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같은 남자로서 모자라지만 조언 한 조각

페미니즘, 관련해서는 나도 남자고 잘 모르니까 말을 길게 못하겠지만, 하나만 말할게요. 세상은 변해가고 있어요. 작년의 화두는 단연 페미니즘의 득세였구요. 사회의 포커스가 왜 페미니즘으로 갔을까, 생각은 해봤나요? 과거 미국에서 흑인 차별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지금 보면 여전히 그들의 삶은 저열해요. 적어도 흑인이 느끼기에는 말이죠. 우리가 남성과 여성은 이제 동등하다고 말하지만 아직 여성의 여러 권리가 신장되지 못했다는 점이 똑같아요. 말은 평등을 이야기 하지만 안을 자세히 들어다보면 기울어진 운동장이 보이죠.

솔직히, 나도 남자이기에 페미니즘에서 언급하는 말과 문장이 버거울 때가 많아요. 그럴 때 회피하지 말고 한번 더 생각해봅시다. 과격해보이는 의견도 잘 생각해보면 맞는 말일 때가 많거든요. (가끔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긴 해요. 그건 의식의 차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은 해요) 자기 기분이 나쁘다고 무조건 피하는 건 성숙한 자세가 아니지요. 불편하더라도 머릿속에서 다루는 것, 그게 진짜 공부입니다. 나도 미숙한 면이 많지만. 공부는 무슨 공부냐 이대로 살아도 편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렇게 살면 돼요. 단,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만 말이죠. 거기서 말하면 알아서 공감해줄텐데 뭐하러 밖에다가 말해서 욕 먹고 찡찡대나요.

책 한 권 소개합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100쪽도 안되는 적은 분량이면서도 전세계적으로 대두하는 페미니즘을 간명히 보여줘요. 거창하게 이론을 설명하지 않고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는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공감을 줘요. 그래요, 공감, 그거 하나면 됩니다. 공감과 긍정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약간 격하게 느껴지는 실천 운동이 보기 싫으면 먼저 이론을 접해 생각의 기초를 만들어봐요.

여자편 들어주는 책 읽으면 남자로서 쪽팔리고 주변 시선이 부담스럽다고요? 원래 그래요. 그게 변화고, 진보입니다. 지금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개념을 접하려는 노력 자체가 당신을 인간적으로 발전, 성장시켜줄 거예요.

쓰다보니 말이 길어졌네요. 시간이 너무 늦어 안 보겠지만, 여하튼, 세상을 보는 눈을 길렀으면 좋겠네요. 공부를 충분히 한 후 비판하는 것마저 뭐라고 할 수 없으니까, 우선 공부합시다 공부.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7-01-22 14: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은 결국 여성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평등을 다루는 영역이라는 사실에 절감하게 됩니다..

양손잡이 2017-01-22 14:49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아직 공부가 부족하고 혼자 생각하는 능력이 모자라서 남에게 영향을 받는 부분이 많은데요, 이론을 말한 것도 꽤 괜찮은 인터넷 기사에서 언급한 거거든요 ㅠ 역시 저는 아직 많이 모자르네요... 더 공부하겠습니다. 덧글 감사합니다. :)

cyrus 2017-01-22 14: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곰발님의 말씀을 살짝 빌리자면, 남성이 페미니즘을 여성을 다루는 학문으로 생각해서 접근하면, 아무리 여성차별을 인정해도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소극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이러면 전혀 도움 되지 않습니다. 단순한 공감에 그칠 뿐입니다. 왜 세상이 페미니즘을 주목하는지, 그리고 왜 공부해야하는지 기초를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합니다.

