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토마스 산체스 그림, 박미경 옮김 / 다산초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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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놓을만한 좋은 문장이 많으나 마음 깊숙히 다가오지는 않는다. 마음이 성장하려면 아직 먼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제 안에선 늘 뭔가 부족하다고 솔살거리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말귀를 못 알아듣거나 실수를 저지르는 등 당황하거나 멍청한 짓을 저지를 떄마다 그 목소리는 더 커졌습니다. 반면에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는 잠잠해졌고요. 당시에도 저는 그게 저라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소산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자란 세상에서는 가혹한 내적 비평가의 끊임없는 불평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의도치 않게 지극히 사소한 실수를 저지를 때조차 가차 없이 비난을 던지는 목소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죠. 이런 환경의 사람들은 자신이 기대에 비해 부족하다는 느낌과 언젠가 그 부족함을 남들에게 ‘들킬 것 같은’ 두려움을 안고 살며, 다른 이들이 자기 실체를 알면 경멸당할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본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갖은 요령을 부립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당연히 주변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끼치지요.

명상을 진지하게 시도해보면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분별 있고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일지라도, 알고 보면 대부분 사고 과정이 이리저리 날뛰는 서커스의 원숭이처럼 제멋대로 오락가락하는 생각들로 이뤄져 있다는 걸 말입니다. 많은 이가 명상을 처음 시작할 때는 마음이 금세 고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잠깐 동안은 그럴 수 있지만, 정말 잠깐뿐입니다. 죽은 사람의 마음만이 계속해서 고요할 수 있지요. 살아 숨 쉬는 한 우리는 두뇌를 쓰기 마련인데, 본래 어떤 안을 구상하고 그 안을 다른 안과 비교해서 새로운 안을 재구성한 뒤 그것에 또다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두뇌의 일이니까요.

우리는 인간이 지식에 도달하는 방식이 한 가지 이상있다는 점을 자꾸 잊어버립니다. 이성이 우리의 도구함에 들어 있는 유일한 도구가 아니라는 점도 자꾸만 간과하게 됩니다. 저는 이성이 별 의미 없는 특성이라거나 덜 중요한 능력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성은 우리에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을 수없이 제공했습니다. 기술, 과학, 의료, 민주주의, 평등 등 소중한 발상과 체제가 만들어지는 원천이지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성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지식에 도달하고 결정을 내리기 위한 다른 방식도 있습니다. 바로 영감의 순간입니다. 불교도들은 이를 지혜라고 부릅니다. 아울러 그들은 명상과 지혜는 확고하게 이어진다는 것을 합니다

지식은 자신이 아는 것을 자랑한다. 지혜는 자신이 모르는 것 앞에서 겸손하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스님의 손바닥 안에 있었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다들 숨죽이고 스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요. 스님은 몸을 살짝 내밀더니 극적인 효과를 내려고 한 번 더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습니다.
"자, 다들 그 주문이 뭔지 궁금하시죠?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훗날 태국을 떠나 영국의 어느 사원으로 옮겼을 때, 저는 누군가와 사소한 일로 언쟁을 벌였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훌륭한 아잔 수시토 주지 스님이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옳다는 것이 결코 핵심이 아니라네."

통제 욕구를 내려놓고 당면한 상황을 의식하려면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기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상당히 벅찬 일입니다. 인간은 본래 무엇이든 알고 싶어 합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충동이지요. 앞날을 알 수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불안을 느끼면서 행동 또한 경직됩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엄청난 불확실성 속에 살아가면서도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척합니다. 일이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과 예상에 집착하고 필사적으로 그렇게 되기를 고대하지요. 물론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 삶을 미리 계획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는 것과 그 계획이 반드시 결실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오래된 종교와 영적인 전통이 우리가 언젠가는 죽을 운명임을 기억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삶 속에서 결정을 내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할 때도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을 늘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살아가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그리고 내일은 그보다 더 많이. 인생은 짧습니다. 우리가 그 점을 진정으로 이해할 때, 우리가 그 사실을 마음으로 깨달을 때, 상대를 내 뜻대로 휘두르려고 하지 않을 때, 지금 누리는 것들을 당연히 여기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은 지금과 달라질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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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공장 블루스 - 매일 김치를 담그며 배우는 일과 인생의 감칠맛
김원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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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는 대기업 카피라이터로 10년을 일했다. 일반 회사원도 아니고 카피라이터니, 자기만의 능력이 있을테니 퇴사 후 프리랜서로 일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그가 회사를 나간 후 선택한 직장은 무려 김치 공장이다. 힙한 동네 이태원에서 일하던 그는, 이제 멧돼지와 고라니가 뛰어노는 파주’읍’ 부곡’리’로 출근한다.



