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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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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 나를 찾아줘 - 길리언 플린 (푸른숲, 2013)


(스포일러 포함)


  사실 책 제목은 별로였다. 출간 직전, 길리언 플린이라는 이름을 수없이 들었어도 딱히 읽을 생각이 들지 않는 책이었다. 때마침 데이빗 핀처감독 - 영화 장르 : 핀처! 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만들어내는 대단한 감독이 소설을 기반한 영화를 제작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뭐, 그래도 책을 볼 생각은 안 들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의 소름돋는 연결을 보고선 책이 너무 읽고 싶었다. 홧김에 전자책으로 사서 그 자리에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에이미가 실종되고 닉이 범인으로 몰리는 전반부와, 에이미가 어떤 일을 꾸몄고 겪는지 묘사하는 후반부로 나뉜다. 영화는 두 부분의 재미를 적절히 나누어 치우침이 적은데, 소설은 전반부가 후반부에 비해 읽는 재미가 떨어진다. 영화를 본 뒤 소설을 읽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중간에 에이미의 어이없는 트릭을 기점으로 이야기가 반전되는데, 사실 이 부분은 소설이나 영화나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고 ‘아, 그랬구나. 충분히 납득할 만하네’라는 인상을 줄 뿐이다. 오히려 서사적 압축을 통해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한 것은 영화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소설은 겉으로 소시오패스의 면모를 보이는 에이미와 그에 붙들려 한껏 고통받는 닉의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를 표현한다. 이야기를 끝없이 전복시키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다. 많은 감상이 소시오패스의 어처구니없는 복수와, 언론의 부당한 이미지 메이킹에 대해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소설의 근간은 에이미다. 물론, 날것의 그녀가 아닌 만들어진 그녀다.


  영화에서는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 소설에서의 에이미는, 부모님이 자신을 모델로 하여 쓴 ‘어메이징 에이미’ 시리즈와 비교당하며 산다. 만약 현실의 에이미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 소설 속 에이미는 그런 일에는 하나도 주눅들지 않고 새로운 교훈을 얻고, 독자에게도 교훈을 준다. 그럴수록 현실의 에이미는 주눅들어가고 자연히 열등감이 쌓일 수밖에 없다.


  물론 에이미가 닉에게 한 짓은 결혼 후 닉의 모습이 너무나 실망스러워서 벌인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닉이 ‘어메이징 에이미’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변해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구보다도 소설 속 자신을 미워하던 그녀였지만 정체성을 잃고 오히려 어메이징 에이미가 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다.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었던 가상의 캐릭터였건만, 결국에는 자신이 직접 ‘어메이징 에이미’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에이미의 모습이 못내 슬프다.


  이 이면에는 세상에 대한 복수도 엿보인다. 에이미를 에이미 자체로 보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진짜 -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이것이 소설이 담은 이야기다. 평생 가짜의 삶에 살던 이가, 세상을 향해 이게 진짜 나라고 외치는- 처절하고 슬프고 절절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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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의 역사
프레데리크 루빌루아 지음, 이상해 옮김 / 까치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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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6. 베스트셀러의 역사 - 프레데리크 루빌루아 (까치글방, 2014)


베스트셀러에 대한 간단한 소고.


1. 사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에게 베스트셀러를 권하면 다들 손사래를 친다. 자기는 많이 팔리는 책보다는 나만의 책을 읽겠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맞다. 대중에게 잘 읽히는 대부분의 책은 다소 읽기 쉬운 면이 있다. 프랑스 콩쿠르상도 처음에는 많이 팔리는 책을 배제했다고 한다. 많이 팔린 책은 그들에게 실패작과 마찬가지였다. 지금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이런 의견이 일면 수긍가기도 한다. 어른을 위한 색칠놀이라든가 가계부 쓰는 법에 관한 책이 상위권에 있는 목록을 보자니, 대체 이 사람들은 뭘 보고 이런 책들을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와 반대도 있다. 대중이 잘 받아들이는 책은 과연 수준이 낮은 책인가? 베스트셀러는, 엘리트 순혈주의와 대중 중심주의를 적절히 혼합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적당히 고귀하고, 적당히 천박(?)한.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다.


