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마다 소위 말하는 약장수들이 들어와 연세 드신 어른들 주머니를 홀랑 털어가는 일이 이젠 너무 흔하다.
매일 아침과 오후 2번 출석 체크해서 표 딱지를 주고 그게 모이면 선물로 교환도 해주고 갈 때마다 설탕이니 휴지니 잔뜩 안겨주고 젊은 사람들이 어머니 오셨어요.. 오늘 어머니 패션 너무 멋지시네요 하면서 온갖 사탕발림을 하니 자식 다 분가하고 혼자 하루 종일 텔레비전이 유일한 낙인 할머니들은 불편한 자리임에도 꼬박 꼬박 자릴 차지하고 앉아 계시고
물건 안 사면 주는 그 눈총도 이제 다음에 오면 살게 살게 하면서 며칠을 나갔으니 이제 몇 번만 더 나가면 뭐를 탄다느니 하면서 얘길 하시는 할머니들을 볼 때 마다 은근히 화가 나곤 했다.
종일 허리 구부리고 앉아서 박수치고 상품 설명 듣고.. 몇 백만 원 하는 물건을 덜컥 할부로 사들여 와 놓고는 자식들에게 짐을 떠 넘기는 모습이 솔직히 곱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엄마께서 무척이나 바빠지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통화하기도 힘들고 다리가 붓는다고 하고.. 알고 보니 우리엄마도 옆집에 사는 할머니 손에 끌려 거길 다니기 시작하신 거다.
집에서 놀면 뭐하니 거기 가니깐 노래도 시켜주고 재미있더라.. 앉아서 놀면 설탕 한 봉지 누가 그냥 주던..하는 울 엄마도 내가 못 마땅해 하던 할머니의 모습이었던 것이었다.
설탕 타왔다고 가져다 먹으라고 하면 됐어.. 설탕 없어서 못사는 거 아니니깐 엄마 혼자 두고 두고 드셔 하면서 싫은 티를 팍팍 냈다.
물건을 몰래 몰래 사다가 쟁여두는 엄마가 왜 그리 싫던지.
당당하게 사서 들고 들어오지도 못하면서 얼마나 그 눈치를 받았을까 싶으니 은근히 부아가 올라오고 도저히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는 거였다.
나중엔 정말 거기에 한 번만 더 가시면 그땐 정말 엄마 얼굴 안 보겠다고 하고 큰오빠도 집에 왔다가 엄마가 거기에 다닌다는 소릴 듣고는 그 곳으로 달려가서 엄마를 모셔왔다..
아들이 못나서 엄마가 거기서 화장지 타고 설탕 타러 다니냐고 했더니 그제야 엄마가 다시는 안 가겠다고 하신다. (엄마들은 왜 아들 말만 들으려 하시는 걸까?)
비단 엄마가 물건을 타오는 잔 재미로 다니신다고 하면 재미 삼아 다니시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건 아니었다.
갔다 오면 상품 설명을 하면서 이게 정말 좋다는데 하면서 사고 싶어하신다.. 아니 알고 보면 그 눈총을 견디기 어려서 하나 사면 몇 번은 눈치 안보고 다닐 수 있으니깐 샀으면 하시는 거였다.
그게 중독인가 보다.
싸구려 미끼상품 몇 개 집어 주곤 몇 배에 해당하는 물건을 팔고..
이젠 할머니들이 어디 뭐가 또 들어 왔는데 거긴 여기보다 2배로 준데... 정보가 참 빠르시다.
그런데 보자기에 이것 저것 싸서 짊어 지고 오는 할머니들의 구부러진 허리는 정말 마음이 아프다.
의자도 제대로 없이 바닥에 방석 하나씩 깔아주고 종일 박수 치게 만드니 그 허리가 오죽에 아플까 한다.
아 그런데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렇게 허리가 휘게 받아 온 물건을 냉큼 받아 온 거였다.
이젠 엄마가 더 이상 다니지 않는데 몇 일전 은근히 비닐 봉투 하나를 내미신다.
아무 말 하지 말고 가져 가란다.
이게 뭔데?
이거 지난 번에 좋다고 하길래 내가 표 5장 주고 바꿔다 놓은 거야..
하면서 내 눈치를 살핀다. 언니랑 오빠네 것도 다 있는데 혼날까 봐 못 주고 있다고 하면서 여름 다 지나가면 아깝지 않니 하면서 빨랑 가져가라고 주신다.
엄마가 정말 돈 주고 산 거 아니야.. 진짜 표 5장 주고 바꾼 거 맞아?
진짜 라니깐.. 그래 그럼 내가 한 번만 봐준다...
그렇게 못 다니게 난리 난리를 칠 땐 언제고 ... 봐주긴 뭘 봐주는데.. 그래서 딸은 도둑이라고 하나? 엄마가 내가 가져가니 좋은가 보다.
그거 시어머니 주지 말고 네가 깔고 자... 알았지?

돗자리 같이 생긴 건데 아주 시원하다.. 붙지도 않고... 깔끄럽지도 않고...
가져는 와서 시원하게 잠을 청하지만 그래도 저걸 볼 때 마다 엄마의 굽어진 허리가 생각나게 생겼다. 나 정말 딸 맞아?