2. 대기업에서 김치 공장이라니 각오가 대단하네. 라고 생각했건만 웬걸, 어머니가 사장님이란다. 그러니까, 속된 말로 공장 후계자가 되기 위해 낙하산 취업을 한 것이다. 사원, 과장을 뛰어 넘어 바로 부사장으로 말이다! 이 부분에서 한번 갸우뚱 했다. 뭔가 사연이 있겠지, 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 의문은 풀리게 됐으니…



3. 그 사연은 책을 읽어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2023년, RHK 출판사에서 발매된 핫한 에세이, 절찬리 판매 중!



4. 재벌 2세들이 가업을 잇기 위해 경영수업을 하듯이, 저자도 부사장 직급을 달고 있다 하더라도 저 아래 직급의 일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간다. 자기 손으로 사업을 일궈낸 어머니의 경험을 허투루 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아침에 현장에서 절임실과 세척실을 연결하는 작은 구멍에서 쏟아져 나오는 배추를 건진다. 하루에 오이 3천개, 열무 7백단을 자르고 썬다. 8년 동안 16만 킬로를 뛴 작은 아반떼로 배달을 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바닥에서 열심히 구르는 중이다.



5. 힘든 업무에도 저자를 지탱해주는 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인 부장, 팀장들과, 외국인 현장 근로자의 이야기들. 사장님과 오랜 시간 회사를 함께 일궈온 직원들의 이야기는 소소하면서도 참 특별하다. 특히 기숙사 친구들(저자는 외국인 근로자를 이와 같이 칭한다)의 에피소드가 참 재밌다. 일상적으로 겪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 반제품들을 저장하는 냉장창고는 귀여움의 각축장이다. 외국인 작업자들이 써둔 이름표들 때문이다. 까르상이 붙여둔 특선 겉절이 양념 이름표에는 ‘특산 같자리 양념’이라 쓰여 있고, 바타는 보쌈 양념에 반듯한 글씨로 ‘보삼 얌념’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가나는 포장지 박스에 ‘너나없이 잘합ㅅ다’라고 써놨다. 수딥은 한국말을 잘하면서도 휴가계를 낼 때는 꼭 사유에 ‘아프다’라고 적어서, 먹고살이의 고됨을 강조하는 것 같다.  _44,45쪽


다소 서툰 한국어마저 귀엽고, 수딥의 고됨의 강조는 정말, 외국인의 한국어 언어 구사 능력을 떠나서 그냥 감각이 좋아 보인다.


공장에서 양념을 담당하는, 저자보다 네 살 적은 바타는 저자에게 누나라고 칭한다. 외국인들은 누나를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여성을 부르는 통칭’으로 알고 있을 것 같다는 그럴싸한 이론. 그런데 웬걸, 스물 여섯의 품질팀 대리는 현장에서 이모라고 불렸다면서 한탄한다. 하하, 빵 터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6. 저자에게 힘을 주는 다른 존재는, 사장님인 자신의 어머니다. 공장을 힘겹게 성장시킨 엄마의 이야기는 저자를 시큰하게 만든다. 빚도 지고, 잘못된 결정을 하기도 하면서도 뚝심있게 자리를 지켜온 사장님. 제주도 출신인 엄마는 열네 살에 출도했고,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도 공장을 비우지 못하고 절박하게 공장을 운영했다(258쪽). 엄마의 청춘과 인생이 모두 담긴 공장을 이어 받는 저자의 마음은 어떠할까. 감히 상상할 수 없다.


> (사장님, 즉 엄마와의 인터뷰에서. 엄마 왈,)

> 나는, 아주 멋지게 살 거야. 앞으로 더 멋지게 살 거야. 영어도 배우고, 피아노도 배우고, 더 많은 사람들 도와주면서 정말 멋지게 살아볼 거야. 

