결심했다. (가끔 두 여동생과 글을 쓰면서 놀다보면 소녀소녀한 글씨체 가운데 요즘 초등학생도 안 쓸법한 글씨체에 좌절하곤 했다)


  글씨를 교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올바른 글씨체로 쓰기를 꾸준히 하면 된다. 교보문고에서 많은 교정 관련 책 중 하나를 골랐다. 굳은 마음으로 첫 획을 그었다. 이틀 연습하고는 다신 책을 펴는 일이 없었다. 나에게 반듯하고 예쁜 글씨체는 이미 쓰기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건 미술의 범주였다.


  모든 학창시절을 통틀어서 가장 싫어한 과목은 미술이었다. 음악이야 어릴 때부터 꾸준히 했으니 문제는 없었다. 가정은 나의 화려하고 따뜻한(?) 손놀림으로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미술은 아니었다. 필기야 암기하면 된다지만 실기는 손도 댈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아니, 똥이었다. 똥...


  국민학교 1학년 때였던가, 사실 나도 미술학원에 다녔더랬다. 무슨 수업을 들었는지 전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단 한가지 사건은 잊을 수 없다. 찰흙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겉에 니스를 발라 말려야 했다. 얼른 끝내고 쉬고 싶었던 나는 격정적으로 니스를 발랐다. 빳빳한 니스붓이 나의 스피드를 만나... 왼눈에 니스가 들어가고 말았다. 황급히 물로 씻어냈으나 그게 독이 되었을까,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 안경을 썼다. 물론 니스가 들어가지 않은 오른눈도 같이 나빠졌으니 시력 저하의 주범이 니스는 아니다. 니스가 눈에 영향을 주었든 안 주었든, 아픈 기억이 마음 깊숙히 박혔으니 미술을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뭐, 트라우마 따위는 단순한 핑계일 뿐이고, 나는 단순히 미술 감각이 심히 떨어지는 편이다. 특히 색감이 정말 부족한 편이다. 미술시간에 사과를 연필, 볼펜, 목탄으로 데셍했다. 아무리 봐도 빨간 볼펜 한 자루만으로 눈앞에 보이는 사과의 명암을 표현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엉망인 그림을 제출했다. 아직도 집에 이 그림이 있는데, 다시 꺼내보려니 침대 밑에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다.


  이과여서 그럴까 싶다가도, 미술을 즐기는 다른 공대생을 보면 그건 아닌 듯싶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지 않을까. 운동이 꾸준한 연습과 반복이 필요하듯이 미술도 마찬가지려나. 잘 그리려 하기 전에 많이 보고 느껴야 할까. 부족함을 안다면 꾸준히 보면 된다. 기초연습부터 하면 되고 죽어라 그려보면 된다. 그런데 나는 그걸 못한다. 애초에 책상에 앉아 당장 성과가 없어보이는 일을 하면 스스로 참을 수 없다. 이 기초연습이 언제 어떤 결과물로 보일지도 모른다. 내가 수학을 좋아했던 이유는,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논리적인 식에 근거하여 풀어가면 결국 답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미술은 그게 없다. 게다가 예술은 절대적인 정답이 없는 분야기에 계속적인 발전을 꿈꿔야 한다. 나는 그런 기약없는 일을 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들고온 타블렛을 보고 순간 탐이 났다. 단순히 처음 만져보는 물건이 마음에 든 건지, 이 도구로 그릴 그림을 꿈꾼 건지는 알 수 없다. 요즘 웹툰을 보며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그림으로 돈을 벌자는 게 아니다. 그냥 내가 있던 장소에서 함께 만난 사람과 나누어 먹은 음식, 주변의 분위기를 단순히 사진으로만 남기기 아쉬워서이다. 사진은 어떤 것보다도 장면을 정확히 보여준다. 허나 그림은 삐뚤뺴뚤할 수밖에 없다. 그림은 내 마음이 가는대로 그리기에, 사실과 다른 표현이라해도 그 대상에게 내 마음이 투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 그때의 나를 알 수 있다.


  지하철 문 주변에 서서 노트에 지하철 풍경을 그림으로 끼적이는 사람을 보았다. 캬, 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모습인가! 고1 때 담임선생님께서는 자신을 캐릭터화 시킨 만화를 종종 그리셨다. 심지어 국어선생님이셔서 좋은 글과 귀여운 그림으로 보기도 좋았더랬다. 이리 보니 그림을 그리고픈 열망과 감정이 멋있어 보이고자 결심한 것으로 보일기도 한다. 흠, 충분히 그렇다. 나란 사람은 허세와 멋부림으로 사니까. 그래도 아직 뭔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그게 어떤 이유에서건 좋은 태도라고 생각(이라 쓰고 합리화라 읽는다)한다.