양손잡이 2017-01-22 14:52   좋아요 1 | URL
위에 언급했듯이 공부가 일천하여 많이 부족합니다. 써주신 덧글처럼 생각해본 적은 없네요... 공감부터 시작이라는데 실천과는 다른 영역이었군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

cyrus 2017-01-22 14:56   좋아요 1 | URL
저도 한창 공부해야 합니다. 간혹 하면 안 될 말을 꺼내서 여성이 기분 나빠할 수 있고, 여성차별 관련 문제를 바라볼 때 남성중심주의 시각에 갇혀서 문제의 본질을 못 보기도 합니다. ^^;;
 

이번주 일요일에 떠나는 제주도 힐링 여행에 어떤 책을 가져가야할지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어제는 문학, 과학, 철학, 사회, 인문... 분야를 나눠서 골랐는데, 막상 어떤 책을 주문할지 고민하니 이 고민이 무한루프에 빠진다. 이 책도 읽고 싶고 저 책도 읽고 싶어. 사놓은 책을 읽어야 하는데 인터넷 서점에는 왜 이리 재밌어 보이는 책이 많은지. 이 책을 사면 뭔가 문학인처럼 보이지 않을까. 지식인인 척 하려면 저 책 정도는 사야 하지 않을까. 들고다니면서 자랑하고 인스타그램에 나 이런 책 읽는 멋지고 똑똑한 사람이오, 라고 자랑해야지, 하는 허세만 가득한 독서. 이런 태도가 벌써 7년째다. 겸손이 아니라, 이건 진심이다.


책읽기 방법을 조금 바꾸면 어떨까 고민해본다. 다독이 아니라 정독으로.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싫어했던 이유가, 세상에는 수많은 읽기 방법이 있는데 그의 방법만이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온전한 방법이라고 설파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한권을 읽더라도 끊임없이 사색하면서 읽어라. 진짜 의미를 알기 위해 끝없이 파고들어라. 초등학교 때부터 즐기는 독서로 해온 나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독서법이다. 이 세상에 재미난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포기하고 책 한권에만 머무른단 말인가?


그런데 남는 게 없네. 그저 읽기만 하는 지금의 독서로는 몸과 마음과 머리에 체득되는 지식이 없다. 지금은 그저 읽어내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가끔 멋들어져보이는 글귀에 포스트잇을 붙히지만 그걸로 끝이다. 책을 덮고 표시해둔 부분을 다시 펼치면 그것끼리 아무 공통점이 없다. 그 문장들이 한데 모여 서로 상응하고 영감을 줘야 하는데,  애초에 읽는 사람이 아무 생각이 없으니 도리가 없다. 내게 책은 단순히 시간을 떼우는 도구에 불과하다. 불과했다, 가 아닌 이유는 일기를 쓰기 직전까지 손에 들었던 책마저도 위와 똑같은 생각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독을 통해서도 충분히 책이 주는 감정에 감응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 속독가들은 다들 의미가 없어진다. 허나 속독은 그들의 능력이고 무기인 것 같다. 빠르게 읽는다 해도 책이 주는 반짝이는 지점을 잘 캐치해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훌륭한 능력을 지닌 것이다.

텍스트를 빠르게 소화시지 못하는 능력도 없어,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꾸역꾸역 뒤로 넘어가기만 바빠, 책 읽기가 과제인 마냥 마지막 장을 얼른 닿고 싶어 조바심만 내, 이게 지금의 내 모습이다. 주변 사람에게 책을 많이 읽는다, 1년에 몇 권씩 읽는다,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까지 내 독서는 아무 효용가치가 없었으니까. 독서를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고 무가치한 독서를 지향하는 게 목표였는데 나름 지식의 틀을 갖춰야 소용이 있는가도 싶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에서 소개한 문사철 독서법을 읽고 다독이 무서워졌는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읽으면 배경이 되는 역사(또는 작가의 연대기나 평전), 그 시절의 철학을 같이 읽는 게 문사철 독서법의 요지다. 내가 여태까지 읽은 대부분의 책은 앞뒤로 읽은 그것과 관련이 없었다. 지금의 사회를 비판하는 사회학 서적을 읽다가 뜬금없이 25세기의 우주활극을 읽고, 19세기 프랑스로 갔다가 고대 아테네의 광장으로 향했다. 앞뒤로 전혀 맥락없는 독서를 하니 책을 아무리 읽어봐야 세상이 세상이 전혀 넓어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문사철 독서법이란 개념을 접했으니 글자를 읽기 시작한 유치원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나는 과연 진짜 읽기를 한 것인가 의심이 들었다. 이런 것이 진짜 다독이라면 나는 다독을 할 짬이 되지 않는다. 진실을 깨닫고 나니 드는 생각은 하나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천천히 깊게 읽으면 되잖아?