> 원재야, 너도 멋지게 살아.



7. 읽는 내내 흐뭇했다. 우악스러우면서도 반듯한 사장님,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때론 달리는 차 안에서 울기도 하는 부사장(저자), 공장과 기업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데 버무려져 맛깔난 글이 완성됐다. 그들의 정성이 잘 발효되고 숙성되어 맛있는 김치 같은 시간이 펼쳐지기를 기원해본다.



8. 나는 김치를 사먹지 않는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들이 만드는 김치라면 한번 먹어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저자가 다니는 업체명을 이 글에 남길 수는 없겠고, 책을 들춰보시면 나오니까 한번 열어보시길.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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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
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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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스칼 키냐르의 전작 <음악 혐오>는 읽기 꽤나 어려운 책이었다. 당시 책의 홍보문구를 보고 지적 허영심에 취해 샀는데, 문구는 이렇다.


> ‘음악 혐오’라는 표현은 음악을 그 무엇보다 사랑했더 니에게 그것이 얼마나 증오스러운 것이 될 수 있는지를 말하고자 한 것이다.


공쿠르 상 수상 작가인 파스칼 키냐르가 말하는 음악의 시원과 본질이라며. 음악이 잉태된 곳에 관한 깊은 밤의 몽상이라며. 아니었다. 이 책은 음악으로 시작해 문학, 역사, 철학, 그리고 대체 알 수 없는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에세이였다. 책을 읽기는 읽었으나, 내 머리에는 책 제목과 저자밖에 남지 않았다. 어떤 강렬한 인상과 함께.



2. 솔직히 말해볼까. 사실 이번에 읽은 책인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이하 ‘수사학’)도 이해를 1도 못했다. 하나도 못한 게 아니라, 정말 1도 못했다. 전작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 때문에, 내 주제도 모르고 이 책을 고른 것이다. 문학과 말을 다룬다길래 냉큼 폈는데 웬걸, <음악 혐오>와 마찬가지다. 말로 시작해 문학, 역사, 철학, 그리고 대체 알 수 없는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에세이다.



3. 위키피디아는 수사학을 설득의 수단으로 문장과 언어의 사용법, 특히 대중 연설의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흔히들 대중연설과 언어적 레토릭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키냐르의 수사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에서 수사학을 단순히 말의 기술이라고 칭할리는 없다.


저자는 언어의 의미를 여러 갈래로 말한다. 단순히 수사학을 설명하기도 하고, 언어-기호-세계로 이뤄지는 여러 관계를 말한다. 하지만 문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언어와 문학 작품의 미학적 가치를 말하는 부분에 눈이 갔다.


> 문학인은 자신을 언어 체계와 동일시하지 말아야 하고, 특유의 지방어와도 동일시하지 말아야 하며, 발아 상태의 언어, 태초 종자, 문자, 언어의 문자적 실체, 문학적인 사물과 동일시해야 한다.  _30쪽


> 위대한 시인이나 위대한 산문 작가는 몰아지경의 말을 찾는다. 절정에 이른 언어는 thauma(놀람, 감탄)와 ekstasis(황홀)를 뒤흔들고, 생각에 빛의 감각을 안긴다.  _49쪽


> 소설은 언어로 만들어진 세상이 아닌 다른 무엇을 담는다.  _129쪽


소설과 에세이를 읽다보면 정말 헉, 하는 부분이 종종 있다. 장면을 세세히 그려내겠다는 의지로 묘사로 똘똘 뭉친 문장. 작품 속 인물, 배경, 그리고 독자인 나까지 한번에 꿰뚫는 통찰력 있는 문장. 뾰족하지 않지만 세심하게 말을 건내고 나를 감싸주는 문장.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내가 평소에 쓰는 일기는 무엇인가, 싶다. 오스카 와일드는 자기 일기만큼 재밌는 글이 없다고 하는데 말이다.



4. 거진 2주를 읽었지만, 언어와 문장을 섬세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부분 말고는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해하지 못한 채 읽기를 끝냈는데 뒤늦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울림이 느껴지더라는 독자가 있다는데(11쪽), 아쉽게도 나는 이 부류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사실 이 책을 그만 읽고 싶을 때도 많았으나 한글자 한글자 우겨넣듯이 읽었다. 