2. 베스트셀러의 장점은 지금 이순간 사회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힐링류가 판치던 시절에는, 분명 우리가 힐링을 간절히 바라고 무언가 바로잡아지길 바랐다는 점이 확연히 보인다. 또한 비교적 쉬운 책 읽기가 가능해 독서에 첫걸음을 딛게 도와준다. 많은 이들이 읽는 책이라면 그만큼 대중의 시야에 맞는 책이란 뜻이고, 이는 누구든 그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그냥 책 고르기 쉽게 만들어준다. 딱히 고민할 필요 없이 남이 고른만큼만 딱 고르면 된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진짜 엘리트라면, 베스트셀러를 무조건적으로 배척할 게 아니라, 그에 관련된 더 좋은 책을 추천해주면 된다.


3. 베스트셀러의 단점은 여럿 있지만 저질스런 상품화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밖에 만드는 것이 가장 심각하다고 본다. 특히 요새는 마케팅이 판치는데, 이는 한번 베스트셀러에 들면 노출효과로 계속 팔리기 때문에 어떻게든 베스트셀러 목록에 책을 올려놓고 싶어한다. 사재기가 가장 저렴하면서도 잘 먹힌다. 나처럼 책을 가늠하는 눈이 낮은 사람은 베스트셀러라는 존재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책 좀 읽는다는 말을 듣고는 싶은데 주변의 많은 이들이 한 책을 샀다고 한다면 나도 거기에 질새라 책을 사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 책은 누가 샀는지는 알 수 없고 그저 판매량에 기인한 베스트셀러 목록으로만 보여지기에, 결국 나는 그 목록에 놀아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 같은 소비자들이 많기에 한번 목록에 올라가면 쉬이 내려오지 않는다. 좋든 나쁘든 한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면 호기심에서라도 그 책을 한번 더 쳐다보기 마련이다.


4. 베스트셀러 목록은 책을 그저 그런 상품으로 전락시킨다. 문학적 삶을 돈만 지불하면 누구나 끼어들 수 있는 스포츠 경기로 제시해버린다. 누가 좋은 책을 출간하느냐가 아닌, 누가 많이 팔리는 책을 내느냐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베스트셀러를 쭉 보면 알겠지만, 많이 팔린다고 좋은 책은 아니고 좋은 책이라고 많이 팔리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이 팔기 위해 매번 똑같은 인물, 비슷한 배경과 주제, 사건을 가지고 책을 내봤자 잠깐일 뿐이다. 그렇게 ‘생산된’ 베스트셀러는 신속성을 특징으로 하기에 결국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게 된다. 이런 특징이 가장 강한 작가는 기욤 뮈소다. 판타지 멜로 장르를 널리 퍼뜨린 건 정말 칭찬할 만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매번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구성은 정말 참을 수 없다. 이는 내가 연애를 안하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5. 미국에서 오프라 윈프리가 마케팅의 저력을 강하게 보여주었다면, 요즘에는 규모가 큰 쇼보다는 작은 입소문이 꽤나 강하다. 트위터나 블로거들이 유명세를 타니 그들에게 서평을 맡기는 일도 파다하다. 영상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드라마셀러나 스크린셀러 등도 등장한다.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툴레인 어쩌고의 책은, 사실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런 동화책을 읽을 시간에 고전이나 인문학서적을 하나라도 더 쳐다보리라는 굳건한 의지만 다져주었다) 마케팅은 더더욱 마이크로화해져서, 요샌 팟캐스트도 출판계에 꽤나 큰 영향을 준다고 한다. 특별히 기억나는 예. 빨간 책방에서 다룬 이언 매큐언의 <속죄>인데, 알라딘에서 이를 노린 건지 아니면 그냥 때가 맞았던 건지 딱 반값 세일을 하면서 출간된 지 몇 년 된 소설이 베스트셀러 1위에서 한참 논 적이 있다. 모순적이지만 이번에 읽은 <베스트셀러의 역사>도 역시 빨간 책방에서 다룬 책이다. 세일즈 포인트가 2,000을 조금 넘긴 것으로 보아 빨책의 영향도 조금은 있다고 생각한다. 아, 역시 이동진의 힘이란. (음?)