오늘부터는 책 읽기 속도를 조금 줄여보려 한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어폐가 있다. 이해하지 못하고 글씨를 훑는 읽기에서 글씨 한 자 한 자를 탐독하는 읽기로 바꿔야겠다. 300권 가까이 쌓인 책의 탑을, 헤쳐나가야 할 숙제가 아니라 함께 시간을 지낼 친구로 생각하면서.



결국 오늘의 일기도 끝은 허망하게 끝난다. 고민은 많고 자책도 많다. 그리고 그것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항상, 진리는 단순한 법이다.


그리고 결론은? 알라딘 장바구니에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담았다. 2013년 1월에 읽었으니 정확히 4년만이다. 그러고보니 공부한다고 해놓고 신나게 자기계발서를 사고, 독후감 쓰기 연습한다고 독서와 서평에 관한 책을 사고, 이제 독서 방법을 바꾼다고 그에 관한 책을 산다. 실제로 하지도 않으면서 하는 척하려고 티내는 이런 모습부터 버려야 하는데 잘 안된다. 천성이 게으름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말에 큰 다짐을 하고 자기계발서를 잔뜩 사는 바람에 집에 읽을 게 넘쳤다. 갈 때마다 다섯 권씩 빌렸던 도서관 나들이였지만 저번주에는 서평 수업에 필요한 책과 꾸준히 읽는 시리즈물, 단 두 권만 손에 들고 나왔다. 불과 며칠 전에 집에 쌓인 책과 앞으로 살 책을 주로 읽겠다 했지만 알라딘에서 배달온 다섯 권 중 눈에 눈에 들어온 건 두 권밖에 없다. 게다가 연말에 다섯 권을 사기 전에 이미 강남 교보문고에서 네 권을 들고 왔다. 사놓고 안 읽은 책이 벌써 열 권 가까이 쌓인 셈이다. 물론, 예전에 사둔 책까지 합하면 200권이 훌쩍 넘어가지만.


기한을 넘기는 바람에 서평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시리즈물은 읽기에 탄력이 떨어졌다. 즐길 책이 집에 많음에도 불구,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번뜩, 퇴근하고 도서관에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틈틈이 읽을 책도 한 권 더 꺼내들었다. 폭이 좁은 크로스백이 책 세 권으로 빵빵해졌다. 그러던 중 예약도서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오늘은 운명의 날이야. 도서관에 가기로 마음을 먹자 예약도서가 오다니. 오오.


도서관에 도착해 먼저 예약도서를 빌렸다. 요새 공부에 관한 책을 읽어 머리가 조금 복잡해서 미리 생각해둔 가벼운 소설도 한 권 꺼내들었다.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 두 시간 남짓 남았다. 그럼 짤막하게 읽을 책이나 찾아볼까- 하고 서가를 둘러본 게 실수였다.


가장 좋아하는 서가인 책, 독서에 관한 책이 잔뜩 꽂힌 곳에 서서 한참을 둘러봤다. 딱히 끌리는 책이 없어 이번에는 글쓰기를 다룬 책은 어디인지 찾았다. 줄리아 카메론의 책을 발견해 잠시 펴서 모닝 페이지에 대한 글 꼭지를 읽었다. 딱히 매혹적이지 않아 서가에 다시 꼽아두고 건너편으로 갔더니 거기는 만화 서가. 소년만화 종류는 아니고 일반서적 형태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책이었다. 일상을 세 컷으로 그린 <사금일기>라는 제목이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웹툰 ‘도자기’의 호연 작가의 책이다. 반 정도 읽다가 바로 뒷서가를 보니 이번에는 사진 책이 잔뜩 있다. 이론서부터 작품집, 사진에세이까지 책 종류가 다양하다. 유명한 사진집 <윤미네집>을 한참 들여다봤다.


열 시가 10분이 채 남지 않았을 때, 네 권의 책을 손에 들었다.