> 이해하지 못한 채 읽기를 끝냈는데 뒤늦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울림이 느껴지더라는 독자도 있고, 간혹 독서를 도중에 포기하는 독자도 보인다. 우리는 대개 길을 잃을까 겁낸다. 도로에서건 독서에서건 기를 써서 길을 잃지 않으려 든다. 리베카 솔닛은 <길 잃기 안내서>에서 길을 잃는 건 우리가 모르던 것을 발견하는 방법이라고 역설적으로 말한다. 우리가 길 잃기를 겁내지만 않는다며, 모든 걸 파악하고 출구를 찾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내려놓고 거닌다면 미궁도 평온한 산책로가 될 수 있다.  _11쪽


책 안에서 뱅뱅 도는 2주였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공부하듯 연필을 들고 줄을 치고 종이를 접으며 열심히 읽었다. 다소 쉬운 책을 선호해서 책 안에서 길 잃기에 익숙하지 않다. 보통 책을 포기하고 말지. 하지만 이번에는 끈질기게 읽어봤다. 불가해한 부분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노트에 옮겨 적고 싶은 문장을 꽤 건졌다. 좀 더 정진하고, 다시 읽어봐야겠다. 한번 길 잃어봤으니, 이번에는 해매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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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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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까뮈의 <이방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첫 문단이다. 제목도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 대부분 손석구가 출연한 ‘나의 해방일지’를 떠올릴테다. 북토크에서 작가가 말하길, 편집부에서 의도가 빤히 보이는 제목을 권해서 조금 싫었다고 한다. 소설의 소재와 다르게 책 표지는 둥글둥글하고 가볍게 그려졌다. 독자들에게 조금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2. 소설 초장부터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은 아버지는 혁명전사다. 지금 나로서는 무슨 중2병 같은 이름이 있나 하겠지만, 아버지 ‘고상욱’은 실제로 빨치산으로 생활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동지들과 죽음을 무릅쓰고 총을 들고 투쟁한 것이다. 심지어 아버지의 딸이자 소설 속 화자의 이름인 ‘아리’는 부모가 활동한 산 이름에서 따왔단다(아빠 - 백아산, 엄마 - 지리산).
젊은 나이에 감옥에 수감됐다가 출소 후 고향인 구례로 내려온 아버지는 농사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농부이자 전직 빨갱이인 그는 노동이 힘들다며 몰래 빠져나와 막걸리와 소주를 마셔다. 커가면서 ‘나’는 가족에게 고압적인 아버지와 서먹한 사이가 되어 멀어지게 된다. 장례식에서 울지도 않는다. 그렇게 남인 것 같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여러 인물들과 함께 대화하고 과거를 회상하며 아버지의 생을 돌아보게 된다.


3. 라는 게 대충 이야기의 골자다. 상당히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이들에 얽힌 과거 이야기가 서술된다. 단편적이고 다소 진부한 설정들의 이야기여서, 소설 자체로만 보면 솔직히 조금 아쉬운 편이다. 거의 모든 장면이 회상으로만 이루어진, 선호하지 않는 양식이다. 종국에 아버지를 이해하며 마무리되는 결말도 너무 쉽게 풀어지지 않았나 싶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말하나 싶지만, 나도 독자이자 소비자이니 할 말은 해야지.


4. 형식과 틀 이야기를 벗어나, 소설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볼 포인트는 세 가지였다.


5. 가장 먼저, 나는 부모님을 100% 알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부모님과 20년을 한 집에서 살았다. 학창시절에 공부하기에 바빴지만 매일 보는 사이였다. 이리도 가까이 붙어 있었던 우리인데, 나는 부모님을 잘 알고 있는가?

> 오십년 가까이 살아온 어머니도 아버지의 사정을, 남자의 사정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하자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어느 날 밤이 더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아버지는 정말 다양한 사람과 접점을 가졌다. 생각해보면, 인생은 하나가 아닐 성싶다. 관계를 맺은 사람마다 내가 보여지는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그렇다면 지인의 수만큼 인생의 갯수도 늘어나게 되지 않을까.