6. 누군가 추천해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는 건, 독자가 책을 고르는데 주관이 다소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때까지 소수만 읽던 좋은 책을 읽게 만들거나 적어도 사게 만든다는 장점도 분명 존재한다. <속죄>는 분명 이언 매큐언의 걸작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영화가 유명세를 탔어도 책은 잘 팔리기에는 다소 대중적이지 못했다. (이는 판형과 편집, 그리고 책의 두께가 한몫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이 참 재밌고 생각할 거리도 많았던 책이오, 하고 이동진과 김중혁이 추천하니 많은 사람들이 아, 이런 책도 있구나, 책을 한번이라도 더 들춰보게 된다. 물론 소문이 만드는 파급력은 엄청나기 때문에 그 결과는 좋고 나쁘게 확연히 갈릴 수 있지만, 독자가 생각하던 책의 진입장벽을 조금 허무는 꽤나 큰 장점이 있다.


7. 그런데 이런 추천사가 독자를 속물로 만들 때가 있다. 속물 독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읽고 사유하거나 탐미하려는 생각이 적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취향에 맞는 책을 산다. 특히 엘리트들의 눈치를 많이 본다. 책을 사서 읽고 싶은 게 아니라, 책장에 책등이 잘 보이게 예쁘게 꽂아둔다든가, 근사한 식사 자리에서 화제에 올리기 위해 그저 장서해둘 뿐이다. 독서에 대한 기만이고, 자신에 대한 확실성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독서에 대한 자기방어에서도 드러난다. 어떤 기사에서 말하길, 고전은 지금 읽는 책이 아닌 ‘다시 읽고 있는 책’이다. 절대 처음 읽는다고 말하면 안된다. 그러면 남들이 자신을 엘리트가 아니라고 생각하리라 여기기에.


8. 호기심과 속물주의가 적절히 섞이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 절대 읽히지 않는 베스트셀러가 탄생한다. (이는 스테디셀러도 포함되는데, 사실 스테디셀러라고 해봐야 꾸준히 팔리는 베스트셀러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는 아마 많은 가정집 서가에 꽂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5%도 채 안된다고 한다. <시간의 역사>가 가진 불명예는 이번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출간되면서 옮겨가지 않았을까. 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은 죄다 이 책을 사는 게 유행이 되어버렸다. (물론 나도 샀다) 800쪽이 넘는 이 책, 과연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읽었을까. 이코노미스트는 이 책을 ‘마르크스보다 크다(Bigger than Marx)’고 광고했는데,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얼마나 읽었을까.


9. 베스트셀러에 대해 짤막한 생각을 써봤는데 글쎄, 결국 마무리는, 알아서 잘 봐라다. 베스트셀러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읽든 안 읽든 어차피 독자 마음이다. 읽으면 어떠리 안 읽으면 어떠리, 읽는다고 멍청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맘 가는대로 읽으면 장땡이다. 어차피 책이야 읽는 재미만 주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거기서 교훈을 얻는 건 독자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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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위조사건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8
조 홀드먼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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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 헤밍웨이 위조사건, 조 홀드먼


(스포 있음)


  확실히 흥미로운 소설임은 인정해야겠다. 무거운 마음을 환기시키고자 잠깐 들었는데,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으니 말 다했다. 작은 판형에 다소 큰 글씨, 250쪽으로 중편소설분량이지만 이토록 집중력있게 읽은 소설은 오랜만이다.