사진에서 가운데 네 권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이젠, 함께 읽기다>는 한 달 전에 빌린 책인데 읽지 못해 다시 빌렸다. 혼자 하는 독서가 시야를 좁게 만든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미라클 모닝>가 예약도서이다. 자기계발을 다짐하며 아침형 인간이 되겠다고 다짐했는데 실천은 전혀 하지 않고 관련된 책만 계속 읽는다. 앞뒤가 안 맞는 듯한 느낌. <반지의 제왕 2>는 이전에 읽은 1권에 이어 오랜만에 모신 책. 조승연 작가가 <반지의 제왕>을 언어학적으로 찬양해서 다시 바람이 들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드디어 손에 들어온 책이다. 매번 대출 중이어서 읽지 못했는데 오늘은 무슨 운이 틔였는지 서가에 있었다. 전자책으로도 산 책인데 역시 책은 종이책이지.


왼편 두 권은 지금 손에 든 책이다. <위대한 멈춤>은 하루에 3, 40쪽씩 읽는다. 처음 읽을 때보다 울림이 덜하지만 끝까지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편의점 인간>은 출간되자마자 사놓고 침대에 내팽긴 채 먼지만 쌓이고 있었다. 독서 기록을 보니 문학이 하나도 없어서 얇고 말랑말랑한 책을 고르다보니 이 책을 꺼내들게 되었다.


오른편 두 권은 어제 내게 온 책이다.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를 읽다가 느낌이 와서 샀다.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의 저자 윤성근 씨는 헌책방(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한다. 자신이 읽은 책만 팔기 때문에 많은 책을 빠르게 읽어야 했고 자신만의 속독법을 개발해 사용한다. 그러면서 슬로리딩을 말하는 책인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도 추천했다. 대학교 때 읽을까 고민했던 책인데 묘한 인연이다. <서평 쓰는 법>은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루고 유유 출판사의 신간이어서 샀다. 유유의 최신간 <소설의 첫 문장>은 이미 장바구니에 넣었다. 이 출판사는 초기작 <열린 인문학 강의>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이렇게까지 성장했다. 참 뿌듯(?)하다.


장 지글러의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를 방에 두고 나왔다. 읽고 다음 주 토요일까지 서평을 써야 한다. 첫 서평 첨삭 기회를 놓쳤기에 이번에는 이 악물고 읽고 써야 하는데, 읽을 책을 이렇게 마련해두고 시간이 없다고 징징대니, 큰일이다. 내일부터 당장 읽기 시작해야겠다.



12월 말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을 정리하니 제대로 된 책이 없다. 나쁜 책이라는 말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읽자던 고전문학도, 인문학 서적도, 역사서도, 과학서도, 한 권도 없다. 시간 때우기용 소설, 책은 읽지도 않으면서 책을 다루는 책,  공부는 안하면서 뻔질나게 읽는 자기계발서, 크게 건질 것 없었던 에세이. 짧은 기간이지만 연초에 했던 다짐과 그새 멀어졌다. 앞에 수북이 쌓인 책을 보고 마음을 다시 다잡는다. 겨우 내린 결정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지 않게 노력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느덧 새해가 일주일이 지나갔다. 2017이라는 숫자가 꽤나 어색했는데 지금은 익숙하다. 짧게나마 매일 뭔가를 기록해서인지 하루하루를 잊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작년 말과 이번달 초에 생각했던 책 읽기, 일기 쓰기는 꾸준히 하고 있다. 나쁘지 않다. 물론 서너번은 그날 하지 못해 다음 날 기록하는 식으로 꼼수를 부리지만, 어쨌든.



여행 도중 혼자 지내면서 책 읽기를 즐겼지만 가끔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고, 그럴 때면 신기하게도 놀라운 인연이 어디선가 나타나곤 했다. 당시 나의 내면에는 타인의 접근을 쉽게 만드는 개방적인 측면과 어딘지 모르게 연약한 구석이 있었고, 이 때문에 과거 경험하지 못한 방식과 차원으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이는 믿은과 인내심을 가지고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에 나를 맡겨보는 실험이기도 했다. 서두르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다음 단계를 기다리고, 호기가 오면 붙잡는 그런 실험이었다.
- 위대한 멈춤 158, 159쪽. 2부 3장. 여행. 조지프 자보르스키의 책에서.