가끔 부모님의 과거 얘기가 궁금해 묻곤 한다.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했던 부모님이지만, 아버지의 군시절 이야기, 어머니의 빛났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놀라움의 연속이다. 부모님으로 살기 전, 한 사람으로서 살 때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부모가 된 후에도 어떤 자아와 생각으로 지냈고, 버텨왔는지. 김하나 작가의 ‘빅토리 노트’처럼, 부모님도 자신의 인생이 있었을텐데, 거기에 귀를 기울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6. 둘째로, 인간이 소외된 이념 투쟁의 허망함이다.

> 아버지는 백운산에 가장 오래 있긴 했지만 이산 저산 떠돌며 48년 겨울부터 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옭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분명 빨치산으로 살았다. 국가 안보에 안 좋은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하다. 사회에 위험하다고 판단과 처벌이 가능하다. 죄를 지은 사람이 있다면 그 죄에 있어서만 사람을 벌해야 하는데, 소설에서는 연좌제로 아버지의 친인척들도 벌을 받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총에 맞아 죽었고, 그 충격으로 동생은 평생 형(아버지)을 원망했다.조카는 고위공직에 오르지 못했다.

빨치산 운동은 고작 4년을 했건만, 아버지는 평생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사회는 그가 살아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기 껄끄러운 주제다. 위험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영원히 억압할 자격이 있을까? 영원한 딜레마가 될 터다. 사람이 빠진, 오로지 이데올로기만의 대립에서 소외되는 것은 결국 우리다.


7. 마지막으로, 빨치산 ‘고상욱’이 아닌 그냥 사람 ‘고상욱’을 생각해본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많은 사람과 만나고 살았다. 과거 빨치산 동지는 물론이오, 조선일보를 보는 교련선생 출신 박선생과 단짝이고, 자신을 감시하는 담당형사와 술잔을 나누기도 했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소매를 걷고 찾아갔다.

> “생각이 다르면 안 보면 되지, 애도 아니고 맨날 싸우면서 왜 맨날 놀아요?”
>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아랫목에 자리를 잡고 신문을 촥 펴면서 말했다.
>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
> 아버지에게는 사상과 사람이 다른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사상보다 사람을 믿는 것이다. 그것이 사상과 빨치산 운동으로 발현되었지만, 뿌리에는 결국 사람이 있었다. 당시 빨치산들이 어떤 마음으로 총을 들고 투쟁했는지는 모르겠다. 우파 - 좌파, 모든 이들이 한반도라는 좁은 땅떵이에서 비극과 뒤엉켰을 뿐이다. 결국 사람 ’고상욱’은, 우리는 대단한 것 없이, 이상한 것 없이, 사람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고, 자신의 인생을 걸고 온몸으로 말하는 셈이다.


8. 소설에서 가장 가슴을 치는 문장은, 가장 마지막에 수록된 ‘작가의 말’에 있다.

>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

우리가 욕심, 시기, 질투, 의심을 조금만 내려놓고 상대에게 자그마한 진심을 담아 손을 내민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유토피아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세상에 슬픔이 차츰 사라지고 웃음과 신뢰가 피어나길 바랄 뿐이다. 사람을 믿는 신념을 고수하려면 얼마나 무던해져야 할까. 아버지가 꿈꿔왔던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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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수 2023-06-03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 임승수라고 합니다. 이번에 제가 쓴 인문에세이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출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진심을 담아서 한 글자 한 글자 열심히 썼지만 딱히 홍보할 방법이 없다 보니 답답한 마음에 저자가 이렇게 직접 나서게 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책 여러 권을 가방에 넣고 무작정 지하철에 올라 승객분들에게 직접 육성으로 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그래서는 안 되겠지만요). 갑작스러운 댓글에 불편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여러 일로 바쁘시겠지만 1분 정도만 시간을 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그러고 보니 문득 제 신간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의 내용이 <아버지의 해방일지> 21세기 실사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 아버지가 빨치산 출신 사회주의자로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살아오면서 생긴 독특한 인간관계와 에피소드가 있듯이, 두 딸의 아빠이자 반백살의 남성인 저도 30년째 사회주의자로 살아오면서 그런 삶을 견지했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하지 않은 사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생 때 사회주의자가 된 이후 인생이라는 여행의 경로가 대폭 변경되었습니다. 가치관이 바뀌다 보니 갈림길에서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인데요. 글치였던 공대생 출신이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서는 느닷없이 마르크스주의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선거 날 투표할 때면 지지율이 1%도 안 되는 후보에게 거침없이 한 표를 행사하고, 뜬금없이 와인에 홀딱 빠져서는 대한민국 검사뿐만 아니라 노동 조합 간부들을 대상으로 와인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인생 경로는 명승지 투어 같이 잘 차려진 패키지 여행과는 결이 달라서, 오지 탐험에서나 맞닥뜨릴 돌발 장면들이 순간순간 펼쳐졌습니다.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에는 제가 사회주의자라는 여행 경로를 선택하게 된 이유, 그리고 이 경로를 선택했을 때만 접할 수 있는 풍경, 경험할 수 있는 사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전히 이 여행이 제법 맘에 들어서 설사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고 사회주의자로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 이야기에 공감하리라 기대한다면 과욕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오지 탐험 여행서 같은 흥미진진함을 제공하리라 작은 기대를 해봅니다.