  이야기는 사기 공모로 시작한다. 헤밍웨이의 아내는 한 기차역에서 그의 초기작품을 모두 도난당한다. 잃어버린 원고를 위조해서 떼돈을 벌어보려는 사기꾼 캐슬, 영문학자 존 베어드, 존의 아내 리나, 그리고 도발적인 팬지가 등장한다.


  1/3까지는 사기 사건일 뿐이다. 존은 헤밍웨이가 초기에 쓰던 타자기를 구하고, 타자기 글씨의 미묘한 배열, 그의 소설적 습관까지 흉내내어 이야기를 지어낸다. 평이하게 나가던 이야기는 존 앞에 나타난 헤밍웨이에 의해 순식간에 SF로 흐르게 된다.


  존이 가짜 원고를 완성하고 세상에 내놓는 순간, 세상에 정해져 있던 미래가 달라지는 문제가 생긴다, 고 헤밍웨이는 말한다. 아마 이 헤밍웨이는 시간선의 질서를 지키는 ‘무엇인가의 존재’인 듯 보인다. 헤밍웨이는 미래를 제대로 돌려놓고자 존을 죽인다.


  하지만 존은 그도 모르고 헤밍웨이도 모르는 이유로 다른 시간선에서 부활한다. 부활은 아니고, 일종의 평행우주에서 존재하는 다른 ‘존 베어드’로 깨어난다. 거기서 다시 헤밍웨이를 만나고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는 또 다른 우주로 넘어간다. 과연 존은 원고를 완성할 수 있을까. 모든 우주에서 그가 죽는다면 그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헤밍웨이라는 실존적 인물과 아내가 원고를 잃어버리는 실제 사건을 적절히 버무려 몰입감 있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존이 다른 우주로 갈 때마다 달라지는 자신의 과거와 주변 인물들을 비교하는 것도 한 재미다. 특히 시간을 거슬러 진실(?)을 되감기 형식으로 표현하는 후반부의 24장이 백미다.


  어려운 설명 없이 흘러가기에 약간은 소프트한 SF소설로 구분할 수 있다. 평행우주 개념도 적절히 사용했다. 다만, 결말부가 조금 붕 뜬 느낌이다. 해설이 아니었으면 결말을 조금 해석하기 힘들다. 소설 안에서 설명과 묘사가 조금 부족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사람들이 SF를 어려워하고 즐기기 쉬운 스페이스 오페라만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텍스트 자체가 주는 힘은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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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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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그나마 아는 사실을 풀어쓸만큼 재주가 있지도 않다. 그래서 간단한 소회만 남긴다.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편 건,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지 정확이 200일이 된 날이었다. 연인들이 그토록 챙기는 200일 기념일과는 달리, 아픈 소식을 기리는 특별한 날을 머리에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날 저녁, 티비에서 흐르는 영상을 쳐다보지 않고 꾸역꾸역 밥을 넘기기에 바빴다.


  사실 외면하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눈물 흘리기 싫다고, 지겹다고, 그리고 무섭다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치며 눈을 감고 귀를 막기 일쑤였다. 이제 무엇이 주(主)가 된지 모를 정도로 무관심해졌다. 사실, 그랬으면 안됐는데 말이다. 사고가 나서 자신들이 위험에 처한줄 뻔히 알면서도, 아이들은 미안하다고, 했다. 살기 위한 이기심이 아닌, 남겨질 자들을 위한 위로의 한마디였다.


  미안하다는 영상을 봤을 때도 그랬지만, 소설가 황정은이 쓴 글 속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다시 봤을 때 눈물이 흘렀다. 기숙사 휴게실에서, 다 큰 남자가, 그것도 눈물 몇 방울 찔끔 흘린 게 아니라 울음을 참기 힘들어 꺽꺽거렸다니, 이런 추태가 다 있는가. 울음은 그칠 수 없었다. 십여 분이 지나서야 감정을 추스르고 가까스로, 글을 계속 읽었다.