  그림 생각을 하다가 책을 주문했다. 재작년에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제공받은 김충원의 <이지 드로잉 노트>다. 정해진 날짜까지 서평을 써야 하니 그림을 싫어해도 어쩔 수 없이 폈다. 절반도 못 마치고 재능이 없다고 한탄하며 덮어버리고 말았다. 선 몇십 번 그어보고 재능을 운운하니 이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다. 네이버 포스트에서 인기가 많은(그렇다고 하는) 블로거가 낸 <데일리 드로잉>도 함께다.


  역도 선수들은 첫 1년은 무게를 달지 않고 빈 바로 자세를 바로 잡는단다. 바는 쇳덩어리지만 역도동작을 하기에는 가벼운 편이다. 바만 쥐고 운동을 하면 힘을 주체 못하고 하늘로 휙휙 날려버리고 자세도 망가져버린다. 이렇게 1년 동안 자세 교정만 한다니 대단한 일이다. 그렇게 힘들게 습관을 만드는데, 나는 뭐라고 그렇게 포기했던가.


  이왕 이렇게 된 거, 글씨 교정 책도 다시 펴본다. 겨우 하루치 연습하고 말았다. 아, 이런 의지박약... 스스로 생각해도 소름끼칠 정도다. 표지 왼편에 먼지가 쌓여서 물티슈로 정성스레 닦아주었고 책장 가장 위에 두었다.


 그놈의 허세 때문에, 연필로 필기해보고자 주황이 파버카스텔 연필을 한 다스나 사뒀다. 벌써 2년 전이다. 열두 자루 중 이제 한 자루를 절반 정도 썼을 뿐이다. 연필은 충분하다. 지우개도, 연필깎이도, 노트도 충분해. 이제 직접 쓸 차례다. 자자, 올해의 9할이 거의 지나간 시점에서 올해의 늦은 다짐을 해본다.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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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2015-032. 


0. 딱 한마디만 하겠다. 이 책을 고른 건, 실수다. 하아... 감상을 써야 하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잡담으로 시작해 잡담으로 끝나지 않을까.


1. 2010년에, 김영하 작가의 소규모 강연회에 다녀왔다. 네이버에서 주최하고 홍대 이리카페에서 열린 재능기부식의 행사였다. 40명의 참가자 자리를 두고 백명이 넘는 인원이 덧글로 전쟁을 펼쳤다. 그떄 나는, 내 마음을 솔직히 담은 글을 쓰고 싶다는 덧글로 이리카페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2. 김영하라는 작가를 잘 몰랐다. 그해 초에 발간된 단편집 <오빠가 돌아왔다>를 신문 신간 소개란에서 보고야 그 이름을 어렴풋이 알았다. 덧글을 쓴 네티즌들은 다들 그의 책을 꽤나 읽은 듯이 보였다. 작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작가를 만날 수 없었다. 강연까지 남은 2주 동안 김영하의 초기작 <엘레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검은 꽃>과 그나마 최근작인 <퀴즈쇼>와 <오빠가 돌아왔다>를 후딱 읽었다. 처음과는 조금 달라진 작풍이 조금 거슬렸지만 마지막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아, 이 작가는 내 스타일이구나.


3. 강연에 다녀온 소감은 글 가장 아래에 접은 글로 첨부하겠다. 여튼, 그날은 내 독서와 글쓰기에 있어 어떤 기점이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내면적 자아를 나이 먹어도 유지하는 게 바로 작가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사회적 자아 아래 깊숙히 박혀있는, 괴물 같이 생겨서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면적 자아까지 내려가야 한다, 진짜 자아의 '날 것'을 꺼내는 것이 글을 잘 쓰는 것이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는 순간은 정말 환상적인 순간이다. 아직까지 이리카페의 기억이 머리에 깊숙히 남아 있다.


4. <말하다>는 김영하의 강연, 인터뷰, 대담을 글로 모은 책이다. 그러니까 머리에 남은 이야기가, <말하다>에 또 있다. 한번만 반복되면 모르겠다. 똑같은 이야기를 조금씩 변주해서 그 긴긴 글에 풀어내는데, 조금 질렸다. 5년 전에 했던 이야기를 아직도 우려먹다니! 방송과 TED에서 몇번이고 한 말을 다 모여 있다니! 유일하게 전작한 작가에게 든 배신감이랄까. 사실 <보다>도 씨네21에 그가 쓴 칼럼을 모아서 출간한 책이다. 곧 <보다>와 <말하다>는 김영하를 잘 모르거나 정말 팬인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다.