이 책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쓴 건 아닙니다. 그저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삶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썼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재밌게 읽으셨다면 제 책도 ‘실사판’으로서 무척 흥미롭게 읽으시리라 확신합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권의 여행서를 읽는다는 느낌으로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아래에는 출판사의 책소개 일부를 발췌해서 옮깁니다. 귀중한 시간 할애해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의 인터넷서점 링크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9181643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7534357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2430088

”우리는 과연 사회주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실 사회주의는 생각보다 훨씬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에 스며들어있다. 일례로 전 세계가 주목한 코로나19 감염병 대처 방식도 지극히 사회주의식이었다. 국가가 앞장서서 공공 재원과 행정력을 동원해 감염병에 대처했으며 코로나 진단 검사와 치료를 누구나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보건 의료 정책과 더불어 국민건강보험공단, 국공립학교, 국공립어린이집, 무상 급식, 공공 임대 주택, 부자 증세 등등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복지 및 재분배 정책은 모두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졌다. 그런데 복지를 확대하길 원하면서도 왜 사회주의에는 유독 반감을 가질까?

저자는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본격적으로 해소한다. 이를 위해 자본주의가 대세이면서 동시에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30년 차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아낌없이 들려준다. 또한 자본주의의 은폐된 착취 시스템이 작동하는 원리를 해설하고, 역사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태생과 최후를 통찰한다.

사회주의로의 강요는 없다. 다만 질문이 시작될 뿐이다. 최악의 빈부 격차, 극심한 이윤 지상주의, 유례없는 환경 파괴, 만연한 생명 경시 풍조가 지배하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지켜나갈 것인지. 증오와 배척, 불평등와 불공정 너머의 세계를 꿈꾸며, 우리 삶의 지표에 진중한 화두를 던진다“

양손잡이 2023-06-03 11:50   좋아요 0 | URL
이전에 출간된 책을 사두기만 하고 읽지를 못했는데(책 쇼핑 욕구가 많아서 좋다 생각하는 책은 무작정 사둡니다)이번 신긴은 얼른 사서 꼭! 읽어야겠네요. :)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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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에 의하면 20~69세 남녀 중 빨리 감기로 영상을 시청한 사람은 34.4퍼센트로 조사됐다. 20대는 49.1%, 30대는 34.1%의 비율이다란다. 표본수가 적지만 대학교 2~4학년생은 87.6%가 빨리 감기를 한다고 한다. 젊은 세대일수록 빨리 감기나 건너뛰기로 영상을 시청하는 셈이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다.

2. 유튜브 영상을 1.5배속으로 본 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1.25배도 아니고 1.5배. 영상을 빨리, 또 많이 보려고 그런 건데, 종종 음성이 잘 들리지 않아 앞으로 돌아가 다시 듣기도 한다. 때로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자막을 켠다.

3. 1.5배속 재생을 한번 경험하니 다른 영상도 자연스레 배속으로 보게 된다. 처음에는 간단한 정보성 영상에서 시작된 1.5배속이,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 심지어 인물간의 감정을 다룬 영화까지 퍼졌다. 이제 정속의 영상은 너무 느리게 느껴진다. 사람이 원래 이렇게 말을 천천히 했나 싶을 정도다.