  표제작인 소설가 박민규의 ‘눈먼 자들의 국가’는 문학동네 팟캐스트에서 낭송되었다. 일부러 찾아듣지 않았기에(바로 위 문단의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음이다) 어떤 분위기였는지 알 수 없지만 매우 차분했을 것이라 예상한다. 박민규의 전작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어떤 의미로 평이하다. 감정을 거의 배제하고 사실관계(라고 추정되는 사실)로만 쓰인 글이기에 더욱 가슴 저민다. 이번 일을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이 글이 빛을 발한다. 차분함을 가장한 슬픔과 분노 사이에서 통킹만 사건을 언급하며 중의적 표현을 하는 위트도 발휘한다.


  니체를 인용한 시인 진은영의 글도 생각해볼 만하다. 니체는 고통받는 이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대신 그 고통 앞에서 수치심을 느리라는, 상식적 관점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말을 한다. 슬픔을 같이 이해해주는 것이 연민 아니던가? 하지만 고결한 자와 비교했을 때 연민의 정을 가진 선한 자는 자기 역량의 최소치만을 사요한다. 니체는 이런 도덕주의자들을 “마비되어 더이상 힘을 쓸 수 없는 그런 무기력한 앞발을 갖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이 선하다고 믿는 그런 겁쟁이”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바로 이 점에서 미디어를 통해 사건을 보고 느끼고(사실 느낀다고 믿는) 눈물 흘리는 이들이 무능력함을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황종현은 사고 이후 한참 유행했던 노래 ‘천개의 바람이 되어’에 대해 불편한 시각을 내보인다. 이 노래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사멸하지 않았음을, 오히려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노래다. 모종의 순진성을 띈 이 노래를, 임형주는 미성으로 순수하게 부르지만, 사실 세월호에 탑승했던 학생들이 당한 사고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불분명해서 당혹스럽다고, 황종현은 말한다. 우리는 이 노래를 함께 듣고 대중의 슬픔에 동참하여 그들을 편안히 보내주려고 자신을 설득하는 건 아닌가? 니체가 말한 연민을 갖고 말이다.


  책의 앞은 작가들로, 뒤는 학자들로 구성되었다. 다소 읽기 쉬운 글들로 몰입시키고 감정을 고조시킨 뒤, 머리를 식히고 차분한 시각으로 세월호를 보는 형식을 취한다. 250여쪽이 되지 않는 얇은 책이지만, 안에 담긴 무게는 세월호에 마구 적재된 짐들과, 아팠던, 그리고 아픈 이들의 마음에 비하지 못한다.


  박민규의 글 마지막을 곱씹으며 마치자.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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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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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근래에 근사한 영화관련 도서가 두 권이나 출간되었다. 하나는 소설가 김영하의 <보다>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하 실험)이다. <보다>는 책 소개에는 써있지 않지만 보고나니 글의 출저가 대부분 영화잡지 씨네21인 듯했다. 이에 나는 출판사(문학동네)와 홍보담당자에게 엄청 분노한 바 있다. 물론 김영하의 글은 그 자체로 매우 좋다. 다만 씨네21 구독자로서 왠지 모를 화가 날뿐이다. (사실 전작 <살인자의 기억법>에 대한 실망과 분노도 한몫 했다) 다행히 <실험>은 <보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소개부터 씨네21발 글임을 알린다.