올해 겨울 휴가로 설연휴를 택했다. 4일의 연차 사용과 대체휴일까지 겹쳐 환상적인 9일 휴가를 다녀오게 되었다(팀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길게 쉬면 다른 친구들은 해외를 다녀오던데, 이번에는 작년 추석에도 뵙지 못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설에는 자중하려고 한다.
설 연휴 앞 5일(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을 내리 쉬면 어디를 갈까 응당 고민해야 하지만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머리가 베베 꼬이던 시기였다. 설비 업무를 한 달 정도 하면서 이제 좀 적응한다 싶으니 바로 다음 달에 공정 근무를 하라고 하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못하는 나로서는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가 극한까지 치달았다. 부서를 옮기고 설비 근무를 볼 때도 회사를 떠나고 싶었지만 12월 말은 말 그대로 죽고 싶었다. 아무 의미없이 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때에 휴가를 생각하니 오히려 막막했다. 한참 고민하다가 어디 쳐박혀서 며칠 동안 마음대로 지내는 건 어떻냐고 자문했다. 조용한 곳에 가서 혼자 지내며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잔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읽고 싶을 때 읽는다. 아무 계획 없이, 아무 일행 없이, 오롯이 나만 방에 앉아 스스로 침잠하기.
생각만 해도 좋았다. 앞으로의 시간에서 아무런 돌파구도 실마리도 찾지 못할 때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지내는 시간은 얼마나 기쁠지 상상했다. 전국의 북스테이를 찾다가 결국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종일 책에 파묻힐 수 있는 파주 지혜의숲 위의 지지향을 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고 정신도 조금은 말짱해졌다. 완전히 혼자 지내자고 했던 휴가도 여자친구와 다녀올 예정이다. 같이 가는 대신, 절반은 함께 절반은 혼자 지낸다고 선언했다. 처음 침잠을 선택한 것을 긍정해준 그이기에 이번에도 흔쾌히 승락했다.
조지프 자보르스키의 구절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떠나 혼자 지내면 무슨 의미일까.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는 생활이 반복된다면, 아니,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겠지. 밖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 공간에 나와 책만 있다. 서로 얘기하고 놀고 때로는 윽박지르며, 그냥 있는다. 내 안으로 파고들어 다른 나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허나 밖을 걸어다니며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분명이 큰 의미이다. 구글맵에 의존하지 않고 되는대로 걷는다. 때론 길을 잃고 해매다가 멀리 걸어오는 타지인에게 물어물어 다시 아는 곳으로 돌아온다. 모르는 사람, 모르는 길, 모르는 광경.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상황들이 덮쳐오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여행의 맛이다. 그대로 우리 인생의 예견이기도 하다. 30년 동안 함께 살아온 ‘나의 시간‘이지만 당장 1분 앞만 봐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발걸음이 향하는대로 다니면서 공기와 바람과 풍경과 사람과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긴다. 나를 조금씩 깨닫고, 그렇기에 다른 이가 궁금해지고 그들에게 한발짝이라도 다가갈 수 있는 시간. 멀찌감치 떨어져 타인을 바라보는 시간. 남을 보면서 동시에 나를 알아가는 시간. 그런 시간들이었으면,
좋겠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전보다 조금 더 걷고 싶다. 멋있고 예쁜 광경을 찾으려 애쓰며 주위를 둘러보며 걷지 않고, 그냥 발바닥이 땅에 닿는 그 느낌을 느끼며, 조금 더 걷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왠지 수요일에 도서관을 못 갈 것 같아서 아예 오늘 가기로 했다. 다섯 권을 모두 반납하고 오늘 빌리려 했던 책을 검색한다. 온라인 서평 수업에서 첫 책으로 쓰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전부터 빌리고 싶었던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퇴사학교 글쓰기 수업에 들고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인 김무곤 선생의 <종이책 읽기를 권함>, 총 세 권. 하지만 퇴사학교 글쓰기 수업 신청을 못하는 바람에 마지막 책은 다시 서가에 꽂아두었다. 페미니스트는 100쪽이 되지 않아 그냥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상당히 좋은 책이었다. 다만 책으로 읽기보다는 그냥 테드 강의를 보는 게 좋았을 성싶다. 책과 강의의 깊이, 넒이가 그리 차이나지 않는 듯하다.
아주 쉬운 책이다. 어려운 글 하나 없고 성내는 말 하나 없다. 왜 페미니즘이 필요한지에 대해 조곤조곤 말할 뿐이다. 옮긴이 말마따나 누구를 비난하기보다 모두를 초대하여, 앞으로 이렇게 해보자고 말한다. 책 자체가 워낙 짧을뿐더러 모두 갈무리해도 좋을 책이라 짧게 발췌문만 남긴다.