4. 우리가 1.5배속뿐만 아니라 2배속으로 영상을 보고, 때로는 10초, 15초 건너뛰는 가장 큰 이유는, 세상에는 볼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기존에도 TV 쇼, 드라마, 영화 같은 컨텐츠는 많았다. 마블 영화나 영드 닥터후 시리즈, 애니메이션 심슨 시리즈도 맘먹고 보려면 몇 주를 지새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유튜브나 틱톡에서 유저들이 업로드하는 영상까지 더해지니, 넷상에는 영상과 컨텐츠는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넘친다. 유튜브에는 1분마다 400시간의 영상이 업로드된다고 한다. 2019년 기사 내용이니, 지금은 400시간보다 훨씬 많지 않을까 싶다.

5. 하나 더. 기존에는 서사와 드라마를 즐기기 위한 영상이 많았다. 천천히 이야기를 즐기며 소화하면 됐다. 인터넷의 발달과 UCC의 출현, 거기에 유튜브라는 거대 공룡이 출현한 후 영상은 유행을 주도, 사회현상을 만들기도 한다. 간혹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잘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농담, 소재가 있다. 찾아보면 유튜브에서 유행한 밈과 유행어, 인물들이다. 덕분에 한참 펭수, 빵송국, 숏박스, 스낵타운의 영상을 쭉 본적이 있다. 물론 이것들을 모른다고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는다. 주변에 발맞추기 위해 우리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온갖 컨텐츠를 소비한다. 빨리빨리, 빨리 감기로 말이다.

> 고전적 명작 《로마의 휴일》(1953)에도 ‘샤레이드’가 사용되었다.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앤 공주가 각국 중요 인사들과 차례로 악수하며 인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녀는 시종일관 지루해 보인다. 다만 “아, 지루해”라는 대사는 없다. 대신 카메라가 그녀의 드레스 속 발끝을 비춘다. 그녀는 지루한 나머지 발을 꼼지락거리며 한쪽 구두를 벗어둔다. 발끝이 신발을 잃어버리고 급기야는 자리에 앉을 때 구두를 놓쳐버린다. 이 장면은 앤 공주가 지루해하고 있음을 대사 한 줄 없이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이 시나리오 기술이다.

6. 영상을 빨리 보면서 우리는 그 안에 담긴 분위기와 내러티브보다 ‘내용과 소재’ 그 자체에만 집중하게 된다. 수많은 컨텐츠 속에서 우리가 중요시 여기는 것은 컨텐츠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이 조금 낮아지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컨텐츠는 그것이 가진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 위 인용과 다르게 인물의 기분을 보여주지 않고 지루하다고 직접 대사를 내뱉는 것이다.

7. 길이가 1분 미만의 숏폼 동영상도 비슷한 결로 바라볼 수 있겠다. 세부 줄거리 흐름이 중요하지 않은 숏폼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보다보면 논리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긴 호흡의 영상은 점차 소화하기 힘들어지고, 텍스트는 당연지사, 자극이 적으니 읽기 지루하다. 컨텐츠의 주인이 아닌 노예가 되는 셈이다. 이건 100% 내 경험이다. 유튜브 쇼츠를 중독된 듯 볼 시기에, 책은 고사하고 한 시간짜리 드라마 한 편도 보기 조금 힘들어했다.

> “디테일한 부분이야 상관없어. 스토리만 알면 돼.”
> “건너뛸 수 있는 작품을 만든 게 잘못이지”
> “어떤 식으로 보든 그건 내 마음이야.”

8. 저자는 빨리 감기를 시대적 필연이라고 말한다. 가급적 적은 자원으로 이윤을 최대화하려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거의 절대적 정의가 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고도 한다. 충분히 이해는 하나, 이런 의문이 남는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본다니 대체 어찌 된 일일까?

9. 책을 덮고 유튜브 영상을 정속으로 봤다. 못참고 다시 1.5배속으로 설정한다. 빨리 보기에 중독되면 벗어날 수 없다. 그래도, 배속과 건너 뛰기, 숏폼 컨텐츠의 부작용을 몸소 겪었으니 답답함을 꾹 참고 1.25배속으로 타협을 해본다. 넘치는 인터넷 밈을 다 알 필요 없다. 유행에 민감하지 않아도 된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나만의 감정선을 찾으려고 노력해본다. 아, 영화는 배속으로 보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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