굳이 두 책의 만족도를 말하자면, 나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겠다. 다시 말하지만 김영하의 글이 싫었다는 뜻이 아니다. 김영하도 나름대로 재밌는 글을 썼다. 직업이 소설가여서 그런지 전에 봤던 산문과는 언뜻 다르게 다가온다. 이전에 읽었던 산문은 보통 생활이나 문학, 문화을 말했지만 <보다>는 익숙한 영화에 대한 글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반면 신형철은 그와 전혀 반대의 글을 써냈다. 씨네21을 구독한 지 벌써 4년이 다되어가는데 신형철의 글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아마 조그마한 아이패드 미니로 조그마한 글씨를 보자니 눈이 아파서 멋대로 페이지를 넘겨버렸는지도 모른다. 김영하에 비해 축 처지고 무거운 글이다. <보다>가 영화를 다소 다르게 읽었다면 <실험>은 깊게 파고든다. 자신은 문학평론가기에 영화의 서사를 주로 다루겠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야기와 서사의 흐름, 인물 사이의 상징에 대해 쓴다.


(저자는 평론이 아니라고 했지만)평론집에 대해 독후감을 쓰자니, 저자가 이미 헤쳐놓은 영화에 대해 딱히 분석할 거리도 없고 능력도 없기에 더 이상 글을 길게 쓰기란 무리다. 어쩌겠는가, 나는 이리도 바보멍청이인 걸...  여튼, 근래에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고 진도가 빨리 나간 책이다. 어렵다고 한 독자들이 많은데 아마 소개된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몰라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말이 나와서, 책에 소개된 영화를 말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1부 - 사랑의 논리 : <러스트 앤 본> <로렌스 애니웨이/가장 따뜻한 색, 블루> <시라노; 연애조작단/러브픽션/건축학개론/내 아내의 모든 것> <케빈에 대하여> <아무르>

2부 - 욕망의 병리 : <피에타> <다른나라에서> <뫼비우스> <우리 선희> <멜랑콜리아> <테이크 셸터>

3부 - 윤리와 사회 : <더 헌트> <시>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 <늑대소년> <설국열차>

4부 성장과 의미 : <스토커> <머드> <라이프 오브 파이> <그래비티> <노예12년>

5부 - 부록 :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 <사랑니>


(책이든 영화든)메타북을 재밌게 보기 위해선 그 주제에 대한 관심이 커야 하고, 소개된 작품들을 많이 감상할수록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책 선택은 매우 좋았다. 반 정도의 영화를 봤으며 나머지는 스토리 요약이나 평론이라도 보아서 흥미를 가졌던 작품들이었다. <케빈에 대하여>나 <아무르>, <스토커> 글은 내가 생각한 것을 더 보강시켜주다. 영화를 보고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피에타>나 <다른나라에서>, <멜랑콜리아> 글은 영화를 깊게 해석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보지 못한 영화라도 글을 읽다보면 마치 영화를 모두 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저자가 워낙 스토리 소개를 잘하기도 했거니와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 분석을 해줬으니, 사실 새끼 새마냥 입만 벌리고 먹이가 입에 들어오기만을 바라면 될 정도다. (사실 이는 메타북의 최대 단점이기도 하지만 다행히 영화를 가지고 거들먹거리는 일은 이 세상 거의 없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보다>와 함께 읽을 만한 책이다. 색다른 시선을 원한다면 <보다>를, 조금 더 깊고 심각한 시선을 원한다면 <실험>을 추천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당신이 이 두 책의 존재를 안 순간 한 권을 취사선택할 수 없음을. 결국 두 권다 볼 것임을, 내 장담한다.


※ 나 혼자였으면 읽지 않았을 책인데(신형철이라는 저자의 무거움과 제목의 불가해성이 가장 큰몫을 했다) 책 모임에서 한번 읽어보자 했더니, 오 웬걸, 나에게 이렇게 잘 맞는 책이 있는가 했다.덕분에 평론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의지도 심어주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쓴 첫 글이 이따위 수준의 독후감이라니! 오호 통재라) 신형철에 반해 저자의 전작 <몰락의 에티카>를, 평론과 비평에 반해 노스럽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나 비평집(이번에 산 백지은 비평집 <독자시점>)을 읽을까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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