5. 미안합니다, 김영하 작가님. <살인자의 기억법>부터 점점...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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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날입니다 그려

24일, 그토록 고대해오던 김영하 작가님의 재미난 강연날

발표날부터 오늘까지 이 강연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요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마음을 차분히 하고자 작가님 소설을 들여다봤지만 당최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보던 티비 프로그램 때문은 절대 아님)

잠시 모임 가신 어머니께 버스카드를 빌려야 하는데 안 들어오시고, 전화도 안 받으시고, 솔직히 무슨 과 1등 파티도 아닌데 엄청 설레더군요

 

생각보다 상수역이 가깝더군요

20분 차를 탔는데 58분 좀 안 걸렸으니 집에서 한 시간 십 분  정도 걸리네요

아, 홍대나 서강대, 연대, 이대를 갔으면 집에서 다닐 수 있었을텐데, 혼자 한탄합니다

아 ㅡㅡ 이대는 아니구나 헛소리

상수역에서 내려 길을 좀 헤맬 줄 알았는데 제가 의외로 길치는 아니어서 금새 찾았습니다

 

이리카페가 의외로 좁더군요

책과 음악의 공간이라서 좀 널찍할 듯했는데 그냥 카페 크기였습니다

홍대랑 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는 사람들이나 찾을 듯한 곳에 위치합니다 (순전히 제 생각)

 

도착해서 입구에 들어서니 네이버 직원이신 듯한 두 분이 아이디를 여쭤보시더라구요

한 분이 목록에서 제 아이디를 찾으시는 동안 다른 한 분은 제 사연을 보신 것 같네요

제게 "아, 공대생이시죠?" 라고 물어보시네요

왠지 부끄러워라 ㅎㅎ

살짝 웃으며 들어갔고, 음료 쿠폰을 이용하여 냉커피 한 잔 들이키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앞에서 네 번째 자리이긴 했지만 앞 자리 분들의 머리 사이로 시야가 훤히 트였더군요

뒤에 앉은 것 치고는 괜찮은 자리였습니다

 

조금 기다리니 네이버 기능재부 담당 직원 분께서 나오셔서 기능재부의 의의를 가볍게 말씀해주시고 곧 작가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들어가기 앞서 UN 난민기구 한국지부를 담당하시는 분께서 일장연설을 하시고 들어가셨어요

영어였지만 들을만 했습니다

제가 요즘 영어 리스닝 공부 좀 했더니... ㅎㅎㅎ

 

작가님께서는 키노트를 쓰셨는데 리모컨이 안 먹어서 수작업으로 놋북 조작

 

 

아래로는 강연 중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좀 요약해서 적어볼게요.

 

 

 

 잘 쓴 글이란?

 

 무려 2000년 전 서양 수사학에서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거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거나 유용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수사학 뿐 아니라 글쓰기에도 해당한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글 쓴 사람이 깨끗하고 정직하다면 좋은 글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3개의 개념을 말하는데 감정에 해당하는 파토스Pathos, 말하는 사람에 해당하는 에토스Ethos, 그리고 논리에 해당하는 로고스Logos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서양은 파토스, 동양은 에토스를 강조한다. 결국은 '원천/사람/글쓰기'라는 것이 글이란 수단을 통해 '독자/청중'에게 전달된다.

 

 이에 연애편지를 쓰는 것도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연애편지의 경우 주로 독자가 한 명으로 확실히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파토스, 에토스, 로고스라는 세 요소가 적절히 잘 조화될 수 있다. 하지만 나 같은 글쓰기 초보의 경우 독자를 불특정 다수로 잡는다. 이렇게 되면 정확힌 독자를 결정하기 힘들고 이는 글쓰기의 목표를 결정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적정 수준의 모델독자를 정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덧. 저는 이 부분이 참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릴 때는 언어적 능력은 달리나 의사소통은 잘 되었다. 어린 아기들이 웅얼거리면 어른들은 그 언어를 알아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어린 자아, 즉 내면적 자아를 잃는다. 보통 내면적 자아 위에 사회 생활에 필요한 사회적 자아를 덧씌우기 때문이다. 이 내면적 자아를 나이 먹어도 유지하는 게 바로 작가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사회적 자아 아래 깊숙히 박혀있는 내면적 자아까지 내려가야 한다. 엇눌린 욕망을 꺼내고 내면적/사회적 자아 사이에 생길 수밖에 없는 차이를 매꿔야한다.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가면서 내면의 괴물과 만나고 그 괴물을 문에서 꺼내야한다. (사실 괴물이 아니라 보물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우리는 광부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여기서 에세이와 소설의 차이가 드러나는데, 에세이는 소설과 같은 언어와 문장으로 쓰이지만 '미친 놈'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은 인간적 욕망이라는 내면의 괴물의 얼굴에 가면을 씌운다.