내가 열네살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우리는 오콜로마의 집에서 무언가에 대해 언쟁하고 있었습니다. 둘 다 책에서 배운 설익은 지식으로 가득 차 있던 때였지요. 논쟁이ㅡ 주제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한참 주장하고 또 주장했더니 오콜로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던 것은 똑똑히 기억납니다. ˝있잖아, 너 꼭 페미니스트 같아.˝
그것은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말투에서 알 수 있었지요. ˝너 꼭 테러 지지자 같아˝라고 말하는 듯한 어조였거든요. (11, 12쪽)

(선략/다른 사람들이 페미니스트에 대해 안 좋은 의견을 말하면 저자가 유쾌하게 반박하고서) 물론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농담이었지만, 이것만 보아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함의가 깔려 있는가, 그것도 부정적인 함의가 깔려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싫어하고, 브래지어도 싫어하고, 아프리카 문화를 싫어하고, 늘 여자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화장을 하지 않고, 면도도 하지 않고, 늘 화가 나 있고, 유머감각이 없고, 심지어 데오도란트도 안 쓴다는 거지요. (14쪽)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목격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아이만 계속해서 반장이 되면, 결국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라도 반장이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럼다˝고 여기게 됩니다.(16쪽)

(선략/남동생 루이스는 지금 시대에 여성인권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이후 둘이 시내에 차를 몰고 나갔다가 한 남자가 주차 공간을 찾아준다) 남자의 유달리 연극적인 몸짓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떠나면서 남자에게 팁을 주기로 했습니다. 나는 가방을 열고 손을 넣어 동늘 꺼낸 뒤 남자에게 건넸습니다. 남자는 내가 건넨 돈을 기쁘고 고맙게 받은 뒤 루이스를 향해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루이스는 놀라서 나를 보며 말했습니다. ˝왜 나한테 고맙다는 거지? 내가 돈을 준 것도 아닌데.˝ 그러더니 루이스의 얼굴에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남자는 내가 가진 돈은 무엇이든지 결국에는 루이스에게서 나왔으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루이스가 남자이니까요. (19쪽)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수치심을 가르칩니다. 다리를 오므리렴. 몸을 가리렴.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여자로 태어난 것부터가 무슨 죄를 지은 것인 양 느끼게끔 만듭니다. 그런 여자아이들이 자라면, 자신에게 욕구가 있다는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하는 여성이 됩니다. 스스로를 침묵시키는 여성이 됩니다. 가식을 예술로 승화시킨 여성이 됩니다. (37쪽)

젠더는 대화하기 쉬운 주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주제를 불편하게 여기고, 심지어는 짜증스럽게 여깁니다. 남자도 여자도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리며, 혹은 젠더 문제를 성급히 부정해버리려고 합니다. 현 상태를 바꾸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란 늘 불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쓰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안되나요?˝ 왜 안 되느냐 하면, 껏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ㄴ다. 이 문제가 그냥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문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남자들은 페미니즘이란 개념에 위협을 느낍니다. 내 생각에 그런 반응응 남자아이들이 자라면서 받았던 교욱, 즉 그들은 남자니까 ˝당연히˝ 우위를 차지해야 하며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그들의 자존감이 훼손될 거라는 가르침이 야기한 불안감 탓입니다. (43, 44쪽)

남다든 여자든, 맞아, 오늘날의 젠더에는 무제가 있어, 우리는 그 문제를 바롲바아야 해, 우리는 더 잘해야 해, 하고 말하는 사람이라고요. 여자든 ㄴ마자든,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52쪽)

(옮긴이의 말에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왜 오늘날 새삼스레 페미니스트 선언이 필요한지를 말하는 책이다. 더구나 그 선언을 더없이 다정하고 유쾌하게 말한다. 누구를 비난하기보다 모두를 초대하여, 앞으로 이렇게 해보자고 말한다. 어느 나라, 어느 문화, 어느 연령의 사람에게든 일말의 껄끄러운 마음 없이 선뜻 건넬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어느 성의 사람에게든. (91, 9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