 

 위에서도 썼듯이 작가는 자신 안의 '괴물'을 끌어낸다. 진짜 자아의 '날 것'을 꺼내는 것이 글을 잘 쓰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이 너무 무서워서 겁내고 남에게 미루고 하면 영영 그곳에 가지 못한다.

 

 톨스토이가 장편 '안나 카레니나'를 쓸 때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한다.

 '안나가 무섭다, 지겹다, 질린다!'

 

 소설을 쓸 때 자신 안의 괴물이 튀어나오지만 이를 치부라 생각하면 안 된다. 자기가 생각하기엔 흉칙하고 무서운 존재이겠지만 남이 봤을 때엔 좋은 글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에게도 이런 억누르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이를 포착해야 한다.

 

 깊숙히 아래에 있는 내면의 문에서 괴물은 밖으로 튀어나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래서 문 틈 사이로 한 발을 넣는다. 이 첫 발이 담대한 첫 문장이다. 뒤이어 아주 좁은 틈으로 괴물들이 마구 쏟아 나오기 시작한다. 이것들이 문장이 되고 작가는 이를 책임져야 한다. (여기서 카프카의 '변신'의 첫 문장을 예로 들으셨다) 아마 카프카는 '변신'의 집필 과정에서 치밀한 구성을 세우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내면의 괴물이 튀어나오자 자신만의 목소리로 글을 써내려갔다.

 이런 당대한 첫 문장은 갑작스레 나온다.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 따위 생각할 틈이 없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다보면 정말 자신만의 문장을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거짓말은 도덕적으로 나쁜 것이므로 어른들에게 혼난다. 그럼 그 버릇이 사라질테고 아이는 정직하게 산다. 하지만 정말 정직하게만 살 수 있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시작하는 순간은 정말 환상적인 것이다. 이는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상황을 자신의 머리 안에서 상상하여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집에 열쇠로 따는 서랍을 하나 만들고 부모님께 숨기고 싶은 글을 쓰라고. 자기 내면의 괴물이 밖으로 나오면 너무 본능적이고 흉칙하기 때문이다.

 

 두 줄 요약 :

 

 v 어린이의 마음

 v 내면의 문으로 나오는괴물같은 첫 문장을 catch 할 수 있는 능력 


강연 뒤로 많은 질의응답이 오고갔지만 그저 멍하니 듣고만 있었네요

이 부분은 녹화도 안하던데 좀 머릿속에 넣어둘 걸 후회됩니다

참 글이 서두도 없고 재미도 없군요

사실이에요

노트에 휘갈겨 쓴 내용에 제 기억으로 조금 살을 붙였으니 뭐 되겠나요

결국 결론은 맨 아래의 두 줄 요약 되겠네요

왠지 허무한 포스트. 사진 한 장도 없고

 

솔직히 말하면 전체적인 내용은 많은 작법서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작가님도 40명의 적으면 적다고 할 수 있는, 불특정다수의 청중에게 강연을 하자니 너무 전문적인 강연을 하긴 좀 그러셨겠지요

하긴 글을 잘 쓰는 것에 전문적인 게 어딨겠나요. 결국은 자기 감이고 필인거지 뭐

 

사실 작가님의 작품론이나 문장론, 실제적인 글쓰기 방법에 대한 강연을 바랐지만 내용이 조금 달랐죠

내용도 많이 들어본 것들이었지만 제가 이 강연에 대해 가졌던 의의는 '실제 작가와의 대담'이었으니 목표는 달성한 거지요

하긴 작가님의 생활(?)을 조금 엿볼 수 있어서 그나마 좀 수확이랄까

글이 안 써질 때는 주위와의 관례를 완전히 단절하신다는군요

그런데 사람과 사람의 진실한 공감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은 왠지 슬프더라구요

 

난 내면의 괴물과 맞설 준비는 되어있는가?

만약, 내 인생 어느 한 귀퉁이서 괴물이 갑자기 튀어나와도 나는 그것을 겁내지 않고 같이 공감할 준비는 되어있는가?

아니, 그 전에 계단을 내려가야 문 귀퉁이라도 볼 텐데 참 걱정입니다

아파트 지하실도 어두워서 무섭다고 내려가지 않는 저인데 거기보다 더 무서운 내면을 어떻게 들여다볼지 참 걱정입니다 그려

 

여튼 후기랍시고 썼지만 온통 글자만 있는 포스트여서, 울컥

글자만 있어서 길긴한데 왠지 저도 읽기 싫은 기분이 들어서, 울컥

제가 써놓고도 뭐라고 한지 모르겠어서, 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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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리 고전소설, 인문학,철학 서적을 읽는다 해도 내 책 읽기의 본질은 장르문학이다. 홈즈가 아닌 뤼팽 덕분에 문자에 대한 집착이 시작됐고 드래곤 라자와 세월의 돌이 나를 책으로 확 끌어들였다. 중간에 판타지에 잠시 소홀했으나 덕질(?)은 그만하는 게 아니라 잠시 쉬는 거라 했던가, 일본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위시하여 판타지, SF, 추리까지, 나는 여전히 장르문학을 사랑한다. 예전엔 하류 취급 받던 장르문학이, 이제 문학을 위기에서 구원해줄 하나의 방법으로 표현되는 요즘이기에 기분이 좋다. 그래서 1인 출판사 `불새`에서 나오는 SF 소설과 엘릭시르에서 출간하는 추리소설을 모두 사고 싶지만 시간과 돈이 허락하지 않는다. 한때 국내 유일 장르문학 잡지 월간(나중엔 휴간, 계간, 폐간으로 이어진다...) 판타스틱까지 정기구독했으니 나도 어지간하다. (캬, 나보고 어지간하다고 자뻑하다니 대단하군!) 아직 장르문학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미스터리 추리 전문 잡지가 발매되었다. 위에서 말한 엘릭시르 출판사의 격월 `미스테리아`! 미스터리와 히스테리아, 두 단어를 조합해 미스터리를 광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란다. 큰 기대를 하고 샀는데, 오후에 도착한 책 상자를 뜯어보니 겉표지는 매우 만족스럽다. 무광의, 에, 뭐랄까, 만지면 약간 폭신하고 고급진 표지랄까. 뭐라 표혀이 되지 않는다. 아직 안을 펴보진 못했지만 내용은 뭐 백점 만점이겠지. 장르문학은 (웬만하면)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과학잡지 스캡틱이다. 해외에서능 유명한 과학잡지라는데 우리나라에 번역으로 들어오는지, 우리나라만의 내용과 구성으로 출간되는지는 모르겠다. 장르문학과 마찬가지로 과학도 매우 좋아한다. 이과를 택한 건 수학과 과학이 좋아서였다. 실제 과학 공부와는 아무 상관 없지만 가장 좋아하는 파트는 천체 물리학이었다. 빅뱅과 우주의 탄생, 죽음, 성간의 법칙과 미지의 세계, 블랙홀-화이트홀 그리고 웜홀, 시간여행, 광속, 쿼크, 초끈이론... 고3 때 수시 1차 합격 후 미적분 시간을 빼고는 4분단 첫번째 줄에 앉아 틈틈이 엘러건트 유니버스를 읽었던 기억이. 물론 초끈이론은 커녕 아직 특수상대성 이론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멍충이다. 이번에 알라딘에서 고전 읽기 프로젝트 첫 책으로 코스모스를 골랐는데,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게 쓰인 과학 교양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예상보다 심심하고 별거 아닌 내용을 담고 있어 실망했던 기억도 있다. 코 찔찔 묻은 돈으로 뉴튼을 정기구독하던 때가 있었으니, 나도 참 대단하다. (벌써 두번째라니!) 그런 내가, 이제 돈도 버니(물론 카드로 다 탕진...) 관련 책을 마구 사댄다. 이야, 기분 좋다! (돈을 허공에 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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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5-06-26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손잡이님
루팡이 아닌 뤼팽이라고 써주신게 너무 좋아서 인사 남기고 갑니다~ 저는 타고나길 왼손잡이인데 어머니가 오른손 쓰기를 강권하시면서 양손 모두 서투르게 되었답니다 ㅠㅠ

양손잡이 2015-06-27 08:30   좋아요 0 | URL
이...잉??? 왜죠? ㅎㅎㅎ 덧글 감사합니다~
저도 왼손잡이인데 할아버지께서 왼손은 불길한 손이다~ 하셔서 숟가락질과 글씨쓰기만 오른손으로 한답니다 ㅠ 덕분에 밥먹을 땐 조금 지저분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